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17, AC.126-130
17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Verse 17. But of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thou shalt not eat of it; for in the day that thou eatest thereof, dying thou shalt die.
※ 17절 속뜻
주님의 신비는 오직 퍼셉션으로만 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천적인 것이 파괴되기 때문입니다.
126. 이 말씀은 방금 설명한 말씀과 함께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의미하는데요, 그것은 주님에게서 나오는 모든 퍼셉션(every perception derived from the Lord)을 가지고 참되고 선한 것(what is true and good)에 익숙해지는 것은 허용되지만, 자아와 세상에서 나오는(from self and the world) 걸 가지고 그러면 안 된다는, 즉 우리는 감각과 기억에 속한 것들(the things of sense and of the memory [per sensualia et scientifica])을 가지고 신앙의 신비들(the mysteries of faith)을 알아보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럴 경우, 신앙의 천적인 것(the celestial of faith)이 파괴되기 때문입니다. These words, taken together with those just explained, signify that it is allowable to become acquainted with what is true and good by means of every perception derived from the Lord, but not from self and the world; that is, we are not to inquire into the mysteries of faith by means of the things of sense and of the memory [per sensualia et scientifica], for in this case the celestial of faith is destroyed.
127. 감각과 기억에 속한 걸 가지고 신앙의 신비를 알아보고 싶어 하는 것은 다음 장에서 다룰, 태고교회 후손들의 타락, 몰락(the fall of the posterity of the most ancient church)의 원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모든 교회가 그렇게 되는 원인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했다가는 생활, 삶, 생명(life)의 거짓뿐 아니라 악도 함께 오기 때문입니다. A desire to investigate the mysteries of faith by means of the things of sense and of the memory was not only the cause of the fall of the posterity of the most ancient church, as treated of in the following chapter, but it is also the cause of the fall of every church; for hence come not only falsities, but also evils of life.
128. 세속적이고 육적인 사람(The worldly and corporeal man, 肉的)은 속으로 말하기를, 내가 만일 신앙과 그 관련된 모든 걸 감각(the things of sense), 즉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만질 수 있게 해서 나로 하여금 믿게 하거나, 아니면, 기억(those of the memory [scientifica]), 즉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는 지식과 일반 상식을 가지고 나로 하여금 이해할 수 있게 하거나 하지 않으면 나는 안 믿을꺼야라고 말이지요. 또 그는 자연적인 것과 영적인 것이 서로 절대 반대일 리 없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스스로 굳게 확신하는데요, 그는 이렇게 천국과, 그리고 신에 속한 것(what is celestial and Divine)을 감각에 속한 걸 가지고 배우기를(being instructed from things of sense) 원하는데, 이는 마치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for a camel to go through the eye of a needle)만큼이나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가 이런 식으로 지혜로워지기를 원하면 원할수록 그는 더욱더 스스로를 눈멀게 하여 결국엔 아무것도, 심지어 어떤 영적인 것(anything spiritual)의 존재와 영생(eternal life)의 존재에 대해서조차 믿지 않게 되는데요, 이런 결과는 그가 가정하고 있는 원리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to eat of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이며, 누구든지 더 많이 먹을수록 그는 더욱 죽게 되지요. 그러나 세상이 아닌, 주님을 통해서 지혜로워지기를 원하는 사람(he who would be wise from the Lord, and not from the world)은 속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곧 말씀에서 주님이 하신 말씀들은 그것이 진리이기 때문에 반드시 믿어야 한다고 말이지요. 그는 이런 원리로 자신의 생각(thoughts)을 조절하며, 계속해서 이성, 지식, 감각 및 자연에 속한 것들을 통해(by things of reason, of knowledge, of the senses, and of nature [per rationalia, scientifica, sensualia et naturalia]) 결국 자신의 선택이 맞다 확신합니다. 아니다 싶은 것들은 버리면서 말입니다. The worldly and corporeal man says in his heart, If I am not instructed concerning the faith, and everything relating to it, by means of the things of sense, so that I may see, or by means of those of the memory [scientifica], so that I may understand, I will not believe; and he confirms himself in this by the consideration that natural things cannot be contrary to spiritual. Thus he is desirous of being instructed from things of sense in what is celestial and Divine, which is as impossible as it is for a camel to go through the eye of a needle; for the more he desires to grow wise by such means, the more he blinds himself, till at length he believes nothing, not even that there is anything spiritual, or that there is eternal life. This comes from the principle which he assumes. And this is to “eat of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of which the more anyone eats, the more dead he becomes. But he who would be wise from the Lord, and not from the world, says in his heart that the Lord must be believed, that is, the things which the Lord has spoken in the Word, because they are truths; and according to this principle he regulates his thoughts. He confirms himself by things of reason, of knowledge, of the senses, and of nature [per rationalia, scientifica, sensualia et naturalia], and those which are not confirmatory he casts aside.
