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뜻

 

AC.468

앞 장에서 말하고 보여 준 것으로부터, 이름들이 이단과 교리를 의미한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이 장의 이름들이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들을 뜻하며, 여기서는 교리들 또는 교회들을 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교리들 또는 교회들은 여러 변화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태고교회 때부터 ‘노아’(Noah)에 이르기까지 보존되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교회는 시간이 흐르면서 쇠퇴하여 마침내 소수에게만 남게 됩니다. 홍수 때 그것이 남아 있던 그 소수를 ‘노아’(Noah)라 하였습니다. From what has been said and shown in the foregoing chapter, it is evident that by names are signified heresies and doctrines. Hence it may be seen that by the names in this chapter are not meant persons, but things, and in the present instance doctrines, or churches, which were preserved, notwithstanding the changes they underwent, from the time of the most ancient church even to “Noah.” But the case with every church is that in course of time it decreases, and at last remains among a few; and the few with whom it remained at the time of the flood were called “Noah.”

 

[2] 참된 교회가 쇠퇴하여 소수에게만 남게 된다는 것은 이와 같이 쇠퇴해 온 다른 교회들에서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말씀에서 ‘리메인스’(remains)와 ‘남은 자’(remnant)라 하며, ‘땅의 가운데’ 또는 ‘중앙에’ 있다고 합니다. 전체적인 경우가 그러한 것처럼 개별적인 경우도 그러합니다. 즉 교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각 사람에게도 그러합니다. 주님께서 모든 사람 안에 리메인스를 보존하지 않으신다면 그는 필연적으로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영적 생명과 천적 생명이 리메인스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 또는 보편적인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또는 참된 신앙이 남아 있는 사람들이 언제나 얼마간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류는 멸망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몇 사람을 위하여 한 성읍이, 때로는 한 나라 전체가 구원받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서 교회는 인체와 같습니다. 심장이 건강한 동안에는 그 주변의 내장들도 생명을 유지할 수 있지만, 심장이 쇠약해지면 신체의 다른 부분들이 영양을 공급받지 못하여 사람이 죽습니다. 마지막 리메인스가 바로 ‘노아’(Noah)가 의미하는 것입니다. 창6:12과 다른 여러 곳에서 알 수 있듯 온 땅이 부패하였기 때문입니다. That the true church decreases and remains with but few, is evident from other churches which have thus decreased. Those who are left are in the Word called “remains,” and a “remnant,” and are said to be “in the midst,” or “middle,” “of the land.” And as this is the case in the universal, so also it is in the particular, or as it is with the church, so it is with every individual man; for unless remains were preserved by the Lord in everyone, he must needs perish eternally, since spiritual and celestial life are in the remains. So also in the general or universal—if there were not always some with whom the church, or true faith, remained, the human race would perish; for, as is generally known, a city, nay, sometimes a whole kingdom, is saved for the sake of a few. It is in this respect with the church as it is with the human body; so long as the heart is sound, life is possible for the neighboring viscera, but when the heart is enfeebled, the other parts of the body cease to be nourished, and the man dies. The last remains are those which are signified by “Noah”; for (as appears from Gen. 6:12, as well as from other places) the whole earth had become corrupt.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창6:12)

 

[3] 각 사람 안에 존재하는 리메인스뿐 아니라 교회 전체 안에 존재하는 리메인스에 관해서도 선지서에서 많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에서는, Of remains as existing in each individual as well as in the church in general, much is said in the prophets; as in Isaiah:

 

3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 안에 생존한 자 중 기록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 4이는 주께서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기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중에서 청결하게 하실 때가 됨이라 (사4:3, 4) He that is left in Zion, and he that remaineth in Jerusalem, shall be called holy to him, even everyone that is written unto lives in Jerusalem, when the Lord shall have washed the filth of the daughters of Zion, and shall have washed away the bloods of Jerusalem from the midst thereof, (Isa. 4:3–4)

 

이 말씀에서 거룩함은 리메인스에 관하여 서술되며, 이 리메인스는 교회의 리메인스뿐 아니라 교회에 속한 사람의 리메인스도 의미합니다. 시온과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자들’(those left)이 단지 ‘남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거룩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이사야에서는, in which passage holiness is predicated of the remains, by which are signified the remains of the church, and also of a man of the church; for “those left” in Zion and Jerusalem could not be holy merely because they were “left.” Again:

 

20그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여호와를 진실하게 의지하리니 21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사10:20, 21) It shall come to pass in that day, that the remains of Israel, and such as are escaped of the house of Jacob, shall no more again stay upon him that smote them, but shall stay upon Jehovah the holy one of Israel in truth. The remains shall return, the remains of Jacob, unto the mighty God. (Isa. 10:20–21)

 

예레미야에서는, In Jeremiah:

 

그날 그때에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찾을지라도 없겠고 유다의 죄를 찾을지라도 찾아내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남긴 자를 용서할 것임이라 (렘50:20) In those days, and in that time, the iniquity of Israel shall be sought for, and there shall be none; and the sins of Judah, and they shall not be found; for I will pardon him whom I shall make a remnant. (Jer. 50:20)

 

미가에서는, In Micah:

 

야곱의 남은 자는 많은 백성 가운데 있으리니 그들은 여호와께로부터 내리는 이슬 같고 풀 위에 내리는 단비 같아서 (미5:7) The remains of Jacob shall be in the midst of many peoples, as the dew from Jehovah, as the showers upon the grass. (Micah 5:7)

 

[4] 사람 또는 교회의 남은 것, 곧 리메인스는 또한 십분의 일로 표상되었으며, 그것은 거룩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십을 포함하는 수도 거룩하였으며, 따라서 ‘십’(ten)은 리메인스에 관하여 서술됩니다. 이사야에서는, The residue or remains of a man, or of the church, were also represented by the tenths, which were holy; hence also a number with ten in it was holy, and “ten” is therefore predicated of remains; as in Isaiah:

 

12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13그중에 십 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사6:12, 13) Jehovah shall remove man, and many things [shall be] left in the midst of the land; and yet in it [shall be] a tenth part, and it shall return, and shall be for exterminating; as an oak, and an ilex, when the stock is cast forth from them, the holy seed is the stock thereof; (Isa. 6:12–13)

 

여기서 남은 것은 ‘거룩한 씨’(seed of holiness)라 불립니다. 아모스에서는, where the residue is called a “seed of holiness.” And in Amos: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스라엘 중에서 천 명이 행군해 나가던 성읍에는 백 명만 남고 백 명이 행군해 나가던 성읍에는 열 명만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암5:3) Thus saith the Lord Jehovah, The city that goeth forth a thousand shall have a hundred left, and that which goeth forth a hundred shall have ten left to the house of Israel. (Amos 5:3)

 

