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이나 영으로 산다는 것에 관하여
AC.322
영들이 육체 안에서 살 때보다 훨씬 더 섬세한 감각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그릇된 생각을 조심해야 합니다. 저는 수천 번 반복된 경험을 통하여 사실은 그 반대임을 알고 있습니다. 영의 본성에 관하여 미리 형성된 관념 때문에 이것을 믿지 않으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저세상에 들어갔을 때 자신의 경험을 통해 배우게 하십시오. 그러면 믿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영들은 시각(sight)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빛 가운데 살기 때문인데, 선한 영들과 천사적 영들, 그리고 천사들은 이 세상의 한낮 정오의 빛으로는 거의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밝은 빛 가운데 살아갑니다. 그들이 머물며 사물을 보는 그 빛에 대해서는 주님의 신적 자비(the Lord’s Divine mercy)로 이후에 설명하겠습니다. 영들은 또한 청각(hearing)을 가지고 있으며, 그 청각 또한 육체의 청각으로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섬세합니다. 그들은 여러 해 동안 거의 끊임없이 저와 말해 왔습니다. 다만 그들의 말에 관해서도 주님의 신적 자비로 이후에 설명하겠습니다. 그들에게는 후각(the sense of smell)도 있으며, 이에 관해서도 역시 주님의 신적 자비로 이후에 다루고자 합니다. 그들에게는 지극히 섬세한 촉각(a most exquisite sense of touch)이 있습니다. 지옥에서 겪는 고통과 고문도 이 촉각에서 비롯됩니다. 모든 감각은 촉각과 관련되며, 다른 감각들은 단지 촉각의 여러 차이와 다양한 형태일 뿐입니다. 그들은 또한 육체 안에 있을 때 가졌던 것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욕망과 애정들을 가지고 있는데, 이에 관해서도 주님의 신적 자비로 이후에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Beware of the false notion that spirits do not possess far more exquisite sensations than during the life of the body. I know the contrary by experience repeated thousands of times. Should any be unwilling to believe this, in consequence of their preconceived ideas concerning the nature of spirit, let them learn it by their own experience when they come into the other life, where it will compel them to believe. In the first place spirits have sight, for they live in the light, and good spirits, angelic spirits, and angels, in a light so great that the noonday light of this world can hardly be compared to it. The light in which they dwell, and by which they see, will of the Lord’s Divine mercy be described hereafter. Spirits also have hearing, hearing so exquisite that the hearing of the body cannot be compared to it. For years they have spoken to me almost continually, but their speech also will of the Lord’s Divine mercy be described hereafter. They have also the sense of smell, which also will of the Lord’s Divine mercy be treated of hereafter. They have a most exquisite sense of touch, whence come the pains and torments endured in hell; for all sensations have relation to the touch, of which they are merely diversities and varieties. They have desires and affections to which those they had in the body cannot be compared, concerning which of the Lord’s Divine mercy more will be said hereafter. Spirits think with much more clearness and distinctness than they had thought during their life in the body.
영들은 육체 안에서 살 때보다 훨씬 더 맑고 분명하게 생각합니다. 그들의 생각에 속한 하나의 관념 안에는 이 세상에서 가졌던 천 개의 관념 안에 들어 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이 담겨 있습니다. 그들은 매우 예리하고 섬세하며, 명민하고 분명하게 서로 말합니다. 만일 사람이 그것 가운데 무엇이라도 지각할 수 있다면 크게 놀랄 것입니다. 요컨대 영들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으나, 육체와 뼈, 그리고 그것들에 따르는 불완전함을 제외하면 훨씬 더 완전한 방식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육체 안에서 살 때에도 실제로 감각한 것은 영이었음을 인정하고 지각합니다. 감각 능력이 육체 안에서 나타나기는 했지만, 그것이 육체에 속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육체를 벗어 버리면 감각은 훨씬 더 섬세하고 완전해집니다. 생명은 감각의 활동으로 이루어집니다. 감각이 없다면 생명도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감각 능력이 어떠하냐에 따라 생명도 그러합니다. 이것은 누구나 관찰할 수 있는 사실입니다. There are more things contained within a single idea of their thought than in a thousand of the ideas they had possessed in this world. They speak together with so much acuteness, subtlety, sagacity, and distinctness, that if a man could perceive anything of it, it would excite his astonishment. In short, they possess everything that men possess, but in a more perfect manner, except the flesh and bones and the attendant imperfections. They acknowledge and perceive that even while they lived in the body it was the spirit that sensated, and that although the faculty of sensation manifested itself in the body, still it was not of the body; and therefore that when the body is cast aside, the sensations are far more exquisite and perfect. Life consists in the exercise of sensation, for without it there is no life, and such as is the faculty of sensation, such is the life, a fact that anyone may observe.
