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창2:8)

 

AC.101

주님이 ‘동쪽’(east)이시라는 것은 말씀에서도 나타납니다. 에스겔에서는, That the Lord is the “east” also appears from the Word, as in Ezekiel:

 

1그 후에 그가 나를 데리고 문에 이르니 곧 동쪽을 향한 문이라 2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쪽에서부터 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소리 같고 땅은 그 영광으로 말미암아 빛나니, 4여호와의 영광이 동문을 통하여 성전으로 들어가고 (겔43:1-2, 4) He brought me to the gate, even the gate that looketh the way of the east, and behold the glory of the God of Israel came from the way of the east; and his voice was as the voice of many waters, and the earth shone with his glory (Ezek. 43:1–2, 4).

 

주님이 ‘동쪽’(east)이시기 때문에, 성전이 세워지기 전 표상적 유대교회에서는 기도할 때 얼굴을 동쪽으로 향하는 거룩한 관습이 있었습니다. It was in consequence of the Lord’s being the “east” that a holy custom prevailed in the representative Jewish church, before the building of the temple, of turning their faces toward the east when they prayed.

 

해설

AC.101은 AC.98에서 ‘동쪽’이 주님을 뜻한다고 한 것을 에스겔의 말씀으로 확인합니다. 에스겔의 환상에서 선지자는 ‘동쪽을 향한 문’으로 인도되고,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쪽에서부터’ 옵니다. 그리고 그 영광이 동문을 통하여 성전으로 들어갑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말씀에서 ‘동쪽’을 주님과 연결합니다.

 

이것은 AC.98의 ‘동쪽 에덴동산’이라는 표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합니다. ‘동산’이 지성이고 ‘에덴’이 사랑이라면, ‘동쪽’은 그 사랑과 지성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천적 인간의 지성은 자기 자신에게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흘러듭니다. 따라서 ‘동쪽’이 주님을 뜻한다는 것은 AC.98-99에서 계속 설명한 생명의 질서와 정확히 연결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어서 표상적 유대교회의 한 관습을 언급합니다. 성전이 세워지기 전에는 기도할 때 얼굴을 동쪽으로 향하는 거룩한 관습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방향 자체에 어떤 독립적인 거룩함이 있다는 뜻이 아니라, 그 방향이 주님을 표상했다는 점입니다. ‘동쪽’을 향한다는 외적인 행위는 그 표상 안에서 주님을 향하는 내적인 것을 나타냈습니다. 따라서 이 관습은 말씀 안의 ‘동쪽’과 예배의 표상이 서로 같은 중심, 곧 주님을 향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이렇게 AC.98-101의 흐름을 보면 ‘동쪽 에덴동산’의 세 요소가 하나씩 분명해집니다. ‘동산’은 지성이고, ‘에덴’은 사랑이며, ‘동쪽’은 주님입니다. 그러므로 이 표현 전체가 나타내는 것은 단순히 아름답고 지혜로운 인간의 상태가 아니라, 사랑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지성이 흘러드는 천적 인간의 생명의 질서입니다. (AC.101 해설)

 

 

 

AC.102, 창2:9, ‘나무는 퍼셉션, 생명나무는 사랑과 거기서 나오는 신앙’ (AC.102-106)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And out of the ground made Jehovah God to grow every tree desirable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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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00, 창2:8, ‘에덴은 사랑을, 동산은 지성을 뜻함을 보여 주는 이사야의 말씀’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창2:8) AC.100‘동산’(garden)이 지성을 뜻하고, ‘에덴’(Eden)이 사랑을 뜻한다는 것은 이사야에서도 나타납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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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창2:8)

 

AC.100

‘동산’(garden)이 지성을 뜻하고, ‘에덴’(Eden)이 사랑을 뜻한다는 것은 이사야에서도 나타납니다. That a “garden” signifies intelligence, and “Eden” love, appears also from Isaiah:

 

나 여호와가 시온의 모든 황폐한 곳들을 위로하여 그 사막을 에덴 같게, 그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에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 (사51:3) Jehovah will comfort Zion, he will comfort all her waste places, and he will make her wilderness like Eden, and her desert like the garden of Jehovah; joy and gladness shall be found therein, confession and the voice of singing (Isa. 51:3).

