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2026/09/13, 창4:9-15, AC.370-396), ‘가인의 표, 인간의 실패보다 더 깊은 주님의 섭리’
즐겨찾기/한결같은교회.예배 2026. 9. 11. 16:14※ 오늘(2026/09/13) 부를 찬송은 순서대로 찬13, ‘영원한 하늘나라’, 찬93, ‘예수는 나의 힘이요’입니다.
오늘은 창4 절별 주석 그 네 번째, 9절로 15절, AC 글 번호로는 370번에서 396번입니다. 먼저 본문입니다.
9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10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11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12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13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14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15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창4:9-15)
제목은
가인의 표, 인간의 실패보다 더 깊은 주님의 섭리
이며, 다음은 지난주부터 시작한 ‘3분 요약’입니다. 새로 오신 분들, 그리고 그동안 함께해오신 분들 모두를 위한, 지난 2월부터 시작한 이 특별한 주일예배를 위한, 그 흐름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한 시간입니다.
오늘 리딩에 들어가기 전에 지금까지의 큰 흐름을 잠깐 돌아보겠습니다. 우리는 창세기의 문자적 의미를 존중하면서, 스베덴보리의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를 따라 그 속뜻을 함께 읽고 있습니다. 창1에서는 천지창조를 거듭남의 과정으로, 창2에서는 에덴동산을 주님의 사랑과 생명 안에 살아가는 천적 상태로, 창3에서는 사람이 주님보다 자기 감각과 proprium을 따르면서 그 질서가 무너지는 과정으로 읽었습니다.
창4에서는 신앙과 체어리티의 관계가 어떻게 변해 가는지를 읽고 있습니다. 가인은 신앙을, 아벨은 체어리티를 나타냅니다. 지난주에는 신앙이 체어리티를 지배하려 하다가 마침내 ‘들’, 곧 교리의 영역에서 아벨을 죽이는 데까지 이르는 것을 읽었습니다. 체어리티에서 분리된 신앙이 결국 체어리티 자체를 소멸시킨 것입니다.
오늘은 바로 그다음 장면입니다. 여호와께서는 가인에게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그리고 아벨의 피들이 땅에서 부르짖고, 가인은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주님께서는 그런 가인을 완전히 없애지 않으시고 오히려 ‘가인의 표’를 주어 보존하십니다.
오늘은 한 가지를 마음에 두고 읽겠습니다. ‘체어리티에서 분리된 신앙은 생명과 방향을 잃지만, 주님께서는 인간의 실패 속에서도 다시 체어리티로 돌아올 길을 보존하십니다.’ 오늘은 가인의 실패보다 더 깊은 곳에서 일하시는 주님의 섭리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다음은 오늘 리딩 범위인 AC.370-396 요약입니다.
AC.370-396은 지난주에 읽은 AC.359-369에서 가인이 아벨을 죽인 직후부터 시작합니다. 지난주 본문에서 가인은 체어리티를 표상하는 아벨을 자기 아래 두려 했고, 마침내 ‘들’, 곧 교리의 영역에서 아벨을 죽였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살해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신앙을 체어리티에서 분리하고 신앙을 체어리티보다 우위에 두려는 교리가 마침내 체어리티 자체를 소멸시키는 과정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번 AC.370-396은 바로 그 다음을 다룹니다. 체어리티를 소멸시킨 신앙은 어떻게 되는가, 주님과의 결합을 잃은 신앙은 어디로 가는가, 그리고 그렇게 타락한 신앙을 주님께서는 왜 완전히 없애지 않으시고 오히려 ‘가인의 표’를 주어 보존하시는가가 이번 리딩의 중심입니다.
