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기독교인이든 비기독교인이든 누구에게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한, 스베덴보리(1688-1772, 스웨덴)의 대표 저작인 ‘Arcana Coelestia’(약어 AC)에 대한 소개입니다.

 

 

에마누엘 스베덴보리(Emanuel Swendenborg, 1688-1772)

다음은 제가 번역하는 책들의 저자에 대한 간단한 소개입니다. 에마누엘 스베덴보리는 1688년,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 출생, 웁살라대학에서 언어학, 수학, 광물학, 천문학, 생리학, 신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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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스베덴보리의 수십 권에 달하는 저작들은 전부 약어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AC는 ‘천계비의(天界秘義, Arcana Coelestia, 1749-1756, 라틴)의 약어이고, HH는 ‘천국과 지옥(Heaven and Hell, 1758), CL은 ‘결혼애(結婚愛, Conjugial Love, 1768)의 약어입니다.

 

 

스베덴보리의 저서들(Writings)

다음은 스베덴보리의 저서목록(Writings)입니다. 인류사에 존재했던 사람 중 가장 지능이 높은 사람으로 기네스 북에는 밀턴, 괴테 그리고 스베덴보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마 생전에 가장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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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는 보통 ‘창세기와 출애굽기의 속뜻을 풀어낸 책’으로 소개되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더 넓고 깊은 목적을 가진 저작입니다. 이 책은 성경의 문장을 하나하나 해석하는 주석서이면서 동시에, 성경이 어떤 책인지, 왜 살아 있는 말씀이라고 불리는지, 그리고 그 말씀이 인간의 삶과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는지를 설명하는 체계적인 신학서입니다. 저자인 스베덴보리는 이 책을 통해 ‘성경은 단순한 종교 문헌이 아니라, 하늘과 인간을 연결하는 언어’라는 주장을 일관되게 펼칩니다.

 

이 책의 가장 핵심적인 전제는 ‘성경에는 문자로 보이는 의미 너머에 속뜻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성경을 역사 이야기, 도덕 교훈, 종교 규범의 모음으로 읽습니다. 물론 그런 읽기도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그것이 성경의 전부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문자에 드러난 이야기들은 겉모습일 뿐이며, 그 안에는 인간의 내면 상태, 신앙의 성장 과정, 그리고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깊은 내용이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이 숨겨진 차원을 그는 ‘아르카나’, 곧 ‘비밀’이라고 부릅니다.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의 큰 특징 중 하나는, 성경의 이야기를 과거의 사건으로만 읽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의 천지창조 이야기는 우주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설명하는 과학적 보고서가 아니라, 한 인간이 무질서한 상태에서 질서를 회복하며 새롭게 태어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고 설명합니다. 빛과 어둠의 분리, 물과 땅의 구분, 생명의 점진적 등장 등은 모두 인간 내면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단계를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은 ‘그때 거기에서 있었던 일’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야 할 일’을 말하고 있다고 이해됩니다.

 

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중요한 개념은 ‘상응’입니다. 상응이란,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에 존재하는 질서 있는 연결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은 단순한 물리적 빛이 아니라 진리를, ‘’은 진리를 받아들이는 상태를, ‘’은 인간의 마음 상태를 상징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성경의 거의 모든 사물과 사건은 영적인 의미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는 이 상응의 법칙을 통해 성경 전체를 하나의 일관된 구조로 읽어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어렵게 느끼는 이유는, 익숙한 성경 이야기가 전혀 다른 각도에서 해석되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단순한 최초의 남녀가 아니라 인간 내면의 상태를 나타내며, 에덴동산은 지리적 장소가 아니라 사랑과 지혜가 조화를 이루는 영적 상태를 뜻합니다. 뱀은 실제 동물이 아니라 인간 안에 있는 자기중심적 사고를 상징합니다. 이런 해석은 처음에는 낯설고 심지어 거부감을 줄 수도 있지만, 스베덴보리는 이것이 임의적인 해석이 아니라 성경 전체에 일관되게 적용되는 원리라고 주장합니다.

 

이 책이 단순한 상징 해설서와 다른 점은, 모든 해석이 결국 ‘주님’을 중심으로 모인다는 점입니다.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에 따르면 성경의 모든 내용은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주님을 가리킵니다. 주님은 생명의 근원이며, 성경이 살아 있는 이유도 그 안에 주님을 향한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어떤 구절이든 주님과의 관계에서 이해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직 문자 차원에 머물러 있는 이해라고 말합니다.

