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99에서 스베덴보리는 영적 인간에게서 생명의 질서가 ‘뒤집혀있다’고 말합니다. 이 표현은 처음 읽는 독자에게 상당히 강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영적 인간 역시 주님에 의해 거듭나는 사람인데, 그의 생명의 질서가 뒤집혀 있다는 것은 그가 잘못된 상태에 있다는 뜻일까요? 더 나아가 천적 인간이 되기 전에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뜻일까요?
먼저 AC.99자체가 말하는 것을 정확히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영적 인간에게도 ‘주님께서신앙을통하여그의이해와이성과기억지식에속한것들안으로흘러드신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그러므로 ‘뒤집혀있다’는 것은 생명의 근원이 주님이 아니라 사람 자신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실제 생명의 근원은 영적 인간에게도 주님입니다. 문제는 그 생명이 흘러드는 실제 질서와 사람이 그것을 경험하고 퍼셉션하는 방식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데 있습니다.
영적 인간에게서는 겉 사람이 아직 속 사람과 싸웁니다. 이 때문에 실제로는 주님께서 신앙을 통하여 이해와 이성과 기억지식에 속한 것들 안으로 흘러드시는데도, 사람에게는 지성이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자기 자신에게서 기억지식과 이성을 통하여 나오는 것처럼 보입니다. 곧 ‘내가배우고,내가생각하고,내가추론하여이해하게되었다’는 방향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AC.99이 말하는 ‘뒤집힘’은 우선 이 질서와 관련하여 이해해야 합니다.
천적 인간에게서는 이 관계가 달라집니다. 주님께서 사랑과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을 통하여 이해와 이성과 기억지식에 속한 것들 안으로 흘러드시며, 속 사람과 겉 사람 사이의 싸움이 없으므로 그는 이것이 실제로 그러하다는 것을 퍼셉션합니다. 다시 말해 천적 인간은 이성과 기억지식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의 생명과 지성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그 질서대로 퍼셉션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영적 인간에게서 뒤집혀 있던 질서가 천적 인간에게서 ‘회복’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영적 인간과 천적 인간을 단순히 ‘잘못된사람’과 ‘올바른사람’, 또는 ‘낮은사람’과 ‘높은사람’으로 나누라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적어도 AC.99가 강조하는 차이는 주님의 유입 자체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닙니다. 둘 다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습니다. 다만 영적 인간에게서는 신앙이 앞서고 겉 사람과 속 사람 사이의 싸움이 아직 있기 때문에, 그 생명의 실제 근원이 사람 자신에게서 시작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천적 인간에게서는 사랑이 주된 것이 되고 싸움이 그치면서,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의 질서가 더 이상 거꾸로 보이지 않고 실제 그러한 것으로 퍼셉션됩니다.
따라서 ‘뒤집혀있다’는 표현 때문에 영적 인간의 신앙과 이성, 기억지식의 삶을 무가치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AC.99는 그것들 안에도 이미 주님께서 흘러들고 계신다고 말합니다. 다만 천적 인간에게서는 사랑이 주된 질서 안에서 그 유입의 근원이 더욱 직접적으로 퍼셉션됩니다. 바로 이 회복된 생명의 질서, 곧 주님으로부터 사랑을 통하여 지성이 흘러드는 사람을 스베덴보리는 ‘동쪽에덴에있는동산’이라 합니다. (AC.99심화1)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창2:8)
AC.99
영적인간에게서생명,곧생명의질서는이러합니다.주님께서는신앙을통하여그의이해와이성과기억지식에속한것들[intellectualia, rationalia, etscientifica]안으로흘러드시지만,그의겉사람이속사람과싸우기때문에지성이주님으로부터흘러드는것이아니라마치사람자신에게서기억지식과이성을통하여[perscientificaetrationalia]나오는것처럼보입니다.그러나천적인간의생명,곧생명의질서는이러합니다.주님께서는사랑과사랑에서나오는신앙을통하여그의이해와이성과기억지식에속한것들안으로흘러드시며,속사람과겉사람사이에싸움이없으므로그는실제로그러하다는것을퍼셉션합니다.이와같이지금까지영적인간에게서뒤집혀있던질서가이제천적인간에게서회복된것으로묘사되며,이질서,곧이사람을‘동쪽에덴에있는동산’(gardeninEdenintheeast)이라합니다. 가장높은뜻에서‘여호와하나님이동쪽에덴에심으신동산’(gardenplantedbyJehovahGodinEdenintheeast)은주님자신입니다.가장내적인뜻,곧보편적인뜻에서는주님의나라와,사람이천적인간이되었을때놓이는천국입니다.그때사람의상태는천국의천사들과함께있으며마치그들가운데하나인것과같습니다.사람은이세상에살면서동시에천국에도있을수있도록창조되었기때문입니다.이상태에서는그의모든생각과생각의관념들,심지어그의말과행동까지도열려있으며,참으로주님으로부터열려있고,그안에천적이고영적인것을담고있습니다.