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서 일으켜져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기 (계속) Continuation Concerning The Entrance Into Eternal Life Of Those Who Are Raised From Death

 

AC.187

 

그가 다음으로 선한 영들의 공동체로 이끌려 가는 것은, 한 젊은이가 말 위에 앉아 그것을 지옥을 향해 몰고 있으나 말이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가 젊은이로 나타나는 것은, 그가 영원한 생명에 처음 들어갈 때, 천사들 가운데 있기 때문에, 스스로를 청춘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처럼 느끼기 때문입니다. His being next taken into the society of good spirits is represented by a young man sitting on a horse and directing it toward hell, but the horse cannot move a step. He is represented as a youth because when he first enters upon eternal life he is among angels, and therefore appears to himself to be in the flower of youth.

 

해설

 

이 단락은 사후 초기의 기쁨과 평온 이후에 곧바로 등장하는, 매우 중요한 상징적 장면을 제시합니다. 그는 이제 ‘선한 영들의 공동체’로 들어가게 되는데, 이 이동이 직접적인 설명이 아니라 하나의 상징적 환상으로 나타납니다. 이는 영계에서의 이동과 변화가 공간적 이동이 아니라, 상태의 변화로 경험된다는 점을 다시 한번 보여 줍니다.

 

말 위에 앉아 지옥을 향해 가고 있는 모습은, 인간 안에 여전히 남아 있는 하향적 성향, 곧 자기 사랑이나 세상 사랑의 흔적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점은 말이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이 시점의 인간이 아직 그러한 방향으로 실제로 나아갈 수 없는 상태에 있으며, 보호와 질서 안에 묶여 있음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지옥을 향한 가능성은 상(像)으로는 나타나지만, 그것이 곧바로 현실이 되지는 않습니다.

 

말은 스베덴보리 체계에서 이해 또는 사고의 힘을 상징합니다. 말이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은, 그 이해가 아직 악한 방향으로 사용될 수 없도록 제한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이는 앞선 단락들에서 계속 강조된 천적 천사들의 보호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며, 사후 초기에는 인간이 자기 의지대로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상태가 아님을 분명히 합니다.

 

그가 ‘젊은이’로 나타난다는 설명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는 단순한 외형의 문제가 아니라, 내적 상태에 대한 지각입니다. 영원한 생명에 처음 들어간 인간은 천사들 가운데 있으며, 그 상태에서는 노쇠함이나 소진이 아니라, 생명력과 가능성의 충만함이 지배합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를 늙은 사람으로 느끼지 않고, 청춘의 한가운데에 있는 존재로 인식합니다.

 

여기서 ‘청춘’은 육체적 나이를 뜻하지 않고, 생명의 신선함과 아직 열려 있는 가능성을 뜻합니다. 이는 사후의 삶이 생전의 육체적 조건을 그대로 끌고 가는 연장이 아니라, 내적 상태에 따라 전혀 다른 자기 인식을 갖게 됨을 보여 줍니다.

 

이 단락은 결국, 사후 여정이 단선적인 상승이나 하강이 아니라, 보호 속에서 자신의 성향이 서서히 드러나고 시험 되는 과정임을 암시합니다. 그리고 그 시작점은 언제나 생명력 넘치는 ‘젊음’의 상태에서 출발한다는 점을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말해줍니다.

 

 

 

AC.186, 창3 앞, ‘영으로서의 삶이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됨’

죽음에서 일으켜져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기 (계속) Continuation Concerning The Entrance Into Eternal Life Of Those Who Are Raised From Death AC.186 그는 그때부터 자신의 삶을 시작합니다. 이 삶은 처음에는 행복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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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86.심화

 

1. ‘악인에게도 이런 첫 상태를 허락하시는 주님

 

