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계12:17)The dragon was wroth with the woman,and went to make war with the remnant of her seed,who were keeping the commandments of God,and have the testimony of Jesus Christ(Rev. 12:17).
AC.255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창3:15의 ‘여자의 후손’(seed of the woman)이 무엇인지를 성경 자체가 직접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그는 ‘여자’는 교회를 의미하고, ‘여자의 후손’은 주님에 대한 신앙(faith in the Lord)을 의미한다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 계시록에서는 ‘여자의 남은 자손’(remnant of her seed)이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말해 줍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입니다. 즉 육체적 혈통으로 연결된 사람들이 아니라, 신앙과 삶으로 주님과 연결된 사람들입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이것은 매우 중요한 증거입니다. 만일 ‘여자의 씨,후손’이 문자 그대로의 후손을 의미한다면, 계시록도 혈통에 관하여 말해야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의 증거를 가진 사람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따라서 ‘씨’(seed)는 혈통이 아니라 영적 성격을 의미한다는 것이 분명해집니다.
또한 이 구절은 창3:15의 예언이 계시록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창세기에서는 뱀과 여자 사이에 원수가 생기고,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대가 생길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계시록에서는 실제로 용이 여자와 그녀의 자손을 공격하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계시록의 용을 창세기의 뱀과 동일한 존재로 봅니다. 앞의AC.251에서 설명한 것처럼, 용은 옛 뱀이며, 자기 사랑과 악, 그리고 거짓의 세력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용이 여자의 자손과 싸운다는 것은 악과 거짓이 참된 신앙을 공격한다는 뜻입니다.
특히 여기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신앙이 삶 속에서 실천되는 모습을 의미하고, ‘예수의 증거를 가진다’는 것은 주님을 인정하고, 그분의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점은 스베덴보리의 신앙 이해와도 정확히 일치합니다. 그에게 참된 신앙은 단순한 믿음이 아니라, 주님을 인정하고, 계명에 따라 살아가는, 삶과 결합된 신앙입니다. 그래서 계시록은 여자의 자손을 단순히 ‘믿는 자들’이라고 하지 않고,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이라고 설명합니다.
따라서AC.255에서 이 구절이 인용된 이유는, ‘여자의 후손’이 누구인지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여자의 후손은 육체적 후손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주님을 믿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입니다. 곧 주님께 대한 참된 신앙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창3:15의 ‘여자의 후손’이 신앙을 의미한다는 스베덴보리의 해석을 가장 명확하게 뒷받침하는 본문 가운데 하나이며, 동시에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사이의 영적 전쟁이 성경의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사44:3)I will pour waters upon the thirsty,and floods upon the dry[land];I will pour my spirit upon thy seed,and my blessing upon thine offspring(Isa. 44:3).
AC.255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성경에서 ‘씨’(seed)가 단순한 육체적 후손이 아니라 신앙과 영적 생명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이 구절을 문자적으로 읽으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후손들에게 복을 주시겠다는 약속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자손’(seed)이라는 표현을 혈통이 아니라 영적 의미로 이해합니다.
그 이유는 본문 자체가 영적 언어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목마른 자’(thirsty)는 진리를 갈망하는 사람을 의미하고, ‘물’(waters)은 진리를 의미합니다. 또한 ‘마른 땅’(dry land)은 진리와 선이 결핍된 상태를 의미하며, ‘시내’(floods)는 풍성하게 공급되는 진리들을 의미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이어지는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부어 주리니’라는 말씀도 단순한 육체적 후손에 관한 말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혈통 위에 부어지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부어집니다. 따라서 여기서 ‘자손’(seed)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신앙을 받아들이는 사람들, 또는 그들 안에 있는 신앙 자체를 의미합니다.
또한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라는 표현도 같은 의미입니다. 말씀에서 복(blessing)은 단순한 물질적 번영이 아니라 선과 진리의 결합, 곧 영적 생명의 충만함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복이 후손에게 부어진다는 것은 신앙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영적 생명이 주어진다는 뜻입니다.
