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천국은 두 나라로 나누어져 있다

Heaven Is Divided into Two Kingdoms

 

 

20. 천국에는 무한한 다양성이 있기 때문에, 그리고 어느 한 소사이어티(society, 공동체), 어느 한 천사도 서로 정확히 똑같지 않기 때문에 (주27), 천국은 일반적, 종류별, 그리고 세부적 구분들이 있습니다. As there are infinite varieties in heaven, and no one society nor any one angel is exactly like any other, (주27) there are in heaven general, specific, and particular divisions.

 

※ 위 종류별, 세부적에 대한 표현은 각각 specific, particular로, 뜻이 살짝 다르지만, 실제 내용에 대한 우리말 표현은 이 번역이 더 어울려 김은경 역을 그대로 사용합니다.

 

일반적으로는 두 나라(kingdom, 왕국)로, 종류별로는 세 천국, 그리고 세부적으로는 무수히 많은 소사이어티들로 구분됩니다. The general division is into two kingdoms, the specific into three heavens, and the particular into innumerable societies.

 

※ 소사이어티(society)에 대한 현대적 번역은 ‘공동체’이지만 원전에 충실하기 위해, 그리고 그 뉘앙스가 살짝 달라, 체어러티(charity, 이웃 사랑, 인애, 자선, 기부 등)처럼 영어에 대한 한글 표기 그대로 사용하겠습니다. 이렇게 영어를 한글로 표기하는 것이 종종 있는데요, 어펙션(affection, 애정, 애착, 정서, 정동 등) 역시 그렇습니다. 그 이유는, 영어에 대한 한국어 뜻이 여러 개여서 어느 하나로 정할 경우, 다른 나머지 뉘앙스들을 다 잃기 때문입니다.

 

이들 각각에 대해서는 이어지는 내용에서 다루게 됩니다. Each of these will be treated of in what follows.

 

일반적으로는 나라로 구분하는데, 천국을 ‘하나님의 나라’라 하기 때문입니다. The general division is said to be into kingdoms, because heaven is called “the kingdom of God.

 

 

21. 주님에게서 나오는 신성(神性, the Divine)을 내적으로 더 받는 천사들이 있고, 덜 받는 천사들이 있습니다. 전자를 천적 천사들이라, 후자를 영적 천사들이라 합니다. There are angels that receive more interiorly the Divine that goes forth from the Lord, and others that receive it less interiorly; the former are called celestial angels, and the latter spiritual angels.

 

이런 차이로, 천국을 두 나라로 나누어져 있다 하며, 하나를 천적 나라, 다른 쪽을 영적 나라라 합니다.(주28 ) Because of this difference heaven is divided into two kingdoms, one called the celestial kingdom, the other the spiritual kingdom.(주28)

 

 

22. 천적 나라를 구성하는 천사들은 주님의 신성을 더 내적으로 받기 때문에, 그들을 가리켜 더 내적인 천사, 더 높은 천사라 합니다. 같은 이유로, 그들로 구성되는 천국을 더 내적 천국, 더 높은 천국이라 합니다.(주29) As the angels that constitute the celestial kingdom receive the Divine of the Lord more interiorly they are called interior and also higher angels; and for the same reason the heavens that they constitute are called interior and higher heavens.(주29)

 

그들을 일컬어 더 높다, 더 낮다 하는 이유는, 이런 표현들을 써서 내적인 것, 외적인 것을 지정하기 때문입니다.(주30) They are called higher and lower, because these terms designate what is interior and what is exterior.(주30)

 

 

23. 천적 나라에 있는 사람들의 사랑을 천적 사랑, 영적 나라에 있는 사람들의 사랑을 영적 사랑이라 합니다. The love in which those are who are in the celestial kingdom is called celestial love, and the love in which those are who are in the spiritual kingdom is called spiritual love.

 

천적 사랑은 주님을 향한 사랑이며, 영적 사랑은 이웃을 향한 사랑입니다. Celestial love is love to the Lord, and spiritual love is love toward the neighbor.

 

모든 선은 사랑과 어울리기 때문에 (어떤 사람에게 선이란 그가 사랑하는 것이므로), 또한 한 나라의 선을 가리켜 천적 선이라, 다른 나라의 선은 영적 선이라고 합니다. And as all good pertains to love (for good to anyone is what he loves) the good also of the one kingdom is called celestial, and the good of the other spiritual.

 

그래서 두 나라는 주님 사랑의 선이 이웃 사랑의 선과 구별되듯 그렇게 서로 확실히 구별됩니다.(주31) Evidently, then, the two kingdoms are distinguished from each other in the same way as good of love to the Lord is distinguished from good of love toward the neighbor.(주31)

 

그리고 주님 사랑의 선은 내적 선이요, 그 사랑은 내적 사랑이기 때문에, 천적 천사들은 내적 천사들이며, 천적 천사들을 가리켜 더 높은 천사들이라고 합니다. And as the good of love to the Lord is an interior good, and that love is interior love, so the celestial angels are interior angels, and are called higher angels.

 

 

24. 천적 나라를 또한 주님의 성직(聖職, priestly)의 나라라 하며, 말씀에서는 ‘그의 처소’라 합니다. 한편, 영적 나라는 주님의 왕권(王權, royal)의 나라라 하며, 말씀에서는 ‘그의 보좌’라 합니다. The celestial kingdom is called also the Lord’s priestly kingdom, and in the Word “his dwelling place”; while the spiritual kingdom is called his royal kingdom, and in the Word “his throne.

 

이 세상에 계실 때의 주님을 신성의 천적 측면에서 ‘예수’라, 영적 측면에서 ‘그리스도’라 하였습니다. And from the celestial Divine the Lord in the world was called “Jesus,” while from the spiritual Divine he was called “Christ.

 

 

25. 주님의 천적 나라 천사들은 주님의 신성을 보다 더 내적으로 받기 때문에, 주님의 영적 나라 천사들보다 지혜와 영광에 있어 훨씬 더 뛰어납니다. 그들은 주님 사랑 안에 있으며, 그 결과 주님과 더 가깝고, 주님과 더 친밀하게 결합하기 때문입니다.(주32) The angels in the Lord’s celestial kingdom, from their more interior reception of the Divine of the Lord, far excel in wisdom and glory the angels that are in his spiritual kingdom; for they are in love to the Lord, and consequently are nearer and more closely conjoined to him.(주32)

 

이들은 신적 진리를 그들의 생명(또는 생활, 삶, life) 안으로 즉시 받아들이고, 또 지속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영적 천사들처럼 먼저 기억과 사고 안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고 말입니다. These angels are such because they have received and continue to receive Divine truths at once in their life, and not first in memory and thought, as the spiritual angels do.

 

결과적으로, 천적 천사들은 신적 진리가 자기들 마음에 기록되어 있어 지각, 직관하며, 그것을 마치 자기들 안에 있는 것처럼 봅니다. 그들은 신적 진리를 그것이 참인지 아닌지 추론하지도 않습니다.(주33) 아래 예레미야의 말씀은 이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Consequently they have Divine truths written in their hearts, and they perceive them, and as it were see them in themselves; nor do they ever reason about them whether they are true or not.(주33) described in Jeremiah:

 

33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34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They are such as are I will put my law in their mind, and will write it in their heart. They shall teach no more everyone his friend and everyone his brother, saying, Know ye Jehovah. They shall know Me, from the least of them even to the greatest of them. (렘31:33, 34)

 

그리고 이사야에서는 이들을 가리켜 And they are called in Isaiah: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Taught of Jehovah. (사54:13)

 

라 하였는데, 여기 ‘여호와의 교훈을 받는 것’은 주님이 직접 가르치시는 것인데, 요한복음 6장 45절, 46절 말씀이 바로 이것입니다. That the “taught of Jehovah” are those who are taught by the Lord he himself teaches in John 6:45, 46.

 

45선지자의 글에 그들이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46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요6:45-46)

 

 

26. 이들 천적 천사들이 다른 천사들보다 지혜와 영광이 더 뛰어난 이유는, 이들이 신적 진리를 자신들의 생명 안으로 즉시 받아들이며, 그걸 지속하기 때문이라고 앞서 말씀드렸습니다. It has been said that these angels have wisdom and glory above others for the reason that they have received and continue to receive Divine truths at once in their life.

 

이들은 신적 진리를 들으면 바로 그것을 의도하고 행하기 때문입니다. 일단 머릿속에 기억하였다가 나중에 그것이 참인지 아닌지를 생각하는 게 아니고 말입니다. For as soon as they hear Divine truths, they will and do them, instead of storing them up in the memory and afterwards considering whether they are true.

 

이들은 자기들이 들은 것이 진리임을 주님의 인플럭스(influx, 入流)로 즉시 알아차립니다. 주님은 사람의 의지 안으로는 직접 들어오시는 반면, 생각 안으로는 의지를 거쳐 간접적으로 들어오시기 때문입니다. They know at once by influx from the Lord whether the truth they hear is true; for the Lord flows directly into man’s willing, but mediately through his willing into his thinking.