AC.370에서 주님께서는 가인에게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아벨의 행방을 몰라서 물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속뜻에서 ‘아벨’은 체어리티이므로 이 질문은 체어리티를 소멸시킨 신앙에게 ‘네 안의 체어리티가 어디 있느냐?’고 묻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가인은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고 대답합니다. 이것은 신앙이 이제 체어리티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며, 체어리티에 종속되기를 거부하고, 체어리티에 속한 모든 것을 완전히 밀어냈음을 의미합니다. 지난주에는 신앙이 체어리티를 죽이는 데까지 갔다면,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체어리티에 대한 책임 자체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AC.371은 여기서 매우 중요한 ‘퍼셉션과 양심’의 문제를 설명합니다. AC.370에서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은 내면에서 오는 어떤 퍼셉션을 의미합니다. 태고교회의 천적 사람들은 주님에게서 오는 선과 진리를 내적으로 퍼셉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그 천적 상태에서 멀어진 뒤에는 이러한 퍼셉션을 잃었고, 훗날 영적 교회에서는 신앙을 통하여 형성된 양심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됩니다. 따라서 주님께서 인간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은 반드시 외적인 음성을 듣는다는 뜻이 아니라, 태고교회에서는 퍼셉션으로, 후대의 영적 사람에게는 양심을 통하여 선과 진리가 내적으로 알려지는 것을 포함합니다. 이 구별은 뒤의 AC.393에서 다시 매우 중요하게 등장합니다.
AC.372-376에서는 ‘네 아우의 피들의 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는 말씀이 설명됩니다. 여기서 특별히 주목할 것은 히브리어에서 ‘피’가 단수가 아니라 ‘피들’로 표현된다는 점입니다. 이 ‘피들’은 체어리티에 가해진 폭력을 의미하며, 특히 체어리티와 정반대되는 미움을 가리킵니다. 체어리티는 이웃의 선과 생명을 원하지만, 미움은 영적으로 이웃을 해치고 죽이려 합니다. 따라서 아벨의 피들이 땅에서 부르짖는다는 것은 체어리티에 가해진 폭력이 그 자체로 죄책을 드러내고 고발한다는 뜻입니다. 주님께서 모르셨던 사실을 피가 알려드린다는 뜻이 아니라, 악에는 그 악 자체의 죄책이 들어 있으며 영적 질서 안에서 그것이 스스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땅’도 중요합니다. 이 문맥에서 땅은 신앙과 체어리티를 분리시킨 ‘분열 또는 이단’의 교리적 토대를 나타냅니다. 다만 여기서 ‘이단’을 오늘날 특정 교파나 사람에게 직접 붙이는 말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가인의 문제는 신앙과 체어리티를 구별했다는 데 있지 않고, 둘을 분리한 뒤 신앙을 독립시키고 체어리티 위에 세웠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더 중요한 질문은 ‘누가 이단인가?’가 아니라 ‘나는 어떤 진리를 전체의 질서에서 떼어 내어 절대화하고 있지는 않은가?’입니다. 진리를 많이 알고 정확하게 말하면서도 그 진리가 사랑과 체어리티에서 떨어져 있다면 우리 역시 가인이 갈았던 땅을 갈 수 있습니다.
AC.377-382에서는 그 결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납니다.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는 말씀입니다. 체어리티가 소멸되면 주님과 사람을 연결하는 결속도 끊어집니다. 신앙은 여전히 교리를 연구하고 논증하며 많은 지식을 쌓을 수 있지만, 체어리티가 없다면 그 신앙은 생명 있는 신앙이 아니라 단지 지식에 머물게 됩니다. 그래서 아무리 그 땅을 갈아도 땅은 더 이상 그 힘을 내어 주지 않습니다. 신앙과 체어리티의 분리를 계속 연구하고 확증하고 정교한 교리 체계로 만들어도 거기서는 참된 영적 열매가 나올 수 없습니다. 그 이유를 AC.381은 아주 분명하게 말합니다. ‘체어리티 없는 신앙은 신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닌다는 뜻이 아닙니다. 속뜻에서는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진리인지 알지 못하게 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AC.382는 예레미야애가, 아모스, 호세아, 예레미야, 이사야의 여러 말씀을 인용하여 이것을 확증합니다. 특히 물을 찾아 이 성읍에서 저 성읍으로 유리하지만 만족하지 못하는 모습은 진리를 찾고 있으면서도 그 진리가 체어리티와 결합되어 있지 않아 영혼의 갈증을 해결하지 못하는 상태를 잘 보여 줍니다. 진리를 많이 찾아다니는 것과 진리 안에 실제로 사는 것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선에서 분리된 진리는 결국 사람에게 영적 방향을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AC.383에서 매우 중요한 변화가 나타납니다. 가인은 ‘내 죄악이 너무 커서 사함을 받을 수 없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앞에서는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며 책임을 부인하던 가인이 이제 자기 상태 때문에 어떤 내적 고통을 느끼고, 자기가 악 가운데 있음을 어느 정도 인정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을 완전한 회개라고 볼 수는 없지만, 완전히 굳어 버린 상태와도 다릅니다. AC.384는 바로 이 점에서 가인 안에 ‘선의 어떤 것이 아직 남아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만일 선이 완전히 소멸되었다면 자기 악 때문에 내적으로 고통받거나 그것을 인정하는 일조차 일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번 본문 후반의 ‘가인의 보존’을 이해하는 중요한 실마리가 됩니다.
