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2026/11/08) 부를 찬송은 순서대로 찬21, ‘다 찬양하여라’, 찬134, ‘나 어느 날 꿈속을 헤매며’입니다.

 

오늘은 창5 절별 주석 그 다섯 번째, 25절로 27절, AC 글 번호로는 523번에서 525번입니다. 먼저 창세기 본문입니다.

 

 

25므두셀라는 백팔십칠 세에 라멕을 낳았고 26라멕을 낳은 후 칠백팔십이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7그는 구백육십구 세를 살고 죽었더라 (창5:25-27)

 

제목은

 

므두셀라

 

 

이며, 다음은 이 특별한 AC 본문 리딩 예배를 위한 ‘3분 요약’입니다.

 

오늘 리딩에 들어가기 전에, 지금까지의 큰 흐름을 잠깐 돌아보겠습니다. 우리는 스베덴보리의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Arcana Coelestia)를 따라 창세기의 문자적 의미를 존중하면서 그 속뜻을 함께 읽고 있습니다.

 

창1에서는 천지창조를 인간의 거듭남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여섯 날의 과정을 통해 사람을 영적으로 거듭나게 하시고, 일곱째 날의 안식에 이르러 사랑으로 살아가는 천적 인간으로 이끄십니다.

 

창2에서는 에덴동산을 통해 태고교회의 천적 상태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향한 사랑으로부터 선과 진리를 알아차리는 ‘퍼셉션’(perception)을 지녔습니다. 그러나 창3에서는 사람이 주님보다 자신의 감각과 ‘프로프리움’(proprium)을 신뢰하면서 이 질서가 무너졌습니다.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인간을 보호하시며 구원의 길을 보존하셨습니다.

 

창4에서는 신앙과 체어리티(charity)의 관계를 살펴보았습니다. 가인은 체어리티에서 분리된 신앙을, 아벨은 체어리티를 나타냅니다. 가인의 계열은 라멕에 이르러 황폐해졌지만, 주님께서는 신앙이 완전히 소멸하지 않도록 보존하셨으며, 셋과 에노스를 통해 체어리티에서 비롯된 예배가 다시 이어지게 하셨습니다.

 

창5에서는 아담에서 노아까지의 족보가 단순한 개인들의 출생과 죽음이 아니라, 태고교회로부터 이어진 여러 교회의 계승과 영적 상태의 변화를 나타낸다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후속 교회들을 거치면서 선과 진리를 직접 알아차리던 퍼셉션은 점차 흐려졌습니다. 특히 마할랄렐 교회에서는 선한 쓰임에서 오는 기쁨보다 진리를 아는 기쁨을 더 좋아하는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지난주에는 에녹 교회의 특별한 역할을 살펴보았습니다. 에녹은 이전 교회들이 퍼셉션했던 선과 진리를 교리로 정리했으며,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셨다’는 말씀은 그 교리가 후대의 쓰임을 위해 보존되었다는 뜻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인간의 퍼셉션이 사라져 갈 것을 미리 아시고, 후대 사람들이 교리를 통해 다시 진리의 빛으로 나아갈 길을 준비하셨습니다.

 

이러한 흐름을 기억하면서, 오늘도 교회의 참된 생명이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주님께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하며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다음은 오늘 리딩 범위인 AC.523-525 요약입니다.

 

지난주 우리는 창5:21-24, AC.516-522를 통하여 에녹 교회의 특별한 역할을 살펴보았습니다. 태고교회의 후속 교회들에서 퍼셉션이 점차 흐려지자, 에녹 교회는 이전 교회들이 주님으로부터 퍼셉션했던 선과 진리를 교리로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셨다’는 말씀은 그 교리가 후대의 쓰임을 위해 보존되었다는 뜻임을 배웠습니다. 주님께서는 인간의 퍼셉션이 사라져 갈 것을 미리 아시고, 후대 사람들이 외적인 교리를 통해서라도 다시 진리의 빛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준비하셨습니다.

