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And to every wild animal of the earth, and to every fowl of the heavens, and to everything that creepeth upon the earth wherein is a living soul, every green herb for food; and it was so. (1:30)

 

AC.58

 

같은 사람의 자연적 음식이 여기서 설명됩니다. 그의 자연적인 것은 땅의 모든 짐승(wild animal of the earth)하늘의 모든 새(fowl of the heavens)로 표상되며, 이들에게는 먹을 것으로 모든 푸른 풀이 주어집니다. 그의 자연적 음식과 영적 음식 둘 다 시편에 이렇게 묘사됩니다. The natural meat of the same man is here described. His natural is signified by the “wild animal of the earth” and by the “fowl of the heavens,” to which there are given for food the vegetable and the green of the herb. Both his natural and his spiritual food are thus described in David:

 

그가 가축을 위한 풀과 사람을 위한 채소를 자라게 하시며 땅에서 먹을 것이 나게 하셔서 (104:14) Jehovah causeth the grass to grow for the beast, and herb for the service of man, that he may bring forth bread out of the earth (Ps. 104:14),

 

여기서 가축(beast)이라는 말은, 같은 시편의 11절과 12절에 언급된 들짐승공중의 새 모두를 포함하는 표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where the term “beast” is used to express both the wild animal of the earth and the fowl of the heavens which are mentioned in verses 11 and 12 of the same psalm.

 

11각종 들짐승에게 마시게 하시니 들나귀들도 해갈하며 12공중의 새들도 그 가에서 깃들이며 나뭇가지 사이에서 지저귀는도다 (104:11, 12)

 

 

해설

 

이 글은 AC.56, 57에서 다룬 ‘영적 인간의 음식’에 이어, ‘같은 인간 안에 존재하는 자연적 인간의 음식’을 설명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인간을 여러 인간이 따로 있는 존재로 보지 않고, 하나의 인간 안에 서로 다른 단계가 동시에 존재하는 구조로 봅니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자연적 음식은 ‘다른 사람의 음식’이 아니라, ‘같은 사람 안에서 가장 바깥 단계를 유지하는 양식’입니다.

 

자연적인 것은 ‘들짐승’과 ‘공중의 새’로 표상됩니다. 이는 앞서 반복해서 설명된 상응 구조를 그대로 따릅니다. 들짐승은 감각과 욕구에 가까운 자연적 애정들을, 하늘의 새는 자연적 사고와 기억 지식을 뜻합니다. 이 두 영역이 자연적 인간을 구성하며, 이들에게 주어지는 음식은 ‘채소’와 ‘푸른 풀’입니다. 즉 자연적 인간은 생명을 직접 낳는 열매나 씨를 먹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자라난 외적 지식과 경험의 결과물’로 살아갑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자연적 음식이 결코 ‘악한 음식’으로 묘사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채소와 풀은 주님이 직접 자라게 하시는 것입니다. 문제는 음식의 출처가 아니라, ‘그 음식이 어느 단계의 생명을 유지하느냐’입니다. 자연적 음식은 자연적 생명을 유지하는 데 적합하고 필요합니다. 다만 그것만으로는 영적 생명이나 천적 생명을 낳을 수 없습니다.

 

이를 잘 보여 주는 구절이 시편 10414절입니다. 이 시편은 창조 질서 전체를 찬양하는 시로, 인간과 동물, 땅과 하늘이 각자에게 맞는 양식을 받는 질서를 노래합니다. 여기서 ‘가축을 위한 풀을 자라게 하시며’라는 말은, 자연적 애정들이 유지될 수 있도록 주님이 외적 세계를 공급하신다는 뜻입니다. 동시에 ‘사람을 위한 채소를 자라게 하시며’라는 말은, 자연적 인간이 단순한 본능이 아니라 ‘쓰임을 향한 질서 안에 놓여 있음’을 보여 줍니다.

 

특히 ‘사람을 위한(for the service of man)이라는 표현은 매우 중요합니다. 자연적 인간의 음식은 목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영적, 천적 생명을 섬기기 위한 수단입니다. 자연적 사고, 기억 지식, 경험, 기술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더 안쪽의 생명을 돕기 위한 도구입니다. 그래서 채소는 ‘사람의 쓰임을 위하여’ 자랍니다.

 

땅에서 먹을 것이 나게 하셔서’라는 표현은, 인간이 외적 세계에서 얻는 모든 자연적 자원이 결국 주님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이는 자연적 인간이 자기 힘으로 산다고 느끼는 착각을 교정하는 표현입니다. 자연적 인간은 가장 쉽게 ‘내가 내 힘으로 벌어서 먹고 산다’고 느끼는 단계이기 때문에, 시편은 그 지점에서조차 주님의 섭리를 분명히 드러냅니다.

 

마지막으로 스베덴보리는 ‘짐승’이라는 말이 넓은 의미로 사용되었음을 굳이 짚어 줍니다. 이는 성경의 언어가 얼마나 ‘포괄적 상응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예입니다. 문자적으로는 짐승과 새가 다르지만, 상응적으로는 모두 자연적 생명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하나의 범주로 묶일 수 있습니다.

 

이 글이 말하는 핵심은 분명합니다. 같은 사람 안에서 영적 음식과 자연적 음식은 동시에 존재하며, 둘 다 주님에게서 옵니다. 그러나 각각은 ‘자기 단계의 생명만을 유지’합니다. 거듭남이란 자연적 음식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 음식이 더 높은 음식들을 섬기도록 ‘질서가 바로잡히는 과정’입니다.

 

 

심화

 

1.104:14

 

 

AC.58, 심화 1, ‘시104:14’

AC.58.심화 1. ‘시104:14’ 그가 가축을 위한 풀과 사람을 위한 채소를 자라게 하시며 땅에서 먹을 것이 나게 하셔서 (시104:14) Jehovah causeth the grass to grow for the beast, and herb for the service of man, that he m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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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자연적 애정, 자연적 사고

 

 

AC.58, 심화 2, ‘자연적 애정, 자연적 사고’

AC.58.심화 2. ‘자연적 애정, 자연적 사고’ 위 AC.58 해설에 나오는 ‘자연적 애정’과 ‘자연적 사고’는 특별한 신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늘 느끼고 생각하는 바로 그것입니다.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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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58, 창1:30,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AC.58-59)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And to every wild animal of the earth, and to every fowl of the he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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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57, 창1:29, ‘씨 맺는 채소’, ‘열매 맺는 나무’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창1:29) AC.57 ‘씨 맺는 채소’(herb bearing seed)는 쓰임을 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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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57.심화

 

3. ‘‘씨 맺는 채소는 쓰임을 지향하는 모든 진리

 

‘‘씨 맺는 채소는 쓰임을 지향하는 모든 진리이고, 열매 맺는 나무는 신앙의 선입니다.’라는 이 도입 문장이 이해가 안 됩니다. 차근차근 설명 좀 해주세요.

