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3:15)



AC.256

신앙(faith) 뿐만 아니라 주님(the Lord) 자신도 여자의 후손(the seed of the woman)으로 불리십니다. 이는 오직 주님만이 신앙을 주시며, 따라서 주님 자신이 곧 신앙이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태어나시기를 기뻐하셨는데, 그것도 자기 사랑(the love of self)과 세상 사랑(the love of the world)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지옥적이며 마귀적인 own에 빠져 버린 그러한 교회(the church) 안으로 오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그 목적은 자신의 신적 능력(Divine power)으로 자신의 인성(human essence) 안에서 신적 천적 own(Divine celestial own)과 인간적 own(human own)을 하나로 결합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그분 안에서 이 둘이 하나(a one) 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이러한 결합(union)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온 세상(the whole world)은 완전히 멸망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처럼 여자의 후손(the seed of the woman)이시기 때문에, 여기서는 그것(it)이 아니라 (he)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Not only is faith but also the Lord himself is called the “seed of the woman,” both because he alone gives faith, and thus is faith, and because he was pleased to be born, and that into such a church as had altogether fallen into an infernal and diabolical own through the love of self and of the world, in order that by his Divine power he might unite the Divine celestial own with the human own in his human essence, so that in him they might be a one; and unless this union had been effected, the whole world must have utterly perished. Because the Lord is thus the seed of the woman, it is not said “it,” but “he.”

 

 

해설

 

AC.256은 창3:15의 ‘여자의 후손’이 궁극적으로 누구를 가리키는지를 설명하는 매우 중요한 본문입니다. 많은 기독교 전통에서 이 구절은 이미 오래전부터 메시아 예언, 곧 장차 오실 주님에 대한 최초의 복음으로 이해되어 왔습니다. 스베덴보리 역시 이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그 이유를 훨씬 더 깊은 차원에서 설명합니다.

 

먼저 스베덴보리는 ‘여자의 후손(the seed of the woman)이 단순히 주님께 대한 믿음이나 교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주님 자신(the Lord Himself)을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신앙(faith)은 사람에게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께서 주시는 것이며, 더 나아가 주님 자신이 곧 신앙이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스베덴보리 저작 전체를 관통하는 매우 중요한 원리입니다. 사람은 신앙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자신의 생명과 함께 신앙을 사람 안에 흘려보내시는 것입니다.

 

특별히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주님께서 어떤 세상에 오셨는가 하는 점입니다. 주님은 아직 건강하고 순수한 교회 안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이미 자기 사랑(the love of self)과 세상 사랑(the love of the world)으로 거의 완전히 무너져 버린 교회 안으로 오셨습니다. 인간은 이미 창3에서 보았듯이 자기 감각과 자기 이성을 주님의 말씀보다 더 신뢰하게 되었고, 그 결과 자신의 own은 점점 지옥적이며 마귀적인 own으로 변해 가고 있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인간의 own을 본질적으로 지옥적인 것으로 설명합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자기 자신에게 돌리며, 자신을 중심에 두고, 주님 없이 스스로 살고자 하는 사랑입니다. 만일 이 상태가 계속되었다면 인간은 더 이상 천국과 연결될 수 없었고, 결국 인류 전체는 영적으로 멸망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주님의 성육신이 필요하게 됩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주님께서는 인간의 인성(human essence)을 입으심으로써 인간이 있는 바로 그 자리까지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인간성 안에서 인간적 own과 신적 own 사이의 싸움을 직접 싸우셨습니다. 다시 말해, 주님은 단순히 인간을 밖에서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인간 본성 자체 안으로 들어오셔서 그 본성을 새롭게 만드셨습니다.

 

여기서 AC.256의 가장 어려운 표현인 ‘신적 천적 own(Divine celestial own)과 인간적 own(human own)의 결합’이 등장합니다. 이것은 주님 안에서 인성과 신성이 완전히 하나 되는 과정을 말합니다. 인간에게는 자신의 own과 주님의 생명이 서로 대립하지만, 주님 안에서는 인성이 완전히 신성화(glorification) 되어 신성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단순히 하나님도 아니고, 인간도 아닌 존재가 아니라,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완전한 인간이 되셨습니다.

 

스베덴보리가 ‘만일 이 결합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온 세상은 완전히 멸망했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는 다시 천국으로 올라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늘이 인간에게 내려와야 했고, 신성이 인성을 입어야 했으며, 주님께서 인간과 천국 사이의 새로운 연결점이 되어 주셔야 했습니다. 성육신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인류 존재 자체를 유지시키기 위한 우주적 필연성이었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스베덴보리는 성경이 여기서 ‘’, 곧 ‘후손’에 대해 ‘it’이라 하지 않고, ‘he’라고 말하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문법 문제가 아닙니다. ‘여자의 후손’은 어떤 추상적 교리나 개념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한 인격, 곧 주님 자신이시기 때문입니다. 결국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교리가 아니라 주님이며, 신앙의 내용이 아니라 신앙의 대상이신 주님 자신입니다.

 

그래서 창3:15은 단순한 저주의 말씀이 아니라,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첫 번째 복음입니다. 인간이 가장 깊이 타락한 바로 그 순간, 주님께서는 이미 ‘내가 너희에게 갈 것이다. 내가 너희의 자리까지 내려갈 것이다. 그리고 내가 너희를 다시 나의 자리로 이끌 것이다.’라고 선언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여자의 후손’의 가장 깊은 의미입니다.

