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18, AC.138-141

18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Verse 18, And Jehovah God said, It is not good that the man should be alone, I will make him a help as with him.

 

※ 18절 속뜻

 

주님의 인도 아래 살되 무슨 로봇이나 갓난아이처럼 아주 작은 것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그런 유약한 상태가 아닌, 건강한 자아, 성장한 자아를 가지고 자발적으로 주님의 인도 아래 천사들처럼 사는 것, 이를 위해 주님은 천적 인간에게 자치를 허락하시며, 그의 자치를 돕도록 도우십니다. 이것을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신 것입니다.

 

 

138. 혼자(alone)는 사람이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만족하는 대신, 자기 자신(self)과 세상의 인도를 받으며 살기를 간절히 원했음을,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a help as with him)은 사람의 고유 본성(man’s own)을 의미하는데, 이는 뒤에서 여자가 된 갈빗대(a rib built into a woman)라고 하는 것입니다. By “alone” is signified that he was not content to be led by the Lord, but desired to be led by self and the world; by a “help as with him” is signified man’s own, which is subsequently called a “rib built into a woman.”

 

 

139. 고대에는 천적 인간들로서 주님의 인도하심 아래(under the Lord’s guidance as celestial men)홀로 산다(to dwell alone)는 말을 듣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더 이상 악이나 악령에 감염되지 않았기 때문인데요, 이것을 또한 유대교회에서는 가나안 족속들을 몰아낸 후, 이스라엘이 혼자 사는 걸로 표상하고 있지요. 그래서 말씀에서 주님의 교회를 종종 홀로, 혼자(alone)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에서처럼 말입니다. In ancient times those were said to “dwell alone” who were under the Lord’s guidance as celestial men, because such were no longer infested by evils, or evil spirits. This was represented in the Jewish church also by their dwelling alone when they had driven out the nations. On this account it is sometimes said of the Lord’s church, in the Word, that she is “alone,” as in Jeremiah: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는 일어나 고요하고도 평안히 사는 백성 곧 성문이나 문빗장이 없이 홀로 사는 국민을 치라 (렘49:31) Arise, get you up to a quiet nation that dwelleth confidently, saith the Lord, which hath neither gates nor bar; they dwell alone. (Jer. 49:31)

 

모세오경에서는 In the prophecy of Moses:

 

이스라엘이 안전히 거하며 야곱의 샘은 곡식과 새 포도주의 땅에 홀로 있나니 곧 그의 하늘이 이슬을 내리는 곳에로다 (신33:28) Israel hath dwelt confidently alone. (Deut. 33:28)

 

그리고 계속해서 발람의 예언을 보면 더 분명하게 드러나지요. And still more clearly in the prophecy of Balaam:

 

내가 바위 위에서 그들을 보며 작은 산에서 그들을 바라보니 이 백성은 홀로 살 것이라 그를 여러 민족 중의 하나로 여기지 않으리로다 (민23:9) Lo, the people dwelleth alone, and shall not be reckoned among the nations, (Num. 23:9)

 

여기 여러 민족(nations)은 악을 의미합니다. 이 태고교회 후손은 홀로 살기, 즉 천적 인간이 되거나 천적 인간으로서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려 하거나 하지 않고, 대신 유대교회와 마찬가지로 여러 민족 중 하나 되기를, 즉 열방 가운데서 그들과 함께 지내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이 이것, 곧 악을 원했기 때문에,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it is not good that the man should be alone) 하신 것입니다. 마음속으로 원한다는 얘기는 이미 악 가운데 있다는 얘기이기 때문인데, 그렇게 그들은 원하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where “nations” signify evils. This posterity of the most ancient church was not disposed to dwell alone, that is, to be a celestial man, or to be led by the Lord as a celestial man, but, like the Jewish church, desired to be among the nations. And because they desired this, it is said, “it is not good that the man should be alone,” for he who desires is already in evil, and it is granted him.  