이 말씀들과 다른 많은 구절에서 속뜻으로는 지금까지 말해 온 ‘리메인스’(remains)가 의미됩니다. 교회의 리메인스로 말미암아 한 성읍이 보존된다는 것은 소돔에 관하여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에서도 분명합니다. In these and many other passages, in the internal sense are signified the “remains” of which we have been speaking. That a city is preserved for the sake of the remains of the church, is evident from what was said to Abraham concerning Sodom: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창18:32) Abraham said, Peradventure ten may be found there; and he said, I will not destroy it for ten’s sake. (Gen. 18:32)

 

해설

AC.468은 창5의 ‘장 개요’를 마무리하면서 지금까지 제시된 이름들의 의미를 매우 분명하게 확정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장의 이름들이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교리 또는 교회를 뜻한다고 명시합니다. 이것은 앞에서 우리가 조심스럽게 유보해 두었던 문제에 대해서도 중요한 기준을 줍니다. 적어도 창5의 속뜻을 해설하는 이 자리에서 ‘셋’, ‘에노스’, ‘게난’, ‘마할랄렐’, ‘야렛’, ‘에녹’, ‘므두셀라’, ‘라멕’, ‘노아’는 개인들의 일대기를 설명하기 위한 이름들이 아니라, 태고교회로부터 이어지며 변화해 온 교리와 교회들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창5의 족보 형식은 속뜻으로는 교회의 영적 역사가 됩니다.

 

여기서 스베덴보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교회들이 ‘여러 변화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태고교회로부터 노아에 이르기까지 보존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앞의 AC.462-467을 하나의 흐름으로 묶어 줍니다. 처음에는 천적인 태고교회가 있었고, 이후 그 상태가 점차 달라졌으며, 라멕에 이르러서는 태고교회가 누렸던 퍼셉션이 전혀 남아 있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완전히 소멸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홍수 때까지 참된 교회가 남아 있던 소수가 있었고, 바로 그들을 ‘노아’라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노아’는 이 문맥에서 단지 열 번째 교회의 명칭만이 아니라, 이전 교회가 거의 사라진 가운데 주님께서 보존하신 ‘마지막 리메인스’를 나타냅니다.

 

[2]에서 이 ‘리메인스’의 원리는 교회 전체에서 한 사람의 내면으로 확대됩니다. 이것이 AC.468의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교회 전체에 참된 것과 선한 것이 소수에게 남아 있어 인류 전체가 보존되는 것처럼, 한 사람 안에도 주님께서 보존하시는 리메인스가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단순히 과거의 좋은 기억 정도로 말하지 않습니다. 영적 생명과 천적 생명이 바로 이 리메인스 안에 있다고 합니다. 사람이 살아오는 동안 주님께서 그의 내면에 보존하신 선과 진리,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들이 훗날 거듭남의 토대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모든 사람 안에 리메인스를 보존하지 않으신다면 그는 필연적으로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다’고까지 말합니다.

 

이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스베덴보리는 심장의 비유를 사용합니다. 심장이 건강한 동안에는 주변의 장기들도 생명을 유지하지만, 심장이 쇠약해져 더 이상 영양을 공급하지 못하면 다른 부분들도 함께 죽게 됩니다. 교회 안의 리메인스가 이와 같습니다. 참된 교회가 외적으로 크게 쇠퇴하더라도 주님께서 선과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소수를 보존하시는 동안에는 인류와 교회가 완전히 끊어지지 않습니다. ‘노아’가 바로 홍수 직전 이러한 마지막 리메인스를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노아의 보존은 단지 몇 사람이 재난에서 살아남는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인류 가운데 영적 생명이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주님께서 ‘교회 안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선과 진리, 곧 리메인스’를 보존하시는 섭리를 보여 줍니다.

 

[3]에서 인용되는 사4:3-4, 사10:20-21, 렘50:20, 미5:7은 바로 이 원리가 말씀 전체에 반복되어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남아 있는 자’, ‘남은 자’, ‘피한 자’가 중요한 것은 그들이 단순히 숫자상 살아남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가 특별히 ‘시온과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자들이 단지 남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거룩할 수는 없다’고 말하는 까닭도 이것입니다. 이들이 ‘거룩하다’고 일컬어지는 것은 속뜻으로는 주님께서 보존하신 선과 진리, 곧 리메인스를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경에서 말하는 ‘남은 자’의 주제는 AC의 리메인스 교리와 깊이 연결됩니다.

 

[4]에서는 이 리메인스가 왜 ‘십’이라는 수와 연결되는지가 설명됩니다. 십분의 일이 리메인스를 표상하였기 때문에 십을 포함하는 수가 거룩하게 사용되었고, ‘십’은 리메인스에 관하여 서술되었습니다. 그래서 사6:12-13에서는 모든 것이 황폐해진 뒤에도 ‘십분의 일’과 ‘거룩한 씨’가 남으며, 암5:3에서는 천 명 가운데 백 명, 백 명 가운데 열 명이 남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산술적인 비율 자체가 아니라, 황폐 가운데서도 주님께서 무엇인가를 남겨 두신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주님께서 보존하신 거룩한 씨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창18:32의 소돔 이야기가 인용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이라는 아브라함의 간구와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는 주님의 말씀에서 ‘십’은 단순한 인원수를 넘어 리메인스를 표상합니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몇 사람을 위하여 한 성읍이, 때로는 한 나라 전체가 구원받기도 한다’는 설명과 연결됩니다. 주님께서 보시는 것은 외적인 규모가 아니라 그 안에 아직 보존되어 있는 선과 진리입니다.

 

이렇게 AC.468은 창5의 장 개요 전체를 ‘리메인스’라는 놀라운 원리로 마무리합니다. 태고교회는 쇠퇴했고 퍼셉션도 마침내 사라졌지만, 주님은 모든 것을 소멸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마지막까지 보존된 것을 ‘노아’라 하셨고, 바로 그것으로부터 새로운 고대교회를 일으키셨습니다. 그리고 이 질서는 교회의 역사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각 사람의 거듭남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우리 안에서도 때로는 선과 진리가 거의 사라진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주님은 사람이 알지 못하는 깊은 곳에 리메인스를 보존하시며 그것을 붙들고 다시 영적 생명을 일으키십니다. 그러므로 ‘노아’는 교회의 마지막 남은 자인 동시에, 인간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도록 끝까지 선과 진리를 보존하시는 주님의 자비와 섭리를 보여 주는 이름입니다. (AC.468 해설)  

 

심화

‘리메인스가 없으면 왜 사람은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는가?’

 

AC.468 심화, ‘리메인스가 없으면 왜 사람은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는가?’