 

 

심화

 

1. ‘주님의 신적 인성(Divine Human)

 

 

AC.256, 심화 1, ‘주님의 신적 인성(Divine Human)’

AC.256.심화 1. ‘주님의 신적 인성(Divine Human)’ 그 목적은 자신의 신적 능력(Divine power)으로 자신의 인성(human essence) 안에서 신적 천적 own(Divine celestial own)과 인간적 own(human own)을 하나로 결합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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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57, 창3:15, ‘뱀의 머리’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3:15)AC.257‘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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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55, 창3:15, ‘여자의 후손’(신앙)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3:15)AC.255‘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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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55.심화

 

4. ‘89:3-4, 29, 36

 

3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내가 택한 자와 언약을 맺으며 내 종 다윗에게 맹세하기를 4내가 네 자손을 영원히 견고히 하며 네 왕위를 대대에 세우리라 하셨나이다, 29또 그의 후손을 영구하게 하여 그의 왕위를 하늘의 날과 같게 하리로다, 36그의 후손이 장구하고 그의 왕위는 해 같이 내 앞에 항상 있으며 (89:3-4, 29, 36) I have made a covenant with mine elect, I have sworn unto David my servant, even to eternity will I establish thy seed, and his seed will I make to endure forever, and his throne as the days of the heavens; his seed shall endure to eternity, and his throne as the sun before me (Ps. 89:3–4, 29, 36),

 

 

AC.255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성경에서 ‘(seed) 또는 ‘자손’이 단순한 육체적 후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faith)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창3:15의 ‘여자의 후손’을 설명하면서, 말씀 여러 곳에서 ‘’가 영적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스베덴보리는 여기의 ‘다윗(David)을 역사적 인물 다윗으로 보지 않고 주님(the Lord)을 의미하는 표상으로 이해합니다. 따라서 ‘내가 네 자손을 영원히 견고히 하며’라는 말씀은 다윗 왕가의 육체적 혈통이 영원히 지속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실제 역사에서도 다윗의 지상 왕조는 오래전에 끝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반드시 더 깊은 영적 의미를 가져야 합니다.

 

또한 ‘그의 후손이 영원히 지속된다’, ‘그의 왕위가 하늘의 날과 같다’, ‘그의 왕위가 해 같이 항상 있다’는 표현 역시 단순한 인간 왕국에 적용될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의 왕국에만 적용될 수 있는 표현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왕위(throne)를 주님의 왕국(the Lord's kingdom)으로, ‘(sun)를 사랑(love)으로 해석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seed)는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왕국은 사랑과 신앙 위에 세워지기 때문입니다. 해가 사랑이라면, 그 해로부터 나오는 빛은 신앙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후손이 영원히 지속된다’는 것은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참된 신앙이 영원히 보존된다는 뜻입니다.

 

특히 AC.255의 문맥에서는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앞에서 스베덴보리는 ‘뱀의 후손’을 불신으로 설명하였고, 이제 ‘여자의 후손’을 신앙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시89의 ‘다윗의 자손’ 역시 육체적 후손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신앙의 계열을 의미하게 됩니다.

 

결국 이 구절이 인용된 이유는, 성경이 ‘(seed)를 영적 의미로 사용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다윗은 주님을, 왕위는 주님의 왕국을, 해는 사랑을, 씨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그의 씨가 영원히 지속된다’는 말씀은 주님에게서 나오는 참된 신앙이 영원히 존속하며, 그것이 주님의 왕국 안에서 계속 살아 있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곧 창3:15의 ‘여자의 후손’이 단순한 인간 후손이 아니라 주님께 대한 신앙을 의미한다는 AC.255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AC.255, 창3:15, ‘여자의 후손’(신앙)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3:15)AC.255‘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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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55, 심화 3, ‘계12:17’

AC.255.심화 3. ‘계12: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계12:17) The d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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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55.심화

 

3. ‘12: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12:17) The dragon was wroth with the woman, and went to make war with the remnant of her seed, who were keeping the commandments of God, and have the testimony of Jesus Christ (Rev. 12:17).

 

 

AC.255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창3:15의 ‘여자의 후손(seed of the woman)이 무엇인지를 성경 자체가 직접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그는 ‘여자’는 교회를 의미하고, ‘여자의 후손’은 주님에 대한 신앙(faith in the Lord)을 의미한다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 계시록에서는 ‘여자의 남은 자손(remnant of her seed)이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말해 줍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입니다. 즉 육체적 혈통으로 연결된 사람들이 아니라, 신앙과 삶으로 주님과 연결된 사람들입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이것은 매우 중요한 증거입니다. 만일 ‘여자의 씨, 후손’이 문자 그대로의 후손을 의미한다면, 계시록도 혈통에 관하여 말해야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의 증거를 가진 사람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따라서 ‘(seed)는 혈통이 아니라 영적 성격을 의미한다는 것이 분명해집니다.

 

또한 이 구절은 창3:15의 예언이 계시록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창세기에서는 뱀과 여자 사이에 원수가 생기고,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대가 생길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계시록에서는 실제로 용이 여자와 그녀의 자손을 공격하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계시록의 용을 창세기의 뱀과 동일한 존재로 봅니다. 앞의 AC.251에서 설명한 것처럼, 용은 옛 뱀이며, 자기 사랑과 악, 그리고 거짓의 세력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용이 여자의 자손과 싸운다는 것은 악과 거짓이 참된 신앙을 공격한다는 뜻입니다.

