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2023/1/17)

 

5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7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출20:5-7)

 

①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절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과, ‘섬기는 것’은 ‘계명을 지키는 것’과 서로 연결됩니다.

 

겸손과 복종이 없는 예배는 예배가 아니라 예배의 진리 안에 있는 사람들을 흉내 내는 몸짓에 불과합니다. 그러한 몸짓 안에는 아무런 생명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은 오직 겸손하고 순종하는 마음 안으로만 흘러들어오기 때문입니다. 겸손하고 순종하는 마음이 주님을 받아들이는데 합당한 까닭은 마음이 진정으로 겸손해야 자아 사랑과 세상 사랑에 속한 그 어떤 것도 방해를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AC.8873)

 

②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주님은 복수하시는 분도, 누구를 저주하시는 분도 아닙니다. 주님은 사랑 그 자체이신 분입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묘사를 허락하신 이유는 악인들을 위해서, 즉 악인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만일 악인들에게 ‘너희가 아무리 악을 행해도 나는 여전히 너희를 사랑한다’는 식으로 기술을 하면, 그들은 아무 두려움 없이 더욱 담대하게 악을 행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③ ‘삼사 대’, ‘천 대

 

숫자 ‘’(3)과 ‘’(4), 및 ‘’(1000)의 속뜻은 원고를 참조하시고요, ‘삼사 대’, 이는 악과 거짓이 더욱 완전하게 얽히고설켜 돌이킬 수 없이 깊은 악의 수렁으로 빠져들어 가는 것을, ‘천 대’는 ‘영원히’라는 뜻입니다.

 

※ AC(Arcana Coelestia, 천국의 비밀) 위 8873번 글에 대한 Clowes 영역 및 Potts 개정본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That it denotes Divine worship, is because humiliation and submission are essentials of worship, for worship without them is not worship, but gesture in imitation of those who are in the truth of worship; in which gesture there is nothing of life, for life from the Lord flows in solely into a humble and submissive heart, because such a heart has been fitted to receive. That such is the case is because when the heart is truly humble, nothing of the love of self and of the love of the world stands in the way.

 

이는 오늘 본문 5절,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에 관한 주석 중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Thou shalt not bow down thyself to them, nor serve them.)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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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열두 제자를 사도로 세우시다’ (2023/1/16)

 

12이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13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14곧 베드로라고도 이름을 주신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과 빌립과 바돌로매와 15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셀롯이라는 시몬과 16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예수를 파는 자 될 가룟 유다라 (눅6:12-16)

 

 

① ‘이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주님은 세상에 계실 때, 두 가지 영적 상태, 곧 ‘겸손’(exinanition, emptying himself, 자기 비움, 겸비)의 상태와 ‘영화’(glorification)의 상태 가운데 계셨습니다. (TCR.104)

 

주님은 이 둘 사이를 왕래하시며, 구원 사역을 감당하셨는데요,

 

겸손의 상태란, 주님의 인성과 주님 안에 계신 여호와의 신성이 하나로 결합하기 전 상태로서, 자기 안에 계신 여호와의 신성 앞에 철저히 자기 자신을 낮추시고, 여호와를 의지하여 지옥과 싸우시는 상태입니다. 거듭남 과정 중에 있는 우리도 주님의 이런 모습을 본받아야 합니다.

 

영화의 상태란, 주님의 인성과 신성이 하나 된 상태, 결합 된 상태로, 예를 들면, 세 명의 제자들 앞에서 변화하신 때나 기적을 행하실 때, 그리고 아버지와 나는 하나라 말씀하실 때 등입니다.