AC.468 심화‘리메인스가 없으면 왜 사람은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는가?’ AC.468에는 매우 강한 표현이 나옵니다. ‘주님께서 모든 사람 안에 리메인스를 보존하지 않으신다면 그는 필연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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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60-468 심화, ‘창5의 이름들은 왜 사람이 아니라 교리 또는 교회를 의미하는가?’

AC.460-468 심화 ‘창5의 이름들은 왜 사람이 아니라 교리 또는 교회를 의미하는가?’ 창5를 처음 읽으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족보입니다. ‘아담은 셋을 낳고, 셋은 에노스를 낳고, 에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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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69, 창5:1, '계보의 책, 영적으로 창조되어 천적으로 된 태고교회'(AC.469-474)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This is the book of the births of man. In the day that God created man, in the likeness of God made he him. (창5:1) AC.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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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67, 창5, ‘라멕에게서 퍼셉션이 사라지고 노아라는 새 교회가 시작된다’

개요 AC.467‘라멕’(Lamech)은 태고교회가 누렸던 퍼셉션을 전혀 간직하지 못한 것으로 묘사되며, ‘노아’(Noah)는 새 교회로 묘사됩니다. (29절) “Lamech” is described as retaining nothing of the perception w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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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AC.467

‘라멕’(Lamech)은 태고교회가 누렸던 퍼셉션을 전혀 간직하지 못한 것으로 묘사되며, ‘노아’(Noah)는 새 교회로 묘사됩니다. (29절) “Lamech” is described as retaining nothing of the perception which the most ancient church enjoyed; and “Noah” is described as a new church. (verse 29)

 

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29절)

 

해설

AC.467은 앞의 AC.466에서 노아를 ‘고대교회’라고 한 이유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아홉 번째 교회인 ‘라멕’에 이르러서는 태고교회가 누렸던 퍼셉션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고, 그다음 ‘노아’는 ‘새 교회’로 묘사됩니다. 따라서 라멕에서 노아로 넘어가는 것은 단순히 아홉 번째 교회 다음에 열 번째 교회가 이어지는 것만이 아니라, 태고교회의 한 질서가 끝나고 새로운 교회의 질서가 시작되는 중요한 전환입니다.

 

여기서 ‘태고교회가 누렸던 퍼셉션’이라는 표현이 중요합니다. 태고교회의 특징은 주님에 대한 사랑 안에서 무엇이 선이고 참인지를 내적으로 퍼셉션하는 데 있었습니다. 이것은 외부에서 교리를 배우고 그것이 참인지 추론하여 받아들이는 방식과 달랐습니다.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과 선 안에서 무엇이 선이고 참인지 내적으로 알아차리는 것이 태고교회의 천적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AC.467은 라멕에 이르러 그 퍼셉션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AC.462에서 시작하여 지금까지 이어져 온 변화가 어디에 이르렀는지를 보여 줍니다. ‘셋’은 처음의 태고교회만큼 천적이지 않았고, 이후 여러 교회가 계속 이어졌으며, 마침내 ‘라멕’에 이르러서는 태고교회가 누렸던 퍼셉션이 남아 있지 않은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창5의 여러 이름을 통하여 나타나는 변화는 단순히 교회의 명칭이 바뀌어 온 과정이 아니라, 태고교회를 특징짓던 내적 상태가 점차 달라져 마침내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는 지속될 수 없게 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노아’가 등장합니다. AC.467은 노아를 단순히 라멕 다음의 교회라고 하지 않고 ‘새 교회’라고 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표현입니다. 라멕에게 태고교회의 퍼셉션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면, 다음 교회는 이전의 상태를 그대로 회복하거나 반복하는 방식으로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는 달라진 인간의 상태에 맞는 새로운 교회의 질서가 필요했고, 그 새 교회를 ‘노아’라고 한 것입니다. 앞의 AC.466에서 이 교회를 ‘고대교회’라고 한 것도 바로 이러한 전환과 연결됩니다.

 

이렇게 보면 앞의 에녹에 관한 AC.464도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에녹이라 하는 교회가 태고교회에 계시되고 퍼셉션된 것들을 교리로 형성하여 후대의 쓰임을 위해 보존했던 것은, 태고교회의 퍼셉션이 영원히 같은 방식으로 지속되지 않을 것을 전제로 합니다. 이제 라멕에 이르러 그 퍼셉션이 사라지고 노아라는 새 교회가 시작된다는 AC.467의 설명은, 왜 앞선 시대에 그러한 교리의 보존이 필요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줍니다. 다만 그 보존된 교리가 새 교회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용되는지는 이후의 본문 해설을 따라가며 살펴보아야 합니다.

 

AC.467은 결국 태고교회에서 고대교회로 넘어가는 경계선을 매우 선명하게 보여 줍니다. 한쪽에는 태고교회의 퍼셉션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은 ‘라멕’이 있고, 다른 쪽에는 ‘새 교회’인 ‘노아’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전 교회의 끝이 곧 주님의 역사의 끝은 아닙니다. 한 형태의 교회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을 때에도 주님은 인간의 달라진 상태에 맞추어 새로운 교회를 일으키십니다. 그러므로 라멕과 노아 사이에는 단절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한 교회의 끝에서도 다음 교회를 준비하시고 이어 가시는 주님의 섭리가 함께 나타나 있습니다. (AC.467 해설)

 

 

 

AC.468, 창5, ‘노아는 교회에 남아 있던 마지막 리메인스를 가리킨다’

속뜻 AC.468앞 장에서 말하고 보여 준 것으로부터, 이름들이 이단과 교리를 의미한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이 장의 이름들이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들을 뜻하며, 여기서는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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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66, 창5, ‘노아는 홍수 후 세 교회의 모체가 된 열 번째 교회이다’

개요 AC.466열 번째 교회는 홍수 후 세 교회의 모체가 되었으며, 그 이름을 ‘노아’(Noah)라 하였습니다. 이 교회를 고대교회라 합니다. (28-29절) A tenth, the parent of three churches after the flood, was nam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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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AC.466

열 번째 교회는 홍수 후 세 교회의 모체가 되었으며, 그 이름을 ‘노아’(Noah)라 하였습니다. 이 교회를 고대교회라 합니다. (28-29절) A tenth, the parent of three churches after the flood, was named “Noah.” This church is to be called the ancient church. (verses 28–29)

 

28라멕은 백팔십이 세에 아들을 낳고 29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28, 29절)

 

해설

AC.466은 AC.460부터 이어져 온 교회들의 계승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을 보여 줍니다. 태고교회로부터 시작하여 ‘셋’, ‘에노스’, ‘게난’, ‘마할랄렐’, ‘야렛’, ‘에녹’, ‘므두셀라’, ‘라멕’으로 이어진 뒤, 열 번째 교회로 ‘노아’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스베덴보리는 노아를 단순히 그 연속 가운데 하나를 더 추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 교회에 새로운 이름을 붙입니다. 바로 ‘고대교회’입니다. 따라서 노아는 태고교회의 이어지는 여러 교회가 끝나 가는 지점인 동시에, 새로운 교회의 시작을 보여 주는 이름입니다.

