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308.심화

 

8. ‘10:2, 7

 

2하나님이 가는 베 옷을 입은 사람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그룹 밑에 있는 바퀴 사이로 들어가 그 속에서 숯불을 두 손에 가득히 움켜 가지고 성읍 위에 흩으라 하시매 그가 내 목전에서 들어가더라, 7그 그룹이 그룹들 사이에서 손을 내밀어 그 그룹들 사이에 있는 불을 집어 가는 베 옷을 입은 자의 손에 주매 그가 받아 가지고 나가는데 (10:2, 7) He said to the man clothed in linen, Go in between the wheel to beneath the cherub, and fill thy palms with coals of fire from between the cherubim, and scatter them over the city; the cherub put forth his hand from between the cherubim unto the fire which was between the cherubim, and took thereof, and put it into the palms of him that was clothed in linen, who took it and went out (Ezek. 10:2, 7).

 

 

10:2, 7 AC.308에서 인용한 이유는, 그룹이 단순히 거룩한 것을 지키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주님의 신적 섭리가 심판과 정결의 역사까지도 질서 있게 집행하심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앞의 겔9가 보호와 구별의 질서를 보여준다면, 겔10은 그 보호가 끝난 후, 교회의 황폐함에 대한 심판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보여 줍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러한 장면 역시 창3:24의 그룹과 동일한 영적 원리를 나타낸다고 보았기 때문에 AC.308에서 함께 인용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세마포 옷을 입은 사람은 그룹 아래, 바퀴 사이에 있는 불을 손에 가득 담아 예루살렘 위에 흩뿌리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이어 한 그룹이 그룹들 사이에 있는 불에서 그것을 가져다가 세마포 입은 사람의 손에 건네줍니다. 말씀의 겉뜻만 보면 이것은 심판을 위한 불 전달 장면입니다. 그러나 말씀의 속뜻으로는 주님의 거룩한 것이 이미 스스로를 거부한 교회에 더 이상 그대로 머물 수 없게 되었음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불은 단순한 파괴의 상징이 아니라, 거룩한 것과 거룩하지 않은 것을 최종적으로 분리하는 신적 작용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불이 그룹들 사이에서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심판 자체가 그룹의 본질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심판마저도 주님의 신적 섭리 아래 질서 있게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앞선 출애굽기에서는 같은 그룹들 사이에서 주님의 말씀이 들렸고, 민수기에서는 같은 곳에서 모세가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에스겔에서는 같은 거룩한 중심에서 심판을 위한 불이 나옵니다. 이것은 주님의 신성이 변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과 교회의 상태가 변하였기 때문입니다.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은 언제나 동일한 신적 선과 신적 진리이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쪽의 상태에 따라 어떤 사람에게는 생명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심판이 됩니다.

 

이 점은 창3:24와도 깊이 연결됩니다. 에덴동산의 그룹은 생명나무의 길을 지켰습니다. 그것은 사람을 생명으로부터 영원히 배제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거룩한 것을 profanation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주님의 섭리였습니다. 겔10에서도 같은 원리가 나타납니다. 거룩한 것이 끝까지 profanation 당하도록 방치하지 않으시고, 이미 완전히 황폐해진 상태에서는 거룩한 것과 악한 것을 분리하심으로써 더 이상의 profanation을 막으십니다. 따라서 심판 역시 보호의 반대가 아니라 보호를 완성하는 신적 섭리의 한 작용입니다.

 

본문에서 그룹이 직접 손을 내밀어 불을 건네주는 장면도 같은 의미를 가집니다. 이는 그룹이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존재라는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수행하는 신적 질서를 표상합니다. 다시 말해, 모든 심판과 모든 분리는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섭리 안에서 질서 있게 이루어집니다. 스베덴보리가 그룹을 신적 섭리의 표상으로 설명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특히 불은 말씀의 속뜻에서 언제나 사랑과 연결됩니다.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불은 본래 신적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생명과 따뜻함이 되지만, 그러나 그것을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심판의 불로 나타납니다. 따라서 예루살렘에 흩뿌려지는 불은 주님의 사랑 자체가 변하여 진노가 된 것이 아니라, 이미 사랑을 거부한 교회의 상태가 그 사랑을 심판으로 경험하게 되었음을 나타냅니다. 이것 역시 신적 섭리의 질서입니다.