해설
AC.322는 앞의 AC.321에서 간략하게 제시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펼칩니다. 스베덴보리는 영이 육체를 벗으면 감각을 잃거나 희미한 존재가 된다는 생각을 ‘그릇된 생각’이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수천 번에 걸친 경험을 근거로 오히려 그 반대라고 증언합니다. 영들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접촉하며, 욕망하고 사랑하고 생각하고 말합니다. 더구나 이러한 능력들은 육체 안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섬세하고 완전하다고 합니다.
이 설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제로 감각하는 것은 영’이라는 스베덴보리의 인간 이해입니다. 우리는 눈이 보고 귀가 듣는다고 생각하지만,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육체의 감각기관은 자연계의 것을 인간의 내적인 생명에 전달하는 기관입니다. 감각 능력이 육체를 통하여 나타나기는 하지만 감각하는 생명 자체가 육체에 속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육체가 죽는다고 인간의 감각까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연적 육체의 제약을 벗으면서 영의 감각은 더욱 섬세하고 완전하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먼저 시각을 예로 듭니다. 영들은 빛 가운데 살며, 특히 선한 영들과 천사적 영들, 천사들은 이 세상의 한낮과 거의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밝은 빛 가운데 있다고 합니다. 청각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여러 해 동안 영들과 거의 끊임없이 대화했다고 말하면서, 그들의 청각이 육체의 청각보다 훨씬 섬세하다고 증언합니다. 후각과 촉각 역시 존재하며, 특히 모든 감각이 어떤 의미에서는 촉각과 관계된다는 흥미로운 설명도 덧붙입니다. 다만 이러한 각각의 감각과 영계의 빛과 언어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이후에 하겠다고 여러 차례 예고합니다.
여기서 감각만큼 중요한 것이 욕망과 애정입니다. 영들은 육체 안에서 가졌던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분명한 욕망과 애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후의 인간이 생각만 남은 추상적인 정신적 존재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사람의 생명에는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사랑하는가가 본질적으로 포함되어 있으며, 육체의 죽음이 그러한 애정의 생명을 없애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후에도 인간은 감각하고 생각할 뿐 아니라 원하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계속 살아갑니다.
사고와 언어에 관한 설명은 더욱 놀랍습니다. 영들의 하나의 관념에는 지상에서 가졌던 천 개의 관념보다 더 많은 것이 들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생각은 훨씬 더 맑고 분명하며, 서로 말할 때에도 예리하고 섬세하며 명민하고 분명합니다. 스베덴보리가 말하려는 것은 단순히 사후에 머리가 좋아진다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계의 육체와 그 제약 안에서 표현되던 인간의 내적인 생각이 영의 상태에서는 훨씬 풍부하고 직접적으로 활동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매우 인상적인 결론을 내립니다. 영들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으나, 육체와 뼈, 그리고 그것들에 따르는 불완전함을 제외하면 훨씬 더 완전한 방식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AC.320부터 계속된 설명의 핵심을 더욱 분명하게 합니다. 사후의 인간은 지상 인간에게서 무엇인가가 크게 빠져나간 불완전한 존재가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이 여전히 보고 듣고 생각하고 말하고 원하고 사랑하는 온전한 사람임을 경험합니다.
마지막으로 ‘생명은 감각의 활동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은 AC.322 전체를 압축합니다. 여기서 감각은 단순히 육체의 오감만을 뜻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이 글 전체가 시각과 청각뿐 아니라 욕망과 애정, 사고와 언어까지 함께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받아들이고 느끼고 원하고 사랑하고 생각하며 다른 존재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감각 능력이 어떠하냐에 따라 생명도 그러하다고 말합니다.
AC.320-322를 함께 읽으면 하나의 흐름이 선명해집니다. AC.320에서는 사람이 죽은 뒤에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자기 자신으로 살아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AC.321에서는 사후의 감각과 사고와 말의 능력이 오히려 더 탁월하다고 했고, AC.322에서는 그것을 구체적인 감각과 애정과 사고의 경험으로 펼쳐 보였습니다. 스베덴보리가 여기서 반복해서 전하려는 것은 분명합니다. 죽음은 인간의 생명이 희미해지는 과정이 아닙니다. 육체를 벗은 뒤에도 인간은 여전히 감각하고 원하고 사랑하고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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