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15.심화

 

3. ‘51:17

 

사람마다 어리석고 무식하도다 금장색마다 자기가 만든 신상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나니 이는 그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이요 그 속에 생기가 없음이라 (51:17) Every man is made stupid by knowledge [scientia], every founder is confounded by the graven image, for his molten image is falsehood, neither is there breath in them (Jer. 51:17).

 

 

이 구절을 AC.215에서 인용한 이유는, 인간의 own이 기억 지식(scientia)과 이성을 잘못 사용하여 결국 거짓과 악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 과정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언뜻 보면 이 구절은 우상숭배를 비난하는 말씀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단순히 나무나 금속으로 만든 우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정신 안에서 만들어지는 영적 우상을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특별히 마지막에 ‘새긴 우상(graven image)은 인간 own의 거짓을, 부어 만든 우상(molten image)은 인간 own의 악을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이 구절이 AC.215의 문맥에서 중요한 이유는, 앞에서 계속 다루어 온 ‘자기 자신으로부터(from themselves) 생각하는 것’의 결과를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주님으로부터 오는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own과 감각, 기억 지식만을 출발점으로 삼게 되면, 결국 그는 자기만의 진리 체계를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그것은 참된 진리가 아니라 ‘새긴 우상’, 곧 거짓의 형상입니다.

 

또한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이요 그 속에 생기가 없음이라’는 말은 더욱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사람은 자기 생각으로 매우 정교한 교리와 논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외형상으로는 아름답고 설득력 있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이 없으면, 그것은 살아 있는 진리가 아니라 죽은 형상에 불과합니다. 마치 정교하게 조각된 우상이 숨을 쉬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특히 스베덴보리는 ‘사람마다 지식으로 말미암아 어리석게 된다’는 표현에 주목합니다. 물론 여기서 문제는 지식 자체가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학문과 지식을 귀하게 여겼습니다. 문제는 지식이 자기 own의 손에 들어갈 때입니다. 그러면 사람은 지식을 통해 주님께 가까이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생각을 더욱 확신하게 됩니다. 그래서 지식이 많아질수록 더 지혜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더 완고해질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AC.206 AC.215 전체의 주제와 정확히 연결됩니다. 뱀은 감각과 기억 지식을 상징합니다. 그것들이 주님의 진리에 봉사할 때는 유익하지만, 그것들이 주인이 되면 사람은 ‘보지 못하면서도 본다고 하고’, ‘알지 못하면서도 안다고 하며’, ‘살아 있지 않으면서도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 상태에 빠집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이 구절을 단순한 고대 우상숭배 비판으로 읽지 않습니다. 그는 모든 시대의 인간이 자기 own으로부터 만들어 내는 거짓과 악을 가리키는 말씀으로 읽습니다. 사람은 돌과 나무를 숭배하지 않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판단, 자기 철학, 자기 확신, 자기 지혜를 절대화한다면 여전히 우상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AC.215에서 렘51:17을 인용하는 이유는, 인간 own이 기억 지식과 이성을 재료로 삼아 거짓과 악이라는 우상을 만들어 내며, 그 우상 안에는 참된 생명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에게 우상숭배의 가장 깊은 의미는 손으로 만든 형상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주님 대신 자기 own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그 속에 생기가 없음이라’는 말씀의 가장 깊은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AC.215, 창3:7, ‘own’을 실제 영계 체험을 근거로 증언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And the eyes of them both were opened, and they knew that they were naked; and they sewed fig leaves together, and made themselves g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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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14, 심화 2, ‘사47:10-11’

AC.214.심화 2. ‘사47:10-11’ 10네가 네 악을 의지하고 스스로 이르기를 나를 보는 자가 없다 하나니 네 지혜와 네 지식이 너를 유혹하였음이라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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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15.심화

 

2. ‘47:10-11

 

10네가 네 악을 의지하고 스스로 이르기를 나를 보는 자가 없다 하나니 네 지혜와 네 지식이 너를 유혹하였음이라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였으므로 11재앙이 네게 임하리라 그러나 네가 그 근원을 알지 못할 것이며 손해가 네게 이르리라 그러나 이를 물리칠 능력이 없을 것이며 파멸이 홀연히 네게 임하리라 그러나 네가 알지 못할 것이니라 (47:10, 11) Thy wisdom and thy knowledge, it hath turned thee away, and thou hast said in thine heart, I, and none else besides me; and evil shall come upon thee, thou shalt not know from whence it riseth, and mischief shall fall upon thee, which thou shalt not be able to expiate, and vastation shall come upon thee suddenly, of which thou art not aware (Isa. 47:10–11).

