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57, 창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AC.250-260) - '뱀의 머리'의 속뜻

 

15절,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And I will put enmity between thee and the woman, and between thy seed and her seed; he shall trample upon thy head, and thou shalt bruise his heel.

 

257

뱀의 머리(the head of the serpent)가 일반적으로는 악이 지배적인 상황을, 구체적으로는 자기 사랑이 지배적인 상황을 의미한다는 건 그 본성(its nature)을 보면 분명한데요, 이 본성은 단지 지배적이기를 추구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지상의 모든 걸 지배하고자 할 정도로 무서우며, 그 정도로는 양이 안 차 계속해서 이번에는 천국의 모든 것을 다스리고자 열망하는, 더 나아가 이걸로도 만족이 안 되어 급기야는 주님 자신까지도! 그러고도 여전히 만족을 모르는 그런 것입니다. 자기 사랑의 불꽃이 일어나는 곳마다 거기에는 이런 게 잠재해 있습니다. 사후, 규제가 풀려 하고픈 대로 마음껏 할 수 있게 되면, 이런 본성이 즉시 우리 안에서 거침없이 터져 나와, 그토록 열망하는 데까지 자라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지각해야 합니다. That by the “head of the serpent” is meant the dominion of evil in general, and specifically of the love of self, is evident from its nature, which is so direful as not only to seek dominion, but even dominion over all things upon earth; nor does it rest satisfied with this, but aspires even to rule over everything in heaven, and then, not content with this, over the Lord himself, and even then it is not satisfied. This is latent in every spark of the love of self. If it were indulged, and freed from restraint, we should perceive that it would at once burst forth and would grow even to that aspiring height.

 

※ ‘규제가 풀려(freed from restraint)는 아직 몸 안에서 사는 이 지상 생활에서는 남의 이목과 사회적 도덕과 윤리, 체면 등이 있어 마음대로 못 하지만, 사후 이 몸을 벗고 영이 되면 그때는 사정이 달라진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분명한 것은, 이 ‘’, 곧 자기 사랑이라는 이 악은 지배하기를 정말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 그리고 이런 거에 휘둘리기를 거절하는 모든 사람을 얼마나 증오하는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신을 높이는 뱀의 머리’이며, 주께서 상하게(tramples down), 심지어 땅으로까지 짓밟아 뭉게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앞 절에서 기술한, ‘배로 다니며 흙을 먹을지니라인 것이며, 그래서 이사야에서는 이를 루시퍼라고 하는, ‘이나 으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Hence it is evident how the “serpent,” or the evil of the love of self, desires to exercise dominion, and how much it hates all those who refuse its sway. This is that “head of the serpent” which exalts itself, and which the Lord “tramples down,” even to the earth, that it may “go upon its belly, and eat dust,” as stated in the verse immediately preceding. Thus also is described the “serpent” or “dragon” called “Lucifer” in Isaiah:

 

12 아침의 아들 계명성(Lucifer)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13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14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15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 (사14:12-15) O Lucifer, thou hast said in thy heart, I will ascend the heavens, I will exalt my throne above the stars of God, and I will sit upon the mount of the congregation, in the sides of the north, I will ascend above the heights of the cloud, I will be made equal to the most high; yet thou shalt be brought down to hell, to the sides of the pit. (Isa. 14:12–15)

 

계시록에서는 ‘’이나 ‘’이 자기 머리를 어떤 식으로 높이는지에 대하여 또한 말씀하고 있습니다. The “serpent” or “dragon” is also described in the Revelation in regard to the way in which he exalts his head:

 

3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는데 9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계12:3, 9) A great red dragon, having seven heads, and ten horns, and many diadems upon his heads; but he was cast into the earth. (Rev. 12:3, 9)

 

시편에서는 In David:

 

1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2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규를 내보내시리니 주는 원수들 중에서 다스리소서, 6뭇 나라를 심판하여 시체로 가득하게 하시고 여러 나라의 머리를 쳐서 깨뜨리시며 7길 가의 시냇물을 마시므로 그의 머리를 드시리로다 (시110:1-2, 6-7) The saying of Jehovah to my Lord, Sit thou at my right hand, until I make thine enemies thy footstool: Jehovah shall send the rod of thy strength out of Zion, he shall judge the nations, he hath filled with dead bodies, he hath bruised the head over much land; he shall drink of the brook in the way, therefore shall he lift up the head. (Ps. 110:1–2,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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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10(D1)-주일예배(2534, 눅17,11-19),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의 속뜻.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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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의 속뜻

 

 

11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12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13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14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15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6예수의 발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17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8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19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눅17:11-19)

 

주님께서 치유하신 모든 자연적 질병들은 그것에 상응하는 영적 질병들을 의미한다. 영적 질병은 오직 주님에 의해서만 치유될 수 있다. 즉 주님의 신적 전능함을 바라보는 일과 삶의 회개를 통해서만 치유될 수 있다. (계시록 해설 815:5, 이순철 역) all the diseases healed by the Lord represented and thus signified the spiritual diseases that correspond to these natural diseases; and spiritual diseases can be healed only by the Lord, and in fact by looking to His Divine omnipotence and by repentance of life. (AE.815.5)

 

 