 

원문에서 특히 중요한 표현은 ‘홍수 후 세 교회의 모체’(the parent of three churches after the flood)입니다. 노아라 하는 교회로부터 홍수 후에 다시 세 교회가 이어져 나오게 된다는 뜻입니다. AC.466은 아직 그 세 교회가 무엇이며 각각 어떠한 상태인지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우선 노아가 이전 교회의 마지막에만 서 있는 것이 아니라, 홍수 이후에 이어질 교회들의 출발점이 된다는 사실을 밝혀 줍니다.

 

이 점에서 ‘노아’를 열 번째 교회라고 하는 것과 ‘고대교회’라고 하는 것을 함께 보아야 합니다. 노아는 앞에서부터 이어져 온 순서로는 열 번째이지만, 그 성격에서는 새로운 교회의 시작입니다. 즉 교회의 역사가 완전히 끊어진 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새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앞선 시대에서 보존된 것을 통하여 다음 시대의 교회가 준비됩니다. 창5의 교회 계승이 노아에 이르면서 하나의 큰 전환점을 맞는 것입니다.

 

‘이 교회를 고대교회라 한다’는 말은 앞에서 계속 다루어 온 ‘태고교회’와도 분명히 구별됩니다. 태고교회와 고대교회는 단순히 시대가 앞서고 뒤선다는 차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는 교회의 상태와 방식에도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다만 AC.466은 아직 그 차이를 자세히 설명하는 곳이 아니므로, 여기서는 노아와 함께 ‘고대교회’라는 새로운 교회가 시작된다는 점을 붙들어 두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 구체적인 차이는 이후의 해설에서 차례로 밝혀집니다.

 

또한 AC.466은 앞에서 에녹에 관하여 살펴본 내용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에녹이라 하는 교회에서는 태고교회에 계시되고 퍼셉션된 것들이 교리로 형성되어 후대의 쓰임을 위해 보존되었습니다. 이제 노아에 이르러서는 태고교회와는 다른 상태의 교회가 등장합니다. 따라서 앞선 교회에서 보존된 것이 후대에 쓰이도록 준비되었다는 AC.464의 설명은, 교회의 상태가 달라져도 주님께서 필요한 것을 보존하시며 다음 교회를 준비하신다는 큰 흐름 속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AC.466은 그래서 창5 전체의 방향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이정표입니다. 이 장은 태고교회에서 출발하여 여러 교회를 거쳐 단순히 쇠퇴와 종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노아’라는 열 번째 교회에 이르러 다음 시대를 준비합니다. 태고교회의 한 시대가 저물어 가는 가운데서도 주님은 다음 교회를 위한 것을 보존하시고, 홍수 이후 다시 교회가 이어질 길을 마련하십니다. ‘노아’는 바로 그 연속과 전환의 자리에 놓인 교회이며, 그 교회를 가리켜 스베덴보리는 ‘고대교회’라고 합니다. (AC.466 해설)

 

 

 

AC.467, 창5, ‘라멕에게서 퍼셉션이 사라지고 노아라는 새 교회가 시작된다’

개요 AC.467‘라멕’(Lamech)은 태고교회가 누렸던 퍼셉션을 전혀 간직하지 못한 것으로 묘사되며, ‘노아’(Noah)는 새 교회로 묘사됩니다. (29절) “Lamech” is described as retaining nothing of the perception w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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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65, 창5, ‘라멕은 아홉 번째 교회이다’

개요 AC.465 아홉 번째 교회를 가리켜 ‘라멕’(Lamech)이라 하였습니다. (25절) A ninth church was called “Lamech.” (verse 25) 25므두셀라는 백팔십칠 세에 라멕을 낳았고 (25절) 해설AC.465는 앞에서 이어져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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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AC.465

 

아홉 번째 교회를 가리켜 ‘라멕’(Lamech)이라 하였습니다. (25절) A ninth church was called “Lamech.” (verse 25)

 

25므두셀라는 백팔십칠 세에 라멕을 낳았고 (25절)

 

해설

AC.465는 앞에서 이어져 온 교회의 순서 가운데 ‘라멕’을 아홉 번째 교회로 제시합니다. AC.463에서 ‘에노스’부터 ‘므두셀라’까지 세 번째에서 여덟 번째 교회가 차례로 제시되었고, 이제 그다음 교회가 ‘라멕’입니다. 따라서 창5:25의 ‘라멕’ 역시 장 개요에서는 한 교회의 이름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이 한 문장은 짧지만 AC.460에서 시작된 흐름을 그대로 이어 갑니다. 태고교회로부터 여러 교회가 차례로 이어졌고, ‘라멕’은 그 연속 가운데 아홉 번째에 해당합니다. 문자상으로는 족보 속에서 ‘므두셀라는 백팔십칠 세에 라멕을 낳았고’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속뜻으로는 ‘라멕’이라는 이름을 통하여 태고교회로부터 이어진 또 하나의 교회를 보여 줍니다.

 

여기서도 AC.465가 말하는 범위를 넘어 ‘라멕’이라는 교회의 구체적인 상태를 미리 규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장 개요에서 우선 밝혀 주는 것은 그 위치와 순서입니다. ‘라멕’은 ‘므두셀라’ 다음에 이어지는 아홉 번째 교회이며, 그 교회가 구체적으로 어떠했는지는 이후 해당 본문에 대한 해설에서 밝혀집니다.

 

특히 ‘아홉 번째’라는 표현은 창5의 이름들이 서로 무관하게 나열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연속적인 흐름 안에 있음을 다시 확인시켜 줍니다. ‘셋’에서 시작하여 여러 이름을 거쳐 ‘라멕’에 이르는 동안 각각의 이름은 이어지는 교회를 가리키며, 창5는 그 순서를 통하여 태고교회의 여러 상태가 어떻게 계속되어 갔는지를 보여 줍니다.

