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90.심화

 

28.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져지더라 (20:15) And if anyone was not found written in the book of life, he was cast into the lake of fire (Rev. 20:15).

 

 

AC.290에서 이 구절을 인용한 이유는 최후 심판의 형벌 자체를 설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명책’이 의미하는 바를 통하여 모든 생명이 오직 주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확증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구절의 중심은 불 못’이 아니라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입니다. 성경은 심판의 기준을 재산이나 지식, 외적 행위가 아니라 생명책’과의 관계로 제시합니다. 이는 사람의 참된 생명이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의 결합 여부에 달려 있음을 보여 줍니다. 따라서 생명책은 단순한 천국의 명부가 아니라 생명의 근원이신 주님과 연결된 상태를 상징합니다.

 

AC.290에서 스베덴보리는 사람은 자기 안에 생명을 가진 존재가 아니며,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끊임없이 받아 살아가는 존재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주님의 생명이 그 사람 안에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기록되지 않았다는 것은 주님께서 생명을 주시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람이 자신의 사랑과 거짓 가운데 머물러 그 생명을 받아들이지 않은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 의미는 스베덴보리가 천국과 지옥’에서 설명하는 생명책 개념과도 일치합니다. 생명책은 하늘에 있는 문자적인 책이 아니라 사람 자신의 영입니다. 사람의 영 안에는 그의 모든 사랑과 의도, 생각과 행위가 그대로 새겨져 있으며, 천사들은 그것을 읽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책에 기록된다는 것은 사람의 영 전체가 주님의 생명 안에서 질서를 이루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어지는 불 못’도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지옥의 불은 물질적 불이 아니라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의 욕망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사람이 불 못에 던져진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임의로 형벌에 처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주님의 생명을 거부한 결과 자기 사랑의 불 속으로 스스로 들어가는 영적 상태를 나타냅니다.

 

이 때문에 계20:15는 앞에서 인용된 시69:28, 13:8, 17:8과 하나의 흐름을 이룹니다. 69:28은 생명책에서 지워지는 것을 말하고, 13:8과 계17:8은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의 상태를 말하며, 20:15는 그 상태가 마지막에는 어떤 영적 결과를 낳는지를 보여 줍니다. 세 구절 모두 생명의 근원이 오직 주님이라는 동일한 진리를 서로 다른 측면에서 증언하고 있습니다.

 

스베덴보리가 계20:15 AC.290에서 인용한 이유는 심판의 공포를 강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명책의 참된 의미를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은 자기 안에 생명을 가진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오직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아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생명책에 기록된다는 것은 그 생명을 받아들이는 상태를 의미하며, 기록되지 못한다는 것은 그 생명을 거부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최후 심판의 선언을 통하여서도 오직 주님만이 생명 자체이시며, 사람의 모든 영적 생명은 주님으로부터 흘러나온다는 AC.290의 중심 교리를 분명하게 확증하는 말씀입니다.

 

 

 

AC.290, 심화 27, ‘계17:8’

AC.290.심화 27. ‘계17:8’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사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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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17:8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사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놀랍게 여기리라 (17:8) The beast that thou sawest was and is not, and is about to come up out of the abyss, and to go away into destruction; and they who dwell on the earth shall marvel, whose names were not written on the book of life from the founding of the world, looking at the beast that was and is not, and yet is (Rev. 17:8).

 

 

AC.290에서 이 구절을 인용한 이유는 계13:8과 마찬가지로 생명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통하여 오직 주님만이 생명 자체이심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 구절에서 특별히 주목할 표현은 창세 이후로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입니다. 성경은 사람들의 운명이 임의로 미리 결정되었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생명과 연결되지 않은 상태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생명책에 기록된다’는 것은 어떤 외적인 명부에 이름이 올라간다는 뜻이 아니라, 사람의 영이 주님의 생명을 받아들이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AC.290에서 스베덴보리는 사람은 스스로 생명을 가진 존재가 아니며, 오직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끊임없이 받아 살아간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생명책은 바로 그 생명의 수용 상태를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사람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이 주님의 생명을 받아들이는 질서 안에 있다는 뜻이며, 기록되지 않았다는 것은 그 생명을 받아들이지 않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 말씀은 스베덴보리가 Heaven and Hell’에서 설명하는 생명책’의 의미와도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생명책은 하늘에 있는 문자적인 책이 아니라 사람 자신의 영입니다. 사람의 영 안에는 그의 모든 사랑과 의도, 생각과 행위가 기록되어 있으며, 천사들은 그것을 그대로 읽습니다. 따라서 생명책에 기록된다는 것은 사람의 영 전체가 주님의 생명 안에서 질서를 이루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 구절에서 생명책과 함께 등장하는 짐승’도 중요한 대조를 이룹니다. 짐승은 영적인 의미에서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에서 나오는 거짓과 왜곡된 종교를 상징합니다.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은 주님에게서 오는 생명보다 이러한 거짓을 더 사랑하기 때문에 짐승을 보고 놀라며, 그것을 따르게 됩니다. 따라서 본문은 생명의 근원이 주님인가, 아니면 자기 자신인가를 분명하게 대조하고 있습니다.