오늘 본문 말씀을 읽으면서 그동안 살면서 은혜를 입은 많은 분들 생각이 났습니다. 가깝게는 부모님과 형제들, 처가, 그리고 고등학교 동기들, 서울침례교회 청년부 형제자매들, 지구촌교회를 비롯, 침신대 신대원 동기들, 늘사랑교회 성도들과 그 외 개척 시절 물심양면 많은 도움을 주신 평책사 목회자 부부들, 그리고 수도원이나 4014 금식 운동 등으로 알게 된 많은 지인들 등, 제가 지난 4, 5년 꾸준히 틈틈이 글 공유를 하는 카카오톡 명단이 있는데, 그중 거의 대부분이 바로 한 번이라도 저희에게 은혜와 사랑을 베푸신 분들을 대상으로 초창기 처음 명단을 선정했던 것입니다. 아무 것도 무슨 대신 갚을 것 없는 때여서 제가 받은 은혜와 감사의 글 나누는 것 외에는 없었기 때문이지요. 지금은 제가 하는 이 스베덴보리의 낯설고 생소한 말씀 풀이와 이질적 교리로 그마저 많이들 소원해졌지만... 그러나 여전히 한 분 한 분 저희를 기억하시고 사랑과 은혜, 냉수 한 그릇이라도 베푸신 기억들은 두고두고 고맙고 감사합니다. 아주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다 제 일지에 기록되어 있으나, 그러나 정작 실제로 그 고마움을 나타내고 표현하는 일에는 저희가 너무 서툴러 본의 아니게 섭섭함과 서운함을 드리는 경우들도 가끔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참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그 한분 한분이 사실은 그분들 모습으로 저희를 도우신 주님이셨을 텐데 말입니다. 주님, 정말 죄송합니다...

 

네, 그렇습니다. 제 경우였지만... 이처럼 우리는 왜 보통은 주님의 은혜에 감사할 줄을 모를까요? 그리고 주님께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나중에 어떻게 될까요? 지금부터 그것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본문 1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11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면 주님이 갈릴리를 출발,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그러나 영적으로는, 즉 그 속뜻으로는, 이 말씀은 주님의 영화(glorification)의 과정을 나타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주님이 지옥의 시험을 이기시고, 점차 신성한 인간(The Divine Human)이 되시는 과정을 의미하지요. 이에 대해 지금부터 드리는 말씀은 조금 어려우실 듯 합니다만... 주님이 빛을 더하사 이해를 더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여기서 갈릴리는 교회 밖 이방인을 뜻하고, 사마리아는 이방인 가운데서도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따라서 주님이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를 지나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것은 주님도 처음에는 교회 밖 이방인들처럼 하나님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태로 계시다가, 그러니까 아주 어린 영유아 시절이셨겠지요, 점차 진리의 인도를 받아 내면에 계신 여호와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가신 것을 뜻하며, 그러므로 전반적으로는 주님의 영화의 과정을 의미하는데요, 왜냐하면 예루살렘은 주님의 영화, 즉 주님이 입으신 인성과 주님 안의 신성이 하나 되는 상태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씀에는 주님이 예루살렘에서 죽임을 당하시고, 또한 거기서 부활하셨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죽임을 당하시는 것은 세상에서의 마지막 시험을 뜻하고, 부활은 시험에서 이기심으로 해서 신성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 즉 주님의 영화를 의미하기 때문이지요. 주님은 그렇게 한편으로는 인성을 영화롭게 만드시면서, 또 한편으로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시고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그렇다면 아직 신성과 완전히 결합하지 않으신 주님이 그러면 어떻게 병자들을 고치실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만... 그러나 주님이 영화롭게 되시는 과정을 보면, 주님의 인성과 신성이 서로 결합되어 있을 때도 있었고, 분리된 상태일 때도 있었는데요, 전자의 상태, 즉 인성과 신성이 결합한 상태를 주님의 영화의 상태라 하고, 후자의 상태, 즉 인성과 신성이 분리된 상태를 겸비(humiliation)의 상태라고 합니다. 겸비라는 것은 주님의 인성이 신성 앞에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이 병자들을 고치시는 것은 신성과 인성이 결합해 하나가 된 상태일 때, 즉 영화의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인데요, 그때 신성의 능력이 인성을 거쳐 병자들에게 전해져 병을 치유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주님이 병자를 고치시는 모습을 12절과 13절에서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12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13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영적 의미로 나병환자는 진리를 알면서도 그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이며, 그러므로 진리를 더럽히는 사람을 뜻합니다. 저를 비롯한 우리 역시 어떤 면에서는 여전히 영적 나병환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멀리 서서 큰 소리로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쳤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입으로는 주님을 인정하지만, 속으로는 그렇게까지 인정하지는 않는 걸 의미하는데요, 왜냐하면 본문을 보면, 그들이 입으로는 주님을 ‘예수 선생님이여’라고 부르면서도 정작 주님으로부터는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나병환자의 경우, 시대적으로, 즉 유대 정결법이 우선되는 당시 상황에서는 그럴 수 밖에 없었지만, 속뜻으로는 그렇다는 말입니다. 주님을 믿는다는 사람들 중에는 실제로는 주님을 믿지 않고, 자기 자신을 믿거나 세상 재물을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조차 주님 앞에 나오면 영적인 복과 자연적인 복을 주님께 구합니다. 나병환자가 멀리서 주님께 병의 치유를 구하는 것은 이를테면 그런 것입니다.

