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4:4)

 

AC.353

 

기름(fat) 천적인 자체를 상징하며, 이것 역시 주님께 속한 것입니다. 천적인 것은 사랑에 속한 모든 것입니다. 신앙 역시 사랑에서 비롯될 때에는 천적입니다. 체어리티는 천적인 것입니다. 체어리티의 모든 선도 천적인 것입니다. 모든 것은 희생 제사에서 여러 종류의 기름으로 표상되었는데, 구체적으로는 간을 덮는 기름 또는 간에 붙은 꺼풀, 콩팥 위의 기름, 내장을 덮는 기름과 내장 위의 기름으로 표상되었습니다. 이것들은 거룩한 것이었으며 제단 위에서 번제로 드려졌습니다. (29:13, 22; 3:3-4, 14; 4:8-9, 19, 26, 31, 35; 8:16, 25) Byfatis signified the celestial itself, which is also of the Lord. The celestial is all that which is of love. Faith also is celestial when it is from love. Charity is the celestial. All the good of charity is the celestial. All these were represented by the various kinds of fat in the sacrifices, and distinctively by that which covered the liver, or the caul; by the fat upon the kidneys; by the fat covering the intestines, and upon the intestines; which were holy, and were offered up as burnt offerings upon the altar. (Exod. 29:13, 22; Lev. 3:3, 4, 14; 4:89, 19, 26, 31, 35; 8:16, 25)

 

13내장에 덮인 모든 기름과 위에 있는 꺼풀과 콩팥과 위의 기름을 가져다가 제단 위에 불사르고, 22 너는 숫양의 기름과 기름진 꼬리와 그것의 내장에 덮인 기름과 위의 꺼풀과 콩팥과 그것들 위의 기름과 오른쪽 넓적다리를 가지라 이는 위임식의 숫양이라 (29:13, 22)

 

3그는 화목제의 제물 중에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4 콩팥과 위의 기름 허리 쪽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떼어낼 것이요, 14그는 그중에서 예물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3:3-4, 14)

 

8 속죄 제물이 수송아지의 모든 기름을 떼어낼지니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9 콩팥과 위의 기름 허리 쪽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떼어내되, 19그것의 기름은 떼어 제단 위에서 불사르되, 26 모든 기름은 화목제 제물의 기름 같이 제단 위에서 불사를지니 이같이 제사장이 범한 죄에 대하여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얻으리라, 31 모든 기름을 화목제물의 기름을 떼어낸 같이 떼어내 제단 위에서 불살라 여호와께 향기롭게 할지니 제사장이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받으리라, 35 모든 기름을 화목제 어린 양의 기름을 같이 내어 제단 여호와의 화제물 위에서 불사를지니 이같이 제사장이 그가 범한 죄에 대하여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받으리라 (4:8-9, 19, 26, 31, 35)

 

16 내장에 덮인 모든 기름과 꺼풀과 콩팥과 기름을 가져다가 모세가 제단 위에 불사르고, 25그가 기름과 기름진 꼬리와 내장에 덮인 모든 기름과 꺼풀과 콩팥과 기름과 오른쪽 뒷다리를 떼어내고 (8:16, 25)

 

그러므로 이것들을여호와께 향기로운 화제의 음식이라 했습니다. (3:14, 16) They were therefore called thebread of the offering by fire for a rest unto Jehovah.” (Lev. 3:14, 16)

 

14그는 그중에서 예물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16제사장은 그것을 제단 위에서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로 드리는 음식이요 향기로운 냄새라 모든 기름은 여호와의 것이니라 (3:14, 16)

 

같은 이유로 유대 백성은 짐승의 어떤 기름도 먹지 못하도록 금지되었으며, 이것을너희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 하였습니다. (3:17; 7:23, 25) For the same reason the Jewish people were forbidden to eat any of the fat of the beasts by what is calleda perpetual statute throughout your generations.” (Lev. 3:17; 7:23, 25)

 

너희는 기름과 피를 먹지 말라 이는 너희의 모든 처소에서 너희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3:17)

 

23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소나 양이나 염소의 기름을 먹지 것이요, 25사람이 여호와께 화제로 드리는 제물의 기름을 먹으면 먹는 자는 자기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7:23, 25)

 

이유는 교회가 내적인 것조차 인정하지 않았으며, 천적인 것은 더더욱 인정하지 않는 그러한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This was because that church was such that it did not even acknowledge internal, much less celestial things.

