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RC.009 | 천주교(Roman Catholic)의 교리와 신앙 속 진리와 오류 100선

 

‘교회가 정한 신앙의 진리를 믿고 지키는 것이 올바른 신앙이다’ - 진리의 근거는 교회의 권위에 있는가, 주님의 말씀에 있는가?

 

해설

‘교회가 정한 신앙의 진리를 믿고 지키는 것이 올바른 신앙이다.’ 이것은 천주교의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교회의 가르침과 신자의 순종에 관한 명제입니다. 천주교는 신앙을 개인이 성경을 읽고 자유롭게 해석하여 선택하는 것으로만 이해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교회에 복음을 맡기셨으며, 사도들에게서 이어지는 교회의 가르치는 직무를 통하여 신앙의 진리가 보존되고 전달된다고 믿습니다. 따라서 신자는 교회가 가르치는 교리를 배우고 받아들이며, 그 가르침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이러한 이해에는 개인의 생각과 판단만으로 신앙을 결정하지 않고, 오랜 세월 교회가 보존해 온 진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이 생깁니다. 어떤 교리가 참된 진리인 이유는 교회가 그것을 정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주님의 말씀에 근거하기 때문일까요? 교회가 가르치는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 권위에 순종하여 믿는 것이 참된 신앙일까요? 반대로 신자가 스스로 진리의 참됨을 살피고 질문하는 일은 교회에 대한 불순종일까요? 무엇보다 스베덴보리는 참된 신앙이 단순히 다른 사람의 말을 받아들이는 데 있지 않고, 주님에게서 오는 진리를 이해하고 사랑하며 삶으로 실천하는 데 있다고 가르칩니다. 이번 명제는 교회의 교리와 권위를 모두 부정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교회의 가르침이 어디에서 권위를 얻으며, 그 가르침이 어떻게 인간 자신의 살아 있는 신앙이 되는가를 묻는 문제입니다.

 