 

14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그러자 주님께서 그들에게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십니다. 레위기 13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 중에 나병환자가 생기면 먼저 제사장에게 보이고, 그를 통해 나병의 유무와 그 상태를 판단 받도록 했습니다. 주님이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라 하신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지요. 그렇다면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는 것의 영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말씀에서 제사장은 선을 뜻합니다. 그리고 몸을 보이라 할 때, 몸은 겉 사람의 삶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는 것은 선의 관점에서 삶을 되돌아보는 걸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선의 상태에 있던 사람이 돌아서서 악을 행하는지, 아니면 아직 선의 상태에 이르지 못하고, 진리의 상태에 있다가 악을 행하는지 스스로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전자의 상태가 후자보다는 내적인 나병이고, 그러므로 위중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속까지 병드는 게 겉만 병든 것보다 더 치명적이기 때문이지요. 상한 양파나 감자, 사과 같은 것처럼 말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은 나병환자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았다고 합니다. 간다는 것은 영적으로는 행하는 것을 의미하는데요, 그러니까 가다가 깨끗함을 받았다는 것은 나병환자들이 주님의 말씀대로 자신의 병의 상태를 진단한 후, 악에서 돌아설 때 병이 치유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저들처럼 주닙의 말씀대로 하면, 일상 가운데 이런 일이 고스란히 그대로 우리에게도 일어날 줄 믿습니다.

 

15절과 16절에는 병이 치유된 나병환자 중 한 사람이 주님께 돌아와 감사하는 모습을 다음과 같이 그리고 있습니다.

 

15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6예수의 발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나병환자 가운데 한 사람이 주님을 찾아와 주님의 발아래 엎드려 감사를 드렸습니다. 주님의 발아래 엎드리는 것은 그가 겸손하게 주님을 예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발아래 엎드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그와 관련해 계시록 해설 77번 글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힘과 지혜에 있어 하나님은 모든 것이고 그에 비해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할 때, 또는 모든 선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고, 인간으로부터는 악 외에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 그때 그는 하나님 앞에 굴복한다. 사람이 이러한 것을 마음으로 인정할 때, 그는 마치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난 사람처럼 머리를 숙인다. 그리고 그렇게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날 때 또한 그에게서 자아가 제거된다. (이순철 역) when man thinks that the Divine in respect to power and wisdom is everything, and man in comparison is nothing, or that from the Divine is all good and from man nothing but evil. When man is in this acknowledgment from the heart he comes as it were out of himself, and thence falls upon his face, and when he is thus out of himself he also is removed from the proprium [what is his own], which in itself is wholly evil; when this is removed, the Divine fills him and raises him up; (AE.77)

 

주님께 감사드리는 나병환자는 자신은 아무 힘도 없고, 오로지 주님의 도우심으로 고침을 받았음을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17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8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주님께서 발아래 엎드린 그 사람을 향해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물으십니다. 여기서 열 사람은 그 속뜻으로는 주님께 병 고침을 받은 모든 사람을 뜻합니다. 열이라는 숫자는 모든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홉은 결합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주님과의 결합이 아니라 자아와 세상과의 결합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주님께 돌아와 감사하지 않은 아홉 사람은 주님이 주시는 인애(仁愛, charity)의 신앙을 버리고, 자아에서 나오는 신앙으로 자기 자신 및 세상과 결탁, 결합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세상의 부귀를 좇아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앞이 캄캄한 상황에서 하나님을 찾아 겨우 숨통이 트여 살만하게 되면 금방 또 제힘을 의지하여 세상 가치관으로 돌아서는 그런 버릇이 우리 안에 여전히 있는 것을 보는데요, 이런 일이 반복되면 나이는 들어가는데 이루거나 모아놓은 건 전혀 없이 마치 다람쥐 쳇바퀴 돌듯 제자리를 맴맴 도는, 어처구니없는 인생을 살게 되지요. 이런 못된 버릇이나 습관은 아주 단호하게 끊어내야 할 줄 믿습니다.

 

아, 그리고 참고로, 이 9:1 비율은 의외로 많은 곳에서 발견되거나 경험할 수 있는데요, 가령, 제가 몇 년째 대략 100여 분께 받은 바 은혜를 나누어 오지만, 그 가운데 꾸준히 답신을 보내오시거나 무슨 반응을 보이시는 분은 대략 열 분 정도밖에 안 됩니다. 처음엔 좀 서운함이 있었으나 ‘아, 원래 이런 거구나...’ 하는 걸 알게 되고 나선 그러려니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주님께로 돌아와 감사를 드리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말씀에는 그를 사마리아인 또는 이방인이라고 합니다. 사마리아인은 교회 밖의 이방인이지만 그럼에도 진리를 사랑하여 배우기를 원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사마리아인의 믿음은 자신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진 음식 부스러기를 먹는 개에 비유하신 주님의 비유에 기꺼이 동의한 수로보니게 여인과 같은 겸손한 믿음이며, 부잣집 문 앞에서 음식을 구걸하듯 진리에 갈급했던 거지 나사로와 같은 믿음입니다.

 