 

이 문장은 처음 보면 낯섭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보통 ‘채소’와 ‘나무’를 그냥 식물로 읽는데, AC에서는 이것들을 ‘사람 안에 자라는 영적인 것들’로 보기 때문입니다. 결론부터 아주 쉽게 말씀드리면, ‘씨 맺는 채소’는 아직 자라 가는 단계의 진리, 곧 사람 안에서 계속 퍼지고 다음 것을 낳는 진리이고, ‘열매 맺는 나무’는 그 진리가 더 깊어져 삶이 되고, 실제 선한 행위와 성품으로 나타난 상태를 뜻합니다. 그래서 앞의 것은 주로 ‘진리’ 쪽에, 뒤의 것은 ‘’ 쪽에 더 가깝습니다.

 

먼저 ‘씨 맺는 채소’부터 보겠습니다. 씨는 ‘무엇인가를 다시 낳는 것’입니다. 성경의 상응에서 씨는 매우 자주 ‘진리’, 또는 더 정확히는 ‘사람 안에 심겨져 다음 단계를 낳는 진리’를 뜻합니다. 왜 진리가 씨이냐 하면, 진리는 사람 안에 들어오면 거기서 생각을 낳고, 분별을 낳고, 선택을 낳고, 더 나아가 삶의 변화를 낳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정직해야 한다’라는 진리를 배웁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그냥 한 문장, 한 생각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 진리를 붙들고 살기 시작하면, 거기서 ‘그럼 이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지?’, ‘작은 거짓도 피해야 하나?’, ‘정직은 말뿐 아니라 태도에도 해당하나?’ 같은 더 많은 생각과 적용이 생깁니다. 그러니까 하나의 진리가 또 다른 진리들을 낳습니다. 이 점에서 진리는 ‘씨를 맺는’ 것입니다. 그래서 ‘씨 맺는 채소’는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사람 안에서 계속 자라고 퍼지고 다음 것을 낳는 진리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채소’일까요? 채소나 풀은 보통 땅에서 비교적 빨리 돋고, 넓게 퍼지고, 먼저 눈에 띄는 생장입니다. AC의 흐름에서 이것은 ‘진리가 먼저 밖으로 드러나는 상태’와 잘 맞습니다. 사람의 거듭남에서도 대개 처음에는 ‘진리를 아는 것’, ‘옳고 그름을 배우는 것’, ‘말씀을 이해하는 것’이 먼저 옵니다. 다시 말해, 사람이 처음부터 큰 나무처럼 확고한 선을 가진 상태로 시작하지 않고, 먼저 채소나 풀처럼 ‘진리의 싹’이 많이 돋는 상태로 시작합니다. 그래서 ‘씨 맺는 채소’는 ‘아직 성장 중이지만 이미 생명력이 있고, 계속해서 더 많은 것을 낳는 진리’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이제 ‘쓰임을 지향하는 모든 진리’라는 말을 풀어보겠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진리는 진리 자체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참된 진리는 반드시 어디론가 갑니다. 그것은 사람을 더 바르게 살게 하고, 더 선하게 행하게 하고, 더 유익한 존재가 되게 합니다. 이것이 ‘쓰임’을 향한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이웃을 사랑하라’는 진리를 안다고 해 보십시오. 그 진리가 참된 진리라면, 그것은 결국 말, 행동, 배려, 인내, 용서, 봉사 같은 ‘쓰임’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만일 그런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면, 아직 그 진리는 살아 있는 진리가 아닙니다. 그래서 ‘씨 맺는 채소’는 ‘계속 무언가를 낳는 진리’, 곧 ‘쓰임으로 나아가려는 진리’입니다. 진리는 본래 열매를 향해 자라는 씨이기 때문입니다.

 

그다음 ‘열매 맺는 나무는 신앙의 선입니다’라는 말을 보겠습니다. 여기서 나무는 채소보다 더 안정되고, 더 깊이 뿌리내리고, 더 오래 지속되는 상태를 뜻합니다. 그리고 열매는 성경에서 거의 언제나 ‘삶에서 실제로 나타난 선’, 곧 행위와 성품의 결과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열매 맺는 나무’는 단순히 진리를 많이 아는 상태가 아니라, 그 진리가 사람 안에 깊이 뿌리내려 실제 선한 삶으로 나타나는 상태입니다. 다시 아까의 예를 들면, ‘정직해야 한다’라는 진리를 아는 것은 아직 씨나 채소 단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실제로 정직한 사람이 되어, 말과 판단과 행동에서 정직의 열매를 맺기 시작하면, 그때는 ‘열매 맺는 나무’가 된 것입니다.

 

여기서 ‘신앙의 선’이라는 표현도 차근차근 보셔야 합니다. 스베덴보리에게서 신앙은 단순한 동의가 아니라 진리를 아는 것이고, 선은 그 진리가 삶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선’은 ‘신앙에서 나온 선’, 다시 말해 ‘배우고 믿은 진리가 삶 속에서 실제 선으로 나타난 것’을 뜻합니다. 이것은 그냥 타고난 착함과는 다릅니다. 타고난 온순함이나 성격 좋은 것과도 다릅니다. 말씀의 진리를 받아들여 그것에 따라 살면서 형성된 선, 곧 ‘진리에서 태어난 선’이 바로 신앙의 선입니다. 그래서 ‘열매 맺는 나무’는 ‘진리가 선이 된 상태’, ‘아는 것이 사는 것이 된 상태’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이 둘의 관계를 아주 쉽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씨 맺는 채소’는 ‘알고 배우며 자라 가는 진리’이고, ‘열매 맺는 나무’는 ‘그 진리가 삶이 되어 실제 선을 낳는 상태’입니다. 전자는 과정 쪽, 후자는 결과 쪽입니다. 전자는 아직 퍼지고 낳는 힘이 강조되고, 후자는 이미 맺고 먹이는 힘이 강조됩니다. 그래서 둘은 서로 반대가 아니라 이어집니다. 채소가 나무보다 하찮다는 뜻도 아니고, 나무만 중요하다는 뜻도 아닙니다. 오히려 진리가 먼저 자라고, 그다음 그 진리가 선으로 굳어져 열매를 맺는다는 영적 성장의 순서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걸 실제 신앙생활에 붙이면 더 와닿습니다. 처음 말씀을 배울 때는 머릿속에 진리가 많이 들어옵니다. ‘기도해야 한다’, ‘용서해야 한다’, ‘교만하면 안 된다’, ‘남을 섬겨야 한다’ 같은 것들입니다. 이것이 ‘씨 맺는 채소’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중 어떤 것들은 실제 삶이 됩니다. 정말로 기도하는 사람, 정말로 용서하는 사람, 정말로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됩니다. 이것이 ‘열매 맺는 나무’입니다. 그러므로 이 도입 문장은 ‘진리는 자라서 선이 되어야 한다. 아는 것은 결국 살아내는 데까지 가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하시면 가장 정확합니다.