 

13:8에서는 어린 양의 생명책’이 강조되었다면, 17:8에서는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이 왜 짐승을 따르게 되는지가 강조됩니다. 두 구절은 서로 보완적인 관계에 있습니다. 하나는 생명의 근원이 주님이심을 보여 주고, 다른 하나는 그 생명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사람이 어떤 영적 상태에 이르게 되는지를 보여 줍니다.

 

스베덴보리가 계17:8 AC.290에서 인용한 이유는 단순히 생명책’이라는 단어를 예시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는 이 말씀을 통하여 사람의 생명은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에게 있으며, 주님의 생명을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참으로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사람은 스스로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지속적으로 받아 살아가는 존재라는 AC.290의 중심 교리를 계시록의 상징을 통해 강력하게 증거하는 말씀입니다.

 

 

 

AC.290, 심화 28, ‘계20:15’

AC.290.심화 28. ‘계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져지더라 (계20:15) And if anyone was not found written in the book of life, he was cast into the lake of fire (Rev. 20:15). AC.290에서 이 구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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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90, 심화 26, ‘계13:8’

AC.290.심화 26. ‘계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계13:8) And all who dwell on the earth shall worship him, wh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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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13:8) And all who dwell on the earth shall worship him, whose names are not written in the book of life of the Lamb slain from the founding of the world (Rev. 13:8).

 

 

스베덴보리는 ‘Arcana Coelestia’를 라틴어로 저술하면서 성경도 여러 성경 전통과 원어를 참조하여 자신의 라틴어로 인용하였습니다. 따라서 AC.290에서 이 구절을 인용한 이유는 특정 영어 번역의 표현 때문이 아니라, ‘어린 양의 생명책(the book of life of the Lamb)이라는 성경 자체의 영적 의미를 통하여 오직 주님만이 생명 자체이심을 증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구절에서 핵심은 ‘어린 양의 생명책’이라는 표현입니다. 성경은 단순히 ‘생명책’이라고 하지 않고 ‘어린 양의 생명책’이라고 말합니다. ‘어린 양’은 주님의 신적 인성을 의미하며, 생명의 근원이 오직 주님이심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생명책은 주님과 분리된 어떤 독립적인 기록부가 아니라, 주님의 생명과 연결된 사람들의 상태를 가리킵니다.

 

AC.290에서 스베덴보리는 사람에게는 생명이 본래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주님으로부터 끊임없이 생명을 받아 살아간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다’는 것은 단순히 천국의 명단에 이름이 올라간다는 뜻이 아니라, 사람의 영이 주님의 생명을 받아들이는 상태에 있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이름이 기록되지 않았다는 것은 주님께서 사람을 임의로 제외하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주님의 생명을 거부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 말씀은 스베덴보리가 ‘천국과 지옥’에서 설명하는 ‘생명책’의 의미와도 깊이 연결됩니다. 그에 따르면 생명책은 하늘 어딘가에 있는 문자적인 책이 아니라 사람 자신의 영입니다. 사람의 영 안에는 그의 사랑과 의도, 생각과 행위가 모두 질서 있게 기록되어 있으며, 천사들은 그것을 한 권의 책을 읽듯이 읽습니다. 따라서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의 영 전체가 주님의 생명 안에 질서 있게 놓여 있다는 뜻입니다.

 

또한 이 구절은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는 말씀과도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영적인 의미에서 ‘짐승’은 사람의 자연적인 욕망과 거기에서 나오는 거짓을 의미합니다.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은 생명의 근원이신 주님을 따르기보다 자기 자신과 세상을 중심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결국 짐승을 경배하는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생명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가를 대조적으로 보여 줍니다.