 

혹은 같은 말이지만, 주님은 선 안으로는 직접 들어오시지만, 진리 안으로는 선을 거쳐 간접적으로 들어오십니다.(주34) Or what is the same, the Lord flows directly into good, but mediately through good into truth.(주34)

 

의지와 그로 말미암은 행동에 속한 것을 선이라 하는 반면, 기억과 그로 말미암은 생각에 속한 것을 진리라 합니다. That is called good which belongs to the will and action therefrom, while that is called truth that belongs to the memory and to the thought therefrom.

 

게다가 모든 진리는 의지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선이 되며, 사랑 안에 심기지만, 그저 기억만 하고, 생각만 하고 있으면, 그런 진리는 선이 되지도 못하고, 선으로 하여금 살아있게도 못하며, 사람에게 어울리는 진리도 되지 못합니다. 사람은 의지(will, 의도, intent)와 그 의지에서 나오는 언더스탠딩(understanding, 이해, cognitive ability, 인식 능력)으로 사람인 것이지, 의지와 분리된 언더스탠딩만으로는 사람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주35) Moreover, every truth is turned into good and implanted in love as soon as it enters into the will; but so long as truth remains in the memory and in the thought therefrom it does not become good, nor does it live, nor is it appropriated to man, since man is a man from his will and understanding therefrom, and not from his understanding separated from his will.(주35)

 

 

27. 천적 천사들과 영적 천사들 간의 이런 차이 때문에, 그들은 함께 있지도, 서로 아무 사귐도 없습니다. Because of this difference between the angels of the celestial kingdom and the angels of the spiritual kingdom they are not together, and have no association with each other.

 

그들은 천적-영적이라 하는, 중간 천사 소사이어티들에 의해서만 커뮤니케이션을 합니다. They are able to communicate only through intermediate angelic societies, which are called celestial-spiritual.

 

이들을 통해 천적 나라가 영적 나라 안으로 흐릅니다.(주36) 그리고 이런 식으로, 천국은 비록 두 나라로 나뉘어 있어도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Through these the celestial kingdom flows into the spiritual;(주36) and from this it comes to pass that although heaven is divided into two kingdoms it nevertheless makes one.

 

주님은 늘 이런 중간 천사들을 있게 하셔서 둘 사이 커뮤니케이션과 결합을 제공하십니다. The Lord always provides such intermediate angels through whom there is communication and conjunction.

 

 

28. 이들 두 나라의 천사들에 관해서는 앞으로 여기서 생략한 세부적인 내용들을 충분히 다룰 예정입니다. As the angels of these two kingdoms will be fully treated of in what follows, particulars are here omitted.

 

 

※ 각주

27. 무한한 다양성이 있으며, 어디에도 서로 똑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There is infinite variety, and nowhere anything the same as another. (n. 7236, 9002) 또한 천국들에는 무한한 다양성이 존재합니다. Also in the heavens there is infinite variety. (n. 684, 690, 3744, 5598, 7236) 천국의 수많은 다양성은 선의 수많은 다양성입니다. Varieties in heaven are varieties of good. (n. 3744, 4005, 7236, 7833, 7836, 9002) 수많은 천국의 모든 소사이어티와 어느 한 소사이어티의 모든 천사는 그래서 서로 구별됩니다. All societies in the heavens, and all angels in a society, are thereby distinguished from each other. (n. 690, 3241, 3519, 3804, 3986, 4067, 4149, 4263, 7236, 7833, 7836)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모두 주님에게서 오는 사랑으로 하나가 됩니다. Nevertheless they are all made one by love from the Lord. (n. 457, 3986)

 

28. 천국은 전체적으로 두 나라, 곧 천적 나라와 영적 나라로 나누어집니다. Heaven as a whole is divided into two kingdoms, a celestial kingdom and a spiritual kingdom. (n. 3887, 4138) 천적 나라 천사들은 주님의 신성을 자원하는 파트 안으로 받습니다. 그래서 영적 천사들, 곧, 주님의 신성을 지적 파트 안으로 받는 천사들보다 훨씬 더 내적입니다. The angels of the celestial kingdom receive the Divine of the Lord in their voluntary part, thus more interiorly than the spiritual angels, who receive it in their intellectual part. (n. 5113, 6367, 8521, 9936, 9995, 10124)

 

29. 천적 나라를 형성하는 천국들을 일컬어는 더 높다 하고, 영적 나라를 형성하는 천국들을 일컬어는 더 낮다 합니다. The heavens that constitute the celestial kingdom are called higher while those that constitute the spiritual kingdom are called lower. (n. 10068)

 

30. 내적인 것들은 더 높은 것들에 담기며, 더 높은 것들은 내적인 것들을 상징합니다. Interior things are portrayed by higher things, and higher things signify interior things. (n. 2148, 3084, 4599, 5146, 8325)

 

31. 천적 나라의 선은 주님을 향한 사랑의 선이고, 영적 나라의 선은 이웃을 향한 체어리티의 선입니다. The good of the celestial kingdom is good of love to the Lord, and the good of the spiritual kingdom is good of charity toward the neighbor. (n. 3691, 6435, 9468, 9680, 9683, 9780)

 

32. 천적 천사들은 지혜에 있어 영적 천사들을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초월합니다. The celestial angels immeasurably surpass in wisdom the spiritual angels. (n. 2718, 9995) 천적 천사들과 영적 천사들 간 구분, 구별의 본질, 즉, 둘을 서로 구분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The nature of the distinction between celestial angels and spiritual angels. (n. 2088, 2669, 2708, 2715, 3235, 3240, 4788, 7068, 8521, 9277, 10295)

 

33. 천적 천사들은 신앙의 진리를 그게 진리인지 아닌지를 추론하거나 확인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자기들 안에서 지각하기 때문입니다. 곧, 그것이 진리임을 그냥 직관적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적 천사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것이 진리인지 아닌지를 확인합니다. 그래야만 판단이 서기 때문입니다. The celestial angels do not reason about truths of faith, because they perceive them in themselves; but the spiritual angels reason about them whether they are true or not. (n. 202, 337, 597, 607, 784, 1121, 1384, 1898, 1919, 3246, 4448, 7680, 7877, 8780, 9277, 10786)

 

34. 주님의 인플럭스는 선 안으로, 그리고 선을 거쳐 진리 안으로 들어옵니다. 그 반대는 없습니다. 그런 식으로, 먼저는 의지 안으로, 그리고 의지를 거쳐 언더스탠딩 안으로 들어옵니다. 그 역순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The Lord’s influx is into good and through good into truth, and not the reverse; thus into the will and through that into the understanding, and not the reverse. (n. 5482, 5649, 6027, 8685, 8701, 10153)

 

35. 사람의 의지는 그의 생명 그 자체[에쎄]이며, 사랑의 선을 담는 그릇입니다. 반면, 그의 인식 능력은 거기서 나오는 생명의 출발점[엑스시스테레]이며, 신앙의 진리와 선을 담는 그릇입니다. The will of man is the very being [esse] of his life, and the receptacle of the good of love, while his understanding is the outgo [existere] of his life therefrom, and the receptacle of the truth and good of faith. (n. 3619, 5002, 9282) 그래서 의지의 생명은 사람의 주된 생명이며, 인식 능력의 생명은 거기서 나오는 것입니다. Thus the will’s life is the chief life of man, and the life of the understanding goes forth therefrom. (n. 585, 590, 3619, 7342, 8885, 9282, 10076, 10109, 10110) 무엇이든지 의지에 의해 받아들여지는 것은 생명이 되며, 사람에게 어울립니다. Whatever is received by the will comes to be the life, and is appropriated to man. (n. 3161, 9386, 9393) 사람은 의지, 의도와 거기서 비롯된 이해, 인식 능력으로 사람입니다. Man is a man from his will and his understanding therefrom. (n. 8911, 9069, 9071, 10076, 10109, 10110) 더욱이, 옳은 것을 의도하고 인식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귀히 여김을 받지만, 옳게 인식은 하면서도 그걸 의도하지는 않는 사람은 거부되며, 경멸을 당합니다. Moreover, everyone who wills and understands rightly is loved and valued by others, while he that understands rightly and does not will rightly is rejected and despised. (n. 8911, 10076) 또한 사람은 사후, 생전에 그가 가졌던 의지와 그로 인한 인식 능력은 그대로 남지만, 인식, 이해를 했으면서도 의도, 곧 마음을 먹지는 않았던 것들은 사라집니다. 그런 것은 그 사람 안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Also, after death man remains such as his will and his understanding therefrom have been, while the things that pertain to the understanding and not also to the will then vanish, because they are not in the man. (n. 9069, 9071, 9282, 9386, 10153)

 

36. 두 나라 간, 커뮤니케이션과 결합은 천적-영적이라 하는 천사적 소사이어티들에 의해서 일어납니다. Between the two kingdoms there is communication and conjunction by means of angelic societies which are called celestial-spiritual. (n. 4047, 6435, 8796, 8802) 주님의 인플럭스는 천적 나라를 경유, 영적 나라로 흐릅니다. The influx of the Lord through the celestial kingdom into the spiritual. (n. 3969, 6366)

HH.1.4.20-28, '4장, 천국은 두 나라(kingdom, 왕국)으로 나누어져 있다'.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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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eJS_Ng9xQ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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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속)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TINUATION CONCERNING HEAVENAND HEAVENLY JOY

 

 

545. 저로 하여금 천국과 천국 기쁨의 본질과 퀄러티에 대해 알게 하시려고 주님은 오랫동안 종종 제가 천국 기쁨의 즐거움을 지각할 수 있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것이 어떤 것인지를 이런 실제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지만 그러나 그것을 말로, 글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But in order that I might know the nature and quality of heaven and of heavenly joy, for long and often I have been permitted by the Lord to perceive the delights of heavenly joys, so that as I know them from actual experience I can indeed know them, but can by no means describe them.

