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10, AC.107-109

10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Verse 10, And a river went out of Eden to water the garden, and from thence it was parted, and was into four heads.

 

※ 10절 속뜻

 

동산으로 표현된 천적 인간에게 주님의 사랑으로 지혜가 흐르고, 지성으로 온 동산을 적십니다. 주님이 주시는 지성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107.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A river out of Eden)는 사랑에서 나오는 지혜를 의미합니다. ‘에덴은 사랑이기 때문이지요. ‘동산을 적시고(to water the garden)는 지성을 주는 것(to bestow intelligence)이며,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to be thence parted into four heads)는 다음과 같이 네 개의 강을 가지고 지성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A “river out of Eden” signifies wisdom from love, for “Eden” is love; “to water the garden” is to bestow intelligence; to be “thence parted into four heads” is a description of intelligence by means of the four rivers, as follows.

 

 

108. 태고인들은 인간을 동산(a garden)에 비유하면서, 또한 지혜 및 지혜와 관련된 것들을 (rivers)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비유만 한 게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부르기도 했는데요, 그건 그들의 말하는 방식이 그랬기 때문입니다. 훗날 선지자들도 그랬는데요, 그들 역시 가끔 그렇게 비유했고, 그렇게 불렀습니다. 이사야를 보면 말이지요. The most ancient people, when comparing man to a “garden,” also compared wisdom, and the things relating to wisdom, to “rivers”; nor did they merely compare them, but actually so called them, for such was their way of speaking. It was the same afterwards in the prophets, who sometimes compared them, and sometimes called them so. As in Isaiah:

 

10주린 자에게 네 심정이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네 어둠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11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사58:10-11) Thy light shall arise in darkness, and thy thick darkness shall be as the light of day, and thou shalt be like a watered garden, and like an outlet of waters, whose waters lie not. (Isa. 58:10–11)

 

신앙과 사랑을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들, 곧 거듭난 사람들에 대해 말하면서 Treating of those who receive faith and love. Again, speaking of the regenerate:

 

그 벌어짐이 골짜기 같고 강가의 동산 같으며 여호와께서 심으신 침향목들(주2)같고 물가의 백향목들 같도다 (민24:6) As the valleys are they planted, as gardens by the river’s side; as lignaloes2 which Jehovah hath planted, as cedar trees beside the waters. (Num. 24:6)

 

예레미야를 보면 In Jeremiah:

 

7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8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렘17:7-8) Blessed is the man who trusteth in Jehovah; he shall be as a tree planted by the waters, and that sendeth forth her roots by the river. (Jer. 17:7–8)

 

에스겔에서는 거듭난 사람을 동산과 나무로 비유하는 대신, 그렇게 불렀습니다. In Ezekiel the regenerate are not compared to a garden and a tree, but are so called:

 

4물들이 그것을 기르며 깊은 물이 그것을 자라게 하며 강들이 그 심어진 곳을 둘러 흐르며 둑의 물이 들의 모든 나무에까지 미치매, 7그 뿌리가 큰 물가에 있으므로 그 나무가 크고 가지가 길어 모양이 아름다우매 8하나님의 동산의 백향목이 능히 그를 가리지 못하며 잣나무가 그 굵은 가지만 못하며 단풍나무가 그 가는 가지만 못하며 하나님의 동산의 어떤 나무도 그 아름다운 모양과 같지 못하였도다 9내가 그 가지를 많게 하여 모양이 아름답게 하였더니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는 모든 나무가 다 시기하였느니라 (겔31:4, 7-9) The waters made her to grow, the deep of waters uplifted her, the river ran round about her plant, and sent out its channels to all the trees of the field; she was made beautiful in her greatness, in the length of her branches, for her root was by many waters. The cedars in the garden of God did not hide her; the fir trees were not like her boughs, and the plane trees were not like her branches, nor was any tree in the garden of God equal to her in her beauty; I have made her beautiful by the multitude of her branches, and all the trees of Eden that were in the garden of God envied her. (Ezek. 31:4, 7–9)