 

9와 겔10을 함께 살펴보면 AC.308의 의도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9장에서는 먼저 탄식하는 사람들에게 표를 하여 보호하셨고, 10장에서는 그 보호가 이루어진 후 심판이 진행됩니다. 다시 말해, 주님의 섭리는 언제나 보존이 먼저이고, 심판은 그다음입니다. 선한 것을 먼저 보호하신 후, 악을 분리하시는 것이 주님의 일관된 역사 방식입니다. 그룹은 바로 이 질서를 대표합니다.

 

10:2, 7 AC.308에서 인용한 이유는, 그룹이 단순히 생명나무나 언약궤를 지키는 존재를 넘어, 주님의 거룩한 것이 profanation 되지 않도록 끝까지 보호하시며, 필요할 때에는 심판과 분리까지도 질서 있게 집행하시는 신적 섭리를 나타낸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창세기의 에덴동산, 성막과 성전, 그리고 에스겔의 환상에 나타나는 그룹은 서로 다른 시대와 서로 다른 장면 속에 등장하지만, 말씀의 속뜻에서는 모두 거룩한 것을 보존하시고 profanation을 막으시며, 마지막에는 선과 악을 질서 있게 분리하시는 주님의 자비롭고 완전한 섭리를 한결같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AC.308, 창3:24, ‘그룹들’(cherubim)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창3:24) AC.308 앞에서 ‘동쪽’(east)과 ‘에덴동산’(garden of Eden)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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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08, 심화 7, ‘겔9:3-7’

AC.308.심화 7. ‘겔9:3-7’ 3그룹에 머물러 있던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에 이르더니 여호와께서 그 가는 베 옷을 입고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찬 사람을 불러 4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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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08.심화

 

7. ‘9:3-7

 

3그룹에 머물러 있던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에 이르더니 여호와께서 그 가는 베 옷을 입고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찬 사람을 불러 4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에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를 그리라 하시고 5그들에 대하여 내 귀에 이르시되 너희는 그를 따라 성읍 중에 다니며 불쌍히 여기지 말며 긍휼을 베풀지 말고 쳐서 6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이와 여자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하지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 7그가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성전을 더럽혀 시체로 모든 뜰에 채우라 너희는 나가라 하시매 그들이 나가서 성읍 중에서 치더라 (9:3-7) The glory of the God of Israel was uplifted from upon the cherub whereon he was, to the threshold of the house. And he called to the man clothed with linen, and said unto him, Go through the midst of the city, through the midst of Jerusalem, and set a mark upon the foreheads of the men who groan and sigh for all the abominations done in the midst thereof. And to the others he said, Go ye after him through the city, and smite; let not your eye spare, neither have ye pity; slay to blotting out the old man, and the young man, and the virgin, the infant, and the women; defile the house, and fill the courts with the slain (Ezek. 9:3–7).

 

 

9:3-7 AC.308에서 인용한 이유는, 그룹이 단순히 거룩한 장소를 장식하는 존재가 아니라, 교회의 가장 거룩한 것들을 보호하시며, 동시에 심판과 구원의 질서를 집행하시는 주님의 신적 섭리를 표상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창3:24에서는 그룹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성막과 성전에서는 언약궤와 속죄소를 지키는 모습으로 나타났다면, 겔9에서는 타락한 교회 가운데서 거룩한 것과 거룩하지 않은 것을 구별하시는 주님의 역사와 함께 나타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다양한 장면들이 모두 하나의 동일한 영적 원리를 나타낸다고 보기 때문에 이 본문을 AC.308에 함께 인용한 것입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영광이 그룹 위에서 성전 문지방으로 옮겨지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이는 주님의 임재가 그룹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말씀의 속뜻으로는 그룹이 주님의 영광을 대신하는 존재라는 뜻이 아니라, 주님의 임재가 거룩하게 보존되고 나타나는 영역을 지키는 신적 섭리를 표상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이 그룹과 함께 언급되는 것은, 주님의 거룩한 임재가 언제나 섭리의 보호 아래 역사하심을 의미합니다.

 

이어지는 내용에서 세마포 옷을 입은 사람은 예루살렘 가운데를 다니며,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해 탄식하며 슬퍼하는 사람들의 이마에 표를 그립니다. 그 후 다른 자들은 표 없는 사람들에게 심판을 집행합니다. 이러한 장면은 겉으로 보면 무서운 심판처럼 보이지만, 말씀의 속뜻으로는 심판 이전에 먼저 보존이 이루어짐을 보여줍니다. 먼저 보호받을 사람들이 구별되고, 그다음에 심판이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바로 그룹이 표상하는 신적 섭리의 중요한 원리입니다. 주님은 먼저 자신의 사람들을 보호하시고, 그 후에 악을 분리하십니다.