19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주님께서 그에게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셨습니다. ‘일어나는 것’은 주님이 주신 깨달음으로 그의 신앙이 자아의 이기적 신앙에서 주님이 주시는 이타적 신앙으로 한 단계 올라선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가는 것’은 신앙의 진리에 따라 악을 멀리하고, 선을 행하는 삶을 뜻합니다. 말씀에서 걷는 것이나 가는 것은 삶의 행위를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마지막으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는데요, ‘구원하였다는 것’은 그의 병이 일시적으로 치유된 게 아니라 영원히 치유되었음을 뜻합니다. 그래서 구원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가 구원을 받은 이유는 그의 신앙이 인간의 이기적 신앙이 아니라 주님이 주신 인애의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공부하면서 신앙이라고 모두 같은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주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구원과 세상에서의 영달(榮達)을 위한 그런 신앙도 있습니다. 우리가 진리에 따라 악을 멀리하고 선을 행하기 위해서는 전자의 신앙, 즉 주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신앙이라야 합니다. 그게 아니라 후자의 신앙, 즉 이기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주님으로부터 선과 진리가 흘러들어올 때, 오히려 그것을 방해합니다. 그래서 악을 끊고 선을 행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병을 고치기를 원하는 병자들에게 언제나 ‘네가 나를 믿느냐’ 물으신 것입니다. 주님이 물으실 때의 그 믿음은 인간의 자아에서 나오는 이기적인 신앙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이타적인 신앙입니다. 겸손한 사마리아인은 주님이 주신 깨달음에 따라 자아의 신앙을 버리고, 주님이 주신 신앙을 받아들였습니다. 그 결과 고질병인 나병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있었고, 주님의 발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습니다. 반대로 나머지 아홉 사람의 나병환자들은 주님이 주신 깨달음을 통해 일시적으로 병을 고칠 수는 있었지만, 곧 본래의 상태로 되돌아갔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주시는 이타적인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기적인 신앙을 고집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영적인 질병을 근본적으로 고칠 수 없고, 주님 앞에 겸손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당신에게로 돌아온 한 사람 사마리아인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각자가 가지고 있는 신앙의 진리에 따라 매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자신의 신앙이 어떤 상태인지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통찰력으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신앙이 잘못된 것이라면 과감히 버리고, 주님으로부터 사랑의 신앙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주님의 그런 은혜가 오늘 이 말씀에 귀 기울이시는 모든 성도와 이 진리를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들에게 함께하시길 기도합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눅17:6)

 

아멘

 

 

 

원본

2021-09-12(D1)

서울 새 교회 이순철 목사

 

맞춤 설교

2024-03-10(D1)

한결같은 교회 변일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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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원리

 

다음은 스베덴보리 저, ‘천국과 지옥’(Heaven and Its Wonders and Hell, 김은경 역) 총 63장 목록 중 앞부분입니다.

 

1. 주님이 천국의 하나님이시다 (The God of Heaven Is the Lord)

 

2. 주님의 신성이 천국을 이룬다 (It Is the Divine of the Lord That Makes Heaven)

 

3. 천국 안의 주님의 신성은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다 (In Heaven the Divine of the Lord Is Love to Him and Charity toward the Neighbor)

 

4. 천국은 두 나라로 구분되어 있다 (Heaven Is Divided into Two Kingdoms)

 

5. 세 천국이 있다 (There Are Three Heavens)

 

6. 천국은 무수한 공동체들로 이루어져 있다 (The Heavens Consist of Innumerable Societies)

 

7. 각 공동체는 더 작은 천국이며, 각 천사는 가장 작은 천국이다 (Each Society Is a Heaven in a Smaller Form, and Each Angel in the Smallest Form)

 

8. 천국 전체는 사람의 형상을 이룬다 (All Heaven in the Aggregate Reflects a Single Man)

 

9. 천국의 각 공동체는 한 사람으로 보인다 (Each Society in Heaven Reflects a Single Man)

 

10. 천사는 완전한 사람 형태로 있다 (Therefore Every Angel Is in a Complete Human Form)

 

11. 천국이 사람 모습임은 주의 신적 인성에서 비롯된다 (It Is from the Lord’s Divine Human That Heaven as a Whole and in Part Reflects Man. Extracts from Arcana Coelestia relating to the Lord and His Divine Human)

 

12. 천국의 모든 것과 사람의 모든 것은 상응한다 (There Is a Correspondence of All Things of Heaven with All Things of Man)

 

13. 천국은 지상의 모든 것과 상응한다 (There Is a Correspondence of Heaven with All Things of the Earth)

 

33. 천국과 인류는 결합되어 있다 (The Conjunction of Heaven with the Human Race)

 

등의 내용들, 그리고 악한 영들이 자기 위장 근처로 오니 우울증이 시작되다가 떠나니 회복되는 걸 보고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이런 여러 증상의 원인을 알게 되었다는 그의 진술,

 

또 사람은 그 내면에 두 개의 창이 있는데, 하나는 천국을, 하나는 지옥을 향한 창이 있어 어느 한 쪽이 열리면 다른 쪽은 닫히게 되어 한 쪽의 것만 흘러들어올 수 있다는 것과, 이 창문을 열고 닫는 건 본인의 선택이라는 것, 마치 창문 밖 햇볕이 아무리 따스하고 환해도 정작 본인이 커튼을 쳐버리면 방안으로 못 들어오는 것과 같다는 것,

 

천국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는 건데, 그런 거처럼 지상의 사람도 천국, 곧 주님을 향함으로써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며, 그래야 천국을 향한 창이 열려 천국의 모든 좋은 것과 능력이 내 안으로 흘러들어와 비로소 내가 그걸 누릴 수 있게 된다는 것, 그래서 사람의 내면이 열리지 않으면, 즉 사람이 천국을 향하지 않으면, 아무리 누가 기도를 해 주거나, 안수해 주거나 예언 기도, 치유 기도, 무슨 기도, 무슨 기도를 한들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

 

그래서 저는 영육 간에 무슨 연약함이나 비정상이 시작될 때, 의도적, 의식적으로 천국하고의 연결을 생각합니다. 만일 몸 특정 부위의 연약함, 아픔이 시작되면, 의식적으로 천국 해당 공동체들하고의 연결을 생각하고, 주님이 해당 공동체들을 통해 제게 그 인플럭스(influx, 入流)를 더욱 흘려보내 주시기를 구합니다. 저는 제 온 몸이 늘 천국과 상응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의식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인플럭스란 주님으로부터 나와 피조세계에 더하여지는 어떤 영원한 영적 흐름인데요, 그러면 대부분은 상태가 호전되며, 정상으로 돌아옵니다. 영육 간에 말입니다.