스베덴보리가AC.255에서 이 구절을 인용하는 목적은 매우 분명합니다. 창3:15의 ‘여자의 후손’을 설명하기 위함입니다. 그는 ‘여자의 후손’을 신앙(faith in the Lord)이라고 설명했는데, 여기 사44:3은 ‘씨’(seed)가 하나님의 영과 복을 받는 대상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는 씨가 단순한 혈통이 아니라 신앙과 관련된 영적 개념임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씨’(seed)가 영적으로는 신앙을 의미한다는AC.255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인용됩니다. 물은 진리, 영은 주님의 생명, 복은 선과 사랑을 의미하며, 그것들이 부어지는 ‘자손’(seed)은 주님께 대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 또는 그 신앙 자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44:3은 ‘여자의 씨,후손=신앙’이라는 스베덴보리의 해석을 뒷받침하는 대표적인 본문 가운데 하나로 사용된 것입니다.
14너희는 이르기를 어찌 됨이니이까 하는도다 이는너와 네가 어려서 맞이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증인이 되시기 때문이라그는 네 짝이요 너와 서약한 아내로되 네가 그에게 거짓을 행하였도다15그에게는 영이 충만하였으나 오직 하나를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만드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맞이한 아내에게 거짓을 행하지 말지니라(말2:14, 15)Jehovah hath witnessed between thee and the wife of thy youth;and not one hath done so who had a residue of the spirit;and wherefore one,seeking the seed of God?But observe ye in your spirit, lest he deal treacherously against the wife of thy youth(Mal. 2:14–15).
AC.255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창3:15의 ‘여자의 후손’(seed of the woman)이 신앙(faith)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특별히 그는 여기 나오는 ‘경건한 자손’(seed of God)이라는 표현에 주목합니다.
문자적으로는 결혼 언약을 저버리는 일을 책망하는 말씀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이 말씀을 교회와 주님의 관계에 대한 영적 묘사로 이해합니다. 앞서AC.253에서 설명한 것처럼 ‘어려서 맞이한 아내’(the wife of thy youth)는 단순한 배우자가 아니라 고대교회와 태고교회를 의미합니다. 곧 주님과 가장 순수하게 결합되어 있었던 교회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본문은 ‘어찌하여 하나만 만드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스베덴보리는 ‘경건한 자손’(seed of God)을 육체적 자녀가 아니라 교회 안에서 태어나는 신앙으로 해석합니다.
그 이유는 그의 상응 해석에서 ‘씨’(seed)는 언제나 어떤 원리에서 나오는 산물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악에서 나오면 ‘행악의 종자’가 되고, 거짓에서 나오면 ‘거짓의 후손’이 되며, 하나님에게서 나오면 ‘경건한 자손’이 됩니다. 따라서 ‘경건한 자손’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신앙, 곧 주님께 대한 참된 신앙을 의미합니다.
또한 ‘여호와께서 증인이 되셨다’는 표현은 주님과 교회의 결합이 신성한 언약임을 뜻합니다. 그리고 그 결합의 목적은 단순히 외적인 조직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참된 신앙이 계속 태어나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AC.255에서 이 구절은 매우 중요한 증거 본문이 됩니다. 창3:15에서 ‘여자의 후손’이 단순한 육체적 후손이라면, 말라기의 ‘경건한 자손’도 단순한 자녀를 의미해야 합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여기서 씨, 후손, 자손은 교회 안에 살아 있는 신앙이며,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진리와 선의 생명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이 인용된 이유는 ‘씨’(seed)라는 표현이 영적으로는 신앙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특히 ‘경건한 자손’(seed of God)은 주님에게서 나오는 참된 신앙을 의미하며, 이것이 바로 창3:15에서 말하는 ‘여자의 후손’의 본질이라는 점을 설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결국 ‘뱀의 후손’이 불신이라면, ‘여자의 후손’은 신앙이며, 말2:15의 ‘경건한 자손’은 그 사실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구절 가운데 하나인 것입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3:15)
AC.255
‘여자의 후손’(seed of the woman)이 주님에 대한 신앙(faith in the Lord)을 의미한다는 것은, ‘여자’가 교회를 의미한다는 사실로부터 분명합니다. 교회의 씨, 후손은 오직 신앙뿐입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교회라고 불리는 것은 주님에 대한 신앙으로 말미암기 때문입니다. 말라기에서는 신앙을 가리켜 ‘경건한 자손’(seed of God)이라 합니다. That the “seed of the woman” signifies faith in the Lord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woman” as being the church, whose “seed” is nothing but faith, for it is from faith in the Lord that the church is called the church. In Malachi, faith is called the “seed of God”:
14너희는 이르기를 어찌 됨이니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와 네가 어려서 맞이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증인이 되시기 때문이라 그는 네 짝이요 너와 서약한 아내로되 네가 그에게 거짓을 행하였도다 15그에게는 영이 충만하였으나 오직 하나를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만드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맞이한 아내에게 거짓을 행하지 말지니라(말2:14, 15) Jehovah hath witnessed between thee and the wife of thy youth; and not one hath done so who had a residue of the spirit; and wherefore one, seeking the seed of God? But observe ye in your spirit, lest he deal treacherously against the wife of thy youth (Mal. 2:14–15).