 

이 구절에서 ‘광야’(wilderness), ‘기쁨’(joy), ‘감사함’(confession)은 신앙의 천적인 것들, 곧 사랑에 관계되는 것들을 나타내는 표현들이며, ‘사막’(desert), ‘즐거움’(gladness), ‘노랫소리’(the voice of singing)는 신앙의 영적인 것들, 곧 이해에 속한 것들을 나타내는 표현들입니다. 앞의 것들은 ‘에덴’(Eden)에, 뒤의 것들은 ‘동산’(garden)에 관계됩니다. 이 선지서에서는 같은 것에 관하여 두 표현이 끊임없이 나타나는데, 하나는 천적인 것을, 다른 하나는 영적인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에덴에 있는 동산’(garden in Eden)이 더 나아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뒤의 10절에 관한 설명에서 볼 수 있습니다. In this passage, “wilderness,” “joy,” and “confession” are terms expressive of the celestial things of faith, or such as relate to love; but “desert,” “gladness,” and “the voice of singing,” of the spiritual things of faith, or such as belong to the understanding. The former have relation to “Eden,” the latter to “garden”; for with this prophet two expressions constantly occur concerning the same thing, one of which signifies celestial, and the other spiritual things. What is further signified by the “garden in Eden,” may be seen in what follows at verse 10.

 

해설

AC.100은 AC.98에서 밝힌 ‘동산’과 ‘에덴’의 뜻을 이사야의 말씀으로 확인합니다. 사51:3에는 황폐해진 시온을 여호와께서 회복하실 때 ‘그 광야를 에덴 같게, 그 사막을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신다고 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에덴’과 ‘동산’이 단순히 같은 아름다운 장소를 반복해서 표현한 말이 아니라, 서로 구별되면서도 함께 하나를 이루는 두 종류의 것을 나타낸다고 봅니다.

 

그는 먼저 ‘광야’, ‘기쁨’, ‘감사함’을 신앙의 천적인 것들, 곧 사랑에 관계되는 것들로 보고 이것들을 ‘에덴’과 연결합니다. 반면 ‘사막’, ‘즐거움’, ‘노랫소리’는 신앙의 영적인 것들, 곧 이해에 속한 것들로 보고 이것들을 ‘동산’과 연결합니다. 따라서 AC.98의 ‘에덴은 사랑, 동산은 지성’이라는 설명이 이사야의 병행 표현에서도 같은 질서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기서 ‘신앙의 천적인 것들’과 ‘신앙의 영적인 것들’을 서로 분리된 두 종류의 신앙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 번호가 직접 밝히는 구별은 앞의 것들이 사랑에 관계되고 뒤의 것들이 이해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AC.99에서 천적 인간에게 주님께서 사랑과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을 통하여 이해와 이성과 기억지식에 속한 것들 안으로 흘러드신다고 한 설명과도 이어집니다. 사랑과 이해는 서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질서 안에서 함께 있습니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스베덴보리가 이사야에서 ‘같은 것에 관하여 두 표현’이 끊임없이 나타난다고 말하는 점입니다. 그는 성경의 이러한 병행 표현을 단순한 문학적 반복으로만 읽지 않고, 한 표현은 천적인 것을, 다른 표현은 영적인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읽습니다. 따라서 ‘광야와 사막’, ‘기쁨과 즐거움’, ‘감사함과 노랫소리’, 그리고 ‘에덴과 동산’이라는 짝은 같은 말을 아무 뜻 없이 되풀이한 것이 아니라, 사랑에 관계되는 것과 이해에 속한 것이 함께 말씀 안에 나타나는 방식입니다.

