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영생에 들어감에 관하여 (계속)

 

AC.317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천국을 향하여 더 천천히 나아가고, 어떤 사람들은 더 빨리 나아갑니다. 나는 죽은 직후 곧바로 천국으로 올려진 사람들도 보았는데, 그 가운데 두 사례만을 여기에서 말하는 것이 허락되었습니다. Some however advance more slowly toward heaven, and others more quickly. I have seen some who were elevated to heaven immediately after death, of which I am permitted to mention only two instances.

 

 

해설

 

AC.317은 앞의 AC.316을 보완하면서, 사후 세계의 여정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속도로 진행되는 것은 아님을 알려 줍니다. 지금까지 스베덴보리는 사람이 영적 천사들과 선한 영들의 인도를 받고, 여러 공동체를 거치면서 자신의 내적 사랑에 완전히 일치하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반드시 같은 기간과 같은 과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마다 세상에서 형성한 영적 상태가 다르기 때문에, 사후의 인도 역시 각자의 상태에 따라 달라집니다.

 

본문은 ‘더 천천히’와 ‘더 빨리’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간이 아니라 상태입니다. 영계에서는 지상의 시간 개념이 본질적인 의미를 갖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빠름과 느림은 시계의 시간이 아니라, 사람이 자신의 참된 사랑을 드러내고, 천국의 질서와 하나 되는 데 필요한 영적 과정의 차이를 의미합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에서 이미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꾸준히 살아왔기 때문에 외적인 것만 벗겨지면 곧바로 자신의 본래 상태가 드러납니다. 반면 어떤 사람은 겉으로는 선하게 보였지만, 내면에는 아직 정리되어야 할 여러 요소가 남아 있기 때문에, 보다 긴 준비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이것은 학교에서 모든 학생이 같은 속도로 배우지 않는 것과도 비슷합니다. 어떤 학생은 이미 충분한 기초가 갖추어져 있어 다음 단계로 곧바로 나아갈 수 있지만, 다른 학생은 기초를 다시 다져야 합니다. 그렇다고 앞선 학생이 더 사랑받거나, 뒤처진 학생이 덜 사랑받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훌륭한 교사는 각 학생의 수준에 맞추어 가장 적절한 속도로 가르칩니다. 주님의 섭리 역시 이와 같습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동일하게 대하시는 것이 아니라, 각 사람에게 가장 유익한 방식으로 인도하십니다.

 

특히 본문에서 눈길을 끄는 말씀은 ‘죽은 직후 곧바로 천국으로 올려진 사람들도 보았다’는 부분입니다. 지금까지의 설명만 보면 모든 사람이 반드시 중간 영계에서 일정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그러한 일반적인 질서를 인정하면서도, 예외적인 경우가 있음을 직접 증언합니다. 그는 자신이 실제로 그런 사람들을 보았으며, 그 가운데 두 사례를 이어지는 글에서 소개하겠다고 말합니다.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한 균형을 보여줍니다. 스베덴보리는 사후 세계의 질서를 매우 체계적으로 설명하지만, 그 질서를 기계적인 법칙으로 만들지는 않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중간 영계를 거쳐 자신의 상태가 충분히 드러난 후 천국이나 지옥으로 나아가지만, 이미 세상에서 그 상태가 거의 완전히 형성된 사람이라면 그 과정이 매우 짧거나 사실상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결국 모든 것은 주님의 자비로운 섭리 안에서 각 사람의 영적 상태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또한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것이 허락되었습니다’라고 표현한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마음대로 기록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께서 사람들에게 유익하다고 허락하신 범위 안에서만 영계의 일을 전하고 있음을 여러 곳에서 밝힙니다. 따라서 이어질 두 사례는 단순히 흥미로운 일화가 아니라, 사후 세계의 중요한 영적 원리를 보여주기 위해 특별히 허락된 증언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AC.317은 주님의 인도에는 획일성이 없음을 가르쳐 줍니다. 사람마다 삶이 다르듯이, 사후의 여정도 모두 다릅니다. 어떤 이는 오랜 준비를 거치고, 어떤 이는 거의 즉시 천국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그 차이는 주님의 사랑의 차이가 아니라, 각 사람이 세상에서 형성한 영적 상태의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주님께서는 어느 누구도 서두르거나 억지로 끌고 가지 않으시며, 각 사람에게 가장 적합한 속도로 천국을 향한 길을 열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사후 세계의 여정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시간표가 적용되는 과정이 아니라, 각 사람의 사랑과 신앙의 상태에 완전히 상응하는 주님의 개별적인 인도의 과정인 것입니다.