 

이들 구절에서 분명한 사실은 태고인들은 사람, 즉 사람 안에 있는 것들을 ‘동산’(a garden)에 비유하면서 이 동산을 적실 수 있는 ‘물’(the waters)과 ‘강’(rivers)을 추가했다는 것입니다. 이들 물과 강으로 동산, 즉 사람을 성장시킬 수 있는 것들을 의미하면서 말이지요.From these passages it is evident that when the most ancient people compared man, or the things in man, to a “garden,” they added the “waters” and “rivers” by which he might be watered, and by these waters and rivers meant such things as would cause his growth.

 

 

109. 비록 지혜와 지성이 사람한테서 보이지만, 지금까지 말씀드린 대로 이들은 오직 주님께만 속한 것이라는 사실이 에스겔을 보면 유사 표상들(similar representatives)을 통해 분명히 선포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That although wisdom and intelligence appear in man, they are, as has been said, of the Lord alone, is plainly declared in Ezekiel by means of similar representatives:

 

1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내리더라, 8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9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12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 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겔47:1, 8-9, 12) Behold, waters issued out from under the threshold of the house eastward; for the face of the house is the east; and he said, These waters issue out to the border toward the east, and go down into the plain, and come to the sea, which being led into the sea, the waters shall be healed; and it shall come to pass that every living soul which creepeth, whithersoever the water of the rivers shall come, shall live. And by the river upon the bank thereof, on this side and on that side, there come up all trees for food, whose leaf shall not fade, neither shall the fruit thereof be consumed; it is born again in its months, because these its waters issue out of the sanctuary, and the fruit thereof shall be for food, and the leaf thereof for medicine. (Ezek. 47:1, 8–9, 12)

 

여기서 주님은 ‘동쪽’(the east)과, 물과 강이 나오는 ‘성소’(the sanctuary)로 상징되는데요, 요한계시록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Here the Lord is signified by the “east,” and by the “sanctuary,” whence the waters and rivers issued. In like manner in John:

 

1또 그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2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계22:1-2) He showed me a pure river of water of life, bright as crystal, going forth out of the throne of God and of the lamb. In the midst of the street thereof, and of the river on this side and that, was the tree of life, which bare twelve [manner of] fruits, and yielded her fruit every month; and the leaf of the tree was for the healing of the nations. (Rev.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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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2:9, AC.102-106

9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Verse 9, And out of the ground made Jehovah God to grow every tree desirable to behold, and good for food; the tree of lives also, in the midst of the garden; and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 9절 속뜻

 

주님은 천적 인간에게 퍼셉션을 허락하시고, 그의 안을 동산 삼아 그 안에 선과 진리, 사랑과 신앙, 감각과 지식의 나무들을 두셨습니다.

 

 

102. 나무(A tree)는 퍼셉션(perception)을 상징합니다. ‘보기에 아름다운 나무(a tree desirable to behold)는 진리에 관한 퍼셉션(the perception of truth), ‘먹기에 좋은 나무(a tree good for food)는 선에 관한 퍼셉션(the perception of good), ‘생명나무(the tree of lives)는 사랑과 이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love and the faith thence derived),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는 감각적인 것, 즉 단순한 기억-지식에서 나오는 신앙(faith derived from what is sensuous, that is, from mere memory-knowledge)을 상징합니다. A “tree” signifies perception; a “tree desirable to behold,” the perception of truth; a “tree good for food,” the perception of good; the “tree of lives,” love and the faith thence derived;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faith derived from what is sensuous, that is, from mere memory-knowledge.

 

 

103. 여기서 나무가 퍼셉션을 상징하는 이유는 천적 인간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영적 인간이 주제라면 그때는 달라지는데요, 주제에 따라 서술 성격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The reason why “trees” here signify perceptions is that the celestial man is treated of, but it is otherwise when the subject is the spiritual man, for on the nature of the subject depends that of the predicate.

