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57.심화

 

1. ‘14:12-15

 

12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13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14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15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 (14:12-15) O Lucifer, thou hast said in thy heart, I will ascend the heavens, I will exalt my throne above the stars of God, and I will sit upon the mount of the congregation, in the sides of the north, I will ascend above the heights of the cloud, I will be made equal to the most high; yet thou shalt be brought down to hell, to the sides of the pit (Isa. 14:12–15).

 

 

스베덴보리가 AC.257에서 사14:12-15을 인용한 이유는, 창3:15의 ‘뱀의 머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성경 전체를 통해 더욱 분명하게 입증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창세기의 상징을 단지 창세기 안에서만 설명하지 않고, 같은 영적 실재를 말하는 다른 말씀들과 연결, 하나의 일관된 교리를 제시합니다. 즉, ‘뱀의 머리’와 ‘루시퍼’는 서로 다른 역사적 존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영적 원리, 곧 자기 사랑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본성을 서로 다른 표상으로 드러낸 것입니다.

 

이사야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올라가겠다(I will ascend), ‘내가 높이겠다(I will exalt), ‘내가 앉겠다(I will sit), ‘내가 가장 높으신 이와 같아지겠다(I will be made equal to the Most High)라는 반복입니다. 이 모든 표현은 자기 사랑의 본질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자기 사랑은 만족을 모르는 사랑입니다. 더 높아지고, 더 인정받고, 더 지배하려 하며, 결국에는 하나님 외에는 누구도 위에 있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가 앞에서 ‘세상을 다스리려 하고, 하늘을 다스리려 하며, 마침내 주님까지 지배하려 한다’고 설명한 내용이 바로 이사야의 이 말씀 속에 압축되어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별들 위에 내 보좌를 높이겠다’는 표현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스베덴보리의 상응론에서 ‘’은 진리들, 또는 진리 가운데 있는 천사들과 교회의 지식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자기 사랑은 진리를 섬기려 하지 않고, 진리 위에 군림하려 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삶의 기준으로 삼기보다, 자기 욕망에 맞게 말씀을 해석, 이용하며, 진리 자체를 자기 권력의 도구로 만들려는 성향을 말합니다.

 

또한 ‘북쪽 집회의 산에 앉겠다’는 표현도 단순한 지리적 묘사가 아닙니다. 성경에서 ‘’은 사랑의 상태를 의미하며, 특별히 ‘여호와의 산’ 또는 ‘집회의 산’은 주님께 속한 천국과 교회를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루시퍼가 그 산에 앉겠다고 말하는 것은 천국의 왕이 되겠다는 선언이며, 이는 곧 하나님께 속한 사랑의 자리를 자기 것으로 만들겠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창세기에서 뱀이 인간에게 ‘너희가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다’라고 유혹한 내용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가장 높으신 이와 같아지겠다’는 말은 자기 사랑의 궁극적인 목표를 드러냅니다. 악은 처음부터 악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자기 보호와 자기만족이라는 합리적인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제어되지 않으면 결국에는 모든 선과 진리를 자기 아래 두려 하고, 하나님조차 자기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려 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자기 사랑을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반복하여 말합니다. 이 본문은 그 근원을 가장 극적으로 묘사하는 대표적인 말씀입니다.

 

반대로 이사야는 그 결말도 함께 보여줍니다. ‘그러나 너는 지옥, 곧 구덩이 맨 밑으로 떨어질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보복이라기보다 영계의 질서를 말합니다. 스스로를 가장 높이려는 사랑은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고, 자신을 낮추어 주님을 높이는 사랑은 가장 높은 천국으로 올라갑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질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영원한 법칙과도 완전히 일치합니다. 그러므로 루시퍼의 추락은 자기 사랑이 필연적으로 맞이하는 영적 결과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결국 스베덴보리가 사14을 인용한 목적은 ‘루시퍼’라는 존재 자체를 설명하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의 관심은 언제나 사람의 내면입니다. 우리 안에도 작은 루시퍼가 있으며, 우리 안에도 ‘내가 높아지겠다’, ‘내 뜻이 이루어져야 한다’, ‘내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마음이 숨어 있음을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창세기의 ‘뱀의 머리’와 이사야의 ‘루시퍼’는 모두 바로 그 내면의 자기 사랑을 가리킵니다.