 

 

 

AC.316, 창3 뒤, ‘사람이 사후 자신의 영원한 거처에 이르게 되는 과정’

사람이 영생에 들어감에 관하여 (계속) AC.316 영혼이 이처럼 그 천사들에게서 스스로 멀어지면, 그는 선한 영들에게 받아들여지며, 그들과 함께 있는 동안에도 온갖 친절한 도움을 받습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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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16.심화

 

1. ‘주님이 신생 영에게 일련의 코스를 밟게 하시는 이유

 

사람의 자유와 선택을 존중하시는 주님은 왜 사후 처음 눈 뜨는 영에게 이후 진행될 전체 코스를 설명, 너는 이 코스를 다 돌래, 아니면 바로 천국 또는 지옥으로 갈래 묻고, 그로 하여금 선택하게 하지 않으시나요?

 

 

AC.314에서 AC.316을 읽다 보면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의 자유를 그토록 존중하신다면, 왜 사후 처음 눈을 뜬 영혼에게 앞으로의 과정을 모두 설명하시고, ‘이 모든 과정을 거칠 수도 있고, 원한다면 지금 바로 천국이나 지옥을 선택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을 원하느냐?’고 묻지 않으실까요? 겉으로 보기에는 이것이 가장 자유로운 방법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의 가르침을 자세히 살펴보면, 오히려 그것이 진정한 자유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 이유는 스베덴보리에게 ‘선택’이란 단순히 생각으로 내리는 결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머리로 선택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것을 선택하는 존재입니다. 다시 말해 천국과 지옥은 두 장소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어떤 사랑 안에서 살기를 원하는가의 문제입니다. 만일 처음부터 ‘천국은 영원한 행복의 나라이고, 지옥은 고통의 나라입니다. 어느 곳을 선택하시겠습니까?’라고 묻는다면, 거의 모든 사람은 천국을 선택하겠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대답이 반드시 그 사람의 진정한 선택은 아닙니다. 행복은 원하지만, 천국의 삶 자체는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는 그의 저서, ‘천국과 지옥’에서 많은 영들이 천국에 들어가기를 원하여 올라갔지만, 막상 천국의 분위기 속에서는 견딜 수 없어 스스로 내려오는 모습을 여러 차례 설명합니다. 천국에서는 모든 사람이 주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기쁨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그러한 분위기가 답답하고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결국 그들은 천사들이 내보내서가 아니라, 자신이 더 이상 그곳에 머물 수 없음을 느끼고 스스로 떠납니다. 이것이 바로 AC.315 AC.316에서 천사들이 사람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천사들에게서 멀어진다고 설명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사후의 여정은 주님께서 사람에게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지 않으셔서 생기는 과정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 자신의 가장 깊은 사랑이 무엇인지를 그 사람 스스로 분명히 알게 하시는 과정입니다. 처음에는 영적 천사들과 함께 지내고, 이어 선한 영들과도 함께 생활합니다. 그러면서 여러 공동체를 경험하지만, 자신의 내적 사랑과 맞지 않는 곳에서는 오래 머물지 못합니다. 반대로 자신의 삶과 같은 사랑을 가진 공동체를 만나면 비로소 깊은 평안과 친숙함을 느끼게 됩니다. 본문이 말하는 ‘마치 자기 자신의 삶을 다시 발견한 것처럼’이라는 표현은 바로 이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 과정에서 사람은 비로소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됩니다. 세상에서는 체면과 사회적 역할, 법과 관습 때문에 자신의 내면을 어느 정도 감추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영계에서는 그러한 외적 껍질이 하나씩 벗겨지고, 사람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만 남게 됩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이르러 선택되는 것은 새로운 삶이 아니라, 평생 조금씩 선택해 온 삶의 완성입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주님께서는 사람에게 ‘천국과 지옥 가운데 하나를 고르라’고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사랑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끝까지 드러내도록 허락하십니다. 그 결과 사람은 어느 순간 ‘내가 진정 편안한 곳은 바로 여기였구나’라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게 됩니다. 이것이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자유입니다. 자유란 여러 선택지를 설명받은 뒤 하나를 결정하는 권리가 아니라, 자신의 가장 깊은 사랑을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허락받는 상태입니다.