129. 인간은 그가 세운 원리, 원칙(the principles he assumes)에 의해 지배된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다 아는데요, 심지어 그 원칙이 거짓이어도 그의 모든 지식과 이성 능력은 그 원칙을 편듭니다(all his knowledge and reasoning favor his principles). 그 원칙을 지지하려는 수많은 생각(innumerable considerations)이 그의 마음에 더해지고, 그렇게 해서 그는 그 거짓 원칙을 확신하는 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원칙, 가령 볼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는 그 어떤 것도 믿어서는 안 돼!’(a principle that nothing is to be believed until it is seen and understood)와 같은 원칙을 가진 사람은 결코 믿음이라는 걸 가질 수가 없는데요, 왜냐하면, 영적이고 천적인 것들(spiritual and celestial things)은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있거나 머릿속으로 상상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참된 질서, 순서(the true order)는 사람이 주님, 곧 주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그리고 뒤따르는 모든 것으로 말미암아 지혜로워지는 것(for man to be wise from the Lord, that is, from his Word, and then all things follow)입니다. 이렇게 되면 그는 눈이 밝아지는데(enlightened), 심지어 이성과 기억-지식에 관한 것들(in matters of reason and of memory-knowledge [in rationalibus et scientificis])까지도 그렇게 됩니다. 그런다고 무슨 과학 배우는 걸 결코 금하거나 하지는 않는데요, 과학은 삶에 매우 유용하며 즐겁기 때문이며, 심지어 그가 신앙 안에 있지만 세상 학자들처럼 생각하고 말해도 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한 가지, 그렇다 하더라도 ‘주님의 말씀을 믿기’(to believe the Word of the Lord)라는 원칙 안에서 그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능한 한, 자연적 진리를 가지고 학자들 세계에서 쓰는 말로 영적, 천적 진리들을 확증해야 한다는 것(to confirm spiritual and celestial truths by natural truths, in terms familiar to the learned world)입니다. 그렇게 그의 출발점은 주님이셔야 하며, 결코 자기 자신이어서는 안 됩니다. 그 이유는 전자는 생명이지만, 후자는 죽음이기 때문이지요. Everyone may know that man is governed by the principles he assumes, be they ever so false, and that all his knowledge and reasoning favor his principles; for innumerable considerations tending to support them present themselves to his mind, and thus he is confirmed in what is false. He therefore who assumes as a principle that nothing is to be believed until it is seen and understood, can never believe, because spiritual and celestial things cannot be seen with the eyes, or conceived by the imagination. But the true order is for man to be wise from the Lord, that is, from his Word, and then all things follow, and he is enlightened even in matters of reason and of memory-knowledge [in rationalibus et scientificis]. For it is by no means forbidden to learn the sciences, since they are useful to his life and delightful; nor is he who is in faith prohibited from thinking and speaking as do the learned of the world; but it must be from this principle—to believe the Word of the Lord, and, so far as possible, confirm spiritual and celestial truths by natural truths, in terms familiar to the learned world. Thus his starting point must be the Lord, and not himself; for the former is life, but the latter is death.
