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개념이 제거될 때 남는 것은 그때 존재했던 것들에 대한 상태개념이다. 본 장에서 아주 자주 언급되는 ‘(days)과 ‘(years)에 대한 경우가 바로 이런 경우다.

 

4절,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the days of man after he begat Seth were eight hundred years; and he begat sons and daughters.

 

488

(days)은 일반적인 상태들을, ‘해, 연한(years)은 구체적인 상태들을 의미한다는 것은(AC.482, 487) 말씀, 에스겔에 보면 나옵니다. That “days” signify states in general, and “years” states in special, appears from the Word, as in Ezekiel:

 

네 날이 가까웠고 네 연한이 찼도다 (겔22:4) Thou hast caused thy days to draw near, and art come even unto thy years, (Ezek. 22:4)

 

혐오스러운 짓들을 저지르고, 자기들의 죄를 꽉꽉 채우는 사람들에 관해 말씀하시면서 그들의 상태를 일반적으로는 ‘’로, 구체적으로는 ‘연한’으로 기술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시편에 speaking of those who commit abominations, and fill up the measure of their sins, of whose state in general are predicated “days,” and in special “years.” So in David:

 

주께서 왕에게 장수하게 하사 그의 나이가 여러 대에 미치게 하시리이다 (시61:6) Thou shalt add days to the days of the king, and his years as of generation and generation, (Ps. 61:6)

 

주님과 주님의 나라에 관한 말씀 중에 나오는 ‘장수(, days)와 ‘나이(, years) 역시 그 나라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다시 speaking of the Lord and of his kingdom, where also “days” and “years” signify the state of his kingdom. Again:

 

내가 옛날 곧 지나간 세월을 생각하였사오며 (시77:5) I have considered the “days of old,” the years of the ages, (Ps. 77:5)

 

여기 ‘옛날(the days of old)은 태고교회의 상태를, ‘지나간 세월(the years of the ages)은 고대교회의 상태를 말합니다. 이사야입니다. where “days of old” signify states of the most ancient church, and “years of the ages,” states of the ancient church. In Isaiah:

 

이는 내 원수 갚는 날이 내 마음에 있고 내가 구속할 해가 왔으나 (사63:4) The day of vengeance is in my heart, and the year of my redeemed is come, (Isa. 63:4)

 

마지막 때에 관한 말씀인데, 여기 ‘원수 갚는 날(the day of vengeance)은 일종의 저주 상태를, ‘구속할 해(the year of the redeemed)는 일종의 축복 상태를 의미합니다. 다시 speaking of the last times, where the “day of vengeance” signifies a state of damnation, and the “year of the redeemed” a state of blessedness. Again: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사61:2) To proclaim the acceptable year of the Lord, and the day of vengeance of our God; to comfort all that mourn, (Isa. 61:2)

 

여기 ‘’과 ‘’ 둘 다 상태를 의미합니다. 예레미야 애가입니다. where both “days” and “years” signify states. In Jeremiah:

 

우리의 날들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 (애5:21) Renew our days as of old, (Lam. 5:21)

 

여기 보면 분명히 상태를 의미합니다. where state is plainly meant.

 

[2] 요엘입니다. In Joel:

 

1이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됨이니라 이제 임박하였으니 2곧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짙은 구름이 덮인 날이라 이와 같은 것이 옛날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대대에 없으리로다 (욜2:1-2) The day of Jehovah cometh, for it is nigh at hand, a day of darkness and of thick darkness, a day of cloud and of obscurity; there hath not been ever the like, neither shall be after it, even to the years of generation and generation, (Joel 2:1–2)

 

여기 ‘’(day)은 ‘어둡고 캄캄한(of darkness and of thick darkness), ‘짙은 구름이 덮인(of cloud and of obscurity) 상태를 말하는데, 구체적으로는 하나하나의 상태를, 일반적으로는 전체적인 모든 상태를 의미합니다. 스가랴입니다. where “day” signifies a state of darkness and of thick darkness, of cloud and of obscurity, with each one in particular, and with all in general. In Zechariah:

 

9내가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거하리라 10그 날에 너희가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하리라 (슥3:9-10) I will remove the iniquity of that land in one day; in that day shall ye cry a man to his companion under the vine, and under the fig tree. (Zech. 3:9–10)