 

하지만 제가 다음과 같이라도 말씀드리면 혹시 그것이 어떤 것인지를 살짝 가늠하실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천국의 기쁨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즐거움과 기쁨을 수반하는 일종의 어펙션입니다. 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즐거움과 기쁨이 전면적으로 동시에 경험되는 하나의 기쁨인데요, 이 전면적인 기쁨, 즉, 전면적인 어펙션 안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어펙션들이 조화를 이루며 존재합니다. 이때 이것은 하나하나 뚜렷이 지각되는 게 아니고, 모호하게 지각됩니다. 퍼셉션이 매우 전면적이기 때문입니다. However, in order to give some idea of it I may say that heavenly joy is an affection of innumerable delights and joys that form one general simultaneous joy, in which general joy, that is, in which general affection, there are harmonies of innumerable affections that do not come distinctly to perception, but obscurely, because the perception is very general.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허락하심을 받아 그 안, 천국의 기쁨 안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들이 내재하고 있음을 지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들은 말로는 도저히 어떻게 설명할 수 없는 질서로 내재해 있었는데, 바로 천국의 질서로부터 흐르는 질서였습니다. Yet I was permitted to perceive that there are things innumerable within it, in such order as can never be described, these innumerable things being such as flow from the order of heaven.

 

이런 질서는 그 어펙션 모든 가장 미세한 것에까지 존재하며, 함께 합쳐 그 전체가 하나로 보이고, 그것의 주제, 곧 그 어펙션을 느끼고 있는 그 사람의 역량에 따라 아주 전체적인 것으로 지각됩니다. Such order exists in every least thing of the affection, all of which together are presented and perceived as a very general one according to the capacity of him who is the subject of it.

 

한 마디로, 모든 전반적인 기쁨 혹은 어펙션에는 가장 온전한 형태로 조성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들이 존재하지만, 살아있지 않거나 우리 안 가장 내적인 것에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은 전혀 없습니다. 천국의 기쁨은 가장 내적인 것들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In a word, in every general joy or affection there are illimitable things ordinated in a most perfect form, and there is nothing that is not alive or that does not affect even the inmost things of our being, for heavenly joys proceed from inmost things.

 

저는 또 지각하기를, 그 기쁨과 상쾌함은 마치 심장에서 나와 모든 가장 미세한 섬유조직들을 통해, 그리고 그렇게 조직 다발 속으로, 즐거움의 가장 내적 감각을 가지고 자신들을 아주 부드럽게 퍼트리는 것 같았으며, 이것은 마치 기쁨과 상쾌함만 남은 섬유조직 같았고, 이런 가운데서 나온 퍼셉션과 감각의 영향권 역시 전체적으로 그 행복하게 살아있는 것이 같았습니다. I perceived also that the joy and deliciousness came as if from the heart, and very softly diffused themselves through all the inmost fibers, and so into the congregated fibers, with such an inmost sense of delight that the fiber is as it were nothing but joy and deliciousness, and the whole derivative perceptive and sensitive sphere the same, being alive with happiness.

 

이들 기쁨들을 육체적 쾌락이 주는 기쁨과 비교하자면, 전자는 맑고 부드러운 산들바람 같다면, 후자는 역겹고 퀘퀘한 먼지와도 같다 할 수 있습니다. In comparison with these joys the joy of bodily pleasures is like gross and pungent dust as compared with a pure and gentle breeze.

 

 

546. 천국에 무척 있고는 싶은데 사실 천국에 있을 수는 없는 그런 사람들의 경우는 어떻게 되는지를 저로 하여금 알게 하시려고, 한번은 제가 하늘 어느 소사이어티에 있을 때, 한 천사가 머리에는 밝게 빛나는 파란 꽃들로 엮은 화관을 쓰고, 가슴에는 다른 색 꽃들로 꾸민 화환을 두른 유아로 제게 나타났습니다. In order that I might know how the case is with those who desire to be in heaven and are not such that they can be there, once when I was in some heavenly society, an angel appeared to me as an infant with a chaplet of bright blue flowers about its head, and girded about the breast with wreaths of other colors.

 

이걸 보고, 저는 그곳이 체어리티가 있는 어느 소사이어티임을 알았습니다. By this I was given to know that I was in some society where there was charity.

 

그때 어떤 착한 영들이 제가 있던 같은 소사이어티 안으로 들어왔는데, 그들은 들어오는 순간, 들어오기 전보다 훨씬 더 총명해져서 마치 천사적 영들처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Some well-disposed spirits were then admitted into the same society, who the moment they entered became much more intelligent, and spoke like angelic spirits.

 

그 후, 어떤 영들이 들어왔는데 그들은 스스로 순진무구하기를 원하던 영들이었고, 그중 저에게 표현된 한 영의 상태는 젖을 입 밖으로 토하는 유아의 모습이었습니다. Afterwards some were admitted who desired to be innocent from themselves, whose state was represented to me by an infant that vomited milk out of its mouth.

 

이것이 그들의 상태였습니다. Such is their state.

 

그때 또 어떤 영들이 들어왔는데, 그들은 스스로를 지성적이다, 총명하다 여기던 영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상태가 그들의 얼굴로 표현되었는데, 날카로워 보였으나 매우 고왔습니다. 그들은 날카로운 부분이 돌출된, 끝이 뾰족한 모자를 쓰고 있는 것 같았는데, 그런데 그들의 얼굴은 사람의 살처럼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마치 칼로 깎은 듯, 생명이 없는 듯한 얼굴이었습니다. Then some were admitted who supposed that they were intelligent from themselves, and their state was represented by their faces, which appeared sharp, but fair enough; and they seemed to wear a peaked hat from which a sharp point projected, but their faces did not appear to be of human flesh, but as if carved out and devoid of life.

 

이런 것은 스스로를 우리는 영적이다, 즉, 스스로를 우리는 신앙을 가졌다 믿는 사람들의 상태입니다. Such is the state of those who believe that they are spiritual from themselves, that is, able from themselves to have faith.

 

거기 머무를 수 없는 다른 영들이 들어왔는데, 실망들을 하며, 괴로워들을 하더니, 가버리는 것이었습니다. Other spirits were admitted who could not remain there, but were dismayed, became distressed, and fled away.

2021-07-30(D6)-매일예배(AC.545-546, 창5 C), '창5 클로징,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2)'.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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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3h7B2fLioX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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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TINUATION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540. 저 세상에 들어오는 거의 모든 사람이 천국 행복과 지복(至福, bliss)의 본질에 대하여 무지합니다. 내적 기쁨의 본질과 퀄러티에 대해 모르기 때문이지요. Almost all who come into the other life are ignorant of the nature of heavenly happiness and bliss, because they know not the nature and quality of inward joy.

 

그들은 그저 육체와 세상의 기쁨과 즐거움을 가지고 좀 미루어 짐작할 뿐입니다. They form a conception of it merely from the delights and joys of the body and the world.

 

그들은 자기들이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그건 아무것도 아닌 걸로 여깁니다. 그러나 실상은, 육체적이고 세속적인 즐거움이야말로 아무것도 아닌, 아주 더러운 것입니다. What they are ignorant of they suppose to be nothing, the truth being that bodily and worldly joys are relatively non-existent and foul.

 

성품은 좋으나 천국에 대해서는 무지한 사람들로 하여금 천국의 기쁨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배우며 알 수 있도록, 그들을 모든 상상을 뛰어넘는 파라다이스들의 첫 번째 장소로 데려갑니다. (이곳에 관해서는 주님의 신적 자비, 곧 허락하심으로 나중에 밝히겠습니다. cf. 1622) 그곳에 도착하면 그들은 자기들은 지금 천국의 파라다이스에 도착했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것은 천국의 참된 기쁨이 아니라는 것과, 다음 순서로, 허락하심을 받아 그들의 가장 깊은 내면에까지 지각되는 기쁨의 내적 상태들을 맛보게 됩니다. In order therefore that those who are well disposed may learn and may know what heavenly joy is, they are taken in the first place to paradises that surpass every conception of the imagination (concerning which, of the Lord’s Divine mercy hereafter), and they suppose that they have arrived in the paradise of heaven; but they are taught that this is not true heavenly happiness, and are therefore permitted to experience interior states of joy which are perceptible to their inmost being.

 

그들은 평화의 상태, 심지어 가장 내적인 데까지 옮겨졌고, 거기서 그들은 고백하기를, 지금 이 상태, 이 기쁨은 그 어떤 말로도 전혀 표현할 수 없고, 그 어떤 것으로도 전혀 상상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They are then transported into a state of peace, even to their inmost being, and they confess that nothing of it is at all expressible or conceivable.