 

앞서 AC.290에서 인용된 시69:28은 ‘생명책에서 지워진다’는 표현을 사용하였고, 이 구절은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았다’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표현은 다르지만 가리키는 진리는 동일합니다. 곧 사람은 자기 안에 생명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을 때만 참으로 살아 있는 존재가 되며, 그 상태가 곧 생명책에 기록된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스베덴보리가 계13:8 AC.290에서 인용한 이유는 매우 분명합니다. 그는 ‘어린 양의 생명책’이라는 표현을 통하여 생명의 근원이 오직 주님이심을 다시 한번 확증하고 있습니다. 생명책은 단순한 천국의 명부가 아니라 주님의 생명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영 자체를 의미하며, 그 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의 전 존재가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아 살아가고 있음을 뜻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사람은 스스로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라, 오직 주님만이 생명 자체이시며, 사람은 그 생명을 끊임없이 받아 살아간다는 AC.290의 중심 교리를 매우 분명하게 증거하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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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 ‘천국과 지옥에서 말하는 생명책

 

천국과 지옥’에서 조사 천사들이 새로 온 영을 살필 때, 그들은 단순히 기억을 하나씩 조회하거나 질문을 통해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 영의 전 존재를 읽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사람의 영 전체가 마치 한 권의 책처럼 펼쳐져 있으며, 그 안에 그의 모든 사랑과 의도, 생각과 행위가 질서 있게 기록되어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천사들은 특히 손끝에서부터 조사하기 시작하는데, 손과 손가락 끝은 사람의 가장 바깥 행위까지도 그 사람의 내면과 완전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작은 부분에도 사람 전체가 표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아래는 위 내용을 볼 수 있는 천국과 지옥 463번 글 링크입니다.

 

 

HH.463, 48장, '두고 가는 것은 육체밖에 없다'(HH.461-469)

48사후 사람은 모든 감각과 그가 생전에 가졌던 모든 기억, 사고 및 애정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그가 사용했던 육체 밖에는 남기고 가는 게 없다After Death Man Is Possessed of Every Sense, and of All the Memor

heavenanditswondersandhell.tistory.com

 

이런 배경을 알고 보면 시69:28 생명책’은 결코 하늘 어딘가에 놓인 거대한 명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생명책’은 곧 그 사람의 영 자체입니다. 다시 말해, 그 사람 안에 기록된 모든 삶의 역사이며, 사랑과 신앙의 상태가 그대로 새겨진 존재 자체입니다.

 

그래서 생명책에서 지워진다’는 말도 하나님께서 천국의 명단에서 이름을 지우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 자신의 영 안에 주님의 생명이 기록되어 있어야 할 자리가 악과 거짓으로 채워진 상태를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그 사람의 영이라는  속에 주님의 생명이 더 이상 기록되어 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 점에서 AC.290 천국과 지옥’은 정확히 하나로 연결됩니다. AC.290 생명은 오직 주님께 속한다’는 원리를 설명하고, ‘천국과 지옥’은 그 원리가 실제로 사람의 영 안에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보여 줍니다. 사람의 영은 살아 있는 책이며, 천사들은 그 책을 읽습니다. 그 책에는 사람이 평생 무엇을 사랑했고, 무엇을 믿었으며, 무엇을 의도했고, 어떻게 살았는지가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조사 천사들이 손끝에서부터 사람을 살피는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손은 성경에서 언제나 능력’과 행위’를 상징하며, 손가락은 그 행위의 가장 미세한 표현을 나타냅니다. 영의 가장 바깥까지도 그 사람의 중심 사랑이 흘러나와 있기 때문에, 천사들은 손끝만 보아도 그 사람 전체의 생명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상응의 실제 적용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시69:28 생명책’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매우 실제적인 표현입니다. 사람은 자기 자신이 곧 한 권의 생명책’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어떤 명부에 이름이 올라가는 사건이 아니라, 자신의 영 전체가 주님의 생명으로 기록된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생명책에서 지워진다는 것은 주님께서 이름을 지우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끝내 주님의 생명을 거부함으로써 자신의 영이라는 책 안에서 그 생명의 기록을 잃어버린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렇게 이해하면 AC.290에서 스베덴보리가 시69:28을 인용한 이유는 더욱 깊어집니다. 그는 단순히 생명책’이라는 단어를 증거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영 자체가 주님의 생명을 담고 있는 책이며, 그 영에 기록된 것이 곧 그의 영원한 생명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책’은 천국의 외부 장부가 아니라, 주님 앞에 완전히 펼쳐지는 사람 자신의 영 그 자체라고 이해하는 것이 스베덴보리의 전체 저작과 가장 잘 조화됩니다.

