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432 심화

2. ‘일흔일곱 배의 보복은 주님의 분노를 뜻하는가?’

 

창4:24에서 라멕은 가인을 위한 벌이 일곱 배라면 자신을 위한 벌은 일흔일곱 배라고 말합니다. 문자적으로 읽으면 가인보다 라멕에게 훨씬 더 큰 보복이 가해진다는 선언처럼 들립니다. 그래서 독자는 ‘주님께서 라멕에게 일흔일곱 배로 복수하신다는 뜻인가?’라는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AC.432는 이 표현을 ‘정죄’라고 풀이합니다. 이 짧은 설명을 이해하려면 문자적 표현과 스베덴보리가 밝히는 속뜻을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이번 번호는 일흔일곱이라는 수를 실제 형벌의 횟수나 배율로 계산하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는 그들이 가인이 나타내는 신앙을 소멸시키고, 신앙을 통해 태어나야 할 체어리티까지 소멸시켰으며, 그로 인해 정죄가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 정죄가 곧 ‘일흔일곱 배의 보복’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이번 번호에서 이 표현의 핵심은 정확한 수량이 아니라, 앞에서 설명한 신성모독과 그에 따른 정죄입니다.

 

또한 ‘보복’이라는 단어만을 근거로 주님께서 인간처럼 원한을 품고 복수하신다고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AC.432가 직접 밝히는 속뜻은 정죄입니다. 다만 이번 번호는 주님의 분노나 정죄의 작용에 관한 교리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보복’이라는 표현이 어떻게 사용되는지에 관한 더 넓은 설명은 관련 번호들을 함께 살펴야 합니다. 여기서는 스베덴보리가 보복을 정죄라고 풀이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붙드는 것이 우선입니다.

 

가인의 일곱 배와 라멕의 일흔일곱 배를 비교할 때에도 주의가 필요합니다. 앞의 AC.396에서는 가인의 표가 가인이 나타내는 신앙을 보존하는 일과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이번 번호에서는 라멕이 그 신앙을 소멸시켰을 뿐 아니라 체어리티까지 소멸시킨 상태를 설명합니다. 따라서 두 표현을 함께 읽으면 가인에게서 다룬 신앙의 문제와 라멕에게서 드러나는 신앙과 체어리티의 소멸 사이에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차이를 단순히 숫자만으로 계산하여 영적 상태의 정확한 크기를 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 말씀을 읽는 독자가 또 하나 조심해야 할 것은 ‘정죄’라는 표현을 곧바로 자신의 현재 상태에 적용하는 일입니다. 신앙에 관한 의문이 생기거나 체어리티를 실천하지 못한 일이 있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자신이 일흔일곱 배의 보복을 받는 상태라고 결론 내릴 수는 없습니다. 스베덴보리는 라멕이 나타내는 황폐와 신성모독의 상태를 풀이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신앙과 체어리티의 중요성을 일깨우지만, 각 개인의 최종적인 상태를 판단하도록 주어진 설명은 아닙니다.

 

결국 ‘일흔일곱 배의 보복’은 AC.432에서 신앙과 체어리티를 소멸시킨 데 따른 정죄를 나타냅니다. 이 표현을 실제 보복의 횟수로 계산하거나 주님의 인간적인 분노로 곧바로 이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는 라멕의 말이 가리키는 영적 상태를 밝히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신앙과 체어리티의 소멸이라는 문제가 놓여 있습니다. (AC.432 심화 2)

 

 

 

AC.432, 창4:24, ‘라멕의 일흔일곱 배 보복은 무엇을 뜻하는가?’ (AC.432-433)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If Cain shall be avenged sevenfold, truly Lamech seventy and sevenfold. (창4:24) AC.432 이 말씀은 그들이 ‘가인’(Cain)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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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32 심화 1, ‘신앙과 체어리티의 소멸은 왜 신성모독인가?’