 

[2]기름(fat) 천적인 것들과 체어리티의 선들을 상징한다는 것은 선지서에서도 분명합니다. 이사야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That “fat” signifies celestial things, and the goods of charity, is evident in the prophets; as in Isaiah: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55:2) Wherefore do ye weigh silver for that which is not bread, and your labor for that which satisfieth not? Attend ye diligently unto me, and eat ye that which is good, and let your soul delight itself in fatness. (Isa. 55:2)

 

예레미야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And in Jeremiah:

 

내가 기름으로 제사장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며 복으로 백성을 만족하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1:14) I will fill the soul of the priests with fatness, and my people shall be satiated with my good, (Jer. 31:14)

 

여기서기름진 문자 그대로의 기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천적·영적 선을 뜻한다는 것은 매우 분명합니다. 다윗의 글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where it is very evident that fatness is not meant, but celestial spiritual good. So in David:

 

8그들이 주의 집에 있는 살진 것으로 풍족할 것이라 주께서 주의 복락의 강물을 마시게 하시리이다 9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36:8-9) They are filled with the fatness of thy house, and thou makest them drink of the river of thy deliciousnesses. For with thee is the fountain of lives; in thy light we see light. (Ps. 36:89)

 

여기서살진 (fatness)생명의 원천(fountain of lives) 사랑에 속한 천적인 것을 상징하고, ‘복락의 강물(river of deliciousnesses)(light) 사랑에서 비롯된 신앙에 속한 영적인 것을 상징합니다. 다시 다윗의 글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Herefatnessand thefountain of livessignify the celestial, which is of love; and theriver of deliciousnesses,andlight,the spiritual, which is of faith from love. Again in David: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나의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나의 입이 기쁜 입술로 주를 찬송하되 (63:5) My soul shall be satiated with marrow and fatness, and my mouth shall praise thee with lips of songs, (Ps. 63:5)

 

여기에서도 마찬가지로기름진 (fat) 천적인 것을, ‘찬송하는 입술(lips of songs) 영적인 것을 뜻합니다. 그것이 영혼을 만족하게 한다고 하였으므로 천적인 것을 뜻한다는 것이 매우 분명합니다. 같은 이유로 땅의 처음 것인 열매들도기름(fat)이라고 합니다. (18:12) where in like mannerfatdenotes the celestial, andlips of songsthe spiritual. That it is what is celestial is very evident, because it will satiate the soul. For the same reason the first fruits, which were the firstborn of the earth, are calledfat.” (Num. 18:12)

 

그들이 여호와께 드리는 소산 제일 좋은 기름과 제일 좋은 포도주와 곡식을 네게 주었은즉 (18:12)

 

[3] 천적인 것들은 헤아릴 없이 많은 종류와, 그보다도 헤아릴 없이 많은 세부 종류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모세가 백성 앞에서 읊은 노래에서는 그것들을 다음과 같이 총괄적으로 묘사합니다. As celestial things are of innumerable genera, and still more innumerable species, they are described in general in the song which Moses recited before the people:

 

소의 엉긴 젖과 양의 젖과 어린 양의 기름과 바산에서 숫양과 염소와 지극히 아름다운 밀을 먹이시며 포도즙의 붉은 술을 마시게 하셨도다 (32:14) Butter of kine, and milk of the flock, with fat of lambs and of rams, the sons of Bashan, and of goats, with the fat of the kidneys of wheat; and thou shalt drink the blood of the grape, unmixed. (Deut. 32:14)