 

 

 

AC.290, 심화 26, ‘계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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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90, 심화 24, ‘시6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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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69:28

 

그들을 생명책에서 지우사 의인들과 함께 기록되지 말게 하소서 (69:28) Let them be wiped out of the Book of Lives, And not be written with the just (Ps. 69:28).

 

 

AC.290의 중심 주제는 오직 주님만이 생명 자체이시며, 사람은 그 생명을 받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에서 생명’, ‘산 자’, ‘산 자들의 땅’, ‘생명책’과 같은 표현들은 모두 참된 생명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증언하는 말씀들입니다. 69:28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생명책’은 단순히 천국 입장자 명단을 기록한 어떤 문자적인 책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의 해석에 따르면 ’은 기억과 기록, 또는 사람의 내적 상태가 모두 드러나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생명책’은 주님과 결합, 그분의 생명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상태가 기록되어 있는 것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생명책에 기록된다는 것은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는 공동체에 속한다는 의미입니다.

 

반대로 생명책에서 지워진다’는 것은 주님께서 임의로 어떤 사람의 이름을 삭제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말씀은 종종 결과를 하나님의 직접적 행위처럼 표현하지만, 내적 의미로는 사람이 스스로 악과 거짓을 선택, 주님에게서 오는 생명을 거부한 결과를 나타냅니다. 주님은 누구에게나 생명을 주시지만, 사람이 끝내 그것을 거절하면 그 사람은 생명의 질서에서 스스로 벗어나게 됩니다. 이것이 생명책에서 지워진다’는 말씀의 영적 의미입니다.

 

또한 이어지는 의인들과 함께 기록되지 말게 하소서’라는 말씀도 같은 의미를 보강합니다. 여기서 의인’은 자기 자신의 의를 가진 사람들이 아니라, 주님의 의와 선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들과 의인들은 같은 부류를 가리킵니다. 곧 주님의 생명 안에 머무는 사람들입니다.

 

이 구절은 AC.290에서 앞서 인용된 시27:13, 52:5, 66:9, 142:5와도 긴밀하게 연결됩니다. 27:13 산 자들의 땅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말하고, 52:5는 악한 자가 살아 있는 땅’에서 뿌리 뽑힌다고 하며, 66:9는 주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살아 있는 자들 가운데 두신다고 말하고, 142:5는 주님께서 살아 있는 사람들의 땅에서 나의 분깃’이 되신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이 시69:28은 이러한 생명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이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들임을 보여 줍니다.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AC.290에서 인용하는 이유는, ‘생명책’이라는 표현을 통해 참된 생명이 오직 주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증하기 위해서입니다. 생명책에 기록된다는 것은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는 상태를 의미하며, 생명책에서 지워진다는 것은 그 생명을 거부, 스스로 그 상태에서 벗어난 결과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구절 역시 사람은 자기 안에 생명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오직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아 살아가는 존재라는 AC.290의 중심 메시지를 매우 분명하게 뒷받침하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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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66:9

 

그는 우리 영혼을 살려 두시고 우리의 실족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는 주시로다 (66:9) Who putteth our soul among the living (Ps. 66:9).

 

 

겉으로는 위 두 번역이 상당히 달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같은 진리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개역개정은 그 의미를 자연스럽게 번역하였고, Potts among the living’이라는 표현을 그대로 살렸습니다.

 

스베덴보리가 AC.290에서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바로 이 among the living’이라는 표현 때문입니다. 그는 이 말씀을 통해 사람이 스스로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라, 주님께서 사람을 살아 있는 자들 가운데 두심으로써 비로소 살아 있는 존재가 된다는 사실을 증명하고자 합니다. 다시 말해, 생명은 사람에게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앞에서 인용된 시27:13에서는 산 자들의 땅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본다 하였고, 142:5에서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땅에서 나의 분깃이시라 하였으며, 52:5에서는 악한 자가 살아 있는 땅에서 뿌리 뽑힌다 하였습니다. 이 모든 구절은 산 자들의 땅 또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땅’이 무엇인지를 설명해 줍니다. 그런데 시66:9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람을 그 살아 있는 영역 안에 있게 하시는 분이 누구신지를 밝혀 줍니다. 그분은 바로 주님이십니다.

