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3:1-13

 

190. 태고교회의 세 번째 상태, 곧 자신의 본성(own)을, 사랑할 정도로 원했던 태고교회의 상태를 다루는 장입니다. The third state of the most ancient church is treated of, which so desired its own as to love it.

 

※ 즉, 주님으로부터 분리, 독립하고자 하는 열망이 거진 패션(passion, 격정, 욕정)에 이를 정도가 된 것입니다.

 

 

191. 자아 사랑, 즉 그들의 본성 사랑으로 인해 이제 그들은 감각(sense)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게 아니면 아무것도 믿지 않기 시작했는데, 이때 이 감각적인 부분을 ‘뱀’으로, 자아 사랑, 혹은 그들의 본성 사랑을 ‘여자’로, 그리고 합리(合理), 이성(理性)을 ‘남자’로 표현하였습니다. Because from the love of self, that is, their own love, they began to believe nothing that they did not apprehend by the senses, the sensuous part is represented by the “serpent”; the love of self, or their own love, by the “woman”; and the rational by the “man.”

 

※ 즉, 자아 사랑에 이끌린 나머지 이들은 이때부터 육체적 감각들을 가지고 확인할 수 없는 것은 믿지 않기 시작했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뱀은 감각 능력, 여자는 자아 사랑, 그리고 남자는 이성적 판단력에 대한 표현입니다.

 

 

1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And the serpent was more subtle than any wild animal of the field which Jehovah God had made; and he said unto the woman, Yea, hath God said, Ye shall not eat of every tree of the garden? 2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And the woman said unto the serpent, We may eat of the fruit of the tree of the garden; 3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But of the fruit of the tree which is in the midst of the garden, God hath said, Ye shall not eat of it, neither shall ye touch it, lest ye die. 4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And the serpent said unto the woman, Ye shall not surely die. 5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For God doth know that in the day ye eat thereof, then your eyes shall be opened, and ye shall be as God, knowing good and evil. 6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And the woman saw that the tree was good for food, and that it was pleasant to the eyes, and a tree to be desired to give intelligence, and she took of the fruit thereof and did eat, and she gave also to her man [vir] with her, and he did eat.

 

192. 그래서 뱀, 즉, 감각 파트가 여자를 설득하여 주님 신앙 안에 있는 사실들이 과연 그런지를 보게 하는데, 이걸 가리켜 ‘지식의 나무를 먹는 것’이라 하고, 그리고 덩달아 이런 걸 덥석 동의한 남자의 이성을 ‘그도 먹은지라’ 한 것입니다. (1-6절) Hence the “serpent,” or sensuous part, persuaded the woman to inquire into matters pertaining to faith in the Lord in order to see whether they are really so, which is signified by “eating of the tree of knowledge”; and that the rational of man consented is signified by “the man that he did eat” (verses 1–6).

 

※ ‘주님 신앙 안에 있는 사실들’은 신앙에 관한 교리들을 말합니다. 뱀, 즉, 감각들이 여자, 곧 자아 사랑으로 하여금 이 주님 신앙의 교리들을 의심하게 한 겁니다. 이럴 때, 사람의 이성 또한 그 본래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그만 자아 사랑에 휩쓸려 버리고 말게 된 그런 내용입니다.

 

 

7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And the eyes of them both were opened, and they knew that they were naked; and they sewed fig leaves together, and made themselves girdles. 8그들이 그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And they heard the voice of Jehovah God going to itself in the garden in the air of the day; and the man and his wife hid themselves from the face of Jehovah God in the midst of the tree of the garden. 9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And Jehovah God cried unto the man [homo], and said unto him, Where art thou? 10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And he said, I heard thy voice in the garden, and I was afraid, because I was naked; and I hid myself. 11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And he said, Who told thee that thou wast naked? Hast thou eaten of the tree whereof I commanded thee that thou shouldest not eat? 12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And the man said, The woman whom thou gavest to be with me, she gave me of the tree, and I did eat. 13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And Jehovah God said unto the woman, Why hast thou donethis? And the woman said, The serpent beguiled me, and I did eat.

 

193. 그런데 그들은 자기들이 악 가운데 있음을 지각했습니다. ‘눈이 밝아져’와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가 상징하는, 남은 퍼셉션 (7-8절), 그리고 그들이 치마라고 만들어 가렸던 무화과 나뭇잎들 (7절), 부끄럽다고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 것 (8-9절), 뿐만 아니라 그들의 시인과 자백 (10-13절) 등을 볼 때, 그들 안에 아직은 자연적 선이 남아 있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But they perceived that they were in evil; from which remnant of perception, signified by their “eyes being opened,” and by their “hearing the voice of Jehovah” (verses 7–8), and from the fig-leaves of which they made themselves girdles (verse 7), and from their shame or hiding in the midst of the tree of the garden (verses 8–9), as well as from their acknowledgment and confession (verses 10–13), it is evident that natural goodness still remained in them.

 

※ 여기 ‘퍼셉션이 남았다’는 것은 그 흔적이 조금 남은 것이고요, ‘치마’는 그저 아랫도리 가운데만 살짝 가릴 정도인 가리개(loincloth)를 말합니다. 자연적 선이란, 세속적 종류의 선량함을 말합니다.

 

※ 이 상태가 바로 자아 사랑에 빠진 나머지 감각적 삶을 추구, 이성도, 합리도 다 마비된 사람의 실존인 것입니다.

 

 

 

창3:14-19

 

234. 결국은 홍수를 만나게 될 태고교회의 이어지는 상태가 여기 기술됩니다. 그리고 그때 교회는 자기 자신을 끔찍하게 파괴하였기 때문에, 주님은 친히 세상에 오셔서 인류를 구원하시겠다는 예언을 주십니다. The subsequent state of the church down to the flood is here described; and as at that time the church utterly destroyed itself, it is foretold that the Lord would come into the world and save the human race.

 

 

14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And Jehovah God said unto the serpent, Because thou hast done this, thou art cursed above every beast, and above every wild animal of the field; upon thy belly shalt thou go, and dust shalt thou eat all the days of thy life.

 

235. 감각으로 파악이 안 되는 것들은 도무지 믿으려고를 하지 않는 감각 파트, 이게 바로 ‘뱀’인데요, 이런 태도 때문에 저주를 자초했고, 지옥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14절) Being unwilling to believe anything that could not be apprehended by the senses, the sensuous part which is the “serpent” cursed itself, and became infernal. (verse 14)

 

 

15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And I will put enmity between thee and the woman, and between thy seed and her seed; he shall trample upon thy head, and thou shalt bruise his heel.

 

236. 이런 이유로, 온 인류가 지옥을 향하여 달려 들어가게 되는 걸 막기 위해 주님은 친히 세상에 오시겠다 약속하셨습니다. (15절) Therefore to prevent all mankind from rushing into hell, the Lord promised that he would come into the world. (verse 15)

 

 

16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And unto the woman he said, I will greatly multiply thy sorrow and thy conception; in sorrow thou shalt bring forth sons, and thine obedience shall be to thy man [vir], and he shall rule over thee.

 

237. 교회가 ‘여자’라는 표현으로 더 자세히 설명되고 있는데요, 이 교회는 자아(self) 혹은 본성(own)을 너무 사랑해서 더 이상 진리를 파악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비록 이런 상황을 ‘다스리도록’ 이성이 그들에게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16절) The church is further described by the “woman,” which so loved self or the own as to be no longer capable of apprehending truth, although a rational was given them that should “rule”. (verse 16)

 

※ 위 본성(own)은 주님으로부터 분리, 독립하고자 하는 본성(autonomy)을 말합니다.

 

 

17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And unto the man he said, Because thou hast hearkened unto the voice of thy wife, and hast eaten of the tree of which I commanded thee, saying, Thou shalt not eat of it; cursed is the ground for thy sake; in great sorrow shalt thou eat of it all the days of thy life.

 

238. 그 다음은 합리의 퀄러티에 대한 설명입니다. 여기 보면, 남자, 남편(합리)은 동의했고, 저주를 자초하였으며, 결국 지옥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이성은 없고 대신 추론만 남게 되었습니다. (17절) The quality of the rational is then described, in that it consented, and thus cursed itself, and became infernal, so that reason no longer remained, but ratiocination. (verse 17)

 

※ ‘합리의 품질’(the quality of the rational)이란, ‘합리적 능력의 본성’(the nature of this rational capacity)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 추론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왜곡된 논리만 남은 겁니다. 궤변이라고도 하지요.

 

 

18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And the thorn and the thistle shall it bring forth unto thee, and thou shalt eat the herb of the field.

 

239. 저주와 황폐, 그리고 죽음을 초래하는 그들의 본성에 관한 설명입니다. (18절) The curse and vastation are described, and also their ferine nature. (verse 18)

 

※ ‘황폐’로 번역한 영어 베스테이션(vastation)은 현대 영어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표현입니다. 현대 영어로는 루이네이션(ruination, 파괴), 디스트럭션(destruction, 파멸) 정도가 되겠습니다.

 

※ 영어 페린(ferine) 또한 마찬가지로, 지금은 페럴(feral)을 사용하며, 그 뜻은 죽음을 초래하다, 치명적이다입니다. 이 ‘죽음을 초래하는 본성’이란, 그들의 본성이 동물적인 본성, 짐승과도 같은 상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19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In the sweat of thy face shalt thou eat bread, till thou return unto the ground; for out of it wast thou taken; for dust thou art, and unto dust shalt thou return.

 

240. 다음은, 신앙과 사랑의 모든 것을 그들이 아주 극도로 싫어하고 혐오하게 되었음을, 그리고 이런 상태가 됨으로써 그들은 더 이상 사람이라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설명입니다. (19절) Next, their aversion to everything of faith and love; and that thus from being man they became not men. (verse 19)

 

※ ‘사람’이라는 호칭은 본래 오직 주님에게만 사용하던 것이었습니다. 인류에게 처음 나타나신 주님의 모습이 ‘사람’이셨기 때문이며, 그래서 첫 사람들, 곧 아담 교회 사람들, 태고교회 사람들은 감히 이 용어를 자기들에게까지 적용할 수 없었습니다. 자기들을 ‘사람’이라 할 수 있으려면 자기들에게 주님의 성품, 신성, 주님과 닮은 점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이런 점을 생각하면, 이 19절 본문에서 왜 이들이 이제 더 이상은 ‘사람’이라 할 수 없게 되었나가 이해가 될 것입니다.

 

 

241. 태고적 사람들은, 천적 인간들이었는데요, 그들은 다음과 같은 특별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땅 위 온 세상 모든 사물을 실제로 두 눈으로 보면서도, 사실은 그 사물들이 상징하고 표현하는 하늘의 것, 주님의 것들을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The most ancient people, being celestial men, were so constituted that every object they beheld in the world or upon the face of the earth, they indeed saw, but they thought about the heavenly and Divine things the objects signified or represented.

 

그들의 시력은 그저 돕는 도구였을 뿐이었고, 그래서 그 결과는 그들의 말, 언어였습니다. Their sight was merely an instrumental agency, and so consequently was their speech.

 

누구나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이런 걸 알 수 있는데요, 만일 누가 어떤 사람이 하는 말에 깊이 동의가 되면, 그는 실제로 그 말을 듣고 있으면서도 마치 말보다는 말에 담긴 취지만 취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좀 더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심지어 그 말의 뜻보다 보편적인 의미에 더 주의를 기울이기 때문입니다. Anyone may know how this was from his own experience, for if he attends closely to the meaning of a speaker’s words, he does indeed hear the words, but is as if he did not hear them, taking in only the sense; and one who thinks more deeply does not attend even to the sense of the words, but to a more universal sense.