그는 그때부터 자신의 삶을 시작합니다. 이 삶은 처음에는 행복하고 기쁜 상태인데, 그는 스스로가 영원한 생명 안으로 들어왔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아름다운 금빛을 띠게 되는 밝은 흰빛으로 나타나며, 이는 그의 첫 삶이 곧 천적인 동시에 영적인 삶임을 의미합니다. He then commences his life.This at first is happy and glad, for he seems to himself to have come into eternal life, which is represented by a bright white light that becomes of a beautiful golden tinge, by which is signified his first life, to wit, that it is celestial as well as spiritual. (AC.186)

 

심지어 악인에게도 이런 첫 상태를 허락하시는 주님이 정말 놀랍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사실 AC.182-189를 처음 읽는 사람들은 흔히 이 부분을 놓칩니다. 그러나 천천히 읽어보면, 여기에는 스베덴보리가 평생 강조한 주님의 성품이 매우 아름답게 드러나 있습니다. 바로 주님께서는 사람을 처음 만나실 때, 심판자로 만나지 않으시고, 보호자와 아버지로 만나신다는 점입니다.

 

AC.186에서 죽은 사람은 자신의 삶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 시작은 두려움도 아니고, 조사도 아니고, 판결도 아닙니다. ‘행복하고 기쁜 상태’입니다. 그는 자신이 영원한 생명 안으로 들어왔다고 느끼며, 그 상태는 아름다운 금빛을 띠게 되는 밝은 흰빛’으로 표현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그 사람이 선한 사람인지 악한 사람인지 구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아직 주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허락하시는 첫 번째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HH에서도 반복되는 원리입니다. 죽은 직후의 사람은 거의 모두 천사들과 함께 있으며, 자신이 여전히 사람으로 살아 있음을 발견하고, 사랑으로 돌봄을 받습니다. 심지어 지옥으로 가게 될 사람들까지도 처음에는 천사들의 보호 아래 놓입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며, 누구도 처음부터 버려진 존재로 취급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이 점은 스베덴보리 신학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생각할 때, ‘죽으면 곧바로 심판대 앞에 서는 것’을 먼저 떠올립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가 본 세계에서는, 죽은 사람은 먼저 천적 천사들의 품 안에서 깨어납니다. 마치 긴 여행을 마친 아이가 집에 돌아와 보호받는 것처럼 말입니다.

 

목사님께서 심지어 악인에게도 이런 첫 상태를 허락하시는 주님이 정말 놀랍습니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매우 중요한 통찰입니다. 실제로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악인도 처음에는 천국의 기쁨을 어느 정도 경험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끝까지 그 사람 안에 남아 있는 선과 진리를 살리려 하시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가능한 한 천국으로 이끌 수 있는 길을 찾으십니다.

 

물론 이후에는 각 사람이 자신의 진짜 사랑을 드러내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천사들의 사랑 안에 계속 머물기를 원하고, 어떤 사람은 점차 그것을 불편해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님께서 밀어내시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 자신의 삶의 방향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AC.182도 분명히 말하듯이, 떠나기를 원하는 쪽은 천사가 아니라 사람 자신입니다.

 

그래서 AC.186을 읽으면 저는 주님의 공의보다 먼저 주님의 자비를 보게 됩니다. 주님은 사람을 만나자마자 너는 어디로 갈 것이다’라고 선언하지 않으십니다. 먼저 영원한 생명 안에 들어왔다는 기쁨을 맛보게 하십니다. 먼저 사랑받는 존재임을 느끼게 하십니다. 먼저 살아 있음을 알게 하십니다.

 

어쩌면 이것은 복음서의 탕자 비유와도 비슷합니다. 아버지는 탕자가 돌아왔을 때, 먼저 잔치를 베풀고 옷을 입히고 안아 줍니다. 심문부터 하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가 묘사한 사후 첫 상태도 어딘가 그런 분위기를 풍깁니다.

 

그리고 목사님께서 감탄하신 바로 그 지점,  악인에게도’라는 부분이야말로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신적 사랑의 특징입니다. 주님은 선한 사람만 사랑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주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며, 악인조차도 가능한 한 오래, 가능한 한 부드럽게, 가능한 한 천국 가까이 머물게 하십니다.