 

제 생각에는 이것이 복음서에 나오는 수많은 치유의 원리가 아닌가 하는데요, 늘 군중에 둘러싸이셨지만 정작 주님의 능력을 경험한 사람들은 소수였는데, 그 소수만 그 내면이 열려, 아니 정확히는 ‘열어’ 주님의 능력, 곧 치유하시는 인플럭스가 자기 안에 흘러들어오도록, 즉 심령의 커튼을 확 열어젖힌 사람들이었던 것이지요.

 

‘믿습니다!’, ‘주여!!!’ 소리소리 지르더라도 이 원리를 모르고 애를 쓰는 사람한테는 대부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걸 봅니다. 이 자기 내면을 여는 거, 곧 내면의 창문을 여는 건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야, 천국을 사랑하고 지상의 삶, 겉 지향적이고 세속적 가치관으로부터 물러날 줄 아는 사람이라야만 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래는 스베덴보리 저, '계시록 해설'(Apocalypse Explained) 815번 글 5번 항에 나오는 내용으로, 이는 계시록 13장 11절,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어린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을 하더라'를 속뜻으로 주석한 내용 일부입니다.

 

주님께서 치유하신 모든 자연적 질병들은 그것에 상응하는 영적 질병들을 의미한다. 영적 질병은 오직 주님에 의해서만 치유될 수 있다. 즉 주님의 신적 전능함을 바라보는 일과 삶의 회개를 통해서만 치유될 수 있다. (계시록 해설 815:5, 이순철 역) all the diseases healed by the Lord represented and thus signified the spiritual diseases that correspond to these natural diseases; and spiritual diseases can be healed only by the Lord, and in fact by looking to His Divine omnipotence and by repentance of life. (AE.815.5)

 

즉, '주님의 신적 전능함을 바라보는 일과 삶의 회개', 이럴 수 있는 사람이 곧 위에서 말씀드린, '자기 내면을 여는 사람, 곧 내면의 창문을 여는 사람,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 천국을 사랑하고 지상의 삶, 겉 지향적이고 세속적 가치관으로부터 물러날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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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256, 창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AC.250-260) - ''의 속뜻

 

15절,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And I will put enmity between thee and the woman, and between thy seed and her seed; he shall trample upon thy head, and thou shalt bruise his heel.

 

256

신앙뿐 아니라 주님 자신도 ‘여자의 후손(the seed of the woman)이라 하는 이유는, 주님은 홀로 신앙을 주는 분이시며, 그래서 주님이 곧 신앙이시기 때문이고, 또 주님은 사람으로 태어나 교회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기뻐하셨기 때문인데, 다만 이 교회는 자아 사랑과 세상 사랑의 결과, 아주 끔찍한, 지옥과도 같은 오운(own)으로 완전히 굴러떨어진 그런 교회였는데도 말입니다. 주님이 이렇게 하신 이유는, 주님의 신적 천적 오운과 주님의 휴먼 에센스에 있어서의 오운을 주님의 신적 권능으로 결합, 자기 안에서 하나 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이런 하나 됨이 실현되지 않았더라면 이 모든 피조 세계는 완전히 소멸될 뻔하였습니다. Not only is faith but also the Lord himself is called the “seed of the woman,” both because he alone gives faith, and thus is faith, and because he was pleased to be born, and that into such a church as had altogether fallen into an infernal and diabolical own through the love of self and of the world, in order that by his Divine power he might unite the Divine celestial own with the human own in his human essence, so that in him they might be a one; and unless this union had been effected, the whole world must have utterly perished.

 

※ 부분적으로는 주님의 인성이 신적 인성(The Divine Human)이 되셔야만 했던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태생적 인성은 어머니 마리아를 통한, 악을 유전한 인성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벗고 전혀 새로운 신적 인성이 되셔야만 하셨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내용으로서 나중에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런 사유로, 주님은 여자의 후손이시기 때문에, 그래서 ‘그것(it)이 아닌, ‘(he)라 하신 것입니다. Because the Lord is thus the seed of the woman, it is not said “it,” but “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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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255, 창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AC.250-260) - '여자의 후손'의 속뜻

 

15절,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And I will put enmity between thee and the woman, and between thy seed and her seed; he shall trample upon thy head, and thou shalt bruise his heel.

 

255

여자의 후손(the seed of the woman)이 주님 신앙을 의미한다는 건, ‘여자’가 교회를 의미하며, 그 ‘후손(seed)은 신앙 말고는 없다는 점에서 분명한데요, 교회를 교회라 하는 건 주님 신앙으로 말미암기 때문입니다. 말라기에 보면, 신앙을 경건한 자손(the seed of God)이라 하고 있습니다. That the “seed of the woman” signifies faith in the Lord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woman” as being the church, whose “seed” is nothing but faith, for it is from faith in the Lord that the church is called the church. In Malachi, faith is called the “seed of God”:

 

14너희는 이르기를 어찌 됨이니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와 네가 어려서 맞이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증인이 되시기 때문이라 그는 네 짝이요 너와 서약한 아내로되 네가 그에게 거짓을 행하였도다 15그에게는 영이 충만하였으나 오직 하나를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만드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맞이한 아내에게 거짓을 행하지 말지니라 (말2:14-15) Jehovah hath witnessed between thee and the wife of thy youth; and not one hath done so who had a residue of the spirit; and wherefore one, seeking the seed of God? But observe ye in your spirit, lest he deal treacherously against the wife of thy youth. (Mal. 2:14–15)