 

특히 여기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신앙이 삶 속에서 실천되는 모습을 의미하고, ‘예수의 증거를 가진다’는 것은 주님을 인정하고, 그분의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점은 스베덴보리의 신앙 이해와도 정확히 일치합니다. 그에게 참된 신앙은 단순한 믿음이 아니라, 주님을 인정하고, 계명에 따라 살아가는, 삶과 결합된 신앙입니다. 그래서 계시록은 여자의 자손을 단순히 ‘믿는 자들’이라고 하지 않고,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이라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AC.255에서 이 구절이 인용된 이유는, ‘여자의 후손’이 누구인지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여자의 후손은 육체적 후손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주님을 믿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입니다. 곧 주님께 대한 참된 신앙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창3:15의 ‘여자의 후손’이 신앙을 의미한다는 스베덴보리의 해석을 가장 명확하게 뒷받침하는 본문 가운데 하나이며, 동시에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사이의 영적 전쟁이 성경의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AC.255, 심화 4, ‘시89:3-4, 29, 36’

AC.255.심화 4. ‘시89:3-4, 29, 36’ 3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내가 택한 자와 언약을 맺으며 내 종 다윗에게 맹세하기를 4내가 네 자손을 영원히 견고히 하며 네 왕위를 대대에 세우리라 하셨나이다,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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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55, 심화 2, ‘사44:3’

AC.255.심화 2. ‘사44:3’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 (사44:3) I will pour waters upon the thirsty, and floods up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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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55.심화

 

2. ‘44:3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 (44:3) I will pour waters upon the thirsty, and floods upon the dry [land]; I will pour my spirit upon thy seed, and my blessing upon thine offspring (Isa. 44:3).

 

 

AC.255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성경에서 ‘(seed)가 단순한 육체적 후손이 아니라 신앙과 영적 생명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이 구절을 문자적으로 읽으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후손들에게 복을 주시겠다는 약속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자손(seed)이라는 표현을 혈통이 아니라 영적 의미로 이해합니다.

 

그 이유는 본문 자체가 영적 언어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목마른 자(thirsty)는 진리를 갈망하는 사람을 의미하고, ‘(waters)은 진리를 의미합니다. 또한 ‘마른 땅(dry land)은 진리와 선이 결핍된 상태를 의미하며, ‘시내(floods)는 풍성하게 공급되는 진리들을 의미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이어지는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부어 주리니’라는 말씀도 단순한 육체적 후손에 관한 말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혈통 위에 부어지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부어집니다. 따라서 여기서 ‘자손(seed)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신앙을 받아들이는 사람들, 또는 그들 안에 있는 신앙 자체를 의미합니다.

 

또한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라는 표현도 같은 의미입니다. 말씀에서 복(blessing)은 단순한 물질적 번영이 아니라 선과 진리의 결합, 곧 영적 생명의 충만함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복이 후손에게 부어진다는 것은 신앙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영적 생명이 주어진다는 뜻입니다.

 

스베덴보리가 AC.255에서 이 구절을 인용하는 목적은 매우 분명합니다. 창3:15의 ‘여자의 후손’을 설명하기 위함입니다. 그는 ‘여자의 후손’을 신앙(faith in the Lord)이라고 설명했는데, 여기 사44:3은 ‘(seed)가 하나님의 영과 복을 받는 대상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는 씨가 단순한 혈통이 아니라 신앙과 관련된 영적 개념임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seed)가 영적으로는 신앙을 의미한다는 AC.255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인용됩니다. 물은 진리, 영은 주님의 생명, 복은 선과 사랑을 의미하며, 그것들이 부어지는 ‘자손(seed)은 주님께 대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 또는 그 신앙 자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44:3은 ‘여자의 씨, 후손 = 신앙’이라는 스베덴보리의 해석을 뒷받침하는 대표적인 본문 가운데 하나로 사용된 것입니다.

 

 

 

AC.255, 심화 3, ‘계12:17’

AC.255.심화 3. ‘계12: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계12:17) The d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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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55, 심화 1, ‘말2:14-15’

AC.255.심화 1. ‘말2:14-15’ 14너희는 이르기를 어찌 됨이니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와 네가 어려서 맞이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증인이 되시기 때문이라 그는 네 짝이요 너와 서약한 아내로되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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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55.심화

 

1. ‘2:14-15

 

14너희는 이르기를 어찌 됨이니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와 네가 어려서 맞이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증인이 되시기 때문이라 그는 네 짝이요 너와 서약한 아내로되 네가 그에게 거짓을 행하였도다 15그에게는 영이 충만하였으나 오직 하나를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만드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맞이한 아내에게 거짓을 행하지 말지니라 (2:14, 15) Jehovah hath witnessed between thee and the wife of thy youth; and not one hath done so who had a residue of the spirit; and wherefore one, seeking the seed of God? But observe ye in your spirit, lest he deal treacherously against the wife of thy youth (Mal. 2:14–15).

 

 

AC.255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창3:15의 ‘여자의 후손(seed of the woman)이 신앙(faith)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특별히 그는 여기 나오는 ‘경건한 자손(seed of God)이라는 표현에 주목합니다.

 

문자적으로는 결혼 언약을 저버리는 일을 책망하는 말씀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이 말씀을 교회와 주님의 관계에 대한 영적 묘사로 이해합니다. 앞서 AC.253에서 설명한 것처럼 ‘어려서 맞이한 아내(the wife of thy youth)는 단순한 배우자가 아니라 고대교회와 태고교회를 의미합니다. 곧 주님과 가장 순수하게 결합되어 있었던 교회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본문은 ‘어찌하여 하나만 만드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스베덴보리는 ‘경건한 자손(seed of God)을 육체적 자녀가 아니라 교회 안에서 태어나는 신앙으로 해석합니다.