 

이 책은 또한 인간에 대한 매우 현실적인 통찰을 제공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인간을 ‘겉 사람’과 ‘속 사람’으로 구분합니다. 겉 사람은 우리가 일상에서 드러내는 생각과 행동의 차원이고, 속 사람은 그 배후에 있는 사랑과 의도의 차원입니다.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는 성경 이야기가 바로 이 속 사람의 변화와 회복을 다루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 보면, 성경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라기보다 ‘나 자신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많아집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이 책이 신앙을 지식이나 교리로만 다루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신앙을 삶과 분리된 개념으로 보지 않습니다. 참된 신앙은 사랑과 행동으로 드러나며, 인간의 삶 전체를 변화시키는 힘입니다.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에서 반복해서 강조되는 것은, 진리는 반드시 선과 결합되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살아 있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이 때문에 이 책은 이론서이면서 동시에 매우 실천적인 책이기도 합니다.

 

일반 독자에게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의미는, 성경을 읽는 새로운 눈을 열어 준다는 데 있습니다. 이전에는 이해되지 않던 본문이 살아 움직이며, 반복되는 이야기와 긴 족보, 복잡한 율법들조차도 의미를 갖게 됩니다. 성경이 갑자기 ‘지루한 책’에서 ‘끝없이 깊어지는 책’으로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물론 이 과정은 쉽지 않으며, 단번에 이해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성경이 원래 그런 책이라고 말합니다. 천국과 연결된 책이기에, 한 번에 다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는 독자에게 어떤 믿음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이 책은 ‘이렇게 믿어라’라고 명령하기보다, ‘이렇게 볼 수도 있다’는 길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는 언제나 주님과의 더 깊은 만남, 그리고 삶의 변화가 놓여 있습니다.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새로운 교리를 배우는 것이라기보다, 성경을 통해 자기 자신과 삶, 그리고 하나님을 다시 바라보는 여정을 시작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 아래 링크는 그 첫 번째 글인 AC.1번 글로 이어지는, AC를 시작하는 링크입니다. 라틴어 원본 대신 Potts 영역(1888-1902)으로 대신하였으며, 각 글 하단에 이해를 돕기 위해 원본에는 없는 해설들을 제가 달아 나가고 있으니, 읽어 보시고 도움들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 혹시 특정 번호의 글을 검색하실 때에는 글 목록 우측 상단 돋보기를 클릭, 왼쪽 목록에서 '태그'를 선택하신 후, 'AC 3' 형식으로 찾으시거나 '제목'에서 특정 키워드로 찾으시면 되겠습니다. 'AC 3'처럼 가운데 한 칸 띄는 이유는 이 검색기가 특수 문자 사용을 불허하기 때문이며, 그래서 처음부터 태그 입력을 저런 형태로 해놓았습니다.

 

 

AC.1, 서문, 'Arcana Coelestia, 창, 출 속뜻 주석을 시작하며' (AC.1-5)

AC.1 구약의 말씀을 단순히 겉 글자로만 보아서는, 그 안에는 하늘의 깊은 비밀들이 들어 있으며,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총체적으로나 개별적으로나 주님과 주님의 천국, 교회, 종교적인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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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AC.6

 

사람의 거듭남의 연속적인 상태들인 여섯 (days), 곧 여섯 시기(periods), 전반적으로 다음과 같습니다. The six days, or periods, which are so many successive states of the regeneration of man, are in general as follows.

 

 

해설

 

이 문장은 ‘Arcana Coelestia’ 전체의 해석 방향을 결정하는 핵심 선언으로서, 창세기 1장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한 문장으로 규정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창세기 1장의 ‘여섯 날(days)을 시간의 흐름이나 물리적 우주 창조의 단계로 보지 않고, 사람 안에서 일어나는 거듭남의 여섯 연속적 상태로 정의합니다. 이를 분명히 하기 위해 그는 ‘’이라는 표현에 곧바로 ‘시기(periods)라는 설명을 덧붙이는데, 이는 창세기의 창조 기사가 시간표가 아니라 내적 상태의 변화에 대한 기록임을 명확히 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이 문장은 창세기 1장을 역사서나 자연과학적 기원 서술이 아니라, 인간 영혼의 재창조에 관한 계시로 읽도록 방향을 전환시킵니다.

