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90.심화

 

40. ‘28:15

 

너희가 말하기를 우리는 사망과 언약하였고 스올과 맹약하였은즉 넘치는 재앙이 밀려올지라도 우리에게 미치지 못하리니 우리는 거짓을 우리의 피난처로 삼았고 허위 아래에 우리를 숨겼음이라 하는도다 (28:15) for you have said, We have cut a covenant with death, and with hell have we made a vision; when the whip of inundation passes through, it shall not come to us; for we will set a lie as our protection, and in falsity will we hide ourselves (Isa. 28:15).

 

 

스베덴보리가 AC.290에서 이 구절을 인용한 이유는, 영적 죽음은 단순히 생명의 결핍이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거짓과 악을 선택,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을 거부한 결과임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 말씀은 생명의 근원이 오직 주님께 있다는 AC.290의 메시지를, 그 반대편에서 매우 강렬하게 증언하는 본문입니다.

 

먼저 우리는 사망과 언약하였고 스올과 맹약하였다’는 말씀은 문자 그대로 죽음과 계약을 맺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말씀에서 언약’은 결합을 의미하므로, 이것은 사람들이 영적 죽음과 스스로 결합하였음을 나타냅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생명이신 주님과 결합하기보다 악과 거짓을 자신의 삶의 원리로 받아들였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영적 죽음의 본질입니다.

 

또한 넘치는 재앙이 밀려올지라도 우리에게 미치지 못하리라’는 말은 자기 확신과 거짓된 안전감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지혜와 교리, 그리고 생활 방식이 자신들을 보호할 것이라고 믿었지만, 그것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AC.290의 관점에서 보면, 생명은 오직 주님으로부터만 오므로, 그분을 떠난 모든 안전은 결국 허상에 불과합니다.

 

이어지는 우리는 거짓을 우리의 피난처로 삼았고’라는 말씀은 더욱 직접적입니다. 피난처는 본래 사람을 보호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진리가 아니라 거짓을 보호막으로 삼았습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거짓은 생명을 전달하지 못하며, 오히려 주님으로부터 오는 신적 진리의 인플럭스를 막습니다. 그러므로 거짓을 피난처로 삼는다는 것은 생명의 근원을 스스로 차단하는 행위입니다.

 

허위 아래에 우리를 숨겼다’는 표현도 같은 의미를 반복합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악과 거짓을 인정하지 않고, 그것을 정당화하는 거짓된 사고 속에 자신을 숨깁니다. 그러나 주님 앞에서는 이러한 은폐가 아무런 효력을 갖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 거짓은 사람을 더욱 깊은 영적 죽음 속으로 이끌 뿐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영적 죽음이 외부에서 강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선택한 상태임을 보여 줍니다.

 

이 구절은 AC.290에서 인용된 요8:21과 요8:24를 잘 보완합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주님께서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고 선언하셨고, 이사야는 그 죄 가운데 머무는 상태가 어떤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묘사합니다. 그것은 거짓을 진리보다 사랑하고, 허위를 안전으로 여기며, 결국 사망과 결합하는 삶입니다. 따라서 두 본문은 영적 죽음의 원인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구절은 바로 뒤에 인용된 사25:8과도 뚜렷한 대조를 이룹니다. 28:15에서는 사람들이 사망과 스스로 언약을 맺는 모습을 보여 주지만, 25:8에서는 여호와께서 그 사망을 영원히 멸하신다고 선포합니다. 사람은 거짓을 선택, 죽음과 결합하지만, 주님께서는 진리와 생명으로 그 죽음을 깨뜨리십니다. 이 대조는 생명의 근원이 사람에게 있지 않고, 오직 주님께 있음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스베덴보리가 사28:15 AC.290에서 인용한 이유는, 영적 죽음의 실체와 그 원인을 분명히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은 자기 안에 생명을 가진 존재가 아니므로, 주님을 떠나 거짓과 악을 자신의 피난처로 삼는 순간 영적 죽음과 결합하게 됩니다. 반대로 참된 생명은 오직 주님으로부터 오는 신적 진리와 선을 받아들일 때만 주어집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생명 자체이신 주님을 떠난 모든 거짓된 의지와 거짓된 신뢰는 결국 영적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보여 주며, 오직 주님만이 생명의 유일한 근원이심을 역설적으로 증언하는 중요한 성경 말씀입니다.

