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적, 영적, 천적 (2025/9/15)

 

영어로는 natural, spiritual, celestial(heavenly)로 표기할 수 있는 이 세 종류의 상태는 곧 사람을 영적으로 구분한 상태이며, 각각 일층천, 이층천, 삼층천에 상응하지만, 한편으론 ‘거듭남’의 관점에서 본 구분이기도 합니다.

 

이 상태들을 자세히 설명하는 건 거의 책을 쓰는 수준이 될 것 같아 아주 단순하게 비유적으로만 살짝 말씀드립니다.

 

밭에서 갓 수확한, 그래서 여전히 흙이 묻어 있고 아직 다듬지 않은 거친 채소나 농장의 과일, 그리고 육류나 생선 등의 식재료들의 상태, 바로 이 상태를 가리켜 자연적이라 하며, 영적으로는 아직 거듭남이 시작되지 않은 상태라 할 수 있겠습니다. 창1:2의 ‘혼돈(void)과 ‘공허(emptiness), ‘흑암(thick darkness) 상태를 말합니다.

다음은 저런 식재료들을 잘 다듬고 정성껏 씻어 준비한 상태, 이 상태를 가리켜 영적이라 하며, 창1:3-31의 천지창조의 육일, 곧 사람의 거듭남 여섯 단계를 말합니다. 첫째 날, 둘째 날... 등으로 구분한 이 순서를 따라 사람은 점점 성숙, 마침내 거듭남의 최종단계, 그러니까 이제 요리를 시작해도 될 단계가 됩니다.

 

모든 준비를 끝마쳤어도 이것이 정말 먹기 좋은 훌륭한 음식, 아름다운 요리가 되려면 결정적으로 열을 가해야 하는데 이 열이 바로 사랑, 곧 창조주이신 주 여호와 하나님,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며, 이 사랑의 열로 변화된 최종 상태, 이 상태가 바로 천적이라는 상태입니다. 창2:1-17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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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과’의 속뜻 (2025/9/12)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2:17)

 

유명한 ‘선악과’ 본문입니다. 이 본문의 속뜻은,

 

...참됨과 선함에 익숙해지는 데 있어 주님으로 말미암은 모든 퍼셉션으로는 괜찮지만, 자아와 세상으로 말미암는 건 안 된다는 것, 즉 우리가 신앙의 신비를 감각과 기억에 속한 걸 가지고 조사하는 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랬다가는 신앙의 천적인 것이 파괴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it is allowable to become acquainted with what is true and good by means of every perception derived from the Lord, but not from self and the world; that is, we are not to inquire into the mysteries of faith by means of the things of sense and of the memory [per sensualia et scientifica], for in this case the celestial of faith is destroyed. (AC.126)

 

인데요, 여기 ‘감각과 기억에 속한 것’에 관한 설명을 아래 곁들입니다.

 

감각과 기억에 속한 것’은 감각적 증거와 세속적 지식에 의존, 주님의 신성인 선과 진리를 들여다보고자 하는 일체의 것으로,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기독교의 사십일 금식기도나 천일 예배, 불교의 참선, 면벽 수련(달마의 구 년 면벽 같은), 오체투지(五體投地, 삼천 배, 오천 배 같은 불교의 절하는 법), 하안거, 동안거 등은 물론, 다양한 종교의 각종 종교적 수행 등인데요, 이는 인간의 오욕칠정(五慾七情, 五慾: 수면욕, 식욕, 색욕, 명예욕, 재물욕, 七情: 희(喜), 노(怒), 애(哀), 락(樂), 오(惡), 욕(慾), 애(愛)) 문제를 좀 어떻게 건드려서 신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을까, 신앙의 신비를 좀 알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더불어 세상 지식, 곧 세상에서 지식을 추구하여 학자가 되더니 그 지식으로 신의 세계에 발 담그고자 하는 사람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극 초월적 극기 수행을 한다 하여도, 그리고 아무리 오만가지 세상 지식을 머리가 터질 듯이 추구하여 다 알게 되었다 하더라도 이런 걸로 구원을 추구한다거나 천국 가기를 희망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고, 오히려 위에서 밝힌 대로 신앙의 천적인 면만 파괴됩니다. 다만 오직 주님을 사랑하는 데에만 전념하고자 모든 걸 내려놓고 완전히 타인을 위한 삶을 살다 간 사람들, 가령 성 프란치스코라든지, 성 분도 요셉 라브르라든지 하는 분들의 경우는 완전히 다른데요, 이런 분들은 자신의 구원을 위한 방편으로 이런 수도적 삶을 추구한 게 아니라 주님만 사랑하기에도 너무 바빠 자기를 사랑할 틈이 없었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기독교인이다’ 하는 사람들을 영생, 영혼 구원 등의 관점으로 나누면 대략 셋으로 나눌 수 있는데요, 그 첫째는, 신앙생활을 일종의 사후 대비 보험으로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한쪽 발은 이생, 다른 발은 저생에 걸치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천국 중심의 삶을 사는 거엔 그닥 관심이 없으며, 그렇다고 무슨 악하고 거짓된 삶을 사는 것도 아닙니다. 세상에서 가난하게 사는 걸 몹시 불편해 하며, 웬만하면 이 세상에서 부유하게 잘 살다가 천국 가는 게 좋은 거 아니냐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주로 균형 잡힌 영성’이니 건강한 신앙생활’이니 하는 표현을 좋아합니다. 둘째는, 영생을 추구하다가 주님을 만나는 사람들인데, 이들은 대체로 차갑고 딱딱하며, 날이 서 있습니다. 좋게 말하면 이성적, 이지적이지만 사실은 사랑보다는 신앙과 그 교리를 늘 따지는 사람들입니다. 셋째는 주님을 추구하다가 덤으로 영생을 얻는 사람들입니다. 앞서 말한 성 프란치스코 같은 분들입니다. 이런 분들은 아주 희귀하며 이런 분들이 계셔서 한 도시가, 한 나라가 소멸되지 않습니다. 마치 의인 열 명이 있으면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지 않겠다 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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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특히 아버지를 부끄러워한다는 건... (2025/9/10)