 

 

이 구절을 AC.215에서 인용한 이유는, 인간의 own이 어떻게 사람을 자기 확신과 자기 숭배의 상태로 이끌어 가는지를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앞의 사5:21이 ‘자기 눈에 지혜로운 자’를 말한다면, 이사야 47장은 그 상태가 어디까지 발전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여기서는 단순히 자기 생각을 신뢰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는 상태에 이릅니다. 이것은 스베덴보리가 repeatedly 경고하는 own의 최종 형태입니다. 즉 모든 것을 자기 자신으로부터 판단하고,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며, 결국 주님을 삶의 중심에서 밀어내는 상태입니다.

 

특히 AC.215의 문맥에서는 ‘네 지혜와 네 지식이 너를 유혹하였음이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지식(scientia) 자체를 비난하지 않습니다. 그 자신이 당대 최고의 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지식이 자기 own의 손에 들어갈 때입니다. 그러면 지식은 진리를 향한 사다리가 아니라, 자기 확신을 강화하는 도구가 됩니다. 사람은 점점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지만, 동시에 점점 더 자기 자신을 신뢰하게 됩니다.

 

그래서 본문은 ‘네 지혜와 네 지식이 너를 유혹하였다’고 말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무지가 사람을 속인다고 생각하지만, 말씀은 오히려 잘못 사용된 지혜와 지식이 사람을 속인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AC.206의 뱀과도 연결됩니다. 뱀은 무지를 상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감각과 기억 지식에 근거한 영리함을 상징합니다. 문제는 그것이 주님에게 복종하지 않을 때입니다.

 

또한 ‘나를 보는 자가 없다’는 말도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남을 속인다는 뜻이 아닙니다. 영적으로는 ‘주님도 나를 보지 않는다’, ‘나는 내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영계에서는 모든 내면이 드러납니다. 사람은 자신을 속일 수 있고, 다른 사람도 속일 수 있지만, 자신의 사랑과 의도 자체는 숨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재앙이 네게 임하리라 그러나 네가 그 근원을 알지 못할 것이며’라는 말씀은 영적 법칙을 말합니다. own 안에 사는 사람은 점점 더 어두워지지만, 자신은 그것을 모릅니다. 오히려 자신이 가장 밝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AC.215에서 말한 ‘그들 자신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파멸은 갑자기 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오랫동안 자기 안에서 자라 온 결과입니다.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결국 인간 own의 본질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own은 사람에게 ‘너는 지혜롭다’, ‘너는 스스로 설 수 있다’, ‘너 외에 다른 것은 필요 없다’고 속삭입니다. 그러나 그 끝은 점점 더 깊은 거짓과 어둠입니다. 반대로 천국의 천사들은 자신들의 지혜가 클수록 더욱 ‘나는 아무것도 아니며, 모든 것은 주님께로부터 온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AC.215의 흐름 속에서 이사야 47장은 단순한 심판 예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신뢰하는 영의 운명을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네 지혜와 네 지식이 너를 유혹하였다’는 말은 스베덴보리가 평생 강조한 경고이기도 합니다. 곧 지혜 자체가 위험한 것이 아니라, 그 지혜를 자기 것으로 여기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는 말은 인간 own이 궁극적으로 도달하려는 자리이며, 동시에 천국과 가장 멀리 떨어진 자리인 것입니다.

 

 

 

AC.215, 심화 3, ‘렘51:17’

AC.215.심화 3. ‘렘51:17’ 사람마다 어리석고 무식하도다 금장색마다 자기가 만든 신상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나니 이는 그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이요 그 속에 생기가 없음이라 (렘51:17) Every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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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14, 심화 1, ‘사5:21’

AC.214.심화 1. ‘사5:21’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명철하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사5:21) Woe unto those who are wise in their own eyes, and intelligent before their own faces (Isa. 5:21). 이 구절을 AC.21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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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15.심화

 

1. ‘5:21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명철하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5:21) Woe unto those who are wise in their own eyes, and intelligent before their own faces (Isa. 5:21).