 

AC.314에서 AC.316까지의 흐름은 사람을 심판하는 절차가 아니라, 사람을 자기 자신에게까지 정직하게 만드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누구에게도 천국이나 지옥을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또한 사람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시고, 여러 공동체를 경험하게 하시며, 자신의 사랑을 스스로 확인하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마지막에 이르러 각 사람은 외부의 명령이 아니라, 자신의 가장 깊은 사랑을 따라 영원히 살게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주님의 자비와 인간의 자유가 완전하게 조화를 이루는 스베덴보리의 사후 세계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AC.316, 창3 뒤, ‘사람이 사후 자신의 영원한 거처에 이르게 되는 과정’

사람이 영생에 들어감에 관하여 (계속) AC.316 영혼이 이처럼 그 천사들에게서 스스로 멀어지면, 그는 선한 영들에게 받아들여지며, 그들과 함께 있는 동안에도 온갖 친절한 도움을 받습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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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영생에 들어감에 관하여 (계속)

 

AC.316

 

영혼이 이처럼 그 천사들에게서 스스로 멀어지면, 그는 선한 영들에게 받아들여지며, 그들과 함께 있는 동안에도 온갖 친절한 도움을 받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가 세상에서 살아온 삶이 선한 영들과 함께 머물 수 없는 성격이라면, 그는 이들로부터도 떠나기를 원하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은 여러 차례 반복, 마침내 그는 세상에서의 자신의 삶과 완전히 일치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게 됩니다. 그들 가운데서 그는 마치 자기 자신의 삶을 다시 발견한 것처럼 느낍니다. 놀랍게도 그는 그들과 함께 육체 안에서 살았던 것과 거의 같은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삶 속으로 다시 들어간 뒤에는 새로운 삶의 시작이 이루어집니다. 어떤 이는 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어떤 이는 더 짧은 시간이 지난 후에, 그 새로운 시작으로부터 지옥을 향해 나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을 향한 신앙 가운데 있었던 사람들은 그 새로운 삶의 시작으로부터 한 걸음씩 천국으로 인도됩니다. When the soul thus dissociates himself, he is received by good spirits, who likewise render him all kind offices while he is in their company. If however his life in the world has been such that he cannot remain in the company of the good, he desires to be rid of these also, and this process is repeated again and again, until he associates himself with those who are in full agreement with his former life in the world, among whom he finds as it were his own life. And then, wonderful to say, he leads with them a life like that which he had lived when in the body. But after sinking back into such a life, he makes a new beginning of life; and some after a longer time, some after a shorter, are from this borne on toward hell; but such as have been in faith toward the Lord are from that new beginning of life led step by step toward heaven.

 

 

해설

 

AC.316은 사람이 사후 자신의 영원한 거처에 이르게 되는 과정이 어떠한지를 매우 질서 있게 설명합니다. 여기서 스베덴보리는 사람의 운명이 단 한 번의 심판으로 갑자기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적 사랑이 점차 드러나고 그것에 맞는 공동체를 찾아가는 과정을 통하여 결정된다고 말합니다. 이는 ‘천국과 지옥’에서 자세히 설명되는 중간 영계의 원리를 이미 창세기 주석 속에서 간결하게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앞선 AC.314AC.315에서는 사람이 먼저 영적 천사들의 보살핌을 받고, 그 가르침을 원하지 않을 경우 스스로 그들에게서 멀어진다고 하였습니다. 이제 AC.316에서는 그 사람이 곧바로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선한 영들의 공동체로 인도된다고 말합니다. 주님의 섭리는 가능한 한 모든 사람이 선한 공동체 안에 머물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한 공동체와 맞지 않더라도 다른 공동체에서 다시 도움받을 기회가 주어집니다. 이는 주님께서 사람을 얼마나 오래 참고 기다리시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형성된 삶이 선을 사랑하는 삶이 아니라면, 그는 그 공동체 안에서도 오래 머물지 못합니다. 중요한 것은 선한 영들이 그를 내쫓는 것이 아니라, 본문이 말하듯 그가 ‘떠나기를 원한다’는 점입니다. 선한 분위기는 그의 내적 사랑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점차 답답하고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결국 사람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것과 일치하는 곳을 스스로 찾아가게 됩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사람을 특정한 곳으로 보내시는 것이 아니라, 각 사람이 자신의 사랑을 따라 자신의 자리를 선택한다는 스베덴보리의 기본 원리를 다시 확인해 줍니다.