 

AC.257에서 사14을 인용한 이유는 단순한 성경 인용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창세기의 ‘’, 이사야의 ‘루시퍼’, 요한계시록의 ‘큰 붉은 용’은 모두 동일한 영적 실체를 여러 시대와 여러 표상으로 증언하고 있으며, 그 실체는 곧 하나님 대신 자기 자신을 왕으로 세우려는 자기 사랑입니다. 그리고 창3:15에서 주님께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신다는 약속은, 바로 이 모든 자기 사랑의 지배를 근본에서 꺾으시고, 겸손과 사랑의 천국 질서를 회복하시는 구속 사역을 예언하는 말씀임을 스베덴보리는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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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3:15)



AC.257

뱀의 머리(head of the serpent)가 일반적으로는 악의 지배(the dominion of evil), 특히 자기 사랑의 지배를 뜻한다는 것은 그 본성(nature)으로부터 분명합니다. 자기 사랑은 그 성질이 너무도 무서워 단지 지배하려는 데 그치지 않고,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지배하려 합니다. 그러나 거기서도 만족하지 않고, 하늘에 있는 모든 것을 다스리려 하며, 그것으로도 만족하지 않고, 마침내 주님 자신까지도 지배하려 합니다. 그러나 설령 거기까지 이른다 해도 결코 만족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성향은 자기 사랑의 아주 작은 불꽃 속에도 숨어 있습니다. 만일 그것이 방종하도록 내버려지고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바로 터져 나와 그와 같은 극단적인 높이까지 치달으려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serpent), 곧 자기 사랑에서 나오는 악이 얼마나 지배하려 하는지, 그리고 자기의 지배를 거부하는 모든 이를 얼마나 미워하는지가 분명합니다. 이것이 바로 스스로를 높이는 뱀의 머리이며, 주님께서 그것을 땅에까지 짓밟으셔서(tramples down), 앞 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배로 다니며 흙을 먹게(go upon its belly, and eat dust) 하시는 대상입니다. 이와 같은 (serpent), 또는 (dragon)은 이사야에서 루시퍼(Lucifer)라고 불리며 다음과 같이 묘사됩니다. That by the “head of the serpent” is meant the dominion of evil in general, and specifically of the love of self, is evident from its nature, which is so direful as not only to seek dominion, but even dominion over all things upon earth; nor does it rest satisfied with this, but aspires even to rule over everything in heaven, and then, not content with this, over the Lord himself, and even then it is not satisfied. This is latent in every spark of the love of self. If it were indulged, and freed from restraint, we should perceive that it would at once burst forth and would grow even to that aspiring height. Hence it is evident how the “serpent,” or the evil of the love of self, desires to exercise dominion, and how much it hates all those who refuse its sway. This is that “head of the serpent” which exalts itself, and which the Lord “tramples down,” even to the earth, that it may “go upon its belly, and eat dust,” as stated in the verse immediately preceding. Thus also is described the “serpent” or “dragon” called “Lucifer” in Isaiah:

 

12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13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14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15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 (14:12-15) O Lucifer, thou hast said in thy heart, I will ascend the heavens, I will exalt my throne above the stars of God, and I will sit upon the mount of the congregation, in the sides of the north, I will ascend above the heights of the cloud, I will be made equal to the most high; yet thou shalt be brought down to hell, to the sides of the pit (Isa. 14:12–15).

 

또한 (serpent) 또는 (dragon)이 자기 머리를 얼마나 높이 드는지는 요한계시록에서도 다음과 같이 묘사됩니다. The “serpent” or “dragon” is also described in the Revelation in regard to the way in which he exalts his head:

 

3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는데, 9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12:3, 9) A great red dragon, having seven heads, and ten horns, and many diadems upon his heads; but he was cast into the earth (Rev. 12:3, 9).

