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And there was no shrub of the field as yet in the earth, and there was no herb of the field as yet growing, because Jehovah God had not caused it to rain upon the earth. And there was no man to till the ground. And he made a mist to ascend from the earth, and watered all the faces of the ground. (2:5, 6)

 

AC.90

 

들에는 초목(shrub of the field) 밭에는 채소(herb of the field)는 일반적으로 그의 겉 사람한테서 나오는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겉 사람은 그가 영적 상태에 머물러 있을 때에는 (earth)이라 하지만, 천적 상태가 되면 (ground)이라 하고, 또한 (field)이라 합니다. 곧이어 안개(mist)라 하게 될 (rain), 싸움이 그친 뒤에 오는 평화의 평온함을 의미합니다. By the “shrub of the field” and the “herb of the field” are meant in general all that his external man produces. The external man is called “earth” while he remains spiritual, but “ground” and also “field” when he becomes celestial. “Rain,” which is soon after called “mist,” is the tranquility of peace when combat ceases.

 

 

해설

 

이 글은 창2:5-6에 나오는 자연적 이미지들을, 인간 내적 상태의 변화라는 관점에서 아주 간결하게 풀어 줍니다. 스베덴보리는 ‘초목(shrub)과 ‘채소(herb)를 식물학적 대상으로 보지 않고, ‘겉 사람한테서 나오는 모든 것의 총칭’으로 읽습니다. 즉, 이는 행동, 말, 습관, 외적 사고, 삶의 열매 전반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이 ‘겉 사람’한테서 나온다는 점입니다. 스베덴보리는 겉 사람을 폄하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겉 사람이 반드시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봅니다. 다만 그 열매의 성격은, 겉 사람이 어떤 상태에 있느냐에 따라 전혀 달라집니다. 그래서 같은 겉 사람이라도, 영적 상태일 때와 천적 상태일 때 부르는 이름이 달라집니다.

 

영적 상태에 있을 때, 겉 사람은 ‘’이라 합니다. 땅은 아직 경작의 방향이 외부 규범과 진리 중심으로 잡혀 있는 상태를 뜻합니다. 이때의 겉 사람은 아직도 싸움과 선택, 분별의 긴장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그가 산출하는 것들, 곧 ‘초목’과 ‘채소’는 존재할 수는 있지만, 아직 풍성하거나 안정된 상태는 아닙니다.

 

그러나 겉 사람이 천적 상태로 들어가면, 더 이상 ‘’이라 하지 않습니다. 이제 그는 ‘(ground) 혹은 ‘(field)이라 합니다. 이는 단어 하나의 변화가 아니라, ‘겉 사람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바뀌었음을 뜻합니다’. 밭은 이미 목적과 질서가 정해진 땅입니다. 씨가 무엇인지 알고, 어디에 뿌려야 하는지가 분명한 상태입니다. 겉 사람은 이제 속 사람의 사랑과 퍼셉션을 그대로 받아, 자연스럽게 열매를 맺습니다.

 

이 차이는, 겉 사람한테서 나오는 모든 것이 더 이상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는 데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천적 인간에게서 겉 사람의 행위는 애써 만들어낸 선이 아니라, ‘속에서 흘러나온 선의 표현’입니다. 그래서 ‘들의 초목’과 ‘밭의 채소’는 억지로 키운 식물이 아니라, 제때에 자연스럽게 자라는 생명입니다.

 

이제 스베덴보리는 ‘’와 ‘안개’라는 이미지를 통해, 이 변화의 정서를 섬세하게 덧붙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비는, 영적 단계에서의 교훈이나 진리의 강한 주입이 아닙니다. 그것은 곧 ‘안개’라 불릴 만큼 부드러운 것입니다. 이 안개는 싸움이 그친 뒤에 찾아오는 ‘평화의 평온함’을 뜻합니다.

 

이 표현은 매우 중요합니다. 천적 상태에서 오는 평화는, 감정의 고조나 강렬한 체험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조용하고, 넓게 퍼지며, 모든 것을 적셔 주는 안개와 같습니다. 이는 더 이상 싸워서 이겨야 할 대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평화는 성취의 흥분이 아니라, ‘질서가 자리를 잡았을 때의 고요함’입니다.

