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24.심화

 

1. ‘신앙의 진리(the truth of faith), 사랑의 선(the good of love)

 

이 표현은 스베덴보리를 처음 읽는 분들뿐 아니라 오래 읽은 분들도 한동안 손에 잘 잡히지 않는 개념입니다. 이유는 우리가 보통 진리’와 신앙’을 거의 같은 뜻처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에게는 둘 사이에 미묘하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먼저 진리(truth)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참된 내용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주님만이 생명이시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악은 피해야 한다’, ‘사랑 없는 신앙은 죽은 신앙이다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신앙(faith)은 그런 진리를 사람이 받아들여 자기 것으로 만든 상태를 말합니다. 즉 진리가 객관적인 내용이라면, 신앙은 그 진리를 믿고 붙드는 인간 쪽의 상태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진리(the truth of faith)란, 단순히 참된 명제가 아니라, 사람이 믿고 받아들여 신앙의 내용이 된 진리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그 자체로는 진리(truth)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그것을 주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나는 아직 그렇게 살지 못하지만, 이것이 주님의 뜻이며 참된 길이다’라고 믿는다면, 그 진리는 그 사람 안에서 신앙의 진리(the truth of faith)가 됩니다.

 

즉, 진리(truth)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하늘의 진리이고, ‘신앙의 진리(the truth of faith)는 사람이 믿고 받아들여 자신의 신앙 안에 들어온 진리인 것입니다.

 

반대로 사랑의 선(the good of love)은 무엇일까요? 예를 들면,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라는 것을 믿는 단계는 신앙의 진리(the truth of faith)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누군가를 용서하고, 돕고, 섬기고, 희생한다면 그것은 이미 삶 속에 구현된 사랑의 선(the good of love)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자주 이 둘을 짝으로 말합니다.  신앙의 진리(the truth of faith) 사랑의 선(the good of love)입니다. 이는 마치 씨앗과 열매의 관계와도 같습니다. ‘이웃 사랑이 중요하다’라고 아는 것은 씨앗이고, 실제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열매입니다.

 

태고교회 사람들은 특별했습니다. 그들은 사랑(love)으로부터 진리(truth)를 알았습니다. 즉 사랑이 먼저였고, 그 사랑 안에서 무엇이 참인지 곧바로 지각(perception)했습니다. 반면 홍수 이후의 영적 인간은 순서가 반대였습니다. 먼저 진리를 배우고, 그 진리를 믿고, 그 진리에 따라 살려고 애쓰며, 마침내 체어리티(charity)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종종 태고교회를 설명할 때는 사랑의 선(the good of love)을 강조하고, 고대교회 이후를 설명할 때는 신앙의 진리(the truth of faith)를 강조합니다.

 

조금 거칠게 표현하면, 천적 인간(celestial man) 왜 그런지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이것이 선한 것임을 안다 하는 사람이고, 영적 인간(spiritual man)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으니 이것이 옳다고 믿는다 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AC.228에서 천사들이 지키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 두 가지입니다. 천사들은 어떤 생각이 사람 안으로 들어올 때, 이것이 신앙의 진리(the truth of faith)를 허무는 것인가, 혹은 사랑의 선(the good of love)을 파괴하는 것인가를 즉시 알아차립니다.

 

예를 들면, ‘용서는 약한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어온다면, 그것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신앙의 진리(the truth of faith)를 공격하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도와줄 가치가 없다’라는 냉혹한 마음이 들어온다면, 그것은 사랑의 선(the good of love)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천사들은 이러한 움직임을 사람 자신보다 훨씬 먼저, 그리고 훨씬 더 섬세하게 지각한다고 스베덴보리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께서 AC를 읽으실 때는, ‘신앙의 진리(the truth of faith)를 간단히 사람이 믿고 붙들고 있는 주님의 진리’, 혹은 신앙의 내용이 되는 진리 정도로 이해하시면 대부분의 문맥에서 자연스럽게 읽히실 것입니다.


 

AC.228, 창3:9-10, '천사들의 지각(perception)의 정교함'

9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And Jehovah God cried unto the man [homo], 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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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And Jehovah God cried unto the man [homo], and said unto him, Where art thou? And he said, I heard thy voice in the garden, and I was afraid, because I was naked; and I hid myself. (3:9-10)

 

AC.228

 

천사들이 신앙의 진리(the truth of faith)사랑의 선(the good of love)에 반대되는 어떤 것이 사람 안으로 들어오는지를 얼마나 섬세하게 알아차리는지는 이루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무엇이 들어오는지, 또 언제 들어오는지를 사람 자신보다도 천 배나 더 완전하게 지각합니다. 사람은 그것에 대하여 거의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사람의 생각 가운데 가장 미세한 것까지도 천사들은 그 사람 자신이 자기 안에서 가장 그레이트하게 아는 것보다 더 분명하게 지각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가장 확실한 진실입니다. It is impossible to describe the exquisite perception whereby the angels discover whether anything gains admission that is contrary to the truth of faith and the good of love. They perceive the quality of what enters, and when it enters, a thousand times more perfectly than the man himself, who scarcely knows anything about it. The least of thought in a man is more fully perceived by the angels than the greatest is by himself. This is indeed incredible, yet is most true.