 

이 원리는 창3:24와도 정확히 연결됩니다. 에덴동산의 그룹 역시 먼저 생명나무를 보호하였습니다. 그 목적은 사람을 영원히 내쫓기 위한 것이 아니라, 거룩한 것을 profanation으로부터 보존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겔9에서도 같은 원리가 나타납니다. 먼저 표를 받은 사람들이 보호되고, 그 후에 심판이 시행됩니다. 따라서 그룹은 단순히 심판의 상징이 아니라, 심판 가운데서도 선한 것을 먼저 보존하시는 주님의 자비로운 섭리를 나타냅니다.

 

특히 이마에 표를 받는 장면은 매우 의미가 깊습니다. 이마는 말씀의 속뜻으로 사랑과 의지의 영역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마에 표를 받았다는 것은 단순한 외적 표시가 아니라, 주님께 속한 사랑과 신앙 안에 있는 사람들이 주님의 섭리 가운데 보호받음을 의미합니다. 스베덴보리가 그룹을 신적 섭리의 표상으로 설명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의 섭리는 악을 처벌하는 데 먼저 관심을 두시는 것이 아니라, 선한 것을 보존하는 데 먼저 목적을 두십니다.

 

본문에서 성전까지 더럽혀지고 뜰이 시체로 가득 차는 모습도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이는 역사적인 학살 장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교회의 내적 거룩함이 완전히 황폐해졌음을 나타내는 표상입니다. 거룩한 것이 스스로 거룩함을 잃었을 때에는 그것이 더 이상 거룩한 것으로 남지 못하도록 분리하는 것 역시 신적 섭리의 일부입니다. 이것은 파괴를 위한 파괴가 아니라, 더 큰 profanation을 막기 위한 보호입니다. 이 점에서도 에덴동산의 그룹과 같은 원리가 나타납니다.

 

25:22와 민7:89에서는 그룹들 사이에서 주님의 말씀이 들렸습니다. 거기서는 보호와 계시가 중심이었습니다. 그러나 겔9에서는 같은 그룹이 보호와 심판의 질서를 함께 나타냅니다. 이 두 모습은 서로 모순되지 않습니다. 참된 계시를 보존하는 것도, 거룩한 것을 profanation으로부터 보호하는 것도 모두 동일한 신적 섭리의 서로 다른 작용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AC.308은 여러 본문을 나란히 인용, 그룹의 기능을 하나의 일관된 원리로 설명합니다.

 

또한 이 장면은 최후의 심판의 원리와도 연결됩니다. 주님의 심판은 선과 악을 뒤섞인 상태로 두지 않습니다. 먼저 선한 것을 보호하고 분리한 다음, 악한 것을 악한 것끼리 모이게 하십니다. 이러한 분리는 단순한 형벌이 아니라, 천국과 지옥 모두의 질서를 보존하기 위한 신적 섭리입니다. 그룹은 바로 이러한 분리와 보호의 질서를 대표합니다.

 

9:3-7 AC.308에서 인용한 이유는, 그룹이 거룩한 장소를 지키는 존재라는 좁은 의미를 넘어, 교회의 거룩한 것을 profanation으로부터 보호하시고, 선한 사람들을 먼저 보존, 마지막에는 선과 악을 질서 있게 분리하시는 주님의 신적 섭리를 나타낸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창3의 에덴동산, 출애굽기의 성막, 솔로몬 성전, 그리고 에스겔의 환상은 모두 서로 다른 시대와 장면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말씀의 속뜻에서는 한결같이 거룩한 것을 보존하시고, 사람을 모독으로부터 지키시는 주님의 자비로운 섭리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AC.308, 심화 8, ‘겔10:2, 7’

AC.308.심화 8. ‘겔10:2, 7’ 2하나님이 가는 베 옷을 입은 사람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그룹 밑에 있는 바퀴 사이로 들어가 그 속에서 숯불을 두 손에 가득히 움켜 가지고 성읍 위에 흩으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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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08, 심화 6, ‘민7:89’

AC.308.심화 6. ‘민7:89’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서 여호와께 말하려 할 때에 증거궤 위 속죄소 위의 두 그룹 사이에서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목소리를 들었으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심이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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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08.심화

 

6. ‘7:89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서 여호와께 말하려 할 때에 증거궤 위 속죄소 위의 두 그룹 사이에서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목소리를 들었으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심이었더라 (7:89)

 

 

7:89 AC.308에서 인용한 이유는, 출25:22에서 주신 약속이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출25에서는 주님께서 모세를 속죄소 위, 두 그룹 사이에서 만나 말씀하시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민7에서는 그 약속이 역사 가운데 그대로 성취됩니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갔을 때, 실제로 주님의 음성이 바로 그곳에서 들렸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그룹이 단순한 장식이나 성막의 예술적 요소가 아니라, 주님의 임재와 계시가 질서 있게 이루어지는 거룩한 영역을 보호하는 표상임을 실제 사건을 통해 증명하는 본문입니다.