 

따라서 AC.465의 핵심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라멕’은 태고교회로부터 이어져 온 교회들의 흐름 가운데 아홉 번째 교회를 가리킵니다. 이처럼 장 개요는 각 이름의 의미를 자세히 풀기 전에 먼저 전체 계승의 뼈대를 세워 줍니다. 독자는 이 뼈대를 붙들고 이후 본문 해설로 들어가면서 ‘라멕’이라 하는 교회가 앞선 교회와 어떻게 이어지며 또 어떤 상태를 나타내는지를 살펴보게 됩니다. (AC.465 해설)

 

 

 

AC.466, 창5, ‘노아는 홍수 후 세 교회의 모체가 된 열 번째 교회이다’

개요 AC.466열 번째 교회는 홍수 후 세 교회의 모체가 되었으며, 그 이름을 ‘노아’(Noah)라 하였습니다. 이 교회를 고대교회라 합니다. (28-29절) A tenth, the parent of three churches after the flood, was nam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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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64, 창5, ‘에녹은 태고교회의 계시와 퍼셉션으로부터 교리를 형성한 교회이다’

개요 AC.464‘에녹’(Enoch)이라 하는 교회는 태고교회에 계시되고 그 교회가 퍼셉션한 것들로부터 교리를 형성한 것으로 묘사됩니다. 이 교리는 당시에는 쓸모가 없었지만 후대의 쓰임을 위해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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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AC.464

‘에녹’(Enoch)이라 하는 교회는 태고교회에 계시되고 그 교회가 퍼셉션한 것들로부터 교리를 형성한 것으로 묘사됩니다. 이 교리는 당시에는 쓸모가 없었지만 후대의 쓰임을 위해 보존되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에녹이 더 이상 있지 아니하였으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셨기 때문이라’(Enoch was no more, because God took him)고 한 것입니다. (22-24절) The church called “Enoch” is described as framing doctrine from what was revealed to and perceived by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doctrine, although of no use at that time, was preserved for the use of posterity.This is signified by its being said that “Enoch was no more, because God took him.” (verses 22–24)

 

22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23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24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22-24절)

 

해설

AC.464는 앞의 AC.463에서 일곱 번째 교회로 제시된 ‘에녹’이 다른 교회들과 구별되는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보여 줍니다. 에녹이라 하는 교회는 태고교회에 계시되고 그 교회가 퍼셉션한 것들을 모아 ‘교리’로 형성하였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에녹이 새로운 진리를 스스로 만들어 냈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태고교회가 주님으로부터 계시받고 퍼셉션을 통해 알았던 것들을 일정한 교리 형태로 정리한 것입니다.

 

이것은 태고교회의 상태와 이후 교회의 상태가 달라지고 있었음을 보여 주는 중요한 대목입니다. 태고교회는 무엇이 선이고 참인지를 교리로 배워서 아는 교회가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랑 안에서 그것을 퍼셉션하던 천적 교회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퍼셉션이 살아 있던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이 이미 내적으로 알고 있는 것을 따로 교리 형태로 정리하여 배우는 일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AC.464가 에녹이 형성한 교리가 ‘당시에는 쓸모가 없었다’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 교리는 ‘후대의 쓰임을 위해’ 보존되었습니다. 이 짧은 표현 안에는 교회의 상태가 앞으로 달라질 것이라는 사실이 들어 있습니다. 태고교회와 같은 퍼셉션이 계속 유지된다면 별도의 교리가 필요하지 않았겠지만, 그것이 사라져 갈 때에는 이전에 퍼셉션으로 알았던 것들을 다른 방식으로 보존하고 전달할 필요가 생깁니다. 에녹이라 하는 교회가 한 일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살아 있는 퍼셉션으로 받아들였던 것들을 교리 형태로 남김으로써 후대가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교리’는 퍼셉션을 대신하여 에녹이 만들어 낸 인간적인 사상이 아닙니다. 그 근원은 여전히 주님으로부터 태고교회에 계시되고 퍼셉션된 것들입니다. 다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교회의 상태가 달라짐에 따라, 이전에는 내적으로 직접 퍼셉션하던 것이 이제는 가르치고 배우며 보존할 수 있는 형태로 옮겨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에녹은 태고교회의 퍼셉션과 이후 교회가 사용할 교리 사이에 놓인 중요한 전환점을 보여 줍니다.

 

이와 연결되는 말씀이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입니다. 장 개요에서 스베덴보리는 이 말씀을 에녹이라는 교회가 형성한 교리가 ‘후대의 쓰임을 위해 보존되었다’는 뜻으로 설명합니다. 따라서 여기서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셨다’는 말씀은 장 개요의 속뜻으로는 에녹이라는 교회의 역할과 그 교리가 보존된 일을 가리킵니다. 이 표현의 보다 구체적인 의미는 뒤의 본문 해설에서 다시 자세히 다루어집니다.

 

AC.464에서 특히 눈여겨볼 것은 주님께서 한 교회의 상태가 변해 가는 가운데서도 다음 시대에 필요한 것을 미리 보존하신다는 점입니다. 태고교회의 퍼셉션은 계속 같은 방식으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그들에게 계시되고 퍼셉션된 것이 함께 사라지도록 두지 않으셨습니다. 에녹이라 하는 교회를 통하여 그것을 교리 형태로 보존하여 후대의 쓰임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에녹의 이야기는 단순히 한 교회의 상태만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상태가 달라질 때에도 진리가 다음 세대에 전달될 길을 마련하시는 주님의 섭리를 함께 보여 줍니다. (AC.464 해설)

 

심화

‘에녹이 보존한 교리는 후대의 고대 말씀과 모세의 창세기 기록에 어떻게 이어졌는가?’

 

AC.464 심화, ‘에녹이 보존한 교리는 후대의 고대 말씀과 모세의 창세기 기록에 어떻게 이어졌는

AC.464 심화‘에녹이 보존한 교리는 후대의 고대 말씀과 모세의 창세기 기록에 어떻게 이어졌는가?’ AC.464는 ‘에녹’이라 하는 교회가 태고교회에 계시되고 그 교회가 퍼셉션한 것들로부터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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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65, 창5, ‘라멕은 아홉 번째 교회이다’

개요 AC.465 아홉 번째 교회를 가리켜 ‘라멕’(Lamech)이라 하였습니다. (25절) A ninth church was called “Lamech.” (verse 25) 25므두셀라는 백팔십칠 세에 라멕을 낳았고 (25절) 해설AC.465는 앞에서 이어져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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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63, 창5, ‘에노스에서 므두셀라까지 이어지는 교회들’

개요 AC.463세 번째 교회를 가리켜 ‘에노스’(Enosh)라 하였고(6절), 네 번째는 ‘게난’(Kenan)(9절), 다섯 번째는 ‘마할랄렐’(Mahalalel)(12절), 여섯 번째는 ‘야렛’(Jared)(15절), 일곱 번째는 ‘에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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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63

세 번째 교회를 가리켜 ‘에노스’(Enosh)라 하였고(6절), 네 번째는 ‘게난’(Kenan)(9절), 다섯 번째는 ‘마할랄렐’(Mahalalel)(12절), 여섯 번째는 ‘야렛’(Jared)(15절), 일곱 번째는 ‘에녹’(Enoch)(18절), 그리고 여덟 번째 교회는 ‘므두셀라’(Methuselah)라 하였습니다(21절). A third church was called “Enosh” (verse 6); a fourth “Kenan” (verse 9); a fifth “Mahalalel” (verse 12); a sixth “Jared” (verse 15); a seventh “Enoch” (verse 18); and an eighth church “Methuselah” (verse 21).