 

최종적으로, 그들은 이노센스 상태로 인도되었고, 또한 그들의 가장 내적 느낌, 곧 가장 깊은 레벨의 감각으로도 인도되었습니다. And finally they are introduced into a state of innocence, also to their inmost feeling.

 

이렇게 그들은 허락하심을 받아 참된 영적, 천적 선의 본질에 대하여 배웠습니다. In this way are they permitted to learn the nature of true spiritual and celestial good.

 

 

541. 천국 기쁨의 본질에 대해 무지했던 어떤 영들이 갑자기 사로잡혀 천국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들은 그전에 이렇게 천국으로 옮겨지는 것이 가능하도록 그들의 육체에 속한 것들, 곧 육체적 욕망과 상상 속에나 나올 법한 생각들, 곧 환상이 모두 잠재워진 후에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Certain spirits who were ignorant of the nature of heavenly joy were unexpectedly taken up into heaven after they had been brought into such a state as to render this possible, that is to say a state in which their bodily things and fanciful notions were lulled into quiescence.

 

거기서 저는 어떤 사람이 저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지금 자기는 처음에는 천국 기쁨이 얼마나 엄청난지를 느꼈다고, 자기는 그동안 천국에 대해 전혀 다른, 엉뚱한 생각을 갖도록 단단히 속아왔다고, 그러나 지금은 자기 내적 존재 저 깊은 데까지 측량할 수 없는 기쁨을 지각하였는데, 이것은 자기가 몸 안에서 살 때는 결코 맛본 적 없는 즐거움이라고, 사람들은 몸 안에 살면서 그걸로 기뻐하고 그러는데, 지금 보면 그건 그냥 악취였다고 말입니다. From there I heard one saying to me that now for the first time he felt how great is the joy in heaven, and that he had been very greatly deceived in having a different idea of it, but that now he perceived in his inmost being a joy immeasurably greater than he had ever felt in any bodily pleasure such as men are delighted with in the life of the body, and which he called foul.

 

 

542. 천국의 퀄러티를 알 수 있게 하려고 천국에 사로잡혀 옮겨진 사람들은 그들의 육체적 욕망과 환상이 잠재워지거나, - 여기서 잠깐, 사전에 이런 일이 필요한 이유는, 아무도 그들이 세상에서 취한 그런 걸 가지고는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 또는 불순하거나 불일치를 일으키는 그런 것들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억누르는 영들의 아우라로 그들은 둘러싸입니다. They who are taken up into heaven in order that they may know its quality either have their bodily things and fanciful notions lulled to quiescence—for no one can enter heaven with the bodily things and fanciful notions that they take with them from this world—or else they are surrounded by a sphere of spirits who miraculously temper such things as are impure and that cause disagreement.

 

어떤 사람들은 그 내면들이 열리는데, With some the interiors are opened.

 

이런저런 방식으로 그들은 자신들의 삶과 그 삶을 통해 획득한 본성에 따라 준비됩니다. In these and other ways they are prepared, according to their lives and the nature thereby acquired.

 

 

543. 천국 기쁨의 본질 알기를 무척이나 갈망하던 어떤 영들이 있었는데, 그래서 그들은 허락을 받아 그들 본성의 가장 깊은 내면을 지각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수준으로는 도저히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최대치였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천사적 기쁨이 아니었고, 천사적 기쁨 중 기껏해야 가장 낮은 것이라고나 할까요? 이런 것이 제게 허락되어 그들의 기쁨이 어떤 것인지 지각할 수 있었습니다. Certain spirits longed to know the nature of heavenly joy, and were therefore allowed to perceive the inmost of their own, to such a degree that they could bear no more; and yet it was not angelic joy, being scarcely equal to the least angelic joy, as was given me to perceive by a communication of their joy.

 

그것은 아주 잠깐이지만 오히려 냉기마저 느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도저히 천국의 기쁨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었는데도, 그러나 그들로서는 그것이 가장 깊은 내적 기쁨이었고, 그들은 그것을 가장 깊은 내적 천국의 기쁨이라고 했습니다. It was so slight as to be as it were chilly, and yet being their inmost joy they called it most heavenly.

 

이 사실로 분명한 것은, 기쁨에는 레벨, 곧 수준 차이가 있으며, 어떤 기쁨의 가장 깊은 레벨은 다른 기쁨의 가장 바깥이나 중간에도 못 미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누가 자신의 가장 내적 기쁨을 받으면 그는 그 자신의 천국 기쁨 가운데 있는 것이며, 그 이상 무슨 내적 기쁨을 받으면 도저히 견딜 수가 없는데 그때는 그 기쁨이 그에게 고통이 되기 때문입니다. From this it was evident not only that there are degrees of joys, but also that the inmost of one scarcely approaches the outmost or middle of another, and that when anyone receives his own inmost joy, he is in his heavenly joy, and cannot endure that which is still more interior, for it becomes painful.

 

 

544. 그때 제가 여기는 첫 번째 천국이라고 들은 그런 천국의 이노센스 안으로 받아들여진 어떤 영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거기서 고백하기를, 자기들이 지금 맛보고 있는 기쁨과 반가움의 상태는 자기들이 그동안 결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Certain spirits who were admitted into the heaven of innocence of the first heaven spoke to me thence, and confessed that the state of joy and gladness was such as they never could have conceived any idea of.

 

그러나 이 역시 첫 번째 천국일 뿐이었습니다. 세 천국과 각각의 이노센스 상태들이 있으며, 그 각각이 또한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하게 펼쳐집니다. Yet this was only in the first heaven, and there are three heavens, and states of innocence in each, with their innumerable varieties.

2021-07-29(D5)-매일예배(AC.540-544, 창5 C), '창5 클로징,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2)'.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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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T6lKVErt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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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2)

CONTINUATION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537. 어떤 영이 제 왼쪽에 달라붙어 제게 묻기를, 자기가 어떻게 천국에 올 수 있었는지 아십니까 하였습니다. A certain spirit attached himself to my left side, and asked me whether I knew how he could get into heaven.

 

저는 허락을 받아 그 영에게 말하기를, 천국 입국 허가는 오직 주님에게만 속한 것이며, 주님만이 어떤 사람의 퀄러티를 아십니다 대답하였습니다. I was permitted to tell him that admission into heaven belongs solely to the Lord, who alone knows what a man’s quality is.

 

천국에 오려고 나름 무슨 추구를 하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그러나 정작 천국이 어떤 곳인지, 천국의 기쁨이 무엇인지, 천국은 서로 사랑하는 곳이며, 천국의 기쁨은 그런 사랑에서 나오는 기쁨이라는 등의 사실들을 전혀 모른 채 세상을 떠나 이곳에 오고 있습니다. Very many arrive from the world who make it their sole pursuit to get into heaven, being quite ignorant of what heaven is, and of what heavenly joy is, that heaven is mutual love, and that heavenly joy is the derivative joy.

 

그래서 이런 걸 모르고 오는 사람들을 위해 먼저 실제 경험을 통해 배우게 하고 있습니다. Therefore those who do not know this are first instructed about it by actual experience.

 

예를 들어, 세상을 떠나 막 도착한 어떤 신참 영이 있었습니다. 그 역시 같은 식, 그러니까 천국에 대한 철저한 무지 가운데서도 천국을 갈망하던 사람이었는데, 그런 그에게 천국의 본성이 어떤 것인지 직접 지각하게 하려고, 그의 내면들을 열어 천국의 기쁨 얼마를 실제 느껴볼 수 있게 했습니다. For example, there was a certain spirit, newly arrived from the world, who in like manner longed for heaven, and in order that he might perceive what the nature of heaven is, his interiors were opened so that he should feel something of heavenly joy.

 

그는 천국을 향해 열린 내면들을 통해 천국의 기운이 닿자마자 온몸을 비틀며 고통스러워하더니 제발 좀 자기를 옮겨달라고, 자기는 극심한 괴로움 때문에 도저히 살 수가 없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천국을 향해 열렸던 그의 내면들이 도로 닫혔고, 그렇게 그의 상태는 다시 원래대로 회복되었습니다. But as soon as he felt it he began to lament and to writhe, and begged to be delivered, saying that he could not live on account of the anguish; and therefore his interiors were closed toward heaven, and in this way he was restored.

 

이 사례를 통해, 우리는 천국에 대한 준비가 전혀 안 된 사람들은 아주 잠깐이라도, 양심의 격렬한 고통과 고문을 당하는 듯한 극심한 괴로움을 맛보게 된다는 것을, 즉, 단 한 순간이라도 천국 안에 발을 들여놓을 수가 없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From this instance we may see with what pangs of conscience and with what anguish those are tortured who not being prepared for it are admitted even but a little way.

 

 

538. 천국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천국에 들어가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There were some who sought admission into heaven without knowing what heaven is.

 

그들은 사랑의 신앙 안에 있지 않으면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마치 화염 속으로 들어가는 것 만큼이나 위험한 일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그걸 추구했습니다. They were told that unless they were in the faith of love, to enter heaven would be as dangerous as going into a flame; but still they sought for it.