 

스베덴보리가 여기서 강조하는 핵심 개념 중 하나는 ‘연속적인(successive)이라는 표현입니다. 거듭남은 단번에 완결되는 사건이 아니라, 주님이 질서와 순서에 따라 사람 안에서 점진적으로 이루어 가시는 과정입니다. 각 ‘(days), 각 ‘시기(periods)는 서로 분리된 독립적 단계가 아니라, 앞선 상태에 기초하여 다음 상태가 열리는 필연적 연속을 이룹니다. 이 질서는 영적 생명이 형성되는 데 본질적인 구조로, 어떤 단계를 건너뛰거나 임의로 재배열할 수 없습니다. 창세기 1장의 순서는 곧 거듭남의 질서이며, 이는 주님의 신적 질서 자체를 반영합니다.

 

이 문장은 또한 ‘창조’와 ‘거듭남’을 동일한 틀 안에서 이해하게 합니다. 스베덴보리에게서 창조는 과거에 한 번 일어난 우주적 사건으로 제한되지 않습니다. 사람이 거듭날 때, 그는 실제로 ‘새로 창조’되며, 그래서 거듭남은 새로운 창조입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창세기 1장은 인류 최초의 사건을 기록한 문서가 아니라, 모든 시대 모든 사람 안에서 반복되는 영적 현실을 묘사한 말씀입니다. 각 사람이 거듭남을 시작할 때마다, 그 사람 안에서 창세기 1장의 여섯 ‘(days), 여섯 ‘시기(periods)가 다시 전개됩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이 여섯 상태의 주체가 사람이 아니라 주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여섯 ‘(days)을 인간의 자기 수련 단계나 심리적 성장 도식으로 제시하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전적으로 주님이 사람 안에서 역사하시는 상태들이며, 사람은 이 과정에서 협력할 수 있을 뿐, 그 질서와 생명을 만들어내는 존재가 아닙니다. 따라서 이 여섯 시기는 인간 중심적 영성의 단계가 아니라, 주님의 자비와 진리가 인간의 속 사람과 겉 사람을 어떻게 재구성하는지를 보여 주는 신적 사역의 단계들입니다.

 

문장 속 ‘전반적으로(in general)라는 표현 역시 의미심장합니다. 이는 여섯 ‘(days)의 질서가 보편적이라는 점을 말하면서도, 각 개인의 삶에서 그것이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방식은 다양할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어떤 이는 특정 단계에 오래 머물고, 어떤 이는 중간 단계까지만 이르며, 또 어떤 이는 더 깊은 단계로 나아갑니다. 그러나 그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거듭남의 기본 구조와 순서는 변하지 않습니다. 이 문장은 보편성과 개별성을 동시에 포괄하는 거듭남의 틀을 제시합니다.

 

이 한 문장은 이후에 이어질 모든 세부 해설의 문지방 역할을 합니다. 스베덴보리는 곧 이어서 빛의 창조, 궁창의 분리, 식물의 발아, 광명체의 배치, 생물의 생성, 사람의 창조를 차례로 설명하며, 이 모든 것이 인간 내면에서 일어나는 영적 사건임을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AC.6은 단순한 개요 문장이 아니라, 창세기 1장을 ‘거듭남의 지도’로 읽게 하는 해석의 출발점이며, 주님이 인간을 어떻게 어둠에서 빛으로, 혼돈에서 질서로, 자기중심에서 주님 중심으로 이끄시는지를 보여 주는 대서사의 첫 문장입니다.

 

 

 

AC.7, 창1 개요, '첫 번째 상태'

AC.7 첫 번째 ‘상태’(state)는 앞서는 상태로서, 유아기에서부터의 상태와 거듭남 바로 직전에 있는 상태를 모두 포함합니다. 이 상태를 ‘혼돈’(void), ‘공허’(emptiness), 그리고 ‘흑암’(thick 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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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5, 서문, '주님의 신적 자비'(the Lord’s Divine mercy)