먼저 천주교의 공식적인 가르침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Catechism of the Catholic Church) 84–85항은 신앙의 유산이 성경과 성전에 담겨 교회 전체에 맡겨졌으며, 이를 권위 있게 해석하는 직무가 교회의 살아 있는 ‘교도권’(敎導權, Magisterium)에 맡겨졌다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교도권은 로마 교황과 그와 친교를 이루는 주교들이 수행하는 공식적인 가르침의 직무를 뜻합니다. 천주교는 교도권이 단순히 신학적인 견해를 제시하는 기관이 아니라, 주님의 이름으로 계시를 해석하고 신자들에게 신앙과 도덕에 관한 가르침을 전할 권한을 지닌다고 믿습니다. 특히 교리서 88항은 교도권이 계시에 포함된 진리나 그와 필연적으로 연결되는 진리를 결정적으로 제시할 때 ‘교의’(敎義, dogma)를 정의한다고 설명합니다. 신자는 이러한 교의를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선택하거나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진리로 받아들이도록 요구받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구별이 있습니다. 천주교는 교회가 인간의 생각으로 새로운 신적 진리를 만들어 낸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교도권이 계시의 유산을 보존하고 해석하며 그 의미를 분명하게 제시한다고 이해합니다. 따라서 ‘교회가 정한 진리’라는 표현도 천주교의 공식적인 관점에서는 교회가 임의로 만들어 낸 진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진리를 교회가 권위 있게 가르친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천주교는 교회의 권위가 하나님의 말씀보다 높지 않다는 사실도 분명하게 가르칩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86항은 교도권이 하나님의 말씀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섬기는 직무라고 설명합니다. 또한 91–94항은 신자들이 계시의 진리를 이해하고 보존하며 그 이해를 더욱 깊게 하는 일에 참여한다고 가르칩니다. 따라서 천주교가 일반 신자에게는 진리를 이해할 필요가 없고 교회가 말하는 내용을 무조건 외우기만 하면 된다고 가르친다고 설명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교리서 1783–1785항은 올바른 양심을 형성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기도하며 그 말씀을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교도권의 해석 권한은 개인 신자의 판단과 동일한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교리서 87항은 신자들이 목자들의 가르침을 온순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설명하며, 890–892항은 교도권의 가르침이 지닌 권위와 그에 대한 신자의 동의를 구별하여 제시합니다. 여기서 모든 교회의 발언이 동일한 수준의 무류성을 지닌다는 뜻은 아닙니다. 천주교는 결정적으로 선포된 교의와 그 밖의 권위 있는 가르침을 구별하며, 그에 따라 신자에게 요구되는 동의의 성격도 달리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정확하게 검토하려면 천주교의 공식적인 권위 구조를 인정하면서도, 그 구조가 진리의 참됨을 확인하는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신앙 공동체의 가르침을 존중하고 그 안에서 진리를 배우는 일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딤전3:15는 교회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집이며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부릅니다. 엡4:11-13은 주님께서 교회에 여러 가르치는 직무를 주신 목적이 성도들을 온전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데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말씀들은 교회의 가르침이 불필요하거나 각 사람이 자신의 생각만으로 신앙을 형성하면 된다는 뜻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성경은 교회의 가르침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만을 참된 신앙으로 제시하지도 않습니다. 행17:11은 베뢰아 사람들이 말씀을 간절한 마음으로 받으면서도 바울이 전한 내용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했다고 기록합니다. 이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경멸하지 않았지만, 그 가르침이 성경에 부합하는지를 살폈습니다. 또한 요8:31-32에서 주님께서는 자신의 말씀 안에 거하는 사람이 참된 제자이며 진리를 알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신앙의 중심은 어떤 인간 조직의 권위 그 자체가 아니라 주님의 말씀과 그 말씀에 담긴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가르침을 존중하는 일과 그 가르침을 말씀에 비추어 분별하는 일은 반드시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올바른 교회의 가르침은 신자가 주님의 말씀을 더욱 깊이 이해하고 그 진리 안에서 살아가도록 도와야 합니다.

 

이제 스베덴보리의 렌즈로 살펴보겠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성경에 관한 교리’(Doctrine of Sacred Scripture, SS, 1763) 76항에서 교회는 말씀으로 말미암아 존재하며,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 그 교회의 성격이 결정된다고 가르칩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원칙입니다. 교회가 성경을 가지고 있고 그 성경을 낭독한다는 사실만으로 참된 교회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교회가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고, 그 말씀에서 어떤 교리를 이끌어 내며, 그 진리에 따라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가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에게서 말씀은 교회가 자신의 권위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자료가 아닙니다. 오히려 교회가 자신의 가르침과 삶을 끊임없이 비추어 보아야 할 신적 진리의 근원입니다. 따라서 어떤 교리가 오랜 전통을 지녔거나 권위 있는 종교 지도자들이 그것을 가르쳤다는 사실만으로 그 교리가 참되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참된 교리는 주님의 말씀에서 나와야 하며, 그 말씀의 진리와 일치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교회가 교리를 가르치는 일을 부정해서도 안 됩니다. 스베덴보리는 교리가 말씀을 올바르게 이해하도록 돕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가르칩니다. 다만 그 교리의 권위는 그것을 가르치는 사람의 지위나 제도의 역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진리가 실제로 주님의 말씀에 근거한다는 사실에서 비롯됩니다.