 

여호와께서 아시는 한 날이 있으리니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 (슥14:7) It shall be one day which is known to Jehovah, not day nor night, and it shall come to pass that at evening time it shall be light, (Zech. 14:7)

 

여기 역시 상태를 의미함이 분명한데요,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인 어떤 날이 있을 것이라 하기 때문입니다. 십계명에 나오는 표현들 가운데에도 같은 게 나옵니다. where it is plain that state is meant, for it is said that there shall be a day that is “neither day nor night, at evening time it shall be light.” The same appears from expressions in the Decalogue: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오직 온전하고 공정한 저울추를 두며 온전하고 공정한 되를 둘 것이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 날이 길리라 (신5:16; 25:15) Honor thy father and thy mother, that thy days may be prolonged, and that it may be well with thee upon the ground, (Deut. 5:16; 25:15)

 

여기 ‘네 날이 길리라(the days prolonged)는 것은 생명의 길이가 아닌, 어떤 행복한 상태를 말합니다. where to have the “days prolonged” does not signify length of life, but a happy state.

 

[3] 겉뜻, 겉 글자의 뜻으로는, ‘’은 마치 시간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일 필요가 꼭 있습니다만, 그러나 속뜻으로는, ‘’은 상태를 가리킵니다. 천사들은, 그들은 말씀의 속뜻, 내적 의미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시간이라는 게 뭔지 모릅니다. 그들에게는 시간을 구분하게 해주는 해와 달이 없기 때문인데, 그래서 그들은 날(days)이 뭔지, 해(years)가 뭔지를 모르며, 대신 상태들과 그 상태들의 변화만 압니다. 그래서 천사들, 말씀의 속뜻, 내적 의미 안에만 있는 천사들 앞에서는, 여기 에스겔에 나오는 말씀 구절의 속뜻처럼 무슨 일이나 시공간에 관련된 것들은 다 사라집니다. 에스겔 이 구절의 겉 글자의 뜻처럼 말입니다. In the literal sense it must needs appear as if “day” signifies time, but in the internal sense it signifies state. The angels, who are in the internal sense, do not know what time is, for they have no sun and moon that distinguish times; consequently they do not know what days and years are, but only what states are and the changes thereof; and therefore before the angels, who are in the internal sense, everything relating to matter, space, and time disappears, as in the literal sense of this passage in Ezekiel:

 

그 날이 가깝도다 여호와의 날이 가깝도다 구름의 날일 것이요 여러 나라들의 때이리로다 (겔30:3) The day is near, even the day of Jehovah is near, a day of cloud; it shall be the time of the nations, (Ezek. 30:3)

 

그리고 요엘서에도 나오는데요 and of this in Joel:

 

슬프다 그 날이여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나니 곧 멸망같이 전능자에게로부터 이르리로다 (욜1:15) Alas for the day! For the day of Jehovah is at hand, and as vastation shall it come, (Joel 1:15)

 

여기 ‘구름의 날(a day of cloud)은 구름, 즉 거짓을, ‘나라들의 때(the day of the nations)는 나라들, 즉 사악함(邪惡, wickedness)을, ‘여호와의 날(the day of Jehovah)은 황폐함(荒廢, vastation)을 의미합니다. 시간개념이 제거될 때 남는 것은 그때 존재했던 것들에 대한 상태개념입니다. 본 장에서 아주 자주 언급되는 ‘(days)과 ‘(years)에 대한 경우가 바로 이런 경우입니다. where a “day of cloud” signifies a cloud, or falsity; the “day of the nations” signifies the nations, or wickedness; the “day of Jehovah” signifies vastation. When the notion of time is removed, there remains the notion of the state of the things which existed at that time. The case is the same with regard to the “days” and “years” that are so often mentioned in this chap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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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백 년’, 구백삼십 세의 속뜻, 숫자들은 그 교회의 여러 상태들에 대한 일종의 설명이나 평가. 이들 숫자들에는 오랜 시간 설명해야 하는 아르카나(arcana), 숨겨진 지혜(秘義)가 들어있다

 

4절,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the days of man after he begat Seth were eight hundred years; and he begat sons and daughters.