AC.5 이 모든 말이 사실이라는 것은 주님으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따라서 미리 말씀드릴 것은, 주님의 신적 자비(the Lord’s Divine mercy)로 말미암아, 저는 이제 수년 동안 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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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기존 교회, 그러니까 천주교든 개신교든, 더 나아가 정교회든 다니시던 분들이 우리 교회를 다니겠다 하시면 스베덴보리 오리엔티드된 저와 저희 교인들이 조심하고, 또 지혜롭게 행해야 할 것들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이 질문은 스베덴보리적 신앙을 중심으로 하는 우리 공동체가, 기존 교회 출신 성도들을 어떻게 지혜롭고 안전하게 맞이할 것인가? 하는 매우 실제적이고 깊은 목회적 질문입니다. 천주교 · 개신교 · 정교회 등 전통 교회 출신 성도들이 새로 오게 되면, 그분들이 느낄 수 있는 심리적 충격, 익숙한 언어 체계의 변화, 기존 교회와의 갈등 불안 등을 고려해야 합니다. 아래는 스베덴보리 오리엔티드 교회가 반드시 유념해야 할 핵심 항목들을 매우 실천적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안전지대(Safe Zone)를 먼저 만들어라

 

기존 교회에서 오시는 분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감정은 이질감입니다. 따라서 첫 단계는 너무 낯설지 않은 환경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가령, 익숙한 용어를 우선 존중하기 같은 건데요, 보통 하나님에 익숙하신 분들에게 주님을 강조한다든지, 성경 말씀말씀(Word)이라고 은근히 구별하신다든지, 그 밖에도 은혜’, ‘믿음’, ’성령’, ‘십자가 등, 그분들에겐 매우 익숙한 이런 용어들을 억지로 스베덴보리식으로 바로 바꾸지 않아도 됩니다. 그들의 언어를 먼저 허용해야 마음이 열립니다. 하나 더 살펴보자면, 기존 교회의 신앙고백을 부정하는 듯한 표현 금지가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스베덴보리가 더 깊습니다라든지, “기존 교회는 피상적입니다와 같은 이런 말은 절대 금물입니다. 사람은 기존 신앙의 명예를 건드리면 마음을 닫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개종(Secondary Conversion) 을 강요하지 말라

 

다른 교회 출신 분들에게 무심코 하는 가장 위험한 실수는, 이제 주님이 스베덴보리를 통해 말씀하신 이 모든 것을 새롭게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같은 분위기를 직, 간접적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게 아니고, 그러니까 그분들의 기존 신앙을 부정하는 듯한 태도 대신, 기존에 믿으신 것 위에 덧붙여, 말씀을 더 깊이 이해하는 차원으로 안내해야 합니다. 스베덴보리도 새 신앙을 요구하지 않았고, 단지 기존 신앙의 내적(內的) 이해를 열어준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존 신앙이 말씀의 이쪽 면만 보았다면, 스베덴보리는 주님을 통해 말씀의 저쪽 면도 보게 한 것이지요. 마치 사람을 영과 육, 육과 영, 양쪽 면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세심한 교리 충돌 관리가 필요함

 

기존 교회 출신이 가장 충격받는 지점이 교리의 충돌입니다. 예를 들면, 삼위일체 이해라든지 대속론이나 지옥 이해, 죽음 후 즉시 심판/부활, 천국과 지옥의 구조나 예배, 성례전, 재림 이해 등인데요, 이 차이를 절대 한 번에 좌악 꺼내시면 안 됩니다. 그러지 마시고, 먼저 공통분모를 말해준 다음, 이런 차이는 있지만, 그러나 충돌하는 게 아니라는 설명과 함께, 나중에 내적 의미와 구조를 조심스럽게 소개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 이유는 우리도 처음에 이랬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세심하고 따뜻한 맞춤식 보살피심을 통해 우리도 오늘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기존 교회에 대한 존중의 톤을 확실히 유지하기

 

천주교, 개신교, 정교회, 루터교 등 모두 주님 안에서 존재하는 교회들입니다. 주님의 사랑과 허락, 인도하심으로 생겨난 교회들이라는 말입니다. 스베덴보리도 이들을 비판보다 긍정적으로 보았습니다. 따라서 우리 교회 내에서도 다른 교회는 다 틀렸다라든지 스베덴보리가 더 우월하다, 혹은 이제는 제대로 믿자 같은 이런 말들이 나오지 않도록 잘 지도해야 합니다. 새로 오신 분들의 마음은 존중 → 평안 → 신뢰 → 배우려는 마음이라는 순서로 열린다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내 편을 만드는 게 아니라 말씀의 다른 편을 볼 수 있도록 돕는 사람들입니다.