여기 ‘어려서 맞이한 아내’(wife of youth)는 고대교회와 태고교회를 의미하며, 그 ‘씨’(seed), 곧 신앙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에서도 교회를 가리키면서In this passage the “wife of youth” is the ancient and most ancient churches, of whose “seed” (or faith) the prophet speaks. In Isaiah also, in reference to the church: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사44:3) I will pour waters upon the thirsty, and floods upon the dry [land]; I will pour my spirit upon thy seed, and my blessing upon thine offspring (Isa. 44:3).
계시록에서In Revelation: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계12:17) The dragon was wroth with the woman, and went to make war with the remnant of her seed, who were keeping the commandments of God, and have the testimony of Jesus Christ (Rev. 12:17).
그리고 시편And in David:
3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내가 택한 자와 언약을 맺으며 내 종 다윗에게 맹세하기를4내가 네 자손을 영원히 견고히 하며 네 왕위를 대대에 세우리라 하셨나이다, 29또 그의 후손을 영구하게 하여 그의 왕위를 하늘의 날과 같게 하리로다, 36그의 후손이 장구하고 그의 왕위는 해 같이 내 앞에 항상 있으며(시89:3-4, 29, 36) I have made a covenant with mine elect, I have sworn unto David my servant, even to eternity will I establish thy seed, and his seed will I make to endure forever, and his throne as the days of the heavens; his seed shall endure to eternity, and his throne as the sun before me (Ps. 89:3–4, 29, 36),
여기 ‘다윗’(David)은 주님을, ‘왕위’(throne)는 그분의 왕국을, ‘해’(sun)는 사랑을, 그리고 ‘후손’(seed)은 신앙을 의미합니다. where by “David” is meant the Lord; by “throne,” his kingdom; by the “sun,” love; and by “seed,” faith.
해설
AC.255는 앞의 AC.254와 짝을 이루는 대목입니다. AC.254가 ‘뱀의 후손’을 설명하였다면, AC.255는 ‘여자의 후손’을 설명합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씨’(seed, 후손)는 언제나 어떤 원리에서 나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뱀의 후손’이 악과 자기 사랑에서 나온 불신과 거짓이라면, ‘여자의 후손’은 교회에서 나오는 신앙, 곧 주님께 대한 신앙입니다.
그는 여기서 매우 중요한 원리를 말합니다. ‘교회의 후손은 오직 신앙뿐이다.’ 왜냐하면 교회는 건물이나 조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믿고, 그분과 결합하는 신앙으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자의 후손은 본질적으로 신앙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동시에 이 신앙이 단순한 지적 동의가 아니라고 봅니다. 그의 신학에서 참된 신앙은 언제나 사랑과 결합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89편에서 ‘후손’(seed)이 ‘왕위’(throne)와 ‘해’(sun)와 함께 언급되는 것입니다. 해는 사랑이고, 왕위는 주님의 왕국이며, 씨, 그러니까 후손은 신앙입니다. 즉 사랑과 신앙이 함께 주님의 왕국을 이루는 것입니다.
또한 계12:17의 ‘여자의 남은 자손’에 대한 해석은 매우 중요합니다. 거기서 여자의 자손은 단순한 혈통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입니다. 이것은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씨, 곧 자손의 의미를 직접 보여줍니다. 씨는 육체적 후손이 아니라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말2:15의 ‘경건한 자손’(seed of God)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주님께서 교회를 세우시는 목적은 단순히 사람 수를 늘리는 데 있지 않고, 참된 신앙을 낳고 보존하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경건한 자손’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신앙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AC.255에서 여러 구절이 인용된 이유는 모두 하나입니다. 창3:15의 ‘여자의 후손’을 육체적 후손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그것은 교회 안에 있는 참된 신앙이며, 궁극적으로는 그 신앙의 근원이신 주님 자신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의 해석에서 창3:15은 단순히 하와의 후손과 뱀의 후손 사이의 싸움이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께 대한 신앙과 자기 사랑에서 나온 불신 사이의 영원한 대립을 의미합니다. 뱀의 후손은 불신이고, 여자의 후손은 신앙이며, 그 신앙의 중심에는 결국 주님 자신이 계시는 것입니다.