 

이러한 표현들의 의미는 속뜻을 통하지 않고서는 누구도 없습니다. 속뜻이 없다면소의 엉긴 (butter of kine), ‘양의 (milk of sheep), ‘어린 양의 기름(fat of lambs), ‘숫양과 염소의 기름(fat of rams and goats), ‘바산의 아들들(sons of Bashan), ‘밀의 콩팥의 기름(fat of the kidneys of wheat), ‘포도의 (blood of the grape) 같은 표현들은 단지 말들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표현 하나하나는 천적인 것들의 종류와 세부 종류를 상징합니다. It is impossible for anyone to know the signification of these expressions except from the internal sense. Without the internal sense, such expressions as the “butter of kine,” the “milk of sheep,” the “fat of lambs,” the “fat of rams and goats,” the “sons of Bashan,” the “fat of the kidneys of wheat,” and the “blood of the grape,” would be words and nothing more, and yet they all and each signify genera and species of celestial things.

 

 

해설

 

AC.353은 앞의 AC.350에서 아벨이 드린 ‘기름진 ’이 ‘천적인 자체이며, 이것 역시 주님께 속한다’고 한 내용을 본격적으로 풉니다. 그리고 첫 문장부터 핵심을 매우 명료하게 제시합니다. ‘천적인 것은 사랑에 속한 모든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기름’은 단순히 풍요나 좋은 것을 막연하게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특별히 사랑에 속한 선, 곧 천적인 것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문장이 중요합니다. ‘신앙 역시 사랑에서 비롯될 때에는 천적입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가인과 아벨을 통해 계속 살펴온 신앙과 사랑의 관계를 다시 한번 정확하게 정리해 줍니다. 신앙 자체를 배척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이 사랑에서 분리될 때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반대로 신앙이 사랑에서 비롯되고 사랑과 결합되어 있다면 그 신앙 역시 천적인 성질을 가집니다. 따라서 가인의 문제는 ‘신앙’이 아니라 ‘사랑에서 분리된 신앙’이었습니다.

 

이어 ‘체어리티는 천적인 것입니다. 체어리티의 모든 선도 천적인 것입니다’라고 합니다. 이로써 사랑, 사랑에서 비롯된 신앙, 체어리티, 체어리티의 선이 하나의 생명 질서 안에 놓입니다. 이것들은 서로 고립된 별개의 종교 요소가 아니라 모두 주님에게서 오는 사랑이라는 하나의 근원에서 생명을 얻습니다. 바로 앞 AC.352에서 ‘모든 사랑은 주님에게서 오는 것이며, 인간에게서 오는 것은 조금도 없다’고 했으므로, AC.353의 ‘기름’ 역시 인간 자신의 선이나 공로가 아니라 주님에게서 오는 천적 선을 가리킵니다.

 

이 때문에 희생 제사에서 기름이 특별히 여호와께 드려졌습니다. 간을 덮는 기름, 콩팥 위의 기름, 내장을 덮는 기름 등은 모두 거룩한 것으로 구별되어 제단 위에서 불살라졌습니다. 문자적, 그러니까 겉으로만 보면 왜 동물의 특정 부위에 붙은 기름을 이처럼 세밀하게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도록 하셨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표상의 관점에서는 그 세밀한 규례들이 인간 안에 있는 여러 종류와 정도의 사랑과 선을 나타내는 외적 표상이 됩니다.