 


새 신자 교육은 삼중 구조로 운영해야 함

 

기존 신앙을 부정하지 않는 설교

 

예를 들면, 창세기 해설이나 산상수훈, 혹은 시편 등 기존 개신교, 천주교와 크게 갈등 없는 본문들 위주로 설교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점진적 스베덴보리 소개

 

스베덴보리 교회이니 스베덴보리에 대한 소개는 당연히 필요합니다. 그때 영적 세계나 말씀의 내적 의미, 즉 속뜻, 선과 진리의 결합이나 인간, 자유, 양심 등, 이런 부분은 기존 신앙과 충돌이 거의 없으므로 먼저 소개하기 좋습니다.

 

고급 교리 교육은 사적, 개별적으로

 

좀 깊고 무거운 주제들, 가령 대속론 이해라든가 부활과 심판, 동일 인격과 영적 인격, 결혼의 속뜻 같은 이런 주제는 3~6개월이나 충분한 시간이 흐른 후 사적으로, 혹은 전체 프로그램 가운데 특별반 같은 걸 만들어서 하는 것이 좋습니다. 참고로, 여기 동일 인격이란 사람은 사후에도 생전의 모든 것, 즉 성격, 애정, 사고 구조 등을 그대로 가지고 간다는 것입니다. 생전과 사후의 인격이 동일해야 상벌이 가능합니다.

 


기존 교회 배경 성도들의 감정을 이해해야 함

 

기존 교회 출신은 종종 이런 마음입니다. 여기가 너무 좋아. 하지만 내 신앙 전부가 뒤집히는 건 아닐까? 같은 마음 말이죠그러므로 목회자와 선배 성도들의 역할은, 천천히 오셔도 되요. 급할 것 없습니다라든지, 기존 신앙도 귀하지요. 주님도 그 신앙으로 당신을 여기까지 인도하셨잖아요? 우리는 그 위에 더 풍성한 것을 드릴 뿐이에요, 혹은 무엇이든 편하게 물어보셔요 와 같은 이런 태도가 필요합니다. 항상 잘 모르겠을 땐, 나는 처음 왔을 때 어땠나를 떠올려 보시면 됩니다.

 


교인들의 언행을 세심하게 지도해야 함

 

스베덴보리 전통은 지식적 깊이 때문에 기존 교회 출신에게 우월감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표현을 금하셔야 합니다. 예를 들면, 그건 내적 의미로 보면 달라요”, 원래 이 구절의 참뜻은 …입니다”, 스베덴보리를 읽으면 이런 오해는 없어집니다” 같은 표현들인데요, 이런 말은 상대방에게 “나는 그동안 잘못 믿어왔다”라는 상처를 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대신, 이 구절을 이런 시각에서 볼 수도 있습니다”나 새로운 관점이 조금 도움이 되실지 모르겠습니다처럼 겸손한 태도가 수반되어야 함을 지도하셔야 합니다.

 


일상 신앙에서 먼저 신뢰를 얻게 해야 함

 

기존 교회 출신은 새로운 교리에 대해선 아직 조심스러워도 사람들의 삶과 사랑의 분위기를 보고 마음을 엽니다. 예를 들면, 교인끼리의 친절과 진리 사랑뒷말이 없는 공동체말씀이 중심에 있는 예배기도와 말씀 생활의 균형겸손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와 같은 이런 것에서 먼저 감동합니다. 삶의 향기 → 교리에 대한 신뢰 → 마음의 개방이라는 이런 흐름이 필수적입니다.

 


기존 교회와의 갈등을 절대 유발하지 않도록 지도

 

새로 오시는 분이 기존 교회와 갈등하면 그분도 상처받고, 우리 교회도 오해받습니다. 따라서 기존 교회를 헐뜯는 발언이라든지, 이제 그 교회 가지 마세요” 같은 말, 그리고 기존 목회자를 비판하는 태도 등은 금지하셔야 합니다. 모두가 기억하셔야 할 것은 스베덴보리적 영성은 부정적 결별이 아니라 긍정적 성숙이라는 사실입니다.

 


스베덴보리 교회의 본질은 포용임을 기억하기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주님은 각 사람을 그가 알고 있는 진리의 경로 안에서 이끄십니다. 따라서 다른 교단에서 오시는 분들을 그들이 믿어온 길에서 부정하거나 뜯어고치려 들지 말고, 그 길을 더 깊고 더 밝게 해주면 됩니다. 스베덴보리 교회는 폐쇄적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열린 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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