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어리티(charity)란 무엇인가 (2025/10/14)

 

체어리티(charity), 곧 신앙의 선함이 있을 때, 그때 인정(acknowledgment), 곧 신앙의 진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지식, 이성, 그리고 이해에 속한 것들로 말미암아 거듭나고 있을 때, 그 목적은 체어리티를 받을 수 있는 토대, 즉 그의 마음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 체어리티로부터, 혹은 그 체어리티로 사는 삶으로부터 그는 그로 말미암아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지요. 그렇게 그는 변화, 곧 거듭나는 것이지, 그전에는 아닙니다. When charity is present, which is the goodness of faith, then acknowledgment is present, which is the truth of faith. When therefore a man is being regenerated according to the things of knowledge, of reason, and of understanding, it is to the end that the ground may be prepared—that is, his mind—for receiving charity; from which, or from the life of which, he thereafter thinks and acts. Then he is reformed or regenerated, and not before. (AC.654, 6:16)

 

체어리티는 주님 사랑이라는 영이 이웃 사랑이라는 육을 입는 것과 같습니다.

 

신앙의 진리는 신앙의 선, 곧 체어리티로 표현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지식, 이성 같은 이해에 속한 것들로 먼저 거듭나고 있는 이유는 그렇게 해서 먼저 우리의 마음을 준비, 체어리티의 삶을 살고픈 마음이 들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거듭남, 심령의 변화, 영혼의 개혁, 참된 회심은 이렇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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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mercy)와 은혜(grace) (2025/10/11)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6:8)

 

말씀에 ‘긍휼’로도 나오는 ‘자비(mercy)와 우리 대부분이 흔히 쓰는 ‘은혜(grace)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우리는 평소 그냥 무심코 쓰지만 말입니다.

 

말씀에서 ‘자비’는 마음이 겸손한(in humiliation of heart) 사람들에게, ‘은혜’는 생각이 겸손한(in humiliation of thought)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표현입니다.

 

그래서 천적인 사람들(天的, the celestial)은 주님께 ‘자비’를 구하지만(implore), 영적인 사람들(靈的, the spiritual)은 ‘은혜’를 구합니다(beseech).

 

천적이었던 태고교회, 곧 아담교회가 저물고, 홍수 후 새롭게 일어나는 고대교회, 곧 노아교회는 영적이었는데, 그래서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Noah found grace in the eyes of Jehovah) 하는 것입니다. ‘자비’가 아니고 말입니다.

 

의지(will)가 주님을 향해 열렸던 태고교회가 그 후손으로 갈수록 변질, 탐욕(cupidity)으로 변하면서 닫히는 바람에, 주님이 의지 대신 새로운 창, 곧 이해(understanding)에 해당하는 지적 파트(intellectual part)라는 우회로를 여셨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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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걸음 남았는데 그걸... (2025/10/10)

 

한 걸음 남았는데 그걸...

 

오래전부터 내게 들리는, 나의 내면의 귀에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입니다.

 

바로 다음 단계, 곧 몸에서 들려 영계로의 여행, 그러니까 주님의 초청으로 천국 방문을 할 수 있는 상태변화를 코앞에 두고 머뭇거린다는 말씀입니다. 아니 그보다 앞서 주님이 보내신 천사를 직접 만나는 경험의 시작을 말이지요.

 

저는 압니다. 이 한 걸음이 뭘 의미하는지 말이지요...

 

그것은 바로 세상을 향한 두리번거림입니다. 그러니까 습관처럼 폰을 잡고 유튜브를 켠다든지, 누우면 무의식적으로 켜는 네이버 웹툰이라든지 말이지요. 특히 이 웹툰은 이 나이에 밝히기 참 부끄러운...

 

어쨌든 바로 이런 빈틈, 살짝 열린 틈 때문에 영계 체험이 계속 미뤄지고 있다는 것을 저는 분명히 지각, 즉 퍼셉션하고 있습니다.

 

퍼셉션(perception)은 내면이 열린 사람들에게 체험되는, 그러니까 허락하시는 하늘로부터 오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지각 능력입니다.

 

그래서 일단은 웹툰부터 끊고 있습니다. 그다음 이야기들이 몹시 궁금한 몇 개가 있지만... 그때마다 천국의 영광과 아름다움을 떠올리며 외면, 곧 세상을 향해서는 눈을 감고, 오직 천국을 향해서만 마음의 얼굴을 향하고 있습니다.

 

다음 순서는 유튜브입니다. 이 역시 서서히 줄이고 있습니다.

 

물론 저 역시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여 현 시국에 주님으로 말미암는 의로움과 올바름이 실현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만 말입니다.

 

남은 한 걸음을 위해, 그리고 그때 실현될 새로운 차원의 영적 진보를 위해 참고 또 참고 있습니다.

 

카톡 활동을 내려놓은 지 두 달 반... 참을 만한 걸 보면 이 또한 잠잠해질 줄 믿습니다.

 

세상을 향한 창이 열린 만큼 천국을 향한 창이 닫히고, 그 반대 역시 그렇답니다. 세상과 천국 둘 다 동시에 열 수는 없다고 하네요. 사람의 영혼은 말입니다.

 

저는 먼저 주님과 천국을 향해 열리고, 그 상태를 유지하며 세상을 바라볼 수 있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스베덴보리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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