 

개역개정의 그는 우리 영혼을 살려 두시고’라는 표현도 같은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영혼을 살려 두시는 주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은 자기 안에 생명의 근원을 가지고 있는 존재가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계속 받아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이것이 AC.290이 일관되게 강조하는 중심 메시지입니다.

 

스베덴보리는 66:9의 이 our soul among the living’이라는 표현을 통하여, ‘살아 있는 자들’이 단순히 육체적으로 생존하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고 있는 사람들을 의미함을 보여 줍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그들 가운데 두신다는 것은 곧 우리에게 영적 생명을 주시고, 그 생명을 계속 유지시켜 주신다는 뜻입니다.

 

또한 이 구절은 앞에서 인용된 시편들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27:13이 주님의 선하심을 경험하는 상태를 말하고, 142:5가 주님 자신을 우리의 분깃으로 고백하며, 52:5가 그 생명의 영역에서 끊어지는 심판을 보여 준다면, 이 66:9는 그 모든 것의 근본 원인을 설명합니다. 곧 사람이 살아 있는 자들 가운데 있게 되는 것은 자신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주님의 역사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AC.290에서 인용한 이유는, 생명의 주체가 사람이 아니라 오직 주님이심을 더욱 직접적으로 증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은 스스로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라, 주님께서 그의 영혼을 살아 있는 자들 가운데 두실 때에만 참으로 살아 있습니다. 따라서 생명은 언제나 주님께 속하며, 사람은 그 생명을 끊임없이 주님으로부터 받아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이 구절은 매우 간결하면서도 분명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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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90.심화

 

22. ‘142:5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어 말하기를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살아 있는 사람들의 땅에서 나의 분깃이시라 하였나이다 (142:5)

 

 

스베덴보리가 AC.290에서 시142:5를 인용하는 이유는, 이 구절이 살아 있는 사람들의 땅’에서 주님 자신이 사람의 분깃’이 되신다고 말함으로써, 참된 생명이 오직 주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매우 직접적으로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이 구절에서 스베덴보리가 주목하는 핵심 표현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땅’과 나의 분깃’입니다. 앞서 인용된 다른 구절들이 산 자들의 땅 또는 살아 있는 땅’을 생명의 영역으로 보여 주었다면, 이 구절은 그 생명의 근원이 누구이신지를 한층 더 분명하게 밝혀 줍니다. 곧 주님이 피난처이시며, 동시에 분깃이십니다.

 

분깃’은 본래 한 사람이 차지하여 누리는 몫이나 기업을 뜻합니다. 그러나 이 시편에서 다윗은 어떤 땅이나 재산, 혹은 지위가 자기의 분깃이라고 하지 않고, 여호와께서 자신의 분깃이라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참된 소유와 참된 생명이 외적인 것에 있지 않고, 주님 자신에게 있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주님을 자기의 분깃으로 삼는다는 것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 사랑과 신앙, 평안과 생명을 자신의 참된 몫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살아 있는 사람들의 땅에서 나의 분깃’이라는 말씀은, 주님이 살아 있는 자들 가운데 계시는 한 분이라는 정도의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이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아 영적으로 살아 있을 때, 그 사람의 모든 선과 진리, 그리고 기쁨의 근원이 주님이심을 뜻합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땅’이 생명의 영역이라면, 그 영역 안에서 사람이 실제로 누리는 분깃’은 주님 자신입니다. 이로써 생명은 사람 안에서 자생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의 결합을 통해 끊임없이 받는 것임이 드러납니다.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라는 앞부분도 이 의미를 보강합니다. 피난처는 위험과 죽음으로부터 보호받는 곳입니다. 영적 의미로 주님이 피난처라는 것은, 사람이 악과 거짓의 공격을 받을 때, 자신의 능력으로 자신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의지함으로써 영적 생명을 보존한다는 뜻입니다. 이어서 주님이 나의 분깃’이라고 한 것은, 주님이 단지 외부에서 보호하시는 분만이 아니라 사람의 내적 생명을 이루시는 분임을 보여 줍니다. 주님은 생명을 지켜 주시는 분이실 뿐 아니라, 그 생명 자체의 근원이십니다.