 

487

(days)이 일반적으로 때와 상태를 의미한다는 것을 1장에서(AC.23) 보여드렸는데요, 거기에 나오는 창조의 ‘’은 무슨 다른 걸 의미하지 않습니다. 말씀에서 ‘’을 가지고 ‘항상(all time, all units of time)을 표현하는 건 굉장히 자주 있는 일입니다. 본 구절과 이어지는 구절들(5, 8, 11, 14, 17, 20, 23, 27, 31절)을 보면 아주 분명한 것처럼 말입니다. 위 구절들을 보면, 각 구절마다 해당 시대들의 일반적 상태들(the states of the times) 역시 ‘’을 가지고 표현하며, 여기에 ‘(years)까지 등장하면, 이 일련의 해(the seasons of the years), 곧 이 해로 표현된 기간(the time spans)을 통해서는 그 당시 상태들의 퀄러티(the qualities of the states, the nature of the states), 그러니까 특별한 상태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That by “days” are signified times and states in general, was shown in the first chapter, where the “days” of creation have no other signification. In the Word it is very usual to call all time “days,” as is manifestly the case in the present verse, and in those which follow (5, 8, 11, 14, 17, 20, 23, 27, 31); and therefore the states of the times in general are likewise signified by “days”; and when “years” are added, then by the seasons of the years are signified the qualities of the states, thus states in special.

 

※ 예를 들어, 아담의 경우, ‘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5절) 하고 있는데, 여기 나오는 ‘구백삼십’이라는 숫자는 실제 사람 나이가 아닌, 그 시대, 곧 ‘아담’이라는 태고교회의 상태라는 것입니다. 즉 천사들은 ‘구백삼십’이라는 숫자를 통해 ‘아, 태고교회는 저런 교회였구나!’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으로는 단지 ‘구백삼십’이라는 겉 글자, 겉뜻, 숫자만 보일 뿐이지만, 천사들한테는 오히려 이런 숫자는 안 보이고, 대신 그 속에 담긴 속뜻, 곧 아르카나만 보이기 때문입니다.

 

태고인들은 자신들의 어떤 특별한 숫자들을 가지고 그걸로 그 교회와 관련된 여러 가지를 상징했습니다. 그 숫자들은 예를 들면, ‘’(3), ‘일곱’(7), ‘’(10), ‘열둘’(12) 및 이들을 서로 섞어서 생성되는 많은 숫자들인데, 그들은 이 숫자들을 가지고 그 교회의 상태들을 요약, 설명했지요. 이런 이유로, 이들 숫자들에는 오랜 시간 설명해야 하는 아르카나(arcana), 숨겨진 지혜(秘義)가 들어있습니다. 숫자들은 그 교회의 여러 상태들에 대한 일종의 설명이나 평가였습니다. The most ancient people had their numbers, by which they signified various things relating to the church, as the numbers “three,” “seven,” “ten,” “twelve,” and many that were compounded of these and others, whereby they described the states of the church; wherefore these numbers contain arcana which would require much time to explain. It was an account or reckoning of the states of the church.

 

※ 즉, 숫자들은 해당 교회의 여러 상태들을 평가, 표현하는 어떤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천사들의 지혜는 우리의 지혜를 측량할 수 없을 만큼 초월, 예를 들면, 우리가 몇 시간을 말해야 하는 내용을 단 한 마디, 단 한 문장으로 전달한다고 하는데 아마 이 숫자 이야기가 바로 그런 것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같은 양상이 말씀 여러 군데서 발생하는데요, 특히 예언서입니다. 유대교회의 제의들(祭儀, rites)을 보면, 그 안에도 역시 ‘몇 번(, times) 및 ‘어느 정도의 양(, measures)이라는 두 종류의 숫자들이 있었습니다. 가령, 번제(燔祭, sacrifices), 소제(素祭, meat offerings), 봉헌물(oblations) 및 다른 것들과 관련되는 것들인데, 다들 그 드려짐에 따라 그곳의 거룩한 무언가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 ‘팔백’(800)이라는 숫자 및 다음 절에 나오는 ‘구백삼십’(930)이라는 숫자, 그리고 이어지는 구절들에 나오는 햇수들에 들어있는 것들, 즉 그들 고유의 일반적 상태에 적용된, 그들 교회 상태에 생긴 수많은 변화들은 일일이 나열하기엔 그 수가 너무 많습니다. 앞으로 다루게 될 부분에서, 주님의 신적 자비로 기회를 보아 숫자 ‘열둘’(12)까지 단순 숫자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보여드릴 텐데요, 이 단순 숫자들의 의미를 알 수 있기 전까지는, 다른 그보다 더 큰 합성수들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할 겁니다. The same thing occurs in many parts of the Word, especially the prophetical. In the rites of the Jewish church also there were numbers, both of times and measures, as for instance in regard to the sacrifices, meat offerings, oblations, and other things, which everywhere signify holy things, according to their application. The things here involved, therefore, in the number “eight hundred,” and in the next verse, in the number “nine hundred and thirty,” and in the numbers of years in the verses following—namely, the changes of state of their church as applied to their own general state—are too many to be recounted. In a future part of this work, of the Lord’s Divine mercy we shall take occasion to show what the simple numbers up to “twelve” signify, for until the signification of these is known, it would be impossible to apprehend the signification of the compound numb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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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들(, days), ‘해들(, years), 자녀들(子女, sons and daughters)의 속뜻