 

 

이 구절을 AC.215에서 인용한 이유는, 인간의 own이 어떤 상태에 이르는지를 가장 간결하고도 강력하게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앞서 AC.215에서 스베덴보리는 매우 단호하게 말합니다. 영들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말할 때마다 그것은 악과 거짓으로 가득했으며, 그들은 자신들이 틀렸다는 사실조차 의심하지 않았다고 말입니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이 옳다고 확신했습니다. 바로 그 상태를 이사야는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명철하다 하는 자’라고 표현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혜롭다’는 말 자체가 아닙니다. 문제는 ‘자기 눈에(in their own eyes) 지혜롭다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 참된 지혜는 언제나 주님으로부터 옵니다. 천사들이 가장 지혜로운 이유도 자기 지혜를 신뢰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 안에는 아무것도 없고, 모든 것이 주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반면 own은 정반대로 움직입니다. 자기 생각을 최종 기준으로 삼고, 자기 판단을 가장 확실한 것으로 여기며, 점차 주님보다 자기 자신을 더 신뢰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사야의 말씀은 단순히 교만한 사람을 꾸짖는 정도가 아닙니다. 그것은 영적 삶의 가장 근본적인 위험을 지적합니다. 사람이 자기 눈에 지혜롭게 보이기 시작하면, 더 이상 주님의 빛을 구하지 않게 됩니다. 이미 자신이 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AC.206에서 말한 ‘눈이 밝아졌다고 생각하는 뱀들’의 상태와도 연결됩니다.

 

특히 AC.215의 문맥에서는 ‘신앙에 대해 추론하는 것’이 문제로 등장합니다. 스베덴보리가 비판하는 것은 이성 자체가 아닙니다. 그는 오히려 영적 천사들이 이해와 이성으로 신앙을 확증한다고 말합니다 (AC.203). 문제는 자기 own을 출발점으로 삼아 신앙을 재판하려는 태도입니다. 즉 ‘내가 이해되지 않으면 믿지 않겠다’, ‘내 판단에 맞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태도입니다. 이때 사람은 바로 ‘자기 눈에 지혜로운 자’가 됩니다.

 

또한 이 구절은 순진무구(innocence)의 정반대를 보여 줍니다. 순진무구한 사람은 ‘나는 모른다. 주님께서 아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own은 ‘내가 안다. 내 판단이 맞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천국은 순진무구를 사랑하고, 지옥은 자기 지혜를 사랑한다고 스베덴보리는 설명합니다.

 

흥미롭게도 스베덴보리는 실제 영계에서 이런 상태를 많이 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는 여러 곳에서 지옥의 영들이 자신을 매우 지혜롭고 뛰어난 존재로 여기지만, 천사들의 빛 가운데 들어가면 그들의 생각이 얼마나 뒤틀려 있는지가 드러난다고 기록합니다. 그러나 그들 자신은 끝까지 그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 눈에 지혜로운 자’의 모습입니다.

 

따라서 AC.215에서 사5:21을 인용한 이유는, own의 본질을 한 구절로 요약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own은 사람을 무지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자신을 가장 지혜롭다고 믿게 만듭니다. 그리고 바로 그 확신 때문에 주님의 지혜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사야의 ‘화 있을진저’는 단순한 저주가 아니라, 자기 own을 지혜의 근원으로 삼는 상태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경고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결국 AC.215의 전체 논지는 이 한마디로 압축됩니다. ‘가장 위험한 무지는 자신이 지혜롭다고 확신하는 무지이다.’ 스베덴보리는 이사야의 말씀 속에서 바로 그 영적 원리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AC.214, 심화 2, ‘사47:10-11’

AC.214.심화 2. ‘사47:10-11’ 10네가 네 악을 의지하고 스스로 이르기를 나를 보는 자가 없다 하나니 네 지혜와 네 지식이 너를 유혹하였음이라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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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15, 창3:7, ‘own’을 실제 영계 체험을 근거로 증언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And the eyes of them both were opened, and they knew that they were naked; and they sewed fig leaves together, and made themselves g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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