19오직너는 자기 무덤에서 내쫓겼으니 가증한 나뭇가지 같고칼에 찔려 돌 구덩이에 떨어진 주검들에 둘러싸였으니 밟힌 시체와 같도다20네가 네 땅을 망하게 하였고 네 백성을 죽였으므로그들과 함께 안장되지 못하나니악을 행하는 자들의 후손은 영원히 이름이 불려지지 아니하리로다할지니라(사14:19, 20)Thou art cast out of thy sepulcher like an abominable shoot,because thou hast corrupted thy land,thou hast slain thy people;the seed of evildoers shall not be called to eternity(Isa. 14:19–20).
AC.254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성경에서 ‘씨’(seed)또는 ‘후손’(seed)이 단순한 혈통이 아니라 어떤 영적 원리에서 나온 결과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다시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앞에서 그는 창3:15의 ‘뱀의 후손’을 ‘모든 불신’(all infidelity)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를 입증하기 위해 사1:4의 ‘행악의 종자’, 사57:5의 ‘거짓의 후손’을 인용하였으며, 여기서는 다시 ‘악을 행하는 자들의 후손’(seed of evildoers)이라는 표현을 제시합니다.
문자적으로 보면 이 말씀은 바벨론 왕, 또는 루시퍼(Lucifer)로 불리는 존재에 대한 심판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단순한 역사적 인물에 대한 예언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는 여기서 루시퍼를 자기 사랑과 교만, 그리고 그로부터 나오는 악의 원리로 이해합니다.
특히 ‘네가 네 땅을 망하게 하였고 네 백성을 죽였다’는 표현은 악이 교회와 인간의 영적 생명을 파괴하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땅’(land)은 흔히 교회를, ‘백성’(people)은 교회 안의 진리들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악을 행하는 자들의 후손’(seed of evildoers)이라는 말이AC.254의 핵심입니다. 여기서 후손은 육체적 자손이 아니라 악에서 태어난 모든 것, 곧 악한 생각, 악한 의지, 악한 교리, 악한 삶을 의미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구절을 통해 ‘씨’(seed)가 영적 기원을 나타내는 표현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거짓의 후손’은 거짓에서 나온 것을 의미하고, ‘행악의 종자’는 악에서 나온 것을 의미하며, ‘악을 행하는 자들의 후손’도 같은 의미를 가집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창3:15의 ‘뱀의 후손’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뱀의 후손, 뱀의 씨란 어떤 특정 혈통이나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사랑과 악이라는 뿌리에서 자라난 모든 불신과 거짓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AC.254에서 사14:19-20을 인용한 이유는, 성경이 반복적으로 ‘씨’(seed)를 영적 원리의 산물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악을 행하는 자들의 후손’이라는 표현은 곧 창세기의 ‘뱀의 후손’과 같은 계열의 개념으로서, 악에서 나온 모든 불신과 거짓을 가리키는 대표적인 예로 제시된 것입니다.
3무당의 자식, 간음자와 음녀의 자식들아 너희는 가까이 오라4너희가 누구를 희롱하느냐 누구를 향하여 입을 크게 벌리며 혀를 내미느냐너희는 패역의 자식, 거짓의 후손이 아니냐5너희가 상수리나무 사이,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음욕을 피우며 골짜기 가운데 바위틈에서 자녀를 도살하는도다(사57:3-5)Draw near hither,ye sons of the sorceress,the seed of the adulterer.Are ye not children of transgression,a seed of falsehood(Isa. 57:3–5)?
