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64.심화

 

3. ‘23:4-5

 

4시돈이여 너는 부끄러워할지어다 대저 바다 곧 바다의 요새가 말하기를 나는 산고를 겪지 못하였으며 출산하지 못하였으며 청년들을 양육하지도 못하였으며 처녀들을 생육하지도 못하였다 하였음이라 5그 소식이 애굽에 이르면 그들이 두로의 소식으로 말미암아 고통 받으리로다 (23:4, 5) Blush, O Zidon, for the sea hath spoken, the fortress of the sea, saying, I have not travailed, nor brought forth, nor have I brought up young men, nor caused girls to grow up; as at the report concerning Egypt, they shall bring forth according to the report of Tyre (Isa. 23:4–5),

 

 

스베덴보리가 AC.264에서 사23:4-5을 인용한 이유는, 창3:16의 ‘해산’과 ‘자식을 낳는 것’이 육체적 출산이 아니라, 신앙의 진리와 선을 낳는 영적 과정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또 하나의 성경 본문으로 입증하기 위해서입니다. 앞에서는 호세아를 통해 ‘임신’과 ‘자식’의 영적 의미를 설명하였다면, 여기서는 ‘출산하지 못함’과 ‘자녀를 기르지 못함’을 통해 진리를 더 이상 낳지 못하는 교회의 상태를 보여줍니다.

 

먼저 스베덴보리는 ‘시돈(Zidon)을 신앙의 지식(knowledges of faith)을 가진 사람들로 해석합니다. 시돈은 고대에 무역으로 유명한 도시였는데, 상응적으로는 여러 지식과 정보를 축적하는 기능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시돈은 말씀과 교회의 진리를 배우고 알고 있는 상태를 의미하지만, 아직 그것이 생명으로 결합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즉, 지식은 있지만 아직 그 지식이 사랑과 삶으로 연결되어야 하는 단계입니다.

 

그런데 스베덴보리는 여기의 시돈이 ‘기억 지식(memory-knowledges) 때문에 영적으로 메마르게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억 지식은 단순한 학문이나 일반 지식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가 비판하는 것은 기억 지식이 신앙을 섬기는 도구가 아니라, 신앙을 심판하는 기준이 되는 상태입니다. 사람이 감각과 세속적 학문만으로 말씀을 판단하기 시작하면, 신앙의 지식은 점차 생명을 잃게 됩니다.

 

그래서 시돈은 ‘나는 해산하지도 않았고, 아이를 낳지도 않았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지식을 전혀 갖지 못했다는 뜻이 아니라, 지식은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지식으로부터 어떠한 영적 진리도 산출하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AC.261에서 스베덴보리는 ‘임신’을 생각의 형성으로, ‘출산’을 진리가 실제 삶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설명하였습니다. 그런데 시돈은 그 과정 자체가 멈추어 버린 것입니다.

 

이어지는 ‘청년들을 양육하지도 못하였으며 처녀들을 생육하지도 못하였다’라는 말씀도 같은 맥락입니다. 스베덴보리의 상응에서 ‘청년들’은 강건한 진리들을, ‘처녀들’은 선과 진리를 사랑하는 순수한 애정들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교회 안에서 진리도 자라지 않고, 진리를 사랑하는 마음도 자라지 않는 상태를 묘사합니다. 영적 출생도 없고, 영적 성장도 없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시돈과 함께 언급되는 ‘애굽(Egypt)과 ‘두로(Tyre)도 이러한 의미를 더욱 분명하게 합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애굽은 기억 지식 전반을, 두로는 신앙에 관한 지식들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원래 기억 지식은 신앙을 돕기 위해 존재하고, 신앙의 지식은 주님께 나아가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러나 기억 지식이 신앙을 지배하기 시작하면, 두로와 시돈이 상징하는 영적 지식은 결국 생명을 잃게 됩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이러한 교회의 황폐를 애통하며 묘사하는 것입니다.

 

이 구절은 AC.259에서 스베덴보리가 말한 현대인의 상태와도 연결됩니다. 그는 오늘날 뱀이 사람을 공격하는 주요 수단 가운데 하나로 ‘감각’, ‘기억 지식’, 그리고 ‘철학’을 언급하였습니다. 물론 기억 지식과 철학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주님의 계시보다 위에 놓일 때, 사람은 말씀을 믿기 전에 먼저 자기 이성과 학문으로 재단하게 됩니다. 그 결과 지식은 많아도 진리는 태어나지 못하는 영적 불임 상태에 빠질 수 있습니다.