 

 

다만 AC.100은 ‘에덴에 있는 동산’의 의미를 여기서 모두 설명하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 자신이 그 더 나아간 의미는 뒤의 10절에 관한 설명에서 보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에덴’은 사랑에, ‘동산’은 지성에 관계되며, 이 둘의 결합이 천적 인간의 생명의 질서를 나타낸다는 데까지 붙드는 것이 좋습니다. (AC.100 해설)  

심화

1. ‘왜 같은 것을 말하는 두 표현을 하나는 천적, 다른 하나는 영적이라고 하는가?’

 

AC.100에서 스베덴보리는 사51:3의 말씀을 매우 독특하게 읽습니다. ‘광야를 에덴 같게, 사막을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신다는 말씀에서 ‘광야’, ‘기쁨’, ‘감사함’은 신앙의 천적인 것들, 곧 사랑에 관계되는 것들을 나타내고, ‘사막’, ‘즐거움’, ‘노랫소리’는 신앙의 영적인 것들, 곧 이해에 속한 것들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사야에서는 같은 것에 관하여 두 표현이 끊임없이 나타나며, 그중 하나는 천적인 것을, 다른 하나는 영적인 것을 뜻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왜 같은 것을 말하는 두 표현에 서로 다른 속뜻이 있다고 보는 것일까요?

 

먼저 AC.100이 말하는 ‘같은 것에 관하여 두 표현’이라는 말을 ‘두 표현의 뜻이 완전히 동일하다’는 의미로 읽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두 표현은 하나의 주제를 함께 말하지만, 스베덴보리는 그 안에서 서로 구별되는 두 측면을 봅니다. 하나는 사랑에 관계되는 천적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해에 속한 영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에덴’과 ‘동산’도 서로 떨어진 두 주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의 질서 안에서 사랑과 지성을 각각 나타냅니다.

 

이것은 바로 앞의 AC.98-99에서 설명한 천적 인간의 질서와 연결됩니다. ‘에덴’은 사랑이고 ‘동산’은 지성이며, 천적 인간의 지성은 사랑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흘러듭니다. 따라서 사랑과 지성은 하나를 이루지만 그렇다고 서로 같은 것은 아닙니다. 사랑은 사랑이고 지성은 지성이며, 천적인 것과 영적인 것도 구별됩니다. 하나를 이루는 것 안에 이러한 구별이 있기 때문에, 말씀에서도 같은 하나의 주제를 말하면서 서로 다른 표현을 통하여 그 구별되는 측면들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 AC.100을 읽는 중요한 실마리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성경에 나오는 모든 병행 표현을 우리가 임의로 둘씩 짝지어 ‘첫째 표현은 천적, 둘째 표현은 영적’이라고 판정해서는 안 됩니다. AC.100에서 스베덴보리가 직접 말하는 것은 이사야에서 같은 것에 관하여 두 표현이 끊임없이 나타나며 그중 하나가 천적인 것을, 다른 하나가 영적인 것을 뜻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표현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는 실제 말씀의 문맥과 스베덴보리가 밝히는 속뜻을 따라 확인해야 합니다. 이것을 독자가 마음대로 적용할 수 있는 기계적인 해석 공식으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구별이 중요할까요? 그것은 말씀의 속뜻에서 사랑과 이해, 선과 진리, 천적인 것과 영적인 것이 서로 결합되어 있으면서도 구별되기 때문입니다. AC.100의 이사야 인용에서도 ‘광야’와 ‘사막’, ‘기쁨’과 ‘즐거움’, ‘감사함’과 ‘노랫소리’가 하나의 회복을 함께 묘사하지만, 스베덴보리는 그 안에서 사랑에 관계되는 것과 이해에 속한 것을 구별합니다. 그리고 앞의 것은 ‘에덴’에, 뒤의 것은 ‘동산’에 관계된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AC.100은 단순히 ‘에덴은 사랑, 동산은 지성’이라는 두 단어의 상응을 증명하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말씀에서 서로 나란히 놓인 표현들이 하나의 내용을 풍성하게 말하면서도 그 속에서는 천적인 것과 영적인 것, 사랑에 관계되는 것과 이해에 속한 것이 서로 구별되어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처음에는 이것이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여기서는 우선 스베덴보리가 말씀의 반복을 단순한 중복으로만 보지 않고 그 안의 구별과 결합을 함께 읽고 있다는 데까지 이해하면 충분합니다. 이후 AC에서 이러한 병행 표현들이 다시 나타날 때마다 실제 본문 안에서 그 원리가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하나씩 확인해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AC.100 심화 1)