AC.385-388에서는 가인이 자기 상태를 더 자세히 말합니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고 합니다. ‘지면에서 쫓겨난다’는 것은 교회에 속한 모든 진리에서 분리되는 것을 의미하고, ‘주의 얼굴을 뵈옵지 못한다’는 것은 사랑의 신앙에 속한 모든 선에서 분리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 다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됩니다. 진리에서도 떨어지고 선에서도 떨어지면 결국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선인지 분별할 수 없게 됩니다. 신앙과 체어리티의 분리는 처음에는 하나의 교리적 선택처럼 보이지만, 그 끝에서는 인간의 영적 방향감각 자체를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AC.389-391에서는 가인의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라는 두려움이 설명됩니다. 사람이 체어리티를 잃으면 주님과의 결합에서 멀어지고 자기 자신, 곧 proprium에 맡겨집니다. 그러면 생각에서는 거짓이, 의지에서는 악이 점점 지배하게 됩니다. 그리고 악과 거짓에는 그 자체로 두려움과 형벌이 들어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밖에서 형벌을 만들어 가인에게 던지시는 모습이 아닙니다. 악과 거짓 자체가 사람을 불안과 공포 속으로 몰아넣습니다. 지옥의 상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악한 영들은 끊임없이 서로를 해치고 빼앗으려 하기 때문에 자기 역시 다른 존재에게 해를 입을까 두려워합니다. 그러므로 죄의 형벌은 주님께서 분노하여 외부에서 부과하시는 어떤 것이라기보다, 악과 거짓이 그 자체 안에 품고 있는 결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이번 본문의 가장 놀라운 전환이 일어납니다. 가인이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라고 하자 여호와께서는 가인을 죽이지 말라고 하시며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가인에게 ‘표’를 주어 아무도 그를 죽이지 못하게 하십니다. 문자적으로만 읽으면 살인자인 가인을 왜 하나님께서 오히려 보호하시는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그러나 AC.392-396의 속뜻을 따라가면 전혀 다른 의미가 열립니다. 가인을 보존한다는 것은 가인의 악을 승인한다는 뜻이 아니라, 가인으로 표상된 ‘신앙’ 자체가 완전히 소멸되지 않도록 주님께서 섭리하신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AC.393이 매우 중요합니다. 태고교회의 천적 사람들에게는 사랑이 먼저였고 신앙은 그 사랑에서 나왔습니다. 그들은 주님에게서 오는 선과 진리를 퍼셉션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그 천적 상태를 잃은 뒤에는 더 이상 같은 방법으로 주님께 인도될 수 없었습니다. 홍수 후의 영적 교회에서는 먼저 신앙의 지식이 주어지고, 그 신앙을 통하여 주님께서 체어리티를 주시며, 신앙과 체어리티가 결합하면서 양심이 형성되는 새로운 질서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후대의 인간에게는 ‘신앙의 지식’이 주님께서 인간을 다시 체어리티로 인도하시는 중요한 수단이 된 것입니다.