 

※ ‘아, 지금 저 사람이 하고픈 말은 사실은 이거구나...’ 하고 딱 그 의도를 파악하는 것과 같습니다. 앞뒤 무슨 장황한 말을 하더라도 말이지요.

 

그러나 여기서 다루고 있는 이 후손들은 그들의 선조들하고는 달랐습니다. 그들은 땅 위 온 세상 모든 사물을 볼 때, 눈으로 보는 그것을 사랑했고, 그들의 마음은 거기에 사로잡혔으며, 그것들에 대해서 생각했고, 그리고 그것들을 가지고 하늘과 주님의 것들을 생각했습니다. But the posterities that are here treated of were not like their fathers, for when they beheld the objects in the world and on the face of the earth, as they loved them, their minds cleaved to them, and they thought about them, and from them about things heavenly and Divine.

 

그렇게 해서 이들에게는 감각적인 것이 원리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의 선조들에게는 도구였던 것들이 말입니다. Thus with them what is sensuous began to be the principal, and not as with their fathers the instrumental.

 

※ 그저 도구일 뿐이어야 하는 돈이 안타깝게도 원리가 되고, 목적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세상에 속한 것, 땅에 속한 것이 원리가 되면, 사람들은 하늘에 속한 것들을 이 원리를 가지고 추론하며, 그래서 그렇게 자신들을 소경으로 만들어 갑니다. And when that which is of the world and of the earth becomes the principal, then men reason from this about the things of heaven, and so blind themselves.

 

이런 게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것 역시, 각자의 경험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 있으면서 정작 그 말의 뜻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은 그 말에서 건지는 게 거의 없고, 더 나아가 보편적인 의미는 더 말할 것도 없으며, 때로는 사람이 하는 모든 말을 단어 하나 가지고, 심지어 문법적 특이점 하나를 가지고 일일이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How this is may also be known by anyone from his own experience; for he who attends to the words of a speaker, and not to the sense of the words, takes in but little of the sense, and still less of the universal import of the sense, and sometimes judges of all that a man says from a single word, or even from a grammatical peculiarity.

 

 

 

창3:20-24

 

280. 태고(太古) 교회와, 사라진 사람들이 여기서 간략하게 다루어집니다; 즉, 그 교회가 끝났을 때, 결국 홍수로 이어진 그 후손들을 포함한 이야기입니다. The most ancient church, and those who fell away, are here summarily treated of; thus also its posterity down to the flood, when it expired.

 

 

20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And the man [homo] called his wife’s name Eve, because she was the mother of all living.

 

281. 천적(天的, celestial)이었던 태고교회에 관한 것입니다. 이 교회는 주님 신앙의 생명으로 시작한 교회이며, 이 교회를 가리켜 ‘하와’(Eve), ‘모든 산 자의 어머니’라 하였습니다. (20절) Of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was celestial, and from the life of faith in the Lord, called “Eve,” and the “mother of all living.” (verse 20)

 

※ ‘천적이었던 태고교회’란, ‘하늘의 속성을 가졌던 태고 시대 참된 교회’라는 뜻입니다.

 

 

21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And Jehovah God made for the man and for his wife coats of skin, and clothed them.

 

282. 그 첫 번째 후손에 관한 것으로, 그들에게는 천적 영적 선이 있었습니다; 이어 그 두 번째와 세 번째 후손에 관해서는, 그들에게는 자연적 선이 있었고, 그것을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지으신 가죽옷’으로 상징하였습니다. (21절) Of its first posterity, in which there was celestial spiritual good; and of its second and third, in which there was natural good, signified by the “coat of skin which Jehovah God made for the man and his wife.” (verse 21)

 

※ 여기 ‘천적 영적 선’(celestial spiritual good)이란 ‘천적 선의 영적 종류’(a spiritual kind of heavenly good), 즉, 천적 선이 일종의 영적 선으로 나타나는 것을 말합니다. 참고로, 선에는 천적 선, 천적 영적 선, 그리고 자연적 선이 있습니다. 천적 선은 옷을 입지 않으며, 천적 영적 선은 광채 나는 흰옷을, 자연적 선은 가죽옷을 입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자연적 선(natural good)은 세속적 선(earthly good)입니다.

 

 

22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And Jehovah God said, Behold, the man is become as one of us, knowing good and evil; and now lest he put forth his hand, and take also of the tree of lives, and eat, and live to eternity,

 

283. 네 번째 후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거기서 자연적 선이 소멸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만일 그들이 신앙의 천적인 것들 안에서 새롭게 빚어지거나 가르침을 받고자 하였더라면, 그들은 소멸되어 버리고 말았을 텐데요,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 먹고 영생할까 하노라’의 의미가 바로 이런 내용입니다. (22절) Of the fourth posterity, in which natural good began to be dissipated, and which, had they been created anew or instructed in the celestial things of faith, would have perished, which is meant by, “Lest he put forth his hand, and take also of the tree of lives, and eat, and live to eternity.” (verse 22)

 

※ 여기 ‘영생할까 하노라’의 영생은, 지옥에서 영생하는 것, 곧 지옥 같은 상태에 영원히 있게 되는 것입니다. ‘생명 나무 열매도 따 먹고’, 즉, 사랑과 신앙에 관한 것, 다시 말해, 주님에게 속한 것을 가지고 신성모독을 하기 때문인데요, 이 신성모독은 마치 영혼의 코로나 같아서 사람의 영을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신성모독이란 주님의 것에 사람의 사사로움을 섞는 건데요, 이렇게 되면, 사람의 영은 성과 속이 뒤섞여 영원히 그를 천국과 지옥으로 서로 끌어당겨 찢는 듯한 고통, 즉, 지옥과도 같은 고통 가운데 머무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주님은 유대인들에게는 천국의 비밀을 숨기셨습니다. 유대인의 속성상, 그들이 천국의 비밀을 알게 되면, 그들은 반드시 신성모독의 길을 걸을 것이며, 그것은 곧 그들을 영원히 파멸시킬 것임을 미리 아셨기 때문입니다. 알고 시인 후 부인하여 신성모독의 길에 들어서느니 차라리 알고 시인조차 하지 않는 게, 모르는 게 낫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을 사랑하시고 그들에게 맞춰 나름 최대한으로 보호하신 것입니다.

 

 

23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Therefore Jehovah God sent him forth from the garden of Eden, to till the ground from which he was taken.

 

284. 다섯 번째 후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후손에 이르러는 드디어 모든 선과 진리가 박탈되었고, 그리고 거듭남 이전 본래의 상태로 돌아갔습니다.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의 의미가 이런 내용입니다. (23절) Of the fifth posterity, which was deprived of all good and truth, and was reduced to the state in which they had been previous to regeneration, which is meant by his being “sent forth out of the garden of Eden to till the ground from which he was taken.” (verse 23)

 

※ ‘에덴동산’은 주님의 신성, 곧 주님의 선과 진리, 사랑과 신앙, 지혜와 지성을 갖춘 천적 인간, 천인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가 이 모든 것을 박탈했다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 그 아름다웠던 태고교회가, 일곱째 날, 천적 인간, 천인(天人)에까지 이를 수 있었던 그 교회, 그 순결한 주님 신앙의 교회였던 아담교회가 이렇게까지 퇴행, 다시 창1:2 상태인 혼돈과 공허, 흑암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었다는 게 너무나 놀랍습니다.

 

 

24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And he cast out the man; and he made to dwell from the east toward the garden of Eden cherubim, and the flame of a sword turning itself, to keep the way of the tree of lives.

 

285. 여섯 번째, 그리고 일곱 번째 후손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 후손들은 선과 진리에 관한 모든 기억-지식을 박탈당했고, 그들의 본성에는 아주 더러운 사랑들과 신념들만 남았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이들로 말미암아 신앙에 관한 거룩한 것들이 모독을 당할 것이기 때문인데요,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가 상징하는 것이 이런 내용입니다. (24절) Of the sixth and seventh posterities, in that they were deprived of all memory-knowledge of what is good and true, and were left to their own filthy loves and persuasions; this being provided lest they should profane the holy things of faith, which is signified by his being “driven out, and cherubim being made to dwell at the garden, with the flame of a sword, to keep the way of the tree of lives.” (verse 24)

 

※ 여기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는 그에게서 선에 관한 모든 의지와 진리에 관한 모든 이해를 깡그리 박탈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그는 그것들과 분리되었고, 그렇게 ‘사람’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것들을 찾아볼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더 이상 도저히 사람이라고는 할 수가 없는 상태인 것입니다.

 

※ ‘동쪽에 그룹들을 두어’는 무슨 비밀스런 신앙의 일 안으로 못 들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이 표현이 이런 뜻인 것은, ‘에덴동산 동쪽’은 天的인 것이며, 지성은 여기서 나오기 때문이며. ‘그룹’이란, 저런 사람이 신앙의 일들에 들어가는 것을 금하시는 주님의 섭리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 ‘두루 도는 불 칼’은 비정상적인 것들을 원하고, 그 결과 그런 것들로 고착된 자아 사랑입니다. 그는 정말 거룩한 것들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지만, 본능적으로 육체적이고 세속적인 것들에게 끌려 휩쓸려 버리고 맙니다. 이것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즉, 거룩한 것에 대한 신성모독을 금하시는 이유입니다.

 

 

286. 이 장과 앞의 장들, 그리고 지금 보고 있는 이 절들에 이르기까지 다루어지고 있는 것은 태고 시대 사람들과 그들의 거듭남에 관한 내용입니다: 먼저, 들짐승처럼 살았던 사람들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들은 그러나 결국 영적인 사람들이 되었지요; 그다음은, 천적 인간이 된 사람들에 관한 내용입니다. 태고교회를 구성한 사람들이 바로 이들입니다; 그 뒤에, 사라진 사람들과 그들의 자손들, 차례대로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후손들과 홍수 때까지 이른 그들의 계승자들에 관한 내용입니다. This and the preceding chapters, down to the verses now under consideration, treat of the most ancient people and of their regeneration; first, of those who lived like wild animals, but at length became spiritual men; then of those who became celestial men, and constituted the most ancient church; afterwards of those who fell away, and their descendants, in regular order through the first, second, and third posterities and their successors, down to the flood.

이 장을 포함, 이어지는 절들을 통해, 태고교회의 사람이 형성된 때부터 홍수 때까지 이 기간에 일어난 일들에 대한 개요를 만나게 됩니다; 즉, 이것이 앞서 다룬 모든 내용, 곧 창세기 맨 앞 첫 세 장의 결론입니다. In the verses following, which conclude the chapter, we have a recapitulation of what occurred from the period when the man of the most ancient church was formed, until the flood; thus it is a conclusion to all that goes before.

2021-08-31(D3)-매일예배(2179, 아케이나말씀리딩.창3), '선악과, 가죽옷, 에덴동산에서 쫓겨남'.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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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OoGVV0Bi-Pc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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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2:18-25

 

131. 여기서부터는 태고 교회의 후손들 이야기인데, 이들은 선조들과 달리 자신의 오운(own, proprium, 本性)(주3), 자신의 것, 자기 자신을 향해 기울어진 사람들입니다. The posterity of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inclined to their own,(주3) is here treated of.

 

※ 즉, 자기 주도적 삶(a sense of autonomy)을 지독하게 추구하며 산 사람들, 주님에게서 철저하게 독립하고자, 분리하고자 했던, 그래서 실제로 그렇게 된 사람들입니다.