 

이 구절에서, ‘어려서 맞이한 아내(the wife of youth)는 고대 및 태고 교회들이며, 그 ‘후손’(seed, 혹은 신앙)에 대하여 선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역시, 교회와 관련하여 In this passage the “wife of youth” is the ancient and most ancient churches, of whose “seed” (or faith) the prophet speaks. In Isaiah also, in reference to the church: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 (사44:3) I will pour waters upon the thirsty, and floods upon the dry [land]; I will pour my spirit upon thy seed, and my blessing upon thine offspring. (Isa. 44:3)

 

계시록에서는 In Revelation: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계12:17) The dragon was wroth with the woman, and went to make war with the remnant of her seed, who were keeping the commandments of God, and have the testimony of Jesus Christ. (Rev. 12:17)

 

그리고 시편에서는 And in David:

 

3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내가 택한 자와 언약을 맺으며 내 종 다윗에게 맹세하기를 4내가 네 자손을 영원히 견고히 하며 네 왕위를 대대에 세우리라 하셨나이다, 29또 그의 후손을 영구하게 하여 그의 왕위를 하늘의 날과 같게 하리로다, 36그의 후손이 장구하고 그의 왕위는 해 같이 내 앞에 항상 있으며 (시89:3-4, 29, 36) I have made a covenant with mine elect, I have sworn unto David my servant, even to eternity will I establish thy seed, and his seed will I make to endure forever, and his throne as the days of the heavens; his seed shall endure to eternity, and his throne as the sun before me, (Ps. 89:3–4, 29, 36)

 

여기서 ‘다윗’은 주님을, ‘왕위’는 주님의 나라를, ‘’는 사랑을, ‘자손’은 신앙을 의미합니다. where by “David” is meant the Lord; by “throne,” his kingdom; by the “sun,” love; and by “seed,”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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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254, 창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AC.250-260) - '네 후손'의 속뜻

 

15절,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And I will put enmity between thee and the woman, and between thy seed and her seed; he shall trample upon thy head, and thou shalt bruise his heel.

 

254

네 후손(the seed of the serpent)이 모든 부정(不貞, infidelity)을 의미한다는 건, ‘’이 모든 악을 상징한다는 걸로 분명한데요, ‘’라는 것이 열매 관련, 또는 출산과 관련된다는 점과,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내용이 교회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게 바로 부정입니다. 이사야에서는 도착(倒錯)된 상태의 유대교회를 가리켜 행악의 종자(a seed of evil doers), ‘간음자와 음녀의 자식들(a seed of adultery), ‘거짓의 후손(a seed of falsehood)이라 하고 있습니다. That by the “seed of the serpent” is meant all infidelity,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a “serpent,” as being all evil; “seed” is that which produces and is produced, or that which begets and is begotten; and as the church is here spoken of, this is infidelity. In Isaiah, in reference to the Jewish church in its perverted state, it is called a “seed of evil doers,” a “seed of adultery,” a “seed of falsehood”: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사1:4) Woe to the sinful nation, a people laden with iniquity, a seed of evil doers, sons that are destroyers; they have forsaken Jehovah, they have provoked the holy one of Israel, they have estranged themselves backward. (Isa. 1:4)

 

3무당의 자식, 간음자와 음녀의 자식들아 너희는 가까이 오라 4너희가 누구를 희롱하느냐 누구를 향하여 입을 크게 벌리며 혀를 내미느냐 너희는 패역의 자식, 거짓의 후손이 아니냐 5너희가 상수리나무 사이,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음욕을 피우며 골짜기 가운데 바위 틈에서 자녀를 도살하는도다 (사57:3-5) Draw near hither, ye sons of the sorceress, the seed of the adulterer. Are ye not children of transgression, a seed of falsehood? (Isa. 57:3–5)

 

그리고 다시 거기 루시퍼(Lucifer, 계명성, 12절에 나오는)라 하는 ‘’ 또는 ‘’에 대해 말하면서 And again, speaking of the “serpent” or “dragon,” who is there called Lucifer:

 

19오직 너는 자기 무덤에서 내쫓겼으니 가증한 나뭇가지 같고 칼에 찔려 돌구덩이에 떨어진 주검들에 둘러싸였으니 밟힌 시체와 같도다 20네가 네 땅을 망하게 하였고 네 백성을 죽였으므로 그들과 함께 안장되지 못하나니 악을 행하는 자들의 후손은 영원히 이름이 불려지지 아니하리로다 할지니라 (사14:19-20) Thou art cast out of thy sepulcher like an abominable shoot, because thou hast corrupted thy land, thou hast slain thy people; the seed of evildoers shall not be called to eternity. (Isa. 14: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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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253, 창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AC.250-260) - '여자'의 속뜻, 말씀의 여러 예

 

15절,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And I will put enmity between thee and the woman, and between thy seed and her seed; he shall trample upon thy head, and thou shalt bruise his heel.