130. 세상을 통해 지혜로워지기를 원하는 사람(He who desires to be wise from the world)은 그의 ‘동산’(garden)에 감각과 기억-지식에 관한 것들(the things of sense and of memory-knowledge [sensualia et scientifica])이 있고,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the love of self and the love of the world)이 그의 ‘에덴’(Eden)이며, 그의 ‘동쪽’(east)은 서쪽, 곧 자기 자신(himself)입니다. 그에게 있어 ‘유브라데 강’(river Euphrates)은 그가 가진 모든 기억-지식인데 이는 정죄 받는 것(all his memory-knowledge, which is condemned)입니다. 그의 ‘두 번째 강’(second river), 거기에 ‘앗수르’(Assyria)가 있는데, 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정신 못 차리게 하는, 거짓을 낳는 논리 능력(infatuated reasoning productive of falsities)입니다. 그의 ‘세 번째 강’(third river), ‘구스’(Ethiopia)지요, 악과 악으로 말미암는 거짓에 관한 원리들인데, 이게 그가 가진 신앙 지식들(the principles of evil and falsity thence derived, which are the knowledges of his faith)입니다. 그의 ‘네 번째 강’(fourth river)은 거기서 나오는 지혜(the wisdom thence derived)이며, 말씀에서는 이걸 ‘마법’(magic)이라고 하지요. 이런 이유로 ‘애굽’(Egypt)은, 애굽은 기억-지식을 말하는데, 이는 나중에 마법이 되는 지식들(memory-knowledge—after the knowledge became magical)을 말하지요, 결론적으로 애굽은 그런 사람, 곧 말씀에서 볼 수 있듯, 자아로부터 지혜로워지기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he desires to be wise from self)을 의미합니다. 이런 사람에 관해 에스겔에서는, He who desires to be wise from the world has for his “garden” the things of sense and of memory-knowledge [sensualia et scientifica]; the love of self and the love of the world are his “Eden”; his “east” is the west, or himself; his “river Euphrates” is all his memory-knowledge, which is condemned; his “second river,” where is “Assyria” is infatuated reasoning productive of falsities; his “third river,” where is “Ethiopia” is the principles of evil and falsity thence derived, which are the knowledges of his faith; his “fourth river” is the wisdom thence derived, which in the Word is called “magic.” And therefore “Egypt”—which signifies memory-knowledge—after the knowledge became magical, signifies such a man, because, as may be seen from the Word, he desires to be wise from self. Of such it is written in Ezekiel:
3너는 말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애굽의 바로 왕이여 내가 너를 대적하노라 너는 자기의 강들 가운데에 누운 큰 악어라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나를 위하여 만들었다 하는도다, 9애굽 땅이 사막과 황무지가 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네가 스스로 이르기를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만들었다 하도다 (겔29:3, 9) Thus hath said the Lord Jehovih, Behold, I am against thee, Pharaoh king of Egypt, the great whale that lieth in the midst of his rivers, who hath said, My river is mine own, and I have made it for myself. And the land of Egypt shall be for a solitude, and a waste, and they shall know that I am Jehovah, because he hath said, The river is mine, and I have made it. (Ezek. 29:3, 9)
같은 선지서에서, 그런 사람들을 ‘지옥에 있는 에덴의 나무들’(trees of Eden in hell)이라고도 하는데요, 그 본문에서 바로(Pharaoh), 애굽인이지요, 바로 역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Such men are also called “trees of Eden in hell,” in the same prophet, where also Pharaoh, or the Egyptian, is treated of in these words:
16내가 그를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스올에 떨어뜨리던 때에 백성들이 그 떨어지는 소리로 말미암아 진동하게 하였고 물을 마시는 에덴의 모든 나무 곧 레바논의 뛰어나고 아름다운 나무들이 지하에서 위로를 받게 하였느니라, 18너의 영광과 위대함이 에덴의 나무들 중에서 어떤 것과 같은고 그러나 네가 에덴의 나무들과 함께 지하에 내려갈 것이요 거기에서 할례를 받지 못하고 칼에 죽임을 당한 자 가운데에 누우리라 이들은 바로와 그의 모든 군대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라 (겔31:16, 18) When I shall have made him descend into hell with them that descend into the pit; to whom art thou thus made like in glory and in greatness among the trees of Eden? yet shalt thou be made to descend with the trees of Eden into the lower earth, in the midst of the uncircumcised, with them that be slain by the sword. This is Pharaoh and all his crew, (Ezek. 31:16, 18)
여기서 ‘에덴의 나무들’(the trees of Eden)은 말씀에서 나오는 지식들(knowledges [scientifica et cognitiones] from the Word)을 가리키는데, 저들, 곧 스스로 지혜로워지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이런 지식들조차 이성 능력을 발휘(by reasonings), 자기를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기 위해서만 가까이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말씀, 곧 주님을 모독하고 있는 것입니다.where the “trees of Eden” denote knowledges [scientifica et cognitiones] from the Word, which they thus profane by reason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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