 

 

해설

 

AC.228은 천사들의 지각(perception)이 얼마나 정교한지를 보여 주는 매우 놀라운 글입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천사들은 단순히 사람의 겉모습이나 행동만 보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들은 사람 안으로 들어오는 생각과 애정의 가장 미세한 움직임까지도 즉시 알아차립니다.

 

특히 천사들이 주목하는 것은 어떤 생각이나 욕망이 ‘신앙의 진리(the truth of faith)와 ‘사랑의 선(the good of love)에 일치하는지, 아니면 그것에 반대되는지를 분별하는 일입니다. 그들은 어떤 거짓이나 악이 사람 안으로 들어오려는 순간, 그리고 그것이 어느 정도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를 매우 섬세하게 지각합니다.

 

반면 인간은 자기 마음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떤 생각이 왜 떠올랐는지, 어떤 감정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생각과 충동은 의식의 문턱을 스쳐 지나가며, 대부분은 거의 알아차리지 못한 채 흘려보냅니다.

 

그러나 천사들은 그 가장 미세한 움직임까지도 분명히 지각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사람이 자기 안의 가장 그레이트한 생각을 아는 것보다 천사들이 사람 안의 가장 작은 생각을 더 분명하게 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천사들의 지각이 사람의 자기 인식보다 훨씬 깊고 정확하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설명은 AC.227의 내용과도 이어집니다. 사람은 영적 세계와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으며, 천사들은 사람 안에서 일어나는 선을 보호하고 성장시키기 위해 역사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사람의 내면 상태를 매우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천사들의 지각은 인간의 자기 인식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섬세합니다.

 

물론 이것은 천사들이 사람을 감시하거나 정죄하기 위해 살핀다는 뜻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의 설명에 따르면 천사들의 관심은 오직 주님의 선과 진리를 보존하고, 사람을 보호하는 데 있습니다. 마치 숙련된 의사가 환자의 미세한 증상까지 알아차려 병이 깊어지기 전에 치료하려는 것처럼, 천사들은 사람 안에 들어오는 악과 거짓을 민감하게 지각하여 주님의 섭리 아래 그것을 막고 선을 북돋우려 합니다.

 

마지막으로 스베덴보리는 이것이 현대인에게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믿기 어렵지만 가장 확실한 진실’이라고 덧붙입니다. 이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자신이 수년간 영계에서 직접 경험한 사실에 근거한 증언이라는 의미입니다.

 

결국 AC.228은 인간이 혼자 살아가는 존재가 아님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줍니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주님께서는 천사들을 통하여 우리 안의 가장 작은 선까지도 보호하시고, 가장 미세한 악의 침입까지도 살피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영적 생활은 거창한 결단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는 생각 하나, 애정 하나까지도 주님의 섭리 안에서 다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심화

 

1. ‘신앙의 진리(the truth of faith),사랑의 선(the good of love)

 

 

AC.228, 심화 1, ‘신앙의 진리’(the truth of faith), ‘사랑의 선’(the good of love)

AC.224.심화 1. ‘신앙의 진리’(the truth of faith), ‘사랑의 선’(the good of love) 이 표현은 스베덴보리를 처음 읽는 분들뿐 아니라 오래 읽은 분들도 한동안 손에 잘 잡히지 않는 개념입니다.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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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27, 창3:9-10, 지각(perception), 내적 딕테이트(internal dictate), 양심(conscience) 및 시험(temptations)의 기

9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And Jehovah God cried unto the man [homo], 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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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And Jehovah God cried unto the man [homo], and said unto him, Where art thou? And he said, I heard thy voice in the garden, and I was afraid, because I was naked; and I hid myself. (3:9-10)

 

AC.227

 

