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8 심화

4. 제물을 제사장의 손에 올려놓고 흔들었을까?’

 

8:25-28에서는 위임식의 뜻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숫양의 기름과 오른쪽 뒷다리, 무교병과 기름 섞은 떡과 전병을 모두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손에 올려놓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여호와 앞에서 흔들어 요제로 삼습니다. 왜 위임식에서는 제물을 그냥 제단으로 가져가지 않고 굳이 제사장의 에 올려놓았을까요?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매우 직접적으로 해설합니다.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Arcana Coelestia, 1749-1756, AC) 10082(29:24)는 손바닥 위에 놓인 기름과 콩팥과 오른쪽 뒷다리와 떡들이 신적 선과 신적 진리를 나타낸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손에 놓는 것은 모든 것은 주님의 것이며 주님에게서 온다는 인정을 의미한다고 밝힙니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위임의 개념을 뒤집습니다. 세상에서 어떤 직책에 위임된다는 것은 권한을 자기 손에 넘겨받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레8의 위임식에서는 손이 채워지는 순간 오히려 그 손에 있는 것이 자기 것이 아님을 인정합니다. 손에 많은 것이 놓일수록 이것은 주님에게서 왔습니다라고 고백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어 AC.10083(29:24)은 그것을 흔드는 요제를 생명을 부여하는 과 연결합니다. 특별히 주님에게서 온 것임을 인정함으로써 신적 생명이 들어온다고 설명합니다. 지식만으로는 아직 생명이 아닙니다. 선과 진리가 주님에게서 왔음을 인정하고 그것에 따라 살기 시작할 때 살아 있는 신앙이 됩니다.

 

그래서 손에 놓인 제물과 흔드는 동작은 서로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먼저 주님에게서 왔다고 인정하고, 그 인정으로부터 생명이 시작됩니다. 인간이 자기 지혜와 능력과 선을 자기 것이라고 붙들면 그것은 proprium 안에서 죽기 시작하지만, 그것의 근원을 주님께 돌릴 때 그 선과 진리는 인간 안에서 살아 움직입니다.

 

이것은 모든 쓰임에 적용됩니다. 설교하는 능력도, 가르치는 지혜도, 사람을 돌보는 따뜻함도, 돈을 벌고 사용하는 능력도,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도, 이웃을 섬길 기회도 궁극적으로 주님에게서 받은 것입니다. 우리의 손은 그것을 실제로 행하지만 근원은 손 자체에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손을 채운다는 위임의 히브리적 이미지와 스베덴보리의 해설은 아주 아름답게 만납니다. 빈손이 채워지지만 그 채움은 소유를 위한 것이 아니라 쓰임을 위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것을 받아 다시 주님의 뜻에 따라 사용하는 것입니다.

 

참된 위임은 이제 내가 권한을 가졌다가 아니라 주님께서 손에 맡기셨다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참된 요제는 내가 이것을 이루었습니다가 아니라 모든 선과 진리는 주님에게서 왔습니다라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레8의 제사장은 손이 가득 찼지만 자기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입니다. 역설적으로 바로 그런 손이 주님의 쓰임을 가장 온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며 주님에게서 온다는 인정 안에서 인간의 손은 비로소 신적 생명의 도구가 됩니다. (SW.8 심화 4)

 

 

 

SW.레8 심화3, ‘왜 피를 오른쪽 귀와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에 발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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