 

오늘은 그다음 말씀인 창5:25-27, AC.523-525를 읽습니다. 여기에는 므두셀라가 라멕을 낳고, 그 후에도 자녀들을 낳다가 구백육십구 세를 살고 죽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지난주 에녹의 기록과 달리 다시 ‘죽었더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오늘 우리는 므두셀라 교회의 영적 상태가 어떠했으며, 그 교회의 죽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25절은 ‘므두셀라는 백팔십칠 세에 라멕을 낳았고’라고 합니다. AC.523에 따르면 ‘므두셀라’(Methuselah)는 여덟째 교회를, ‘라멕’(Lamech)은 아홉째 교회를 나타냅니다. 여기서도 출생은 한 교회로부터 다음 교회가 이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단순히 한 사람이 아들을 낳았다는 기록이 아니라, 므두셀라 교회에서 라멕이라는 새로운 교회가 이어져 나왔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계승은 교회의 이름만 바뀌는 일이 아닙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태고교회의 후속 교회들은 주님으로부터 선과 진리를 지각하는 퍼셉션의 상태에 따라 서로 구별되었습니다. 초기 태고교회에서 분명하고 생생했던 퍼셉션은 후속 교회들을 거치면서 점차 일반적이고 흐릿해졌습니다. 므두셀라에서 라멕으로 이어지는 계승 역시 이러한 영적 변화의 연속선상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므두셀라 교회의 퍼셉션은 어떠했을까요? AC.524에서 스베덴보리는 이 교회의 구체적인 상태에 관한 직접적인 설명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뒤에 등장하는 노아 교회에 관한 설명을 통해 므두셀라 교회의 퍼셉션이 일반적이고 흐릿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결론을 제시합니다. ‘따라서 완전함이 감소했고, 그 완전함과 함께 지혜와 이해도 감소했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본문의 중심입니다. 태고교회의 퍼셉션은 단순히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는 지적 능력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주님께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를 내적으로 지각하는 능력이었습니다. 따라서 퍼셉션이 흐릿해졌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이 부족해졌다는 뜻이 아니라, 선과 진리를 분명하게 지각하는 영적 능력이 약해졌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지혜와 이해도 감소했습니다.

 

여기서 ‘지혜와 이해’는 세상에서 말하는 지능이나 학문적 지식의 많고 적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태고교회의 지혜는 주님께로부터 오는 선을 받아들이는 것과 관계되고, 이해는 그 선과 결합된 진리를 지각하는 것과 관계됩니다. 그러므로 퍼셉션의 완전함이 감소했다는 것은 주님께로부터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는 내적인 상태가 이전보다 약해졌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앞서 살펴본 에녹 교회의 상태와도 연결됩니다. AC.522에서는 에녹 교회의 퍼셉션이 이미 일반적이고 흐릿했으며, 개별적인 것들을 분명하게 구별하지 못하는 상태였다고 설명했습니다. 므두셀라 교회에서도 이러한 쇠퇴가 계속되었습니다. 태고교회의 후속 교회들은 처음의 영적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지 못했고, 세대를 거듭할수록 퍼셉션의 명료함과 완전함을 잃어 갔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므두셀라 교회의 퍼셉션이 흐릿해졌다고 해서 모든 선과 진리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교회의 퍼셉션이 일반적이고 흐릿했으며, 그 완전함과 함께 지혜와 이해가 감소했다고 설명할 뿐입니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퍼셉션이 완전히 소멸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이 말씀은 태고교회의 영적 생명이 한순간에 사라진 것이 아니라, 여러 후속 교회를 거치며 점차 쇠퇴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이제 26절과 27절은 므두셀라가 라멕을 낳은 후 칠백팔십이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고, 구백육십구 세를 살고 죽었다고 기록합니다. AC.525에서 스베덴보리는 이 말씀들도 앞에서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간단히 설명합니다. 새로운 상응이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앞에서 반복하여 설명한 연수와 출생과 죽음의 속뜻이 므두셀라 교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뜻입니다.

