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27'에 해당되는 글 2건

  1. 16:13:58 AC.18, 심화 3, ‘사51:9-11’
  2. 15:42:03 AC.17, 심화 2, ‘렘4:22-23’

AC.18.심화

 

3. ‘51:9-11

 

9여호와의 팔이여 깨소서 깨소서 능력을 베푸소서 옛날 옛 시대에 깨신 것 같이 하소서 라합을 저미시고 용을 찌르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며 10바다를, 넓고 깊은 물을 말리시고 바다 깊은 곳에 길을 내어 구속받은 자들을 건너게 하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니이까 11여호와께 구속받은 자들이 돌아와 노래하며 시온으로 돌아오니 영원한 기쁨이 그들의 머리 위에 있고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이다 (51:9-11) Awake as in the ancient days, in the generations of old. Art not thou it that drieth up the sea, the waters of the great deep, that maketh the depths of the sea a way for the ransomed to pass over? Therefore the redeemed of Jehovah shall return (Isa. 51:9–11).

 

 

이 이사야 51장 구절이 AC.18에 인용된 이유는, 창세기 1 2절의 깊음(deep),  깊음 위의 흑암’이 단순한 바다나 물리적 심연이 아니라, 거듭나기 이전 인간 안에 있는 욕망과 거짓의 혼돈 상태’를 뜻한다는 사실을 성경 자체로 증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스베덴보리는 특별히 바다’, ‘깊은 물’, ‘’, 그리고 구속받은 자들이 건너가는 길’이라는 이미지들을 통해, 창조와 구원이 동일한 영적 구조 안에 있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먼저 이 본문은 단순히 출애굽 사건을 회상하는 시가 아닙니다. 문자적으로는 홍해를 가르시고, 백성을 건너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이지만, 스베덴보리는 그 속뜻에서 이것을 거듭남 이전의 혼돈 상태로부터 인간을 건져 내시는 주님의 역사’로 읽습니다. 그래서 바다’와 깊은 물’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인간 안에 있는 깊은 혼란과 시험의 상태를 뜻합니다.

 

특히 라합을 저미시고 용을 찌르신 이’라는 표현이 중요합니다. 말씀에서 (dragon)이나 바다 괴물’은 흔히 자기 사랑과 거짓, 그리고 그것에서 나오는 교만한 추론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인간 안에서 주님의 질서를 거스르는 가장 깊고 원초적인 상태를 상징합니다. 이것은 AC.18에서 말한 깊음’과 정확히 연결됩니다. 창세기 1 2절의 깊음’은 아직 질서 잡히지 않은 인간의 욕망과 거짓의 심연이며, 이사야는 그것을 바다의 깊은 물’과 ’이라는 상징으로 다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바다를 말리시고 깊은 곳에 길을 내어 구속받은 자들을 건너게 하셨다’는 표현도 결정적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기적 이야기가 아니라, 주님께서 인간 안의 혼돈과 시험 가운데 ’을 내신다는 뜻입니다. 즉, 거듭남은 혼돈이 없는 상태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깊음 한가운데서 주님께서 길을 여심으로 시작됩니다. 그래서 AC.18에서 스베덴보리는 깊음’이 단지 부정적 상태만이 아니라, 동시에 주님의 영이 움직이시기 시작하는 자리라는 점을 말하려 했습니다.

 

이어지는 구속받은 자들이 돌아와 시온으로 돌아온다’는 말은, 거듭남의 결과를 뜻합니다. ‘시온’은 주님과의 사랑의 상태, 곧 회복된 교회와 회복된 인간 내면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깊은 물을 건넌다는 것은 단순히 위험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혼돈 상태에서 질서와 평안의 상태로 이동하는 영적 여정을 뜻합니다.

 

결국 이 본문이 AC.18에 인용된 이유는 매우 분명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창세기 1장의 깊음’을 설명하면서, 그것이 단순한 우주론적 바다가 아니라 인간 안의 영적 혼돈 상태이며, 주님은 바로 그 깊음 속에서 길을 내시고 사람을 구속하여 새 창조로 이끄신다는 사실을 이사야 51장을 통해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조와 출애굽과 거듭남은 모두 같은 구조를 갖습니다.  혼돈의 깊음  주님의 역사  길의 열림  구속받은 자의 귀환’이라는 구조입니다.