 

 

 

AC.290, 창3:20, ‘산’(living)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창3:20) AC.290 교회를 ‘모든 산 자의 어머니’(mother of all living)라고 하는 것은, 생명 자체이신 주님에 대한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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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90, 심화 39, ‘사25:8’

AC.290.심화 39. ‘사25:8’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사25:8) 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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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90.심화

 

39. ‘25:8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25:8) He shall swallow up death perpetually; and the Lord Jehovih shall wipe away the tear from all the faces; and the reproach of His people shall He remove from all the earth; for Jehovah has spoken (Isa. 25:8).

 

스베덴보리가 AC.290에서 이 구절을 인용한 이유는, 오직 여호와이신 주님만이 영적 죽음을 완전히 제거하시고, 참된 생명을 주실 수 있음을 예언하는 대표적인 말씀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이 구절은 생명의 근원이 오직 주님께 있으며, 죽음을 이기시는 분도 오직 주님뿐이라는 AC.290의 중심 메시지를 아름답게 요약하고 있습니다.

 

특히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는 말씀은 육체의 죽음이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경 전체의 문맥과 스베덴보리의 해석에 따르면, 여기서 사망’은 주님으로부터 분리된 영적 죽음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육체적으로는 죽지만, 주님과 결합된 사람은 영적 죽음에 빠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여호와께서 사망을 멸하신다는 것은 영적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신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의 주어가 주 여호와’라는 점도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은 자기 힘으로 영적 죽음을 이길 수 없으며, 어떤 천사나 사람도 다른 사람에게 생명을 줄 수 없습니다. 오직 여호와만이 생명 자체이시므로 죽음을 멸하실 수 있습니다. AC.290이 반복하여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 점입니다. 생명은 사람 안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주님으로부터 흘러나옵니다.

 

이어지는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라는 말씀도 단순히 슬픔을 위로하신다는 의미에 그치지 않습니다. 눈물은 영적 의미로는 악과 거짓으로 인해 겪는 고통과 시험, 그리고 주님과 분리된 상태에서 오는 비참함을 나타냅니다. 영적 죽음이 제거될 때, 이러한 슬픔도 함께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눈물을 씻으시는 일은 사망을 멸하시는 역사와 하나의 구원 사역을 이루고 있습니다.

 

또한 그의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는 말씀도 같은 맥락입니다. 말씀에서 수치’는 죄 자체보다도 죄와 거짓으로 인해 생긴 영적 불명예와 황폐한 상태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님께서 사람에게 생명을 주시면, 그 사람은 더 이상 악과 거짓의 지배 아래 있지 않게 되며, 그 결과 영적 수치도 제거됩니다. 따라서 사망의 제거와 수치의 제거는 모두 거듭남의 결과를 보여 줍니다.

 

이 구절은 AC.290에서 앞서 인용된 요5:25와 요8:51을 더욱 완성해 줍니다. 5:25에서는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듣고 살아난다고 하였고, 8:51에서는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은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이사야는 그 모든 일을 하나의 예언으로 압축, 여호와께서 친히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신약은 이 예언이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마지막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는 선언 역시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이것은 사람의 소망이나 예언자의 희망이 아니라, 생명 자체이신 여호와의 확실한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영적 생명의 회복은 인간의 노력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친히 이루시고 보증하시는 구원의 역사입니다. AC.290이 생명을 주님의 고유한 속성으로 설명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성경의 선언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스베덴보리가 사25:8 AC.290에서 인용한 이유는, 생명과 죽음에 관한 성경 전체의 결론을 제시하는 말씀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기 안에 생명을 가진 존재가 아니므로 스스로 영적 죽음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오직 생명 자체이신 여호와, 곧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만 영적 죽음을 영원히 멸하시고, 사람에게 참된 생명을 주시며, 그 결과 모든 영적 슬픔과 수치를 제거하십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오직 주님만이 생명 자체이시며, 사람은 그분으로부터 생명을 받아 살아간다는 AC.290의 중심 메시지를 예언의 형태로 가장 장엄하게 선포하는 중요한 성경 말씀입니다.