 

 

 

 

AC.101, 창2:8, ‘동쪽은 주님을 뜻하며, 기도할 때 동쪽을 향한 표상적 관습’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창2:8) AC.101주님이 ‘동쪽’(east)이시라는 것은 말씀에서도 나타납니다. 에스겔에서는, That the Lord is the “e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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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99, 창2:8, ‘영적 인간에게 뒤집혀 있던 생명의 질서가 천적 인간에게서 회복됨’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창2:8) AC.99영적 인간에게서 생명, 곧 생명의 질서는 이러합니다. 주님께서는 신앙을 통하여 그의 이해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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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창2:8)

 

AC.99

영적 인간에게서 생명, 곧 생명의 질서는 이러합니다. 주님께서는 신앙을 통하여 그의 이해와 이성과 기억지식에 속한 것들[intellectualia, rationalia, et scientifica] 안으로 흘러드시지만, 그의 겉 사람이 속 사람과 싸우기 때문에 지성이 주님으로부터 흘러드는 것이 아니라 마치 사람 자신에게서 기억지식과 이성을 통하여[per scientifica et rationalia] 나오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천적 인간의 생명, 곧 생명의 질서는 이러합니다. 주님께서는 사랑과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을 통하여 그의 이해와 이성과 기억지식에 속한 것들 안으로 흘러드시며, 속 사람과 겉 사람 사이에 싸움이 없으므로 그는 실제로 그러하다는 것을 퍼셉션합니다. 이와 같이 지금까지 영적 인간에게서 뒤집혀 있던 질서가 이제 천적 인간에게서 회복된 것으로 묘사되며, 이 질서, 곧 이 사람을 ‘동쪽 에덴에 있는 동산’(garden in Eden in the east)이라 합니다. 가장 높은 뜻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동쪽 에덴에 심으신 동산’(garden planted by Jehovah God in Eden in the east)은 주님 자신입니다. 가장 내적인 뜻, 곧 보편적인 뜻에서는 주님의 나라와, 사람이 천적 인간이 되었을 때 놓이는 천국입니다. 그때 사람의 상태는 천국의 천사들과 함께 있으며 마치 그들 가운데 하나인 것과 같습니다. 사람은 이 세상에 살면서 동시에 천국에도 있을 수 있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상태에서는 그의 모든 생각과 생각의 관념들, 심지어 그의 말과 행동까지도 열려 있으며, 참으로 주님으로부터 열려 있고, 그 안에 천적이고 영적인 것을 담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 하나하나 안에 주님의 생명이 있으며, 그 생명으로 말미암아 그는 퍼셉션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Life, or the order of life, with the spiritual man, is such that although the Lord flows in, through faith, into the things of his understanding, reason, and memory [in ejus intellectualia, rationalia, et scientifica], yet as his external man fights against his internal man, it appears as if intelligence did not flow in from the Lord, but from the man himself, through the things of memory and reason [per scientifica et rationalia]. But the life, or order of life, of the celestial man, is such that the Lord flows in through love and the faith of love into the things of his understanding, reason, and memory, and as there is no combat between the internal and the external man, he perceives that this is really so. Thus the order which up to this point had been inverted with the spiritual man is now described as restored with the celestial man, and this order, or man, is called a “garden in Eden in the east.” In the supreme sense, the “garden planted by Jehovah God in Eden in the east” is the Lord himself. In the inmost sense, which is also the universal sense, it is the Lord’s kingdom, and the heaven in which man is placed when he has become celestial. His state then is such that he is with the angels in heaven, and is as it were one among them; for man has been so created that while living in this world he may at the same time be in heaven. In this state all his thoughts and ideas of thoughts, and even his words and actions, are open, even from the Lord, and contain within them what is celestial and spiritual; for each one [of these] has the Lord’s life within it, which enables him to have perception.

