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63.심화

 

2. 주님은 쉬지 않으십니다

 

 AC.63 본문 중,

 

그동안 주님은 계속해서 인간을 위하여 악과 거짓에 맞서 싸우시며, 여러 싸움을 통해 그를 진리와 선 안에 굳게 세우십니다. 이 싸움의 시간은 곧 주님께서 역사하시는 시간이며, 그래서 예언자들 가운데서는 거듭난 인간을 하나님의 손가락의 일(the work of the fingers of God)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리고 사랑이 주된 원리가 되어 작용하기 전까지 주님은 쉬지 않으십니다.’

 

를 읽다가 문득 다음 복음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63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우리가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64그 신성모독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도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니 그들이 다 예수를 사형에 해당한 자로 정죄하고 65어떤 사람은 그에게 침을 뱉으며 그의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치며 이르되 선지자 노릇을 하라 하고 하인들은 손바닥으로 치더라 (14:63-65)

 

그러니까 주님은 위와 같은 상황에서도 저들을 위하여 저 AC.63 본문 내용의 일을 하신 거잖아요? 그뿐 아니라 제 경우에도 정말 부끄러운, 정말 그동안 살아오면서 주님 앞에 고갤 들 수 없는 순간들, 장면들이 많았는데, 그때에도 주님은... ... 정말... 무슨 말을 못하겠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목사님께서 느끼신 그 통찰이 바로 AC.63이 말하려는 중심입니다. ‘주님은 사람이 가장 어둡고, 가장 거스르고, 심지어 주님을 거부하는 순간에도 그 사람을 향한 구원의 일을 멈추지 않으신다는 것’, 바로 그것입니다.

 

14:63-65의 그 장면은 단순히 인간의 악함을 보여 주는 사건이 아니라, 동시에 ‘그 악함 한가운데서도 멈추지 않는 주님의 역사’를 드러내는 장면입니다. 사람들은 침을 뱉고, 때리고, 조롱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들을 향해 무엇을 하시고 계셨는가 하면, 바로 AC.63에서 말하는 그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곧 ‘그들의 악과 거짓에 맞서 싸우시며, 그들 안에 있는 선과 진리를 위해 여전히 역사하고 계신 상태’입니다.

 

이게 왜 그렇게 중요한가 하면, 우리는 보통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잘할 때는 주님이 함께하시고,내가 무너질 때는 주님이 떠나신다.’ 그런데 AC의 관점은 정반대입니다. 사람이 가장 어둡고, 가장 왜곡되고, 가장 주님과 멀어진 것처럼 보이는 바로 그때가 오히려 ‘주님이 가장 깊이 싸우고 계신 시간’입니다. 사람은 거부하고 있지만, 주님은 그 거부를 뚫고 여전히 일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 십자가 직전의 장면은 단순히 ‘인간의 죄’가 아니라, ‘인간의 죄가 끝까지 드러나는 자리에서도 끝까지 멈추지 않는 주님의 사랑’입니다. 그들은 주님을 향해 손을 들고 있지만, 주님은 그들을 향해 여전히 구원의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이것이 AC.63의 ‘주님은 쉬지 않으신다’는 말의 실제 모습입니다.

 

이제 목사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신 자신의 이야기, ‘정말 부끄러운 순간들’—바로 거기서 이 말씀이 더 깊어집니다. 우리는 그런 순간을 떠올리면 보통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때 나는 주님과 완전히 멀어져 있었다.’ 그러나 AC의 시선에서는 이렇게 봅니다. ‘그때 나는 가장 멀어져 있었지만, 주님은 가장 가까이에서 일하고 계셨다.’