 

그 이유는 그의 상응 해석에서 ‘(seed)는 언제나 어떤 원리에서 나오는 산물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악에서 나오면 ‘행악의 종자’가 되고, 거짓에서 나오면 ‘거짓의 후손’이 되며, 하나님에게서 나오면 ‘경건한 자손’이 됩니다. 따라서 ‘경건한 자손’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신앙, 곧 주님께 대한 참된 신앙을 의미합니다.

 

또한 ‘여호와께서 증인이 되셨다’는 표현은 주님과 교회의 결합이 신성한 언약임을 뜻합니다. 그리고 그 결합의 목적은 단순히 외적인 조직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참된 신앙이 계속 태어나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AC.255에서 이 구절은 매우 중요한 증거 본문이 됩니다. 창3:15에서 ‘여자의 후손’이 단순한 육체적 후손이라면, 말라기의 ‘경건한 자손’도 단순한 자녀를 의미해야 합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여기서 씨, 후손, 자손은 교회 안에 살아 있는 신앙이며,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진리와 선의 생명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이 인용된 이유는 ‘(seed)라는 표현이 영적으로는 신앙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특히 ‘경건한 자손(seed of God)은 주님에게서 나오는 참된 신앙을 의미하며, 이것이 바로 창3:15에서 말하는 ‘여자의 후손’의 본질이라는 점을 설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결국 ‘뱀의 후손’이 불신이라면, ‘여자의 후손’은 신앙이며, 말2:15의 ‘경건한 자손’은 그 사실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구절 가운데 하나인 것입니다.

 

 

 

AC.255, 심화 2, ‘사44:3’

AC.255.심화 2. ‘사44:3’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 (사44:3) I will pour waters upon the thirsty, and floods up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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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55, 창3:15, ‘여자의 후손’(신앙)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3:15)AC.255‘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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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3:15)



AC.255

여자의 후손(seed of the woman)이 주님에 대한 신앙(faith in the Lord)을 의미한다는 것은, ‘여자가 교회를 의미한다는 사실로부터 분명합니다. 교회의 씨, 후손은 오직 신앙뿐입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교회라고 불리는 것은 주님에 대한 신앙으로 말미암기 때문입니다. 말라기에서는 신앙을 가리켜 경건한 자손(seed of God)이라 합니다. That the “seed of the woman” signifies faith in the Lord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woman” as being the church, whose “seed” is nothing but faith, for it is from faith in the Lord that the church is called the church. In Malachi, faith is called the “seed of God”:

 

14너희는 이르기를 어찌 됨이니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와 네가 어려서 맞이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증인이 되시기 때문이라 그는 네 짝이요 너와 서약한 아내로되 네가 그에게 거짓을 행하였도다 15그에게는 영이 충만하였으나 오직 하나를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만드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맞이한 아내에게 거짓을 행하지 말지니라 (2:14, 15) Jehovah hath witnessed between thee and the wife of thy youth; and not one hath done so who had a residue of the spirit; and wherefore one, seeking the seed of God? But observe ye in your spirit, lest he deal treacherously against the wife of thy youth (Mal. 2:14–15).

 

여기 어려서 맞이한 아내(wife of youth)는 고대교회와 태고교회를 의미하며,(seed), 곧 신앙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에서도 교회를 가리키면서 In this passage the “wife of youth” is the ancient and most ancient churches, of whose “seed” (or faith) the prophet speaks. In Isaiah also, in reference to the church: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 (44:3) I will pour waters upon the thirsty, and floods upon the dry [land]; I will pour my spirit upon thy seed, and my blessing upon thine offspring (Isa. 44:3).

 

계시록에서 In Revelation: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12:17) The dragon was wroth with the woman, and went to make war with the remnant of her seed, who were keeping the commandments of God, and have the testimony of Jesus Christ (Rev. 12:17).

 

그리고 시편 And in David:

 

3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내가 택한 자와 언약을 맺으며 내 종 다윗에게 맹세하기를 4내가 네 자손을 영원히 견고히 하며 네 왕위를 대대에 세우리라 하셨나이다, 29또 그의 후손을 영구하게 하여 그의 왕위를 하늘의 날과 같게 하리로다, 36그의 후손이 장구하고 그의 왕위는 해 같이 내 앞에 항상 있으며 (89:3-4, 29, 36) I have made a covenant with mine elect, I have sworn unto David my servant, even to eternity will I establish thy seed, and his seed will I make to endure forever, and his throne as the days of the heavens; his seed shall endure to eternity, and his throne as the sun before me (Ps. 89:3–4, 29, 36),

 

여기 다윗(David)은 주님을, ‘왕위(throne)는 그분의 왕국을, ‘(sun)는 사랑을, 그리고 후손(seed)은 신앙을 의미합니다. where by “David” is meant the Lord; by “throne,” his kingdom; by the “sun,” love; and by “seed,” faith.

 

 

해설

 

AC.255는 앞의 AC.254와 짝을 이루는 대목입니다. AC.254가 ‘뱀의 후손’을 설명하였다면, AC.255는 ‘여자의 후손’을 설명합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seed, 후손)는 언제나 어떤 원리에서 나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뱀의 후손’이 악과 자기 사랑에서 나온 불신과 거짓이라면, ‘여자의 후손’은 교회에서 나오는 신앙, 곧 주님께 대한 신앙입니다.