 

한 문장으로 다시 줄이면 이렇습니다. ‘씨 맺는 채소’는 사람 안에서 계속 퍼지고, 다음 것을 낳으며, 쓰임을 향해 자라는 진리이고, ‘열매 맺는 나무’는 그 진리가 깊이 뿌리내려 실제 선한 삶과 행위로 나타난 상태입니다.

 

 

 

AC.57, 창1:29, ‘씨 맺는 채소’, ‘열매 맺는 나무’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창1:29) AC.57 ‘씨 맺는 채소’(herb bearing seed)는 쓰임을 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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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57, 심화 2, ‘시23:1-2’

AC.57.심화 2. ‘시23:1-2’ 1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시23:1, 2) My shepherd, I shall not want; thou makest me to l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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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57.심화

 

2. 23:1-2

 

1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23:1, 2) My shepherd, I shall not want; thou makest me to lie down in pastures of herb (Ps. 23:1–2).

 

이 구절은 AC.57의 문맥에서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생명의 흐름 안에 있을 때, 사람 안에 어떤 평안과 충만이 형성되는가’를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23:1-2 푸른 풀밭 쉴 만한 물가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 사랑과 말씀의 공급 속에서, 사람의 의지와 이해가 안정되고 만족을 얻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먼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입니다. ‘목자’는 단순한 보호자가 아니라, ‘인도하고 먹이며 돌보는 분’, 곧 주님께서 직접 사람의 삶을 이끄시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부족함이 없다’는 것은 물질적인 풍요가 아니라, ‘내면에서 더 이상 결핍을 느끼지 않는 상태’, 곧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가 충분히 공급되는 상태를 뜻합니다.

 

이제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입니다. 여기서 ‘풀밭’은 앞서 보신 것처럼 ‘신앙이 사랑과 결합하여 실제로 살아 움직이는 상태’, 곧 선과 진리가 결합된 생명의 자리입니다. 그리고 ‘누이신다’는 것은 단순히 쉰다는 뜻이 아니라, ‘그 안에서 안정을 얻는다’, ‘더 이상 방황하지 않고 머무른다’는 뜻입니다. 즉, 사람 안에서 진리와 선이 결합된 상태가 형성되면, 그 사람은 더 이상 불안하게 떠돌지 않고, 그 상태 안에서 평안을 얻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풀밭’이 사람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그가 누이신다’, 곧 주님께서 인도하여 들어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즉, 이 평안은 자기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주님의 인도 속에서 주어지는 상태입니다.

 

이제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입니다. ‘’은 언제나 ‘진리’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쉴 만한 물가’라고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진리가 있다는 뜻이 아니라, ‘그 진리가 더 이상 혼란이나 긴장을 주지 않고, 오히려 안정을 주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진리가 사람을 괴롭히거나 갈등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를 밝히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이 두 표현은 함께 읽혀야 합니다. ‘풀밭’은 선과 진리가 결합된 상태에서 오는 ‘의지의 평안’, ‘물가’는 진리가 바로 이해되어 오는 ‘이해의 평안’을 의미합니다. 즉, 의지와 이해가 모두 안정된 상태입니다.

 

이제 AC.57과 연결하면 의미가 더 또렷해집니다. 앞에서 ‘강의 물이 흐르고’, ‘나무가 자라고’, ‘열매가 끊이지 않는 상태’가 있었는데, 그것이 사람 안에서 실제로 느껴지는 상태가 바로 여기서 말하는 ‘부족함이 없음’, ‘풀밭에 누움’, ‘쉴 만한 물가’입니다. 즉, 생명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 ‘평안’으로 체험되는 단계입니다.

 

이걸 실제적으로 풀어보면 이렇습니다. 이전에는 무엇을 선택할 때마다 갈등하고, 옳은 것을 알아도 마음이 불편하고, 계속 흔들립니다. 그런데 점점 변화가 일어나면, 같은 진리를 따라 살아도 더 이상 억지나 긴장이 아니라, 오히려 편안함과 안정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생각도 맑아지고, 마음도 가라앉습니다. 바로 그 상태가 ‘풀밭에 누워 있는 상태’, ‘쉴 만한 물가에 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단순한 위로의 시가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이 사람 안에 자리 잡았을 때 나타나는 실제적인 내적 상태’를 보여 줍니다. 즉, 더 이상 쫓기듯 사는 것이 아니라, ‘인도받는 삶’, ‘안식이 있는 삶’으로 들어간 상태입니다.

 

한 줄로 정리하면, ‘23:1-2 푸른 풀밭 쉴 만한 물가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 안에서 의지와 이해가 함께 안정되어, 사람이 내적으로 부족함 없이 평안을 누리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AC.57, 심화 3, ‘‘씨 맺는 채소’는 쓰임을 지향하는 모든 진리’

AC.57.심화 3. ‘‘씨 맺는 채소’는 쓰임을 지향하는 모든 진리’ ‘‘씨 맺는 채소’는 쓰임을 지향하는 모든 진리이고, ‘열매 맺는 나무’는 신앙의 선입니다.’라는 이 도입 문장이 이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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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57, 심화 1, ‘겔47:12’

AC.57.심화 1. ‘겔47:12’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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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57.심화

 

1. 47:12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재료가 되리라 (47:12) By the river, upon the bank thereof, on this side and on that side, there cometh up every tree of food, whose leaf shall not fade, neither shall the fruit thereof be consumed; it is born again in its month; because these its waters issue out of the sanctuary; and the fruit thereof shall be for food, and the leaf thereof for medicine (Ezek. 47:12).

 

이 구절은 AC.57의 문맥에서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생명이 사람 안에 들어올 때, 그 사람의 이해와 의지, 그리고 삶 전체가 어떻게 살아나고 지속적인 열매를 맺게 되는가’를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47:12의 강과 나무와 열매는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진리와 선이 사람 안에 흘러들어와, 그 사람을 끊임없이 새롭게 하고, 이해와 삶에서 지속적인 유익과 치유를 이루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먼저 ’입니다. 성경에서 ’은 단순한 물줄기가 아니라, ‘흐르는 진리’, 곧 주님으로부터 사람에게 계속 공급되는 생명의 흐름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물이 성소에서 나온다’는 것은, 그 진리가 인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주님 자신, 곧 가장 거룩한 근원으로부터 나온다는 뜻입니다. 즉, 이 모든 변화의 출발점은 사람의 노력이나 생각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흐름’입니다.

 

이제 강 좌우 가에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란다’입니다. ‘나무’는 사람 안에 자리 잡은 상태, 특히 진리와 선이 결합되어 안정된 구조를 이룬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각종 먹을 과실나무’라는 것은, 그 상태가 단일하지 않고, 매우 풍성하고 다양한 형태의 선과 진리를 낳는다는 뜻입니다. 즉, 한 가지 변화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삶의 여러 영역에서 다양한 열매가 맺히는 상태입니다.