 

이 점에서 ‘천국과 지옥’(Heaven and Hell, HH, 1758) 351–352항은 특별히 중요한 직접적인 근거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참된 지성과 지혜란 무엇이 진리이고 선인지, 무엇이 거짓이고 악인지를 내적으로 보고 이해하며 분별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반면 HH.352에서는 다른 사람이 참되다고 말했기 때문에 그것을 참이라고 믿고, 그 뒤에 그 믿음을 뒷받침하는 근거만 찾아 확신하는 상태를 ‘거짓된 지성과 지혜’(spurious intelligence and wisdom)의 한 형태로 설명합니다. 인간은 어떤 주장을 이미 참이라고 확정한 뒤에는 그 주장이 실제로 거짓이더라도 여러 가지 논거를 찾아 참처럼 보이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스베덴보리가 경계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진리를 배우는 행위 자체가 아닙니다. 누구나 처음에는 부모와 교사, 목회자와 교회를 통하여 신앙의 내용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그가 구별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배운 진리를 스스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신앙과, 그 진리가 참된 이유를 오직 가르친 사람의 권위에서만 찾는 신앙입니다. 특히 HH.352:2는 어린 시절 스승에게 배운 내용을 참되다고 믿었더라도 성장한 뒤 진리를 사랑하여 탐구하고, 그 진리의 참됨을 내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앞서 비판한 부류에 속하지 않는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교회에서 배우는 것과 스스로 진리를 이해하는 것은 서로 배척해야 할 행위가 아닙니다. 참된 신앙의 성숙은 배우는 단계에서 시작하여 진리를 자신의 이해와 삶 안에서 받아들이는 단계로 나아가는 데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천국의 비밀’(Arcana Coelestia, AC, 1749–1756) 7055:2에서도 같은 문제를 더욱 직접적으로 설명합니다. 그는 사람들이 교회의 교리를 따르면서도 그것이 참되다는 사실을 교회가 가르쳤고 학식 있는 사람들이 전했다는 이유 외에는 알지 못하는 경우를 설명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도 신적 진리와 관련된 가르침이 전달될 수 있지만, 그것이 아직 그 사람 안에서 진리를 사랑하는 내적인 인식과 충분히 결합한 상태는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 진리 자체를 사랑하고 특히 삶을 위하여 진리를 배우려는 사람은 교회의 교리를 받아들이기 전에 그것이 실제로 참된지 살피려 하며, 그 교리가 진리와 일치하는가를 분별하려 합니다. 이 본문은 교회의 권위와 개인의 신앙 사이에 존재하는 중요한 차이를 보여 줍니다. 어떤 사람이 교회의 가르침을 정확하게 암기하고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진리를 자기 자신의 이해 안에서 받아들이고 삶에 적용하지 않았다면 아직 신앙의 내적인 목적에 도달하지 못한 것입니다. 반대로 교회의 가르침을 배우면서도 그것이 왜 참된지 이해하고자 말씀을 살피고, 그 진리에 따라 살아가려는 사람은 참된 신앙의 성숙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신자가 교회보다 더 높은 개인적 권위를 행사한다는 뜻이 아니라, 인간 안에서 진리를 깨닫게 하시는 분은 궁극적으로 주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교회의 교리는 그 진리를 전달하는 도구가 될 수 있지만, 진리의 근원 자체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권위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일이 곧 개인의 생각을 모든 진리보다 높이는 태도를 정당화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 역시 인간의 자연적인 이해와 감각이 언제나 올바른 판단을 내린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이미 믿고 싶은 것을 참이라고 확신하거나, 자신의 욕망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성경을 잘못 해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의 가르침을 무조건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이 반드시 더 깊은 진리 안에 있다고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독립적인 판단 자체가 참된 신앙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는 AC.9300:4에서 사람이 말씀을 읽을 때 주님께서 그의 이해를 밝혀 진리가 무엇인지 깨닫게 하실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내적인 깨달음은 인간 자신의 총명함이나 자율적인 판단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에게서 오는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려는 마음과 관계됩니다. 그러므로 참된 분별은 교회가 말했으므로 무조건 참이라고 확신하는 태도뿐 아니라, 교회가 말했으므로 무조건 거짓이라고 판단하는 태도도 경계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누가 가르쳤는가보다 그 가르침이 실제로 말씀에 부합하는가, 그리고 그것이 인간을 주님의 사랑과 진리로 이끄는가 하는 점입니다. 교회의 권위를 절대화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자신의 판단을 절대화하는 것 역시 참된 신앙의 길은 아닙니다.