 

 

18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And Jehovah God said, It is not good that the man should be alone, I will make him a help as with him.

 

132. 사람은 주님의 인도를 받으며 살기보다는 혼자 알아서 세상에 기대 살거나 자신의 본성(own)을 따라 사는 걸 더 원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인류에게 허락된 그런 본성을 다루고 있습니다. (18절) Since man is such as not to be content to be led by the Lord, but desires to be led also by himself and the world, or by his own, therefore the own which was granted him is here treated of (verse 18).

 

※ 즉 주님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을 더욱 원하는, 아주 고약한 본성을 가진 존재가 바로 사람입니다. 여기, ‘허락’이라고 번역하였는데, 이것은 ‘마지못해서’에 가까운 뜻입니다. 주님은 아무리 창조주시라 해도 사람의 자율, 자주적인 선택에 개입하실 수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충분한 모든 노력을 다 기울이셨음에도 끝내 사람이 주님이 아닌 지옥을 선택하는 한, 그건 주님도 어쩌실 수가 없으십니다...

 

 

19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And Jehovah God formed out of the ground every beast of the field, and every fowl of the heavens, and brought it to the man to see what he would call it; and whatsoever the man called every living soul, that was the name thereof. 20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And the man gave names to every beast, and to the fowl of the heavens, and to every wild animal of the field; but for the man there was not found a help as with him.

 

133. 그래서 먼저 주님은 그에게 선에 관한 애정들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을 선물로 주십니다. 그러나 사람은 여전히 자기 본성을 향해 기울어지는 가운데 있습니다. (19-20절) And first it is given him to know the affections of good and the knowledges of truth with which he is endowed by the Lord; but still he inclines to his own (verses 19–20).

 

※ 혹시 주님이 주시는 것들, 정말 좋은 것들인데... 이런 것들을 통해 마음을 돌릴까, 주님을 향할까 하신 것이지요. 그러나 이미 육체와 세상 쪽으로 눈이 돌아간 사람은 주님이 주시는 이런 영적, 천적인 것들의 가치를 못 알아봅니다. 말초적이며, 근시안적인 존재들이 된 것입니다.

 

 

21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And Jehovah God caused a deep sleep to fall upon the man, and he slept; and he took one of his ribs, and closed up the flesh in the place thereof. 22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And the rib which Jehovah God had taken from the man, he built into a woman, and brought her to the man. 23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And the man said, This now is bone of my bones, and flesh of my flesh; therefore she shall be called wife, because she was taken out of man [vir].

 

134. 이런 이유로, 사람은 자기 본성(own)의 상태 안으로 깊이 인도되며, 어떤 또 하나의 본성(own)이 그에게 주어지는데, 이것을 여자로 빚어지는 갈빗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21-23절) Wherefore he is let into a state of his own, and an own is given him, which is described by the rib built into a woman (verses 21 to 23).

 

※ ‘자기 본성’은 피조물로서의 고유 본성, 자기 자신을 말합니다.

 

※ 여기 ‘또 하나의 본성’은 주님에게서 독립하고자 하는 본성, 자기 마음대로 살고자 하는 본성을 말합니다. 영어로는 a sense of autonomy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24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Therefore shall a man leave his father and his mother, and shall cleave unto his wife, and they shall be one flesh.

 

135. 천적 생명과 영적 생명이 사람의 본성과 붙어 있게 되고, 그렇게 해서 이 둘은 하나로 보이게 됩니다. (24절) Celestial and spiritual life are adjoined to the man’s own, so that they appear as a one (verse 24).

 

※ ‘남자가 부모를 떠나’, 즉, 속사람으로부터 멀어져 겉이 된 사람, 그러나 주님의 자비로 주님의 천적, 영적 생명이 본인 모르게 입류에 의해 겉, 곧 육과 하나가 됩니다. 마치 리메인스를 차곡차곡 쌓으시는 것처럼 말이지요.

 

 

25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And they were both naked, the man and his wife, and were not ashamed.

 

136. 그리고 주님으로부터 순진함이 이 본성 안으로 스며드는데요, 덕분에 사람은 여전히 주님께 열납될 수 있습니다. (25절) And innocence from the Lord is instilled into this own, so that it still might not be unacceptable (verse 25).

 

※ 저들의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저들이 천진난만하였음을 상징합니다. 주께서 저들이 수용 불능 상태가 되는 걸 막으시려고, 저들의 본성 안으로 그동안 천국의 천진난만함을 늘 공기처럼 공급하신 덕분입니다.

 

 

137. 창세기의 첫 세 장은 대체로 태고교회를 다루고 있습니다. 태고교회의 첫 시기부터 끝에 가서 사라지게 될 때까지, 이 교회는 ‘사람(man, homo)’으로 회자되었는데요, 이 장의 전반부에서는 이 태고교회가 가장 융성했던 상태, 곧 천적 인간이었던 상태를 다루었다면, 이제 여기 후반부에서는 이 교회의 후손과 그들이 주님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로 기울어지게 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The first three chapters of Genesis treat in general of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is called “man” [homo] from its first period to its last, when it perished; the preceding part of this chapter treats of its most flourishing state, when it was a celestial man; here it now treats of those who inclined to their own, and of their posterity.

 

 

※ 각주

 

3. 이 표현에 대한 원전 표현은 라틴어 프로프리움(proprium)입니다. 다른 데서는 ‘오운’(own, 특성, 특징, 특색, 자기 것, 소유)이라는 표현으로 의역되고 있습니다. The Latin word proprium is the term used in the original text that in this and other places has been rendered by the expression “own.” 프로프리우스(propius)의 형용사로서의 사전적 의미는 ‘(남의 것이 아닌) 자기 자신의 (것인)’(one’s own), ‘고유한, 원래의’(proper), ‘개인 소유의’(belonging to one’s self alone), ‘특별한, 특유한, 특수한’(special), ‘독특한, 남다른, 독자적인’(particular), ‘개인적인’(peculiar) 등입니다. The dictionary meaning of propius, as an adjective, is “one’s own,” “proper,” “belonging to one’s self alone,” “special,” “particular,” “peculiar.” 이 말의 중성 표현인 프로프리움이라는 단어는 명사로 사용되면 그 의미가 ‘소유’(possession), ‘특성’(property) 및 ‘특이점’(a peculiarity), ‘특징’(characteristic mark), ‘구별되는 점’(distinguishing sign), ‘특유함’(characteristic) 등입니다. The neuter of this which is the word proprium, when used as a noun means “possession,” “property”; also “a peculiarity,” “characteristic mark,” “distinguishing sign,” “characteristic.” 영어 형용사 ‘오운’(own)에 대한 웹스터의 정의들은 ‘...에 속한’(belonging to), ‘...에 배타적 혹은 특별하게 속한’(belonging exclusively or especially to), ‘특유한, 독특한’(peculiar)인 것을 보면, 이 ‘오운’이야말로 라틴어 프로프리우스에 대한 아주 딱 맞는 말이 아닐 수 없으며, 만일 라틴어 프로프리움에 딱 맞는 명사 하나를 고르는 경우에도 이 ‘오운’ 하나면 최적, 이것이면 라틴 원전에 아주 근접한 번역을 할 수 있습니다. The English adjective “own” is defined by Webster to mean “belonging to,” “belonging exclusively or especially to,” “peculiar”; so that our word “own” is a very exact equivalent of proprius, and if we make it a noun in order to answer to the Latin proprium, we effect a very close translation. [Reviser]

2021-08-30(D2)-매일예배(2178, 아케이나말씀리딩.창2,18-25), '아담과 하와'.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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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29(D1)-제9권35호통418호.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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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세 천국이 있다

There Are Three Heavens

 

 

29. 서로 완전히 다른 세 천국이 있습니다. 가장 내적(inmost) 혹은 세 번째 천국인 삼층천, 중간 혹은 두 번째 천국인 이층천, 그리고 가장 외적 혹은 첫 번째 천국인 일층천입니다. There are three heavens, entirely distinct from each other, an inmost or third, a middle or second, and an outmost or first.

 

이들 세 천국은 그 순서와 서로 간 관계가 마치 가장 높은 부위인 머리, 가운데 부위인 몸, 그리고 가장 낮은 부위인 발로 구성된 사람 또는, 상, 중, 하 삼층으로 된 집과 유사합니다. These have a like order and relation to each other as the highest part of man, or his head, the middle part, or body, and the lowest, or feet; or as the upper, the middle, and the lower stories of a house.

 

주님에게서 발산, 질서대로 내려오는 신성(神性, the Divine)도 같은 순서이며, 결과적으로, 천국도 이 순서를 따르기 위해, 세 개의 층으로 되어 있습니다. In the same order is the Divine that goes forth and descends from the Lord; consequently heaven, from the necessity of order, is threefold.

 

 

30. 사람의 내면, 이는 그의 마음과 기질, 성향에 속하는 건데, 역시 그 순서가 유사합니다. The interiors of man, which belong to his mind and disposition, are also in like order.

 

사람의 내면은 가장 안, 중간, 그리고 가장 바깥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신적 질서의 모든 것을 그 안에 담을 수 있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에, 신적 질서의 형태 그 자체가 되었고, 결과적으로, 천국의 미니어처37가 되었습니다. He has an inmost, a middle, and an outmost part; for when man was created all things of Divine order were brought together in him, so that he became Divine order in form, and consequently a heaven in miniature.37

 

이런 이유로, 또한 사람은 그의 내면과 관련, 천국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며, 사후에는 천사들 가운데 있게 되는데, 그때 그가 어디 있을지는 그가 생전에 받아들인 주님의 신적 선과 진리에 따라 가장 내적 천국의 천사와 함께 하든지, 아니면 중간, 아니면 가장 외적 천국의 천사와 함께 하든지가 결정됩니다. For this reason also man, as regards his interiors, has communication with the heavens and comes after death among the angels, either among those of the inmost, or of the middle, or of the outmost heaven, in accordance with his reception of Divine good and truth from the Lord during his life in the world.

 

 

31. 주님에게서 나와 삼층천 혹은 가장 내적 천국 안으로 수용되는 신성을 일컬어 천적(天的, celestial)이라 하며, 그 결과 그곳 천사들을 천적 천사라 합니다. 주님에게서 나와 이층천 혹은 중간 천국 안으로 수용되는 신성을 일컬어 영적(靈的, spiritual)이라 하며, 그 결과 그곳 천사들을 영적 천사라 합니다. 주님에게서 나와 일층천 혹은 가장 바깥 천국 안으로 수용되는 신성을 일컬어 자연적(自然的, natural)이라 합니다. 그러나 이 경우, 곧 이 천국에서 자연적이라고 하는 것은 세상의 경우와 달리 그 안에 영적인 것과 천적인 것이 들어있기 때문에, 이 천국을 특별히 영적-자연적, 천적-자연적이라 하며, 당연히 그 결과, 이곳 천사들을 영적-자연적, 천적-자연적 천사38라고 합니다. The Divine that flows in from the Lord and is received in the third or inmost heaven is called celestial, and in consequence the angels there are called celestial angels; the Divine that flows in from the Lord and is received in the second or middle heaven is called spiritual, and in consequence the angels there are called spiritual angels; while the Divine that flows in from the Lord and is received in the outmost or first heaven is called natural; but as the natural of that heaven is not like the natural of the world, but has the spiritual and the celestial within it, that heaven is called the spiritual-natural and the celestial-natural, and in consequence the angels there are called spiritual-natural and celestial-natural.38

 

중간 혹은 이층천, 곧 영적 천국의 인플럭스(influx, 入流)를 받는 천사들을 영적-자연적이라 하고, 가장 내적 혹은 삼층천, 곧 천적 천국의 인플럭스를 받는 천사들을 천적-자연적이라 합니다. Those who receive influx from the middle or second heaven, which is the spiritual heaven, are called spiritual-natural; and those who receive influx from the third or inmost heaven, which is the celestial heaven, are called celestial-natural.