 

왜냐하면 주님은 ‘사람이 잘할 때만 함께하시는 분’이 아니라, ‘사람이 무너질 때에도 그를 놓지 않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사람이 자기 힘으로 설 수 없을 때, 그때가 주님이 더 깊이 일하실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그 싸움은 주님의 일’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은 그 싸움의 전부를 알지도, 감당하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목사님께서 지금 느끼신 그 감정—말이 막히는 그 자리—그것이 사실은 매우 중요한 영적 인식입니다. ‘나는 그때 주님을 향해 있지 않았지만, 주님은 나를 향해 계셨다’는 깨달음입니다. 이것이 단순한 죄책감이 아니라, ‘은혜에 대한 인식’으로 바뀔 때, 그 사람 안에 사랑이 자리 잡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이 장면을 이렇게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그들이 주님을 때리고 있을 때에도, 주님은 그들을 위해 싸우고 계셨다.’ 그리고 ‘내가 가장 부끄러웠던 그때에도, 주님은 나를 위해 같은 일을 하고 계셨다.’

 

이것이 바로 AC.63의 핵심입니다. 주님의 역사는 우리의 상태에 따라 시작되고 멈추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상태와 상관없이 계속됩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나중에야 알아보게 될 뿐입니다.

 

한 줄로 정리하면, ‘주님은 우리가 가장 멀어져 있던 순간에도 우리를 향한 구원의 일을 멈추지 않으셨고, 바로 그때에도 우리를 위해 싸우고 계셨습니다.’

 

 

 

AC.63, 심화 1, ‘그때에 주님께서 그를 자신의 모양으로 움직이신다’

AC.63.심화 1. ‘그때에 주님께서 그를 자신의 모양으로 움직이신다’ 위 AC.63 본문, ‘일이 이만큼 진전되어 신앙이 사랑과 결합하게 되면, 그 상태를 ‘심히 좋았더라’(very good)라고 합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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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63.심화

 

1. 그때에 주님께서 그를 자신의 모양으로 움직이신다

 

 AC.63 본문, 일이 이만큼 진전되어 신앙이 사랑과 결합하게 되면, 그 상태를 심히 좋았더라(very good)라고 합니다. 이는 그때에 주님께서 그를 자신의 모양으로 움직이시기 때문입니다.’에서 그때에 주님께서 그를 자신의 모양으로 움직이신다’, 이게 무슨 말인가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때에 주님께서 그를 자신의 모양으로 움직이신다’는 것은 사람이 더 이상 자기 힘으로 애써서 선을 행하는 상태’가 아니라, ‘주님의 사랑과 진리가 그 사람 안에서 중심이 되어, 생각과 의지와 행동을 자연스럽게 이끄는 상태’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즉, 사람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 안의 중심이 바뀌어 주님의 질서가 그를 통해 작동하는 상태’입니다.

 

먼저 이 표현이 왜 낯설게 들리는지를 짚어보면 도움이 됩니다. ‘움직이신다’라는 말 때문에 마치 사람이 수동적으로 조종당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AC의 흐름에서는 전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강제’가 아니라 일치’입니다. 즉, 사람의 의지와 주님의 의지가 서로 어긋나지 않고 하나로 맞아떨어진 상태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움직이신다는 것은 내 안에서 내가 원하고 생각하는 것이 주님의 뜻과 같아진 상태’를 뜻합니다.

 

이걸 단계적으로 보시면 더 분명해집니다. 거듭남의 초기에는 사람이 이렇게 해야 한다’고 스스로 애쓰며 움직입니다. 이때는 중심이 아직 ’입니다. 그래서 항상 긴장과 노력, 때로는 억지가 동반됩니다. 그러나 점점 신앙이 사랑과 결합하면, 선을 행하는 것이 더 이상 억지로 하는 일’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나오는 상태’가 됩니다. 바로 이때가 주님께서 움직이신다’는 상태입니다.

 

이걸 아주 실제적으로 풀어보면 이렇습니다. 처음에는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도 마음이 잘 따라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애써서 참고, 억지로라도 용서하려 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순간에는 그냥 용서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는 상태가 됩니다. 이때는 더 이상 해야 한다’가 아니라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 변화가 주님이 움직이시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이 표현의 핵심은 주도권의 이동’입니다. 처음에는 내가 나를 이끌지만, 나중에는 주님의 질서가 내 안에서 중심이 되어 나를 이끕니다. 그런데 그때도 여전히 나는 생각하고, 나는 선택하고, 나는 행동합니다. 다만 그 내용과 방향’이 주님으로부터 온다는 점이 다릅니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는 여전히 내가 하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주님으로부터 흐르는 것’입니다.