 

특히 이것들이 ‘여호와께 향기로운 화제의 음식’이라고 불렸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주님께서 자연적인 음식이나 기름을 필요로 하신다는 뜻일 수는 없습니다. 제물이 ‘음식’이라고 불리는 것은 그것이 주님과 인간 사이의 사랑과 결합에 관한 것을 표상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제단 위에서 드려지는 기름의 거룩함은 물질 자체에 있지 않고, 그것이 표상하는 천적 선에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문제가 생깁니다. 왜 이스라엘 백성은 그 기름을 먹어서는 안 되었을까요? AC.353은 그 이유를 상당히 강하게 설명합니다. 당시 유대교회는 ‘내적인 것조차 인정하지 않았으며, 천적인 것은 더더욱 인정하지 않는’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가장 내적인 사랑의 선을 표상하는 기름은 그들에게 속한 것으로 취하여 먹게 하지 않고, 오직 여호와께 돌리도록 한 것입니다. 이것 역시 ‘천적인 것은 오직 주님께 속한다’는 원리를 표상적으로 보존하는 장치였습니다.

 

[2]에서 스베덴보리는 이제 제사법에서 선지서로 이동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름진 ’이 문자 그대로의 지방이나 풍부한 음식만을 의미할 수 없는 구절들을 제시한다는 점입니다. 사55:2의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는 말씀은 육체가 아니라 영혼의 만족을 말합니다. 렘31:14 역시 ‘ 백성을 나의 선으로 만족하게 한다’는 것과 제사장들의 심령을 ‘기름’으로 만족하게 한다는 표현을 병행합니다. 따라서 ‘기름’은 주님에게서 오는 선으로 영혼이 채워지는 상태를 나타냅니다.

 

36:8-9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천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나란히 보여 줍니다. 스베덴보리는 ‘살진 ’과 ‘생명의 원천’을 사랑에 속한 천적인 것으로, ‘복락의 강물’과 ‘’을 사랑에서 비롯된 신앙에 속한 영적인 것으로 설명합니다. 여기에는 천적·영적 질서가 매우 아름답게 나타납니다. 먼저 생명과 사랑이 있고, 그 사랑에서 진리와 신앙의 빛이 나옵니다. ‘주의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본다’는 것은 인간이 자기 지성에서 진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주님에게서 오는 생명과 사랑 안에서 참된 진리를 본다는 질서와도 잘 연결됩니다.

 

63:5에서도 ‘기름진 ’은 영혼을 만족시키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따라서 스베덴보리는 이것이 천적인 것을 뜻한다는 것이 분명하다고 합니다. 육체의 배부름이 아니라 영혼의 만족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찬송하는 입술’은 영적인 것을 나타냅니다. 다시 말해 내적인 사랑의 선이 먼저 있고, 그 선에서 나오는 진리의 고백과 찬송이 뒤따릅니다. 여기에서도 사랑이 신앙보다 내적으로 먼저라는 AC.352의 질서가 그대로 이어집니다.

 

18:12에서 첫 열매가 ‘기름’으로 불리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앞의 AC.352에서 처음 난 것이 오직 주님께 속한 거룩한 것을 상징한다고 했습니다. 이제 그 처음 난 것과 ‘기름’이 서로 연결됩니다. 처음 난 것이 주님의 것인 것처럼, 그 안의 가장 좋은 것, 곧 사랑과 선의 생명 역시 주님의 것입니다. 결국 ‘처음 ’과 ‘기름진 ’을 함께 드린 아벨의 제물은 ‘거룩한 것과 천적인 것은 모두 주님에게서 온다’는 하나의 고백을 두 상응을 통해 표현하고 있는 셈입니다.

 

[3]에서는 신32:14가 등장하면서 이야기가 더욱 깊어집니다. ‘소의 엉긴 ’, ‘양의 ’, ‘어린 양의 기름’, ‘바산에서 숫양’, ‘염소’, ‘지극히 아름다운 ’, ‘포도즙의 붉은 ’ 같은 표현은 문자적으로 읽으면 풍요로운 음식의 목록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이것들이 각각 천적인 것들의 서로 다른 종류와 세부 종류를 상징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원리가 하나 나옵니다. ‘천적인 것들은 헤아릴 없이 많은 종류와, 그보다도 헤아릴 없이 많은 세부 종류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사랑’이나 ‘’을 하나의 단순한 개념처럼 생각하지만, 천국의 사랑과 선은 단조로운 하나의 상태가 아닙니다. 주님에게서 나오는 선은 무한하며, 그것을 받아들이는 천사와 인간의 상태에 따라 셀 수 없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말씀도 그것을 단 하나의 상징으로 표현하지 않고 여러 동물과 음식과 기름과 젖과 곡식과 포도주를 통하여 서로 다른 종류의 선을 표현합니다.