 

먼저 칠백팔십이 년과 구백육십구 년이라는 연수는 한 개인의 실제 생존 기간이 아니라, 그 이름으로 나타낸 교회의 시간과 상태를 의미합니다. 앞의 AC.486-488에서 살펴본 것처럼 창5의 연수들은 교회의 영적 상태와 관계됩니다. 다만 스베덴보리는 이번 번호에서 이 숫자들의 개별적인 속뜻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숫자 자체에 임의의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므두셀라 교회의 영적 상태와 그 계승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어 ‘자녀를 낳았으며’라는 말씀은 그 교회에 속한 진리들과 선들을 나타냅니다. 앞에서 배운 것처럼 아들들은 진리들을, 딸들은 선들을 의미합니다. 므두셀라 교회에서도 선과 진리에 속한 것들이 계속 이어졌지만, 그것들은 이미 일반적이고 흐릿해진 퍼셉션의 상태와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교회의 영적 상태가 약해져 가는 중에도 그 교회 안에 진리와 선에 속한 것들이 여전히 존재했음을 보여 줍니다.

 

마지막으로 27절은 ‘그는 구백육십구 세를 살고 죽었더라’고 합니다. 여기서 ‘죽었더라’는 말씀 역시 단순한 육체적 죽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앞의 AC.492와 AC.494에서 살펴본 것처럼, 그것은 해당 교회를 특징짓던 고유한 퍼셉션의 상태가 끝났다는 뜻입니다. 므두셀라 교회의 퍼셉션은 이미 흐릿하고 일반적인 상태에 있었으며, 마침내 그 교회 고유의 영적 상태도 끝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므두셀라 교회의 죽음이 곧 모든 교회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25절에서 므두셀라가 라멕을 낳았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므두셀라 교회의 고유한 상태는 끝났지만, 그 뒤를 이어 라멕이라는 아홉째 교회가 등장합니다. 이처럼 창5의 계보는 각 교회의 출현과 계승과 소멸을 반복하여 보여 주면서, 태고교회의 영적 상태가 어떻게 변화해 갔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오늘의 AC.523-525를 하나로 모아 보면, 세 가지 중요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퍼셉션의 점진적인 쇠퇴’입니다. 므두셀라 교회에 이르러 퍼셉션은 일반적이고 흐릿한 상태에 있었으며, 그 완전함도 감소했습니다. 이것은 태고교회의 영적 생명이 후속 교회들을 거치며 점차 약해지고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둘째는 ‘퍼셉션과 지혜와 이해의 관계’입니다. 퍼셉션의 완전함이 감소하자 지혜와 이해도 함께 감소했습니다. 이는 참된 영적 지혜와 이해가 단순한 지식의 축적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로부터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는 내적인 상태와 깊이 관계되어 있음을 가르칩니다.

 

셋째는 ‘교회의 소멸과 계승’입니다. 므두셀라 교회는 그 고유한 퍼셉션의 상태가 끝남으로써 죽음을 맞았지만, 그 뒤에는 라멕 교회가 이어졌습니다. 한 교회의 영적 상태가 끝나는 것과 모든 교회의 계승이 끝나는 것은 서로 다릅니다. 따라서 창5의 반복되는 ‘죽었더라’는 말씀을 단순히 교회의 완전한 단절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이 세 가지를 함께 생각하면,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교회의 참된 생명이 어디에 있는지를 묻게 합니다. 교회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 많은 교리와 지식을 보존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교회의 영적 생명이 온전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교회 안에 주님께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가 얼마나 살아 있으며, 사람들이 그것을 얼마나 내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자신의 신앙에도 적용됩니다. 우리는 말씀을 많이 읽고 교리를 깊이 이해할수록 자신의 신앙도 그만큼 성숙해졌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물론 말씀과 교리를 배우는 일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진리를 아는 것과 그 진리를 내적으로 받아들여 사랑하고 실천하는 것은 서로 구별됩니다. 지식이 늘어나더라도 주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을 위한 선한 쓰임이 약해진다면, 우리의 영적 상태 역시 그만큼 약해질 수 있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서 퍼셉션의 완전함과 함께 지혜와 이해도 감소했다는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참된 지혜는 단순히 많은 것을 아는 데 있지 않고, 주님께서 가르치시는 선을 사랑하며 그 선에 따라 살아가는 데 있습니다. 참된 이해 역시 진리를 정확하게 설명하는 능력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진리가 우리의 삶을 인도하도록 받아들이는 데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주님께서 에녹의 교리를 후대의 쓰임을 위해 보존하셨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오늘은 그러한 교리가 필요하게 된 배경, 곧 인간의 퍼셉션이 계속 흐려지고 지혜와 이해가 감소해 가는 모습을 다시 확인합니다. 이 두 말씀은 서로 연결됩니다. 인간의 내적인 능력이 약해져 가는 가운데서도, 주님께서는 후대 사람들이 선과 진리를 배울 수 있는 길을 미리 준비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창5:25-27은 단지 므두셀라라는 사람이 오랫동안 살다가 죽었다는 기록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 속뜻으로는 태고교회의 여덟째 교회에서 아홉째 교회로 이어지는 계승과, 그 과정에서 계속되는 퍼셉션의 쇠퇴를 보여 줍니다. 특히 퍼셉션의 완전함이 감소할 때 지혜와 이해도 함께 감소한다는 사실을 통해, 교회의 참된 영적 생명이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에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이것이 오늘 창5:25-27, AC.523-525를 통하여 우리가 배우는 말씀입니다. ‘교회의 참된 생명은 오랜 역사나 많은 지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는 내적인 상태에 있으며, 그 상태가 약해질 때 지혜와 이해도 함께 약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과 교리를 배우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진리를 사랑으로 받아들이며 이웃을 위한 선한 쓰임으로 실천함으로써, 주님께서 주시는 참된 지혜와 이해 안에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이상 요약을 마치고, 아래는 AC 본문, 해설 및 심화입니다.

