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165.심화

 

2. ‘선지자들이 때때로 보았던 천사들의 모습

 

반면에 그만큼의 innocence를 지니지 않은 자들은 단정하고 빛나는 옷을 입고 나타나며, 이는 마치 다이아몬드 비단과 같은 옷으로, 선지자들이 때때로 보았던 천사들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while those who have not so much innocence are clad in becoming and shining garments (of diamond silk as you might say), as the angels were occasionally seen by the prophets. (AC.165)

 

선지자들에게 가장 innocent한 천사들을 보내신 게 아니군요!

 

 

하하, 목사님 반응이 너무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사실 스베덴보리 흐름으로 보면, 목사님 말씀이 상당 부분 맞습니다. AC.165를 자세히 보면, 가장 완전한 innocence 상태는 오히려 ‘벌거벗음’으로 표현되고, 옷은 innocence가 조금 덜한 상태에서 등장합니다. 즉 옷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이미 어떤 매개와 외적 표현 단계가 들어간 상태입니다.

 

스베덴보리에게서 옷(garments)은 거의 언제나 진리(truth), 특히 외적으로 표현된 진리를 상징합니다. 반면 벌거벗음은 진리가 아직 옷처럼 외적으로 덧입혀지기 이전의 순수한 innocence 상태와 연결됩니다. 그래서 가장 높은 천적 천사들은 때때로 거의 ‘빛 자체’처럼 보이며, innocence 자체가 그들의 보호와 아름다움이 됩니다.

 

반면 선지자들이 본 천사들은 대개 인간에게 전달될 메시지와 계시의 역할을 가진 존재들이었습니다. 즉 이미 진리의 전달과 표현이라는 외적 기능이 강하게 들어간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종종 매우 빛나는 옷을 입고 나타납니다. 다니엘서나 에스겔서, 복음서 변화산 장면 등을 보면, 천사나 주님의 옷이 번개 같고 눈처럼 희다고 표현되는 경우가 많지요. 스베덴보리적으로는 이것이 Divine Truth의 외적 발현을 뜻합니다.

 

그래서 AC.165의 ‘diamond silk’ 같은 표현도 흥미롭습니다. 다이아몬드는 빛을 굴절시키고 반사합니다. 비단은 부드럽고 아름다운 외적 표현입니다. 즉 이것은 단순 패션 묘사가 아니라, innocence 안에서 나오는 진리가 아름답게 표현되는 상태를 뜻합니다.

 

반대로 가장 깊은 innocence 상태는 오히려 ‘아무것도 숨기거나 덧입힐 필요가 없는 상태’입니다. 창2의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였다’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AC.165 흐름에서는, 선지자들에게 나타난 천사들은 매우 높은 천사들이었지만, 그래도 계시 전달이라는 목적상 이미 진리의 옷을 입은 상태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이것도 굉장히 아름다운 구조입니다. innocence가 낮아질수록 반드시 더 추해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innocence가 진리를 통해 아름답게 표현되면서 ‘옷 입은 아름다움’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천국에는 naked innocence의 아름다움도 있고, shining garments의 아름다움도 있습니다. 다만 AC.165는 그 가운데 가장 깊은 중심에는 여전히 innocence 자체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AC.165, 창2:25, innocence를 의미하는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And they were both naked, the man and his wife, and were not ashamed. (창2:25) AC.165 그들이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벌거벗음’(nakedness of wh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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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65, 심화 1, ‘벌거벗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AC.165.심화 1. ‘벌거벗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영들이 자신을 변호하고 무죄함을 증명하려 할 때, 그들은 자신의 innocence를 증언하기 위해 벌거벗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for when spirits wish to 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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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65.심화

 

1. ‘벌거벗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영들이 자신을 변호하고 무죄함을 증명하려 할 때, 그들은 자신의 innocence를 증언하기 위해 벌거벗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for when spirits wish to exculpate themselves and prove their guiltlessness, they present themselves naked in order to testify their innocence. (AC.165)

 

이건... 질문 자체가 참 민망한데요... 혹시 저 벌거벗은 모습으로 나타날 때, 생식기도 함께 나타나나요? 아이고...