 

6셋은 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9에노스는 구십 세에 게난을 낳았고; 12게난은 칠십 세에 마할랄렐을 낳았고; 15마할랄렐은 육십오 세에 야렛을 낳았고; 18야렛은 백육십이 세에 에녹을 낳았고; 21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6, 9, 12, 15, 18, 21절)

 

해설

AC.463은 앞의 AC.461-462에서 시작된 창5의 구조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천적이었던 태고교회 자체에 이어 ‘셋’이 두 번째 교회로 제시되었고, 이제 ‘에노스’, ‘게난’, ‘마할랄렐’, ‘야렛’, ‘에녹’, ‘므두셀라’가 각각 세 번째에서 여덟 번째 교회로 차례로 제시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이름들을 단순히 족보에 나열된 이름으로 다루지 않고, 각각 하나의 교회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AC.463에서는 ‘세 번째 교회’,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일곱 번째’, ‘여덟 번째 교회’라고 순서를 분명하게 밝힙니다. 이것은 AC.460에서 말한 태고교회의 ‘이어지는 여러 세대’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보여 줍니다. 문자상으로는 한 이름 다음에 다른 이름이 이어지는 족보의 형식이지만, 속뜻으로는 태고교회로부터 이어지는 교회들이 차례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이름들을 단순히 서로 다른 명칭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각각이 교회의 서로 다른 상태를 나타낸다는 점입니다. 앞의 AC.462에서 이미 ‘셋’은 태고교회만큼 천적이지 않았던 두 번째 교회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교회가 차례로 이어진다고 해서 그 상태까지 그대로 반복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태고교회로부터 이어지면서도 각각의 교회에는 그에 해당하는 상태가 있었으며, 창5는 그 연속적인 변화를 이름들의 계승을 통하여 보여 줍니다.

 

다만 AC.463은 아직 ‘에노스’, ‘게난’, ‘마할랄렐’, ‘야렛’, ‘에녹’, ‘므두셀라’가 각각 구체적으로 어떠한 상태의 교회였는지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우선 그 이름들이 세 번째부터 여덟 번째까지 이어지는 교회들을 가리킨다는 전체 구조를 제시합니다. 각 교회의 구체적인 성격과 차이는 뒤의 본문 해설을 따라가면서 하나씩 드러나게 됩니다. 따라서 장 개요 단계에서는 그 의미를 미리 채워 넣기보다, 스베덴보리가 먼저 제시하는 순서와 구조를 정확하게 붙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보면 창5의 반복되는 이름들은 단순한 나열이 아닙니다. ‘에노스’에서 ‘므두셀라’에 이르기까지 이름이 바뀔 때마다 속뜻으로는 태고교회로부터 이어진 교회의 한 상태가 다음 상태로 넘어갑니다. 따라서 창5를 읽으면서 각각의 이름을 만날 때에는 ‘이 이름은 어떤 교회를 가리키며, 그 교회의 상태는 앞선 교회와 어떻게 다른가?’라는 질문을 가지고 이후의 해설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AC.463은 짧은 한 문장 안에 창5의 상당 부분을 한꺼번에 펼쳐 놓습니다. 태고교회에서 시작하여 ‘셋’을 거친 흐름이 ‘에노스’, ‘게난’, ‘마할랄렐’, ‘야렛’, ‘에녹’, ‘므두셀라’에 이르기까지 계속됩니다. 그러므로 창5의 족보를 따라간다는 것은 속뜻으로는 태고교회로부터 이어진 여러 교회의 상태와 그 변화를 차례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AC.463은 앞으로의 본문 해설에 들어가기 전에 그 전체적인 흐름을 한눈에 보여 주는 장 개요입니다. (AC.463 해설)

 

 

 

AC.464, 창5, ‘에녹은 태고교회의 계시와 퍼셉션으로부터 교리를 형성한 교회이다’

개요 AC.464‘에녹’(Enoch)이라 하는 교회는 태고교회에 계시되고 그 교회가 퍼셉션한 것들로부터 교리를 형성한 것으로 묘사됩니다. 이 교리는 당시에는 쓸모가 없었지만 후대의 쓰임을 위해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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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62, 창5, ‘셋은 태고교회만큼 천적이지 않았던 두 번째 교회이다’

개요 AC.462태고교회만큼 천적이지는 않았던 두 번째 교회를 가리켜 ‘셋’(Seth)이라 하였습니다. (2-3절) A second church which was not so celestial as the most ancient church is called “Seth.” (verses 2–3) 2남자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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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62

태고교회만큼 천적이지는 않았던 두 번째 교회를 가리켜 ‘셋’(Seth)이라 하였습니다. (2-3절) A second church which was not so celestial as the most ancient church is called “Seth.” (verses 2–3)

 

2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3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2, 3절)

 

해설

AC.462는 앞의 AC.461에서 말한 태고교회 다음에 이어진 두 번째 교회를 설명합니다. AC.461에서 ‘사람’과 ‘하나님의 모양’이 천적이었던 태고교회 자체를 가리켰다면, 여기서는 그 태고교회만큼 천적이지는 않았던 두 번째 교회를 ‘셋’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셋’은 이 장의 속뜻에서 단순히 족보에 등장하는 한 사람의 이름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태고교회 다음에 이어진 교회의 상태를 나타내는 이름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태고교회만큼 천적이지는 않았다’는 표현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두 번째 교회가 곧바로 천적인 성격을 완전히 잃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태고교회에서 이어진 것이 있었지만, 그 상태는 처음의 태고교회와 같지 않았습니다. 즉 AC.460에서 말한 ‘이어지는 여러 세대’는 단순히 같은 교회가 이름만 바꾸어 계속된 것이 아니라, 앞선 교회로부터 무엇인가를 이어받으면서도 그 내적 상태에는 차이가 생긴 여러 교회의 연속이었습니다.