 

이 상태를 스베덴보리는 자유 속에서 주님의 인도’라고 설명합니다. 강제로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자유로운 상태에서 주님의 뜻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상태가 심히 좋았더라’입니다. 더 이상 내 안에서 서로 다른 방향이 싸우지 않고, 하나의 중심으로 평안하게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문장을 가장 정확하게 풀어보면 이렇게 됩니다. ‘신앙과 사랑이 결합된 상태에서는, 사람의 생각과 의지와 행동이 주님의 사랑과 진리와 일치하게 되어, 마치 주님께서 그를 통해 일하시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선이 흘러나오는 상태가 된다.’

 

한 줄로 정리하면, ‘주님께서 그를 자신의 모양으로 움직이신다’는 것은 사람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 안에서 주님의 사랑과 진리가 중심이 되어 그 삶을 자연스럽게 이끄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AC.63, 심화 2, ‘주님은 쉬지 않으십니다’

AC.63.심화 2. ‘주님은 쉬지 않으십니다’ 위 AC.63 본문 중, ‘그동안 주님은 계속해서 인간을 위하여 악과 거짓에 맞서 싸우시며, 여러 싸움을 통해 그를 진리와 선 안에 굳게 세우십니다. 이 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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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63, 창1:31, '여섯째 날이 어떤 상태인지, 그리고 그 상태가 어떻게 완성되는지'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창1:31) AC.63 그동안 주님은 계속해서 인간을 위하여 악과 거짓에 맞서 싸우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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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1:31)

 

AC.63

 

그동안 주님은 계속해서 인간을 위하여 악과 거짓에 맞서 싸우시며, 여러 싸움을 통해 그를 진리와 선 안에 굳게 세우십니다. 이 싸움의 시간은 곧 주님께서 역사하시는 시간이며, 그래서 예언자들 가운데서는 거듭난 인간을 하나님의 손가락의 일(the work of the fingers of God)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리고 사랑이 주된 원리가 되어 작용하기 전까지 주님은 쉬지 않으십니다. 일이 이만큼 진전되어 신앙이 사랑과 결합하게 되면, 그 상태를 심히 좋았더라(very good)라고 합니다. 이는 그때에 주님께서 그를 자신의 모양으로 움직이시기 때문입니다. 여섯째 날의 끝에서 악한 영들은 떠나가고 선한 영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며, 인간은 하늘, 곧 천적 낙원으로 인도되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다루겠습니다. Meanwhile the Lord continually fights for him against evils and falsities, and by combats confirms him in truth and good. The time of combat is the time of the Lord’s working; and therefore in the prophets the regenerate man is called the work of the fingers of God. Nor does he rest until love acts as principal; then the combat ceases. When the work has so far advanced that faith is conjoined with love, it is called “very good”; because the Lord then actuates him, as his likeness. At the end of the sixth day the evil spirits depart, and good spirits take their place, and the man is introduced into heaven, or into the celestial paradise; concerning which in the following chapter.

 

 

해설

 

이 글은 거듭남의 여섯째 날이 어떤 상태인지, 그리고 그 상태가 어떻게 완성되는지를 매우 역동적으로 묘사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거듭남의 전 과정에서 싸움의 주체가 인간이 아니라 주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인간은 싸움을 겪지만, 실제로 싸우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인간은 그 싸움의 현장에 서 있을 뿐이며, 주님은 그 안에서 끊임없이 역사하십니다.