 

그는 여기서 매우 중요한 원리를 말합니다. ‘교회의 후손은 오직 신앙뿐이다.’ 왜냐하면 교회는 건물이나 조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믿고, 그분과 결합하는 신앙으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자의 후손은 본질적으로 신앙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동시에 이 신앙이 단순한 지적 동의가 아니라고 봅니다. 그의 신학에서 참된 신앙은 언제나 사랑과 결합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89편에서 ‘후손(seed)이 ‘왕위(throne)와 ‘(sun)와 함께 언급되는 것입니다. 해는 사랑이고, 왕위는 주님의 왕국이며, 씨, 그러니까 후손은 신앙입니다. 즉 사랑과 신앙이 함께 주님의 왕국을 이루는 것입니다.

 

또한 계12:17의 ‘여자의 남은 자손’에 대한 해석은 매우 중요합니다. 거기서 여자의 자손은 단순한 혈통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입니다. 이것은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씨, 곧 자손의 의미를 직접 보여줍니다. 씨는 육체적 후손이 아니라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2:15의 ‘경건한 자손(seed of God)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주님께서 교회를 세우시는 목적은 단순히 사람 수를 늘리는 데 있지 않고, 참된 신앙을 낳고 보존하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경건한 자손’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신앙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AC.255에서 여러 구절이 인용된 이유는 모두 하나입니다. 창3:15의 ‘여자의 후손’을 육체적 후손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그것은 교회 안에 있는 참된 신앙이며, 궁극적으로는 그 신앙의 근원이신 주님 자신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의 해석에서 창3:15은 단순히 하와의 후손과 뱀의 후손 사이의 싸움이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께 대한 신앙과 자기 사랑에서 나온 불신 사이의 영원한 대립을 의미합니다. 뱀의 후손은 불신이고, 여자의 후손은 신앙이며, 그 신앙의 중심에는 결국 주님 자신이 계시는 것입니다.

 

 

심화

 

1. ‘2:14-15

 

 

AC.255, 심화 1, ‘말2:14-15’

AC.255.심화 1. ‘말2:14-15’ 14너희는 이르기를 어찌 됨이니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와 네가 어려서 맞이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증인이 되시기 때문이라 그는 네 짝이요 너와 서약한 아내로되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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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44:3

 

 

AC.255, 심화 1, ‘말2:14-15’

AC.255.심화 1. ‘말2:14-15’ 14너희는 이르기를 어찌 됨이니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와 네가 어려서 맞이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증인이 되시기 때문이라 그는 네 짝이요 너와 서약한 아내로되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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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2:17

 

 

AC.255, 심화 3, ‘계12:17’

AC.255.심화 3. ‘계12: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계12:17) The d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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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89:3-4, 29, 36

 

 

AC.255, 심화 4, ‘시89:3-4, 29, 36’

AC.255.심화 4. ‘시89:3-4, 29, 36’ 3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내가 택한 자와 언약을 맺으며 내 종 다윗에게 맹세하기를 4내가 네 자손을 영원히 견고히 하며 네 왕위를 대대에 세우리라 하셨나이다,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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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56, 창3:15, ‘여자의 후손’(주님)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3:15)AC.256‘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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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54, 창3:15, ‘뱀의 후손’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3:15)AC.254‘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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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54.심화

 

3. ‘14:19, 20

 

19오직 너는 자기 무덤에서 내쫓겼으니 가증한 나뭇가지 같고 칼에 찔려 돌 구덩이에 떨어진 주검들에 둘러싸였으니 밟힌 시체와 같도다 20네가 네 땅을 망하게 하였고 네 백성을 죽였으므로 그들과 함께 안장되지 못하나니 악을 행하는 자들의 후손은 영원히 이름이 불려지지 아니하리로다 할지니라 (사14:19, 20) Thou art cast out of thy sepulcher like an abominable shoot, because thou hast corrupted thy land, thou hast slain thy people; the seed of evildoers shall not be called to eternity (Isa. 14:19–20).

 

 

AC.254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성경에서 ‘(seed) 또는 ‘후손(seed)이 단순한 혈통이 아니라 어떤 영적 원리에서 나온 결과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다시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앞에서 그는 창3:15의 ‘뱀의 후손’을 ‘모든 불신(all infidelity)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를 입증하기 위해 사1:4의 ‘행악의 종자’, 사57:5의 ‘거짓의 후손’을 인용하였으며, 여기서는 다시 ‘악을 행하는 자들의 후손(seed of evildoers)이라는 표현을 제시합니다.

 

문자적으로 보면 이 말씀은 바벨론 왕, 또는 루시퍼(Lucifer)로 불리는 존재에 대한 심판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단순한 역사적 인물에 대한 예언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는 여기서 루시퍼를 자기 사랑과 교만, 그리고 그로부터 나오는 악의 원리로 이해합니다.