 

이 점에서 AC.462의 짧은 한 문장은 창5 전체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처음의 태고교회가 가장 천적인 상태에 있었다면, 그다음 교회는 ‘그만큼 천적이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여기에는 이미 변화의 방향이 나타나 있습니다. 태고교회 최초의 상태가 그대로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이어지는 교회들 가운데 그 천적인 성격에 차이가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앞으로 창5의 여러 이름은 이러한 상태의 변화를 차례로 보여 주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을 단순히 ‘첫 교회는 좋았고 둘째 교회는 나빴다’는 식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덜 천적이다’라는 것은 곧바로 악하다는 뜻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사랑과 선을 받아들이고 그 사랑으로부터 진리를 퍼셉션하던 태고교회 특유의 상태가 이전과 동일한 정도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는 교회의 상태를 선악의 단순한 이분법으로 보기보다, 주님에게서 오는 사랑과 선을 어떠한 방식과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또한 ‘셋’이라는 이름이 한 교회를 나타낸다는 것은 창5의 족보를 읽는 방법을 더욱 분명하게 해 줍니다. 문자상으로는 한 이름 다음에 또 다른 이름이 이어지지만, 속뜻으로는 한 교회의 상태 다음에 또 다른 교회의 상태가 이어집니다. 그래서 창5의 흐름을 따라간다는 것은 단지 여러 이름을 차례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태고교회에서 비롯된 천적 생명이 이후의 교회들 가운데 어떻게 이어지고 변화하는지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AC.462는 이렇게 창5에서 처음으로 ‘이어지는 여러 세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구체적으로 보여 줍니다. 첫 번째 태고교회와 두 번째 ‘셋’은 동일한 상태가 아니지만 서로 단절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앞선 것으로부터 다음 것이 이어지되 그 상태에는 변화가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연속성과 변화가 창5의 족보 안에 담긴 영적 흐름이며, 이후의 이름들을 읽을 때에도 계속 주목해야 할 핵심입니다. (AC.462 해설)

 

 

 

AC.463, 창5, ‘에노스에서 므두셀라까지 이어지는 교회들’

개요 AC.463세 번째 교회를 가리켜 ‘에노스’(Enosh)라 하였고(6절), 네 번째는 ‘게난’(Kenan)(9절), 다섯 번째는 ‘마할랄렐’(Mahalalel)(12절), 여섯 번째는 ‘야렛’(Jared)(15절), 일곱 번째는 ‘에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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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61, 창5, ‘사람과 하나님의 모양은 태고교회 자체를 가리킨다’

개요 AC.461천적이었던 태고교회 그 자체를 가리켜 ‘사람’(homo), 그리고 ‘하나님의 모양’이라 하였습니다. (1절) The most ancient church itself, which was celestial, is what is called “man” [homo], and a “lik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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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61

천적이었던 태고교회 그 자체를 가리켜 ‘사람’(homo), 그리고 ‘하나님의 모양’이라 하였습니다. (1절) The most ancient church itself, which was celestial, is what is called “man” [homo], and a “likeness of God.” (verse 1)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1절)

 

해설

AC.461은 창5:1의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라는 말씀의 속뜻을 아주 압축하여 제시합니다. 여기서 ‘사람’과 ‘하나님의 모양’은 먼저 어떤 한 개인을 설명하기 위한 표현이 아니라 ‘태고교회 자체’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스베덴보리는 그 태고교회를 특별히 ‘천적’이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창5의 첫머리는 한 개인의 족보를 소개하는 데서 출발하기보다, 이 장에서 이어질 모든 교회의 출발점이 어떠한 상태의 교회였는지를 먼저 보여 줍니다.

 

태고교회가 ‘천적’이었다는 것은 그 교회의 사람들이 주님에 대한 사랑을 가장 중심에 두고, 그 사랑으로부터 신앙과 진리를 받아들였다는 뜻입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천적인 질서는 ‘먼저 진리를 알고 그 진리를 통하여 사랑에 이르는 것’이라기보다, 주님께 받은 사랑과 선으로부터 무엇이 참인지를 퍼셉션하는 질서입니다. 그러므로 태고교회가 ‘사람’이라 불렸다는 것은 단순히 그 구성원들이 인간이었다는 뜻이 아니라, 그들에게 주님으로부터 오는 참된 인간성이 형성되어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이 점은 ‘하나님의 모양’이라는 표현과 직접 연결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모양이라는 것은 사람이 스스로 하나님과 같은 존재라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 안에 있는 선과 진리, 사랑과 지혜의 모든 생명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며, 사람이 그것을 받아들일수록 주님의 모양이 그 안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모양’은 인간 자신의 고유한 탁월함을 높이는 표현이라기보다, 인간이 참으로 인간다워지는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 주는 표현입니다. 인간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을 받아들이는 만큼 참된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AC.461의 ‘사람’(homo)이라는 표현은 중요합니다. 말씀의 속뜻에서 ‘사람’은 단순히 생물학적 인간을 뜻하는 데 그치지 않고, 주님에게서 오는 사랑과 신앙을 받아 참된 질서 안에 있는 사람, 더 넓게는 그러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교회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태고교회가 ‘사람’이라 불린 것은 그 교회가 이러한 천국의 질서를 가장 온전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창5가 바로 이 ‘사람’으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은 이후 이어지는 교회들의 상태를 이해하는 기준점이 됩니다.

 

또한 AC.461은 창1의 인간 창조와 창5의 족보가 서로 떨어져 있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창1에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는 사람은 거듭남을 통하여 주님의 형상과 모양을 받아 가는 사람을 다루었고, 여기 창5에서는 그 출발점에 있었던 천적 태고교회가 다시 ‘사람’과 ‘하나님의 모양’이라는 말로 제시됩니다. 따라서 창5는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앞에서 형성된 태고교회가 이후 어떠한 상태들을 거쳐 이어져 갔는지를 계속해서 보여 주는 장입니다.

 

결국 AC.461이 우리에게 보여 주는 ‘사람’의 기준은 외적인 조건이나 인간 자신의 프로프리움에 있지 않습니다. 참된 인간성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과 선,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진리를 받아들이는 데 있습니다. 태고교회가 ‘사람’이며 ‘하나님의 모양’이라 불릴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리고 창5는 이 가장 처음의 천적 상태를 기준점으로 삼아, 이후 교회들의 상태가 어떻게 이어지고 달라져 가는지를 보여 주기 시작합니다. (AC.461 해설)

 

 

 

AC.462, 창5, ‘셋은 태고교회만큼 천적이지 않았던 두 번째 교회이다’

개요 AC.462태고교회만큼 천적이지는 않았던 두 번째 교회를 가리켜 ‘셋’(Seth)이라 하였습니다. (2-3절) A second church which was not so celestial as the most ancient church is called “Seth.” (verses 2–3) 2남자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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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60, 창5, ‘창5는 태고교회가 홍수 직전까지 이어져 간 과정을 다룬다’(AC.460-468)

창5 1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This is the book of the births of man. In the day that God created man, in the likeness of God made he him. 2남자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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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5

 

