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82.심화

 

1. ‘celestial spiritual good’, ‘natural good

 

AC.282에서 스베덴보리는 태고교회의 후손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영적으로 낮아지는 과정을 매우 간결하게 요약합니다. 그는 첫 번째 후손에게는 ‘천적 영적 선(celestial spiritual good)이 있었고, 두 번째와 세 번째 후손에게는 ‘자연적 선(natural good)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이 두 표현은 단순히 선의 종류를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이 사람 안에서 어떻게 점차 약화되어 갔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개념입니다.

 

먼저 ‘천적 영적 선’은 가장 높은 수준의 선인 ‘천적 선(celestial good)과는 조금 다릅니다. 천적 선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랑 자체를 말합니다. 그러나 ‘천적 영적 선’은 그 사랑으로부터 흘러나와 이웃을 향해 나타나는 선입니다. 다시 말해 주님에 대한 사랑이 근원이 되고, 그 사랑이 이웃을 사랑하고 진리를 실천하는 삶으로 나타난 상태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태고교회의 첫 후손이 비록 처음 태고교회만큼 높은 상태는 아니었지만, 여전히 천적 사랑에서 흘러나오는 영적 선 안에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이 때문에 ‘천적 영적 선’은 사랑과 신앙이 아직 분리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합니다. 사람은 먼저 주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선을 행하며, 그 선 안에서 진리를 깨닫습니다. 즉, 사랑이 여전히 중심이고, 신앙은 그 사랑의 표현입니다. 태고교회의 첫 후손들은 처음 교회만큼 퍼셉션이 밝지는 않았지만, 아직 이러한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교회는 더욱 낮은 상태로 내려갑니다. 그 결과 나타난 것이 ‘자연적 선’입니다. 자연적 선이란 겉으로는 선하게 보이는 삶이지만, 그것이 반드시 천적 사랑에서 직접 흘러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이웃을 돕고, 정직하게 살며, 사회 질서를 지키는 것처럼 인간 사회에서 나타나는 여러 선한 행위들이 여기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선은 여전히 선이지만, 그 근원이 천적 사랑보다는 자연적인 성향이나 교육, 양심, 사회적 질서에 더 가까운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자연적 선이 모두 부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자연적 선도 주님께서 사용하시는 중요한 바탕입니다. 사람은 먼저 자연적 차원에서 선을 배우고 실천하며, 그 위에 영적 선과 천적 선이 점차 세워집니다. 따라서 자연적 선은 거듭남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그 안에만 머무르면 외적 도덕성에 그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자연적 선이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과 연결되어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AC.282에서 말하는 교회의 변화는 바로 이러한 질서의 변화입니다. 처음 태고교회는 주님 사랑 자체 안에서 살았습니다. 그다음 세대는 아직 그 사랑에서 흘러나오는 영적 선을 가지고 있었지만, 점차 그 밝음이 약해졌습니다. 다시 그다음 세대는 주님 사랑의 직접적인 퍼셉션을 잃고, 주로 자연적 선에 의하여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선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라, 선의 근원이 점점 더 바깥쪽으로 이동하였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변화를 스베덴보리는 ‘가죽옷(coats of skin)이라는 상징으로 설명합니다. 옷은 사람의 가장 바깥을 덮는 것을 의미하며, 가죽은 더욱 외적인 생명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주님께서 사람에게 가죽옷을 입혀 주셨다는 것은, 높은 천적 상태를 잃은 사람들을 버리신 것이 아니라, 이제 그들의 수준에 맞는, 보다 외적인 선과 진리를 통하여 계속 보호하시고 인도하셨다는 뜻입니다. 비록 이전보다 낮은 상태가 되었지만, 주님께서는 그들에게도 여전히 구원의 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천적 영적 선’과 ‘자연적 선’의 차이는 선의 유무가 아니라 선의 근원에 있습니다. 천적 영적 선은 주님에 대한 사랑에서 직접 흘러나오는 선이며, 자연적 선은 그보다 한 단계 바깥에서 나타나는 선입니다. AC.282는 태고교회의 후손들이 점차 높은 영적 상태를 잃어갔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주님께서는 그들이 어떤 상태에 있든지 그 수준에 맞는 선과 진리를 마련하시어 끝까지 구원의 섭리를 이어 가셨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AC.282, 창3:20-24, ‘창3:21 개요’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And Jehovah God made for the man and for his wife coats of skin, and clothed them. (창3:21) AC.282 그 첫 번째 후손에 관하여, 그 안에는 천적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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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And Jehovah God made for the man and for his wife coats of skin, and clothed them. (3:21)