 

이제 핵심 표현들입니다.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에서 ’은 이해, 곧 생각과 인식의 영역을 의미합니다. 잎은 나무의 바깥에 있지만, 생명을 유지하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따라서 잎이 시들지 않는다’는 것은, 사람의 이해가 더 이상 어두워지거나 메마르지 않고, 항상 살아 있는 상태를 유지한다는 뜻입니다. 즉, 진리에 대한 깨달음이 계속 새롭게 유지되는 상태입니다.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는다’에서 열매’는 삶에서 나타나는 선, 곧 실제 행위와 결과를 의미합니다. ‘끊이지 않는다’는 것은, 선한 삶이 일시적이거나 간헐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된다는 뜻이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같은 선이라도 계속 새롭게, 더 깊고 풍성한 형태로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즉, 반복이 아니라 새로움이 있는 지속’입니다.

 

이제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입니다. ‘먹는다’는 것은 성경에서 자기 것으로 만든다’, ‘삶이 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 열매는 단순히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실제로 유익이 되는 선입니다. 즉, 형식적인 행위가 아니라, 생명을 주는 행위입니다.

 

마지막으로 그 잎사귀는 약재료가 된다’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표현입니다. ‘’, 곧 이해와 진리가 단순히 아는 데 그치지 않고, ‘치유하는 역할’을 한다는 뜻입니다. 즉, 왜곡된 생각, 상처, 혼란 등을 바로잡고 회복시키는 기능을 합니다. 진리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을 살리는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AC.57의 흐름과 연결하면 더욱 분명해집니다. 앞에서 말한 천적, 영적, 자연적인 것들로 기뻐하는 상태’는, 바로 이런 생명의 흐름 속에 있을 때 나타납니다. 주님으로부터 오는 진리가 사람 안에 들어와 자리를 잡으면, 그 사람의 이해는 계속 살아 있고, 삶에서는 선한 열매가 끊이지 않으며, 그 모든 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유익과 치유를 줍니다.

 

이걸 실제적으로 풀어보면 이렇습니다. 어떤 사람이 말씀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그것을 따라 살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단편적인 변화였지만, 점점 그의 생각은 더 맑아지고, 삶에서는 선한 행동이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이 주변 사람들에게도 위로와 도움이 됩니다. 바로 그 상태가 열매가 끊이지 않고’, ‘잎이 시들지 않으며’, ‘잎이 약재가 되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단순한 축복의 그림이 아니라, ‘주님의 생명이 사람 안에서 어떻게 지속적으로 흐르고, 그 사람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까지 전달되는가’를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한 줄로 정리하면, ‘47:12는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진리와 선이 사람 안에 지속적으로 흘러들어와, 이해는 살아 있고, 삶은 열매 맺으며, 그 모든 것이 다른 이들에게까지 유익과 치유를 주는 거듭남의 충만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AC.57, 심화 2, ‘시23:1-2’

AC.57.심화 2. ‘시23:1-2’ 1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시23:1, 2) My shepherd, I shall not want; thou makest me to l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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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57, 창1:29, ‘씨 맺는 채소’, ‘열매 맺는 나무’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창1:29) AC.57 ‘씨 맺는 채소’(herb bearing seed)는 쓰임을 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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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1:29)

 

AC.57

 

씨 맺는 채소(herb bearing seed)는 쓰임을 지향하는 모든 진리이고, ‘열매 맺는 나무(tree in which is fruit)는 신앙의 선입니다. ‘열매(fruit)는 주님께서 천적 인간에게 주시는 것이고, ‘열매를 맺게 하는 씨(seed producing fruit)는 주님께서 영적 인간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씨 가진 나무가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tree yielding seed, to you it shall be for food)라고 하는 것입니다. 천적 음식을 나무의 열매로 부른다는 사실은, 다음 장에서 천적 인간을 다룰 때 분명히 드러납니다. 이 점을 확인하기 위해 여기서는 에스겔에 나오는 주님의 말씀만 인용합니다. The “herb bearing seed” is every truth which regards use; the “tree in which is fruit” is the good of faith; “fruit” is what the Lord gives to the celestial man, but “seed producing fruit” is what he gives to the spiritual man; and therefore it is said, the “tree yielding seed, to you it shall be for food.” That celestial food is called fruit from a tree, is evident from the following chapter, where the celestial man is treated of. In confirmation of this we will here cite only these words of the Lord from Ezekiel: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재료가 되리라 (47:12) By the river, upon the bank thereof, on this side and on that side, there cometh up every tree of food, whose leaf shall not fade, neither shall the fruit thereof be consumed; it is born again in its month; because these its waters issue out of the sanctuary; and the fruit thereof shall be for food, and the leaf thereof for medicine (Ezek. 47:12).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waters issuing out of the sanctuary)성소(sanctuary)이신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생명과 자비를 뜻합니다. ‘열매(fruit)는 그들에게 음식이 될 지혜이고, ‘(leaf)은 쓰임을 위한 지성입니다. 이 쓰임을 (medicine)이라 합니다. 반면 영적인 음식을 (herb)이라 한다는 점은 시편에서도 분명합니다. Waters issuing out of the sanctuary,” signify the life and mercy of the Lord, who is the “sanctuary.” “Fruit” is wisdom, which shall be food for them; the “leaf” is intelligence, which shall be for their use, and this use is called “medicine.” But that spiritual food is called “herb,” appears from David:

 

1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23:1, 2) My shepherd, I shall not want; thou makest me to lie down in pastures of herb (Ps. 23:1–2).

 

 

해설

 

이 글은 앞선 AC.56에서 말한 ‘영적 인간의 음식’을 한층 더 정밀하게 풀어 줍니다. 핵심은 ‘같은 생명이라도 인간의 상태에 따라 주어지는 양식의 형식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풀, 나무, 씨, 열매라는 식물의 세부 이미지를 통해 영적, 천적 차이를 구분합니다.

 

먼저 ‘씨 맺는 채소’는 ‘쓰임을 지향하는 모든 진리’라고 정의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쓰임’입니다. 진리가 진리로 머무르지 않고, 삶에 적용되고 이웃과 교회를 향해 나아갈 때, 그 진리는 더 이상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영적 양식이 됩니다. 그래서 이 진리를 ‘’이라고 합니다. 풀은 먹을 수 있고 생명을 유지하게 하지만, 아직 열매를 맺는 나무만큼 깊은 근원은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 인간의 상태입니다.

 

반면 ‘열매 맺는 나무’는 ‘신앙의 선’이라고 합니다. 선은 더 이상 쓰임을 향한 방향성에 머무르지 않고, ‘삶 그 자체로 굳어진 상태’입니다. 그래서 선은 나무이고, 그 결과는 열매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분명히 구분합니다. 열매 자체는 천적 인간에게 주어지는 것이고, 영적 인간에게는 아직 ‘열매를 맺게 하는 씨’가 주어집니다. 다시 말해 영적 인간은 선의 가능성을 지닌 상태이지, 선 그 자체에 완전히 거한 상태는 아닙니다.