 

그래서 이 안개는 겉 사람을 적십니다. 밭이 된 겉 사람은 이 평화의 평온함을 그대로 받아, 무리 없이 열매를 맺습니다. 더 이상 비가 내려야만 살 수 있는 메마른 땅이 아니라, 이미 수분을 머금은 밭이기 때문입니다. 이 상태에서는 외적 행위 하나하나가 긴장이나 계산에서 나오지 않고, 평온 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옵니다.

 

AC.90은 이렇게 말합니다. 천적 인간에게서 겉 사람은 더 이상 문제의 영역이 아니라, ‘표현의 영역’이 된다고 말입니다. 싸움은 이미 끝났고, 평화는 안개처럼 조용히 내려와 모든 것을 감싸고 있습니다. 이 평온함 속에서, 겉 사람은 더 이상 저항하지 않고, 속 사람의 질서를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이 글은 짧지만, 천적 삶의 분위기를 가장 잘 전해 주는 대목 중 하나입니다. 천적 상태는 웅장하거나 극적인 상태가 아니라, 조용하고 안정된 생명의 흐름입니다. 그리고 그 흐름은, ‘온 지면을 적시는’ 안개처럼,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모든 것을 살립니다.

 

 

 

AC.89, 창2:4, ‘창2의 시작점’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These are the nativities of the heavens and of the earth when he created them, in the day in which Jehovah God made the earth 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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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작용의 영어 표현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제가 위에서 설명드린 작용’이라는 말은 특정 어떤 단어 하나를 직역한 것이라기보다, 스베덴보리의 여러 핵심 용어를 한국어로 묶어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개념 번역’입니다. 그래서 영어 원어는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나타납니다.

 

대표적으로 가장 자주 대응되는 영어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operation

 

이 단어는 작용’, ‘역사’, ‘활동’을 가장 직접적으로 나타냅니다. 주님이 실제로 무엇을 하시는가, 어떤 방식으로 역사하시는가를 말할 때 쓰입니다. 예를 들어 the operation of the Divine 같은 표현은 신적 작용’으로 자연스럽게 옮겨집니다.

 

둘째, ‘working, works

 

성경에서도 자주 나오는 표현인데, ‘그가 하시는 일들’, ‘역사하시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AC에서 his work’라고 할 때도 단순한 ’이 아니라, ‘주님의 역사 전체’, 곧 인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구원의 과정까지 포함합니다.

 

셋째, ‘influx

 

이건 스베덴보리에서 매우 중요한 단어입니다. 직역하면 흘러들어옴’인데, 한국어로 자연스럽게 풀 때는 내적 작용’, ‘영적 영향’으로 설명됩니다. 주님의 사랑과 진리가 인간 안으로 들어와 실제 변화를 일으킬 때의 핵심 메커니즘을 말합니다.

 

넷째, ‘proceeding

 

발출’, ‘나아감’이라는 뜻인데, 특히 성령’이나 신적 진리의 나옴’을 설명할 때 사용됩니다. 이것도 넓은 의미에서는 작용’의 한 형태입니다.

 

다섯째, ‘effect, activity

 

조금 더 일반적인 표현으로, 어떤 원인이 실제로 나타난 결과나 활동을 가리킬 때 쓰입니다. 이것 역시 문맥에 따라 작용’으로 옮겨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리하면, 제가 위에서 사용한 작용’이라는 말은, operation, working, works, influx, proceeding 등, 이런 여러 영어 개념을 한데 묶어 설명하기 위한 한국어 표현입니다.

 

작용’이란, ‘주님의 사랑과 진리가 실제로 인간 안에 들어와 변화와 삶으로 나타나는 모든 방식’이다.