 

시편에서도 In David:

 

1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2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규를 내보내시리니 주는 원수들 중에서 다스리소서, 6뭇 나라를 심판하여 시체로 가득하게 하시고 여러 나라의 머리를 쳐서 깨뜨리시며 7길 가의 시냇물을 마시므로 그의 머리를 드시리로다 (110:1-2, 6-7) The saying of Jehovah to my Lord, Sit thou at my right hand, until I make thine enemies thy footstool: Jehovah shall send the rod of thy strength out of Zion, he shall judge the nations, he hath filled with dead bodies, he hath bruised the head over much land; he shall drink of the brook in the way, therefore shall he lift up the head (Ps. 110:1–2, 6–7).

 

 

해설

 

이 글에서 스베덴보리는 창3:15의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라는 말씀 가운데 ‘뱀의 머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더욱 깊이 설명합니다. 그는 이것을 단순히 어떤 악한 존재의 머리로 보지 않고, 모든 악의 중심 원리, 특히 ‘자기 사랑(love of self)의 지배욕’으로 해석합니다. 악에는 여러 형태가 있지만, 그 중심에는 언제나 ‘내가 주인이 되려는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가 자기 사랑을 이처럼 강하게 경계하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히 자신을 사랑하는 정도가 아니라, 모든 것을 자기 아래 두려는 욕망이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사람을 지배하려 하고, 다음에는 공동체와 세상을 지배하려 하며, 더 나아가 하나님의 질서 자체를 자기 뜻에 굴복시키려 합니다. 이것은 에덴동산에서 ‘너희가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다’라고 속삭인 뱀의 유혹과도 정확히 연결됩니다. 결국 자기 사랑은 하나님을 섬기려 하지 않고, 하나님의 자리에 앉으려 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스베덴보리가 이러한 성향이 특별히 악한 몇몇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사랑의 아주 작은 불꽃 속에도(latent in every spark) 숨어 있다고 말하는 점입니다. 따라서 거듭남의 과정은 단순히 몇 가지 나쁜 행동을 고치는 일이 아니라, 우리 안에 숨어 있는 이 지배욕을 주님께서 끊임없이 억제하시고 다스리시는 과정입니다. 사람이 스스로 겸손하다고 생각할 때조차도, 주님의 보호가 거두어지면 자기 사랑은 언제든 다시 머리를 들 수 있다는 것이 스베덴보리의 통찰입니다.

 

뱀의 머리’가 ‘배로 다니며 흙을 먹게 된다’는 말씀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됩니다. 이는 악이 완전히 없어졌다는 뜻이 아니라, 더 이상 사람의 영혼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가장 낮은 자리로 눌려졌음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는 악을 존재 자체에서 없애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사람의 내면을 통치하지 못하도록 질서 아래 두십니다. 이것이 ‘머리를 짓밟는다’는 표현의 영적 의미입니다.

 

14의 ‘루시퍼’ 역시 같은 원리를 보여줍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루시퍼를 어떤 독립된 마귀의 이름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자기 사랑의 본성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봅니다. ‘내가 하늘에 오르겠다’, ‘내 보좌를 높이겠다’, ‘지극히 높으신 이와 같아지겠다’는 선언은 모두 자기 사랑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표를 드러냅니다. 그래서 그 끝은 반드시 ‘구덩이 맨 밑’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스스로 가장 높아지려는 것이 가장 낮아지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 영계의 질서입니다.

