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렘5:1)Run ye to and fro through the streets of Jerusalem,and see if ye can find a man,if there be any executing judgment,seeking the truth. (Jer. 5:1) (AC.158)
이 구절이AC.158에 인용된 이유도,말씀에서‘man’이 단순 인간 일반이 아니라,진리와 선 안에서 사는 영적 인간,특별히 이해와 분별 안에 있는 사람을 뜻하기 때문입니다.여기서도 영어의‘man’은 단순homo가 아니라‘vir’계열 의미로 이해됩니다.따라서 렘5:1의‘한 사람을 찾으면’이라는 말씀은 단순히 착한 시민 한 명을 찾는다는 뜻이 아니라,정의와 진리 안에서 실제로 살아가는 참된 영적 인간을 찾는다는 뜻입니다.
본문을 보면 조건이 두 가지입니다. ‘정의를 행하며’와‘진리를 구하는 자’입니다.스베덴보리에게 이것은 각각 선과 진리를 뜻합니다.정의(judgment)는 단순 법률 판결이 아니라,진리에서 나오는 바른 분별과 질서를 뜻하고,진리를 구한다는 것은 주님의 진리를 사랑하고 찾는 상태를 뜻합니다.즉,여기의‘한 사람’은 선과 진리가 결합된 인간입니다.바로 이런 인간이 말씀에서‘vir’로 표현됩니다.
AC.158의 핵심 가운데 하나는,말씀에서‘남자’혹은‘사람’이라는 표현이 자주 진리와 이해의 차원을 상징한다는 점입니다.앞의 사41:28에서는‘한 사람도 없다’는 말이 참된 영적 분별의 부재를 뜻했다면,여기 렘5:1에서는‘한 사람이라도 찾으면’이라는 말이,아직 교회 안에 선과 진리가 살아 있는 인간이 존재하는가를 묻는 표현이 됩니다.
또‘예루살렘 거리로 다니라’는 표현도 상징적입니다.스베덴보리에게 예루살렘은 교회를 뜻하고,거리(streets)는 교리적 진리들이 지나가는 길,곧 교회의 진리 체계를 뜻합니다.그런데 그 거리 속에서조차 참된‘사람’,곧 진리 안에 사는 영적 인간을 찾기 어렵다는 것은,교회 전체가 외적 형식만 남고,실제 생명은 잃어버린 상태를 뜻합니다.
특히 여기서 주님이‘한 사람만 있어도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고 하시는 점도 중요합니다.이것은 단순 숫자의 문제가 아닙니다.스베덴보리에게 참된 선과 진리 안에 있는 한 사람은,그 안에 교회의 본질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즉,참된 영적 인간 한 명만 있어도 그 안에 주님의 교회가 살아 있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AC.158에서 이 구절이 인용된 이유는,말씀에서‘사람’(man,vir)이 단순 인간 일반이 아니라,진리와 선 안에서 실제로 살아가는 영적 인간을 뜻한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그리고 렘5:1은,교회가 아무리 외적으로 존재해도 그런‘사람’이 사라지면 영적 생명을 잃은 상태가 된다는 것을 드러내는 대표적 구절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내가 본즉 한 사람도 없으며 내가 물어도 그들 가운데에 한 말도 대답할 조언자가 없도다(사41:28)I behold,and there is no man[vir],even among them,and there is no counselor, (Isa. 41:28) (AC.158)
이 구절이AC.158에 인용된 이유는, 말씀에서 ‘man’이라는 말이 단순 인간 일반을 뜻하지 않고, 특별히 진리와 지혜 안에 있는 인간, 곧 참된 이해와 분별을 가진 사람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여기 사41:28의 영어는 일반적 인간을 뜻하는homo가 아니라 ‘vir’가 사용되는데, 스베덴보리는 이 차이를 매우 중요하게 봅니다. 사41:28에서 ‘한 사람도 없다’는 말은 단순 인구 부재가 아니라, 참된 진리 안에서 판단하고 조언할 수 있는 영적 인간이 없다는 뜻입니다.