 

AC.282

 

그 첫 번째 후손에 관하여, 그 안에는 천적 영적 선(celestial spiritual good)이 있었으며, 또한 두 번째와 세 번째 후손에 관하여, 그 안에는 자연적 선(natural good)이 있었는데,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the coat of skin)을 지어 입히시니라(the coat of skin which Jehovah God made for the man and his wife)의 의미입니다. (21) Of its first posterity, in which there was celestial spiritual good; and of its second and third, in which there was natural good, signified by the “coat of skin which Jehovah God made for the man and his wife.” (verse 21)

 

 

해설

 

AC.282는 창3:21에 대한 해설의 서론입니다. 지금까지 스베덴보리는 태고교회의 타락과 홍수 전까지의 쇠퇴 과정을 설명해 왔는데, 여기서는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나타납니다. 비록 태고교회가 점차 타락하고 있었지만, 그 모든 후손이 한꺼번에 완전히 멸망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 후손들 가운데 여전히 선의 흔적과 생명의 가능성을 보존하고 계셨습니다.

 

여기서 스베덴보리는 태고교회의 후손들을 여러 세대로 구분합니다. 첫 번째 후손은 아직 ‘천적 영적 선(celestial spiritual good)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는 원래 태고교회의 순수한 천적 상태보다는 한 단계 낮아진 상태이지만, 여전히 주님에 대한 사랑이 중심이 되는 매우 높은 상태였습니다. 다시 말해, 완전한 타락이 시작되기 이전의 초기 후손들입니다.

 

그다음 두 번째와 세 번째 후손은 더 낮은 상태로 내려갔지만, 그래도 ‘자연적 선(natural good)은 남아 있었습니다. 여기서 자연적 선이란 천적 선이나 영적 선처럼 직접 주님께 연결된 높은 상태는 아니지만, 외적 삶 가운데 남아 있는 선한 성향, 온순함, 질서, 도덕성, 순종 등의 형태로 나타나는 선을 말합니다. 즉 교회의 본래 영광은 잃어버렸지만, 인간다움과 선의 흔적은 아직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러한 상태를 창3:21의 ‘가죽옷’으로 설명합니다. 일반적인 해석에서는 가죽옷을 단순히 인간의 수치를 가려 주기 위한 옷으로 이해하지만, 스베덴보리에게 옷은 언제나 어떤 진리나 상태를 덮고 보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가죽(skin)은 인간의 가장 바깥층을 의미하므로, 가죽옷은 내적인 천적 상태가 사라진 이후에도 남아 있는 외적 선의 상태를 상징합니다.

 

이 점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왜냐하면 창3의 앞부분은 저주와 심판으로 가득 차 있지만, 21절에서는 오히려 주님의 자비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무화과 나뭇잎으로 자신을 가렸던 것과 달리, 가죽옷은 주님께서 직접 지어 입히신 것입니다. 즉 인간이 스스로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타락한 상태 속에서도 주님께서 남겨 두신 선과 보호가 있다는 뜻입니다.