 

 

민망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AC를 읽다 보면 실제로 누구나 한 번쯤은 궁금해질 수밖에 없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스베덴보리의 영계 묘사는 종종 너무 구체적이어서, 이런 질문이 자연스럽게 생깁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스베덴보리에게 영들은 완전한 ‘인간 형상’을 가지고 나타납니다. 즉 얼굴만 있는 추상적 존재가 아니라, 몸 전체를 가진 인간 형태로 보입니다. 그래서 원칙적으로는 생식기 역시 포함됩니다. 실제로 스베덴보리는 여러 저작에서 천사들과 영들이 완전한 인간 형상(human form)을 가지고 있으며, 몸의 모든 부분이 상응에 따라 존재한다고 설명합니다.

 

다만 여기서 매우 중요한 것은, 영계에서의 ‘벌거벗음’은 오늘날 인간이 느끼는 육욕적 노출 개념과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입니다. AC.165에서 innocence와 연결되는 ‘벌거벗음’은, 자기 안에 숨김과 위선과 자기 의가 없는 상태를 상징합니다. 즉 영적으로 투명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천국적 상태에서의 nakedness는 수치보다 innocence와 연결됩니다. 이것이 바로 창2 마지막의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였다’와 연결되는 것입니다. 타락 이전 인간은 자기 proprium 중심 의식이 아직 강하게 분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몸 자체를 자기 과시나 육욕 대상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몸 전체가 단순히 생명의 질서와 상응의 표현이었습니다.

 

반면 타락 이후에는 nakedness shame과 연결됩니다. 왜냐하면 이제 인간 안에 자기 사랑과 육욕과 proprium 중심 의식이 강하게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같은 ‘벌거벗음’도 천국에서는 innocence 상징이 되고, 타락 상태에서는 수치와 노출 공포가 됩니다.

 

AC.165에서 영들이 innocence를 증언하기 위해 벌거벗은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말도 같은 맥락입니다. 이것은 ‘나는 숨길 것이 없다’, ‘내 안에 위선적 가림이 없다’, ‘나는 주님 앞에서 투명하다’는 영적 상태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영계에서는 각 사람의 내면 상태가 외적 형상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어떤 영은 아름답고 빛나는 모습으로, 어떤 영은 왜곡되고 추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옷도 단순 천 조각이 아니라, 진리와 상태를 상징합니다. 따라서 벌거벗음 역시 단순 물리적 알몸 개념만으로 읽으면 의미를 놓치게 됩니다. 핵심은 innocence transparency입니다.

 

그러므로 목사님 질문에 아주 직접적으로 답하면, 원칙적으로는 인간 전체 형상이므로 생식기도 포함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늘날 육체적, 성적 시선 안에서의 노출 개념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천국적 innocence 안에서는 그것이 육욕 자극이나 수치 대상으로 경험되지 않고, 단지 완전한 인간 형상의 일부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AC.165, 심화 2, ‘선지자들이 때때로 보았던 천사들의 모습’

AC.165.심화 2. ‘선지자들이 때때로 보았던 천사들의 모습’ 반면에 그만큼의 innocence를 지니지 않은 자들은 단정하고 빛나는 옷을 입고 나타나며, 이는 마치 다이아몬드 비단과 같은 옷으로,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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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65, 창2:25, innocence를 의미하는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And they were both naked, the man and his wife, and were not ashamed. (창2:25) AC.165 그들이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벌거벗음’(nakedness of wh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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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And they were both naked, the man and his wife, and were not ashamed. (2:25)

 

AC.165

 

그들이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벌거벗음(nakedness of which they were not ashamed)innocence를 의미한다는 사실은 뒤에 이어지는 내용으로부터 분명히 증명됩니다. 무결함(integrity)innocence가 떠나자, 그들은 자기들의 벌거벗음을 부끄러워하게 되었고, 그것이 수치스럽게 보였기 때문에 스스로 숨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동일한 사실은 영들의 세계에서 나타나는 표상들로부터도 분명히 드러납니다. 영들이 자신을 변호하고 무죄함을 증명하려 할 때, 그들은 자신의 innocence를 증언하기 위해 벌거벗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특히 천국에 있는 순진한 자들에게서 이 사실이 가장 분명하게 나타나는데, 그들은 innocence의 성질에 따라 화관으로 장식된 벌거벗은 유아들처럼 보입니다. 반면에 그만큼의 innocence를 지니지 않은 자들은 단정하고 빛나는 옷을 입고 나타나며, 이는 마치 다이아몬드 비단과 같은 옷으로, 선지자들이 때때로 보았던 천사들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That the “nakedness of which they were not ashamed” signifies innocence is proved by what follows, for when integrity and innocence departed they were ashamed of their nakedness, and it appeared to them disgraceful, and they therefore hid themselves. The same is evident also from the representations in the world of spirits, for when spirits wish to exculpate themselves and prove their guiltlessness, they present themselves naked in order to testify their innocence. Especially is it evident from the innocent in heaven, who appear as naked infants decorated with garlands according to the nature of their innocence; while those who have not so much innocence are clad in becoming and shining garments (of diamond silk as you might say), as the angels were occasionally seen by the prophets.