AC.432 심화1. ‘신앙과 체어리티의 소멸은 왜 신성모독인가?’ AC.432를 처음 읽는 독자에게 가장 낯설게 다가올 수 있는 말은 ‘신성모독’입니다. 우리는 흔히 신성모독을 하나님을 욕하거나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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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창4:23)

 

AC.428

이 절과 다음 절의 내용에서 ‘라멕’(Lamech)이 황폐를 뜻한다는 사실이 매우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가 ‘한 사람을 죽였다’(slain a man)고 하고, ‘어린아이’(little child)를 죽였다고 하며, 가인은 일곱 배로 보복을 받겠지만 라멕은 ‘일흔일곱 배로’(seventy and sevenfold) 보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From the contents of this and the following verse, it is very evident that by “Lamech” is signified vastation; for he says that he had “slain a man,” and a “little child,” and that Cain should be avenged sevenfold, and Lamech “seventy and sevenfold.”

 

해설

AC.428은 앞의 AC.427에서 풀이한 라멕의 고백을 다음 절까지 연결하여, 라멕이 왜 ‘황폐’를 나타내는지 확인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번 번호에서 새로운 상응을 길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대신 라멕이 직접 한 말들을 근거로, 그가 나타내는 상태가 황폐라는 사실이 매우 분명하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이번 번호의 핵심은 창4:23의 ‘죽였다’는 표현과 창4:24의 ‘일흔일곱 배’라는 표현을 함께 읽는 데 있습니다.

 

앞의 AC.427에서 ‘한 사람을 죽였다’는 말은 신앙을 소멸시켰다는 뜻이었고, ‘어린아이’를 죽였다는 말은 체어리티를 소멸시켰다는 뜻이었습니다. 이번 번호는 이 두 표현을 다시 언급합니다. 라멕의 황폐는 단순히 신앙이 약해진 상태나 체어리티가 잠시 부족한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가 앞 번호에서 설명했듯이, 신앙과 체어리티가 소멸되고 더 이상 온전함이 남아 있지 않은 상태와 관련됩니다.

 

그런데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다음 절의 ‘가인은 일곱 배, 라멕은 일흔일곱 배’라는 말까지 함께 제시합니다. 창4:24는 가인에게 적용된 ‘일곱 배’와 라멕에게 적용된 ‘일흔일곱 배’를 대비합니다. 이 대비가 라멕의 황폐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는 것이 이번 번호의 설명입니다. 다만 AC.428 자체는 일곱과 일흔일곱의 속뜻을 아직 풀이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일흔일곱 배를 황폐의 정도를 나타내는 단순한 수치로 계산하거나, 가인보다 라멕이 정확히 열한 배 더 악하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보복’이라는 표현을 곧바로 주님께서 분노하여 가인이나 라멕에게 복수하신다는 뜻으로 이해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번 번호에서 스베덴보리는 보복의 성격을 설명하기보다, 라멕의 말에 등장하는 두 죽음과 두 수치의 대비를 통해 황폐의 의미를 확인합니다. 보복과 숫자의 속뜻은 다음 절에 관한 설명을 살피면서 판단해야 합니다.

 

이처럼 AC.428은 짧지만 앞뒤 번호를 연결하는 역할을 합니다. AC.427은 라멕이 죽였다고 말한 ‘사람’과 ‘어린아이’의 의미를 밝히고, AC.428은 그 말과 다음 절의 보복에 관한 선언을 함께 제시합니다. 따라서 이번 번호는 라멕의 황폐에 관한 설명을 마무리하는 동시에, 창4:24의 ‘일곱 배’와 ‘일흔일곱 배’에 관한 해설로 독자를 이끕니다.

 

결국 라멕이 황폐를 나타낸다는 사실은 그가 신앙과 체어리티를 소멸시켰다고 고백하는 말에서 드러나며, 다음 절에서 가인과 라멕의 보복을 대비하는 표현을 통해 더욱 분명해집니다. AC.428은 이 두 절을 하나의 문맥으로 읽게 하면서, 라멕의 상태를 이해하려면 신앙과 체어리티의 소멸뿐 아니라 이어지는 ‘일흔일곱 배’의 의미도 살펴야 함을 보여 줍니다. (AC.428 해설)

 

 

 

AC.429, 창4:23, 왜 ‘사람’은 신앙을, ‘어린아이’는 체어리티를 뜻하는가?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창4:23) 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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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27, 창4:23, ‘라멕은 왜 신앙과 체어리티를 소멸시켰다고 고백하는가?’ (AC.427-431)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And Lamech 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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