 

AC.282는 가죽옷이 단순한 의복이 아니라, 타락 이후에도 주님께서 후손들 안에 보존하신 선의 상태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첫 번째 후손에게는 아직 천적 영적 선이 있었고, 두 번째와 세 번째 후손에게는 자연적 선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남겨진 선이 훗날 새로운 교회가 세워질 수 있는 토대가 됩니다. 따라서 가죽옷은 심판의 상징이 아니라, 타락한 인류를 향한 주님의 보호와 보존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심화

 

1. ‘celestial spiritual good’, ‘natural good

 

 

AC.282, 심화 1, ‘celestial spiritual good’, ‘natural good’

AC.282.심화 1. ‘celestial spiritual good’, ‘natural good’ AC.282에서 스베덴보리는 태고교회의 후손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영적으로 낮아지는 과정을 매우 간결하게 요약합니다. 그는 첫 번째 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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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81, 창3:20-24, ‘창3:20 개요’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And the man [homo] called his wife’s name Eve, because she was the mother of all living. (창3:20) AC.281 천적 교회였던 태고교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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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81.심화

 

1. ‘celestial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천적(天的, celestial)은 단순히 ‘하늘에 속한’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는 인간과 교회의 영적 상태를 설명할 때, ‘천적’과 ‘영적’을 엄격히 구분하여 사용합니다. 천적 상태란 주님에 대한 사랑이 사람의 가장 깊은 중심이 되고, 그 사랑으로부터 생각과 의지, 그리고 삶 전체가 흘러나오는 상태를 말합니다. 따라서 ‘천적’은 하늘이라는 장소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주님 사랑이 인간의 생명을 다스리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태고교회를 천적 교회라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태고교회 사람들은 먼저 교리를 배우고 그것을 실천한 것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선을 행하였고, 그 선 안에서 무엇이 진리인지를 퍼셉션을 통하여 직접 깨달았습니다. 다시 말해 사랑이 진리를 이끌었고, 삶이 신앙을 살아 있게 하였습니다. 이것이 천적 교회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반면 영적 교회는 조금 다른 질서를 따릅니다. 영적인 사람은 먼저 말씀을 배우고, 진리를 이해하며, 그것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그러므로 영적 교회에서는 신앙이 사랑을 이끌어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천적 교회에서는 사랑이 먼저이고 신앙은 그 사랑 안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납니다. 스베덴보리가 천적 교회를 모든 교회 가운데 가장 높은 상태로 설명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사람의 내적 구조와도 관계가 있습니다. 천적인 사람은 의지가 먼저 주님으로부터 새롭게 되고, 이해는 그 새로워진 의지를 따라 움직입니다. 반대로 영적인 사람은 이해를 통하여 진리를 배우고, 그 진리에 따라 의지가 점차 변화됩니다. 결국 두 사람 모두 주님으로부터 거듭나지만, 거듭나는 순서와 방식이 서로 다른 것입니다.

 

또한 천적이라는 말은 단순히 마음이 따뜻하거나 성격이 온순한 사람을 뜻하지 않습니다. 천적인 사람도 분명한 판단을 하고, 악을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다만 그 모든 판단과 행동의 출발점이 자기 자신이 아니라 주님에 대한 사랑에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무엇보다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기뻐하고, 이웃의 선을 자신의 기쁨으로 삼습니다.

 

그러나 태고교회 말기에 이르러 이러한 천적 상태는 점차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퍼셉션을 잃고, 감각과 자기 판단을 더 신뢰하게 되었으며, 사랑이 진리를 이끌던 질서도 점차 깨졌습니다. 그 결과 사람은 자신의 rational에 의존, 진리를 판단하려 하였고, 결국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이 주님 사랑을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창3에서 묘사되는 타락의 본질입니다.

 

AC.281에서 태고교회를 ‘천적’이라 하는 것은 단순히 가장 오래된 교회였다는 뜻이 아니라, 주님에 대한 사랑과 ‘주님에 대한 신앙의 삶’이 완전히 하나였던 교회였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주님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선을 행하였고, 그 선 안에서 진리를 깨달았으며, 그 진리를 다시 삶으로 살아냈습니다. 이것이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천적(celestial)의 가장 깊은 의미이며, 모든 거듭남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AC.281, 창3:20-24, ‘창3:20 개요’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And the man [homo] called his wife’s name Eve, because she was the mother of all living. (창3:20) AC.281 천적 교회였던 태고교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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