 

253

교회를 일컬어 ‘여자(a woman)이며, 또한 ‘아내(a wife), ‘신부(a bride), ‘처녀(a virgin), 그리고 ‘(a daughter)이라 하는 건 일종의 천국적, 천사적 오운으로 말미암음인데요, 계시록에서는 여자라고 합니다. It is by virtue of a heavenly and angelic own that the church is called a “woman,” and also a “wife,” a “bride,” a “virgin,” and a “daughter.” She is called a “woman” in Revelation:

 

1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썼더라, 4그 꼬리가 하늘의 별 삼 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5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13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하는지라 (계12:1, 4-5, 13) A woman clothed with the sun, and the moon under her feet, and upon her head a crown of twelve stars. And the dragon persecuted the woman who brought forth the man child. (Rev. 12:1, 4–5, 13)

 

이 구절에서 ‘여자’는 교회를, ‘(the sun)는 사랑을, ‘’은 신앙을, ‘별들’은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신앙의 진리들, 곧 악한 영들이 극도로 싫어하여 박해하는 모든 것입니다. 이사야에서도 교회를 일컬어 여자라고도 하고, ‘아내라고도 합니다. In this passage by a “woman” is meant the church; by the “sun,” love; by the “moon,” faith; by “stars,” as before, the truths of faith, all of which evil spirits hate, and persecute to the utmost. The church is called a “woman,” and also a “wife,” in Isaiah:

 

5이는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 그는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실 것이라 6여호와께서 너를 부르시되 마치 버림을 받아 마음에 근심하는 아내 곧 어릴 때에 아내가 되었다가 버림을 받은 자에게 함과 같이 하실 것임이라 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사54:5-6) Thy maker is thy husband, Jehovah of armies is his name, and thy redeemer the holy one of Israel, the God of the whole earth is he called; for as a woman forsaken and afflicted in spirit hath Jehovah called thee, and as a wife of youth [adolescentiarum], (Isa. 54:5–6)

 

지으신 이(the maker)를 또한 ‘남편’이라고도 하는데요, 그 이유는 그 오운(own)과 하나 되었기 때문입니다. ‘버림받은 여자(a woman forsaken), ‘어린 아내(a wife of youth)는 특별히 고대교회와 태고교회를 상징합니다. 마찬가지로 말라기에서도 where the “maker” is called also the “husband,” because united to the own; and a “woman forsaken” and a “wife of youth” signify specifically the ancient and most ancient churches. Likewise in Malachi:

 

너희는 이르기를 어찌 됨이니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와 네가 어려서 맞이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증인이 되시기 때문이라 그는 네 짝이요 너와 서약한 아내로되 네가 그에게 거짓을 행하였도다 (말2:14) Jehovah hath borne witness between thee and the wife of thy youth. (Mal. 2:14)

 

계시록에 보면, 이 여자, 곧 교회를 ‘아내’, 그리고 ‘신부’라고 합니다. She is called a “wife” and a “bride” in the Revelation:

 

2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9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계21:2, 9) I saw the holy city new Jerusalem coming down from God out of heaven, prepared as a bride adorned for her husband: come hither, I will show thee the bride, the lamb’s wife. (Rev. 21:2, 9)

 

여러 선지서들에서도 교회를 일컬어 ‘처녀’, 그리고 ‘’이라 하고 있습니다. The church is called a “virgin” and a “daughter” throughout the prophe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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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252, 창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AC.250-260) - '여자'의 속뜻

 

15절,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And I will put enmity between thee and the woman, and between thy seed and her seed; he shall trample upon thy head, and thou shalt bruise his heel.

 

252

여자’가 교회를 의미한다는 건 위(155) 천국 결혼을 다룬 글을 보면 분명합니다. 천국이, 결과적으로는 교회가 주님과 그 오운(own)에 있어 주님도, 교회도 자신들의 오운 안에 있는 만큼 하나 되는 것, 이런 것이 바로 천국 결혼의 본성입니다. 오운 없이 무슨 하나 됨이라는 건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주님이 자비로 이노센스(innocence)와 평화, 그리고 선을 이 오운 안으로 스며들게 하실 때, 오운은 자신의 아이덴티티(identity)를 여전히 유지하면서도, 천국적이면서 가장 행복한 상태가 됩니다. 164 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주님으로 말미암은 천국적, 천사적 오운의 퀄리티(quality), 자아로 말미암은 지옥적, 악마적 오운의 퀄리티는 설명이 불가능한데요, 그 차이는 천국과 지옥 같은 차이이기 때문입니다. That by the “woman” is meant the church, is evident from what was said above (n. 155) concerning the heavenly marriage. Such is the nature of the heavenly marriage, that heaven, and consequently the church, is united to the Lord by its own, insomuch that these are in their own, for without their own there can be no union. When the Lord in mercy instills innocence, peace, and good into this own, it still retains its identity, but becomes heavenly and most happy (as may be seen at n. 164). The quality of a heavenly and angelic own from the Lord, and the quality of an own, which, because from self, is infernal and diabolical, cannot be told. The difference is like that between heaven and h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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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251, 창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AC.250-260) - ''의 속뜻

 

15절,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And I will put enmity between thee and the woman, and between thy seed and her seed; he shall trample upon thy head, and thou shalt bruise his heel.

 

251

’의 속뜻이 일반적으로는 모든 악, 구체적으로는 자기 사랑(the love of self)인 이유는, 모든 악이 마음의 감각 파트로부터, 그리고 또 처음에 ’으로 상징된, 그리고 여기서 모든 종류의 악, 특별히 자기 사랑, 혹은 같은 거지만, 이웃과 주님을 향한 증오를 가리키는 기억-지식으로부터 일어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이 악이나 증오는 다양하며, 수많은 속(, genera)과 더욱 수많은 종(, species)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말씀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뱀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snakes, 23:33), ‘독사’(cockatrices, 8:17), ‘독사’(asps, 32:33), ‘독사’(adders, 140:3), ‘불뱀’(fiery serpents, 21:6), 날으는 뱀’(serpents that fly), 그리고 기는 뱀’(serpents that creep) 및 ‘독사’(vipers, 23:33)인데요, , 곧 증오 차이에 따른 겁니다. 그래서 이사야에 보면은, The reason why the “serpent” means all evil in general, and specifically the love of self, is that all evil has had its rise from that sensuous part of the mind and also from that memory-knowledge which at first were signified by the “serpent”; and therefore it here denotes evil of every kind, and specifically the love of self, or hatred against the neighbor and the Lord, which is the same thing. As this evil or hatred was various, consisting of numerous genera and still more numerous species, it is described in the Word by various kinds of serpents, as “snakes,” “cockatrices,” “asps,” “adders,” “fiery serpents,” “serpents that fly” and “that creep,” and “vipers,” according to the differences of the poison, which is hatred. Thus we read in Isaiah:

 

블레셋 온 땅이여 너를 치던 막대기가 부러졌다고 기뻐하지 말라 뱀의 뿌리에서는 독사가 나겠고 그의 열매는 날아다니는 불뱀이 되리라 (사14:29) Rejoice not thou, whole Philistia, because the rod which smiteth thee is broken, for out of the serpent’s root shall go forth a cockatrice, and his fruit shall be a flying fire serpent. (Isa. 14:29)

 

뱀의 뿌리(The serpent’s root) 감각과 기억-지식에 연결된 마음의 해당 파트나 원리를, '독사'(the cockatrice)는 악과 거기서 유래된 거짓을, ‘날아다니는 불뱀’(the flying fire serpent)은 자아 사랑에서 나오는 탐욕을 의미합니다. 유사한 내용이 같은 선지서 또 다른 곳에도 나옵니다. The “serpent’s root” denotes that part of the mind, or that principle, which is connected with the senses and with memory-knowledge; the “cockatrice” denotes evil originating in the falsity thence derived; and the “flying fire serpent,” the cupidity that comes from the love of self. By the same prophet also similar things are elsewhere thus described:

 

독사의 알을 품으며 거미줄을 짜나니 그 알을 먹는 자는 죽을 것이요 그 알이 밟힌즉 터져서 독사가 나올 것이니라 (사59:5) They hatch cockatrice’s eggs, and weave the spider’s web; he that eateth of their eggs dieth, and when it is crushed there cometh out a viper. (Isa. 59:5)

 

여기 창세기에 나오는 뱀을 계시록에서는 ‘큰 붉은 용’(the great and red dragon), ‘옛 뱀’(the old serpent), ‘마귀, 사탄’(the devil and satan), ‘온 천하를 꾀는 자’(deceives the whole world)(12:3, 9; 20:2)라 하고 있는데요, 또 다른 구절들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여기 나오는 ‘마귀’는 그 무슨 우두머리 노릇을 하는 특별한 마귀를 말하는 게 아니라, 악한 영들의 무리 전체를, 그리고 악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The serpent described here in Genesis is called in the Revelation the “great and red dragon,” and the “old serpent,” and also the “devil and satan,” that “deceives the whole world” (12:3, 9; 20:2), where, and also in other places, by the “devil” is not meant any particular devil who is prince over the others, but the whole crew of evil spirits, and evil itself.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는데 (계12:3)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계12:9)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계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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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250, 창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AC.250-260) - 창3:15의 속뜻 개요

 

15절,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And I will put enmity between thee and the woman, and between thy seed and her seed; he shall trample upon thy head, and thou shalt bruise his he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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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절이 주님 강림(降臨)에 관한 첫 번째 예언인 걸 모든 사람이 알고 있습니다. 이 워딩 자체를 보면 정말 그런 것처럼 보이며, 그래서 이 워딩과, 또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심지어 유대인들조차 어떤 메시아라는 분이 한 분 오시는 걸로 알고들 있었는데요, 그러나 지금까지 여기 나오는 (the serpent), ‘여자(the woman), ‘뱀의 후손(the serpent’s seed), ‘여자의 후손(the woman’s seed),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the head of the serpent which was to be trodden upon),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the heel which the serpent should bruise)가 특별히 뭘 의미하는지를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래서 일단은 이 표현들의 속뜻부터 설명드려야만 하겠습니다. 여기서 은 일반적으로는 모든 악을, 구체적으로는 자아 사랑을 의미합니다. ‘여자는 교회를 의미하며, ‘뱀의 후손은 모든 부정(不貞, infidelity), ‘여자의 후손은 주님 신앙을, ‘는 주님 자신을, ‘뱀의 머리는 일반적으로는 악이 우세함을, 구체적으로는 자아 사랑이 우세함을, ‘상하게 하다(to trample upon)는 암울함의 결과, 배로 다니고 흙을 먹게’ 될, ‘발꿈치는 자연적으로 가장 낮은 거, 육(肉) 같은, 곧 뱀이 상하게 할 걸 의미합니다. Everyone is aware that this is the first prophecy of the Lord’s advent into the world; it appears indeed clearly from the words themselves, and therefore from them and from the prophets even the Jews knew that a messiah was to come. Hitherto however no one has understood what is specifically meant by the “serpent,” the “woman,” the “serpent’s seed,” the “woman’s seed,” the “head of the serpent which was to be trodden upon,” and the “heel which the serpent should bruise.” They must therefore be explained. By the “serpent” is here meant all evil in general, and specifically the love of self; by the “woman” is meant the church; by the “seed of the serpent,” all infidelity; by the “seed of the woman,” faith in the Lord; by “he,” the Lord himself; by the “head of the serpent,” the dominion of evil in general, and specifically that of the love of self; by to “trample upon,” depression, so that it should “go upon the belly and eat dust”; and by the “heel,” the lowest natural (as the corporeal), which the serpent should “bruise.”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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