AC.394는 이 점을 더욱 분명하게 합니다. 주님께서는 인간이 결국 신앙을 사랑에서 분리하고 독립적인 교리로 만들 것을 미리 아셨습니다. 그렇다고 신앙 자체를 완전히 사라지게 내버려 두셨다면 후대의 인간은 구원에 이르는 중요한 수단을 잃게 됩니다. 인간이 더 이상 태고교회처럼 사랑에서 직접 진리를 퍼셉션할 수 없기 때문에, 먼저 신앙의 지식을 배우고 그 진리를 통하여 체어리티로 인도받는 길이 보존되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가인이 잘못되었음에도 ‘가인’이 완전히 죽임당하지 않도록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반드시 구별해야 할 것은 ‘보존’과 ‘승인’입니다. 주님께서 체어리티에서 분리된 신앙을 옳다고 인정하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실패 속에서도 장차 다시 체어리티로 돌아갈 수 있는 통로인 신앙 자체를 보존하신 것입니다.
AC.395에서 ‘칠 배’는 이 보존이 거룩하고 침범해서는 안 되는 것임을 나타냅니다. 말씀에서 ‘일곱’은 거룩한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AC.396은 마침내 ‘가인의 표’가 무엇인지 설명합니다. ‘표’는 말씀에서 어떤 사람이나 상태를 다른 것과 ‘구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가인의 이마나 몸에 실제로 어떤 신비한 표시가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 말씀의 속뜻은 아닙니다. ‘가인의 표’는 가인으로 표상되는 신앙을 특별히 구별하여 보존하신 주님의 섭리를 의미합니다.
이렇게 보면 이번 AC.370-396 전체는 놀라운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앞부분에서는 체어리티를 죽인 신앙의 비참한 결과를 끝까지 보여 줍니다. 아벨이 사라지고, 그의 피들이 땅에서 부르짖으며, 땅은 더 이상 힘을 내지 않고, 가인은 선과 진리를 알지 못한 채 피하며 유리하게 됩니다. 체어리티를 제거함으로써 신앙이 더 강하고 순수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앙 자체가 생명과 방향을 잃은 것입니다. 그런데 후반부에서는 그 실패 가운데서도 주님의 섭리가 작용합니다. 주님께서는 가인의 잘못을 옳다고 하시지 않으면서도 가인을 완전히 죽게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인간이 사랑의 질서를 무너뜨렸어도 장차 다시 사랑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신앙’이라는 통로를 보존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자신의 신앙생활을 돌아보게 합니다. 말씀을 많이 알고 교리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귀합니다. 그러나 그 지식이 체어리티에서 분리되면 그 순간부터 가인의 길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특히 AC를 읽으며 말씀의 속뜻과 상응을 배우는 우리에게는 더욱 조심스러운 말씀입니다. 깊은 아르카나를 안다는 것이 다른 사람보다 영적으로 우월하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고, 다른 사람의 신앙을 쉽게 판단하며, 그 사람 안에 주님께서 보존하고 계시는 작은 선과 진리까지 무시하게 된다면 우리는 다시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는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동시에 ‘가인의 표’는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에도 중요한 빛을 줍니다. 어떤 사람의 신앙에 심각한 오류가 있다고 해서 그 사람 안에 있는 모든 신앙과 모든 진리를 함께 없애 버리려 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는 인간의 잘못된 상태 안에서도 장차 구원에 사용하실 수 있는 것을 구별하여 보존하십니다. 우리는 잘못된 것을 분별해야 하지만, 주님께서 보존하고 계시는 것까지 함부로 파괴해서는 안 됩니다. 가인의 표는 악을 보호하는 표가 아니라, 인간의 실패보다 더 깊고 멀리 내다보시는 주님의 섭리를 보여 주는 표입니다.
결국 AC.370-396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지난주의 ‘내가 가진 신앙 안에서 아벨은 살아 있는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아벨을 잃은 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묻습니다. 체어리티를 잃은 신앙은 아무리 많은 진리를 가지고 있어도 결국 선과 진리의 방향을 잃고 유리하게 됩니다. 그러나 동시에 주님께서는 ‘가인’마저 완전히 버리지 않으십니다. 인간 안에 남아 있는 작은 선을 보시고, 다시 체어리티로 돌아오는 데 사용될 수 있는 신앙의 지식을 보존하시며, 인간의 실패 속에서도 구원의 길이 완전히 끊어지지 않도록 섭리하십니다.