 

이것은 스베덴보리의 상응을 읽을 때에도 중요합니다. ‘기름 = 사랑’이라는 등식 하나를 외우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어떤 기름인지, 어떤 동물의 기름인지, 어떤 제사에서 사용되는지, 어떤 다른 표현들과 함께 등장하는지에 따라 더 구체적인 의미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상응은 단순한 암호표가 아니라 천국의 질서와 인간 내면의 무수한 상태들이 자연적 형상 속에 표현되는 살아 있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신32:14에 대해 ‘속뜻이 없다면 이러한 표현들은 단지 말들에 지나지 않을 ’이라고 강하게 말합니다. 이것은 문자적 의미가 무가치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왜 말씀의 문자에 이토록 세밀하고 때로는 낯선 표현들이 들어 있는지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문자 안에는 천국의 실재들이 담겨 있으며, 그래서 인간에게는 이상하게 보이는 세부 사항 하나하나도 속뜻에서는 의미를 가집니다.

 

AC.353을 다시 아벨의 제물로 돌아가 읽으면 창4:4의 짧은 표현이 놀랍도록 깊어집니다. ‘아벨은 자기도 양의 새끼와 기름으로 드렸더니.’ ‘처음 ’은 오직 주님께 속한 거룩한 것을 나타내고, ‘기름’은 오직 주님께 속한 천적인 것, 곧 사랑의 선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아벨 자체는 체어리티입니다. 따라서 아벨의 제물 전체가 하나의 질서를 이룹니다. 주님에게서 받은 사랑과 선을 주님의 것으로 인정하며, 그 사랑과 체어리티에서 주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가인의 제물과 아벨의 제물의 차이는 더욱 분명해집니다. 가인에게도 ‘소산’이 있었고 ‘제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소산은 체어리티에서 분리된 신앙의 행위였고, 그 제물은 그러한 신앙에서 나온 예배였습니다. 반면 아벨의 제물에는 ‘처음 ’과 ‘기름’이 있습니다. 곧 모든 거룩함과 사랑의 선이 주님에게서 온다는 인정이 있고, 체어리티에서 나오는 예배가 있습니다. 두 제물의 차이는 물질의 차이가 아니라 내적 생명의 차이입니다.

 

그러므로 AC.353의 핵심을 ‘기름은 천적인 것을 뜻한다’는 상응 하나로만 기억해서는 아쉽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 기름이 천적인 것을 뜻하는가?’입니다. 천적인 것은 사랑에 속한 것이고, 모든 참된 사랑은 주님에게서 오기 때문입니다. 신앙도 그 사랑에서 나올 때 살아 있고, 체어리티와 체어리티의 모든 선도 그 사랑에서 생명을 얻습니다. 결국 ‘기름’은 인간의 종교적 성취가 아니라 주님에게서 흘러들어오는 사랑의 생명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을 바라보는 기준도 바꾸어 줍니다. 진리를 많이 아는가, 예배를 얼마나 드리는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모든 것 안에 ‘기름’이 있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곧 그 신앙과 예배와 행위 안에 주님에게서 오는 사랑과 체어리티의 생명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신앙이 사랑에서 나오고, 예배가 체어리티에서 나오며, 행위가 주님에게서 받은 선에서 나올 때, 그것은 아벨이 드린 ‘기름진 ’과 같은 살아 있는 예배가 됩니다.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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