 

이 차이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 주는 본문이 바로 에스겔 47 12절입니다. 문자적으로 이 본문은 성전에서 흘러나온 강으로 인해 온 땅이 회복되고 생명이 충만해지는 환상을 묘사합니다. 그러나 AC의 관점에서 성소는 언제나 주님 자신을 뜻합니다. 따라서 성소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생명과 자비입니다. 이 물로 인해 자라는 나무들은 인간 안에서 자라는 생명의 원리들입니다.

 

이 본문에서 열매와 잎이 구분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열매는 ‘지혜’로 해설되고, 잎은 ‘지성’으로 해설됩니다. 지혜는 삶 그 자체와 결합한 진리이며, 그래서 ‘음식’이 됩니다. 반면 지성은 이해하고 분별하는 능력으로, 삶을 직접 살게 하지는 않지만, 삶을 보호하고 회복시키는 기능을 합니다. 그래서 잎을 ‘’이라고 합니다. 즉 지성은 생명을 낳기보다는, 생명이 병들지 않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여기서 다시 한번 천적 인간의 특징이 드러납니다. 천적 인간에게 음식은 ‘열매’입니다. 그는 진리를 이해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서 직접 흘러나오는 지혜로 삽니다. 그래서 그의 양식은 나무에서 맺힌 열매이며, 그 열매는 달마다 새로워집니다. 이는 천적 상태의 생명이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워진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영적 인간의 음식이 ‘’로 불린다는 점은 시편 23편에서 확인됩니다. ‘푸른 풀밭’은 단순한 위로의 이미지가 아니라, 영적 인간이 진리의 양식을 공급받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풀밭은 방목지이며, 여기서 양은 인도함을 받습니다. 이는 영적 인간이 여전히 인도를 필요로 하며, 진리를 통해 방향을 잡아 가는 상태임을 보여 줍니다.

 

결국 이 글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같은 주님에게서 나오는 생명이라도, 영적 인간에게는 , 천적 인간에게는 열매로 주어집니다. 풀은 쓰임을 향한 진리이고, 열매는 삶이 된 지혜입니다. 그리고 이 차이는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상태의 차이입니다.

 

영적 인간은 여전히 성장 중이고, 천적 인간은 사랑 안에 거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각 사람의 상태에 맞는 음식을 주십니다.  

 

 

심화

 

1.47:12

 

 

AC.57, 심화 1, ‘겔47:12’

AC.57.심화 1. ‘겔47:12’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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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1-2

 

 

AC.57, 심화 2, ‘시23:1-2’

AC.57.심화 2. ‘시23:1-2’ 1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시23:1, 2) My shepherd, I shall not want; thou makest me to l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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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씨 맺는 채소는 쓰임을 지향하는 모든 진리

 

 

AC.57, 심화 3, ‘‘씨 맺는 채소’는 쓰임을 지향하는 모든 진리’

AC.57.심화 3. ‘‘씨 맺는 채소’는 쓰임을 지향하는 모든 진리’ ‘‘씨 맺는 채소’는 쓰임을 지향하는 모든 진리이고, ‘열매 맺는 나무’는 신앙의 선입니다.’라는 이 도입 문장이 이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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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56, 창1:29,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AC.56-57)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And God said, Behold, I give you every herb bearing seed which is upon the fa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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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56.심화

 

1. 천적(영적, 자연적)인 것들로 기뻐한다

 

AC.56 본문에 반복되는, 천적(영적, 자연적)인 것들로 기뻐하는데, 이것들은 그의 삶과 일치하기 때문에라는 표현에서 천적(영적, 자연적)인 것들로 기뻐한다’, 그의 삶과 일치한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건가요? 좀 와닿았으면 좋겠습니다.

 

결론부터 아주 선명하게 말씀드리면, AC.56 천적(영적, 자연적)인 것들로 기뻐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실제로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에, 그와 같은 종류의 선과 진리를 접할 때 마음이 자연스럽게 기쁘고 편안해진다’는 뜻이고, ‘그의 삶과 일치한다’는 것은 그가 평소에 선택하고 살아가는 방향과 정확히 같은 성질이기 때문에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진다’는 뜻입니다. 핵심은 이것입니다. ‘기쁨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삶의 상태와 맞아떨어질 때 생기는 반응’입니다.

 

먼저 천적, 영적, 자연적인 것들로 기뻐한다’는 표현부터 풀어보겠습니다. 이 세 가지는 각각 다른 수준의 좋아함’입니다. ‘천적’은 사랑 자체, 곧 선을 사랑하는 기쁨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를 진심으로 도와주고 나서 아무도 몰라도 마음 깊이 따뜻하고 평안한 기쁨이 남는 것, 이것이 천적인 기쁨입니다. ‘영적’은 진리를 이해하고 깨닫는 기쁨입니다. 말씀을 읽다가 , 이게 이런 뜻이었구나 하고 마음이 환해지는 기쁨, 혹은 옳은 것을 분명히 알게 되어 마음이 정리되는 기쁨입니다. ‘자연적’은 그보다 바깥에서 오는 기쁨으로, 좋은 결과를 얻거나, 일이 잘 풀리거나, 관계가 편안해지는 데서 오는 기쁨입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사람이 어떤 기쁨을 느끼느냐는 그 사람의 삶의 방향’과 정확히 연결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남을 이기는 것에서 기쁨을 느끼고, 어떤 사람은 남을 돕는 것에서 기쁨을 느낍니다. 이 차이는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의 차이입니다. 그래서 AC.56 기뻐한다’는 말을 통해 그 사람의 내적 상태를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그의 삶과 일치하기 때문에’라는 표현이 핵심입니다. 이것은 아주 실제적인 말입니다. 사람은 자기 삶과 맞는 것을 들으면 편안하고 기쁘지만, 맞지 않는 것을 들으면 불편하고 거부감이 생깁니다. 예를 들어, 정직하게 살려고 애쓰는 사람은 정직이 중요하다’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열리고 힘을 얻습니다. 반대로, 속이는 데 익숙한 사람은 같은 말을 들으면 마음이 불편해지고, 이유를 붙여 피하려 합니다. 바로 이것이 일치’와 불일치’입니다.

 

그래서 천적인 것들로 기뻐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이미 사랑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사랑에 관한 것을 들을 때 깊이 공감하고 기뻐한다는 뜻입니다. ‘영적인 것들로 기뻐한다’는 것은, 진리를 따라 살고 있기 때문에, 진리를 들을 때 마음이 밝아지고 즐거워진다는 뜻입니다. ‘자연적인 것들로 기뻐한다’는 것은, 아직 바깥 결과 중심의 삶에 있기 때문에, 외적인 성공이나 편안함에서 기쁨을 느낀다는 뜻입니다.