 

이 구절은 특히 시52:5와 좋은 대조를 이룹니다. 52:5에서는 악한 자가 살아 있는 땅’에서 뿌리 뽑힌다고 하였지만, 142:5에서는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이 살아 있는 사람들의 땅’에서 주님을 자기의 분깃으로 고백합니다. 전자는 악과 거짓으로 인해 생명의 질서에서 분리되는 상태이며, 후자는 주님과 결합, 그분으로부터 생명을 받는 상태입니다. 이 두 구절을 함께 보면, ‘살아 있는 사람들의 땅’에 속한다는 것이 단순히 육체를 가지고 세상에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자신의 생명과 분깃으로 받아들이는 것임이 분명해집니다.

 

또한 시27:13에서는 산 자들의 땅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본다’고 하였고, 여기서는 여호와께서 살아 있는 사람들의 땅에서 나의 분깃’이라고 합니다. 27:13이 주님의 선하심을 경험하는 측면을 보여 준다면, 142:5는 그 선하심과 생명의 근원인 주님 자신을 소유하고 누리는 측면을 보여 줍니다. 물론 사람이 주님을 자기 소유로 가진다는 뜻은 아니며, 주님께 속하고 주님으로부터 생명 받는 것을 자신의 가장 귀한 몫으로 삼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스베덴보리가 시142:5 AC.290에서 인용하는 이유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땅’이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는 영역임을 증명하는 동시에, 그 생명의 실질적인 내용과 근원이 주님 자신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이 사람의 피난처이시고 분깃이시라는 고백은, 오직 주님만이 생명 자체이시며, 사람은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아 살아간다는 AC.290의 중심 메시지를 가장 직접적이고도 인격적으로 확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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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베덴보리의 저작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의외로 그는 오늘날 우리가 흔히 하는 방식의 ‘국가를 위한 기도’, ‘정치 지도자를 위한 기도’, ‘악한 정권이 무너지게 해 달라는 기도’를 거의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일기, 편지, 저작 어디를 보아도 그런 정치적 기도문은 발견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라와 민족의 운명에 무관심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관심의 초점이 지상의 정치보다 훨씬 깊은 곳, 곧 사람들의 영적 상태와 주님의 섭리에 놓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첫째, 스베덴보리에게 국가의 흥망은 결국 사람들의 영적 상태의 결과였습니다. 그는 어떤 나라가 번영하거나 쇠퇴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를 경제나 군사력보다 그 사회를 이루는 사람들의 사랑(love)의 성격에서 찾았습니다.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이 지배하면 결국 부패한 통치자가 등장하고, 정의와 진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보다 선한 질서가 세워진다고 보았습니다. 다시 말해 그는 ‘악한 왕 때문에 나라가 망하는 것’보다 ‘악한 백성에게 걸맞은 왕이 나타나는 것’을 더 근본적인 원인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관심은 언제나 지도자 한 사람을 바꾸는 것보다 사람들의 마음이 거듭나는 데 있었습니다.

 

둘째, 그는 악한 군주나 정치 지도자도 결국 주님의 섭리 아래 허용된 존재라고 보았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악을 승인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주님께서는 악인조차도 다른 더 큰 악을 막거나 공동체를 일정한 질서 속에 붙들어 두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신다고 설명합니다. 성경에서 바로가 그러했고, 앗수르가 그러했으며, 바벨론이 그러했습니다. 따라서 스베덴보리라면 어떤 폭군을 보며, 먼저 ‘저 사람을 당장 제거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기보다 ‘주님, 저 악이 더 큰 악을 만들지 못하도록 다스려 주시고, 그것마저도 당신의 선한 목적에 사용하여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셋째, 그는 세상의 악과 싸우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을 정치적 투쟁보다 영적 전투에서 찾았습니다. 그의 저작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지옥은 사람들의 악한 사랑을 통하여 세상에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악한 제도와 부패한 정치도 그 자체만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인간의 탐욕과 거짓이 더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그래서 그는 악의 열매보다 악의 뿌리를 제거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이는 정치적 행동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변화만으로는 악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넷째, 주님 나라의 도래 역시 정치적 혁명으로 이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의 나라가 임하시오며’라는 기도를 사람들의 마음속에 주님의 통치가 시작되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장차 천국이 완전히 나타날 미래도 포함하지만, 가장 먼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내면에서 이루어지는 통치를 의미합니다. 한 사람 안에 주님의 나라가 세워질 때 그것이 가정으로, 교회로, 사회로 퍼져 나간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그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먼저 사람을 바꾸시는 주님의 역사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다섯째, 그렇다면 스베덴보리는 나라를 위해 어떻게 기도했을까요? 그의 저작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방향이었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주님, 사람들의 마음을 진리와 선으로 이끌어 주십시오