지각(perception), 내적 딕테이트(internal dictate), 그리고 양심(conscience)의 기원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에 대해 전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 얼마간 설명하고자 합니다. 사람은 주님에 의해 영들(spirits)과 천사들(angels)을 통하여 다스려진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진리입니다. 악한 영들(evil spirits)이 사람을 지배하기 시작하면, 천사들은 악과 거짓을 물리치기 위해 애씁니다. 그러므로 그 결과로 하나의 싸움(combat)이 일어납니다. 사람이 지각(perception), 내적 딕테이트(internal dictate), 그리고 양심(conscience)을 통하여 느끼게 되는 것은 바로 이 싸움입니다. 또한 시험(temptations)을 통해서도 같은 싸움을 경험합니다. 사람이 만일 영들과 천사들에 관한 이야기를 전혀 믿지 않을 만큼 육체적인 것(corporeal things)에 깊이 빠져 있지 않았다면, 그는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자신과 함께 영들과 천사들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육체적인 것에만 몰두한 사람들은 이러한 싸움을 수백 번 경험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단지 상상이나 정신 이상의 결과라고 말할 것입니다. 나는 이러한 싸움을 수천 번, 수만 번 생생하게 느끼는 것이 허락되었으며, 그것도 여러 해 동안 거의 끊임없이 그러하였습니다. 또한 그 싸움을 일으킨 자들이 누구이며, 어떤 존재들이며, 어디에 있었는지, 언제 왔고 언제 떠났는지를 알 수 있었고, 그들과 직접 대화를 나누기도 하였습니다. As it is desirable that the origin of perception, internal dictate, and conscience, should be known, and as at the present day it is altogether unknown, I may relate something on the subject. It is a great truth that man is governed by the Lord by means of spirits and angels. When evil spirits begin to rule, the angels labor to avert evils and falsities, and hence arises a combat. It is this combat of which the man is rendered sensible by perception, dictate, and conscience. By these, and also by temptations, a man might clearly see that spirits and angels are with him, were he not so deeply immersed in corporeal things as to believe nothing that is said about spirits and angels. Such persons, even if they were to feel these combats hundreds of times, would still say that they are imaginary, and the effect of a disordered mind. I have been permitted to feel such combats, and to have a vivid sense of them, thousands and thousands of times, and this almost constantly for several years, as well as to know who, what, and where they were that caused them, when they came, and when they departed; and I have conversed with them.

 

 

해설

 

AC.227은 스베덴보리의 인간론과 영계론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글입니다. 지금까지 그는 퍼셉션(perception), 내적 딕테이트(internal dictate), 양심(conscience)에 대해 설명해 왔는데, 이제는 그것들이 어떻게 생겨나는지를 밝힙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사람은 결코 혼자 생각하거나 혼자 살아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언제나 영들의 세계와 연결되어 있으며, 주님께서는 천사들과 영들을 통하여 사람을 다스리십니다. 물론 최종적으로 다스리시는 분은 주님 한 분이시며, 천사들과 영들은 그 섭리의 도구일 뿐입니다.

 

사람이 선을 향하려고 할 때에는 천사들이 함께하고, 악으로 기울려고 할 때에는 악한 영들이 영향을 미칩니다. 이 둘 사이에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영적 전투(combat)가 일어납니다. 그러나 이 싸움, 이 전투는 대부분 육안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경험됩니다.

 

스베덴보리는 퍼셉션(perception), 내적 딕테이트(internal dictate), 양심(conscience)이 모두 이 영적 전투가 인간 의식 속에 나타나는 방식이라고 설명합니다. 태고교회 사람들에게는 퍼셉션으로, 거듭나는 사람에게는 내적 딕테이트로, 홍수 이후의 영적 인간에게는 양심으로 경험되었습니다. 형태는 다르지만 근원은 같습니다. 모두 주님께서 천사들을 통해 사람을 선으로 이끄시는 역사입니다.

 

또한 시험(temptations)의 본질도 여기서 설명됩니다. 시험은 단순히 어려운 환경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악한 영들의 영향과 천사들의 보호가 사람 안에서 충돌하는 영적 전투입니다. 그래서 시험을 겪는 사람은 마음속에서 선과 악, 진리와 거짓 사이의 심한 갈등을 경험하게 됩니다.

 

흥미로운 점은 현대인에 대한 스베덴보리의 평가입니다. 그는 사람들이 영들과 천사의 존재를 믿지 않는 가장 큰 이유를 ‘육체적인 것(corporeal things)에 지나치게 몰두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실제로 이러한 내적 전투를 경험하면서도 그것을 단지 심리 현상이나 신경 작용으로만 설명하려 합니다.

 

물론 스베덴보리는 모든 심리 현상을 곧바로 영들의 직접적인 작용으로 단순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의 핵심은 인간의 내면에는 자연계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영적 차원이 있으며, 주님께서는 그 차원을 통하여 끊임없이 인간을 선으로 이끄신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부분에서 스베덴보리는 자신의 특별한 사명을 언급합니다. 그는 여러 해 동안 거의 끊임없이 이러한 영적 전투를 직접 경험하였으며, 그 원인이 되는 영들과 천사들을 보고 그들과 대화하는 것이 허락되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자신의 특별함을 과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후 저작들에서 영계의 구조와 인간의 영적 상태를 상세히 설명할 수 있는 근거를 독자들에게 제시하는 것입니다.

 

결국 AC.227은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영적 갈등의 정체를 밝혀 줍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고자 할 때 느끼는 내적 격려, 악을 피하려 할 때 느끼는 갈등, 시험 가운데 경험하는 치열한 내적 전투는 단순한 심리 현상이 아니라, 주님께서 천사들을 통해 우리를 보호하시고, 악한 영들의 영향으로부터 지키시는 영적 역사와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의 삶은 눈에 보이는 세계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와도 끊임없이 이어져 있으며, 그 중심에는 언제나 주님의 사랑과 섭리가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AC.228, 창3:9-10, '천사들의 지각(perception)의 정교함'

9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And Jehovah God cried unto the man [homo], 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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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26, 창3:9-10,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AC.226-228)

9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And Jehovah God cried unto the man [homo], 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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