1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This is the book of the births of man. In the day that God created man, in the likeness of God made he him. 2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Male and female created he them, and blessed them, and called their name man, in the day when they were created. 3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And man lived a hundred and thirty years, and begat into his likeness, after his image, and called his name Seth. 4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the days of man after he begat Seth were eight hundred years; and he begat sons and daughters. 5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that man lived were nine hundred and thirty years; and he died. 6셋은 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And Seth lived a hundred and five years, and begat Enosh. 7에노스를 낳은 후 팔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Seth lived after he begat Enosh eight hundred and seven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8그는 구백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of Seth were nine hundred and twelve years; and he died. 9에노스는 구십 세에 게난을 낳았고 And Enosh lived ninety years, and begat Kenan. 10게난을 낳은 후 팔백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Enosh lived after he begat Kenan eight hundred and fifteen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11그는 구백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of Enosh were nine hundred and five years; and he died. 12게난은 칠십 세에 마할랄렐을 낳았고 And Kenan lived seventy years, and begat Mahalalel. 13마할랄렐을 낳은 후 팔백사십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Kenan lived after he begat Mahalalel eight hundred and forty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14그는 구백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of Kenan were nine hundred and ten years; and he died. 15마할랄렐은 육십오 세에 야렛을 낳았고 And Mahalalel lived sixty and five years, and begat Jared. 16야렛을 낳은 후 팔백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And Mahalalel lived after he begat Jared eight hundred and thirty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17그는 팔백구십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of Mahalalel were eight hundred ninety and five years; and he died. 18야렛은 백육십이 세에 에녹을 낳았고 And Jared lived a hundred sixty and two years, and begat Enoch. 19에녹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Jared lived after he begat Enoch eight hundred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20그는 구백육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of Jared were nine hundred sixty and two years; and he died. 21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And Enoch lived sixty and five years, and begat Methuselah. 22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Enoch walked with God after he begat Methuselah three hundred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23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And all the days of Enoch were three hundred sixty and five years. 24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And Enoch walked with God, and he was no more, for God took him. 25므두셀라는 백팔십칠 세에 라멕을 낳았고 And Methuselah lived a hundred eighty and seven years, and begat Lamech. 26라멕을 낳은 후 칠백팔십이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And Methuselah lived after he begat Lamech seven hundred eighty and two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27그는 구백육십구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of Methuselah were nine hundred sixty and nine years; and he died. 28라멕은 백팔십이 세에 아들을 낳고 And Lamech lived a hundred eighty and two years, and begat a son; 29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And he called his name Noah, saying, He shall comfort us from our work, and the toil of our hands, out of the ground which Jehovah hath cursed. 30라멕은 노아를 낳은 후 오백구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Lamech lived after he begat Noah five hundred ninety and five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31그는 칠백칠십칠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of Lamech were seven hundred seventy and seven years; and he died. 32노아는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And Noah was a son of five hundred years; and Noah begat Shem, Ham, and Japheth.

 

AC.460

이 장은 특별히 태고교회가 이어지는 여러 세대를 거쳐 홍수에 거의 이르기까지 계속되어 간 과정을 다룹니다. This chapter treats specifically of the propagation of the most ancient church through successive generations, almost to the flood.

 

해설

AC.460은 창5의 ‘장 개요’가 어디에서 출발하는지를 보여 주는 짧지만 중요한 문장입니다. 창5의 본문은 여러 이름과 출생, 나이와 죽음이 반복되는 족보의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이 장에서 특별히 다루는 것이 ‘태고교회가 이어지는 여러 세대를 거쳐 홍수에 거의 이르기까지 계속되어 간 과정’이라고 먼저 밝힙니다. 따라서 창5를 읽을 때에는 문자에 나타나는 족보의 형식만이 아니라, 그 안에서 태고교회가 어떻게 이어지고 변화해 가는지를 함께 보아야 합니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표현은 ‘이어지는 여러 세대’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시간이 흘러 한 세대 다음에 또 한 세대가 왔다는 정도의 말이 아닙니다. 이어지는 본문 해설에서 더욱 분명해지겠지만, 창5에 등장하는 이름들은 속뜻으로는 태고교회로부터 차례로 이어진 여러 교회들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이 장의 관심은 각 이름을 가진 사람들의 일대기를 들려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태고교회 안에서 하나의 교회가 다음 교회로 이어지면서 그 상태가 어떻게 달라져 갔는지를 보여 주는 데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창5의 족보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읽히기 시작합니다. 문자상으로는 이름들이 세대별로 이어지는 족보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속뜻으로는 태고교회에 속한 여러 교회가 차례로 이어지면서 나타낸 서로 다른 상태들의 연속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중요한 것은 등장하는 이름들을 먼저 역사적 개인으로 볼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속뜻, 곧 내적 의미로는 그 이름들이 무엇을 나타내며, 그들을 통하여 주님께서 교회의 어떠한 상태와 변화를 보여 주시는지를 살피는 것입니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이 과정의 끝을 AC.460이 ‘홍수에 거의 이르기까지’라고 정한다는 점입니다. 창5는 아직 홍수 자체를 다루지 않지만, 이 장에서 전개되는 태고교회의 역사는 홍수 직전까지 이어집니다. 따라서 창5는 여러 세대와 교회의 상태를 각각 따로 떼어 보여 주는 장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연속적인 흐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흐름이 어디에서 시작하여 어디까지 이르는지를 AC.460이 먼저 밝혀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으로 반복해서 등장할 ‘낳고’, ‘살고’, ‘죽었더라’라는 표현과 여러 숫자를 읽는 데에도 중요한 출발점이 됩니다. 아직 AC.460에서는 그 각각의 의미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 모든 기록이 태고교회의 이어지는 세대들을 다루는 하나의 전체 안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먼저 알려 줍니다. 그러므로 개별 이름이나 숫자의 속뜻을 살필 때에도 언제나 ‘지금 태고교회의 어떠한 상태와 그 이어짐을 말하고 있는가?’라는 전체 문맥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AC.460은 창5를 단순히 오래된 족보로 지나치지 않게 합니다. 말씀의 문자 안에는 태고교회가 세대를 거쳐 이어지고 마침내 홍수 직전까지 이르는 긴 영적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앞으로의 ‘장 개요’와 본문 해설은 바로 그 역사를 하나씩 펼쳐 보여 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과정을 따라가면서 교회의 상태가 어떻게 이어지고 달라지는지, 그리고 그러한 변화 속에서도 주님께서 교회를 어떻게 이끌어 가시는지를 차츰 보게 될 것입니다. (AC.460 해설)

 

 

 

AC.461, 창5, ‘사람과 하나님의 모양은 태고교회 자체를 가리킨다’

개요 AC.461천적이었던 태고교회 그 자체를 가리켜 ‘사람’(homo), 그리고 ‘하나님의 모양’이라 하였습니다. (1절) The most ancient church itself, which was celestial, is what is called “man” [homo], and a “lik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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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59, 창5 앞, ‘세 천국과 천적·영적 존재의 차이’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9천국은 셋입니다. 첫째 천국은 선한 영들(good spirits)이 거하는 곳이고, 둘째 천국은 천사적 영들(angelic spirits)이 거하는 곳이며, 셋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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