 

② 숫자 ‘열둘’(12)의 속뜻은 믿음에 관한 모든 것으로(천국의 비밀 3268번 글), ‘열두 명의 사도’는 주님의 열두 제자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모든 신실한 신앙인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③ 열두 제자의 이름들의 속뜻은 오늘 설교 원고를 꼭 읽어보세요. 이 이름들의 속뜻을 알면, 왜 주님이 아주 중요할 때마다 특별히 ‘베드로’, ‘야고보’, ‘요한’만 따로 부르셨는지, 그리고 ‘안드레’와 ‘빌립’, ‘바돌로매’, 그리고 ‘마태’와 ‘도마’ 등,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룟 유다’에 대해서도 매우 특별한 사실들을 아시게 됩니다.

 

※ TCR(True Christian Religion, 참된 기독교) 위 104번 글에 대한 Ager 영역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8) The progress towards union was his state of exinanition [emptying himself], and the union itself is his state of glorification. It is acknowledged in the church that when the Lord was in the world he was in two states, called the state of exinanition and the state of glorification... This same state was his state of humiliation before the Father; for in it he prayed to the Father; and he says that he does the Father’s will, and ascribes to the Father all that he did and said... Moreover, except for this state he could not have been crucified. But the state of glorification is also the state of union. He was in that state when he was transfigured before his three disciples, and also when he wrought miracles,

 

이는 큰 주제인 ‘구주 되신 주님’(The Lord the Redeemer)에 관한 작은 여러 주제 중 여덟 번째인 ‘주님의 두 상태, 겸비(exinanition)와 영화(glorification)’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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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2023/1/15)

 

1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2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3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4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출20:1-4)

 

①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주님의 호칭에 대해서 알아봅니다.

 

주님의 신성은 선과 진리의 융합, 하나 됨이며, 그래서 주님의 호칭들은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즉

 

주님의 신성(the Divine) 호칭 중 선에 대한 호칭은 ‘여호와’, 진리에 대한 호칭은 ‘하나님’이며, 주님의 신적 인성(the Divine Human) 호칭 중 선에 대한 호칭이 ‘예수’, 진리에 대한 호칭이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지금 말씀을 열고, 확인하셔도 됩니다. 왜 어디는 ‘여호와’라 하시고, 또 어디는 ‘하나님’이라 하시는지, 그리고 왜 어디는 ‘예수’라 하시고, 또 어디는 ‘그리스도’라 하시는지 말이죠 ^^

 

주님은 제자들에게 앞뒤 무슨 기다란 형용 없이 단순히 ‘주님’으로 부를 것을 명하셨고, 그래서 주님 부활하신 후, 제자들은 늘 ‘주님’으로만 불렀습니다.

 

②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자기 자신과 세상을 모든 것에 우선해서 사랑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모든 것에 우선해 사랑하는 것이 그의 신이기 때문입니다. 두 개의 정반대의 사랑이 있는데,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요, 또한 세상에 대한 사랑과 천국에 대한 사랑입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자아를 사랑하며, 또한 모든 면에서 악을 사랑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자아는 악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러니까 악을 사랑하는 사람은 선을 미워하고, 그러므로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모든 것에 우선해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의 애정과 사상을 육신에 빠뜨리고, 그렇게 해서 자아에 빠뜨리는데, 그래서 그는 주님께로 끌어올려질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AE.950)

 

※ AE(Apocalypse Explained, 계시록 해설) 위 950번 글에 대한 Ager 영역 및 Whitehead 개정본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Thou shalt not make to thee other gods” includes not loving self and the world above all things; for that which one loves above all things is his god. There are two directly opposite loves, love of self and love to God, also love of the world and love of heaven. He who loves himself loves his own (proprium); and as a man’s own is nothing but evil he also loves evil in its whole complex; and he who loves evil hates good, and thus hates God. He who loves himself above all things sinks his affections and thoughts in the body, and thus in his own and from this he cannot be raised up by the Lord;

 

이는 계시록 15장 6절,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And there came out of the temple the seven angels that had the seven plagues, clothed in linen clean and bright, and girded about the breasts with golden girdles.)에 관한 주석 중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clothed in linen clean and bright)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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