 

이 문제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교리를 믿는 것과 교리대로 살아가는 것의 관계입니다. 천주교는 교회가 정한 진리를 지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신앙의 목적이 완성된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2032–2038항은 교회의 가르침이 도덕적인 삶과 연결되어야 한다고 설명하며, 2044항은 그리스도인의 삶과 선한 행위가 복음의 진실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증언이라고 강조합니다. 따라서 천주교가 신앙의 순종을 단순히 교리적 동의와 제도적 복종으로만 이해한다고 비판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는 교리를 실천하는 일의 영적 의미를 더욱 깊이 살펴야 합니다. 인간이 어떤 규정을 지키는 이유가 교회의 처벌이나 주변의 평가가 두렵기 때문이라면, 그것은 외적인 순종에 머물 수 있습니다. 반대로 그 규정 안에 담긴 진리가 실제로 주님의 선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이웃을 사랑하기 위하여 그 선을 실천한다면 더욱 내적인 신앙의 행위가 됩니다. 여기서 스베덴보리는 신앙의 진리를 받아들이는 ‘이해’(understanding)와 그 진리에 따라 선을 행하려는 ‘의지’(will)를 함께 강조합니다. AC.9050은 믿음의 진리와 사랑의 선이 인간 안에서 하나의 삶을 이루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신앙은 교리를 알고 동의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진리를 사랑하여 실제로 선을 행하는 삶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교리를 지키는 행위가 귀중한 이유는 그 자체가 교회의 권위를 높이기 때문이 아니라, 주님의 진리가 인간의 삶에서 실현되도록 돕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교회와 신자의 관계도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교회에는 말씀을 가르치고 교리를 정리하며 신자들이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도록 인도하는 중요한 쓰임이 있습니다. 모든 신자가 처음부터 성경의 깊은 의미를 스스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체계적인 가르침과 공동체의 도움은 신앙의 성장에 필요합니다. 그러나 교회의 가르침이 이러한 쓰임을 감당하려면 신자가 진리를 이해하도록 돕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질문을 제기하는 일을 언제나 불순종으로 여기거나, 교리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신앙의 부족으로 판단한다면 신자는 자신의 이해와 양심을 사용하기보다 외적인 권위에 의존하게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신자가 겸손하게 말씀을 배우고 진리의 참됨을 살피며 그 진리에 따라 살아가도록 격려한다면, 교회의 가르침은 더욱 깊은 영적 쓰임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원칙을 가톨릭 신자들이 실제로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며, 모든 천주교 신자가 교회의 권위에 무비판적으로 순종한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자신의 교회 안에서 진리를 진지하게 배우고 연구하며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신자들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의 권위를 강조하는 개신교 신자라 하더라도 자신이 속한 교단이나 유명한 목회자의 해석을 무조건 참이라고 믿는다면 같은 문제에 빠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 명제가 던지는 질문은 천주교만을 향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교회와 신자가 자신의 신앙이 진리 자체에 근거하는지, 아니면 진리를 가르친다고 주장하는 인간의 권위에 근거하는지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교회의 가르침을 믿고 지키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 참된 신앙이 되는지 분명하게 정리해야 합니다. 교회가 주님의 말씀에서 나온 진리를 가르치고, 신자가 그 진리를 이해하여 받아들이며 사랑과 체어리티의 삶으로 실천한다면, 교회의 가르침을 믿고 지키는 일은 참된 신앙의 중요한 표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정했기 때문에 참되며, 그 권위에 순종하는 것 자체가 곧 올바른 신앙이라고 생각한다면 문제가 달라집니다.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 진리는 교회의 권위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에게서 나옵니다. 교회는 그 진리를 받아들이고 가르치는 역할을 감당할 수 있지만, 진리의 근원이 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신앙의 목적은 어떤 교리 체계를 정확하게 보존하거나 제도적 질서를 유지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신자가 주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그 진리를 사랑하며 자신의 악을 죄로 여겨 피하고 이웃을 위한 선한 쓰임으로 살아가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가르침은 존중하되 그 가르침을 말씀보다 높여서는 안 되며, 자신의 이해와 양심을 사용하되 그것을 주님의 진리보다 높여서도 안 됩니다. 참된 신앙은 교회의 권위와 개인의 판단 가운데 어느 하나를 절대화하는 데 있지 않고, 둘 모두가 주님의 말씀과 그분의 사랑 앞에서 겸손하게 서는 데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믿고 지켜야 할 것은 어떤 인간 조직이 정했다는 이유만으로 진리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말씀 안에 밝혀 주신 참된 진리입니다. 그리고 그 진리를 실제로 살아갈 때 비로소 우리의 믿음은 지적인 동의를 넘어 살아 있는 신앙이 됩니다. (RC.009 해설)