따라서 이번 리딩은 ‘가인의 형벌’보다 더 깊은 곳에서 ‘주님의 섭리’를 보게 합니다. 인간은 신앙을 체어리티에서 분리했고, 마침내 체어리티를 죽였지만, 주님께서는 그 인간을 곧바로 폐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신앙을 보존하여 훗날 그 신앙을 통하여 다시 체어리티를 받을 수 있는 길을 남겨 두셨습니다. 태고교회의 ‘사랑에서 신앙으로’라는 천적 질서가 무너진 뒤에도, 주님께서는 ‘신앙을 통하여 다시 체어리티로’ 나아가는 영적 질서를 마련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가인의 표 안에 숨어 있는 놀라운 아르카나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AC.370-396의 전체 흐름은 ‘체어리티의 소멸 → 죄책의 드러남 → 주님과의 결합 상실 → 영적 결실의 상실 → 선과 진리의 방향 상실 → 내적 고통과 악의 일부 인정 → 악과 거짓에서 오는 두려움 → 가인의 보존 → 신앙의 보존 → 신앙을 통하여 다시 체어리티로 돌아갈 길의 보존’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인간의 타락은 깊지만 주님의 섭리는 그보다 더 깊습니다. 인간은 아벨을 죽이지만, 주님께서는 가인에게도 표를 주십니다. 그것은 가인의 길을 인정하시는 표가 아니라, 인간의 실패 속에서도 구원의 길을 끝까지 보존하시는 주님의 자비와 섭리의 표입니다.
이상 요약을 마치고, 아래는 AC 본문, 해설 및 심화입니다.
AC.370, 창4:9,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 체어리티를 완전히 거부하게 된 신앙’ (AC.370-3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And Jehovah said unto Cain, Where is Abel thy brother? And he said, I know not, am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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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71, 창4:9, ‘퍼셉션에서 양심으로 -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는 것의 속뜻’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창4:9) AC.371‘여호와께서 말씀하심’(speaking of Jehovah)으로 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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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72, 창4:9,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 신앙은 체어리티를 섬겨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창4:9) AC.372‘지키는 자’(keeper)가 된다는 것은 섬기는 것을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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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73, 창4:10, ‘네 아우의 핏소리가 내게 호소하느니라 - 체어리티에 가해진 폭력과 죄책의 고발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And he said, What hast thou done? The voice of thy brother’s bloods crieth to me from the ground. (창4:10) AC.373‘네 아우의 피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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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74, 창4:10, ‘왜 아벨의 피가 부르짖는가? - 미움은 체어리티에 가하는 폭력입니다’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창4:10) AC.374‘피들의 소리’(voice of bloods)가 체어리티에 폭력이 가해졌음을 의미한다는 것은 말씀의 많은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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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75, 창4:10, ‘부르짖는 소리는 왜 죄책의 고발을 뜻하는가?’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창4:10) AC.375‘부르짖는 소리’(voice crying)와 ‘부르짖음의 소리’(voice of a cry)는 말씀에서 흔히 사용되는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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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76, 창4:10, ‘피들이 부르짖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 체어리티에 가한 폭력이 드러내는 죄책’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창4:10) AC.376이로부터 ‘피들이 부르짖는 것’(crying of bloods)은 죄책의 고발을 의미한다는 것이 따라 나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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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77, 창4:10, ‘사람 자신이 땅이며 또한 밭입니다 - 무엇이 심어지느냐에 따라 사람이 달라집니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창4:10) AC.377여기서 ‘땅’(ground)이 분열 또는 이단을 의미한다는 것은 ‘밭’(field)이 교리를 의미한다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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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78, 창4:11,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 분열로 말미암아 주님에게서 돌아선 가인’ (AC.378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And now cursed art thou from the ground, which hath opened its mouth to receive thy brother’s bloods from thy hand. (창4:11) AC.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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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79, 창4:11, ‘체어리티 없는 신앙은 신앙이 아닙니다 - 의지가 실제 사람입니다’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창4:11) AC.379이러한 것들이 의미된다는 것은 앞에서 설명한 것으로부터 분명하며, ‘저주를 받는 것’(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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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80, 창4:12,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 무엇이 선이고 진리인지 알지 못하는 신앙’ (AC.38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When thou tillest the ground, it shall not henceforth yield unto thee its strength; a fugitive and a wander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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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81, 창4:12, ‘체어리티 없는 신앙은 왜 결실이 없는가?’