 

 

 

AC.18, 창1:2, '깊음의 황폐 : 욕정과 거짓이 말라야 새 생명이 열린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창1:2) AC.18 ‘깊음’(faces of the deep)은 거듭나지 않은 사람의 욕정(cupidities)과, 그로 말미암는 거짓(fals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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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8, 심화 2, 라틴어 ‘vastatio’의 영역 ‘vastation’과 ‘desolation’(혹은 ‘devastation’)의 비교

AC.18.심화 2. 라틴어 ‘vastatio’의 영역 ‘vastation’과 ‘desolation’(혹은 ‘devastation’)의 비교 AC 포츠역 영어 ‘vastation’은 현대 사전엔 잘 안 나오고, 대신 ‘desolation’이 나오네요. ‘vas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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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7.심화

 

2. ‘4:22-23

 

22내 백성은 나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요 지각이 없는 미련한 자식이라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도다 23보라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에는 빛이 없으며 (4:22, 23) My people is stupid, they have not known me; they are foolish sons, and are not intelligent; they are wise to do evil, but to do good they have no knowledge. I beheld the earth, and lo a void and emptiness, and the heavens, and they had no light  (Jer. 4:22–23).

 

 

AC.17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예레미야 구절을 인용한 이유는, 창세기 1 2절의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다’는 상태가 단순한 물질 우주의 초기 상태가 아니라, ‘거듭나기 이전 인간의 영적 상태’를 뜻한다는 점을 성경 자체로 증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예레미야 4장의 이 구절은 창세기 1장의 언어가 실제로는 인간 내면의 황폐 상태를 묘사하는 상응의 언어임을 보여 주는 결정적 병행 본문으로 사용된 것입니다.

 

예레미야 본문을 보면 먼저 내 백성은 나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라고 합니다. 여기서 문제는 단순한 지식 부족이 아니라, 주님에 대한 인식과 신앙의 상실입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말이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다’입니다. 이것은 이해력은 남아 있지만, 그 이해력이 선을 향하지 않고 악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즉, 지혜가 거꾸로 된 상태입니다.

 

그다음에 바로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에는 빛이 없었다’는 표현이 이어집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매우 중요하게 봅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은 실제 지구가 아니고, ‘하늘’도 실제 우주 하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인간 안의 상태를 말합니다. ‘’은 겉 사람, 혹은 교회의 수용 상태를 뜻하고, ‘하늘’은 속 사람, 곧 진리와 선이 있어야 할 내적 영역을 뜻합니다. 그런데 그 하늘에 빛이 없다’고 합니다. 즉, 진리가 사라졌고, 주님의 빛이 비치지 않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혼돈하고 공허하다’는 표현은 바로 창세기 1 2절의 표현과 동일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를 통해 창세기의 창조 언어가 이미 선지서에서 영적 황폐 상태’를 묘사하는 데 사용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다시 말해, 창세기의 혼돈과 공허’는 물질 우주의 미완성 상태가 아니라, 아직 주님의 질서와 빛이 들어오기 전 인간 내면의 상태라는 것입니다.

 

특히 중요한 점은, 예레미야 본문에서는 그 상태가 죄와 무지와 신앙 상실’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즉, ‘빛 없음’은 물리적 어둠이 아니라 영적 어둠이며, ‘혼돈과 공허’는 주님에게서 분리된 인간의 내적 상태를 뜻합니다. 그래서 AC.17에서 이 구절은, 창세기 1장의 창조 이야기가 사실은 거듭남 이전 인간 상태’에서 주님의 빛이 들어오는 과정’을 묘사하는 것임을 입증하는 증거 본문으로 인용된 것입니다.

 

결국 스베덴보리는 예레미야 4장을 통해 이렇게 말하고 있는 셈입니다. ‘보라, 창세기의 언어는 이미 선지자들 안에서 인간의 영적 상태를 설명하는 언어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므로 창세기의 창조 역시 인간 내면의 새 창조, 곧 거듭남을 말하는 것이다.’

 

 

 

AC.17, 창1:2, '혼돈과 공허, 흑암의 상태 : 거듭남 이전 인간의 실상'(AC.17-19)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And the earth was a void and emptiness, and thick darkness was upon the faces of the deep. And the spirit of God moved upon the faces of 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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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7, 심화 1, ‘속 사람 안을 비출 빛을 좀 앞당겨 켤 수는 없을까?’

AC.17.심화 1. ‘속 사람 안을 비출 빛을 좀 앞당겨 켤 수는 없을까?’ AC.17에 ‘혼돈’과 ‘공허’, 그리고 ‘흑암’이 나오는데요, 제 경우를 보더라도 저는 심지어 모태신앙임에도 불구, 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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