 

본문은 이러한 과정이 ‘반복된다’고 말합니다. 이 표현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사람은 단 한 번의 선택으로 자신의 영원한 상태가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 공동체를 거치며 자신의 참된 성향이 점점 분명해지고, 마침내 가장 편안하게 느껴지는 공동체를 만나게 됩니다. 그곳은 다른 누구의 선택이 아니라 자신의 사랑이 이끌어 낸 자리입니다. 그래서 영계의 공동체는 단순히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 아니라, 동일한 사랑과 동일한 삶을 가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형성한 공동체입니다.

 

스베덴보리는 그 상태를 매우 인상적인 표현으로 설명합니다. 그는 ‘마치 자기 자신의 삶을 다시 발견한 것처럼’ 느낀다고 말합니다. 이는 영계에서 사람이 더 이상 외적 예절이나 사회적 역할에 의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 그대로 살아가게 됨을 뜻합니다. 세상에서는 직업이나 체면, 법과 관습 때문에 자신의 본성을 어느 정도 숨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계에서는 그러한 외적 껍질이 벗겨지고, 사람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그의 삶 전체를 이루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자연스럽게 자신과 같은 사랑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 가장 편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더 나아가 스베덴보리는 ‘육체 안에서 살았던 것과 거의 같은 삶을 살아간다’고 말합니다. 이는 죽음이 사람의 성품을 즉시 바꾸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사람은 죽었다고 해서 갑자기 천사가 되거나 악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형성된 사랑과 사고방식, 습관과 삶의 방향이 그대로 이어집니다. 이것이 스베덴보리가 반복하여 강조하는 ‘죽음은 상태의 변화이지 인격의 변화가 아니다’라는 원리입니다.

 

그러나 그 상태가 영원히 그대로 지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은 매우 중요한 말씀을 덧붙입니다. ‘그와 같은 삶 속으로 다시 들어간 뒤에는 새로운 삶의 시작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새로운 삶의 시작’은 사람이 자신의 참모습을 완전히 드러낸 이후의 새로운 단계입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외적 제약 속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내적 사랑이 온전히 현실이 되는 삶을 시작합니다. 이 시점부터 각 사람은 자신의 사랑이 향하는 방향으로 점차 나아가게 됩니다.

 

악을 사랑한 사람은 그 새로운 시작으로부터 점차 지옥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떤 형벌을 선고받아 끌려가는 과정이 아닙니다. 자신의 사랑을 더욱 자유롭게 실천할 수 있는 공동체를 향하여 자연스럽게 이동하는 과정입니다. 반대로 주님을 향한 신앙 가운데 살았던 사람은 그 새로운 시작으로부터 ‘한 걸음씩’ 천국으로 인도됩니다. 여기서도 스베덴보리는 ‘한 걸음씩’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천국 역시 단번에 완성되는 상태가 아닙니다. 사람은 사후에도 계속 배우고 성장하며, 천사들의 도움을 받아 점점 더 깊은 사랑과 지혜 가운데 들어갑니다. 이는 천국이 정지된 상태가 아니라 끝없는 성장의 나라임을 보여줍니다.

 

AC.316은 사후 세계를 하나의 거대한 영적 선택의 과정으로 보여줍니다. 주님께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을 선한 공동체로 이끌고, 가능한 한 천국으로 인도하시려 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은 결코 자유를 침해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따라 스스로 공동체를 선택하고, 그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참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따라서 천국과 지옥은 외부에서 강제로 배정되는 장소가 아니라, 평생 형성된 사랑이 마침내 자신의 영원한 집을 찾아가는 결과입니다. 이것이 AC.316이 보여주는 사후 세계의 질서이며, 동시에 주님의 공의와 자비가 완전한 조화를 이루는 방식입니다.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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