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그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And they heard the voice of Jehovah God going to itself in the garden in the air of the day; and the man and his wife hid themselves from the face of Jehovah God in the midst of the tree of the garden. (창3:8)
AC.225
‘동산 나무 사이’(the midst of the tree of the garden)가 자연적 선(natural good)을 의미하며, 그 안에 얼마간의 지각(perception)이 있는데, 그것이 ‘나무’(tree)라고 불린다는 사실 역시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천적 인간(celestial man)이 거하던 ‘동산’(garden)으로부터 이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선과 진리는 ‘동산’(garden)이라고 불리는데, 다만 그것을 경작하는 사람의 상태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선(good)은 그 가장 안쪽(inmost)이 천적(celestial)이지 않으면 참된 선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천적인 것(celestial)으로부터, 또는 그것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지각(perception)이 옵니다. 이 가장 깊은 것, 곧 안쪽(inmost)이 여기서는 ‘사이’(midst)라고 불립니다. 말씀의 다른 곳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That the “midst of the tree of the garden” signifies natural good, in which there is some perception which is called a “tree,” is also evident from the “garden” in which the celestial man dwelt; for everything good and true is called a “garden,” with a difference according to the man who cultivates it. Good is not good unless its inmost is celestial, from which, or through which, from the Lord, comes perception. This inmost is here called the “midst,” as also elsewhere in the Word.
해설
AC.225는 창세기 3장 8절의 ‘동산 나무 사이’라는 표현을 더욱 깊이 설명하는 구절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특별히 ‘사이’(midst, 가운데)라는 말에 주목합니다. 말씀에서 ‘가운데’는 단순한 공간적 중심이 아니라 가장 깊은 것(inmost), 가장 본질적인 것을 의미합니다.
앞 절들에서 스베덴보리는 아담의 후손들이 타락했지만 아직 자연적 선(natural good)과 얼마간의 지각(perception)을 남겨 두고 있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동산 나무 사이’는 바로 그 남아 있는 자연적 선과 지각의 중심부를 가리킵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선은 그 가장 안쪽이 천적(celestial)이지 않으면 참된 선이 아니다’라는 말입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모든 참된 선의 근원은 주님에게서 오는 사랑입니다. 외적으로는 선해 보여도 그 가장 깊은 곳에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이 없다면 그것은 완전한 의미의 선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친절을 베푼다고 하더라도, 그 동기가 칭찬받기 위함인지, 이익을 얻기 위함인지, 아니면 진정으로 이웃을 사랑하기 때문인지에 따라 그 선의 질이 달라집니다. 스베덴보리는 바로 이 가장 깊은 동기, 가장 안쪽의 사랑을 ‘가운데’(midst)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동산’(garden)은 단순히 진리와 선의 집합이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심으신 선과 진리가 살아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동산의 중심에는 언제나 천적(celestial), 곧 주님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이 구절은 퍼셉션(perception)의 근원도 설명합니다. 지각은 단순한 지식이나 추론 능력이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천적 사랑을 통하여 생겨나는 직접적인 영적 인식입니다. 그래서 태고교회 사람들은 진리를 논리적으로 증명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선을 사랑함으로써 진리를 곧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결국 AC.225에서 말하는 ‘동산 나무 사이’는 타락 이후에도 아직 남아 있던 자연적 선의 중심, 그리고 그 안에 희미하게 남아 있던 천적 요소와 지각의 흔적을 의미합니다. 아담의 후손들은 이미 많은 것을 잃었지만, 아직 그 중심이 완전히 파괴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고, 자신의 상태를 부끄러워할 수도 있었으며, 숨을 수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모든 영적 생명의 핵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선의 진정한 가치는 외적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가장 깊은 중심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이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과 연결되어 있을 때, 비로소 그 선은 살아 있는 선이 되며, 그로부터 참된 지각(perception)도 흘러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AC.224, 창3:8, ‘숨은지라’
그들이 그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And they heard the voice of Jehovah God going to its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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