 

영적-자연적 천사들과 천적-자연적 천사들은 서로 구별됩니다만 그러나 그들은 같은 레벨에 있기 때문에 한 천국을 이룹니다. The spiritual-natural angels and the celestial-natural angels are distinct from each other; nevertheless they constitute one heaven, because they are in one degree.

 

 

32. 각 천국마다 안과 밖이 있습니다. 안에 있는 천사들을 내적 천사라 하고, 반면 밖에 있는 천사들을 외적 천사라 합니다. In each heaven there is an internal and an external; those in the internal are called there internal angels, while those in the external are called external angels.

 

천국들, 곧 각 천국마다 그 안과 밖의 관계는 마치 사람에게 있어 의지적인 것과 지적인 것 간 관계와도 같습니다. 각 천국의 안은 사람의 의지적인 것에, 밖은 사람의 지적인 것에 말이지요. The internal and the external in the heavens, or in each heaven, hold the same relation as the voluntary and intellectual in man—the internal corresponding to the voluntary, and the external to the intellectual.

 

모든 의지적인 것은 나름 지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어느 하나가 다른 것 없이 존재한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Everything voluntary has its intellectual; one cannot exist without the other.

 

의지적인 것은 일종의 불꽃에, 지적인 것은 거기서 나오는 빛에 비유해도 되겠습니다. The voluntary may be compared to a flame and the intellectual to the light therefrom.

 

 

33. 천사들의 경우, 그들이 어느 천국에 있게 될지를 결정하는 것은 그들의 내면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들의 내면이 주님을 향해 더욱 열려있을수록 그들은 더욱 더 내적 천국에 있기 때문입니다. Let it be clearly understood that with the angels it is the interiors that cause them to be in one heaven or another; for as their interiors are more open to the Lord they are in a more interior heaven.

 

모든 천사와 영 및 사람은 그 내면이 세 단계로 되어 있습니다. There are three degrees of interiors in each angel and spirit, and also in man.

 

세 번째 단계가 열린 사람들은 가장 내적 천국에 있습니다. Those in whom the third degree is opened are in the inmost heaven.

 

두 번째 단계가 열렸거나 단지 첫 번째만 열린 사람들은 각각 중간 천국 및 가장 바깥 천국에 있습니다. Those in whom the second degree is opened, or only the first, are in the middle or in the outmost heaven.

 

내면은 신적 선과 신적 진리를 받아들임으로써 열립니다. The interiors are opened by reception of Divine good and Divine truth.

 

신적 진리에 감동되는 즉시 그것을 생활 가운데 받아들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의지와 그로 인한 행위 가운데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가장 내적 천국인 삼층천에 있으며, 그곳에서도 진리에 대한 애정으로부터 오는 선을 받아들이는 정도에 따라 그들의 자리가 정해집니다. Those who are affected by Divine truths and admit them at once into the life, thus into the will and into action therefrom, are in the inmost or third heaven, and have their place there in accordance with their reception of good from affection for truth.

 

진리를 의지 안으로 즉시 받아들이는 대신 일단 기억을 거쳐 이해력 안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 나중에 그 진리를 의도하고 행하는 것도 이해가 되어야만 하는 사람들은 중간 천국인 이층천에 있습니다. Those who do not admit truths at once into the will but into the memory, and thence into the understanding, and from the understanding will and do them, are in the middle or second heaven.

 

그러나 도덕적으로 살고, 나름 신도 믿고, 그러면서도 배우는 일엔 거의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가장 바깥 천국인 일층천39에 있습니다. But those who live morally and who believe in a Divine, and who care very little about being taught, are in the outmost or first heaven.39

 

이런 사실들로 미루어 분명한 것은, 내면의 상태가 천국을 만들며, 천국은 모든 사람 안에 있고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실 때, 가르치신 것입니다. From this it is clear that the states of the interiors are what make heaven, and that heaven is within everyone, and not outside of him; as the Lord teaches when he says:

 

20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The kingdom of God cometh not with observation, neither shall they say, Lo here, or Lo there; for behold the kingdom of God ye have within you. (눅17:20, 21)

 

 

34. 게다가 모든 완전함은 내적으로는 증가하고, 외적으로는 감소합니다. 내적인 것은 신성에 더 가깝고, 그 자체로 순수하지만, 반면, 외적인 것은 그만큼 더 신성으로부터 멀며, 그 자체로 탁하기40 때문입니다. Furthermore, all perfection increases toward interiors and decreases toward exteriors, since interiors are nearer to the Divine, and are in themselves pure, while exteriors are more remote from the Divine and are in themselves grosser.40

 

지성, 지혜, 사랑 및 모든 선과, 그로 인한 행복 등, 이 모든 것이 천사의 완전함을 이루는 것이며, 이런 것을 떠난 행복은 행복이 아닙니다. 그런 행복은 내적이지 않고 대신 외적이기 때문입니다. Intelligence, wisdom, love, everything good and the resulting happiness, are what constitute angelic perfection; but not happiness apart from these, for such happiness is external and not internal.

 

가장 내적 천국의 천사들은 그 내면이 셋째 단계로 열려있기 때문에, 그들의 완전함, 완벽함이, 그 내면이 둘째 단계로 열린 중간 천국 천사들의 완전함을 측량할 수 없을 만큼 초월합니다. Because in the angels of the inmost heaven the interiors have been opened in the third degree, their perfection immeasurably surpasses the perfection of angels in the middle heaven, whose interiors have been opened in the second degree.

 

이들 중간 천국 천사들의 완전함 또한 같은 식으로, 가장 외적 천국 천사들의 완전함을 그만큼 초월합니다. So the perfection of these angels exceeds in like measure the perfection of angels of the outmost heaven.

 

 

35. 이런 구분 때문에, 어느 한 천국의 천사는 다른 천국 천사들한테 갈 수 없습니다. 즉, 아무도 자기가 있는 천국보다 더 높은 데로 올라갈 수도, 아무도 더 낮은 데로 내려갈 수 없습니다. Because of this distinction an angel of one heaven cannot go among the angels of another heaven, that is, no one can ascend from a lower heaven and no one can descend from a higher heaven.

 

더 낮은 천국에서 올라온 천사는 심지어 괴롭기까지 한 고통에 사로잡히며, 그곳의 천사들을 볼 수도, 심지어 그들과 말을 할 수도 없습니다. 반면, 더 높은 천국에서 내려간 천사는 자기의 모든 지혜를 빼앗기며, 말을 더듬고, 절망에 빠집니다. One ascending from a lower heaven is seized with a distress even to anguish, and is unable to see those who are there, still less to talk with them; while one descending from a higher heaven is deprived of his wisdom, stammers in his speech, and is in despair.

 

천사들의 내면이 천국을 이룬다는 것을 아직 배우지 못한, 가장 바깥 천국 천사들이 몇 있었습니다. 그들은 믿기를, 자기들이 더 높은 천사들이 있는 데로 들어가기만 하면 더 높은 하늘의 행복 가운데 들어가리라 하였습니다. There were some from the outmost heaven who had not yet been taught that the interiors of angels are what constitute heaven, and who believed that they might come into a higher heavenly happiness by simply gaining access to a heaven where higher angels are.

 

그들은 허락을 받아 그런 천사들 가운데로 들어갔습니다. These were permitted to enter among such angels.

 

그러나 정작 그들이 거기 있게 되었을 때, 그들은 아무도 볼 수도, 심지어 찾을 수도 없었습니다. 거기엔 구름같이 많은 천사들이 있었는데도 말이지요. 그들의 내면이 거기 있는 천사들의 내면과 같은 단계로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시야 또한 열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But when they were there they could see no one, however much they searched, although there was a great multitude present; for the interiors of the newcomers not having been opened in the same degree as the interiors of the angels there, their sight was not so opened.

 

곧 그들은 엄청난 심적 고통에 사로잡혀 자기들이 지금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를 정도가 되었습니다. Presently they were seized with such anguish of heart that they scarcely knew whether they were alive or not.

 

그래서 그들은 황급히 자기들이 갔던 그 천국을 탈출, 자기들과 같은 천사들이 있는 곳으로 컴백하여, 다시는 자기들의 생명과 맞지 않는 더 높은 것을 바라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이었습니다. Therefore they hastily betook themselves to the heaven from which they came, glad to get back among their like, and pledging themselves that they would no longer covet higher things than were in agreement with their life.

 

한편, 저는 이번엔 더 높은 천국에서 더 낮은 천국으로 내려간 천사들을 몇 본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혜를 모두 빼앗겨 자신들이 어느 천국에서 왔는지조차 모를 지경이 되었습니다. Again, I have seen some let down from a higher heaven; and these were deprived of their wisdom until they no longer knew what their own heaven was.

 

한편, 종종 주님이 더 낮은 천국 천사들 몇을 들어 올려 더 높은 천국의 영광을 볼 수 있도록 하실 때는 또 사정이 다릅니다. 그럴 때는, 그들은 사전에 미리 준비가 되어 중간 천국 천사들에게 둘러싸여 그들이 방문한 천국 천사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게 됩니다. It is otherwise when, as is often done, angels are raised up by the Lord out of a lower heaven into a higher that they may behold its glory; for then they are prepared beforehand, and are encompassed by intermediate angels, through whom they have communication with those they come among.

 

이 모든 것들로 분명한 사실은, 세 천국은 서로 완전히 다르다, 구분된다는 것입니다. From all this it is plain that the three heavens are entirely distinct from each other.

 

 

36. 그러나 같은 천국에 있는 천사들끼리는 거기 있는 누구와도 교제, 교류가 가능합니다. 다만 그 교제의 기쁨은 그들이 받아들인 선의 연대감, 즉 선의 종류가 비슷할수록 커지며, 이에 대해서는 이어지는 장에서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Those, however, who are in the same heaven can affiliate with any who are there; but the delights of such affiliation are measured by the kinships of good they have come into; of which more will be said in the following chapters.

 

 

37. 천국들이 이렇게 달라서 한 천국 천사가 다른 천국 천사와 교류할 수가 없을 정도지만, 그러나 주님은 모든 천국을 직, 간접 입류(入流, influx)를 통해 하나로 묶으십니다. 하나 되게 하십니다. 직접 입류는 주님에게서 직접 나와 모든 천국으로 흘러드는 것이고, 간접 입류는 한 천국에서 다른 천국으로41, 즉, 순서대로 천국을 거쳐 흘러드는 것입니다. But although the heavens are so distinct that there can be no companionship between the angels of one heaven and the angels of another, still the Lord joins all the heavens together by both direct and mediate influx—direct from himself into all the heavens, and mediate from one heaven into another.41

 

주님은 이렇게 해서 세 천국을 하나로 만드시며,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이 이렇게 연결됩니다. 연결되지 않은 상태로 있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He thus makes the three heavens to be one, and all to be in such connection from the first to the last that nothing unconnected is possible.