 

AC.264에서 사23:4-5을 인용한 이유는, 창3:16의 ‘임신’과 ‘해산’이 영적으로는 진리를 낳는 것을 의미하며, 반대로 ‘출산하지 못함’은 신앙의 지식은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삶의 진리로 열매 맺지 못하는 교회의 황폐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시돈을 통해 단순한 지식의 부족이 아니라, 기억 지식이 신앙을 지배함으로써 진리도, 진리를 사랑하는 애정도 더 이상 태어나지 못하는 상태를 경고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참된 영적 출산은 오직 주님과의 살아 있는 결합 속에서만 이루어진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AC.264, 심화 2, ‘호13:13’

AC.264.심화 2. ‘호13:13’ 해산하는 여인의 어려움이 그에게 임하리라 그는 지혜 없는 자식이로다 해산할 때가 되어도 그가 나오지 못하느니라 (호13:13) The sorrows of one in travail have come upon him, he is a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

AC.264.심화

 

2. ‘13:13

 

해산하는 여인의 어려움이 그에게 임하리라 그는 지혜 없는 자식이로다 해산할 때가 되어도 그가 나오지 못하느니라 (13:13) The sorrows of one in travail have come upon him, he is an unwise son, for at the time he will not stand in the breach of the womb of sons (Hos. 13:13).

 

 

스베덴보리가 AC.264에서 호13:13을 인용한 이유는, 창3:16에서 말하는 ‘임신’, ‘산고’(産苦), ‘자식’이 모두 영적 의미를 가진 상징임을 성경 자체를 통해 다시 한번 입증하기 위해서입니다. 앞의 호9에서는 ‘임신’과 ‘자식’이 생각과 진리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였다면, 여기서는 ‘산고’와 ‘자식’의 관계를 통해 진리가 사람 안에 형성되는 과정 자체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해산하는 여인의 어려움이 그에게 임하리라’라는 말씀은 육체적 출산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산고를 영적 유혹과 내적 싸움으로 이해합니다. 앞의 AC.261 AC.263에서도 ‘고통’은 영적 전쟁(combat)과 그로 인한 근심(anxiety)을 의미한다고 설명하였습니다. 따라서 호세아의 이 말씀은 진리가 사람 안에서 태어나기 직전에 반드시 겪게 되는 영적 갈등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이어지는 ‘그는 지혜 없는 자식이로다’라는 표현도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여기서 ‘자식’은 진리를 의미하지만, ‘지혜 없는 자식’은 진리를 받을 기회를 가지고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진리를 이해할 능력이 있음에도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 때문에 그것을 거부하거나 왜곡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를 에브라임, 곧 이해하는 능력이 타락한 상태와 연결하여 설명합니다.

 

특히 ‘해산할 때가 되어도 그가 나오지 못하느니라(at the time he will not stand in the breach of the womb of sons)라는 표현은 매우 상징적입니다. 해산의 때가 되었는데도 태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진리가 생각 속에서는 어느 정도 형성되었지만, 실제 삶으로 나오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사람은 말씀을 듣고 이해할 수 있으며, 그것이 옳다는 것도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삶의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영적으로는 출산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한 중요한 이유입니다.

 

이 점은 AC.261에서 설명한 ‘임신’과 ‘해산’의 구별과도 정확히 연결됩니다. 임신은 생각 속에서 진리가 형성되는 과정이고, 해산은 그 진리가 삶 속에 실제로 나타나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호세아는 바로 그 마지막 단계가 이루어지지 않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진리가 마음속에서만 머물고 삶으로 태어나지 못하는 상태, 이것이 ‘지혜 없는 자식’의 상태입니다.

 

또한 이 구절은 단순히 지식이 부족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진리를 들었고 이해할 기회도 있었지만, 자기 의지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스베덴보리는 여러 곳에서 이해하는 능력과 의지가 함께 작용해야 거듭남이 이루어진다고 설명합니다. 이해만 있고 삶이 없으면, 임신은 있었지만 해산은 없는 상태가 됩니다. 호세아의 말씀은 바로 이러한 영적 불완전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인용은 또한 거듭남의 본질을 잘 보여줍니다. 참된 거듭남은 단순히 진리를 배우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생각 속에서 잉태된 진리가 의지를 거쳐 삶으로 태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산고는 단순한 고통이 아니라, 진리가 실제 생명이 되기까지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영적 과정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과정을 창3:16의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요’라는 말씀으로 설명하고, 호13은 그 과정이 실패한 사례를 보여주는 본문으로 인용합니다.