 

그들이 첫 번째 입구 안 마당, 즉, 천사적 영들의 낮은 영역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고통에 사로잡혀 머리를 아래로 하여 거꾸로 자신을 던질 정도로 힘들어했습니다. 신앙의 어펙션들을 받을 수 있도록 먼저 주님에 의해 준비되지 않고, 무작정 천국을 향해 접근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그들은 이런 방식으로 배웠습니다. When they arrived at the first entrance court, that is to say, the lower sphere of angelic spirits, they were smitten so hard that they threw themselves headlong back, and in this way were taught how dangerous it is merely to approach heaven until prepared by the Lord to receive the affections of faith.

 

 

539. 몸 안에 있었던 생애 동안 간음과 간통의 빛 가운데 살았던 어떤 영이 간절히 원한 덕분에 천국의 첫 번째 문턱에 들어가 보도록 허락을 받았습니다. A certain spirit who during his life in the body had made light of adulteries, was in accordance with his desire admitted to the first threshold of heaven.

 

그가 거기 도착하자마자 그는 고통스러워했고, 자신에게서 죽은 사람의 악취가 나는 것을 도저히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As soon as he came there he began to suffer and to be sensible of his own cadaverous stench, until he could endure it no longer.

 

그는 내가 여기 더 머물렀다간 소멸됙겠구나 싶어 다 내던지고 더 낮은 곳으로 뛰어내렸습니다. 그는 천국 첫 문턱, 간음과 정반대되는 영역에 고작 도착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런 고통을 겪어야만 하는 사실에 격분했습니다. It seemed to him that if he went any farther he should perish, and he was therefore cast down to the lower earth, enraged that he should feel such torment at the first threshold of heaven, merely because he had arrived in a sphere that was contrary to adulteries.

 

그는 불행한 사람들과 함께, 즉, 지옥에 있습니다. He is among the unhappy.

2021-07-28(D4)-매일예배(AC.537-539), '창5 클로징,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2)'.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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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pRFsDD5WK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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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는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And Noah was a son of five hundred years; and Noah begat Shem, Ham, and Japheth. (창5:32)

 

 

534. ‘노아’는 지금까지 말씀드린 대로, 고대교회(古代敎會, the ancient church)를 상징합니다. By “Noah,” as has been said, is signified the ancient church.

 

셈, 함, 야벳’은 ‘노아’라는 고대교회를 부모로 하는, 세 고대교회를 상징합니다. By “Shem, Ham, and Japheth” are signified three ancient churches, the parent of which was the ancient church called “Noah.

 

 

535. ‘노아’라는 교회는 홍수 전에 있었던 교회들 중 하나로 번호를 매기지는 않는다는 내용이 29절에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That the church called “Noah” is not to be numbered among the churches that were before the flood, appears from verse 29, where it is said that it should “comfort them from their work and the toil of their hands, out of the ground which Jehovah hath cursed.

 

안위하다, 위로하다’는 것은 살아남아 견디는 것입니다. The “comfort” was that it should survive and endure.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 관하여는 주님의 신적 자비, 곧 주님의 허락하심으로 나중에 다루겠습니다. But concerning Noah and his sons, of the Lord’s Divine mercy hereafter.

 

 

536. 선행 페이지들에서, 홍수 전에 존재한 교회들에게 소유되었던 퍼셉션에 관한 많은 내용을 말씀드려왔기 때문에, 그리고 오늘날은 퍼셉션에 관해 전혀 알려진 바 없어 어떤 사람들은 퍼셉션을 일종의 계시의 지속으로, 혹은 사람들 안에 심긴 어떤 것으로, 다른 사람들은 그저 상상일 뿐으로, 또 다른 사람들은 또 다른 어떤 걸로 등 이렇게 온갖 의견들이 난무하기 때문에, 그리고 퍼셉션은 주님이 사랑의 신앙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주신 천적인 것 그 자체이기 때문에, 그리고 광범위한 천국 전체의 끝없는 다양성 안에는 이 퍼셉션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등, 이런 여러 이유로, 사람들 안에 퍼셉션이 무엇인지에 대한 기본 개념들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저는 주님의 신적 자비, 곧 주님의 허락하심을 받아 이어지는 페이지들에서 수많은 천국에 존재하는 퍼셉션의 주된 종류들을 설명하고자 합니다. As in the foregoing pages much has been said about the perception possessed by the churches that existed before the flood, and as at this day perception is a thing utterly unknown, so much so that some may imagine it to be a kind of continuous revelation, or to be something implanted in men; others that it is merely imaginary, and others other things; and as perception is the very celestial itself given by the Lord to those who are in the faith of love, and as there is perception in the universal heaven of endless variety: therefore in order that there may be among men some conception of what perception is, of the Lord’s Divine mercy I may in the following pages describe the principal kinds of perception that exist in the heavens.

2021-07-27(D3)-매일예배(AC.534-536, 창5,32), '노아, 고대교회의 시작'.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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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__WvpMMru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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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라멕은 노아를 낳은 후 오백구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Lamech lived after he begat Noah five hundred ninety and five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31그는 칠백칠십칠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of Lamech were seven hundred seventy and seven years; and he died. (창5:30-31)

 

 

532. ‘라멕’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황폐해진 교회를 상징합니다. By “Lamech,” as before said, is signified the church vastated.

 

자녀들’은 그와 같은 교회를 계속해서 잉태 및 해산하였음을 상징합니다. By “sons and daughters” are signified the conceptions and births of such a church.

 

 

533. 라멕과 관련해서는 그가 자녀들을 낳았다는 것, 곧 그런 교회의 여러 잉태와 해산이 있었다는 것 말고는 더 이상 뭐가 없으므로 라멕에 관해서는 이쯤 하겠습니다. As nothing more is related concerning Lamech than that he begat sons and daughters, which are the conceptions and births of such a church, we shall dwell no longer on the subject.

 

여러 해산, 곧 ‘자녀들’이 무엇인지는 그 교회를 보면 압니다. 그 교회의 모습이 곧 그 교회의 여러 해산, 태어남이기 때문입니다. What the births were, or the “sons and daughters,” appears from the church; for such as is the church, such are the births from it.

 

므두셀라’와 ‘라멕’이라 하던 교회들은 둘 다 홍수 직전에 끝났습니다. Both the churches called “Methuselah” and “Lamech” expired just before the flood.

2021-07-26(D2)-매일예배(AC.532-533, 창5,30-31), '므두셀라, 라멕, 홍수 직전에 끝난 교회들'.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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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ksP5VNnXg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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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And he called his name Noah, saying, He shall comfort us from our work, and the toil of our hands, out of the ground which Jehovah hath cursed. (창5:29)

 

 

528. ‘노아’는 고대(古代, the ancient)교회를 상징합니다. By “Noah” is signified the ancient church.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라는 표현은 교리를 상징하는데, 이 교리로 말미암아 그동안 왜곡되었던 모든 것이 회복될 것입니다. By “comforting us from our work and the toil of our hands, out of the ground which Jehovah hath cursed,” is signified doctrine, whereby what had been perverted would be restored.

 

 

529. ‘노아’는 고대교회 혹은 홍수 후 세 교회인 셈, 함, 야벳의 부모 교회를 상징한다는 내용이, 뒤에 이어지는 페이지들을 보시면 나오는데요, 거기 노아에 대한 내용이 정말 엄청납니다. That by “Noah” is signified the ancient church, or the parent of the three churches after the flood, will appear from the following pages, where Noah is largely treated of.

 

 

530. 본 장에 나오는 이름들은, 앞서 언급한 대로, 교회, 혹은 같은 말이지만 교리를 상징합니다. 교회는 교리를 가지고 존재하고, 또 이름하기 때문이지요. ‘노아’ 역시 그런 식으로, 고대교회를 상징하거나, 혹은 태고교회 교리들 가운데 남은 것을 상징합니다. By the names in this chapter, as we have said, are signified churches, or what is the same, doctrines; for the church exists and has its name from doctrine; thus by “Noah” is signified the ancient church, or the doctrine that remained from the most ancient church.

 

교회와 교리를 가지고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는 이미 다루어 왔는데요, 즉, 교회와 교리들은 기울어지는데, 신앙의 선과 진리가 더 이상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로까지 기울어지며, 교회가 그 상태, 그 지경에 이르는 것을 말씀에서는 황폐해졌다 합니다. How the case is with churches or doctrines has already been stated, namely, that they decline, until there no longer remains anything of the goods and truths of faith, and then the church is said in the Word to be vastated.

 

그러나 여전히 리메인스, 혹은 신앙의 선과 진리가 남아 있는 어떤 사람들은 늘 보존되고 있습니다. 신앙의 선과 진리가 이 얼마 안 되는 사람들에게서라도 보존되지 않으면 인류와 천국이 결합하는 일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But still remains are always preserved, or some with whom the good and truth of faith remain, although they are few; for unless the good and truth of faith were preserved in these few, there would be no conjunction of heaven with mankind.