 

4절,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the days of man after he begat Seth were eight hundred years; and he begat sons and daughters.

 

486

날들(, days)은 일반적으로, ‘해들(, years)은 구체적으로 때들과 상태들(times and states)을 의미하며, ‘자녀들(子女, sons and daughters)은 그들이 지각했던 진리들과 선들을 의미합니다. By “days” are signified times and states in general; by “years,” times and states in special; by “sons and daughters” are signified the truths and goods which they percei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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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위 4 25절의 과는 다른 교회, 교리가 다른 교회들을 같은 이름으로 불렀다

 

3절,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And man lived a hundred and thirty years, and begat into his likeness, after his image, and called his name Seth.

 

485

여기 ‘’은 위 4장 25절의 ‘’과는 다른 교회라는 사실은 435번 글을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교리가 다른 교회들을 같은 이름으로 불렀다는 사실은, 앞 장 17, 18절에 나오는 ‘에녹’과 ‘라멕’을, 여기 5장 21절과 30절에서는 다른 교회들인데 같은 이름인 ‘에녹’, ‘라멕’으로 부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That a different church is here meant by “Seth” from that which was described above (Gen. 4:25), may be seen at n. 435. That churches of different doctrine were called by the same name, is evident from those which in the foregoing chapter (Gen. 4:17–18) were called “Enoch” and “Lamech,” while here other churches are in like manner called “Enoch” and “Lamech” (Gen. 5:21, 30).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창4:25)

 

17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18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창4:17-18)

 

21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30라멕은 노아를 낳은 후 오백구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창5:2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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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h)이라는 교회는 태고교회와 아주 흡사했었다

 

3절,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And man lived a hundred and thirty years, and begat into his likeness, after his image, and called his name Seth.

 

484

(Seth)이라는 교회는 태고교회와 아주 흡사했었다는 사실은 이 교회에 대하여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라 하는 걸 보면 분명합니다. ‘모양’이라는 말은 신앙과, ‘형상’이라는 말은 사랑과 관련됩니다. 이 교회가 사랑과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에 관하여 태고교회와 같지 않았다는 사실은, 방금 앞서 말씀드린,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하신 말씀,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AC.476), 이 말씀은 여섯째 날 상태에 있는 영적 인간이라는 의미인데요, 여섯째 날 상태에 있는 영적 인간, 즉 사랑이 주 원리라기보다는 여전히 신앙이 사랑과 결합된 상태가 바로 이 사람의 모양이라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That the church called “Seth” was very nearly like the most ancient church is evident from its being said that the man begat in his likeness, according to his image, and called his name Seth; the term “likeness” having relation to faith, and “image” to love; for that this church was not like the most ancient church with regard to love and its derivative faith, is plain from its being said just before, “Male and female created he them, and blessed them, and called their name man,” by which is signified the spiritual man of the sixth day, as was said above, so that the likeness of this man was to the spiritual man of the sixth day, that is, love was not so much the principal, but still faith was conjoined with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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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노스’, ‘게난’, ‘마할랄렐’, ‘야렛’, ‘에녹’, ‘므두셀라’, ‘라멕’, ‘노아로 이어지는 이름들은 매우 많은 교회들을 의미하는데, 그중 첫 번째, 제일의 교회를 사람이라 하였다. 이들 교회들의 가장 주된 특징은 퍼셉션이었고, 그런 이유로, 그 시절 교회들 간의 차이는 주로 퍼셉션의 차이였다.