이모든것하나하나안에주님의생명이있으며,그생명으로말미암아그는퍼셉션을가질수있기때문입니다.Life,or the order of life,with the spiritual man,is such that although the Lord flows in,through faith,into the things of his understanding,reason,and memory[in ejus intellectualia,rationalia,et scientifica],yet as his external man fights against his internal man,it appears as if intelligence did not flow in from the Lord,but from the man himself,through the things of memory and reason[per scientifica et rationalia].But the life,or order of life,of the celestial man,is such that the Lord flows in through love and the faith of love into the things of his understanding,reason,and memory,and as there is no combat between the internal and the external man,he perceives that this is really so.Thus the order which up to this point had been inverted with the spiritual man is now described as restored with the celestial man,and this order,or man,is called a“gardeninEdenintheeast.”In the supreme sense,the“gardenplantedbyJehovahGodinEdenintheeast”is the Lord himself.In the inmost sense,which is also the universal sense,it is the Lord’s kingdom,and the heaven in which man is placed when he has become celestial.His state then is such that he is with the angels in heaven,and is as it were one among them;for man has been so created that while living in this world he may at the same time be in heaven.In this state all his thoughts and ideas of thoughts,and even his words and actions,are open,even from the Lord,and contain within them what is celestial and spiritual;for each one[of these]has the Lord’s life within it,which enables him to have perception.
해설
AC.99는 앞의 AC.98에서 ‘동쪽에덴동산’이 사랑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흘러드는 천적 인간의 지성을 뜻한다고 한 이유를, 영적 인간과 천적 인간의 ‘생명의질서’를 비교하여 설명합니다. 두 사람 모두 생명의 근원은 주님입니다. 차이는 주님께서 흘러드시느냐 아니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유입이 어떤 질서 안에서 이루어지며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퍼셉션하는가에 있습니다.
영적 인간에게도 주님께서는 신앙을 통하여 이해와 이성과 기억지식에 속한 것들 안으로 흘러드십니다. 그러나 이때에는 겉 사람이 아직 속 사람과 싸우고 있기 때문에 실제 질서가 그대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성이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자기 자신에게서 기억지식과 이성을 통하여 생겨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여기서 ‘뒤집혀있던질서’라는 말은 주님께서 실제로 유입하지 않으신다는 뜻이 아니라, 사람이 그 유입의 참된 질서를 그대로 퍼셉션하지 못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천적 인간에게서는 이 질서가 회복됩니다. 주님께서 사랑과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을 통하여 이해와 이성과 기억지식에 속한 것들 안으로 흘러드시고, 속 사람과 겉 사람 사이의 싸움도 그쳤기 때문에 사람은 자신의 지성과 생명이 실제로 어디에서 오는지를 퍼셉션합니다. 이것은 AC.91에서 겉 사람이 속 사람에게 순종하고 섬기기 시작하면 싸움이 그치고 평온이 뒤따른다고 한 것과도 연결됩니다. 천적 인간에게 이성과 기억지식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주님으로부터 사랑을 통하여 흘러드는 생명의 질서 안에 놓이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바로 이 회복된 질서, 더 정확히는 이러한 질서 안에 있는 사람을 ‘동쪽에덴에있는동산’이라 합니다. 그리고 그 뜻을 한 사람의 거듭남에만 한정하지 않습니다. 가장 높은 뜻에서는 ‘여호와하나님이동쪽에덴에심으신동산’이 주님 자신이며, 가장 내적인 뜻이면서 동시에 보편적인 뜻에서는 주님의 나라와 천국을 뜻합니다. 천적 인간이 된 사람은 이 세상에 살면서도 천국의 천사들과 함께 있으며 마치 그들 가운데 하나인 것과 같은 상태에 놓입니다. 사람은 본래 이 세상에 살면서 동시에 천국에도 있을 수 있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부분은 그러한 사람의 삶 전체가 어떤 질서 안에 놓이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의 생각과 생각의 관념들뿐 아니라 말과 행동까지 열려 있으며, 그 안에는 천적이고 영적인 것이 들어 있습니다. 이것은 단지 그의 내면에 어떤 특별한 종교적 생각이 더해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가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그 모든 것 하나하나 안에 ‘주님의생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생명으로 말미암아 천적 인간은 자신의 생명이 주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퍼셉션합니다. 따라서 ‘동쪽에덴동산’은 아름다운 영적 상태를 가리키는 데서 그치지 않고, 주님으로부터 사랑을 통하여 생명이 흘러들고 그 질서가 사람의 이해와 이성, 기억지식, 생각과 말과 행동에까지 이어지는 천적 인간의 온전한 생명의 질서를 나타냅니다. (AC.99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