AC.254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창3:15의 ‘뱀의 후손’(seed of the serpent)이 단순한 혈통이나 육체적 후손이 아니라 ‘거짓과 불신에서 나온 영적 산물’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이 구절의 핵심 표현은 ‘간음자의 자식’(seed of the adulterer)과 ‘거짓의 후손’(seed of falsehood)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성경에서 ‘씨’(seed,후손)를 어떤 원리에서 나오는 결과물로 이해합니다. 따라서 ‘여자의 후손’은 신앙과 진리에서 나오는 것을 의미하고, 반대로 ‘뱀의 후손’은 악과 거짓에서 나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간음’(adultery)은 문자적 의미의 음행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말씀의 내적 의미에서 간음은 진리와 선을 버리고, 거짓과 악을 받아들이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간음자의 자식’은 거짓된 교리와 왜곡된 신앙에서 나온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거짓의 후손’(seed of falsehood)이라는 표현은AC.254의 주제를 거의 직접적으로 설명합니다.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뱀의 후손’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자기 사랑과 감각적 자기 지혜에서 출발한 거짓, 그리고 그 거짓에서 태어난 불신과 왜곡된 사고 전체를 의미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패역의 자식’(children of transgression)도 같은 맥락입니다. 패역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주님과 진리를 거스르는 상태를 말합니다. 따라서 패역의 자식은 패역을 삶의 원리로 삼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또한 ‘상수리나무 사이’, ‘모든 푸른 나무 아래’, ‘골짜기 가운데 바위틈에서 자녀를 도살한다’는 표현 역시 영적으로는 참된 예배와 진리를 왜곡하고 파괴하는 상태를 묘사합니다. 특히 ‘자녀를 도살한다’는 것은 교회 안에서 태어나야 할 진리와 선을 파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이 구절을 통해 ‘씨’(seed,후손)라는 표현이 혈통이 아니라 영적 기원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려 합니다. 악에서 나오면 ‘행악의 종자’가 되고, 거짓에서 나오면 ‘거짓의 후손’이 되며, 간음된 교리에서 나오면 ‘간음자의 자식’이 됩니다.
따라서AC.254에서 사57:3-5가 인용된 이유는, 창3:15의 ‘뱀의 후손’이 곧 거짓과 불신의 계열 전체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입니다. ‘간음자의 자식’, ‘거짓의 후손’이라는 표현은 모두 ‘뱀의 후손’과 같은 계열의 상징이며, 자기 사랑에서 시작된 거짓이 결국 불신과 영적 파괴를 낳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인 것입니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사1:4)Woe to the sinful nation,a people laden with iniquity,a seed of evil doers,sons that are destroyers;they have forsaken Jehovah,they have provoked the holy one of Israel,they have estranged themselves backward(Isa. 1:4).
AC.254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창3:15의 ‘뱀의 후손’(seed of the serpent)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이미 ‘뱀의 후손은 모든 불신(all infidelity)’이라고 설명하였는데, 여기서는 성경이 악한 상태를 가리켜 ‘행악의 종자’(seed of evil doers)라고 부르는 예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스베덴보리에게 ‘후손(씨)’(seed)은 단순한 육체적 후손이 아닙니다. 어떤 원리에서 나오는 모든 결과, 곧 그 원리가 낳는 생각과 의지, 삶 전체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행악의 종자’는 악한 사람의 자녀라는 뜻이 아니라, 악을 근원으로 삼고, 악에서 나온 삶을 사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이 구절을 보면 ‘행악의 종자’라는 말 다음에 곧바로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라는 말이 이어집니다. 스베덴보리는 바로 이 점에 주목합니다. 악의 씨는 결국 불신의 열매를 맺습니다. 사람이 악을 사랑하게 되면 주님에게서 멀어지고, 주님에게서 멀어지면 신앙을 잃게 됩니다. 그래서 ‘행악의 종자’와 ‘불신’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또한 마지막의 ‘멀리하고 물러갔도다’(they have estranged themselves backward)라는 표현도 중요합니다.AC.248에서 이미 설명되었듯이, ‘뒤로 물러간다’(backward)는 것은 영적으로 주님과 천국을 향하던 상태에서 자기 자신과 세상을 향하는 상태로 바뀌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사1:4는 단순히 도덕적 타락을 책망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내적 의미에서는 교회가 악을 사랑하게 되었고, 그 결과 주님을 버리게 되었으며, 결국 신앙을 잃고 불신 속으로 들어가게 된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AC.254에서 이 구절은 ‘뱀의 후손’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증거로 사용됩니다. 뱀의 후손은 단순한 악행이 아니라, 악에서 비롯된 불신과 주님으로부터의 이탈을 의미합니다. ‘행악의 종자’라는 표현은 바로 그러한 상태를 가리키며, 악이 결국 불신을 낳고, 불신이 다시 더 큰 악을 낳는 영적 순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3:15)
AC.254
‘뱀의 후손’(seed of the serpent)이 모든 불신(infidelity)을 의미한다는 것은, ‘뱀’(serpent)이 모든 악을 의미한다는 사실로부터 분명합니다. ‘후손’(seed)이란 낳는 것과 낳아진 것, 곧 출산하는 것과 출산된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여기서는 교회에 관하여 말하고 있으므로, 그 씨는 불신을 의미합니다. 이사야서에서는 왜곡된 상태에 있는 유대 교회를 가리켜 ‘행악의 종자’(seed of evildoers), ‘간음자의 자식’(seed of the adulterer), ‘거짓의 후손’(seed of falsehood)이라고 합니다. That by the “seed of the serpent” is meant all infidelity,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a “serpent,” as being all evil; “seed” is that which produces and is produced, or that which begets and is begotten; and as the church is here spoken of, this is infidelity. In Isaiah, in reference to the Jewish church in its perverted state, it is called a “seed of evil doers,” a “seed of adultery,” a “seed of falsehood”: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사1:4) Woe to the sinful nation, a people laden with iniquity, a seed of evil doers, sons that are destroyers; they have forsaken Jehovah, they have provoked the holy one of Israel, they have estranged themselves backward (Isa. 1:4).