 

거짓과 악이 더 이상 사람들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막아 주십시오

 

권세를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보다 공공의 선을 사랑하게 하여 주십시오

 

악인들조차도 당신의 섭리 안에서 더 큰 악을 행하지 못하도록 다스려 주십시오

 

주님의 나라가 먼저 사람들의 심령 안에 세워지게 하시고, 그 결과가 세상에도 나타나게 하옵소서

 

마지막으로, 오늘날의 상황에 비추어 보면 스베덴보리는 어느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위해 기도하기보다 그들 안에서 역사하는 선과 악의 영적 원리를 보았을 것입니다. 그는 정의로운 통치자는 사랑했겠지만, 맹목적으로 숭배하지는 않았을 것이며, 악한 통치자는 미워하기보다 그 악이 더 확장되지 않도록 주님의 섭리를 신뢰했을 것입니다. 그의 희망은 언제나 ‘누가 권력을 잡느냐’보다 ‘주님의 나라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삶 속에 얼마나 이루어지느냐’에 있었습니다.

 

이 점은 스베덴보리의 신앙을 잘 보여 줍니다. 그는 세상 역사가 결국 인간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섭리가 움직이는 역사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기도는 정치적 승패를 넘어서 언제나 ‘주님의 나라가 임하옵시며, 주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주기도문의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그에게 이것은 단순한 예배용 문구가 아니라 나라와 민족, 지도자, 그리고 온 세상을 위한 가장 근본적인 기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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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90.심화

 

21. ‘52:5

 

그런즉 하나님이 영원히 너를 멸하심이여 너를 붙잡아 네 장막에서 뽑아내며 살아 있는 땅에서 네 뿌리를 빼시리로다 (52:5)

 

 

스베덴보리가 AC.290에서 시52:5를 인용하는 이유는, 이 구절이 살아 있는 땅’에 속하는 것과 그곳에서 뿌리 뽑히는 것을 대조함으로써, 참된 생명이 오직 주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반대 측면에서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에서 스베덴보리가 특별히 주목하는 표현은 살아 있는 땅’입니다. 앞서 시27:13에서는 산 자들의 땅’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본다고 하였는데, 여기서는 악한 자가 살아 있는 땅’에서 뿌리 뽑힌다고 합니다. 두 구절은 서로 반대되는 방향에서 같은 영적 진리를 보여 줍니다.

 

52의 직접적인 문맥에서 심판받는 사람은 악을 자랑하고, 거짓을 사랑하며, 혀로 남을 해치는 자입니다. 그는 세상에서는 강하고 안전한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장막에서 뽑아내며 살아 있는 땅에서 네 뿌리를 빼시리로다 하십니다. 이 표현은 단순히 육체의 생명이 끝나거나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말씀의 내적 의미에서는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는 질서와 공동체에서 분리되는 것을 뜻합니다.

 

살아 있는 땅’은 주님으로부터 선과 진리가 유입되어 참된 생명이 존재하는 영역을 나타냅니다. 여기서 ’은 일반적으로 교회 또는 사람이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아들이는 내적 상태를 뜻하며, ‘살아 있는’이라는 말은 그 생명이 사람 자신의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살아 있는 땅’은 주님의 선과 진리를 받아 영적으로 살아 있는 사람들의 상태와 그들이 속한 교회를 의미합니다.