 

특히 ‘네가 네 땅을 망하게 하였고 네 백성을 죽였다’는 표현은 악이 교회와 인간의 영적 생명을 파괴하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land)은 흔히 교회를, ‘백성(people)은 교회 안의 진리들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악을 행하는 자들의 후손(seed of evildoers)이라는 말이 AC.254의 핵심입니다. 여기서 후손은 육체적 자손이 아니라 악에서 태어난 모든 것, 곧 악한 생각, 악한 의지, 악한 교리, 악한 삶을 의미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구절을 통해 ‘(seed)가 영적 기원을 나타내는 표현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거짓의 후손’은 거짓에서 나온 것을 의미하고, ‘행악의 종자’는 악에서 나온 것을 의미하며, ‘악을 행하는 자들의 후손’도 같은 의미를 가집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창3:15의 ‘뱀의 후손’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뱀의 후손, 뱀의 씨란 어떤 특정 혈통이나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사랑과 악이라는 뿌리에서 자라난 모든 불신과 거짓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AC.254에서 사14:19-20을 인용한 이유는, 성경이 반복적으로 ‘(seed)를 영적 원리의 산물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악을 행하는 자들의 후손’이라는 표현은 곧 창세기의 ‘뱀의 후손’과 같은 계열의 개념으로서, 악에서 나온 모든 불신과 거짓을 가리키는 대표적인 예로 제시된 것입니다.

 

 

 

AC.254, 창3:15, ‘뱀의 후손’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3:15)AC.254‘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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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54, 심화 2, ‘사57:3-5’

AC.254.심화 2. ‘사57:3-5’ 3무당의 자식, 간음자와 음녀의 자식들아 너희는 가까이 오라 4너희가 누구를 희롱하느냐 누구를 향하여 입을 크게 벌리며 혀를 내미느냐 너희는 패역의 자식, 거짓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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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54.심화

 

2. ‘57:3-5

 

3무당의 자식, 간음자와 음녀의 자식들아 너희는 가까이 오라 4너희가 누구를 희롱하느냐 누구를 향하여 입을 크게 벌리며 혀를 내미느냐 너희는 패역의 자식, 거짓의 후손이 아니냐 5너희가 상수리나무 사이,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음욕을 피우며 골짜기 가운데 바위틈에서 자녀를 도살하는도다 (57:3-5) Draw near hither, ye sons of the sorceress, the seed of the adulterer. Are ye not children of transgression, a seed of falsehood (Isa. 57:3–5)?

 

 

AC.254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창3:15의 ‘뱀의 후손(seed of the serpent)이 단순한 혈통이나 육체적 후손이 아니라 ‘거짓과 불신에서 나온 영적 산물’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이 구절의 핵심 표현은 ‘간음자의 자식(seed of the adulterer)과 ‘거짓의 후손(seed of falsehood)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성경에서 ‘(seed, 후손)를 어떤 원리에서 나오는 결과물로 이해합니다. 따라서 ‘여자의 후손’은 신앙과 진리에서 나오는 것을 의미하고, 반대로 ‘뱀의 후손’은 악과 거짓에서 나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간음(adultery)은 문자적 의미의 음행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말씀의 내적 의미에서 간음은 진리와 선을 버리고, 거짓과 악을 받아들이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간음자의 자식’은 거짓된 교리와 왜곡된 신앙에서 나온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거짓의 후손(seed of falsehood)이라는 표현은 AC.254의 주제를 거의 직접적으로 설명합니다.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뱀의 후손’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자기 사랑과 감각적 자기 지혜에서 출발한 거짓, 그리고 그 거짓에서 태어난 불신과 왜곡된 사고 전체를 의미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패역의 자식(children of transgression)도 같은 맥락입니다. 패역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주님과 진리를 거스르는 상태를 말합니다. 따라서 패역의 자식은 패역을 삶의 원리로 삼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또한 ‘상수리나무 사이’, ‘모든 푸른 나무 아래’, ‘골짜기 가운데 바위틈에서 자녀를 도살한다’는 표현 역시 영적으로는 참된 예배와 진리를 왜곡하고 파괴하는 상태를 묘사합니다. 특히 ‘자녀를 도살한다’는 것은 교회 안에서 태어나야 할 진리와 선을 파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이 구절을 통해 ‘(seed, 후손)라는 표현이 혈통이 아니라 영적 기원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려 합니다. 악에서 나오면 ‘행악의 종자’가 되고, 거짓에서 나오면 ‘거짓의 후손’이 되며, 간음된 교리에서 나오면 ‘간음자의 자식’이 됩니다.

 

따라서 AC.254에서 사57:3-5가 인용된 이유는, 창3:15의 ‘뱀의 후손’이 곧 거짓과 불신의 계열 전체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입니다. ‘간음자의 자식’, ‘거짓의 후손’이라는 표현은 모두 ‘뱀의 후손’과 같은 계열의 상징이며, 자기 사랑에서 시작된 거짓이 결국 불신과 영적 파괴를 낳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인 것입니다.

 

 

 

AC.254, 심화 1, ‘사1:4’

AC.254.심화 1. ‘사1:4’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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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54.심화

 

1. ‘1:4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1:4) Woe to the sinful nation, a people laden with iniquity, a seed of evil doers, sons that are destroyers; they have forsaken Jehovah, they have provoked the holy one of Israel, they have estranged themselves backward (Isa. 1:4).

