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창2:11, 12)
AC.115
태고인들은 ‘땅들’(lands)에 관하여 말할 때 그것들이 뜻하는 바를 이해했습니다. 오늘날에도 가나안 땅과 시온산이 천국을 뜻한다는 관념을 가진 사람들은 이 장소들이 언급될 때 어떤 땅이나 산을 생각하기보다 그것들이 뜻하는 것만을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기서 ‘하윌라 땅’(land of Havilah)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윌라는 창25:18에 다시 언급되는데, 거기서 이스마엘의 아들들에 관하여 그들이 ‘하윌라에서부터 앗수르로 가는 길에 애굽 앞 술까지’(dwelt from Havilah even unto Shur, which is before Egypt, as thou goest toward Assyria) 거주했다고 합니다. When the most ancient people spoke of “lands,” they understood what was signified by them, just as those at the present day who have an idea that the land of Canaan and Mount Zion signify heaven, do not so much as think of any land or mountain when these places are mentioned, but only of the things which they signify. It is so here with the “land of Havilah,” which is mentioned again in Genesis 25:18, where it is said of the sons of Ishmael, that they “dwelt from Havilah even unto Shur, which is before Egypt, as thou goest toward Assyria.”
그 자손들은 하윌라에서부터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 술까지 이르러 그 모든 형제의 맞은편에 거주하였더라 (창25:18)
천국적인 관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 말씀에서 지성과 지성에서 흘러나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퍼셉션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두르다’(compass)는, 비손 강이 ‘하윌라 온 땅을 두른다’(compasseth the whole land of Havilah)고 한 것처럼, 유입을 퍼셉션합니다. 또한 아론의 에봇 어깨에 있는 호마노가 금테로 둘러싸여 있는 것에서도(출28:11) 사랑의 선이 신앙의 진리 안으로 흘러들어야 한다는 것을 퍼셉션합니다. 이와 같은 예는 그 밖에도 많이 있습니다. Those who are in a heavenly idea perceive from these words nothing but intelligence, and what flows from intelligence. So by to “compass”—as where it is said that the river Pishon “compasseth the whole land of Havilah”—they perceive a flowing in; as also in the onyx stones on the shoulders of Aaron’s ephod being encompassed with ouches of gold (Exod. 28:11), they perceive that the good of love should inflow into the truth of faith. And so in many other instances.
보석을 새기는 자가 도장에 새김 같이 너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그 두 보석에 새겨 금 테에 물리고 (출28:11)
해설
AC.115는 AC.110에서 ‘하윌라 땅’이 마음을 뜻한다고 한 해석을 태고인들의 말씀 이해 방식과 연결하여 설명합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태고인들은 어떤 ‘땅’에 관하여 말할 때 단지 지리적인 장소만 생각한 것이 아니라 그 땅이 뜻하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그는 오늘날에도 가나안 땅이나 시온산을 천국과 연결하여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그 이름을 들을 때 물리적인 땅이나 산만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예를 듭니다. 즉 장소의 문자적 이미지 너머에 그 장소가 나타내는 영적인 관념이 함께 있었던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하윌라 땅’도 이와 같다고 합니다. 그리고 창25:18에서 이스마엘의 아들들이 ‘하윌라에서부터 앗수르로 가는 길에 애굽 앞 술까지’ 거주했다는 말씀을 인용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명들을 곧바로 하나씩 암호처럼 치환하는 것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천국적인 관념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 말씀에서 ‘지성과 지성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퍼셉션한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하윌라를 포함한 이 지리적 묘사는 천국적인 관념 안에서는 인간의 지성과 그로부터 이어지는 내적인 질서와 관계되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입니다.