 

3절,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And man lived a hundred and thirty years, and begat into his likeness, after his image, and called his name Seth.

 

483

다음과 같은 이름들, 곧, ‘’, ‘에노스’, ‘게난’, ‘마할랄렐’, ‘야렛’, ‘에녹’, ‘므두셀라’, ‘라멕’, ‘노아’로 이어지는 이름들은 매우 많은 교회들을 의미하는데, 그중 첫 번째, 제일의 교회를 ‘사람’이라 하였습니다. 이들 교회들의 가장 주된 특징은 퍼셉션이었고, 그런 이유로, 그 시절 교회들 간의 차이는 주로 퍼셉션의 차이였습니다. 이쯤에서 퍼셉션에 관한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은데요, 천국 그 어디에서든 천국을 다스리는 건 선과 진리에 관한 퍼셉션 말고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 퍼셉션은 어느 두 커뮤니티도 유사한 퍼셉션을 누리고 있지 않을 정도로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하며, 도저히 설명 불가한 것인데요, 그 이유는 천국에 존재하는 퍼셉션들은 (Genus) 종(, Species)으로 분류되며, 속만으로도 셀 수가 없는데, 그 각각의 속에 속하는 종 역시 헤아릴 수 없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에 관하여는 주님의 신적 자비, 곧 주님의 허락을 받아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AC.1383-1400, 1504-1520) By the names which follow: “Seth,” “Enosh,” “Kenan,” “Mahalalel,” “Jared,” “Enoch,” “Methuselah,” “Lamech,” “Noah,” are signified so many churches, of which the first and principal was called “man.” The chief characteristic of these churches was perception, wherefore the differences of the churches of that time were chiefly differences of perception. I may here mention concerning perception, that in the universal heaven there reigns nothing but a perception of good and truth, which is such as cannot be described, with innumerable differences, so that no two societies enjoy similar perception; the perceptions there existing are distinguished into genera and species, and the genera are innumerable, and the species of each genus are likewise innumerable; but concerning these, of the Lord’s Divine mercy hereafter.

 

셀 수 없이 많은 속이 존재하고, 그 각 속에 딸린 종 또한 셀 수 없이 많으며, 더욱이 개별 종 안에서도 셀 수 없는 다양함이 있기 때문에, 분명한 사실은 천적, 영적인 것들에 관해 오늘날 세상이 알고 있다는 게 얼마나 미미한지, 미미하다 못해 거의 없을 정도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심지어 퍼셉션이라는 게 뭔지도 모르며, 만일 들어도 무슨 그런 것이 존재하느냐 하며 안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다른 것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태고교회는 주님의 천적 나라를 표현했습니다. 퍼셉션의 일반적, 구체적 아주 미세한 차이들에서조차 말이지요. 하지만 오늘날은 퍼셉션의 본성에 관해 가장 대충으로도 전혀 알려진 바 없기 때문에, 이들 교회들의 퍼셉션 그 속과 종 어떤 경우에 대해서도 그저 어둡고 이상하게만 보일 것입니다. 그 시절 그들은 가족, 가문 및 민족들로 구분되었으며, 결혼도 가족과 가문 내에서만 했습니다. 퍼셉션의 속, 종의 보존 및 종족 고유특성의 대물림처럼 부모를 통한 정확한 대물림을 위해서였지요. 이런 이유로, 과거 태고교회였던 사람들은 지금도 천국에서 함께 지냅니다. Since then there are innumerable genera, and innumerable species in each genus, and still more innumerable varieties in the species, it is evident how little—so little that it is almost nothing—the world at this day knows concerning things celestial and spiritual, since they do not know even what perception is, and if they are told, they do not believe that any such thing exists; and so with other things also. The most ancient church represented the celestial kingdom of the Lord, even as to the generic and specific differences of perception; but whereas the nature of perception, even in its most general aspect, is at this day utterly unknown, any account of the genera and species of the perceptions of these churches would necessarily appear dark and strange. They were at that time distinguished into houses, families, and nations, and contracted marriage within their houses and families, in order that genera and species of perceptions might exist, and be derived from the parents precisely as are the propagations of native character; wherefore those who were of the most ancient church dwell together in hea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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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years), 몇 세를 살고(the numbers of years)의 속뜻, 본 장부터 십이 장까지는 겉뜻에 나오는 표현 그대로 실제 역사적으로 일어난 것은 하나도 없고, 대신 일반적으로는 모든 것, 그리고 구체적으로는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다른 것들이 들어있다.