 

개인적 차원에서 어떤 한 사람 안의 리메인스를 생각해 보면, 이것이 적을수록 그는 그가 가진 이성과 지식에 관한 것들이 덜 열리며, 덜 밝아집니다. 선과 진리의 빛은 리메인스로부터, 혹은 주님으로부터 리메인스를 통해서 그 사람 안으로 흘러들어 오기 때문입니다. As regards the remains that are in a man individually, the fewer they are the less can the matters of reason and knowledge that he possesses be enlightened, for the light of good and truth flows in from the remains, or through the remains, from the Lord.

 

만일 사람 안에 리메인스가 전혀 남아 있지 않으면 그는 사람이라 할 수 없고, 대신 짐승보다 훨씬 더 끔찍한 그 무엇이 될 수 있습니다. 리메인스가 적을수록 그는 사람이 아니며, 리메인스가 많을수록 그는 사람입니다. If there were no remains in a man he would not be a man, but much viler than a brute; and the fewer remains there are, the less is he a man, and the more remains there are, the more is he a man.

 

리메인스는 마치 밤하늘의 별과 같습니다. 별이 적을수록 별빛은 희미하지만, 별이 많으면, 별빛도 밝은 것처럼 말입니다. Remains are like some heavenly star, which, the smaller it is the less light it gives, and the larger, the more light.

 

태고교회로부터 겨우 남은 것들이 ‘노아’라 하는 교회를 이룬 사람들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남은 것은 퍼셉션이 아닌, 온전함에 관한 것이며, 태고교회의 퍼셉션에서 나온 교리에 관한 것입니다. 이렇게 새로운 교회가 이제 주님으로 말미암아 일어납니다. 이 교회는 이전 태고교회와는 본성적으로 완전히 다른 교회이며, 고대교회라 이름하였습니다. 고대라는 것은, 홍수 직전에 존재, 홍수 후 첫 세대 동안 있었던 데서 가져왔습니다. The few things that remained from the most ancient church were among those who constituted the church called Noah; but these were not remains of perception, but of perfection, and also of doctrine derived from the things of perception in the most ancient churches; and therefore a new church was now raised up by the Lord, which being of an entirely different native character from the most ancient churches, is to be called the ancient church—ancient from the fact that it existed at the close of the ages before the flood, and during the first period after it.

 

이 교회에 관해서는, 주님의 신적 자비, 곧 주님의 허락을 받아 나중에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Of this church, by the Divine mercy of the Lord, more will be said hereafter.

 

 

531.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라는 표현은 교리를 상징하는데, 이 교리로 말미암아 그동안 왜곡되었던 모든 것이 회복될 것이라는 이런 내용 또한 주님의 신적 자비, 곧 주님의 허락으로 이어지는 페이지들 가운데 보시게 됩니다. That by “comforting us from our work and the toil of our hands, out of the ground which Jehovah hath cursed” is signified doctrine, whereby what had been perverted would be restored, will also appear, of the Lord’s Divine mercy, in the following pages.

 

’이 상징하는 바는, 무엇이 진리인지를 그들은 고통에 가까운 수고를 하지 않고는 지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By “work” is signified that they could not perceive what is true except with labor and distress.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라는 표현이 상징하는 것은, 그들은 선을 전혀 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By the “toil of the hands out of the ground which Jehovah hath cursed” is signified that they could do nothing good.

 

그래서 ‘라멕’을 가리켜 황폐해진 교회라고 합니다. Thus is described “Lamech,” that is, the vastated church.

 

사람이 참(what is true)을, 진리, 진실을 추구하는 것도, 그리고 선을 행하는 것도 ‘일과 손의 수고’가 되는 때는 바로 스스로의 힘으로, 혹은 자신의 것으로 할 때입니다. There is “work and labor of the hands” when, from themselves or from their own, men must seek out what is true and do what is good.

 

이런 사실에서 나오는 것이 바로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곧, 거짓된 것과 악한 것 말고는 아무것도 나오는 게 없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저주하심’의 의미는 위 245번 글을 보시기 바랍니다.) That which comes of this is the “ground which Jehovah hath cursed,” that is, nothing comes of it but what is false and evil. (But what is signified by “Jehovah cursing,” may be seen above, n. 245.)

 

위로하다’라는 표현은 ‘아들’ 혹은 노아와 관련되는데, 새로운 거듭남, 즉, 새로운 교회, 고대교회를 상징합니다. To “comfort” has reference to the “son,” or Noah, whereby is signified a new regeneration, thus a new church, which is the ancient church.

 

이 교회, ‘노아’는 그래서 쉼과, 그리고 쉼에서 오는 위로를 상징하는데, 이 쉼은 태고교회 때, 주님이 쉬셨던 바로 그 일곱 번째 날의 쉼입니다. (참조, 84 - 88번 글) By this church, or “Noah,” is therefore likewise signified rest, and comfort that comes from rest, just as it was said of the most ancient church that it was the seventh day, in which the Lord rested. (See n. 84–88.)

2021-07-25(D1)-주일예배(AC.528-531, 창5,29), '노아, 태고교회의 리메인스'.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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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qxL-qEF-v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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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25(D1)-제9권30호통413호.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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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장

천국 안 주님의 신성은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다

In Heaven the Divine of the Lord Is Love to Him and Charity toward the Neighbor

 

 

13. 천국에서는 주님에게서 나오는 신성을 신적 진리라고 하는데요,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The Divine that goes forth from the Lord is called in heaven Divine truth, for a reason that will presently appear.

 

이 신적 진리는 주님에게서, 주님의 신적 사랑에서 나와 천국 안으로 흘러듭니다. This Divine truth flows into heaven from the Lord from his Divine love.

 

신적 사랑과 거기서 나오는 신적 진리는 마치 이 세상 해의 열(불)과 거기서 나오는 빛처럼 서로 연관됩니다. 이때 사랑은 해의 열(불)을,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진리는 해의 빛에 각각 상응합니다. The Divine love and the Divine truth therefrom are related to each other as the fire of the sun and the light therefrom in the world, love resembling the fire of the sun and truth therefrom light from the sun.

 

더 나아가 상응에 의해, 불은 사랑을, 빛은 사랑에서 나오는 진리를 각각 상징합니다.(주19) Moreover, by correspondence fire signifies love, and light truth going forth from love.(주19)

 

이런 사실로. 이제 주님의 신적 사랑에서 나오는 신적 진리라는 게 무엇인지가 명확해지는데요, 그것은 본질적으로, 신적 진리와 결합한 신적 선이며, 그 결합을 통해 천국의 모든 것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봄과 여름, 세상 해의 열이 빛과 결합(융합)하여 지상 만물을 열매 맺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From this it is clear what the Divine truth that goes forth from the Lord’s Divine love is—that in its essence it is Divine good joined to Divine truth, and being so conjoined it vivifies all things of heaven; just as in the world when the sun’s heat is joined to light it makes all things of the earth fruitful, which takes place in spring and summer.

 

반면, 열이 빛과 융합하지 않으면, 즉 차가운 빛이 되면, 그때는 만물이 쇠잔하여 죽게 됩니다. It is otherwise when the heat is not joined with the light, that is, when the light is cold; then all things become torpid and lie dead.

 

천사들에게 있어서, 열에 비유되는 이 신적 선은 사랑의 선입니다. 그리고 빛에 비유되는 신적 진리는 일종의 그릇, 용기(用器)인데, 사랑의 선이 그 안에 담겨 밖으로 나오는 용기입니다. 선을 실어나르는 일종의 캐리어이지요. With the angels this Divine good, which is compared to heat, is the good of love; and Divine truth, which is compared to light, is that through which and out of which good of love comes.

 

 

14. 천국에 충만한, 천국을 이루는 신성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영적 결합(력)이기 때문입니다. The Divine in heaven which makes heaven is love, because love is spiritual conjunction.

 

사랑으로 천사들은 주님과 결합하며, 또 서로 결합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결합한 천사들이 주님의 시야로는 모두 다 하나로 보입니다. It conjoins angels to the Lord and conjoins them to one another, so conjoining them that in the Lord’s sight they are all as one.

 

게다가 사랑은 모든 사람의 생명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천사들과 사람들 모두 사랑에서 생명을 얻습니다. Moreover, love is the very being [esse] of everyone’s life; consequently from love both angels and men have life.

 

생각이 깊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 사람의 가장 내적 활력은 바로 사랑에서 온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있으면 사람은 따뜻해지지만, 사랑이 없으면 차가워지며, 완전히 빼앗기면 그때는 죽기 때문입니다.(주20) Everyone who reflects can know that the inmost vitality of man is from love, since he grows warm from the presence of love and cold from its absence, and when deprived of it he dies.(주20)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사람은 자기가 가진 사랑의 퀄러티에 따라 자기가 가진 생명의 퀄러티가 결정된다는 사실입니다. But it is to be remembered that the quality of his love is what determines the quality of each one’s life.

 

 

15. 천국에는 두 종류의 구별되는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는 주님 사랑(love to the Lord)이고, 다른 하나는 이웃 사랑(charity toward the neighbor)입니다. 가장 내적 천국, 곧 삼층천은 주님 사랑의 천국, 이층천, 곧 중간 천국은 이웃 사랑의 천국입니다. In heaven there are two distinct loves, love to the Lord and love toward the neighbor, in the inmost or third heaven love to the Lord, in the second or middle heaven love toward the neighbor.