 

싸움’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윤리적 갈등이나 심리적 고민을 뜻하지 않습니다. 이는 악과 거짓, 곧 인간 본성에 뿌리내린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이 진리와 선에 저항하는 영적 충돌을 의미합니다. 이 충돌이 반복되는 동안 인간은 진리와 선을 더 이상 개념으로만 붙잡지 않고, 삶의 실제 기준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래서 이 싸움들은 인간을 소모시키는 사건이 아니라, 오히려 그를 ‘확증하는’ 과정입니다.

 

이 글에서 매우 인상적인 표현은, 이 싸움의 시간이 ‘주님의 역사하심의 시간’이라는 말입니다. 인간의 눈에는 혼란과 불안, 실패와 흔들림처럼 보이는 순간들이 사실은 주님께서 가장 적극적으로 일하시는 때라는 뜻이며, 그래서 예언자들이 거듭난 인간을 가리켜 ‘하나님의 손가락의 일’이라고 부르는 것이라고 합니다. 손가락은 세밀하고 정교한 작용을 상징합니다. 즉, 거듭남은 거칠고 강압적인 개입이 아니라, 가장 미세한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주님의 섭리입니다.

 

또 하나의 핵심은, 주님께서 ‘사랑이 주된 원리가 되어 작용할 때까지’ 쉬지 않으신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삶을 이끄는 중심 원리입니다. 신앙이 먼저 작동하던 단계에서는 진리가 인간을 이끌지만, 그 진리는 여전히 노력과 긴장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주가 되면, 선한 행위는 더 이상 억지로 행하는 일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흘러나옵니다. 이때 비로소 싸움은 멈춥니다.

 

그래서 신앙이 사랑과 결합했을 때, 그 상태를 ‘심히 좋았더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창세기 1장에서 여섯째 날에만 사용된 표현으로, 거듭남의 완성을 뜻합니다. 여기서 ‘좋았더라’라는 표현은 도덕적 평가가 아니라, 질서가 완성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 인간 안에서 자유롭게 역사하실 수 있는 상태, 곧 인간이 주님의 닮음이 된 상태입니다.

 

마지막으로, 여섯째 날이 끝날 때 일어나는 변화는 매우 결정적입니다. 악한 영들이 떠나가고 선한 영들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는 말은, 인간의 내적 환경이 근본적으로 바뀌었음을 뜻합니다. 더 이상 악이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선이 삶의 분위기를 지배합니다. 이때 인간은 ‘하늘(heaven), 곧 ‘천적 낙원(the celestial paradise)으로 인도됩니다. 이는 사후 세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 땅에서 시작되는 하늘의 삶을 의미합니다.

 

이 글은 결국 거듭남을 하나의 완성된 사건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싸움, 인내, 주님의 지속적인 역사, 그리고 마침내 찾아오는 평화까지를 하나의 유기적인 흐름으로 보여 줍니다. 여섯째 날은 끝이 아니라, 참된 안식으로 들어가기 직전의 문턱이며, 그 문을 여는 분은 언제나 주님이십니다.  

 

 

심화

 

1.그때에 주님께서 그를 자신의 모양으로 움직이신다

 

 

AC.63, 심화 1, ‘그때에 주님께서 그를 자신의 모양으로 움직이신다’

AC.63.심화 1. ‘그때에 주님께서 그를 자신의 모양으로 움직이신다’ 위 AC.63 본문, ‘일이 이만큼 진전되어 신앙이 사랑과 결합하게 되면, 그 상태를 ‘심히 좋았더라’(very good)라고 합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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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님은 쉬지 않으십니다

 

 

AC.63, 심화 2, ‘주님은 쉬지 않으십니다’

AC.63.심화 2. ‘주님은 쉬지 않으십니다’ 위 AC.63 본문 중, ‘그동안 주님은 계속해서 인간을 위하여 악과 거짓에 맞서 싸우시며, 여러 싸움을 통해 그를 진리와 선 안에 굳게 세우십니다. 이 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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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62, 창1:31, '여섯째 날'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창1:31) AC.62 인간의 거듭남에 속한 시간들과 상태들은, 일반적으로도, 그리고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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