 

해설

AC.99는 앞의 AC.98에서 ‘동쪽 에덴동산’이 사랑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흘러드는 천적 인간의 지성을 뜻한다고 한 이유를, 영적 인간과 천적 인간의 ‘생명의 질서’를 비교하여 설명합니다. 두 사람 모두 생명의 근원은 주님입니다. 차이는 주님께서 흘러드시느냐 아니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유입이 어떤 질서 안에서 이루어지며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퍼셉션하는가에 있습니다.

 

영적 인간에게도 주님께서는 신앙을 통하여 이해와 이성과 기억지식에 속한 것들 안으로 흘러드십니다. 그러나 이때에는 겉 사람이 아직 속 사람과 싸우고 있기 때문에 실제 질서가 그대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성이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자기 자신에게서 기억지식과 이성을 통하여 생겨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여기서 ‘뒤집혀 있던 질서’라는 말은 주님께서 실제로 유입하지 않으신다는 뜻이 아니라, 사람이 그 유입의 참된 질서를 그대로 퍼셉션하지 못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천적 인간에게서는 이 질서가 회복됩니다. 주님께서 사랑과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을 통하여 이해와 이성과 기억지식에 속한 것들 안으로 흘러드시고, 속 사람과 겉 사람 사이의 싸움도 그쳤기 때문에 사람은 자신의 지성과 생명이 실제로 어디에서 오는지를 퍼셉션합니다. 이것은 AC.91에서 겉 사람이 속 사람에게 순종하고 섬기기 시작하면 싸움이 그치고 평온이 뒤따른다고 한 것과도 연결됩니다. 천적 인간에게 이성과 기억지식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주님으로부터 사랑을 통하여 흘러드는 생명의 질서 안에 놓이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바로 이 회복된 질서, 더 정확히는 이러한 질서 안에 있는 사람을 ‘동쪽 에덴에 있는 동산’이라 합니다. 그리고 그 뜻을 한 사람의 거듭남에만 한정하지 않습니다. 가장 높은 뜻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이 동쪽 에덴에 심으신 동산’이 주님 자신이며, 가장 내적인 뜻이면서 동시에 보편적인 뜻에서는 주님의 나라와 천국을 뜻합니다. 천적 인간이 된 사람은 이 세상에 살면서도 천국의 천사들과 함께 있으며 마치 그들 가운데 하나인 것과 같은 상태에 놓입니다. 사람은 본래 이 세상에 살면서 동시에 천국에도 있을 수 있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부분은 그러한 사람의 삶 전체가 어떤 질서 안에 놓이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의 생각과 생각의 관념들뿐 아니라 말과 행동까지 열려 있으며, 그 안에는 천적이고 영적인 것이 들어 있습니다. 이것은 단지 그의 내면에 어떤 특별한 종교적 생각이 더해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가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그 모든 것 하나하나 안에 ‘주님의 생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생명으로 말미암아 천적 인간은 자신의 생명이 주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퍼셉션합니다. 따라서 ‘동쪽 에덴동산’은 아름다운 영적 상태를 가리키는 데서 그치지 않고, 주님으로부터 사랑을 통하여 생명이 흘러들고 그 질서가 사람의 이해와 이성, 기억지식, 생각과 말과 행동에까지 이어지는 천적 인간의 온전한 생명의 질서를 나타냅니다. (AC.99 해설)  

 