 

이 두 사랑은 둘 다 주님에게서 나와 둘 다 천국을 이룹니다. They both go forth from the Lord, and they both make heaven.

 

이 두 사랑이 어떻게 다르며, 어떻게 서로 연결되는지는 천국에서는 밝은 빛 가운데 보이는데, 이 세상에서는 흐릿하기만 합니다. How these two loves are distinct and how they are conjoined is seen in heaven in clear light, but in the world only obscurely.

 

천국에서는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주님을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에게서 오는 선을 사랑하는 것이며, 선을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으로 선을 의도하고 행하는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 역시 이웃을 개인적 친구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서 나오는 진리를 사랑하는 것이며, 진리를 사랑한다는 것은 진리를 의도하고 행하는 것입니다. In heaven loving the Lord does not mean loving him in respect to his person, but it means loving the good that is from him; and to love good is to will and do good from love; and to love the neighbor does not mean loving a companion in respect to his person, but loving the truth that is from the Word; and to love truth is to will and do it.

 

이들 두 사랑이 선과 진리가 구별되듯 구별되며, 선과 진리가 결합하듯 서로 결합한다는 사실을 이것으로 명료하게 알 수 있습니다.(주21) This makes clear that these two loves are distinct as good and truth are distinct, and that they are conjoined as good is conjoined with truth.(주21)

 

그러나 이런 사실은, 먼저 사랑이라는 게 무엇인지, 선이라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이웃이라는 게 무엇인지를 알지 않고서는 이해조차 어려울 수 있습니다.(주22) But this can scarcely be comprehended by men unless it is known what love is, what good is, and what the neighbor is.(주22)

 

 

16. 저는 이 문제에 관해 천사들과 거듭 대화를 나눴습니다. I have repeatedly talked with angels about this matter.

 

그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말하길,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선과 진리를 사랑하고, 마음으로 행하는 것임을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이 알아야만 하는 것은, 사랑이란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의도하고 행하는 것임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며, 바로 이것이 서로를 하나 되게 하는 것입니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은 그 자체로 사랑이 아닙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꼭 알아야 하는 또 한 가지 사실은, 주님으로 말미암는 선은 주님을 닮았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이 그 안에 계시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이 선과 진리를 의도하고 행하여 자기의 삶이 되게 한 사람들은 주님을 닮으며, 주님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라고 말이지요. They were astonished, they said, that men of the church do not know that to love the Lord and to love the neighbor is to love what is good and true, and to do this from the will, when they ought to know that one evinces love by willing and doing what another wishes, and it is this that brings reciprocal love and conjunction, and not loving another without doing what he wishes, which in itself is not loving; also that men should know that the good that goes forth from the Lord is a likeness of him, since he is in it; and that those who make good and truth to belong to their life by willing them and doing them become likenesses of the Lord and are conjoined to him.

 

의도함이란 행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Willing is loving to do.

 

이것이 바로 주님이 말씀 가운데 그토록 가르치고자 하신 것입니다. 말씀하시길, That this is so the Lord teaches in the Word, saying,

 

21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23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He that hath My commandments and doeth them, he it is that loveth Me; and I will love him and will make My abode with him. (요14:21, 23)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If ye do My commandments ye shall abide in My love. (요15:10)

 

 

17. 천국에서의 제 모든 경험이 증명하는 사실은, 주님에게서 나오는 신성과, 천사들을 감동하고 천국을 이루는 것은 바로 사랑이라는 사실입니다. 천국 모든 구성원들은 사랑과 체어리티의 형상이며, 그들의 얼굴과 말과 생명 모든 구석구석에서 나오는 눈부신 사랑 가운데 그들은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답습니다.(주23) All experience in heaven attests that the Divine that goes forth from the Lord and that affects angels and makes heaven is love; for all who are in heaven are forms of love and charity, and appear in ineffable beauty, with love shining forth from their faces, and from their speech and from every particular of their life.(주23)

 

게다가 모든 천사와 영들은 자기에게서 나와 자기를 둘러싸는 생명의 영적 구체(球體, sphere) 아우라가 있는데, 이것으로 그들의 사랑에 대한 애정의 퀄러티를 알 수 있으며, 때때로 아주 먼 데까지 그 아우라가 미치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Moreover, there are spiritual spheres of life emanating from and surrounding every angel and every spirit, by which their quality in respect to the affections of their love is known, sometimes at a great distance.

 

각자 자신의 애정과 그에 따른 사고의 생명, 혹은 사랑과 그에 따른 신앙의 생명에서 이들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기 때문입니다. For with everyone these spheres flow forth from the life of his affection and consequent thought, or from the life of his love and consequent faith.

 

천사들에게서 발산되는 아우라는 너무나 사랑으로 충만하여 함께 한 사람들의 생명 가장 내적인 곳까지 감동을 줍니다. The spheres that go forth from angels are so full of love as to affect the inmosts of life of those who are with them.

 

저도 여러 차례 이런 걸 지각했고, 그렇게 감동을 받았습니다.(주24) They have repeatedly been perceived by me and have thus affected me.(주24)

 

천사들이 자기들의 생명을 사랑에서 얻는다는 사실은 다음과 같은 사실로 더욱 확실히 알 수 있는데요, 저 세상 삶에서는 모두가 자신의 사랑을 따라 몸을 돌린다는 사실입니다. 즉,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주님을 향하여 돌아서는 반면, 자아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주님에게서 등을 돌린다는 사실입니다. That it is love from which angels have their life is further evident from the fact that in the other life everyone turns himself in accordance with his love—those who are in love to the Lord and in love toward the neighbor turning themselves always to the Lord, while those who are in love of self turn themselves always away from the Lord.

 

그들이 몸을 임의로 돌려도 결국 이렇게 됩니다. 이것은 저 세상 삶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공간이라는 게 자신의 내면의 상태와 일치하기 때문이며, 마찬가지로 방위 역시 이 세상과는 달리 그들의 얼굴 방향과 일치하도록 정해지기 때문입니다. This is so, however their bodies may turn, since with those in the other life spaces conform to the states of their interiors, likewise quarters, which are not constant as they are in this world, but are determined in accordance with the direction of their faces.

 

그러나 그들을 주님을 향해 돌아서게 하는 것은 천사들 자신이 아닙니다. 주님이 주님의 일 행하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주님 자신을 향해 돌아서게 하시는 것입니다.(주25) And yet it is not the angels that turn themselves to the Lord; but the Lord turns to himself those that love to do the things that are from him.(주25)

 

이 주제에 관해서는 나중에, 저 세상 삶의 방위를 다룰 때 말씀드리겠습니다. But more on this subject hereafter, where the quarters in the other life are treated of.

 

 

18. 천국 주님의 신성은 사랑입니다. 그 이유는, 사랑이 천국의 모든 것, 곧 평화, 지성, 지혜 및 행복을 담는 그릇이요, 수용체이기 때문입니다. The Divine of the Lord in heaven is love, for the reason that love is receptive of all things of heaven, such as peace, intelligence, wisdom and happiness.

 

사랑은 자기 자신과 조화되는 것은 무엇이든 전부 받아들입니다. 사랑은 이들을 갈망하고, 찾고, 자연스럽게 들이킵니다. 이 모든 것에 의해 풍요롭고 완벽해지기를 끊임없이 원하기 때문이지요.(주26) For love is receptive of each and all things that are in harmony with it; it longs for them, seeks them, and drinks them in as it were spontaneously, for it desires unceasingly to be enriched and perfected by them.(주26)

 

이것은 너무도 잘 아는 사실인데요. 사랑은 마치 사람의 기억 창고를 뒤지듯 찾아 자기와 조화되는 모든 것을 꺼내 자기 안에 그리고 자기 아래 모아놓고 정돈합니다. 자기 ‘’에 두어 그것들이 자기 것이 될 수 있게 하고, 자기 ‘아래’ 두어 자기의 종이 될 수 있게 말이지요. 그러나 자기와 조화되지 않는 것들은 버리고, 내보냅니다. This, too, man well knows, for with him love searches as it were the stores of his memory and draws forth all things that are in accord with itself, collecting and arranging them in and under itself—in itself that they may be its own, and under itself that they may be its servants; but other things not in accord with it, it discards and expels.

 

사랑에는 자기와 조화되는 진리를 받아들이는 모든 능력과, 진리와 결합하려는 갈망이 있음을 다음과 같은 사실을 보고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 살 때, 단순했던 어떤 사람들이 천국으로 올려졌는데, 그들이 천사들과 함께 지내게 되자 천사들의 지혜와 천국의 모든 복이 그들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은 선하고 진실한 것들을 오직 그것이 선하고 진실하기 때문에 사랑했는데, 그런 이유로 그것이 그들의 생명에 심겼고, 거기 천국에 있는 모든 형언할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들이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That there is present in love every capacity for receiving truths in harmony with itself, and a longing to conjoin them to itself, has been made clear also by the fact that some who were simple-minded in the world were taken up into heaven, and yet when they were with the angels they came into angelic wisdom and heavenly blessedness, and for the reason that they had loved what is good and true for its own sake, and had implanted it in their life, and had thereby become capacities for receiving heaven with all that is ineffable there.