 

 

AC.523, 창5:25, ‘므두셀라는 백팔십칠 세에 라멕을 낳았고’ (AC.523-524)

므두셀라는 백팔십칠 세에 라멕을 낳았고 And Methuselah lived a hundred eighty and seven years, and begat Lamech. (창5:25) AC.523 ‘므두셀라’(Methuselah)는 여덟 번째 교회를, ‘라멕’(Lamech)은 아홉 번째 교회를 의

bygrace.kr

 

AC.524, 창5:25, ‘퍼셉션 관련, 연명 단계에 접어든 교회들’

므두셀라는 백팔십칠 세에 라멕을 낳았고(창5:25) AC.524 이 교회의 어떠함(quality)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퍼셉션의 능력이 일반적이고 흐릿하였다는 점은 ‘노아’라

bygrace.kr

 

AC.525, 창5:26-27, ‘라멕을 낳은 후 칠백팔십이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6라멕을 낳은 후 칠백팔십이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7그는 구백육십구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Methuselah lived after he begat Lamech seven hundred eighty and two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And all the days

bygrace.kr

 

 

오늘 AC 리딩 본문 전체는 여기까지이고, 오늘은 범위가 작아 따로 필독 추천은 하지 않겠습니다. 다음은 다음 주(20261115) 리딩 본문(창5:28-32, AC.526-536) 소개입니다.

 

다음 주에는 창5:28-32, AC.526-536을 통하여 ‘라멕’(Lamech)과 ‘노아’(Noah)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라멕은 태고교회에서 이어진 아홉째 교회로, 퍼셉션이 거의 소멸해 가는 마지막 단계에 해당합니다. 이어 등장하는 노아는 이전 교회들과는 다른 새로운 교회의 시작을 나타냅니다. 특히 ‘노아’라는 이름에 담긴 위로와 안식의 의미를 살펴보면서, 태고교회의 종말이 가까워지는 가운데 주님께서 어떻게 새로운 교회를 준비하셨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네, 이상입니다.

 

 

한결같은 교회 변일국 목사

설교

2026-11-08(D1)

 

2676, 5, 창5.5, 2026-11-08(D1)-주일예배(창5,25-27, AC.523-525), ‘므두셀라’.pdf
0.43MB

 

 

주일예배(2026/11/01, 창5:21-24, AC.516-522), ‘에녹’

※ 오늘(2026/11/01, 성찬) 부를 찬송은 순서대로 찬20, ‘큰 영광 중에 계신 주’, 찬230, ‘우리의 참되신 구주시니’, 찬133, ‘하나님의 말씀으로’입니다. 오늘은 창5 절별 주석 그 네 번째, 21절로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