 

중간들을 통해 처음 되신 분, 근원 되신 주님과 연결되지 않은 것은 그게 무엇이든 존재 자체를 할 수가 없어 소멸되며,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42 Whatever is not connected through intermediates with the First can have no permanent existence, but is dissipated and becomes nothing.42

 

 

38. 단계라는 것이 어떻게 신적 질서와 관련되는지를 아는 사람만이 어떻게 천국들이 서로 구별되며, 심지어 사람의 내면과 외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Only he who knows how degrees are related to Divine order can comprehend how the heavens are distinct, or even what is meant by the internal and the external man.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적이다, 외적이다라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더 높다, 더 낮다라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무슨 생각이 없습니다. 그게 무슨 더 순수한 것에서 더 탁한 것으로 이어지는 어떤 연속적인 건가 할 것입니다. Most men in the world have no other idea of what is interior and what is exterior, or of what is higher and what is lower, than as something continuous, or coherent by continuity, from purer to grosser.

 

그러나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 사이 관계는 연속적인 게 아니라 불연속적입니다. But the relation of what is interior to what is exterior is discrete, not continuous.

 

단계에는 두 종류, 연속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Degrees are of two kinds, those that are continuous and those that are not.

 

연속적 단계는 마치 밝은 불꽃이 어두워지는 빛의 감소와도 같고, 빛 가운데 있던 사물이 어두운 데로 이동할 때, 우리 시력의 감소와도 같으며, 대기 중 순도가 바닥에서 정상까지 이어지는 그런 것과 같습니다. Continuous degrees are related like the degrees of the waning of a light from its bright blaze to darkness, or like the degrees of the decrease of vision from objects in the light to those in the shade, or like degrees of purity in the atmosphere from bottom to top.

 

이런 단계는 거리에 의해 결정됩니다. These degrees are determined by distance.

 

[2] 한편, 연속적이지 않고 따로따로인 단계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전과 후라든지, 원인과 결과, 그리고 생산자와 생산물 같은 그런 것입니다. On the other hand, degrees that are not continuous, but discrete, are distinguished like prior and posterior, like cause and effect, and like what produces and what is produced.

 

이런 걸 좀 자세히 들여다보는 사람이면 누구나 이 모든 주님 지으신 피조 세계에는 이런 것, 곧 생산과 조성의 단계, 곧 처음에서 두 번째, 두 번째에서 세 번째 등등이 나오는, 그런 단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Whoever looks into the matter will see that in each thing and all things in the whole world, whatever they are, there are such degrees of producing and compounding, that is, from one a second, and from that a third, and so on.

 

[3] 사람이 단계라는 것에 대한 이런 퍼셉션을 스스로 받아들일 때까지는 그는 절대 천국들 사이 차이, 사람의 내적, 외적 역량 간 차이, 그리고 영계와 자연계 간 차이, 사람의 영육 간 차이도 이해 못 합니다. Until one has acquired for himself a perception of these degrees he cannot possibly understand the differences between the heavens, nor between the interior and exterior faculties of man, nor the differences between the spiritual world and the natural world, nor between the spirit of man and his body.

 

그는 또한 상응과 표상의 본성과 근원도, 입류의 본성도 마찬가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So neither can he understand the nature and source of correspondences and representations, or the nature of influx.

 

감각적인 사람들은 이러한 차이들을 이해 못 합니다. 그들은 심지어 이런 단계, 곧 불연속 단계에 관한 것조차 그 증감을 연속이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떤 영적인 것을 그저 단지 더 순수한 자연이라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Sensual men do not apprehend these differences, for they make increase and decrease, even according to these degrees, to be continuous, and are therefore unable to conceive of what is spiritual otherwise than as a purer natural.

 

그 결과 그들은 참된 지성43으로부터 멀리 바깥에 아웃사이더로 있게 되는 것입니다. And in consequence they remain outside of and a great way off from intelligence.43

 

 

39. 끝으로, 지금까지는 단계라는 것을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어서 사람들에게 감추어졌던, 세 천국 천사들에 관한 어떤 아케이나를 이제 알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Finally, a certain arcanum respecting the angels of the three heavens, which has not hitherto come into anyone’s mind, because degrees have not been understood, may be related.

 

모든 천사와 또한 모든 사람에게는 가장 내적인, 가장 높은 단계가 있으며, 이곳으로 주님의 신성이 가장 먼저, 가장 내밀하게 유입되고, 거기서부터 단계적 순서를 따라 그의 다른 내면들이 배열됩니다. In every angel and also in every man there is an inmost or highest degree, or an inmost or highest something, into which the Divine of the Lord primarily or proximately flows, and from which it disposes the other interiors in him that follow in accordance with the degrees of order.

 

이 가장 내적인, 가장 높은 단계를 가리켜 주님이 천사 또는 사람에게 들어가시는 문이라 하며, 그 안에 거하시는 주님만의 처소라 할 수 있습니다. This inmost or highest degree may be called the entrance of the Lord to the angel or man, and his veriest dwelling place in them.

 

사람이 사람인 것은 바로 이 가장 내적인, 가장 높은 단계가 있기 때문이며, 이것 때문에 사람은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것입니다. 동물에게는 이 단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It is by virtue of this inmost or highest that a man is a man, and is distinguished from irrational animals, for these do not have it.

 

이 단계로 인해, 동물과 달리 사람은 마인드와 의식의 내면서이 주님에 의해 주께로 고양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단계가 있기 때문에, 사람은 주님을 믿을 수가 있고, 주님을 향한 사랑으로 감화될 수 있으며, 그 결과 주님을 볼 수 있습니다. 또 지성과 지혜를 받고, 합리적으로 말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From this it is that man, unlike the animals, is capable, in respect to all his interiors which pertain to his mind and disposition, of being raised up by the Lord to himself, of believing in the Lord, of being moved by love to the Lord, and thereby beholding him, and of receiving intelligence and wisdom, and speaking from reason.

 

사람이 영원히 사는 것도 이 단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Also, it is by virtue of this that he lives to eternity.

 

그러나 이 가장 내밀한 곳에 주께서 무엇을 갖추어 두셨고, 공급하시는지는 그 어떤 천사도 감지할 수 없습니다. 이는 천사의 생각과 지혜를 초월하기 때문입니다. But what is arranged and provided by the Lord in this inmost does not distinctly flow into the perception of any angel, because it is above his thought and transcends his wisdom.

 

 

40. 이상이 세 천국에 관한 일반적인 진리들이며, 이어지는 내용들에서 각 천국에 대한 세부사항들을 다루겠습니다. These now are the general truths respecting the three heavens; but in what follows each heaven will be particularly treated of.

 

 

※ 각주

 

37. 신적 질서의 모든 것을 사람 안으로 다 가져오셨고, 그래서 사람은 신적 질서가 사람 형태로 나타난 것입니다. All things of Divine order are brought together in man, and by creation man is Divine order in form (n. 3628, 4219, 4220, 4223, 4523, 4524, 5114, 5168, 6013, 6057, 6605, 6626, 9706, 10156, 10472). 사람 안에는, 천국의 이미지를 따라 지음을 받은 속사람과, 세상 이미지를 따라 지음을 받은 겉사람이 있으며, 그래서 사람을 가리켜 소우주(小宇宙, microcosm)라고 하는 것입니다. In man the internal man was formed after the image of heaven, and the external after the image of the world, and this is why man was called by the ancients a microcosm (n. 3628, 4523, 5115, 6013, 6057, 9279, 9706, 10156, 10472). 그래서 사람은, 그의 내면과 관련, 가장 큰 이미지를 따라 지음 받은 가장 작은 형태의 천국이며, 주님으로 말미암아 그가 새롭게 되거나 거듭나게 될 때가 바로 이런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Thus man in respect to his interiors is by creation a heaven in least form after the image of the greatest; and such also man becomes when he has been created anew or regenerated by the Lord (n. 911, 1900, 1928, 3624–3631, 3634, 3884, 4041, 4279, 4523, 4524, 4625, 6013, 6057, 9279, 9632).

 

38. 세 종류의 천국, 곧 가장 내적, 중간, 그리고 가장 바깥 혹은 삼층천, 이층천, 그리고 일층천이 있습니다. There are three heavens, inmost, middle, and outmost, or third, second, and first (n. 684, 9594, 10270). 그 안의 선들 또한 그런 순서, 곧 삼층으로 된 순서를 따릅니다. Goods therein also follow in triple order (n. 4938, 4939, 9992, 10005, 10017). 가장 내적 혹은 삼층천 천국의 선을 천적, 중간 혹은 이층천 선을 영적, 그리고 가장 외적 혹은 일층천 선을 영적-자연적이라 합니다. The good of the inmost or third heaven is called celestial, the good of the middle or second is called spiritual, and the good of the outmost or first, spiritual-natural (n. 4279, 4286, 4938, 4939, 9992, 10005, 10017, 10068).

 

39. 사람의 생명 단계가 많은 만큼 천국들 또한 그렇게 많으며, 천국들은 사람의 사후, 그의 생명에 따라 열립니다. There are as many degrees of life in man as there are heavens, and these are opened after death in accordance with his life (n. 3747, 9594). 천국은 사람 안에 있습니다. Heaven is in man (n. 3884). 그래서 세상 살 때, 자신 안에 천국을 받은 사람이라야 사후, 천국에 들어갑니다. Therefore he that has received heaven into himself in the world, comes into heaven after death (n. 10717).

 

40. 내적인 것은 신성에 더 가깝기 때문에 더 완전합니다. Interiors are more perfect because nearer to the Divine (n. 3405, 5146, 5147). 외적으로는 그저 하나로 보이는 것이, 내적으로는 수천수만 가지로 보입니다. In the internal there are thousands and thousands of things that appear in the external as one general thing (n. 5707). 사람이 외적인 것에서 올려져 내적인 것으로 향할수록 그는 빛으로 나아가며, 그렇게 지성으로 나아갑니다. 이러한 들림은 마치 뿌연 구름 속에서 나와 밝은 명료함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As far as man is raised from externals toward interiors, so far he comes into light and thus into intelligence; the elevation is like rising out of a cloud into clearness (n. 4598, 6183, 6313).

 

41. 주님에게서 나오는 입류는 주님 자신에게서 직접 나오며, 간접 입류는 한 천국에서 다른 천국으로 흐르며, 그런 식으로 해서 사람의 내면에까지 이릅니다. Influx from the Lord is direct from Himself and also mediate through one heaven into another, and in like manner into man’s interiors (n. 6063, 6307, 6472, 9682, 9683). 주님에게서 나오는 신성의 직접 입류 Direct influx of the Divine from the Lord (n. 6058, 6474–6478, 8717, 8728). 영들의 세계에서 자연계로 흘러드는 간접 입류 Mediate influx through the spiritual world into the natural world (n. 4067, 6982, 6985, 6996).

 

42. 모든 사물은 자기들보다 선행하는 것에서, 곧 처음 난 자, 근원으로부터 존재합니다. 이런 근본, 기본은 일종의 끊임없이 솟아나는 샘 같기 때문인데, 그래서 그 어떤 것도 연결되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All things spring from things prior to themselves, thus from a First, and in like manner subsist, because subsistence is a ceaseless springing forth; therefore nothing unconnected is possible (n. 3626–3628, 3648, 4523, 4524, 6040, 6056).