 

즉, 단어 하나에 딱 대응시키기보다, ‘주님의 살아 있는 역사 전체’를 가리키는 개념으로 보시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AC.89, 창2:4, ‘창2의 시작점’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These are the nativities of the heavens and of the earth when he created them, in the day in which Jehovah God made the earth 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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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9, 심화 2, ‘작용’

AC.89.심화 2. ‘작용’ 위 설명 중, ‘스베덴보리에게 이 여러 호칭은 ‘서로 다른 분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한 분 주님, 곧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서로 다른 신적 측면, 작용, 나타나심,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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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작용

 

위 설명 중, 스베덴보리에게 이 여러 호칭은 서로 다른 분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한 분 주님, 곧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서로 다른 신적 측면, 작용, 나타나심, 그리고 인간이 그분을 받아들이는 방식의 차이를 드러내는 이름들입니다처럼, 자주 이 작용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요, 이 표현에 대한 설명이 좀 필요합니다.

 

 

 작용’이라는 말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말씀 전체가 추상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여기서 작용’이란 주님이 실제로 무엇을 하시는가, 그리고 그것이 인간 안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존재’, 즉, 무엇이신가가 아니라 활동’, 그러니까 어떻게 역사하시는가 하는 측면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조금 더 풀어드리면, 스베덴보리의 핵심 구조는 언제나 이 두 축입니다. ‘주님은 무엇이신가’, 그러니까 사랑과 지혜, 선과 진리이신 축과, ‘그 주님이 인간 안에서 어떻게 역사하시는가 하는 축 말입니다. 여기서 작용’은 바로 두 번째, 곧 주님의 신적 속성이 실제로 인간 안에 흘러들어와 변화와 삶으로 나타나는 과정 전체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주님이 사랑’이시라는 것은 존재에 관한 말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 인간 안에 들어와 용서하게 만들고’, ‘이웃을 생각하게 하고’, ‘자기를 내려놓게 하는 실제 변화로 나타날 때, 이것이 바로 그 사랑의 작용’입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이 진리’이시라는 것은 존재에 관한 말이고, 그 진리가 인간 안에서 깨닫게 하고’, ‘옳고 그름을 분별하게 하고’, ‘삶을 바로잡게 하는 것으로 나타날 때, 그것이 진리의 작용’입니다.

 

그래서 같은 주님이시지만, 어떤 문맥에서는 사랑으로 역사하시는 모습’이 강조되고, 어떤 문맥에서는 진리로 인도하시는 모습’이 강조되며, 또 어떤 때는 악과 싸우시는 모습’, ‘구원하시는 모습’, ‘위로하시는 모습’이 강조됩니다. 이 각각이 바로 작용의 차이’입니다. 그래서 이름도 달라집니다. ‘구주’는 구원하시는 작용, ‘’는 다스리시는 작용, ‘인자’는 진리로 나타나시는 작용, ‘성령’은 내적으로 역사하시는 작용을 강조하는 이름입니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작용’은 주님 쪽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쪽에서 체험되는 방식’과도 연결됩니다. 같은 주님의 작용이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깨달음’으로 느껴지고, 어떤 사람에게는 책망’으로, 어떤 사람에게는 위로’로 느껴집니다. 그래서 작용’이라는 말에는 주님의 활동’과 그것이 인간 안에서 경험되는 양상’이 함께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걸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비유가 태양’입니다. 태양 자체는 하나입니다. 그러나 그 태양은 빛으로도 작용하고, 열로도 작용합니다. 그리고 같은 태양 빛이라도 어떤 식물에는 생명을 주고, 어떤 것에는 마르게 하는 작용을 합니다. 태양이 여럿이어서가 아니라, 하나의 태양이 다양한 방식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주님은 이보다 훨씬 더 깊은 의미에서 하나이면서도 다양한 작용으로 나타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처음에 드린 그 문장을 다시 풀어 쓰면 이렇게 됩니다. ‘주님은 한 분이시지만, 그분이 인간을 사랑하시고, 가르치시고, 고치시고, 이끄시고, 싸우시고, 구원하시는 여러 방식의 실제 역사하심이 있으며, 성경의 여러 호칭은 바로 그 다양한 역사하심을 가리키는 이름들이다.’ 이것이 작용’이라는 말의 실제 내용입니다.

 

작용이란, 주님이 우리 안에서 실제로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AC.89, 심화 3, ‘작용’의 영어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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