 

이걸 더 와닿게 풀어보면 이렇습니다. 같은 설교를 들어도, 어떤 사람은 , 내가 더 바르게 살아야겠다’는 데서 기쁨을 느끼고, 어떤 사람은 이게 논리적으로 맞다’는 데서 기쁨을 느끼고, 어떤 사람은 오늘 위로가 된다’는 데서 기쁨을 느낍니다. 설교는 같지만, 기쁨의 지점이 다릅니다. 왜냐하면 각 사람의 삶의 중심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AC.56은 사실 아주 중요한 진단 기준을 주고 있습니다. ‘내가 무엇에서 기뻐하는가’를 보면, ‘내가 지금 어떤 삶의 상태에 있는가’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듭남이 진행되면, 기쁨의 내용도 바뀝니다. 처음에는 결과에서 기뻐하던 사람이, 점점 진리에서 기뻐하고, 더 나아가서는 사랑 자체에서 기뻐하게 됩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천적, 영적, 자연적인 것들로 기뻐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삶의 수준에 따라 기쁨의 내용이 다르다는 뜻이고, ‘그의 삶과 일치한다’는 것은 그 기쁨이 그 사람의 실제 삶의 방향과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한 줄로 정리하면, ‘사람은 자기가 실제로 살고 있는 것과 같은 종류의 선과 진리를 만날 때 기뻐하며, 그 기쁨이 곧 그의 영적 상태를 드러냅니다.’

 

 

 

AC.56, 창1:29,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AC.56-57)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And God said, Behold, I give you every herb bearing seed which is upon the fa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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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And God said, Behold, I give you every herb bearing seed which is upon the faces of all the earth, and every tree in which is fruit; the tree yielding seed, to you it shall be for food. (1:29)

 

AC.56

 

천적 인간은 오직 천적인 것들로 기뻐하는데, 이것들은 그의 삶과 일치하기 때문에 이르기를 천적 음식(celestial food)이라 합니다. 영적 인간은 영적인 것들로 기뻐하며, 이것들 역시 그의 삶과 일치하므로 이르기를 영적 음식(spiritual food)이라 합니다. 자연적 인간도 마찬가지로 자연적인 것들로 기뻐하는데, 이것들은 그의 삶에 속하므로 이르기를 음식(food),먹을거리라 하며, 주로 기억 지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여기서는 영적 인간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의 영적 음식을 표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씨 맺는 채소(herb bearing seed)열매 맺는 나무(tree in which is fruit)로 묘사되며, 이것들은 일반적으로 씨 가진 나무(tree yielding seed)라 합니다. 그의 자연적 음식은 다음 절에서 설명됩니다. The celestial man is delighted with celestial things alone, which being in agreement with his life are called celestial food. The spiritual man is delighted with spiritual things, and as these are in agreement with his life they are called spiritual food. The natural man in like manner is delighted with natural things, which, being of his life, are called food, and consist chiefly of memory-knowledges. As the spiritual man is here treated of, his spiritual food is described by representatives, as by the “herb bearing seed,” and by the “tree in which is fruit,” which are called, in general, the “tree yielding seed.” His natural food is described in the following verse.

 

 

해설

 

이 글은 인간을 ‘천적 인간영적 인간자연적 인간’이라는 세 단계로 나누어, 각 단계의 인간이 무엇을 ‘먹을거리’, 곧 ‘음식’으로 삼아 살아가는지를 설명합니다. 여기서 음식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그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고 기쁘게 하는 것’, 곧 삶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드러내는 핵심 개념입니다.

 

먼저 천적 인간은 ‘천적인 것들’로 기뻐합니다. 천적인 것들이란 사랑 그 자체, 곧 주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 사랑에서 직접 흘러나오는 것들입니다. 이것들은 더 이상 진리를 통해 매개되지 않고, 삶과 즉각적으로 일치합니다. 그래서 이것들을 ‘천적 음식’이라 합니다. 음식이라는 말은 외부에서 주어져야 하는 무엇이 아니라, ‘삶과 완전히 합치되어 자연스럽게 흡수되는 것’을 뜻합니다.

 

영적 인간은 그보다 한 단계 아래에 있습니다. 그는 영적인 것들, 곧 진리와 신앙의 내용으로 기뻐합니다. 하지만, 이 진리들은 아직 사랑 그 자체는 아니며, 사랑과 결합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들을 가리켜 ‘영적 음식’이라 합니다. 중요한 점은, 이 영적 음식 역시 ‘그의 삶과 일치하기 때문에’ 음식이라 불린다는 점입니다. 즉 단순히 많이 아는 지식이나 교리라면 음식이 될 수 없고, ‘삶과 연결될 때만 음식’이 됩니다.

 

자연적 인간의 음식은 자연적인 것들입니다. 이것은 감각적 즐거움이나 세상적 관심만을 뜻하지는 않지만, 주로 기억 지식, 곧 외부 세계에서 축적된 지식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기억-지식들 역시 ‘음식’이라 부르는데, 이는 자연적 인간에게 그것들이 실제로 삶의 만족과 기쁨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음식은 가장 바깥층의 음식이며, 그 자체로는 영적 생명을 만들 수 없습니다.

 

이 글에서 중요한 전환점은, ‘여기서 다루는 대상이 영적 인간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그의 음식은 직접적으로 설명되지 않고, 창세기의 표상 언어를 통해 설명됩니다. 씨 맺는 채소(herb bearing seed)와 ‘열매 맺는 나무(tree in which is fruit)는 모두 ‘생명이 있지만 아직 완전하지는 않은 상태’를 뜻합니다. 풀은 자라나지만, 오래 지속되지는 않고, 나무는 열매를 맺지만, 아직 천적 사랑의 단계에는 이르지 못한 상태를 보여 줍니다.

 

씨를 맺는다’는 표현은 매우 중요합니다. 씨는 앞으로 더 자랄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 즉 영적 인간의 음식은 단순히 현재를 유지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장차 더 깊은 생명으로 나아갈 잠재력’을 포함합니다. 그래서 이 음식들은 ‘씨 가진 나무(tree yielding seed)라는 하나의 묶음으로 불립니다.

 

마지막 문장에서 스베덴보리가 일부러 말을 멈추는 것도 의미심장합니다. 자연적 음식은 다음 절에서 설명된다고 밝힘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외적 인간, 곧 겉 사람의 삶과 내적 인간, 곧 속 사람의 삶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계속 따라오게 만듭니다. 이는 창세기 1장의 창조 질서가 인간 내면의 질서로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단계적으로 보여 주는 구성입니다.

 

이 글은 결국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모두 먹고 살지만,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인간이 됩니다. 천적 인간은 사랑을 먹고, 영적 인간은 진리를 먹으며, 자연적 인간은 기억-지식을 먹습니다. 그리고 거듭남이란, 먹는 음식이 점점 바뀌는 과정입니다.’  