심화

1. 영적 인간에게서 생명의 질서가 ‘뒤집혀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AC.99 심화 1, 영적 인간에게서 생명의 질서가 ‘뒤집혀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AC.99 심화1. 영적 인간에게서 생명의 질서가 ‘뒤집혀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AC.99에서 스베덴보리는 영적 인간에게서 생명의 질서가 ‘뒤집혀 있다’고 말합니다. 이 표현은 처음 읽는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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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00, 창2:8, ‘에덴은 사랑을, 동산은 지성을 뜻함을 보여 주는 이사야의 말씀’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창2:8) AC.100‘동산’(garden)이 지성을 뜻하고, ‘에덴’(Eden)이 사랑을 뜻한다는 것은 이사야에서도 나타납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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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98, 창2:8, ‘동쪽 에덴동산, 사랑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흘러드는 천적 인간의 지성’ (AC.98-101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And Jehovah God planted a garden eastward in Eden, and there he put the man whom he had formed. (창2:8) AC.98‘동산’(garden)은 지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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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And Jehovah God planted a garden eastward in Eden, and there he put the man whom he had formed. (창2:8)

 

AC.98

‘동산’(garden)은 지성을 뜻하고, ‘에덴’(Eden)은 사랑을, ‘동쪽’(east)은 주님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동쪽 에덴동산’(garden of Eden eastward)은 천적 인간의 지성을 뜻하는데, 이 지성은 사랑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흘러듭니다. By a “garden” is signified intelligence; by “Eden,” love; by the “east,” the Lord; consequently by the “garden of Eden eastward” is signified the intelligence of the celestial man, which flows in from the Lord through love.

 

해설

AC.98은 창2:8의 ‘동쪽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라는 말씀을 이루는 세 표현, 곧 ‘동산’, ‘에덴’, ‘동쪽’의 속뜻을 먼저 밝힙니다. ‘동산’은 지성을, ‘에덴’은 사랑을, ‘동쪽’은 주님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를 하나로 모으면 ‘동쪽 에덴동산’은 천적 인간의 지성을 뜻합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지성의 근원과 질서입니다. 천적 인간의 지성은 그 사람 자신에게서 독립적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흘러듭니다.’ 앞에서 천적 인간은 신앙과 사랑이 하나를 이루되 사랑이 주된 것이 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AC.83). 따라서 여기서도 지성이 사랑과 분리되어 홀로 앞서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흘러드는 것으로 설명됩니다.

 

이 점은 앞의 AC.90-93에서 살펴본 질서와도 이어집니다. 천적 인간에게서 겉 사람은 속 사람에게 순종하고 섬기며, 속 사람으로부터 오는 생명과 평온을 받아 이성과 기억지식에 속한 것들을 산출합니다. 이제 ‘에덴동산’에서는 그 질서의 더 깊은 중심이 드러납니다. 천적 인간의 지성은 자기 자신의 지성을 독립적으로 세우는 데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주님에게서 오는 사랑을 통하여 생명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에덴동산’을 단순히 지성이 풍성한 상태라고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그 지성의 중심에는 ‘에덴’, 곧 사랑이 있고, 그 사랑의 근원에는 ‘동쪽’, 곧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에게서 사랑을 통하여 흘러드는 지성, 이것이 AC.98이 ‘동쪽 에덴동산’이라는 말씀 안에서 보여 주는 천적 인간의 질서입니다. (AC.98 해설)

 

 

 

AC.99, 창2:8, ‘영적 인간에게 뒤집혀 있던 생명의 질서가 천적 인간에게서 회복됨’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창2:8) AC.99영적 인간에게서 생명, 곧 생명의 질서는 이러합니다. 주님께서는 신앙을 통하여 그의 이해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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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97, 창2:7, '호흡과 숨이 생명을 뜻하는 이유, 태고교회의 퍼셉션'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창2:7) AC.97생명을 ‘숨을 내쉼’(breathing)과 ‘숨’(breath)으로 묘사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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