 

43. 내적인 것들과 외적인 것들은 단계에 따라 연속적인 게 아니고 구분되며, 따로따로입니다, 각 단계에는 어떤 바운드리, 경계가 있습니다. Things interior and things exterior are not continuous but distinct and discrete according to degrees, and each degree has its bounds (n. 3691, 5114, 5145, 8603, 10099). 어떤 하나는 어떤 다른 것으로 말미암아 형성되며, 그렇게 형성된 사물은 무슨 연속적으로 더 순수하고 더 탁하고 한 게 아닙니다. One thing is formed from another, and the things so formed are not continuously purer and grosser (n. 6326, 6465). 이런 단계에 따라 내적인 것, 외적인 것 간 차이를 지각할 때까지는 사람의 속 사람, 겉 사람은 물론, 천국의 안과 밖 같은 게 명료하게 이해될 수 없습니다. Until the difference between what is interior and what is exterior according to such degrees is perceived, neither the internal and external man nor the interior and exterior heavens can be clearly understood (n. 5146, 6465, 10099, 10181).

HH.1.5.29-40, '5장, 세 천국이 있다'.hwp
0.08MB

https://youtu.be/5RH3E2Kyh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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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TWR : Arcana The Word Reading, 아케이나 말씀 리딩

2. 오늘부터 창세기 50장, 출애굽기 40장을 매일 한 장씩 이렇게 읽겠습니다.

 

창1

 

1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s and the earth.

 

6. 육 일, 또는 기간들은, 사람의 거듭남과 관련된 수많은 일련의 상태들인데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습니다. The six days, or periods, which are so many successive states of the regeneration of man, are in general as follows.

 

 

2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And the earth was a void and emptiness, and thick darkness was upon the faces of the deep. And the spirit of God moved upon the faces of the waters. 3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And God said, Let there be light, and there was light. 4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And God saw the light, that it was good; and God distinguished between the light and the darkness. 5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And God called the light day, and the darkness he called night. And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first day.

 

7. 첫 번째 상태는 선행 상태인데, 두 가지, 유아기부터 거듭남 바로 직전까지의 상태를 말합니다. The first state is that which precedes, including both the state from infancy, and that immediately before regeneration.

 

이 상태를 일컬어 ‘혼돈’, ‘공허’, 그리고 ‘흑암’이라 합니다. This is called a “void,” “emptiness,” and “thick darkness.

 

이때 첫 움직임이 있습니다. 바로 주님의 자비인데요,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입니다. And the first motion, which is the Lord’s mercy, is “the spirit of God moving upon the faces of the waters.

 

 

6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And God said, Let there be an expanse in the midst of the waters, and let it distinguish between the waters in the waters. 7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And God made the expanse, and made a distinction between the waters which were under the expanse, and the waters which were above the expanse; and it was so. 8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And God called the expanse heaven. And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second day.

 

8. 두 번째 상태는 주님에게 속한 것들과 사람에게나 어울리는 것들 사이, 하나의 구분이 생기는 때입니다. The second state is when a distinction is made between those things which are of the Lord, and those which are proper to man.

 

주님에게 속한 것들을 이름하여 말씀에서는 ‘리메인스’라 하며, 여기서는 특별히 신앙에 관한 지식들을 말하는데, 이 지식들은 유아기부터 배워 온, 그래서 차곡차곡 쌓인, 그러나 사람이 이 상태에 이를 때까지는 우위를 점하지 않는 것들입니다. The things which are of the Lord are called in the word “remains,” and here are especially knowledges of faith, which have been learned from infancy, and which are stored up, and are not manifested until the man comes into this state.

 

오늘날(1750년대 유럽) 이 상태는 시험이나 불행 혹은 큰 슬픔의 상황 같은 때가 아니면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데요, 사람이 이런 상태가 되면 그는 육신이나 세상, 즉 사람에게나 어울리는 이런 육체에 속한 일들은 마치 죽은 것처럼 휴면상태에 들어갑니다. At the present day this state seldom exists without temptation, misfortune, or sorrow, by which the things of the body and the world, that is, such as are proper to man, are brought into quiescence, and as it were die.

 

그렇게 겉 사람에게 속한 일들이 속 사람에게 속한 일들과 분리가 됩니다. Thus the things which belong to the external man are separated from those which belong to the internal man.

 

이때 속 사람 안에 있는 것들이 바로 '리메인스'이며, 주님이 이때 쓰시려고 지금까지 그 사람 안에 간수해 오신 것입니다. In the internal man are the remains, stored up by the Lord unto this time, and for this use.

 

 

9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And God said, Let the waters under the heaven be gathered together in one place, and let the dry [land] appear; and it was so. 10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And God called the dry [land] earth, and the gathering together of the waters called he seas; and God saw that it was good. 11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And God said, Let the earth bring forth the tender herb, the herb yielding seed, and the fruit tree bearing fruit after its kind, whose seed is in itself, upon the earth; and it was so. 12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And the earth brought forth the tender herb, the herb yielding seed after its kind, and the tree bearing fruit, whose seed was in itself, after its kind; and God saw that it was good. 13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 And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third day.

 

9. 세 번째 상태는 뉘우침의 상태입니다. 이때 사람은 그의 속 사람으로 말미암아 신앙적이고 종교적인 말도 하고, 체어리티(charity, 이웃 사랑, 기부, 자선, 선행)의 일들 같은 선행도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것들은 그 안에 활동할 수 있는 생명력이 없습니다. 그가 이런 일들이 자기한테서 나오는 줄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The third state is that of repentance, in which the man, from his internal man, speaks piously and devoutly, and brings forth goods, like works of charity, but which nevertheless are inanimate, because he thinks they are from himself.

 

이런 선들을 가리켜 ‘’, 그리고 ‘씨 맺는 채소’, 나중에는 ‘열매 맺는 나무’라 합니다. These goods are called the “tender grass,” and also the “herb yielding seed,” and afterwards the “tree bearing fruit.

 

 

14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And God said, Let there be luminaries in the expanse of the heavens, to distinguish between the day and the night; and let them be for signs, and for seasons, and for days, and for years. 15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And let them be for luminaries in the expanse of the heavens, to give light upon the earth; and it was so. 16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And God made two great luminaries, the greater luminary to rule by day, and the lesser luminary to rule by night; and the stars. 17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 And God set them in the expanse of the heavens, to give light upon the earth; 18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시고 빛과 어둠을 나뉘게 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And to rule in the day, and in the night, and to distinguish between the light and the darkness; and God saw that it was good. 19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 And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fourth day.

 

10. 네 번째 상태 때 사람은 애정 어린 사랑의 사람, 조명받은 신앙의 사람이 됩니다. The fourth state is when the man becomes affected with love, and illuminated by faith.

 

그는 앞서 실제로 경건하게 말도 하고 선도 행했지만 그건 그가 땀 흘려 시험을 치루고, 애를 쓴 결과로 그런 것이지, 신앙이나 체어리티로 한 것이 아닙니다. 즉, 겉으로 한 것이었지요. 그러나 이제는 그의 속 사람 안에 신앙과 체어리티라는 불이 켜졌고, 그래서 이를 가리켜 ‘두 큰 광명체’라 하는 것입니다. He indeed previously discoursed piously, and brought forth goods, but he did so in consequence of the temptation and straitness under which he labored, and not from faith and charity; wherefore faith and charity are now enkindled in his internal man, and are called two “luminaries.

 

 

20하나님이 이르시되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And God said, Let the waters cause to creep forth the creeping thing, the living soul; and let fowl fly above the earth upon the faces of the expanse of the heavens. 21하나님이 큰 바다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And God created great whales, and every living soul that creepeth, which the waters caused to creep forth after their kinds, and every winged fowl after its kind; and God saw that it was good. 22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And God blessed them, saying, Be fruitful and multiply, and fill the waters in the seas, and the fowl shall be multiplied in the earth. 23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And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fifth day.

 

11. 다섯 번째 상태 때 사람은 신앙의 말을 하며, 그래서 자기가 지금 진리 안에, 선 안에 있음을 확실히 압니다. 그에게서 나오는 것들은 분명, 활동하는 생명력이 있으며, 그래서 이를 가리켜 ‘바다의 물고기’, 그리고 ‘하늘의 새’라 합니다. The fifth state is when the man discourses from faith, and thereby confirms himself in truth and good: the things then produced by him are animate, and are called the “fish of the sea,” and the “birds of the heavens.

 

 

24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And God said, Let the earth bring forth the living soul after its kind; the beast, and the thing moving itself, and the wild animal of the earth, after its kind; and it was so. 25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And God made the wild animal of the earth after its kind, and the beast after its kind, and everything that creepeth on the ground after its kind; and God saw that it was good. 26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And God said, Let us make man in our image, after our likeness; and let them have dominion over the fish of the sea, and over the fowl of the heavens, and over the beast, and over all the earth, and over every creeping thing that creepeth upon the earth. 27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And God created man in his own image, in the image of God created he him; male and female created he them. 28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And God blessed them, and God said unto them, Be fruitful, and multiply, and replenish the earth, and subdue it; and have dominion over the fish of the sea, and over the fowl of the heavens, and over every living thing that creepeth upon the earth. 29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And God said, Behold, I give you every herb bearing seed which is upon the faces of all the earth, and every tree in which is fruit; the tree yielding seed, to you it shall be for food. 30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And to every wild animal of the earth, and to every fowl of the heavens, and to everything that creepeth upon the earth wherein is a living soul, every green herb for food; and it was so. 31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And God saw everything that he had made, and behold it was very good. And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sixth day.

 

 

12. 여섯 번째 상태 때 사람은 신앙으로, 그리고 그래서 사랑으로 진실을 말하고, 선을 행합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그가 행하는 일들을 가리켜 ‘생물’이라, ‘짐승’이라 합니다. The sixth state is when, from faith, and thence from love, he speaks what is true, and does what is good: the things which he then brings forth are called the “living soul” and the “beast.

 

이렇게 그가 신앙과 사랑, 둘 다를 가지고 즉시 그리고 함께 행하기 때문에, 즉, 사랑과 신앙의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그를 가리켜 영적이라 하며, ‘형상’이라 합니다. And as he then begins to act at once and together from both faith and love, he becomes a spiritual man, who is called an “image.

 

그의 영적 삶은, 신앙의 지식들이 속한, 그리고 체어리티의 일들이 속한 그런 것들, ‘먹을거리’라고 하는, 그런 것들로 밝아지고, 지속되며, 그의 자연적 삶 역시 몸과 감각에 속한 것들로 밝아지고, 지속됩니다. 그래서 둘 사이, 곧 영적 삶과 자연적 삶 사이, 사랑이 우위를 점하여 그가 천적 인간이 될 때까지 전투가 일어납니다. His spiritual life is delighted and sustained by such things as belong to the knowledges of faith, and to works of charity, which are called his “food”; and his natural life is delighted and sustained by those which belong to the body and the senses; whence a combat arises, until love gains the dominion, and he becomes a celestial man.

 

 

13. 거듭남 가운데 있다고 해서 모두가 다 이 상태에까지 도달하는 것은 아닙니다. Those who are being regenerated do not all arrive at this state.

 

오늘날 거의 절대다수가 겨우 첫 번째 상태에, 일부가 겨우 두 번째, 그리고 그렇게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이 여섯 번째 상태까지 이르는 경우는 거의 없고, 일곱 번째 상태까지 도달하는 경우는 그야말로 희귀한 경우입니다. The greatest part, at this day, attain only the first state; some only the second; others the third, fourth, or fifth; few the sixth; and scarcely anyone the seventh.

2021-08-27(D6)-매일예배(2175, ATWR.창1), '창조 첫 육 일, 거듭남의 여섯 상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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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zuLdUAj-B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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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4z8WGVp8d2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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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And Noah begat three sons: Shem, Ham, and Japheth. (창6:10)

 

 

616. ‘세 아들을 낳았으니’는 그 교회에서 일어난 세 종류의 교리, 신학(theology)을 말하며, ‘셈과 함과 야벳이라’가 의미하는 게 바로 그것입니다. Noah begat three sons” signifies that three kinds of doctrine thence arose, which are meant by “Shem, Ham, and Japheth.