 

 

AC.254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창3:15의 ‘뱀의 후손(seed of the serpent)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이미 ‘뱀의 후손은 모든 불신(all infidelity)’이라고 설명하였는데, 여기서는 성경이 악한 상태를 가리켜 ‘행악의 종자(seed of evil doers)라고 부르는 예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스베덴보리에게 ‘후손(씨)’(seed)은 단순한 육체적 후손이 아닙니다. 어떤 원리에서 나오는 모든 결과, 곧 그 원리가 낳는 생각과 의지, 삶 전체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행악의 종자’는 악한 사람의 자녀라는 뜻이 아니라, 악을 근원으로 삼고, 악에서 나온 삶을 사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이 구절을 보면 ‘행악의 종자’라는 말 다음에 곧바로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라는 말이 이어집니다. 스베덴보리는 바로 이 점에 주목합니다. 악의 씨는 결국 불신의 열매를 맺습니다. 사람이 악을 사랑하게 되면 주님에게서 멀어지고, 주님에게서 멀어지면 신앙을 잃게 됩니다. 그래서 ‘행악의 종자’와 ‘불신’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또한 마지막의 ‘멀리하고 물러갔도다(they have estranged themselves backward)라는 표현도 중요합니다. AC.248에서 이미 설명되었듯이, ‘뒤로 물러간다(backward)는 것은 영적으로 주님과 천국을 향하던 상태에서 자기 자신과 세상을 향하는 상태로 바뀌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사1:4는 단순히 도덕적 타락을 책망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내적 의미에서는 교회가 악을 사랑하게 되었고, 그 결과 주님을 버리게 되었으며, 결국 신앙을 잃고 불신 속으로 들어가게 된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AC.254에서 이 구절은 ‘뱀의 후손’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증거로 사용됩니다. 뱀의 후손은 단순한 악행이 아니라, 악에서 비롯된 불신과 주님으로부터의 이탈을 의미합니다. ‘행악의 종자’라는 표현은 바로 그러한 상태를 가리키며, 악이 결국 불신을 낳고, 불신이 다시 더 큰 악을 낳는 영적 순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AC.254, 심화 2, ‘사57:3-5’

AC.254.심화 2. ‘사57:3-5’ 3무당의 자식, 간음자와 음녀의 자식들아 너희는 가까이 오라 4너희가 누구를 희롱하느냐 누구를 향하여 입을 크게 벌리며 혀를 내미느냐 너희는 패역의 자식, 거짓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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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54, 창3:15, ‘뱀의 후손’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3:15)AC.254‘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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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3:15)



AC.254

뱀의 후손(seed of the serpent)이 모든 불신(infidelity)을 의미한다는 것은, ‘(serpent)이 모든 악을 의미한다는 사실로부터 분명합니다. ‘후손(seed)이란 낳는 것과 낳아진 것, 곧 출산하는 것과 출산된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여기서는 교회에 관하여 말하고 있으므로, 그 씨는 불신을 의미합니다. 이사야서에서는 왜곡된 상태에 있는 유대 교회를 가리켜 행악의 종자(seed of evildoers), ‘간음자의 자식(seed of the adulterer), ‘거짓의 후손(seed of falsehood)이라고 합니다. That by the “seed of the serpent” is meant all infidelity,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a “serpent,” as being all evil; “seed” is that which produces and is produced, or that which begets and is begotten; and as the church is here spoken of, this is infidelity. In Isaiah, in reference to the Jewish church in its perverted state, it is called a “seed of evil doers,” a “seed of adultery,” a “seed of falsehood”: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1:4) Woe to the sinful nation, a people laden with iniquity, a seed of evil doers, sons that are destroyers; they have forsaken Jehovah, they have provoked the holy one of Israel, they have estranged themselves backward (Isa. 1:4).

 

3무당의 자식, 간음자와 음녀의 자식들아 너희는 가까이 오라 4너희가 누구를 희롱하느냐 누구를 향하여 입을 크게 벌리며 혀를 내미느냐 너희는 패역의 자식, 거짓의 후손이 아니냐 5너희가 상수리나무 사이,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음욕을 피우며 골짜기 가운데 바위틈에서 자녀를 도살하는도다 (57:3-5) Draw near hither, ye sons of the sorceress, the seed of the adulterer. Are ye not children of transgression, a seed of falsehood (Isa. 57:3–5)?

 

또한 이사야는 또는 (dragon)을 가리켜 루시퍼(Lucifer)라 합니다. And again, speaking of the “serpent” or “dragon,” who is there called Lucifer:

 

19오직 너는 자기 무덤에서 내쫓겼으니 가증한 나뭇가지 같고 칼에 찔려 돌 구덩이에 떨어진 주검들에 둘러싸였으니 밟힌 시체와 같도다 20네가 네 땅을 망하게 하였고 네 백성을 죽였으므로 그들과 함께 안장되지 못하나니 악을 행하는 자들의 후손은 영원히 이름이 불려지지 아니하리로다 할지니라 (사14:19, 20) Thou art cast out of thy sepulcher like an abominable shoot, because thou hast corrupted thy land, thou hast slain thy people; the seed of evildoers shall not be called to eternity (Isa. 14:19–20).

 

 

해설

 

AC.254에서 스베덴보리가 설명하려는 핵심은 창3:15의 ‘뱀의 후손’이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그는 이미 AC.250에서 ‘뱀의 후손(씨)은 모든 불신(all infidelity)’이라고 말하였는데, 여기서는 그 근거를 제시합니다.

 

스베덴보리에게 ‘후손(seed)은 단순히 후손을 뜻하지 않습니다. 후손, 곧 씨는 어떤 원리에서 나오는 모든 결과물, 곧 그 원리가 낳는 사상과 신념, 그리고 삶 전체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여자의 후손(씨)’이 주님께 대한 신앙과 그로부터 나오는 모든 선과 진리를 의미하듯이, ‘뱀의 후손’은 자기 사랑과 악에서 나오는 모든 불신과 거짓을 의미합니다.

