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363, 창4:7,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AC.361-365) - 낯을 들다의 속뜻, 체어리티가 있다

 

7절,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If thou doest well, art thou not exalted? And if thou doest not well, sin lieth at the door; and to thee is his desire, and thou rulest over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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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이라 부르는 신앙의 교리의 본성을 본 절 그 부분 설명을 보면 알 수 있는데요, 거기 보면 체어리티는 신앙이 아닌 체어리티가 주(主, the dominion)가 되기 위해서라면 신앙과 조인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가 먼저 언급되는 것입니다. 네가 선을 행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체어리티의 사람일 수 있다는 뜻으로 말이지요. ‘선을 행하다의 속뜻이 기꺼이 선을 행하고자 함이기 때문인데요, 선한 일을 행함은 기꺼이 선한 일을 의도함에서 오기 때문입니다. 고대에는 행위와 의지는 하나였습니다. 어떤 행위를 보면 그 의지를 알 수 있었지요. 그때는 위선이 뭔지도 몰랐습니다. 낯을 들다가 체어리티가 있다임은 얼굴에 대해 이미 드린 말씀을 보시면 분명한데요, 거기 보시면 낯을 들다는 체어리티가 있음을, 그리고 낯을 떨구다는 그 반대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The nature of the doctrine of faith that was called “Cain” is seen from the description of it in this verse, from which it appears that charity was capable of being joined to faith, but so that charity and not faith should have the dominion. On this account it is first said, “If thou doest well art thou not uplifted?” signifying, If thou art well disposed, charity may be present; for to “do well” signifies, in the internal sense, to be well disposed, since doing what is good comes from willing what is good. In ancient times action and will made a one; from the action they saw the will, dissimulation being then unknown. That an “uplifting” signifies that charity is present is evident from what has been already said about the face, that to “lift up the face” is to have charity, and that for the “face to fall” is the contrary.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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