 

요약

‘교회가 정한 신앙의 진리를 믿고 지키는 것이 올바른 신앙이다’라는 명제에는 신자가 개인적인 생각만을 절대화하지 않고 교회가 보존하고 가르치는 진리를 배우며, 그 가르침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는 중요한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천주교는 교도권이 성경과 성전에 담긴 계시를 권위 있게 해석한다고 가르치지만, 교도권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높다거나 임의로 새로운 신적 진리를 만들어 낸다고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또한 신자의 양심과 이해, 진리에 대한 탐구와 사랑의 실천을 인정하므로, 천주교가 무조건적인 복종만을 신앙의 전부로 가르친다고 설명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천주교는 로마 교황과 주교들의 교도권에 특별한 해석 권한을 부여하고, 확정적으로 제시된 교의에 신자가 신앙의 동의로 응답하도록 요구합니다. 이러한 권위 구조는 스베덴보리의 진리 이해와 중요한 차이를 드러냅니다. 그는 SS.76에서 교회가 말씀으로부터 존재하며 말씀에 대한 이해에 따라 교회의 영적 성격이 결정된다고 가르칩니다. 또한 HH.351–352에서는 다른 사람의 권위 때문에 어떤 가르침을 참이라고 확신하는 것과, 진리 자체를 사랑하여 그 참됨을 이해하는 신앙을 구별합니다. AC.7055:2 역시 교회의 교리가 참된 이유를 단지 권위 있는 사람들이 가르쳤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상태와, 진리를 진리 자체를 위하여 그리고 삶을 위하여 사랑하는 상태를 구별합니다. 따라서 오류의 핵심은 교회가 교리를 가르치거나 신자가 올바른 교리를 존중하고 순종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어떤 교리가 참되다는 궁극적인 근거를 교회의 제도적 권위에서 찾고, 신자 자신의 이해와 진리의 분별보다 그 권위에 대한 동의를 앞세우는 데 있습니다. 다만 이 비판은 천주교뿐 아니라 모든 교회와 신자에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스베덴보리의 가르침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그의 이름과 저작의 권위만을 내세우고 실제 말씀의 진리를 살피지 않는다면 같은 문제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가르침은 주님의 말씀에서 나오는 진리를 이해하고 실천하도록 돕는 한에서 참된 영적 쓰임을 감당합니다. 그러나 어떤 교회의 권위도 주님에게서 오는 진리 자체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번 명제는 ‘교회가 가르치는 참된 진리를 배우고 실천하는 것은 올바른 신앙이다’라는 의미에서는 참되지만, ‘교회가 정했기 때문에 참된 진리이며 그 권위에 순종하는 것 자체가 신앙의 기준이다’라는 의미로 이해한다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판정해야 합니다. 참된 신앙은 교리의 출처를 주님의 말씀에서 찾고, 그 진리를 이해와 의지 안에 받아들여 사랑과 체어리티의 삶으로 실천하는 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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