 

요한계시록의 붉은 용 역시 같은 자기 사랑을 다른 상징으로 묘사합니다. 머리가 일곱이라는 것은 악이 여러 방면에서 지성을 장악하려 함을, 뿔은 권세를, 머리 위의 면류관은 자기 지배를 정당화하려는 거짓된 권위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결국 그 용은 하늘에 머물 수 없어 땅으로 내쫓깁니다. 다시 말해, 자기 사랑은 아무리 화려한 논리와 권세를 갖추어도 천국의 질서와는 결코 공존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베덴보리는 시110을 인용하여, 이 모든 싸움의 승리가 오직 주님께 속함을 보여줍니다. 주님께서는 원수들의 ‘머리’를 상하게 하시며, 악의 근원을 깨뜨리십니다. 사람이 자신의 힘으로 자기 사랑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신성과 인성이 하나 되심으로 이루어진 구속과 영화의 능력이 사람 안에서도 역사, 우리 속의 ‘뱀의 머리’를 날마다 낮추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3:15은 단지 최초의 복음만이 아니라, 주님께서 모든 시대와 모든 사람 안에서 자기 사랑의 지배를 무너뜨리시고, 사랑과 겸손의 나라를 세우시는 영원한 약속을 담고 있는 말씀입니다.

 

 

심화

 

1. ‘14:12-15

 

 

AC.257, 심화 1, ‘사14:12-15’

AC.257.심화 1. ‘사14:12-15’ 12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13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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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계12:3, 9’

 

3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는데, 9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계12:3, 9) A great red dragon, having seven heads, and ten horns, and many diadems upon his heads; but he was cast into the earth (Rev. 12:3, 9).

 

 

스베덴보리가 AC.257에서 요한계시록 12장 3절과 9절의 ‘큰 붉은 용’을 인용한 이유는, 창3의 ‘뱀’이 단순히 에덴동산에 등장했던 한 존재가 아니라, 인류 역사 전체를 통해 계속 활동하는 동일한 영적 악의 원리임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창세기의 ‘뱀’, 이사야의 ‘루시퍼’, 그리고 요한계시록의 ‘큰 붉은 용’은 서로 다른 시대와 다른 표상으로 나타나지만,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고 사람을 지배하려는 자기 사랑과 그로부터 나오는 거짓을 가리킵니다.

 

요한계시록은 특히 이 악이 얼마나 조직적이고 강력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단순한 뱀이 아니라 ‘큰 붉은 용’으로 묘사된 것은,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이 극도로 성장하여 거대한 영적 세력을 이루었음을 뜻합니다. 스베덴보리에게 ‘붉은색’은 사랑을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천국적 사랑이 아니라 자기 사랑과 그로 인한 파괴적인 욕망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붉은 용은 사랑 자체가 타락했을 때 어떤 모습이 되는지를 상징합니다.

 

‘일곱 머리’는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머리는 지배하는 원리와 지성을 의미하며, 일곱은 성경에서 충만함이나 완전함을 뜻하는 수입니다. 따라서 일곱 머리는 자기 사랑에서 나오는 거짓과 악이 모든 방면에서 사람의 사고를 지배하려 함을 나타냅니다. 창세기에서 말한 ‘뱀의 머리’가 이제는 일곱 머리로 확대되어 나타나는 것은, 악이 개인의 유혹을 넘어 교회와 세상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거대한 세력으로 발전했음을 보여줍니다.

 

‘열 뿔’ 역시 권세를 의미합니다. ‘뿔’은 성경에서 힘과 능력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용의 열 뿔은 악과 거짓이 단순히 생각 속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세상을 움직이고, 사람들을 지배하는 힘을 행사하려 함을 나타냅니다. 스베덴보리가 AC.257에서 자기 사랑은 세상을 지배하려 하고, 하늘을 지배하려 하며, 마침내 주님까지 지배하려 한다고 설명한 내용이 바로 이 상징 속에 담겨 있습니다.