 

이와 함께 네 뿌리를 빼시리로다’라는 표현도 중요합니다. 나무의 뿌리는 생명이 공급되는 가장 깊은 기반을 뜻합니다. 뿌리가 땅에 박혀 있는 동안 나무는 수분과 양분을 받아 살아 있지만, 뿌리가 뽑히면 더 이상 생명을 공급받지 못합니다. 영적으로도 사람이 주님의 선과 진리 안에 뿌리를 내릴 때 생명을 받지만, 악과 거짓을 고집하여 그 연결을 스스로 끊으면 살아 있는 땅’에서 뿌리 뽑힌 상태가 됩니다.

 

그러나 이것을 하나님께서 임의로 사람의 생명을 빼앗으신다는 뜻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악한 사람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를 계속 거부, 스스로 생명 질서에서 벗어납니다. 말씀의 겉뜻으로는 하나님께서 그를 멸하시고 뿌리 뽑으시는 것처럼 표현되지만, 내적 의미로는 사람이 악과 거짓을 선택, 주님의 생명 유입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 결과를 말합니다. 주님은 언제나 생명을 주시지만, 그것을 거부하는 사람은 그 생명을 자기 안에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이 구절은 시27:13과 분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27:13에서는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이 산 자들의 땅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보지만, 52:5에서는 악과 거짓을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 있는 땅’에서 뿌리 뽑힙니다. 전자는 주님의 생명 안에 머무는 상태이지만, 후자는 그 생명에서 분리되는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살아 있는 땅’은 단순히 육체를 지닌 사람들이 사는 이 세상이 아니라, 주님의 선하심을 받아들여 영적으로 살아 있는 상태를 뜻한다는 것이 더욱 분명해집니다.

 

스베덴보리가 시52:5 AC.290에서 인용하는 이유는, 주님만이 생명 자체이시며, 사람은 주님과 연결되어 있을 때만 참으로 살아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살아 있는 땅’에 뿌리를 내린다는 것은 주님의 선과 진리로부터 생명을 받는 것이며, 그곳에서 뿌리 뽑힌다는 것은 악과 거짓으로 인해 그 생명의 연결에서 분리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산 자들의 땅’을 긍정적으로 묘사한 다른 구절들을 보완하면서, 주님으로부터 분리된 자에게는 참된 생명이 없다는 AC.290의 중심 가르침을 반대 측면에서 확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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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90.심화

 

20. ‘27:13

 

내가 산 자들의 땅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보게 될 줄 확실히 믿었도다 (27:13)

 

 

스베덴보리가 AC.290에서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이 구절이 산 자들의 땅’이 단순히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생명과 선하심을 경험하는 영역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소망을 산 자들의 땅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보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스베덴보리는 바로 이 표현에 주목합니다.

 

만일 산 자들의 땅’을 단순히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상 세계로만 이해한다면, 이 말씀은 그저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의 은혜를 보게 될 것이다 정도의 의미에 머물게 됩니다. 그러나 AC.290의 문맥에서는 훨씬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산 자들의 땅’은 주님으로부터 생명이 흘러나오는 영역이며, 그 생명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상태를 뜻합니다. 다시 말해, 참으로 살아 있는 사람들의 영역입니다.

 

이 구절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여호와의 선하심을 보게 될 줄’이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선하심은 주님 자신에게서만 나옵니다. 따라서 산 자들의 땅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본다’는 것은, 주님의 생명을 받아들이는 상태 안에서 비로소 주님의 선과 사랑을 경험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AC.290이 말하는 오직 주님만이 생명 자체이시며, 모든 생명은 주님으로부터 온다’는 가르침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또한 이 구절은 앞서 AC.290에서 인용된 여러 성경 구절과도 하나의 흐름을 이룹니다. 36:9에서는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음’을 말하였고, 17:13에서는 주님을 생수의 근원’이라 하였으며, 53:8과 겔26:20, 32에서는 산 자들의 땅’과 생명에서 끊어진 상태를 대조하였습니다. 그리고 여기 시27:13에서는 산 자들의 땅’이 주님의 선하심을 체험하는 장소이자 상태로 묘사됩니다.

 

따라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AC.290에서 인용하는 이유는, ‘산 자들의 땅’이 단순한 지리적 장소가 아니라 주님의 생명이 역사하는 영역임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곳은 주님의 선하심이 나타나고 경험되는 곳이며, 사람은 자신의 생명으로가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을 때 비로소 그 산 자들의 땅’에 속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참된 생명과 모든 선이 오직 주님으로부터 나온다는 AC.290의 중심 사상을 아름답게 증언하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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