 

이 구절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주님의 음성이 들려온 위치가 매우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말씀은 단순히 모세가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하지 않습니다. 음성은 증거궤 위 속죄소 위의 두 그룹 사이에서 들려왔습니다. 이는 주님의 임재가 언약궤 자체나 그룹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자비를 표상하는 속죄소와 그것을 보호하는 그룹들이 이루는 거룩한 질서 가운데 나타남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그룹은 계시의 근원이 아니라 계시가 거룩하게 보존되도록 하는 주님의 신적 섭리를 표상합니다.

 

이 점은 AC.308의 중심 메시지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스베덴보리는 그룹의 의미를 ‘거룩한 것을 profanation으로부터 보호하시는 주님의 신적 섭리’라고 설명합니다. 많은 사람은 보호를 곧 접근 금지로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민7:89는 그 반대의 사실을 보여줍니다. 주님의 음성은 바로 그룹들이 지키는 중심에서 들립니다. 이는 그룹의 역할이 사람을 주님에게서 영원히 멀어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것이 훼손되지 않은 상태에서 참된 계시가 이루어지도록 보호하는 데 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이 구절은 창3:24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에덴동산의 그룹들은 생명나무의 길을 지켰습니다. 겉으로는 길을 막는 것처럼 보이지만, AC.308은 그것이 영원한 차단이 아니라 profanation을 막기 위한 보호라고 설명합니다. 민7:89는 그 보호의 참된 목적을 실제 사건으로 보여줍니다. 그룹들이 지키는 곳은 사람이 영원히 접근할 수 없는 장소가 아니라, 주님께서 준비된 사람과 만나 말씀하시는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그룹은 생명의 길을 폐쇄하는 존재가 아니라, 생명의 길이 거룩하게 보존되도록 지키는 존재입니다.

 

25:22와 민7:89의 관계도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출25:22는 주님의 약속이고, 민7:89는 그 약속의 성취입니다. 하나는 앞으로 이루어질 질서를 선언하고, 다른 하나는 그 질서가 실제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스베덴보리가 AC.308에서 두 본문을 함께 인용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는 단순한 상징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룹이 표상하는 신적 섭리가 실제 계시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이 구절은 또한 참된 계시가 언제나 주님으로부터만 온다는 사실을 분명히 합니다. 말씀하시는 분은 그룹이 아니며, 속죄소도 아닙니다. 말씀하시는 분은 오직 주님이십니다. 그룹은 그 거룩한 임재와 계시가 사람의 proprium이나 감각적 추론에 의해 훼손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따라서 계시의 근원은 언제나 주님이시며, 그룹은 그 계시가 순수하게 보존되도록 하는 신적 섭리를 표상합니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 주님께 말씀드리려 했을 때, 그는 자기 생각이나 추론 속에서 답을 얻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응답은 주님께서 정하신 거룩한 질서 안에서 주어졌습니다. 이것은 모든 참된 진리가 사람에게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흘러 들어온다는 상응의 원리를 보여줍니다. 사람은 자신의 proprium으로 거룩한 것에 침입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보호하고 계시는 거룩한 질서 안에서만 참된 계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결국 민7:89 AC.308의 의미를 가장 실제적으로 입증하는 본문 가운데 하나입니다. 주님의 신적 섭리는 사람을 거룩한 것에서 영원히 멀어지게 하기 위한 장벽이 아니라, 거룩한 것이 profanation 되지 않도록 보존함으로써 사람이 올바른 상태에 이르렀을 때, 안전하게 주님을 만나고 그분의 말씀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자비의 질서입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두 그룹 사이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은 사건은, 그룹이 단순한 수호의 상징이 아니라 ‘거룩한 것을 보호하시면서 동시에 그 안에서 사람과 교통하시는 주님의 신적 섭리’를 나타낸다는 사실을 가장 분명하게 증언하는 본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AC.308, 심화 7, ‘겔9:3-7’

AC.308.심화 7. ‘겔9:3-7’ 3그룹에 머물러 있던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에 이르더니 여호와께서 그 가는 베 옷을 입고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찬 사람을 불러 4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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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08, 심화 5, ‘출2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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