 

AC.264에서 호13:13을 인용한 이유는, 창3:16의 ‘임신’, ‘산고’, ‘출산’, ‘자식’이 모두 영적 생명의 형성과 완성을 나타내는 상징임을 입증하기 위해서입니다. 특히 이 구절은 진리가 생각 속에만 머물고 삶으로는 나타나지 못하는 상태를 ‘지혜 없는 자식’이라는 표현으로 묘사함으로써, 참된 거듭남은 진리를 아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진리가 영적 싸움을 거쳐 실제 삶 속에 태어나는 데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AC.264, 심화 3, ‘사23:4-5’

AC.264.심화 3. ‘사23:4-5’ 4시돈이여 너는 부끄러워할지어다 대저 바다 곧 바다의 요새가 말하기를 나는 산고를 겪지 못하였으며 출산하지 못하였으며 청년들을 양육하지도 못하였으며 처녀들을

bygrace.kr

 

AC.264, 심화 1, ‘호9:11-12’

AC.264.심화 1. ‘호9:11-12’ 11에브라임의 영광이 새 같이 날아가리니 해산하는 것이나 아이 배는 것이나 임신하는 것이 없으리라 12혹 그들이 자식을 기를지라도 내가 그 자식을 없이 하여 한 사람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

AC.264.심화

 

1. ‘9:11-12

 

11에브라임의 영광이 새 같이 날아가리니 해산하는 것이나 아이 배는 것이나 임신하는 것이 없으리라 12혹 그들이 자식을 기를지라도 내가 그 자식을 없이 하여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그들을 떠나는 때에는 그들에게 화가 미치리로다 (9:11, 12) As for Ephraim, their glory shall fly away like a bird, from the birth, and from the womb, and from the conception; though they shall have brought up their sons, yet will I bereave them, that they be not man; yea, woe also to them when I depart from them (Hos. 9:11–12),

 

 

AC.264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말씀에서 ‘임신(conception), ‘아이 배는 것(womb), ‘해산(birth), 그리고 ‘자식(sons)이 문자적 의미를 넘어 영적 의미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창3:16의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요’라는 말씀을 설명하면서, 성경 전체에서 ‘자식’은 진리들을, ‘임신’은 생각과 의도의 형성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는데, 바로 이 호세아의 말씀을 그 증거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에브라임’은 스베덴보리의 상응 해석에 따르면 진리를 이해하는 능력, 곧 이해력(intellectual faculty)이나 진리에 대한 지성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에브라임의 영광이 새 같이 날아가리니’라는 것은 그 이해력의 영광, 곧 진리를 인식하고 분별하는 능력이 사라지는 것을 뜻합니다. 이어지는 ‘해산하는 것이나 아이 배는 것이나 임신하는 것이 없으리라’라는 표현은 문자적으로는 자녀의 감소를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영적으로는 더 이상 진리들이 형성되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생각이 잉태되지 못하고, 진리가 태어나지 못하며, 신앙이 자라지 못하는 것입니다.

 

특히 ‘혹 그들이 자식을 기를지라도 내가 그 자식을 없이 하여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할 것이라’라는 말씀은 스베덴보리의 해석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여기서 ‘자식’이 단순한 육신의 자녀를 의미한다면, 이어지는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할 것이라(that they be not man)라는 표현은 매우 어색해집니다. 그러나 ‘자식’을 진리들로 이해하면 의미가 분명해집니다. 곧 교회 안에 진리들이 있는 것처럼 보여도, 주님과의 연결이 끊어지면 그 진리들은 생명을 잃고 결국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또한 마지막의 ‘내가 그들을 떠나는 때에는 그들에게 화가 미치리로다’라는 말씀은 모든 진리의 생명이 주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사람의 지식이나 기억력만으로는 진리가 살아 있을 수 없습니다. 주님의 임재가 있을 때만 진리는 살아 있는 진리가 되며, 주님이 떠나신다는 것은 사람이 스스로 주님에게서 멀어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 결과 생각은 있으나 참된 임신은 없고, 교리는 있으나 참된 해산이 없으며, 지식은 있으나 살아 있는 진리가 없는 상태가 됩니다.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한 이유는, 말씀에서 ‘임신’, ‘아이 배는 것’, ‘해산’, ‘자식’이라는 표현들이 모두 영적 과정, 곧 생각의 형성과 진리의 태어남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이 구절은 창3:16의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요’라는 말씀을 이해하는 열쇠 가운데 하나로 사용되며, 진리가 사람 안에서 형성되고 자라나는 과정을 출산의 언어로 표현하는 말씀의 일관된 방식을 증명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AC.264, 심화 2, ‘호13:13’

AC.264.심화 2. ‘호13:13’ 해산하는 여인의 어려움이 그에게 임하리라 그는 지혜 없는 자식이로다 해산할 때가 되어도 그가 나오지 못하느니라 (호13:13) The sorrows of one in travail have come upon him, he is a

bygrace.kr

 

AC.264, 창3:16, ‘임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창3:16)AC.264말씀에서 ‘잉태’(conc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