 

 

617. 세 아들을 낳았으니 이것은 거기, 곧 노아 교회에서 세 종류의 새 교리, 신학이 일어남에 대한 상징이라는 것은, 앞서 살핀 모든 내용들(AC.337, 339, 402, 468), 곧 이름들은 오직 다양한 교회들, 그리고 같은 말이지만, 교리들, 신학들을 상징할 뿐이라는 내용들을 보면 분명합니다. 여기서도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이름들이 여기 언급되는 이유는 순전히 이전 내용의 연속성 혹은 본문의 문맥 때문인데, 그것은 주님이 예견하신 것으로, 이런 지니어스를 가진 사람들, 곧 타고난 마음이 이렇게 움직이는 사람들은 체어리티, 곧 이웃 사랑이라는 선물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비록 그 가운데서 세 종류의 다른 교리들이 생겨남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이들 세 교리, 곧 신학은 아래 셈, 함 및 야벳을 다루는 데서 주님의 자비, 곧 허락하심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Noah begat three sons. That this signifies that three kinds of doctrine thence arose is evident from all that has been shown before about names signifying nothing else than churches, or, what is the same, doctrines. So it is here; but here they are merely mentioned for the sake of the series or connection with the things that precede, which are, that it was foreseen by the Lord that the man of this genius could be endowed with charity; but yet that three kinds of doctrines would thence have birth, which doctrines, of the Lord’s Divine mercy, shall be described hereafter, where Shem, Ham, and Japheth are treated of.

 

 

618. ‘노아는 의인이요 완전한 자라’,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그리고 본 절, ‘세 아들을 낳았으니’ 모두 과거 시제로 언급되었다는 사실, 이 모두, 아직 미래의 일인데 말이지요.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속뜻이라는 건, 시간, 즉 시제하고는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최초의 언어(the original language, 원어)는 이런 방식을 선호합니다. 거기서는 종종 한 가지 같은 말을 가지고 아무 시제에나 상관없이 사용합니다. 시제에 따라 다른 말을 쓰는 게 아니고요. 그렇게 하면, 그 속뜻, 그 내적인 것들이 더 명료해지기 때문입니다. 언어는 이런 융통성을 그 속뜻으로부터 얻는데요, 그 풍부함이란, 사람들이 믿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것이 바로 왜 시제라든지 혹은 언어 문법의 어떤 엄격함 같은 걸 따지지 않았을까 하는 이유가 되겠습니다. That “Noah was righteous and perfect,” that he “walked with God,” and in this verse that he “begat three sons,” is all said in the past tense, and yet these expressions look to the future. It should be known that the internal sense is such that it has no relation to times; and this the original language favors, where sometimes one and the same word is applicable to any time whatever, without using different words, for by this means interior things appear more evidently. The language derives this from the internal sense, which is more manifold than anyone could believe; and therefore it does not suffer itself to be limited by times and distinctions.

2021-08-23(D2)-매일예배(AC.616-618, 창6,10), '세 아들을 낳았으니'.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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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CeZRKltofW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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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22(D1)-제9권34호통417호.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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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장

천국 안 주님의 신성은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다

In Heaven the Divine of the Lord Is Love to Him and Charity toward the Neighbor

 

 

13. 천국에서는 주님에게서 나오는 신성을 신적 진리라고 하는데요,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The Divine that goes forth from the Lord is called in heaven Divine truth, for a reason that will presently appear.

 

이 신적 진리는 주님에게서, 주님의 신적 사랑에서 나와 천국 안으로 흘러듭니다. This Divine truth flows into heaven from the Lord from his Divine love.

 

신적 사랑과 거기서 나오는 신적 진리는 마치 이 세상 해의 열(불)과 거기서 나오는 빛처럼 서로 연관됩니다. 이때 사랑은 해의 열(불)을,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진리는 해의 빛에 각각 상응합니다. The Divine love and the Divine truth therefrom are related to each other as the fire of the sun and the light therefrom in the world, love resembling the fire of the sun and truth therefrom light from the sun.

 

더 나아가 상응에 의해, 불은 사랑을, 빛은 사랑에서 나오는 진리를 각각 상징합니다.(주19) Moreover, by correspondence fire signifies love, and light truth going forth from love.(주19)

 

이런 사실로. 이제 주님의 신적 사랑에서 나오는 신적 진리라는 게 무엇인지가 명확해지는데요, 그것은 본질적으로, 신적 진리와 결합한 신적 선이며, 그 결합을 통해 천국의 모든 것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봄과 여름, 세상 해의 열이 빛과 결합(융합)하여 지상 만물을 열매 맺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From this it is clear what the Divine truth that goes forth from the Lord’s Divine love is—that in its essence it is Divine good joined to Divine truth, and being so conjoined it vivifies all things of heaven; just as in the world when the sun’s heat is joined to light it makes all things of the earth fruitful, which takes place in spring and summer.

 

반면, 열이 빛과 융합하지 않으면, 즉 차가운 빛이 되면, 그때는 만물이 쇠잔하여 죽게 됩니다. It is otherwise when the heat is not joined with the light, that is, when the light is cold; then all things become torpid and lie dead.

 

천사들에게 있어서, 열에 비유되는 이 신적 선은 사랑의 선입니다. 그리고 빛에 비유되는 신적 진리는 일종의 그릇, 용기(用器)인데, 사랑의 선이 그 안에 담겨 밖으로 나오는 용기입니다. 선을 실어나르는 일종의 캐리어이지요. With the angels this Divine good, which is compared to heat, is the good of love; and Divine truth, which is compared to light, is that through which and out of which good of love comes.

 

 

14. 천국에 충만한, 천국을 이루는 신성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영적 결합(력)이기 때문입니다. The Divine in heaven which makes heaven is love, because love is spiritual conjunction.

 

사랑으로 천사들은 주님과 결합하며, 또 서로 결합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결합한 천사들이 주님의 시야로는 모두 다 하나로 보입니다. It conjoins angels to the Lord and conjoins them to one another, so conjoining them that in the Lord’s sight they are all as one.

 

게다가 사랑은 모든 사람의 생명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천사들과 사람들 모두 사랑에서 생명을 얻습니다. Moreover, love is the very being [esse] of everyone’s life; consequently from love both angels and men have life.

 

생각이 깊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 사람의 가장 내적 활력은 바로 사랑에서 온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있으면 사람은 따뜻해지지만, 사랑이 없으면 차가워지며, 완전히 빼앗기면 그때는 죽기 때문입니다.(주20) Everyone who reflects can know that the inmost vitality of man is from love, since he grows warm from the presence of love and cold from its absence, and when deprived of it he dies.(주20)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사람은 자기가 가진 사랑의 퀄러티에 따라 자기가 가진 생명의 퀄러티가 결정된다는 사실입니다. But it is to be remembered that the quality of his love is what determines the quality of each one’s life.

 

 

15. 천국에는 두 종류의 구별되는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는 주님 사랑(love to the Lord)이고, 다른 하나는 이웃 사랑(charity toward the neighbor)입니다. 가장 내적 천국, 곧 삼층천은 주님 사랑의 천국, 이층천, 곧 중간 천국은 이웃 사랑의 천국입니다. In heaven there are two distinct loves, love to the Lord and love toward the neighbor, in the inmost or third heaven love to the Lord, in the second or middle heaven love toward the neighbor.

 

이 두 사랑은 둘 다 주님에게서 나와 둘 다 천국을 이룹니다. They both go forth from the Lord, and they both make heaven.

 

이 두 사랑이 어떻게 다르며, 어떻게 서로 연결되는지는 천국에서는 밝은 빛 가운데 보이는데, 이 세상에서는 흐릿하기만 합니다. How these two loves are distinct and how they are conjoined is seen in heaven in clear light, but in the world only obscurely.

 

천국에서는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주님을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에게서 오는 선을 사랑하는 것이며, 선을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으로 선을 의도하고 행하는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 역시 이웃을 개인적 친구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서 나오는 진리를 사랑하는 것이며, 진리를 사랑한다는 것은 진리를 의도하고 행하는 것입니다. In heaven loving the Lord does not mean loving him in respect to his person, but it means loving the good that is from him; and to love good is to will and do good from love; and to love the neighbor does not mean loving a companion in respect to his person, but loving the truth that is from the Word; and to love truth is to will and do it.

 

이들 두 사랑이 선과 진리가 구별되듯 구별되며, 선과 진리가 결합하듯 서로 결합한다는 사실을 이것으로 명료하게 알 수 있습니다.(주21) This makes clear that these two loves are distinct as good and truth are distinct, and that they are conjoined as good is conjoined with truth.(주21)

 

그러나 이런 사실은, 먼저 사랑이라는 게 무엇인지, 선이라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이웃이라는 게 무엇인지를 알지 않고서는 이해조차 어려울 수 있습니다.(주22) But this can scarcely be comprehended by men unless it is known what love is, what good is, and what the neighbor is.(주22)

 

 

16. 저는 이 문제에 관해 천사들과 거듭 대화를 나눴습니다. I have repeatedly talked with angels about this matter.

 

그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말하길,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선과 진리를 사랑하고, 마음으로 행하는 것임을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이 알아야만 하는 것은, 사랑이란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의도하고 행하는 것임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며, 바로 이것이 서로를 하나 되게 하는 것입니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은 그 자체로 사랑이 아닙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꼭 알아야 하는 또 한 가지 사실은, 주님으로 말미암는 선은 주님을 닮았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이 그 안에 계시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이 선과 진리를 의도하고 행하여 자기의 삶이 되게 한 사람들은 주님을 닮으며, 주님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라고 말이지요. They were astonished, they said, that men of the church do not know that to love the Lord and to love the neighbor is to love what is good and true, and to do this from the will, when they ought to know that one evinces love by willing and doing what another wishes, and it is this that brings reciprocal love and conjunction, and not loving another without doing what he wishes, which in itself is not loving; also that men should know that the good that goes forth from the Lord is a likeness of him, since he is in it; and that those who make good and truth to belong to their life by willing them and doing them become likenesses of the Lord and are conjoined to him.

 

의도함이란 행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Willing is loving to do.

 

이것이 바로 주님이 말씀 가운데 그토록 가르치고자 하신 것입니다. 말씀하시길, That this is so the Lord teaches in the Word, saying,

 

21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23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He that hath My commandments and doeth them, he it is that loveth Me; and I will love him and will make My abode with him. (요14:21, 23)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If ye do My commandments ye shall abide in My love. (요15:10)

 

 

17. 천국에서의 제 모든 경험이 증명하는 사실은, 주님에게서 나오는 신성과, 천사들을 감동하고 천국을 이루는 것은 바로 사랑이라는 사실입니다. 천국 모든 구성원들은 사랑과 체어리티의 형상이며, 그들의 얼굴과 말과 생명 모든 구석구석에서 나오는 눈부신 사랑 가운데 그들은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답습니다.(주23) All experience in heaven attests that the Divine that goes forth from the Lord and that affects angels and makes heaven is love; for all who are in heaven are forms of love and charity, and appear in ineffable beauty, with love shining forth from their faces, and from their speech and from every particular of their life.(주23)

 

게다가 모든 천사와 영들은 자기에게서 나와 자기를 둘러싸는 생명의 영적 구체(球體, sphere) 아우라가 있는데, 이것으로 그들의 사랑에 대한 애정의 퀄러티를 알 수 있으며, 때때로 아주 먼 데까지 그 아우라가 미치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Moreover, there are spiritual spheres of life emanating from and surrounding every angel and every spirit, by which their quality in respect to the affections of their love is known, sometimes at a great distance.