 

 

 

AC.290, 심화 40, ‘사28:15’

AC.290.심화 40. ‘사28:15’ 너희가 말하기를 우리는 사망과 언약하였고 스올과 맹약하였은즉 넘치는 재앙이 밀려올지라도 우리에게 미치지 못하리니 우리는 거짓을 우리의 피난처로 삼았고 허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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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8:51-52

 

51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52유대인들이 이르되 지금 네가 귀신 들린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네 말은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 하니 (8:51, 52) Amen, amen, I say to you, If anyone keep My word, he shall not behold death for eternity. Then the Jews said to Him, Now we know that Thou hast a demon. Abraham is dead, and the prophets, and Thou sayest, If anyone keep My word, he shall not taste death into the ages (John 8:51, 52).

 

 

스베덴보리가 AC.290에서 이 말씀을 인용한 이유는,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죽음’은 육체의 죽음이 아니라 영적 죽음이며, 참된 생명은 오직 주님의 말씀 안에서만 얻어진다는 사실을 직접 증언하기 때문입니다. 이 본문은 AC.290의 핵심 메시지를 매우 분명하게 뒷받침합니다.

 

주님께서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고 하십니다. 만일 여기서 죽음을 육체의 죽음으로만 이해한다면, 이 말씀은 문자적으로 성립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아브라함도 죽었고, 선지자들도 모두 육체적으로 죽었습니다. 따라서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죽음은 육체의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결합이 끊어진 영적 죽음을 의미합니다. 스베덴보리도 말씀에서 죽음’은 본질적으로 영적 죽음을 뜻한다고 일관되게 설명합니다.

 

특히 내 말을 지키면’이라는 표현은 매우 중요합니다. 여기서 말씀을 지킨다는 것은 단순히 암송하거나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진리를 받아들이고, 그에 따라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말씀은 단순한 교훈이 아니라 신적 진리이며, 그 안에는 주님의 생명이 함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지킨다는 것은 곧 주님의 생명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와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는 두 표현도 같은 진리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강조합니다. 죽음을 본다’는 것은 영적 죽음의 상태를 경험하는 것이며, 죽음을 맛본다’는 것은 그 상태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말씀 안에 거하는 사람은 비록 육체는 죽더라도 영적 죽음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생명이 이미 주님과 결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의 반응은 문자적 이해와 영적 이해의 차이를 잘 보여 줍니다. 그들은 아브라함과 선지자들이 육체적으로 죽었다는 사실만을 생각, 주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처음부터 육체의 생명이 아니라 영혼의 생명을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AC.290 역시 같은 관점에서, 사람의 참된 생명은 육체의 활동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끊임없이 흘러드는 영적 생명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구절은 앞에서 AC.290에 인용된 요5:25와 요8:21, 24를 자연스럽게 이어 줍니다. 5:25에서는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듣고 살아난다고 하셨고, 8:21 24에서는 주님을 거부하는 사람은 죄 가운데 죽는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는 그 반대로,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은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는다고 선언하십니다. 이처럼 생명과 죽음의 기준은 언제나 주님과의 관계에 있습니다.

 

또한 이 말씀은 마4:16 사망의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다’는 말씀과도 연결됩니다. 빛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말씀을 지키는 사람이 되고, 말씀을 지키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반대로 빛을 거부하는 사람은 죄 가운데 머물며, 영적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따라서 이 모든 본문은 서로 다른 표현으로 동일한 진리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스베덴보리가 요8:51-52 AC.290에서 인용한 이유는 매우 분명합니다. 사람은 자기 안에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는 존재가 아니며, 오직 주님의 말씀 안에 거하고 그 말씀을 삶으로 지킬 때만 영적 죽음을 이기고 참된 생명을 누릴 수 있습니다. 육체의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주님의 생명을 받은 사람은 영적 죽음을 결코 경험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오직 주님만이 생명 자체이시며, 사람은 그분의 말씀을 통하여 그 생명을 받아 살아가는 존재라는 AC.290의 중심 메시지를 주님 자신의 선언으로 가장 분명하게 확증하는 중요한 성경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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