 

그래서 AC.186 밝은 흰빛이 아름다운 금빛으로 변한다’는 장면은 단순히 죽은 사람의 경험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주님의 마음을 보여 주는 장면인지도 모릅니다. 그 빛은 인간의 공로 때문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사람에게 비추시는 주님의 사랑의 빛이기 때문입니다.

 

 

 

AC.186, 창3 앞, ‘영으로서의 삶이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됨’

죽음에서 일으켜져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기 (계속) Continuation Concerning The Entrance Into Eternal Life Of Those Who Are Raised From Death AC.186 그는 그때부터 자신의 삶을 시작합니다. 이 삶은 처음에는 행복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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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서 일으켜져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기 (계속) Continuation Concerning The Entrance Into Eternal Life Of Those Who Are Raised From Death

 

AC.186

 

그는 그때부터 자신의 삶을 시작합니다. 이 삶은 처음에는 행복하고 기쁜 상태인데, 그는 스스로가 영원한 생명 안으로 들어왔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아름다운 금빛을 띠게 되는 밝은 흰빛으로 나타나며, 이는 그의 첫 삶이 곧 천적인 동시에 영적인 삶임을 의미합니다. He then commences his life. This at first is happy and glad, for he seems to himself to have come into eternal life, which is represented by a bright white light that becomes of a beautiful golden tinge, by which is signified his first life, to wit, that it is celestial as well as spiritual.

 

해설

 

이 단락은 사후 여정에서 하나의 분명한 경계선을 표시합니다. 앞선 단계들에서는 보호, 인식의 개시, 자기 정체성의 자각이 중심이었다면, 여기서는 명확히 ‘삶이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이는 죽음 이후가 단절이나 정지가 아니라, 하나의 연속된 삶의 흐름 속에서 새로운 국면에 들어감을 뜻합니다.

 

그는 그때부터 자신의 삶을 시작한다’는 표현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는 생전에 살았던 삶이 무의미해진다는 뜻이 아니라, 영으로서의 삶이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이전까지는 깨어남과 준비의 단계였고, 이제부터가 실제적인 영적 생명의 전개입니다.

 

이 첫 삶의 정서는 ‘행복하고 기쁜 상태’로 묘사됩니다. 그 이유는 그가 스스로를 ‘영원한 생명 안으로 들어왔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영원한 생명은 미래에 주어질 보상이 아니라, 지금 시작된 현재적 삶의 상태입니다. 영은 더 이상 시간의 단절 속에 있지 않고, 지속되는 삶의 감각 안으로 들어옵니다.

 

이 상태는 빛의 형상으로 표현되는데, 처음에는 ‘밝은 흰빛’으로 나타나고, 이어서 ‘아름다운 금빛’을 띠게 됩니다. 흰빛은 진리의 순수함과 새로움, 그리고 혼탁되지 않은 인식을 뜻하며, 금빛은 사랑과 선, 곧 천적인 요소를 상징합니다. 이 두 색의 결합은 이 첫 삶이 단순히 지적인 각성만이 아니라, 사랑과 진리가 함께 있는 상태임을 보여 줍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빛이 의미하는 바를 직접 설명하며, 이를 ‘그의 첫 삶’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 삶이 ‘천적인 동시에 영적인 삶’이라고 명시합니다. 이는 사후 초기 단계에서 인간이 아직 분리나 판단의 상태에 들어가지 않았으며, 사랑의 선과 이해의 진리가 함께 작동하는 조화로운 상태에 있음을 뜻합니다.

 

이 단락은 결국, 죽음 이후의 시작이 두려움이나 심판이 아니라, 기쁨과 충만함으로 열리는 삶이라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그리고 그 첫 삶은 인간이 창조될 때 의도된 질서, 곧 천적 요소와 영적 요소가 함께 있는 상태를 잠시나마 다시 경험하는 단계로 제시됩니다.  

 

 

심화

 

1. ‘악인에게도 이런 첫 상태를 허락하시는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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