스베덴보리에게서 라틴어 ‘vir’는 보통 이해, 진리, 지혜와 연결됩니다. 반면homo는 보다 일반적인 인간 존재를 가리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에서 ‘vir가 없다’는 표현은, 교회 안에 더 이상 참된 분별과 영적 이해가 남아 있지 않다는 의미로 읽힙니다. 이어지는 ‘조언자도 없다’는 표현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counsel은 단순 의견 제시가 아니라, 진리로부터 오는 분별과 지혜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AC.158의 흐름은, 인간 안에서 참된 진리와 선의 결합이 무너질 때, 어떤 상태가 되는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이어집니다. 앞에서 ‘여자’가affection과proprium의 차원을 상징했다면, 여기vir라고 하는 ‘man’은 보다 이해와 진리의 차원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진리 안에서 분별할 ‘vir’가 사라지면,affection역시 방향을 잃게 됩니다. 왜냐하면 스베덴보리에게 인간은 선과 진리, 의지와 이해가 함께 결합될 때, 비로소 온전하기 때문입니다.
또 이 구절은 우상숭배 문맥 안에 있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이사야41장은 인간이 자기 손으로 만든 것들을 의지하는 상태를 비판하는 장입니다. 스베덴보리식으로 보면 이것은proprium중심 상태와 연결됩니다. 인간이 자기 자신과 세상 지혜만 의지하게 되면, 결국 참된 ‘vir’, 곧 주님의 진리 안에서 보는 이해를 잃게 됩니다. 그래서 ‘한 사람도 없다’는 말은 단순 도덕적 타락이 아니라, 영적 분별 자체의 상실을 뜻합니다.
따라서AC.158에서 이 구절이 인용된 이유는, 말씀에서 ‘man[vir]’이 단순 남성이나 인간 일반이 아니라, 진리와 지혜 안의 영적 인간을 뜻한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vir가 없다’는 것은 곧 교회 안에 참된 이해와 조언, 곧 주님으로부터 오는 진리의 빛이 사라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And the man said, This now is bone of my bones, and flesh of my flesh; therefore she shall be called wife, because she was taken out of man [vir].(창2:23)
AC.158
‘사람’(man)은 속 사람을 뜻하며, 같은 말로 하면 지혜롭고 총명한 사람을 뜻한다는 것이 이사야서를 보면 분명합니다. That man signifies the internal man, or what is the same, one who is intelligent and wise, is plain from Isaiah:
내가 본즉 한 사람도 없으며 내가 물어도 그들 가운데에 한 말도 대답할 조언자가 없도다(사41:28) I behold, and there is no man [vir], even among them, and there is no counselor, (Isa. 41:28)
이는 지혜롭고 총명한 자가 없다는 뜻입니다. 또한 예레미야서에서도 이르기를, meaning none wise and intelligent. Also in Jeremiah: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렘5:1) Run ye to and fro through the streets of Jerusalem, and see if ye can find a man, if there be any executing judgment, seeking the truth. (Jer. 5:1)
여기서 ‘공의를 행하는 자’(One who executes judgment)는 지혜로운 사람을 뜻하고, ‘진리를 구하는 자’(one who seeks the truth)는 총명한 사람을 뜻합니다. “One who executes judgment” means a wise person; and “one who seeks the truth,” an intelligent one.
해설
AC.158은 앞 절들에서 사용된 ‘사람’이라는 단어가 ‘성별이나 일반적 인간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명확히 ‘속 사람’, 곧 ‘지혜와 총명을 지닌 상태’를 뜻한다는 점을 확정해 주는 단락입니다. 이는 창2:23-24를 해석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기준이 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사야와 예레미야의 구절을 통해, 말씀에서 ‘사람’(vir)이 없다고 할 때, 그것이 인구의 부재를 뜻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사람이 없다’는 말은 곧 ‘지혜와 총명이 사라진 상태’를 뜻합니다. 모사가 없다는 말도 같은 맥락으로, 판단과 분별의 중심이 사라졌다는 뜻입니다.
예레미야의 표현은 더욱 분명합니다. ‘공의를 행한다’는 것은 단순히 도덕적으로 옳은 행동을 한다는 뜻이 아니라, ‘지혜로 판단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또한 ‘진리를 구한다’는 것은 정보나 지식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이해가 살아 움직이는 상태’, 곧 총명을 뜻합니다. 이 두 가지가 함께 있을 때 비로소 ‘사람’이라 불릴 수 있습니다.