 

 

104. 오늘날에는 퍼셉션이라는 게 무엇인지(what perception is)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오직 주님으로부터만 오는 어떤 내적 느낌, 감각인데요, 어떤 것의 참되고 선한 여부를 아는 것(a certain internal sensation, from the Lord alone, as to whether a thing is true and good)입니다. 이는 태고교회에는 아주 잘 알려져 있던 것입니다. 천사들의 경우, 그들은 이 퍼셉션이 매우 완벽한데요, 그들은 이 퍼셉션으로 어떤 것의 참되고 선한 여부와 그것이 주님에게서 오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에게서인지, 그리고 그들에게 다가오는 사람의 퀄러티(the quality of anyone)를 단순한 그의 접근과 그가 가진 생각 하나만으로도 알며, 또 그에 관한 지식을 가질 정도입니다. 영적 인간(The spiritual man)은 퍼셉션은 전혀 없고, 대신 양심이라는 게 있습니다. 죽은 상태에 있는 사람(A dead man)은 이 양심조차 없지요. 많은 사람이 양심이라는 게 뭔지 모르며, 하물며 퍼셉션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At this day it is unknown what perception is. It is a certain internal sensation, from the Lord alone, as to whether a thing is true and good; and it was very well known to the most ancient church. This perception is so perfect with the angels, that by it they are aware and have knowledge of what is true and good; of what is from the Lord, and what from themselves; and also of the quality of anyone who comes to them, merely from his approach, and from a single one of his ideas. The spiritual man has no perception, but has conscience. A dead man has not even conscience; and very many do not know what conscience is, and still less what perception is.

 

 

105. 생명나무(the tree of lives)는 사랑과 이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love and the faith thence derived)이며, ‘동산 가운데(in the midst of the garden)는 속 사람의 의지 안(in the will of the internal man)입니다. 의지라는 것은, 말씀에서는 마음(the heart)이라고 하는데, 사람과 천사와 함께 주님의 주된 소유(the primary possession of the Lord)입니다. 이 의지라는 것이 비록 사람의 것인 양 여기저기 기술되고는 있지만, 사실 사람이란 아무도 스스로는 선을 행할 수 없다는 걸 생각하면, 이 의지, 즉 마음이라는 것은 사실은 사람의 것이 아니며, 탐욕(cupidity), 사람들은 이걸 의지라고 하는데, 이 탐욕이 바로 사람의 것입니다. ‘동산 가운데, 생명나무가 있는 데지요, 여기가 의지이며, 그리고 인간한테는 의지는 전혀, 대신 탐욕만 있을 뿐이므로, ‘생명나무는 참으로 주님의 자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모든 사랑과 신앙, 결과적으로 모든 생명의 근원이신 분입니다. The “tree of lives” is love and the faith thence derived; “in the midst of the garden” is in the will of the internal man. The will, which in the Word is called the “heart,” is the primary possession of the Lord with man and angel. But as no one can do good of himself, the will or heart is not man’s, although it is predicated of man; cupidity, which he calls will, is man’s. Since then the will is the “midst of the garden,” where the tree of lives is placed, and man has no will, but mere cupidity, the “tree of lives” is the mercy of the Lord, from whom comes all love and faith, consequently all life.

 

 

106. 그러나 동산의 나무(the tree of the garden), 즉 퍼셉션(perception), ‘생명나무(the tree of lives), 즉 사랑과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he tree of knowledge), 즉 감각적인 것, 그리고 단지 기억-지식일 뿐인 것에서 시작하는 신앙에 대해서는 이어지는 페이지들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But the nature of the “tree of the garden,” or perception; of the “tree of lives,” or love and the faith thence derived; and of the “tree of knowledge,” or faith originating in what is sensuous and in mere memory-knowledge, will be shown in the following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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