 

또한 머리 위에 있는 ‘많은 면류관’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면류관은 본래 왕권과 권위를 상징하지만, 여기서는 거짓 권위를 뜻합니다. 즉, 악은 언제나 자신을 선으로 꾸미고, 거짓을 진리처럼 보이게 하며, 사람들 앞에서 정당성과 권위를 주장합니다. 악이 가장 위험한 때는 노골적으로 악을 드러낼 때가 아니라, 진리의 옷을 입고 나타날 때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여러 곳에서 지옥은 선과 진리를 흉내 내며 사람을 속인다고 설명하는데, 이 면류관은 바로 그러한 위장된 권위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본문의 핵심은 용의 화려한 모습이 아니라 마지막 구절입니다. ‘그가 땅으로 내쫓겼다.’ 아무리 거대한 용이라 해도 천국에는 머물 수 없습니다. 자기 사랑은 하늘의 질서와 본질적으로 양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창세기에서 뱀이 ‘배로 다니며 흙을 먹게 된다’고 하신 말씀과 요한계시록에서 용이 ‘땅으로 내쫓긴다’는 말씀은 같은 영적 진리를 서로 다른 표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악을 존재 자체에서 없애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더 이상 천국과 사람의 내면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낮은 자리로 제한하십니다.

 

이처럼 스베덴보리가 요한계시록 12장을 인용한 것은 창세기의 ‘뱀의 머리’를 신약의 계시와 연결하여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시작된 영적 전쟁은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계속되며, 그 싸움의 본질은 언제나 동일합니다. 한편에는 주님의 사랑과 진리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자기 사랑과 거짓이 있습니다. 용은 시대마다 이름과 모습은 달라도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결국 이 인용은 창3 15절의 약속이 요한계시록에서도 그대로 성취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신다는 말씀은, 주님께서 모든 시대를 통하여 자기 사랑과 거짓의 세력을 끝내 패배시키신다는 선언입니다. 그러므로 ‘큰 붉은 용’은 단순한 종말의 괴물이 아니라, 사람과 교회 안에서 끊임없이 머리를 들려는 자기 사랑의 상징이며, 주님께서 반드시 굴복시키시는 ‘뱀의 머리’의 또 다른 표상인 것입니다.

 

 

3. ‘시110:1-2, 6-7’

 

1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2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규를 내보내시리니 주는 원수들 중에서 다스리소서, 6뭇 나라를 심판하여 시체로 가득하게 하시고 여러 나라의 머리를 쳐서 깨뜨리시며 7길 가의 시냇물을 마시므로 그의 머리를 드시리로다 (시110:1-2, 6-7) The saying of Jehovah to my Lord, Sit thou at my right hand, until I make thine enemies thy footstool: Jehovah shall send the rod of thy strength out of Zion, he shall judge the nations, he hath filled with dead bodies, he hath bruised the head over much land; he shall drink of the brook in the way, therefore shall he lift up the head (Ps. 110:1–2, 6–7).

 

 

스베덴보리가 AC.257에서 시편 110편 1-2절, 6-7절을 인용한 이유는, 창3 15절의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는 말씀이 결국 주님의 메시아적 승리를 예언하는 말씀임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앞에서 이사야 14장의 ‘루시퍼’와 요한계시록 12장의 ‘큰 붉은 용’을 통해 악이 얼마나 스스로를 높이려 하는지를 보여 주었다면, 이제 시편 110편을 통해서는 그러한 악을 최종적으로 굴복시키시는 분이 오직 주님이심을 증언합니다. 다시 말해, 앞의 두 인용이 악의 본성을 드러낸 것이라면, 이 인용은 그 악을 이기시는 주님의 권능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시편 110편은 신약에서도 가장 많이 인용되는 메시아 시편 가운데 하나입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께 말씀하시기를, 내 오른편에 앉으라’는 구절은 장차 오실 메시아이신 주님께 하신 말씀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스베덴보리 역시 이 말씀을 주님의 신적 인성과 영화(Glorification)에 관한 예언으로 해석합니다. 따라서 이 시편을 인용한 것은 창3 15절의 승리가 추상적인 선의 승리가 아니라, 성육신하신 주님께서 실제로 지옥과 싸워 이기심으로 이루신 승리임을 밝히기 위함입니다.