3무당의 자식, 간음자와 음녀의 자식들아 너희는 가까이 오라4너희가 누구를 희롱하느냐 누구를 향하여 입을 크게 벌리며 혀를 내미느냐 너희는 패역의 자식, 거짓의 후손이 아니냐5너희가 상수리나무 사이,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음욕을 피우며 골짜기 가운데 바위틈에서 자녀를 도살하는도다 (사57:3-5) Draw near hither, ye sons of the sorceress, the seed of the adulterer. Are ye not children of transgression, a seed of falsehood (Isa. 57:3–5)?
또한 이사야는 ‘뱀’ 또는 ‘용’(dragon)을 가리켜 루시퍼(Lucifer)라 합니다. And again, speaking of the “serpent” or “dragon,” who is there called Lucifer:
19오직 너는 자기 무덤에서 내쫓겼으니 가증한 나뭇가지 같고 칼에 찔려 돌 구덩이에 떨어진 주검들에 둘러싸였으니 밟힌 시체와 같도다 20네가 네 땅을 망하게 하였고 네 백성을 죽였으므로 그들과 함께 안장되지 못하나니 악을 행하는 자들의 후손은 영원히 이름이 불려지지 아니하리로다 할지니라 (사14:19, 20) Thou art cast out of thy sepulcher like an abominable shoot, because thou hast corrupted thy land, thou hast slain thy people; the seed of evildoers shall not be called to eternity (Isa. 14:19–20).
해설
AC.254에서 스베덴보리가 설명하려는 핵심은 창3:15의 ‘뱀의 후손’이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그는 이미 AC.250에서 ‘뱀의 후손(씨)은 모든 불신(all infidelity)’이라고 말하였는데, 여기서는 그 근거를 제시합니다.
스베덴보리에게 ‘후손’(seed)은 단순히 후손을 뜻하지 않습니다. 후손, 곧 씨는 어떤 원리에서 나오는 모든 결과물, 곧 그 원리가 낳는 사상과 신념, 그리고 삶 전체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여자의 후손(씨)’이 주님께 대한 신앙과 그로부터 나오는 모든 선과 진리를 의미하듯이, ‘뱀의 후손’은 자기 사랑과 악에서 나오는 모든 불신과 거짓을 의미합니다.
왜 하필 ‘불신’(infidelity)일까요? 스베덴보리의 논리에 따르면 모든 악의 시작은 주님보다 자기 자신을 신뢰하는 데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신뢰하기 시작하면 주님을 신뢰하지 않게 되고, 결국 신앙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자기 사랑의 열매는 결국 불신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뱀의 씨’, ‘뱀의 후손’입니다.
그래서 그는 사1:4를 인용합니다. 여기서 ‘행악의 종자’(seed of evildoers)는 단순히 악한 사람들의 자손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악을 원리로 삼고, 악에서 나온 생각과 삶을 가진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특히 이어지는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라는 말은 그 씨가 결국 불신으로 나타남을 보여줍니다.