 

※ 그러므로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는 그 속뜻으로 다시 표현하면, ‘태고교회의 후손은 천적 인간으로서 오직 주님의 인도하심만으로 살기를 원치 않았다’가 되겠습니다.

 

 

140. 돕는 배필(a help as with him)이 사람의 고유 본성(man’s own)을 의미한다는 것은 이것의 본질(the nature of this own) 및 그 이어지는 내용 둘 다를 보면 분명합니다. 여기서 다루는 교회인(the man of the church)은 성품이 괜찮았으므로 어떤 또 하나의 본성(an own)이 그에게 주어졌는데, 이 새로운 본성은 마치 처음부터 그 자신의 것처럼 보이는(it appeared as it were his own) 그런 본성이었고, 그래서 돕는 배필이라고 한 것입니다. That by “a help as with him” is signified man’s own, is evident both from the nature of this own, and from what follows. As however the man of the church who is here treated of was well disposed, an own was granted him, but of such a kind that it appeared as it were his own, and therefore it is said “a help as with him.

 

 

141. 인간의 고유 본성(man’s own)에 관해 세 종류의 인간, 곧 육적, 세속적 인간(the corporeal and worldly man)과 영적 인간(the spiritual man), 그리고 천적 인간(the celestial man)을 가지고 설명할 때, 무수히 많은 걸 말할 수 있습니다. 먼저 육적, 세속적 인간의 경우, 그의 본성은 그가 가진 전부로서, 그는 자기 자신밖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앞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그는 만일 자기가 이걸 잃으면 자기는 소멸하고 말 것이라고 여길 정도입니다. 두 번째인 영적 인간도 비슷한데요, 비록 그가 주님은 만유의 생명이시며, 사람들에게 지혜와 이해할 수 있는 능력(wisdom and understanding)을 주시고, 그 결과, 생각하는 능력과 그걸 행할 수 있는 힘(the power to think and to act)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러나 그의 이런 지식은 아직은 그의 입술 상의 고백일 뿐 마음으로 이어지는 믿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천적 인간은 주님은 만유의 생명이시며, 생각하고 행동할 힘 주시는 분이심을 알아차리는데요(discerns), 그는 이것이 사실임을 실제로 지각하기(perceives) 때문입니다. 그는 결코 자신의 본성을 원치 않는데요, 분명 그에게도 주님이 주신 어떤 본성, 곧 선하고 진실한 것을 아는 모든 퍼셉션(all perception of what is good and true) 및 모든 행복과 결합한 본성이 있는데도 말입니다. 천사들이 바로 이런 본성 가운데 있으며, 그래서 그들은 동시에 가장 내적인 평화와 평온(the highest peace and tranquility) 가운데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본성 안에 주님의 것들(hings which are the Lord’s)이 있기 때문인데, 주님은 그들의 본성을 다스리시거나, 혹은 그들의 본성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이 본성은 가장 천적인 본성 그 자체(the veriest celestial itself)이지만, 그러나 육적 인간의 것은 지옥적입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나중에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Innumerable things might be said about man’s own in describing its nature with the corporeal and worldly man, with the spiritual man, and with the celestial man. With the corporeal and worldly man, his own is his all, he knows of nothing else than his own, and imagines, as before said, that if he were to lose this own he would perish. With the spiritual man also his own has a similar appearance, for although he knows that the Lord is the life of all, and gives wisdom and understanding, and consequently the power to think and to act, yet this knowledge is rather the profession of his lips than the belief of his heart. But the celestial man discerns that the Lord is the life of all and gives the power to think and to act, for he perceives that it is really so. He never desires his own, nevertheless an own is given him by the Lord, which is conjoined with all perception of what is good and true, and with all happiness. The angels are in such an own, and are at the same time in the highest peace and tranquility, for in their own are those things which are the Lord’s, who governs their own, or them by means of their own. This own is the veriest celestial itself, whereas that of the corporeal man is infernal. But concerning this own more hereafter.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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