 

특히 ‘내가 네 원수들을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라는 말씀은 창세기의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리라’는 예언과 직접 연결됩니다. 머리를 상하게 하는 것과 발 아래 두는 것은 모두 악의 지배권을 완전히 무너뜨린다는 같은 영적 의미를 지닙니다. 스베덴보리에게 ‘발’은 가장 바깥 차원의 능력과 실행을 의미하므로, 원수들이 발판이 된다는 것은 지옥의 세력이 더 이상 주님이나 천국을 지배할 수 없고, 오히려 신적 질서 아래 복종하게 되었음을 뜻합니다.

 

또한 ‘시온에서 네 권능의 홀을 보내실 것이다’라는 말씀도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시온’은 천적 교회와 주님의 신적 사랑을 상징하며, ‘홀’은 왕권과 통치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 권능의 홀은 세속적인 무력이 아니라, 신적 사랑과 신적 진리를 통해 이루어지는 주님의 통치를 가리킵니다. 창3의 약속 역시 무력에 의한 승리가 아니라, 주님의 신적 사랑과 진리가 지옥의 거짓과 악을 압도하는 승리라는 점에서 이 시편과 깊이 연결됩니다.

 

이어지는 ‘그가 나라들을 심판하시고’, ‘많은 땅 위의 머리를 상하게 하실 것이다’라는 구절은 AC.257의 핵심과 직접 맞닿아 있습니다. 여기서 ‘머리’는 단순히 어떤 개인의 머리가 아니라, 악을 지배하는 근본 원리, 곧 자기 사랑과 그로부터 나오는 교만을 의미합니다. 스베덴보리가 앞에서 ‘뱀의 머리’를 자기 사랑의 지배욕으로 설명한 것처럼, 시편에서도 주님께서는 바로 그 ‘머리’를 치시고 깨뜨리시는 분으로 묘사됩니다. 따라서 창세기와 시편은 서로 다른 표현으로 동일한 영적 전쟁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의 ‘그는 길가의 시냇물을 마시리니, 그러므로 그의 머리를 드실 것이다’라는 구절은 문자적으로는 다소 이해하기 어렵지만, 스베덴보리의 상응론에서는 매우 깊은 의미를 지닙니다. ‘물’은 진리를, ‘시냇물’은 삶 가운데 실제로 적용되는 진리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에서 모든 시험과 유혹을 겪으시며, 신적 진리에 따라 끝까지 싸우셨고, 그 결과 완전한 승리를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머리를 드신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높인다는 뜻이 아니라, 승리를 완성하신 영광의 상태에 들어가심을 의미합니다. 이는 루시퍼가 자기 힘으로 머리를 높이려 했던 것과는 정반대입니다. 루시퍼는 스스로 높아지려다 낮아졌고, 주님은 끝까지 자신을 낮추심으로 가장 높이 들리셨습니다.

 

이처럼 스베덴보리가 시편 110편을 인용한 것은 창3 15절을 메시아에 관한 최초의 예언으로 확증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사야 14장은 자기 사랑의 교만을, 요한계시록 12장은 그 악의 조직적인 세력을, 그리고 시편 110편은 그 모든 악을 정복하시는 메시아의 승리를 보여줍니다. 세 본문은 서로 독립된 말씀이 아니라 하나의 영적 주제를 서로 다른 각도에서 증언하는 것입니다.

 

결국 AC.257에서 이 시편을 인용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시는 분’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그분은 단순한 인간도, 천사도 아니라, 성육신하여 지옥의 모든 세력과 직접 싸우시고 끝내 승리하신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창3 15절은 인간이 악을 이겨 내라는 도덕적 권면이 아니라, 주님께서 먼저 악의 근원을 정복하셨으며, 그 승리의 능력으로 오늘도 사람 안에 있는 ‘뱀의 머리’, 곧 자기 사랑의 지배를 꺾어 가신다는 구속의 복음을 선포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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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56.심화

 

1. ‘주님의 신적 인성(Divine Human)

 

그 목적은 자신의 신적 능력(Divine power)으로 자신의 인성(human essence) 안에서 신적 천적 own(Divine celestial own)과 인간적 own(human own)을 하나로 결합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그분 안에서 이 둘이 하나(a one) 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이러한 결합(union)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온 세상(the whole world)은 완전히 멸망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AC.256)

 

 

AC.256에서 말하는 결합(union)은 주님의 인성(human essence) 안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주님은 세상에 오셔서 인간적 own(human own)을 입으셨고, 그것을 유혹과 승리를 통하여 완전히 신적으로 만드셨습니다. 그 결과 그분 안에서 신적 천적 own(Divine celestial own)과 인간적 own이 하나(a one)가 되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주님의 영화(glorification), 곧 인성이 신성과 완전히 하나 되는 과정으로 설명합니다.