 

 

해설

 

AC.165는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창2:25의 표현을 ‘결정적으로 innocence와 동일시’하는 단락입니다. 여기서 스베덴보리는 더 이상 개념적 설명에 머물지 않고, ‘시간의 흐름과 상태의 변화’, 그리고 ‘영계의 실제 표상’을 근거로 제시합니다.

 

먼저, 성경 본문 자체가 그 증거입니다. innocenceintegrity가 떠난 이후, 동일한 ‘벌거벗음’이 갑자기 수치가 됩니다. 즉, 외형이 바뀐 것이 아니라 ‘내적 상태가 바뀐 것’입니다. 이것은 벌거벗음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벌거벗음을 감싸고 있던 innocence 사라졌을 때, 비로소 수치가 발생한다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그러므로 ‘부끄러움’은 죄책감 이전에, ‘자기의 own에 대한 자각이 깨어난 상태’입니다.

 

이 원리는 영들의 세계에서 더욱 직접적으로 확인됩니다. 영들이 자신을 변호하고 무죄함을 보이기 위해 벌거벗은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설명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는 벌거벗음이 수치의 표상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은폐가 없는 상태’, 곧 innocence의 표상이라는 뜻입니다. 자기 방어와 자기 정당화가 필요한 상태에서는 결코 벌거벗을 수 없습니다. 벌거벗음은, 숨길 것이 없다는 내적 상태의 외적 표현입니다.

 

천국의 순진한 자들이 ‘화관을 쓴 벌거벗은 유아’로 보인다는 묘사는, 스베덴보리 특유의 상응 언어가 가장 아름답게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여기서 벌거벗음은 결핍이 아니라 충만이며, 미숙함이 아니라 완전한 신뢰입니다. 화관은 그 innocence의 질과 종류를 나타내며, 모든 innocence가 동일하지 않고, 각기 다른 아름다움을 지닌다는 점을 암시합니다.

 

반면, innocence가 덜한 자들이 입고 있는 ‘빛나는 옷’은 위선이나 가림이 아니라, ‘보호된 선과 진리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옷이 있다는 것이 곧 열등함을 뜻하지는 않지만, 벌거벗음이 허락된 상태는 가장 깊은 innocence의 차원임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선지자들이 본 천사들의 옷 입은 모습은 바로 이 질서에 속합니다.

 

이 단락은 창2의 마지막 장면을 완전히 정리해 줍니다.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말은, 인간이 아직 자기의 own을 자기 생명으로 주장하지 않았고, innocence가 그 모든 것을 감싸고 있던 상태를 가리킵니다. AC.165는 그 상태가 단지 상징적 표현이 아니라, ‘영계의 실제 질서와 완전히 일치하는 상태’임을 보여 주며, 곧이어 등장할 창3의 ‘부끄러움’과 ‘숨음’을 위한 대비를 완성합니다.

 

 

심화

 

1. ‘벌거벗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AC.165, 심화 1, ‘벌거벗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AC.165.심화 1. ‘벌거벗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영들이 자신을 변호하고 무죄함을 증명하려 할 때, 그들은 자신의 innocence를 증언하기 위해 벌거벗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for when spirits wish to 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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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선지자들이 때때로 보았던 천사들의 모습

 

 

AC.165, 심화 2, ‘선지자들이 때때로 보았던 천사들의 모습’

AC.165.심화 2. ‘선지자들이 때때로 보았던 천사들의 모습’ 반면에 그만큼의 innocence를 지니지 않은 자들은 단정하고 빛나는 옷을 입고 나타나며, 이는 마치 다이아몬드 비단과 같은 옷으로,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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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64, 창2:25, ‘charity와 innocence로 선하고 아름답게 보이는 own’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And they were both naked, the man and his wife, and were not ashamed. (창2:25) AC.164 사람의 own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순전히 악이며, 그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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