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창4:12) AC.381‘땅을 가는 것’(till the ground)이 이 분열 또는 이단을 배양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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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82, 창4:12, ‘피하며 유리하는 자란 누구인가? - 선과 진리를 알지 못하게 된 신앙’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창4:12) AC.382‘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fugitive and a wanderer in the earth)가 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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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83, 창4:13,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 악을 인정하게 한 내적 고통과 절망’ (AC.3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And Cain said unto Jehovah, Mine iniquity is greater than can be taken away. (창4:13) AC.383‘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Cain said unto Jehovah)는 어떤 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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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84, 창4:13, ‘가인에게도 아직 선의 어떤 것이 남아 있었습니다 - 라멕에 이르러 소멸되는 체어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창4:13) AC.384이로부터 가인에게 아직 선의 어떤 것이 남아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후 체어리티의 모든 선이 소멸되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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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85, 창4:14,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 남아 있는 것을 위협하는 악과 거짓’ (A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Behold thou hast cast me out this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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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86, 창4:14, ‘지면에서 쫓겨난다는 것은 무엇인가? - 교회의 진리에서 분리되는 것’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창4:14) AC.386‘지면에서 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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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87, 창4:14, ‘주의 얼굴을 뵈옵지 못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 주님의 자비에서 나오는 신앙의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창4:14) AC.387‘주의 얼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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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88, 창4:14, ‘피하며 유리하는 자 - 선과 진리를 알지 못하는 상태’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창4:14) AC.388‘땅에서 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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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89, 창4:14,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 체어리티를 잃으면 왜 악과 거짓에 맡겨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창4:14) AC.389‘그를 만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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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90, 창4:14, ‘악과 거짓 가운데 있는 사람은 왜 끊임없이 두려워하는가?’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창4:14) AC.390악과 거짓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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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91, 창4:14, ‘악과 거짓은 그 자체 안에 형벌을 품고 있습니다 - 악령들이 서로 두려워하는 이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창4:14) AC.391악과 거짓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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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92, 창4:15,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표를 주시다 - 분리된 신앙까지 보존하시는 이유’ (AC.392-396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And Jehovah said unto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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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93, 창4:15, ‘태고교회의 퍼셉션과 홍수 후 교회의 양심 - 신앙과 체어리티의 새로운 질서’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창4:15) AC.393지금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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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94, 창4:15, ‘가인의 표와 천국의 결혼 - 분리된 신앙을 보존하신 주님의 섭리’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창4:15) AC.394이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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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95, 창4:15,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 일곱은 왜 거룩한 것을 뜻하는가?’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창4:15) AC.395‘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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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96, 창4:15, ‘가인의 표는 무엇인가? - 주님께서 신앙을 구별하여 보존하신 표’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창4:15) AC.396‘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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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AC 리딩 본문 전체는 여기까지이고, 이 가운데 필수 리딩 목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AC.370, 창4:9,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 체어리티를 완전히 거부하게 된 신앙’ (AC.370-3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And Jehovah said unto Cain, Where is Abel thy brother? And he said, I know not, am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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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81, 창4:12, ‘체어리티 없는 신앙은 왜 결실이 없는가?’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창4:12) AC.381‘땅을 가는 것’(till the ground)이 이 분열 또는 이단을 배양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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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94, 창4:15, ‘가인의 표와 천국의 결혼 - 분리된 신앙을 보존하신 주님의 섭리’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창4:15) AC.394이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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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한결같은 교회 변일국 목사
설교
2026-09-13(D1)
주일예배(2026/09/06, 창4:6-8, AC.359-369), ‘체어리티는 신앙과 함께 있기를 원합니다’
※ 오늘(2026/09/06) 부를 찬송은 순서대로 찬12, ‘다 함께 주를 경배하세’, 찬230, ‘우리의 참되신 구주시니’, 찬92, ‘위에 계신 나의 친구’입니다. 오늘은 창4 절별 주석 그 세 번째, 6절로 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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