 

그런데 이 결합이 단지 주님 개인 안에서만 일어난 변화였다면,  온 세상이 멸망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걸까요? 그 이유는 스베덴보리에게 주님이 단순히 한 개인이 아니라, 모든 천국과 모든 인류에게 생명을 공급하는 유일한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선과 진리, 모든 영적 생명은 주님으로부터 천국을 거쳐 사람에게 흘러 들어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인성이 신성과 완전히 하나 되는 일은 전 우주의 생명 질서와 직접 관련됩니다.

 

인류가 타락함에 따라 지옥의 세력은 점점 커졌고, 천국과 인간 사이의 질서는 심각하게 무너졌습니다. 악한 영들은 사람의 겉 사람과 감각, own을 통하여 더욱 강하게 역사하였고, 사람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를 거의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만일 이러한 상태가 계속되었다면, 천국에서 인류에게로 내려오는 생명의 유입은 더 이상 안전하게 전달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분은 인성 안에서 모든 지옥의 공격을 직접 받으셨고, 그것을 하나씩 정복하셨습니다. 이 승리를 통하여 지옥을 질서 안에 두시고, 천국을 정돈하시며, 인간이 다시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여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내적 결합은 동시에 우주적 질서의 회복이었습니다.

 

특히 주님의 인성이 신성과 하나 되어야 했던 이유는, 인간이 신성 자체에 직접 접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무한한 신성은 유한한 인간에게 직접 나타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신적으로 된 인성, 곧 신적 인성(Divine Human)을 통하여 주님은 천사와 인간에게 가까이 오실 수 있으며, 생명과 구원을 전달하실 수 있습니다. 따라서 주님의 인성 안에서 이루어진 결합은 신성과 인류 사이에 영원한 중재의 길을 세운 사건이었습니다.

 

이 점에서 온 세상’은 단순히 당시 지상의 사람들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지상 인류, 영계, 천국과 지옥을 포함한 전체 영적 세계, 곧 피조 세계 전체의 질서를 가리킵니다. 주님께서 지옥을 정복하지 않으시고, 인성을 신성과 하나 되게 하지 않으셨다면, 지옥의 세력은 계속 커져 천국의 질서를 침범, 사람의 자유와 rational을 파괴, 결국 아무도 거듭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것입니다.

 

또한 주님의 결합은 인간 거듭남의 원형이 됩니다. 주님 안에서는 신적 천적 own과 인간적 own이 완전히 하나 되었지만, 사람 안에서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가 겉 사람과 결합하는 방식으로 거듭남이 이루어집니다. 사람은 스스로 인간적 own을 신적으로 만들 수 없지만, 주님의 신적 인성으로부터 오는 생명을 받아 own이 새롭게 질서 지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영화는 인간의 거듭남을 가능하게 하는 근원이기도 합니다.

 

결국 AC.256에서 주님 안의 결합과 온 세상의 구원이 연결되는 이유는, 주님의 인성, 곧 신적 인성이 모든 천국과 인류에게 생명을 전달하는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그 결합은 주님 개인의 완성에 그친 것이 아니라, 지옥을 제압, 천국을 회복하며, 인간에게 다시 선과 진리가 유입될 수 있게 한 우주적 구속 사건이었습니다. 만일 이 결합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인류는 주님과 연결될 길을 잃고, 자유와 거듭남의 가능성도 사라져, 영적으로 완전히 멸망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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