 

 

심화

 

1.천적(영적, 자연적)인 것들로 기뻐한다

 

 

AC.56, 심화 1, ‘천적(영적, 자연적)인 것들로 기뻐한다’

AC.55.심화 1. ‘천적(영적, 자연적)인 것들로 기뻐한다’ AC.56 본문에 반복되는, ‘천적(영적, 자연적)인 것들로 기뻐하는데, 이것들은 그의 삶과 일치하기 때문에’라는 표현에서 ‘천적(영적,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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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57, 창1:29, ‘씨 맺는 채소’, ‘열매 맺는 나무’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창1:29) AC.57 ‘씨 맺는 채소’(herb bearing seed)는 쓰임을 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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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55, 창1:28, ‘생육, 번성', '결혼한 땅’, '땅에 충만', '풀, 나무, 공중의 새'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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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55.심화

 

 AC.55 본문 중 마침내 신앙이 사랑과 결합하면 그것은 크게 자라 (herb)이 되고, 결합이 완성되면 나무(tree)가 됩니다.’를 보고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식물, 특히 을 하찮게 여겼거든요. 그런데 그 조차 사실은 신앙이 사랑과 결합, 그것이 크게 자란 것이라 하니 말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목사님께서 느끼신 그 지점이 바로 AC.55가 말하고자 했던 핵심입니다. ‘’은 하찮은 단계가 아니라, ‘신앙이 사랑과 실제로 결합하여 이미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 상태’, 다시 말해 단순한 앎이 아니라 삶으로 나타난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그 상태를 결코 낮게 보지 않고, 오히려 이미 생명이 작동하고 있는 단계’로 매우 중요하게 봅니다.

 

핵심은 이것입니다. 씨(진리)만 있을 때는 아직 가능성’입니다. 아무리 좋은 진리를 많이 알아도, 그것이 사랑과 결합되지 않으면 아직 살아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그런데 그 진리가 사랑과 결합하면, 비로소 밖으로 드러나는 생장이 시작됩니다. 그 첫 모습이 바로 ’입니다. 그러니까 ’은 작은 것이 아니라, ‘진리가 실제로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증거’입니다. 이 점에서 ’은 오히려 결정적인 전환점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흔히 갖는 오해가 드러납니다. 우리는 크고 단단한 나무’를 높게 보고, ‘’을 낮게 봅니다. 그런데 AC의 시선은 다릅니다. ‘’은 이미 결합이 일어난 상태’이고, ‘나무’는 그 결합이 완전히 안정되고 확장된 상태’일 뿐입니다. 즉, 둘의 차이는 가치의 차이’가 아니라 성장의 정도’입니다. 그래서 ’은 결코 하찮은 것이 아니라, ‘이미 본질이 이루어진 상태’입니다. 나무는 그 본질이 더 넓고 깊게 펼쳐진 모습입니다.

 

이걸 신앙적으로 풀어보면 더 분명해집니다. 어떤 사람이 진리를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직 사랑과 결합되지 않았다면, 그는 여전히  단계입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이 아는 것은 많지 않지만, 그 아는 바를 사랑으로 살아내고 있다면, 그는 이미 ’입니다. 이때 스베덴보리의 기준에서는, ‘많이 아는 사람’보다 조금이라도 살아내는 사람’이 더 앞선 상태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의 가치가 드러납니다.

 

그리고 여기서 목사님께서 느끼신 충격이 아주 중요한 통찰입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하찮게 여기던 ’조차, 영적 의미에서는 신앙과 사랑이 결합된 결과’라면, 그렇다면 우리가 하찮게 여기던 많은 것들이 사실은 매우 깊은 상태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겉으로 작고 연약해 보이는 것이 실제로는 이미 결합이 이루어진 상태’일 수 있습니다.

 

이걸 더 깊이 들어가면 이렇게까지 볼 수 있습니다. ‘’은 낮고, 부드럽고, 쉽게 흔들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성질이 사랑과 결합된 신앙’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억지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자라고, 강하게 버티기보다 부드럽게 움직이며, 자기주장보다 생명을 드러내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은 단지 작은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것의 성질’을 가장 잘 보여 주는 형상입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단순히 성장의 단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진짜 생명인가’를 다시 보게 합니다. 크고 단단한 것만이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작더라도 실제로 살아 있는 것’, 곧 신앙과 사랑이 결합된 상태가 훨씬 본질적이라는 것입니다.

 

한 줄로 정리하면, ‘AC.55에서 은 하찮은 단계가 아니라, 진리가 사랑과 결합하여 이미 실제 생명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상태를 나타내는 매우 본질적인 단계입니다.’

 

 

 

AC.55, 심화 3, ‘마13:31-32’

AC.55.심화 3. ‘마13:31-32’ 31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32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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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55.심화

 

3. 13:31-32

 

31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32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13:31, 32) The kingdom of the heavens is like to a grain of mustard seed, which a man took and sowed in his field, which indeed is the least of all seeds, but when it is grown, it is the greatest among herbs, and becometh a tree, so that the birds of the heavens come and build their nests in the branches thereof (Matt. 13:31–32).

 

이 비유는 AC.55의 문맥에서 ‘거듭남의 시작은 매우 작고 거의 느껴지지 않지만, 주님께서 그것을 자라게 하실 때 결국 사람 전체를 변화시키는 큰 상태로 확장된다’는 것을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겨자씨 한 알은 사람 안에 처음 심어지는 아주 작은 진리와 선의 시작을 의미하고, 그것이 자라 나무가 된다는 것은 그 작은 시작이 점점 자라 사람의 전 존재를 덮는 질서로 확장되는 거듭남의 과정을 의미합니다.’

 

먼저 ‘천국은 마치 겨자씨 한 알 같다’입니다. 여기서 ‘천국’은 바깥 어딘가에 있는 장소가 아니라, ‘사람 안에 세워지는 주님의 나라’, 곧 거듭남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겨자씨 한 알’은 그 시작이 얼마나 작고 미미한지를 보여 줍니다. 실제로 거듭남은 처음부터 크고 확실한 변화로 시작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주 작은 깨달음, 아주 미약한 선한 의지, 거의 눈에 띄지 않는 변화로 시작됩니다.

 

이제 ‘사람이 자기 밭에 심는다’입니다. ‘’은 사람의 마음과 삶, 곧 진리가 뿌려지는 자리입니다. 그리고 ‘심는다’는 것은 단순히 듣는 것이 아니라, ‘그 진리를 받아들여 자기 안에 두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거듭남의 시작은 어떤 외적인 사건이 아니라, ‘내 안에 어떤 진리가 자리 잡는 것’입니다.

 

그다음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입니다. 이 표현은 매우 중요합니다. 처음 주어지는 진리는 크고 분명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작고 연약해서 쉽게 무시되거나 잊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 사람은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 작은 것이 시작입니다.

