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138.심화
2. ‘주님과의 인도 관계를 매개하는 자기성’
역시 위 해설, ‘돕는 배필’을 설명하면서, ‘따라서 ‘돕는 배필’ 역시 외부에서 보충되는 타자가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를 분명히 ‘사람 자신의 proprium’이라고 규정합니다. 인간이 스스로 느끼고 판단하며 선택하려는 구조, 곧 ‘proprium’이 여기서 ‘돕는 배필’이라는 형식으로 등장합니다. 이는 주님을 대체, 대신하는 조력자가 아니라, ‘주님과의 인도 관계를 매개하는 자기성’입니다.’라고 하는데요, 여기 ‘주님과의 인도 관계를 매개하는 자기성’이 뭔가요? 표현이 어려워 알 듯 모를 듯 합니다.
여기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자기성’(proprium)이 단순히 방해물이나 악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지금 ‘돕는 배필’을 설명하면서, 인간 안에 있는 어떤 ‘자기처럼 느껴지는 요소’가 왜 필요한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과의 인도 관계를 매개하는 자기성’이라는 표현이 나온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이런 뜻입니다. 주님은 인간을 직접 움직이는 기계처럼 다루지 않으십니다. 인간은 반드시 ‘내가 생각한다’, ‘내가 선택한다’, ‘내가 사랑한다’고 느껴야 합니다. 그러니까 ‘생각도, 선택도, 그리고 사랑도 내가 능동적으로 한다’고 말이지요. 그런데 바로 이 ‘내가 한다고 느끼는 자리’가 proprium, 곧 자기성입니다. 만약 이것이 전혀 없다면, 인간은 주님의 인도를 받아도 그것을 자기 삶처럼 느끼지 못합니다. 사랑도, 기쁨도, 책임도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자기성은, 비록 위험성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인간이 주님의 인도를 ‘자기 삶처럼’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드는 매개 역할을 합니다. 바로 이런 뜻에서 ‘주님과의 인도 관계를 매개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 보면 더 분명합니다. 어떤 사람이 선한 일을 할 때, 실제 생명과 선은 주님에게서 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그것을 전혀 자기 일처럼 느끼지 못한다면, 그는 사랑도 기쁨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반대로 그가 ‘내가 선택했고, 내가 사랑했다’고 느낀다면, 바로 그 자기감 속에서 그는 주님의 생명을 자기 삶처럼 경험합니다. 이 자기감이 없다면, 인간은 살아 있는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proprium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내가 근원이다’라고 굳어질 때의 타락한 자기중심이고, 다른 하나는 ‘주님의 것을 내 삶처럼 느끼며 살아가는 자리’입니다. AC.138에서 말하는 ‘돕는 배필’은 후자 쪽에 가깝습니다. 곧, 인간이 주님의 인도를 실제 자기 삶 속에서 체험하고 응답할 수 있게 해 주는 ‘자기처럼 느껴지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돕는 배필’이 단순한 외부 보조자가 아니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것은 인간 밖에서 와서 부족함을 채워주는 타자(他者), 타인이 아니라, 인간 안에 형성된 ‘자유롭게 응답할 수 있는 자기감’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은 주님의 인도를 받지만, 그 인도가 자기 안에서 실제로 살아 움직이기 위해서는, ‘내가 원한다’, ‘내가 따른다’, ‘내가 사랑한다’고 느끼는 어떤 자기성이 필요합니다. 이 자기성이 바로 ‘돕는 배필’의 깊은 의미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표현을 너무 추상적으로 보지 마시고, 이렇게 이해하시면 훨씬 또렷합니다.
‘주님과의 인도 관계를 매개하는 자기성’이란, 인간이 주님의 생명을 단순히 외부 힘으로 당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 ‘내 선택’, ‘내 사랑’처럼 실제로 느끼며 응답할 수 있게 해 주는 자기감의 구조를 말합니다.
그리고 문제는 이 자기성이 존재하느냐가 아니라, 그것이 끝까지 ‘주님에게서 받은 것’으로 남느냐, 아니면 ‘진짜 내 것’으로 굳어지느냐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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