 

3절,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And man lived a hundred and thirty years, and begat into his likeness, after his image, and called his name Seth.

 

482

본 장에 나오는 ‘(, the years)와 ‘몇 세를 살고(the numbers of years)의 속뜻이 무엇인지가 지금까지는 알려진 적이 없습니다. 겉뜻에 머무르시는 분들은 세속적, 즉 시간과 관련된 년 수들로 생각하시겠습니다만, 본 장부터 십이 장까지는 겉뜻에 나오는 표현 그대로 실제 역사적으로 일어난 것은 하나도 없고, 대신 일반적으로는 모든 것, 그리고 구체적으로는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다른 것들이 들어있습니다. 이것은 이름들뿐 아니라(AC.470) 숫자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에서 자주 언급되는 숫자 삼(3, three)과 칠(7, seven)이 있는데요, 이 숫자들이 언급되는 곳마다 이 숫자들은 시간이나 다른 것들이 포함하거나 표현하는 상태들과 관련, 가장 거룩하고 신성한 무언가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숫자들은 가장 짧은 시간 간격들에서도 가장 긴 시간 간격들과 같은 걸 의미합니다. 부분들이 전체에 속하듯 가장 작은 것들은 가장 큰 것에 속하기 때문인데, 전체가 부분들에서, 가장 큰 것이 가장 작은 것들에서 제대로 나올 수 있으려면 반드시 닮음(a likeness)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사야에서 What the “years” and the “numbers of years,” which occur in this chapter, signify in the internal sense, has hitherto been unknown. Those who abide in the literal sense suppose them to be secular years, whereas from this to the twelfth chapter there is nothing historical according to its appearance in the literal sense, but all things in general and every single thing in particular contain other matters. And this is the case not only with the names, but also with the numbers. In the Word frequent mention is made of the number three, and also of the number seven, and wheresoever they occur they signify something holy or most sacred in regard to the states which the times or other things involve or represent; and they have the same signification in the least intervals of time as in the greatest, for as the parts belong to the whole, so the least things belong to the greatest, for there must be a likeness in order that the whole may properly come forth from the parts, or the greatest from its leasts. Thus in Isaiah: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품꾼의 정한 해와 같이 삼 년 내에 모압의 영화와 그 큰 무리가 능욕을 당할지라 (사16:14) Now hath Jehovah spoken, saying, Within three years, as the years of a hireling, and the glory of Moab shall be rendered worthless. (Isa. 16:14)

 

주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품꾼의 정한 기한 같이 일 년 내에 게달의 영광이 다 쇠멸하리니 (사21:16) Thus hath the Lord said unto me, Within a year, according to the years of a hireling, and all the glory of Kedar shall be consumed, (Isa. 21:16)

 

이 본문들에 나오는 기간들은 가장 작은 간격들과 가장 큰 간격들 둘 다를 의미합니다. 하박국에서 where both the least and the greatest intervals are signified. In Habakkuk: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합3:2) Jehovah, I have heard thy renown, and was afraid; O Jehovah, revive thy work in the midst of the years, in the midst of the years make known, (Hab. 3:2)

 

수년 내에(the midst of the years)는 주님의 강림을 의미합니다. 보다 작은 간격들의 경우, 사람이 거듭나고 있을 때처럼 모든 주님의 오심(every coming of the Lord)을 의미하며, 보다 큰 간격들의 경우는 주님의 교회가 새롭게 일어나는 걸 의미합니다. 이사야에서 ‘구속할 해(the year of the redeemed)라 하신 경우가 바로 이와 같습니다. where the “midst of the years” signifies the Lord’s advent. In lesser intervals it signifies every coming of the Lord, as when man is being regenerated; in greater, when the church of the Lord is arising anew. It is likewise called the “year of the redeemed,” in Isaiah:

 

이는 내 원수 갚는 날이 내 마음에 있고 내가 구속할 해가 왔으나 (사63:4) The day of vengeance is in my heart, and the year of my redeemed is come. (Isa. 63:4)

 

그래서 사탄이 결박되어 있었던 천 년(계20:2, 7)과 첫째 부활 관련 천 년(계20:4-6) 역시 결코 천 년(1,000년)이 아닌, 그들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위에서 보여드린 것처럼(AC.23), ‘’은 상태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곤 하며, ‘’ 또한 그렇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년 수, 햇수로 상태를 묘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 장에 나오는 시간들 역시 상태들을 포함함이 틀림없습니다. 모든 개 교회는 선천적, 후천적 재능 차이에 따라 퍼셉션(perception)의 상태가 나머지 교회들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So also the thousand years in which Satan was to be bound (Rev. 20:2, 7), and the thousand years of the first resurrection (Rev. 20:4–6), by no means signify a thousand years, but their states; for as “days” are used to express states, as shown above, so also are “years,” and the states are described by the number of the years. Hence it is evident that the times in this chapter also involve states; for every church was in a different state of perception from the rest, according to the differences of genius, hereditary and acquired.

 

2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7천 년이 차매 사탄이 그 옥에서 놓여 (계20:2, 7)

 

4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5(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6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계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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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삼십 세’,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의 속뜻

 

3절,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And man lived a hundred and thirty years, and begat into his likeness, after his image, and called his name Seth.

 

481

백삼십 세’는 하나의 새 교회, 즉 태고교회와 아주 다르지는 않으면서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았다는 말을 듣는, 그런 교회가 일어나기까지 걸린 시간을 말합니다. ‘모양’은 신앙, ‘형상’은 사랑과 관계가 있습니다. 이 교회를 일컬어 ‘’이라 하였습니다. By a “hundred and thirty years” there is signified the time before the rise of a new church, which, being not very unlike the most ancient, is said to be born “into its likeness, and after its image”; but the term “likeness” has relation to faith, and “image” to love. This church was called “Se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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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속뜻, 여섯째 날 끝에 나오며, 이것은 안식일 저녁과 상응하거나 안식일이나 일곱째 날이 시작된 때에 상응, 안식일은 천적 인간

 

2절,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Male and female created he them, and blessed them, and called their name man, in the day when they were cre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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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창조되던 날, 그들을 ‘사람’이라고 불렀다는 사실 역시 1장, 즉 여섯째 날 끝에 나오는데요, 이것은 안식일 저녁과 상응하거나 안식일이나 일곱째 날이 시작된 때에 상응합니다, 위에서(AC.85-87) 보여드린 대로 일곱째 날, 즉 안식일은 천적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That they were called “man” in the day that they were created, appears also from the first chapter (Gen.1:26–27), that is, at the end of the sixth day, which answers to the evening of the sabbath, or when the sabbath or seventh day began; for the seventh day, or sabbath, is the celestial man, as was shown above.

 

26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1: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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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부르기’의 속뜻, 관련 대상의 퀄리티, 즉 그 대상의 어떠함에 관해 아는 것

 

2절,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Male and female created he them, and blessed them, and called their name man, in the day when they were created.

 

479

이름 부르기’나 ‘이름으로 불리기’는 말씀에서는 위에서(AC.144, 145) 보여드린 것처럼 관련 대상의 퀄리티, 즉 그 대상의 어떠함에 관해 아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경우에는 태고교회의 퀄리티, 즉 태고교회는 사람이 흙, 여기 ‘아담’이라는 말이 ‘(ground)을 의미하는데, 흙에서 취함을 입고, 즉 주님으로 말미암아 거듭나는 교회이며, 그리고 나중에 그가 천적으로 만들어지면서, 주님 사랑에서 비롯되는 신앙으로 가장 놀랍게 ‘사람’이 되는 그런 교회입니다. By “calling a name,” or “calling by name,” is signified in the Word to know the quality of things, as was shown above, and in the present case it has relation to the quality of the most ancient church, denoting that man was taken from the ground, or regenerated by the Lord, for the word “Adam” means “ground”; and that afterwards when he was made celestial he became most eminently “man,” by virtue of faith originating in love to the L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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