 

제목 그대롭니다. 자기 부모를 부끄러워한다는 건 좀... 그러니까 비유하자면, 마치 각종 금은보화, 보물이 가득한 집에 열쇠 없는, 그래서 절대 열 수 없는 큰 자물쇠를 채우는 것과 같습니다. 열쇠가 없으니 아무리 값비싼 재물이 가득해도 열고 들어갈 수가 없고, 결국 그런 집, 그런 창고가 있어 봐야 아무 소용이 없겠지요.

 

어떻게 자식이 자기 부모를 부끄러워하겠나, 어떻게 자기 부모를 수치스러워하겠나 싶지만, 실제로는 그런 일이 일어나는데요, 가령, 부모, 특히 아버지가 너무 무책임하여 자기 하고픈 것만 하며 사느라 가정을 돌보지 않은 경우가 되겠습니다. 이럴 경우, 연약한 어머니가 가정의 경제적 책임을 고스란히 짊어지는 모습을 어려서부터 보아온 자녀는 장성한 후에 그 아버지를 부끄러워할 수 있습니다. 무시하고, 하찮게 여길 수 있지요. 본인도 괴로워하면서 말입니다.  

 

※ 위 경우는 주님의 부르심 있어 따르고자 했던 것입니다. 가정을 이루고 나서 일어난 일이라 부득이하였고, 이후 더욱 크신 전능하신 하늘 아버지께서 가장의 책임을 감당하신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러나 그렇더라도 그러면 안 됩니다. 뭐 당연한 결론이지만 말입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세상 모든 부모는, 특히 아버지는 하나님의 대리인, 그러니까 표상(表象, representative)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내 아버지의 모습으로 지금 내 곁에, 지금까지 내 삶 가운데 계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상 아버지에 대한 나의 태도가 곧 하늘 아버지이신 하나님에 대한 태도이며, 그렇다면 천국 창고인 저 보물창고의 문을 여는 열쇠는 하늘 아버지이신 하나님에 대한 태도, 곧 지상 아버지에 대한 태도가 됩니다. 마치 어느 나라 대사에 대한 태도가 그를 파송한 그 나라에 대한 태도인 것처럼 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선인이든 악인이든 비유하자면 저마다 하늘 보물 창고가 있습니다. 이 보물 창고를 열고 거기 가득한 보물을 꺼내 쓸 수 있느냐 없느냐로 저마다의 인생이 크게 달라질 것입니다. 문제는 이 창고를 여는 열쇠는 오직 천국의 주인이신 하나님에 대한 태도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주인 마음에 들어야 그 창고가 열리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그래서 누구에게나 아버지를 주시고, 그 아버지에 대한 태도를 보시는 것입니다.  

 

45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48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5:45, 48)

 

굳이 세상 아버지가 꼭 선인일 필요는 없습니다. 내 아버지가 선인이든 악인이든 상관없이 그 아버지를 하나님의 표상,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여기고 하나님을 대하듯 아버지를 대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식이 부모에게 제 할 도리만 다하면 된다는 것이지요. 부모의 죄를 굳이 자식인 내가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건 그런 부모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큰 불경이 되기 때문에 아주 조심해야 합니다. 지상 아버지가 선인이든 악인이든 그 상과 벌은 하나님이 따로 매기실 것입니다.

 

비록 현실적으로 그간 살면서 봐온 정말 맘에 안 드는 모습 때문에 아버지를 공경할 마음이 우러나지 않더라도 눈 딱 감고 자식 된 도리, 주께 하듯 아버지를 대하면 하늘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마음이 동하여 기꺼이 그 창고 열쇠를 주실 것입니다. 삶이 계속 막히고, 경제적 어려움이 끊임없이 계속된다 싶으면 이 ‘아버지’라는, ‘부모’라는 일종의 치트 키를 잘 사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치트 기마저 없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5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6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7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8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 (6:5-8)

 

22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23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24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25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 주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심이 없느니라 (3: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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