이 설명은 태고인들의 퍼셉션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됩니다. 그들은 ‘하윌라 = 마음’이라는 대응표를 머릿속에서 찾아 문자에 대입했다는 식으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의 표현은 그들이 그 말씀에서 지성과 지성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퍼셉션한다’는 것입니다. 앞의 AC.104에서 퍼셉션을 무엇이 참되고 선한지에 관하여 오직 주님으로부터 오는 일종의 내적 감각이라고 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것은 단순한 상징 해독이나 지적인 연상과는 다릅니다. 말씀의 자연적인 표현 안에서 그것이 담고 있는 천적이고 영적인 것을 알아차리는 방식에 가깝습니다.
이어지는 ‘두르다’에 대한 설명은 창2:11의 움직임 자체에도 속뜻이 있음을 보여 줍니다. 비손 강이 하윌라 온 땅을 ‘두른다’는 말씀에서 천국적인 관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유입’을 퍼셉션한다고 합니다. 앞에서 비손은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의 지성을 뜻했고, 하윌라 땅은 마음을 뜻했습니다(AC.110). 따라서 비손이 하윌라 땅을 두르는 모습은 단순히 강이 어떤 지역의 경계를 따라 흐르는 지리적 장면을 넘어, 지성과 관계된 것이 마음 안으로 흘러드는 생명의 움직임을 나타냅니다. 에덴에서 강이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는 것으로 시작된 ‘흐름’의 이미지가 여기에서도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두름’의 의미를 아론의 에봇에 있는 호마노를 통하여 더욱 구체적으로 보여 줍니다. 출28:11에서 호마노는 금테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앞의 AC.113에서 금은 사랑의 선을 뜻했고, AC.114에서 호마노를 비롯한 보석들은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의 진리를 표상한다고 했습니다. 이제 AC.115는 금이 호마노를 둘러싼 그 모습을 ‘사랑의 선이 신앙의 진리 안으로 흘러들어야 한다’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선과 진리가 단지 나란히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선이 신앙의 진리 안으로 유입되어 그것을 살아 있게 하는 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 대목은 AC.110에서 처음에는 상당히 낯설었던 ‘사랑의 선’과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의 선’, ‘사랑의 진리’와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의 진리’라는 구별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을 줍니다. 스베덴보리는 사랑과 신앙, 선과 진리를 서로 분리된 네 가지 항목으로 늘어놓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에서 신앙이 나오고, 사랑의 선이 신앙의 진리 안으로 흘러들며, 그 결과 지혜와 지성과 선과 진리가 하나의 생명의 질서 안에서 서로 연결됩니다. 그러면서도 AC.111에서 보았듯이 각각의 것은 서로 구별됩니다. 하나 됨은 차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이 서로 구별되는 것들을 질서 있게 결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다시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유입’의 궁극적인 근원입니다. AC.112는 지혜와 지성, 선과 진리가 사랑과 신앙에서 나오며 ‘따라서 주님으로부터’ 나온다고 네 차례에 걸쳐 반복했습니다. 그러므로 AC.115의 ‘사랑의 선이 신앙의 진리 안으로 흘러든다’는 말도 인간 내부에서 독립적으로 일어나는 자기 발생적인 과정으로 읽을 수 없습니다. 에덴에서 강이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비손이 하윌라를 두르며, 금이 호마노를 둘러싸는 일련의 이미지들은 모두 생명이 주님으로부터 흘러와 인간 안의 서로 다른 것들을 살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결합하는 모습을 조금씩 다른 각도에서 보여 줍니다. (AC.115 해설)
AC.116, 창2:13, ‘기혼은 선과 진리에 속한 모든 것에 관한 앎을 뜻함’ (AC.116-117)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And the name of the second river is Gihon; the same is it that compasseth the whole land of Cush. (창2:13) AC.116‘둘째 강’(second river), 곧 ‘기혼’(Gihon)은 선과 진리,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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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4, 창2:11-12, ‘보석들은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의 진리들을 뜻하고 표상함’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창2:11, 12) AC.114신앙의 진리는 말씀에서 보석들(precious stones)에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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