 

왜 하필 ‘불신(infidelity)일까요? 스베덴보리의 논리에 따르면 모든 악의 시작은 주님보다 자기 자신을 신뢰하는 데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신뢰하기 시작하면 주님을 신뢰하지 않게 되고, 결국 신앙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자기 사랑의 열매는 결국 불신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뱀의 씨’, ‘뱀의 후손’입니다.

 

그래서 그는 사1:4를 인용합니다. 여기서 ‘행악의 종자(seed of evildoers)는 단순히 악한 사람들의 자손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악을 원리로 삼고, 악에서 나온 생각과 삶을 가진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특히 이어지는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라는 말은 그 씨가 결국 불신으로 나타남을 보여줍니다.

 

57:3-5의 ‘간음자의 자식’, ‘거짓의 후손’도 같은 의미입니다. 스베덴보리의 해석에서 영적 간음은 진리를 버리고 거짓을 받아들이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간음자의 자식’은 거짓 교리와 불신에서 태어난 모든 것을 의미하며, ‘거짓의 후손’은 거짓 자체를 생명의 원리로 삼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사14:19-20에서는 루시퍼가 등장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루시퍼를 단순한 개인으로 보기보다, 자기 사랑에서 나오는 교만과 악의 원리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악을 행하는 자들의 후손(seed of evildoers)은 창세기의 ‘뱀의 후손’과 같은 의미를 갖습니다. 곧 악에서 나온 모든 거짓과 불신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따라서 AC.254에서 이 세 구절을 인용한 이유는, 성경에서 ‘후손(씨)’(seed)이 단순한 혈통이 아니라 어떤 영적 원리에서 나온 결과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뱀의 후손’은 자기 사랑과 악에서 나오는 모든 불신과 거짓을 의미하며, 이것이 ‘여자의 후손’, 곧 주님께 대한 신앙과 끊임없이 대립하게 된다는 것이 창3:15의 핵심 의미인 것입니다.

 

 

심화

 

1. ‘1:4

 

 

AC.254, 심화 1, ‘사1:4’

AC.254.심화 1. ‘사1:4’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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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57:3-5

 

 

AC.254, 심화 2, ‘사57:3-5’

AC.254.심화 2. ‘사57:3-5’ 3무당의 자식, 간음자와 음녀의 자식들아 너희는 가까이 오라 4너희가 누구를 희롱하느냐 누구를 향하여 입을 크게 벌리며 혀를 내미느냐 너희는 패역의 자식, 거짓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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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4:19, 20

 

19오직 너는 자기 무덤에서 내쫓겼으니 가증한 나뭇가지 같고 칼에 찔려 돌 구덩이에 떨어진 주검들에 둘러싸였으니 밟힌 시체와 같도다 20네가 네 땅을 망하게 하였고 네 백성을 죽였으므로 그들과 함께 안장되지 못하나니 악을 행하는 자들의 후손은 영원히 이름이 불려지지 아니하리로다 할지니라 (사14:19, 20) Thou art cast out of thy sepulcher like an abominable shoot, because thou hast corrupted thy land, thou hast slain thy people; the seed of evildoers shall not be called to eternity (Isa. 14:19–20).

 

 

AC.254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성경에서 ‘(seed) 또는 ‘후손(seed)이 단순한 혈통이 아니라 어떤 영적 원리에서 나온 결과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다시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앞에서 그는 창3:15의 ‘뱀의 후손’을 ‘모든 불신(all infidelity)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를 입증하기 위해 사1:4의 ‘행악의 종자’, 사57:5의 ‘거짓의 후손’을 인용하였으며, 여기서는 다시 ‘악을 행하는 자들의 후손(seed of evildoers)이라는 표현을 제시합니다.

 

문자적으로 보면 이 말씀은 바벨론 왕, 또는 루시퍼(Lucifer)로 불리는 존재에 대한 심판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단순한 역사적 인물에 대한 예언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는 여기서 루시퍼를 자기 사랑과 교만, 그리고 그로부터 나오는 악의 원리로 이해합니다.

 

특히 ‘네가 네 땅을 망하게 하였고 네 백성을 죽였다’는 표현은 악이 교회와 인간의 영적 생명을 파괴하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land)은 흔히 교회를, ‘백성(people)은 교회 안의 진리들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악을 행하는 자들의 후손(seed of evildoers)이라는 말이 AC.254의 핵심입니다. 여기서 후손은 육체적 자손이 아니라 악에서 태어난 모든 것, 곧 악한 생각, 악한 의지, 악한 교리, 악한 삶을 의미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구절을 통해 ‘(seed)가 영적 기원을 나타내는 표현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거짓의 후손’은 거짓에서 나온 것을 의미하고, ‘행악의 종자’는 악에서 나온 것을 의미하며, ‘악을 행하는 자들의 후손’도 같은 의미를 가집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창3:15의 ‘뱀의 후손’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뱀의 후손, 뱀의 씨란 어떤 특정 혈통이나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사랑과 악이라는 뿌리에서 자라난 모든 불신과 거짓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AC.254에서 사14:19-20을 인용한 이유는, 성경이 반복적으로 ‘(seed)를 영적 원리의 산물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악을 행하는 자들의 후손’이라는 표현은 곧 창세기의 ‘뱀의 후손’과 같은 계열의 개념으로서, 악에서 나온 모든 불신과 거짓을 가리키는 대표적인 예로 제시된 것입니다.

 

 

 

AC.253, 창3:15, ‘여자’(the church)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3:15)AC.253교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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