사57:3-5의 ‘간음자의 자식’, ‘거짓의 후손’도 같은 의미입니다. 스베덴보리의 해석에서 영적 간음은 진리를 버리고 거짓을 받아들이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간음자의 자식’은 거짓 교리와 불신에서 태어난 모든 것을 의미하며, ‘거짓의 후손’은 거짓 자체를 생명의 원리로 삼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사14:19-20에서는 루시퍼가 등장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루시퍼를 단순한 개인으로 보기보다, 자기 사랑에서 나오는 교만과 악의 원리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악을 행하는 자들의 후손’(seed of evildoers)은 창세기의 ‘뱀의 후손’과 같은 의미를 갖습니다. 곧 악에서 나온 모든 거짓과 불신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따라서 AC.254에서 이 세 구절을 인용한 이유는, 성경에서 ‘후손(씨)’(seed)이 단순한 혈통이 아니라 어떤 영적 원리에서 나온 결과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뱀의 후손’은 자기 사랑과 악에서 나오는 모든 불신과 거짓을 의미하며, 이것이 ‘여자의 후손’, 곧 주님께 대한 신앙과 끊임없이 대립하게 된다는 것이 창3:15의 핵심 의미인 것입니다.
19오직너는 자기 무덤에서 내쫓겼으니 가증한 나뭇가지 같고칼에 찔려 돌 구덩이에 떨어진 주검들에 둘러싸였으니 밟힌 시체와 같도다20네가 네 땅을 망하게 하였고 네 백성을 죽였으므로그들과 함께 안장되지 못하나니악을 행하는 자들의 후손은 영원히 이름이 불려지지 아니하리로다할지니라(사14:19, 20)Thou art cast out of thy sepulcher like an abominable shoot,because thou hast corrupted thy land,thou hast slain thy people;the seed of evildoers shall not be called to eternity(Isa. 14:19–20).
AC.254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성경에서 ‘씨’(seed) 또는 ‘후손’(seed)이 단순한 혈통이 아니라 어떤 영적 원리에서 나온 결과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다시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앞에서 그는 창3:15의 ‘뱀의 후손’을 ‘모든 불신’(all infidelity)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를 입증하기 위해 사1:4의 ‘행악의 종자’, 사57:5의 ‘거짓의 후손’을 인용하였으며, 여기서는 다시 ‘악을 행하는 자들의 후손’(seed of evildoers)이라는 표현을 제시합니다.
문자적으로 보면 이 말씀은 바벨론 왕, 또는 루시퍼(Lucifer)로 불리는 존재에 대한 심판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단순한 역사적 인물에 대한 예언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는 여기서 루시퍼를 자기 사랑과 교만, 그리고 그로부터 나오는 악의 원리로 이해합니다.
특히 ‘네가 네 땅을 망하게 하였고 네 백성을 죽였다’는 표현은 악이 교회와 인간의 영적 생명을 파괴하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땅’(land)은 흔히 교회를, ‘백성’(people)은 교회 안의 진리들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악을 행하는 자들의 후손’(seed of evildoers)이라는 말이 AC.254의 핵심입니다. 여기서 후손은 육체적 자손이 아니라 악에서 태어난 모든 것, 곧 악한 생각, 악한 의지, 악한 교리, 악한 삶을 의미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구절을 통해 ‘씨’(seed)가 영적 기원을 나타내는 표현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거짓의 후손’은 거짓에서 나온 것을 의미하고, ‘행악의 종자’는 악에서 나온 것을 의미하며, ‘악을 행하는 자들의 후손’도 같은 의미를 가집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창3:15의 ‘뱀의 후손’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뱀의 후손, 뱀의 씨란 어떤 특정 혈통이나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사랑과 악이라는 뿌리에서 자라난 모든 불신과 거짓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AC.254에서 사14:19-20을 인용한 이유는, 성경이 반복적으로 ‘씨’(seed)를 영적 원리의 산물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악을 행하는 자들의 후손’이라는 표현은 곧 창세기의 ‘뱀의 후손’과 같은 계열의 개념으로서, 악에서 나온 모든 불신과 거짓을 가리키는 대표적인 예로 제시된 것입니다.
2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9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하고(계21:2, 9)I saw the holy city new Jerusalem coming down from God out of heaven,prepared as a bride adorned for her husband:come hither,I will show thee the bride,the lamb’s wife(Rev. 21:2, 9).
AC.253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성경이 교회를 ‘신부’(bride)와 ‘아내’(wife)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창3:15의 ‘여자’가 교회를 의미한다고 설명한 후, 성경 전체에서 교회가 여자, 아내, 신부, 처녀, 딸로 불리는 여러 예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그 가운데 ‘신부’와 ‘아내’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새 예루살렘’(New Jerusalem)은 단순한 미래의 도시가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세우시는 새로운 교회(New Church)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은 새로운 진리와 새로운 신앙, 그리고 새로운 삶을 가진 교회의 출현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그 새 예루살렘은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교회가 주님과의 결합을 위해 준비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신부가 혼인을 위해 자신을 단장하듯이, 교회도 진리와 선으로 준비되어 주님과 결합하게 됩니다.