이 점은 창세기 2장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앞 절에서 ‘여자’가 ‘아내’가 되고,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이라는 말이 나온 뒤, 곧이어 ‘사람이 부모를 떠나’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여기서 ‘사람’은 단순한 남성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속 사람이 자기의 own과 결합하는 주체’, 곧 지혜와 총명을 가진 내적 중심을 뜻합니다.
따라서 AC.158은 창2의 흐름을 이렇게 정리해 줍니다. own이 살아나 ‘아내’가 되었고, 이제 그것과 결합하는 주체는 ‘사람’, 곧 속 사람입니다. 이는 본능적 결합이나 감정적 결합이 아니라, ‘의식과 인식의 중심에서 일어나는 결합’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결합은 더욱 강력해지며, 동시에 이후에 나타날 위험도 함께 커집니다.
이 단락은 짧지만, 창2:24를 이해하기 위한 ‘해석의 문법’을 제공하는 핵심 고리입니다. 다음 AC.159에서는 이 결합이 ‘부모를 떠난다’는 말로 어떻게 확장되며, 질서 전체의 이동을 뜻하게 되는지가 이어서 밝혀지게 됩니다.
스베덴보리 용어에서 ‘wise’와 ‘intelligence’는 비슷해 보이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wise’는 ‘지혜 안에 있는 상태’를, ‘intelligence’는 ‘이해하고 분별하는 능력’을 더 가리킵니다. 그리고 스베덴보리는 보통 wisdom을 사랑(love)과 연결하고, intelligence를 진리(truth)와 연결합니다.
먼저 ‘wise’입니다. 이것은 보통 ‘지혜로운’이라고 번역합니다. 그런데 스베덴보리에게 지혜(wisdom)는 단순히 많이 아는 상태가 아닙니다. 그는 지혜를 ‘선 안에서 진리를 보는 상태’와 연결합니다. 즉, 주님과 선을 사랑하기 때문에 진리를 살아 있게 아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천사들이 truly wise하다고 할 때, 그것은 단순 박식함이 아니라, 존재 전체가 주님의 질서 안에 있다는 뜻입니다.
반면 ‘intelligence’는 보통 ‘지성’ 혹은 ‘총명’으로 번역됩니다. 이것은 이해하고 분별하며 연결짓는 능력과 관련됩니다. 진리들을 파악하고 질서를 이해하는 기능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intelligence를 understanding과 자주 연결합니다. 인간은 진리를 이해함으로 intelligence를 갖게 됩니다.
아주 거칠게 구분하면, intelligence는 ‘진리를 이해하는 능력’이고, wisdom은 ‘이해한 진리를 사랑 안에서 살아내는 상태’입니다. 즉 intelligence는 아직 understanding 중심이고, wisdom은 will과 love까지 결합된 상태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종종 “천사들은 intelligence뿐 아니라 wisdom 안에 있다”고 말합니다. 단순히 아는 것을 넘어, 그것이 존재 전체가 된 상태라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사랑과 거듭남에 대해 매우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그는 intelligence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겸손과 사랑 안에서 살아간다면, 그때는 wisdom에 가까워집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에게 wisdom은 단순 지적 능력보다 훨씬 높은 개념입니다.
또 천국 구조에서도 이 차이가 나타납니다. 보통 영적 천국(spiritual heaven)은 intelligence와 더 연결되고, 천적 천국(celestial heaven)은 wisdom과 더 연결됩니다. 영적 천사들은 진리를 통해 선으로 나아가는 경향이 강하고, 천적 천사들은 사랑 안에서 직관적으로 진리를 살아갑니다. 그래서 천적 천사들은 가장 wise하다고 설명됩니다.
번역으로 정리하면, wise는 ‘지혜로운’, wisdom은 ‘지혜’, intelligence는 ‘지성’ 또는 ‘총명’, intelligent는 ‘총명한’, ‘지성 있는’ 정도로 가시면 자연스럽습니다. 그리고 목사님 작업 흐름에서는 intelligence를 단순 ‘지능’처럼 번역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에게 intelligence는 영적 진리 이해 능력과 깊이 연결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