 

그러나 자기와 세상을 사랑했던 사람들은 선하고 진실한 것을 받을 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그들은 천국을 혐오하고 거부하며, 천국 입구, 천국의 흐름이 닿자마자 뛰쳐나와 자기와 같은 애정 안에 있는 지옥의 영들과 합류합니다. But those who are in love of self and of the world have no capacity for receiving what is good and true; they loathe and reject it, and at its first touch and entrance they flee and associate themselves with those in hell who are in loves like their own.

 

천국적 사랑에 이런 능력이 있음을 믿기 어려워하며, 직접 알아보고 싶어 하는 영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천국 사랑의 상태에 잠시 머물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아 천국에 저항하는 요소들이 일시 잠재워진 다음, 천사들이 있는 천국에 있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그들은 제게 말하기를, 자기들은 말로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내적 행복들을 지각한다고 말이지요.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있던 이전 상태로 곧 돌아가야만 한다는 사실에 무척 슬퍼했습니다. There were spirits who had doubts about there being such capacities in heavenly love, and who wished to know whether it were true; whereupon they were let into a state of heavenly love, whatever opposed being for the time removed, and were brought forward some distance, where there was an angelic heaven, and from it they talked with me, saying that they perceived a more interior happiness than they could possibly express in words, and they lamented greatly that they must return into their former state.

 

또 다른 영들도 천국에 올라갔었는데, 더 높이, 더 내적으로 들어갈수록 그들은 총명과 지혜가 더해져서 전에는 결코 알 수 없었던 것들을 알 수 있었습니다. Others also were taken up into heaven; and the higher or more interiorly they were exalted the more of intelligence and wisdom were they admitted into, such as enabled them to perceive what had before been incomprehensible to them.

 

이런 사실로 보아 분명한 것은, 주님에게서 나오는 사랑은 천국과 그 안 모든 것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이요 수용체라는 사실입니다. From this it is clear that the love that goes forth from the Lord is receptive of heaven and all things therein.

 

 

19.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 안에는 모든 신적 진리가 들어 있다는 것을 주님 자신 친히 이 두 사랑에 대해 하신 말씀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That love to the Lord and love toward the neighbor include in themselves all Divine truths is made evident by what the Lord himself said of these two loves:

 

37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Thou shalt love thy God with all thy heart and with all thy soul. This is the greatest and first commandment. And the second, like unto it, is, Thou shalt love thy neighbor as thyself. On these two commandments hang the law and the prophets. (마22:37-40)

 

율법과 선지자’는 말씀 전체, 곧 모든 신적 진리입니다. The law and the prophets” are the whole Word, thus all Divine truth.

 

※ 각주

19. 말씀에서 ‘’은 천국적 사랑과 지옥적 사랑을 상징합니다. In the Word “fire” signifies heavenly love and infernal love (n. 934, 4906, 5215).거룩한 하늘의 불’은 신적 사랑과 그 사랑에 속한 모든 애정을 상징합니다. Holy and heavenly fire” signifies Divine love, and every affection that belongs to that love (n. 934, 6314, 6832). 불에서 나오는 ‘’은 사랑의 선에서 나오는 진리를 상징합니다. 천국에 충만한 빛은 신적 진리를 상징합니다. Light” from fire signifies truth going forth from good of love; and light in heaven signifies Divine truth (n. 3195, 3485, 3636, 3643, 3993, 4302, 4413, 4415, 9548, 9684).

 

20. 사랑은 생명의 불이며, 생명 자체가 실제로 사랑에서 나옵니다. Love is the fire of life, and life itself is actually therefrom (n. 4906, 5071, 6032, 6314).

 

21. 주님 사랑, 이웃 사랑은 주님의 명령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To love the Lord and the neighbor is to live according to the Lord’s commandments. (n. 10143, 10153, 10310, 10578, 10648)

 

22.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이웃을 한 개인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안에 있는 주님의 것인 진리와 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To love the neighbor is not to love the person, but to love that in him from which he is what he is, that is, his truth and good. (n. 5028, 10336) 사람을 사랑하지, 그 사람 안에 있는 주님의 것을 사랑하지는 않는 사람들은 악과 선을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Those who love the person, and not that in him from which he is what he is, love evil and good alike. (n. 3820) 체어리티(Charity, 이웃 사랑, 자선, 기부, 인애...)는 진리를 위하여 진리를 의도하고, 진리로 감동되어 진리에 대한 애정을 갖는 것입니다. Charity is willing truths and being affected by truths for the sake of truths. (n. 3876, 3877) 이웃을 향한 체어리티는 모든 일과 모든 역할, 쓰임새 가운데 선, 정의 및 의로운 것을 행하는 것입니다. Charity toward the neighbor is doing what is good, just, and right, in every work and in every function. (n. 8120–8122)

 

23. 천사들은 사랑과 체어리티의 형상입니다. Angels are forms of love and charity. (n. 3804, 4735, 4797, 4985, 5199, 5530, 9879, 10177)

 

24. 영적 구체(球體, sphere)는 생명의 구체인데, 모든 사랑, 영, 천사에게서 흘러넘치고 뿜어져 나와 그들 자신을 에워쌉니다. A spiritual sphere, which is a sphere of the life, overflows and pours forth from every man, spirit, and angel, and encompasses them (n. 4464, 5179, 7454, 8630). 이것은 그들의 애정과 그에 따른 사고의 생명에서 나옵니다. It flows from the life of their affection and consequent thought (n. 2489, 4464, 6206).

 

25. 영들과 천사들은 끊임없이 자기들이 사랑하는 대상을 향해 돌아섭니다. 천국에 있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주님을 향해 돌아섭니다. Spirits and angels turn themselves constantly to their loves, and those in the heavens turn themselves constantly to the Lord (n. 10130, 10189, 10420, 10702). 저 세상 방위는 자신의 얼굴 방향에 따라 제각각이며, 그렇게 정해집니다. 이 세상 방위하고는 다릅니다. Quarters in the other life are to each one in accordance with the direction of his face, and are thereby determined, otherwise than in the world (n. 10130, 10189, 10420, 10702).

 

26. 셀 수 없는 것들이 사랑 안에 담깁니다. 사랑은 자기와 조화를 이루는 모든 것을 자기 자신한테로 모읍니다. Innumerable things are contained in love, and love gathers to itself all things that are in harmony with it (n. 2500, 2572, 3078, 3189, 6323, 7490, 7750).

HH.1.3.13-19, '3장, 천국 안 주님의 신성은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다'.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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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Nuc0bR0HIp4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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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멕은 백팔십이 세에 아들을 낳고 And Lamech lived a hundred eighty and two years, and begat a son; (창5:28)

 

 

526. 여기 ‘라멕’은 아홉 번째 교회를 상징합니다. 이 교회의 퍼셉션, 곧 주님의 신성, 선과 진리에 대한 지각 능력은 너무나 그저 그렇고, 흐릿해서 더 이상 그 다음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곧, 교회가 황폐해진 것이지요. By “Lamech” is here signified a ninth church, wherein the perception of truth and good was so general and obscure that it was next to none, so that the church was vastated.

 

아들’은 어떤 새 교회가 일어남을 상징합니다. By the “son” is signified the rise of a new church.

 

 

527. ‘라멕’에 관한 위의 내용, 곧, 라멕이라는 교회는 진리와 선에 관한 퍼셉션 능력이 그 이전 교회들보다 더 그저 그렇고, 흐릿해서 더 이상 그 다음이 없을 정도로 황폐한 교회였다라는 사실은 앞장에서 이미 언급했고, 또 이어지는 다음 구절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That by “Lamech” is signified a church wherein the perception of truth and good was so general and obscure as to be next to none, consequently a church vastated, appears from what was said in the preceding chapter, and from what follows in the next verse.

 

앞장에서 ‘라멕’은 여기 라멕과 거의 똑같은 걸 상징하는데요, 바로 황폐함입니다. (창4:18-19, 23-24 참조) 그리고 그를 낳은 자 역시 거의 비슷한 이름인 ‘므두사엘’인데요, 이런 걸 보면, 이 이름들이 거의 동일한 것들을 상징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Lamech” in the preceding chapter has nearly the same signification as in this, namely, vastation (concerning which see Gen. 4:18, 19, 23, 24); and he who begat him is also called by nearly the same name, “Methusael,” so that the things signified by the names are nearly the same.

 

18에녹이 이랏을 낳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19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 23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24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창4:18-19, 23-24)

 

므두사엘’과 ‘므두셀라’는 곧 죽게 될 무언가를 상징하며, ‘라멕’은 무엇인가 파괴, 파멸된 것을 상징합니다. By “Methusael” and “Methuselah” is signified something that is about to die; and by “Lamech” what is destroyed.

2021-07-23(D6)-매일예배(AC.526-527, 창5,28), '라멕, 파괴, 파멸, 황폐(vastation)'.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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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2krmAdGWZU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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