 

각자 자신의 애정과 그에 따른 사고의 생명, 혹은 사랑과 그에 따른 신앙의 생명에서 이들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기 때문입니다. For with everyone these spheres flow forth from the life of his affection and consequent thought, or from the life of his love and consequent faith.

 

천사들에게서 발산되는 아우라는 너무나 사랑으로 충만하여 함께 한 사람들의 생명 가장 내적인 곳까지 감동을 줍니다. The spheres that go forth from angels are so full of love as to affect the inmosts of life of those who are with them.

 

저도 여러 차례 이런 걸 지각했고, 그렇게 감동을 받았습니다.(주24) They have repeatedly been perceived by me and have thus affected me.(주24)

 

천사들이 자기들의 생명을 사랑에서 얻는다는 사실은 다음과 같은 사실로 더욱 확실히 알 수 있는데요, 저 세상 삶에서는 모두가 자신의 사랑을 따라 몸을 돌린다는 사실입니다. 즉,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주님을 향하여 돌아서는 반면, 자아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주님에게서 등을 돌린다는 사실입니다. That it is love from which angels have their life is further evident from the fact that in the other life everyone turns himself in accordance with his love—those who are in love to the Lord and in love toward the neighbor turning themselves always to the Lord, while those who are in love of self turn themselves always away from the Lord.

 

그들이 몸을 임의로 돌려도 결국 이렇게 됩니다. 이것은 저 세상 삶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공간이라는 게 자신의 내면의 상태와 일치하기 때문이며, 마찬가지로 방위 역시 이 세상과는 달리 그들의 얼굴 방향과 일치하도록 정해지기 때문입니다. This is so, however their bodies may turn, since with those in the other life spaces conform to the states of their interiors, likewise quarters, which are not constant as they are in this world, but are determined in accordance with the direction of their faces.

 

그러나 그들을 주님을 향해 돌아서게 하는 것은 천사들 자신이 아닙니다. 주님이 주님의 일 행하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주님 자신을 향해 돌아서게 하시는 것입니다.(주25) And yet it is not the angels that turn themselves to the Lord; but the Lord turns to himself those that love to do the things that are from him.(주25)

 

이 주제에 관해서는 나중에, 저 세상 삶의 방위를 다룰 때 말씀드리겠습니다. But more on this subject hereafter, where the quarters in the other life are treated of.

 

 

18. 천국 주님의 신성은 사랑입니다. 그 이유는, 사랑이 천국의 모든 것, 곧 평화, 지성, 지혜 및 행복을 담는 그릇이요, 수용체이기 때문입니다. The Divine of the Lord in heaven is love, for the reason that love is receptive of all things of heaven, such as peace, intelligence, wisdom and happiness.

 

사랑은 자기 자신과 조화되는 것은 무엇이든 전부 받아들입니다. 사랑은 이들을 갈망하고, 찾고, 자연스럽게 들이킵니다. 이 모든 것에 의해 풍요롭고 완벽해지기를 끊임없이 원하기 때문이지요.(주26) For love is receptive of each and all things that are in harmony with it; it longs for them, seeks them, and drinks them in as it were spontaneously, for it desires unceasingly to be enriched and perfected by them.(주26)

 

이것은 너무도 잘 아는 사실인데요. 사랑은 마치 사람의 기억 창고를 뒤지듯 찾아 자기와 조화되는 모든 것을 꺼내 자기 안에 그리고 자기 아래 모아놓고 정돈합니다. 자기 ‘’에 두어 그것들이 자기 것이 될 수 있게 하고, 자기 ‘아래’ 두어 자기의 종이 될 수 있게 말이지요. 그러나 자기와 조화되지 않는 것들은 버리고, 내보냅니다. This, too, man well knows, for with him love searches as it were the stores of his memory and draws forth all things that are in accord with itself, collecting and arranging them in and under itself—in itself that they may be its own, and under itself that they may be its servants; but other things not in accord with it, it discards and expels.

 

사랑에는 자기와 조화되는 진리를 받아들이는 모든 능력과, 진리와 결합하려는 갈망이 있음을 다음과 같은 사실을 보고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 살 때, 단순했던 어떤 사람들이 천국으로 올려졌는데, 그들이 천사들과 함께 지내게 되자 천사들의 지혜와 천국의 모든 복이 그들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은 선하고 진실한 것들을 오직 그것이 선하고 진실하기 때문에 사랑했는데, 그런 이유로 그것이 그들의 생명에 심겼고, 거기 천국에 있는 모든 형언할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들이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That there is present in love every capacity for receiving truths in harmony with itself, and a longing to conjoin them to itself, has been made clear also by the fact that some who were simple-minded in the world were taken up into heaven, and yet when they were with the angels they came into angelic wisdom and heavenly blessedness, and for the reason that they had loved what is good and true for its own sake, and had implanted it in their life, and had thereby become capacities for receiving heaven with all that is ineffable there.

 

그러나 자기와 세상을 사랑했던 사람들은 선하고 진실한 것을 받을 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그들은 천국을 혐오하고 거부하며, 천국 입구, 천국의 흐름이 닿자마자 뛰쳐나와 자기와 같은 애정 안에 있는 지옥의 영들과 합류합니다. But those who are in love of self and of the world have no capacity for receiving what is good and true; they loathe and reject it, and at its first touch and entrance they flee and associate themselves with those in hell who are in loves like their own.

 

천국적 사랑에 이런 능력이 있음을 믿기 어려워하며, 직접 알아보고 싶어 하는 영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천국 사랑의 상태에 잠시 머물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아 천국에 저항하는 요소들이 일시 잠재워진 다음, 천사들이 있는 천국에 있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그들은 제게 말하기를, 자기들은 말로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내적 행복들을 지각한다고 말이지요.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있던 이전 상태로 곧 돌아가야만 한다는 사실에 무척 슬퍼했습니다. There were spirits who had doubts about there being such capacities in heavenly love, and who wished to know whether it were true; whereupon they were let into a state of heavenly love, whatever opposed being for the time removed, and were brought forward some distance, where there was an angelic heaven, and from it they talked with me, saying that they perceived a more interior happiness than they could possibly express in words, and they lamented greatly that they must return into their former state.

 

또 다른 영들도 천국에 올라갔었는데, 더 높이, 더 내적으로 들어갈수록 그들은 총명과 지혜가 더해져서 전에는 결코 알 수 없었던 것들을 알 수 있었습니다. Others also were taken up into heaven; and the higher or more interiorly they were exalted the more of intelligence and wisdom were they admitted into, such as enabled them to perceive what had before been incomprehensible to them.

 

이런 사실로 보아 분명한 것은, 주님에게서 나오는 사랑은 천국과 그 안 모든 것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이요 수용체라는 사실입니다. From this it is clear that the love that goes forth from the Lord is receptive of heaven and all things therein.

 

 

19.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 안에는 모든 신적 진리가 들어 있다는 것을 주님 자신 친히 이 두 사랑에 대해 하신 말씀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That love to the Lord and love toward the neighbor include in themselves all Divine truths is made evident by what the Lord himself said of these two loves:

 

37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Thou shalt love thy God with all thy heart and with all thy soul. This is the greatest and first commandment. And the second, like unto it, is, Thou shalt love thy neighbor as thyself. On these two commandments hang the law and the prophets. (마22:37-40)

 

율법과 선지자’는 말씀 전체, 곧 모든 신적 진리입니다. The law and the prophets” are the whole Word, thus all Divine truth.

 

※ 각주

19. 말씀에서 ‘’은 천국적 사랑과 지옥적 사랑을 상징합니다. In the Word “fire” signifies heavenly love and infernal love (n. 934, 4906, 5215). 거룩한 하늘의 불’은 신적 사랑과 그 사랑에 속한 모든 애정을 상징합니다. Holy and heavenly fire” signifies Divine love, and every affection that belongs to that love (n. 934, 6314, 6832). 불에서 나오는 ‘’은 사랑의 선에서 나오는 진리를 상징합니다. 천국에 충만한 빛은 신적 진리를 상징합니다. Light” from fire signifies truth going forth from good of love; and light in heaven signifies Divine truth (n. 3195, 3485, 3636, 3643, 3993, 4302, 4413, 4415, 9548, 9684).

 

20. 사랑은 생명의 불이며, 생명 자체가 실제로 사랑에서 나옵니다. Love is the fire of life, and life itself is actually therefrom (n. 4906, 5071, 6032, 6314).

 

21. 주님 사랑, 이웃 사랑은 주님의 명령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To love the Lord and the neighbor is to live according to the Lord’s commandments. (n. 10143, 10153, 10310, 10578, 10648)

 

22.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이웃을 한 개인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안에 있는 주님의 것인 진리와 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To love the neighbor is not to love the person, but to love that in him from which he is what he is, that is, his truth and good. (n. 5028, 10336) 사람을 사랑하지, 그 사람 안에 있는 주님의 것을 사랑하지는 않는 사람들은 악과 선을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Those who love the person, and not that in him from which he is what he is, love evil and good alike. (n. 3820) 체어리티(Charity, 이웃 사랑, 자선, 기부, 인애...)는 진리를 위하여 진리를 의도하고, 진리로 감동되어 진리에 대한 애정을 갖는 것입니다. Charity is willing truths and being affected by truths for the sake of truths. (n. 3876, 3877) 이웃을 향한 체어리티는 모든 일과 모든 역할, 쓰임새 가운데 선, 정의 및 의로운 것을 행하는 것입니다. Charity toward the neighbor is doing what is good, just, and right, in every work and in every function. (n. 8120–8122)

 

23. 천사들은 사랑과 체어리티의 형상입니다. Angels are forms of love and charity. (n. 3804, 4735, 4797, 4985, 5199, 5530, 9879, 10177)

 

24. 영적 구체(球體, sphere)는 생명의 구체인데, 모든 사랑, 영, 천사에게서 흘러넘치고 뿜어져 나와 그들 자신을 에워쌉니다. A spiritual sphere, which is a sphere of the life, overflows and pours forth from every man, spirit, and angel, and encompasses them (n. 4464, 5179, 7454, 8630). 이것은 그들의 애정과 그에 따른 사고의 생명에서 나옵니다. It flows from the life of their affection and consequent thought (n. 2489, 4464, 6206).

 

25. 영들과 천사들은 끊임없이 자기들이 사랑하는 대상을 향해 돌아섭니다. 천국에 있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주님을 향해 돌아섭니다. Spirits and angels turn themselves constantly to their loves, and those in the heavens turn themselves constantly to the Lord (n. 10130, 10189, 10420, 10702). 저 세상 방위는 자신의 얼굴 방향에 따라 제각각이며, 그렇게 정해집니다. 이 세상 방위하고는 다릅니다. Quarters in the other life are to each one in accordance with the direction of his face, and are thereby determined, otherwise than in the world (n. 10130, 10189, 10420, 10702).

 

26. 셀 수 없는 것들이 사랑 안에 담깁니다. 사랑은 자기와 조화를 이루는 모든 것을 자기 자신한테로 모읍니다. Innumerable things are contained in love, and love gathers to itself all things that are in harmony with it (n. 2500, 2572, 3078, 3189, 6323, 7490, 7750).

HH.1.3.13-19, '3장, 천국 안 주님의 신성은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다'.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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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lRwCMNTikg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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