또한9절에서는 더욱 직접적으로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the bride, the Lamb's wife)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어린 양’(the Lamb)은 주님을 의미하므로, ‘어린 양의 아내’는 곧 주님과 결합된 교회를 의미합니다.
스베덴보리의 신학에서 결혼은 단순한 사회 제도가 아닙니다. 그것은 선과 진리의 결합, 사랑과 신앙의 결합, 주님과 교회의 결합을 나타내는 가장 깊은 상응입니다. 따라서 교회를 신부나 아내라고 부르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표현입니다.
이 때문에AC.253에서 이 구절은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앞서 이사야와 말라기에서는 교회가 ‘아내’로 불렸지만, 여기서는 ‘신부’와 ‘아내’라는 두 표현이 함께 사용됩니다. 이는 교회가 주님과 결합을 준비하는 상태에서는 ‘신부’이며, 실제로 결합된 상태에서는 ‘아내’임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스베덴보리가 계21:2, 9를 인용한 이유는, 성경이 교회를 ‘신부’와 ‘아내’라고 명백히 부르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창3:15의 ‘여자’ 역시 단순한 하와가 아니라 주님과 결합하는 교회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확증하려는 것입니다.
결국 새 예루살렘은 새로운 교회를, 신부는 주님과의 결합을 위해 준비된 교회를, 어린 양의 아내는 주님과 실제로 결합된 교회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여자=교회’라는AC.253의 핵심 주장을 뒷받침하는 가장 직접적인 증거 가운데 하나로 인용된 것입니다.
너희는 이르기를 어찌 됨이니이까 하는도다 이는너와 네가 어려서 맞이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증인이 되시기 때문이라그는 네 짝이요 너와 서약한 아내로되 네가 그에게 거짓을 행하였도다(말2:14)Jehovah hath borne witness between thee and the wife of thy youth(Mal. 2:14).
AC.253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성경이 교회를 ‘아내’(wife)로 부른다는 사실을 또 하나의 예를 통해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창3:15의 ‘여자’가 교회를 의미한다고 설명한 뒤, 성경 여러 곳에서 교회가 여자, 아내, 신부, 처녀, 딸로 불리는 예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문자적으로 보면 이 말씀은 결혼 언약을 저버린 유다 백성에 대한 책망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그 안에 더 깊은 교회적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여기서 ‘어려서 맞이한 아내’(the wife of thy youth)는 단순히 젊은 시절의 배우자를 뜻하는 것만이 아니라, 주님과 교회 사이의 처음 사랑과 순수한 결합을 상징합니다.
특히 ‘여호와께서 증인이 되신다’는 말씀은 이 결합이 단순한 인간적 계약이 아니라 신성한 언약임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그는 네 짝이요 너와 서약한 아내’라는 표현은 교회가 주님과 언약 관계에 있는 존재임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어서 ‘네가 그에게 거짓을 행하였다’고 말합니다.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는 이것이 단순한 부부 불화가 아니라, 교회가 주님과의 언약을 깨뜨리고, 진리와 선에서 떠난 상태를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영적 간음(adultery)은 흔히 진리를 버리고 거짓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또한AC.253바로 앞에서 인용된 사54:5-6과 연결해 보면, ‘젊은 시절의 아내’(wife of youth)라는 표현은 특별히 초기 교회들, 곧 고대교회와 태고교회를 연상시킵니다. 그 교회들은 주님과 가장 순수하고 친밀한 결합 속에 있었지만, 후대에 이르러 점차 타락하고 언약을 저버리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스베덴보리가 말2:14를 인용한 이유는, 말씀에서 교회가 반복적으로 ‘아내’로 불린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창3:15의 ‘여자’ 역시 단순한 하와가 아니라 교회를 의미한다는 해석을 뒷받침하려는 것입니다.
결국 이 구절에서 ‘아내’는 교회를, ‘남편’은 주님을, 그리고 ‘거짓을 행함’은 교회가 주님과의 언약을 깨뜨리고, 진리에서 떠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교회와 주님의 관계를 결혼의 언어로 표현한 대표적인 구절 가운데 하나로AC.253에서 인용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