 

이제 전환이 일어납니다.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이것은 거듭남의 핵심을 보여 줍니다. 처음에는 아주 작던 것이 점점 자라, 이제는 사람 안에서 가장 큰 것이 됩니다. 즉, 처음에는 진리가 주변적인 것이었지만, 점점 중심으로 올라와 사람의 생각과 삶 전체를 이끄는 상태가 됩니다. ‘’은 일시적이고 낮은 것을 의미하고, ‘나무’는 뿌리와 줄기, 가지를 가진 안정된 구조, 곧 확립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이 매우 중요합니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 ‘’는 생각과 이해, 곧 다양한 진리의 인식들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표현은 ‘이제 사람 안에 진리가 자리 잡아, 그 위에 더 많은 생각과 이해들이 안정적으로 머물 수 있는 상태가 된다’는 뜻입니다. 즉, 처음에는 하나의 작은 진리였지만, 이제는 그 위에 수많은 진리들이 연결되고, 하나의 체계를 이루는 상태가 됩니다.

 

이제 AC.55의 흐름과 연결하면 더욱 또렷해집니다. 앞에서 ‘사람과 짐승이 많아지고’, ‘자식들을 잃지 않는다’, ‘결혼된 땅이 된다’고 했는데, 이 모든 것은 결국 이 비유의 상태로 이어집니다. 즉, 처음에는 작고 쉽게 사라지던 선과 진리가, 이제는 자라서 안정된 구조를 이루고, 더 이상 사라지지 않으며, 그 위에 더 많은 것이 쌓이는 상태가 됩니다.

 

이걸 실제적으로 풀어보면 이렇습니다. 처음에는 어떤 말씀이 마음에 걸립니다. 아주 작게 ‘이렇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그것을 붙잡고 조금씩 실천하다 보면, 점점 그 생각이 커지고,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합니다. 나중에는 그 하나의 진리가 중심이 되어, 다른 생각과 판단들도 그 기준 위에서 정리됩니다. 바로 그 상태가 ‘겨자씨가 나무가 된 상태’입니다.

 

그래서 이 비유는 단순한 성장 이야기가 아니라, ‘주님께서 사람 안에 심으신 작은 시작이 어떻게 전체를 변화시키는가’를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그 시작을 심고 지키는 역할을 할 뿐이고, 실제로 자라게 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한 줄로 정리하면, ‘13:3132의 겨자씨 비유는 거듭남이 아주 작은 진리의 시작에서 출발하여, 결국 사람 전체를 지배하는 질서로 성장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AC.55, 심화 4, ‘풀’(herb)

AC.55.심화 위 AC.55 본문 중 ‘마침내 신앙이 사랑과 결합하면 그것은 크게 자라 ‘풀’(herb)이 되고, 결합이 완성되면 ‘나무’(tree)가 됩니다.’를 보고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식물, 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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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55, 심화 2, ‘사62:4’

AC.55.심화 2. ‘사62:4’ 다시는 너를 버림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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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55.심화

 

2. 62:4

 

다시는 너를 버림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임이라 (62:4) Thy land shall be no more termed waste, but thou shalt be called Hephzibah [my delight is in her], and thy land Beulah [married], for Jehovah delighteth in thee, and thy land shall be married (Isa. 62:4).

 

이 구절은 AC.55의 문맥에서 ‘거듭남이 완성되어 갈 때 사람 안에 일어나는 상태의 변화, 곧 버려진 상태에서 기쁨과 결합의 상태로 전환되는 것’을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62:4 헵시바 쁄라는 사람이 더 이상 황폐한 상태에 있지 않고, 주님과 결합되어 그분의 기쁨이 머무는 상태, 곧 선과 진리가 서로 결합된 거듭남의 완성 상태를 의미합니다.’

 

먼저 ‘다시는 너를 버림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입니다. ‘버림받은 자’라는 표현은 단순히 외로운 상태가 아니라, ‘선과 진리가 결합되지 못한 채 흩어져 있는 상태’, 곧 내적인 공허와 분열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AC.55의 흐름에서 보면, 거듭나기 전이나 초기 상태에서는 사람 안에 선과 진리가 제대로 연결되지 않아, 무엇인가 있어도 금방 사라지고, 중심이 잡히지 않는 상태가 반복됩니다. 이것이 ‘버림받은 것처럼 보이는 상태’입니다.

 

이어지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에서 ‘’은 사람 자체, 특히 그 사람의 삶과 마음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황무지’는 선과 진리가 자라지 못하는 상태, 곧 아무리 말씀을 들어도 열매가 맺히지 않는 상태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이제는 더 이상 그런 메마른 상태가 아니다’라는 선언입니다.

 

이제 핵심 표현입니다. ‘너를 헵시바라 하며.’ ‘헵시바’는 ‘나의 기쁨이 그 안에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감정 표현이 아니라, ‘주님의 선이 그 사람 안에 실제로 자리 잡았기 때문에, 그 안에서 기쁨이 흘러나오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주님의 생명이 그 사람 안에서 작용하고 있다는 표시입니다.

 

그리고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입니다. ‘쁄라’는 ‘결혼한 상태’, 곧 ‘결합된 상태’를 뜻합니다. 성경에서 ‘결혼’은 언제나 ‘선과 진리의 결합’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표현은 사람 안에서 진리(이해)와 선(의지)이 더 이상 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하나로 결합되어 함께 작용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제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임이라’가 이 의미를 확정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사람 안에서 두 요소가 완전히 하나가 되어, 더 이상 분리되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즉, 이해가 따로 있고 의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과 사는 것이 하나가 된 상태’입니다.

 

이제 AC.55와 연결하면 전체가 또렷해집니다. 앞에서 ‘사람과 짐승이 많아지고’, ‘처음보다 더 나은 상태가 되며’, ‘자식들을 잃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것이 바로 이 상태로 이어집니다. 즉, 선과 진리가 생겼다가 사라지는 단계에서 벗어나, 그것들이 서로 결합되어 지속되는 상태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걸 실제적으로 풀어보면 이렇습니다. 처음에는 어떤 말씀을 듣고 감동을 받아도 금방 식어 버리고, 결심도 오래 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늘 ‘다시 황무지로 돌아가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런데 점점 변화가 일어나면, 같은 진리가 점점 삶과 연결되고, 선한 마음도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면, ‘이게 옳다’는 것과 ‘이게 좋다’는 것이 하나가 됩니다. 그때는 더 이상 억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 삶이 유지됩니다. 바로 그 상태가 ‘쁄라’, 곧 결합된 상태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단순한 회복의 약속이 아니라, ‘주님과의 결합이 이루어져 더 이상 끊어지지 않는 상태’, 곧 거듭남의 깊은 완성을 보여 줍니다. 사람이 더 이상 메마른 땅이 아니라, 주님의 기쁨이 머무는 땅이 되는 것입니다.

 

한 줄로 정리하면, ‘62:4 헵시바 쁄라는 거듭남이 완성되어 사람 안에서 선과 진리가 결합되고, 그 상태가 지속되어 주님의 기쁨이 머무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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