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42.심화

 

5. ‘27:1

 

그날에 여호와께서 그의 견고하고 크고 강한 칼로 날랜 뱀 리워야단 곧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을 벌하시며 바다에 있는 용을 죽이시리라 (27:1) In that day Jehovah, with his hard and great and strong sword, shall visit upon leviathan the longish [oblongum] serpent, even leviathan the crooked serpent, and he shall slay the whales that are in the sea (Isa. 27:1).

 

 

이 구절이 AC.42에 인용된 이유는, 창세기 1 21절의 큰 물고기들’이 말씀에서 때로는 긍정적으로, 때로는 부정적으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이며, 특별히 여기서는 거짓과 자기 지혜에 의해 왜곡된 지식과 추론을 상징하는 경우를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AC.42에서 스베덴보리는 큰 물고기들’이 일반적으로는 인간의 큰 지식들, 기억-지식들, 그리고 이해의 활동들을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지식이 주님과 분리되어 자기 자신을 높이는 데 사용될 때는 괴물 같은 존재로 묘사됩니다.

 

이사야 27장에 나오는 리워야단’은 단순한 바다 괴물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의 해석에 따르면, 그것은 자기 지혜를 절대화하는 인간의 왜곡된 추론을 상징합니다. 특히 날랜 뱀’, ‘꼬불꼬불한 뱀’이라는 표현은 진리를 곧게 보지 못하고 자기 논리와 교만한 추론으로 비틀어 버리는 상태를 뜻합니다. 원래 지식은 진리를 섬겨야 하지만, 타락한 인간은 오히려 지식을 이용해 진리를 공격하고 왜곡하려 합니다. 리워야단은 바로 그런 상태의 표상입니다.

 

이어지는 바다에 있는 용 또는 바다에 있는 큰 물고기들’을 죽이신다는 말씀도 같은 의미를 가집니다. 바다는 기억-지식과 자연적 인간의 이해가 있는 영역을 뜻합니다. 따라서 바닷속 괴물들은 단순한 무지가 아니라, 방대한 지식과 추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주님과 진리에 대항하는 데 사용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에스겔의 바로와 큰 악어가 상징하는 것과 매우 비슷한 상태입니다.

 

AC.42의 문맥에서는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스베덴보리는 다섯째 날에 창조된 물고기들을 무조건 좋은 것으로만 설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해력과 지식은 그 자체로는 선도 악도 아닙니다. 그것이 주님의 진리 아래 있을 때는 에스겔 47장의 풍성한 물고기들처럼 생명을 주는 것이 되지만, 자기 사랑과 교만 아래 있을 때는 리워야단과 바다의 괴물처럼 진리를 대적하는 힘이 됩니다.

 

또한 여호와께서 크고 강한 칼’로 리워야단을 벌하신다는 표현도 의미심장합니다. 말씀에서 칼은 진리를 뜻합니다. 따라서 이것은 주님의 진리가 인간의 거짓된 추론과 왜곡된 지식을 심판하고 무너뜨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승리하는 것은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주님의 진리입니다.

 

따라서 이사야 27 1절이 AC.42에 인용된 이유는, ‘큰 물고기들’이 부정적 의미로 사용될 경우, 인간의 교만한 지식과 왜곡된 추론을 상징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리워야단과 바다의 괴물들은 진리를 섬기는 이해가 아니라 진리를 거스르는 이해를 뜻하며, 주님께서는 결국 그러한 거짓된 지혜를 자신의 진리로 심판하시고 제거하신다는 사실을 이 구절은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AC.42, 심화 6, ‘렘51:34’

AC.42.심화 6. ‘렘51:34’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나를 먹으며 나를 멸하며 나를 빈 그릇이 되게 하며 큰 뱀 같이 나를 삼키며 나의 좋은 음식으로 그 배를 채우고 나를 쫓아내었으니 (렘51:34) N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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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2, 심화 4, ‘겔32:2’

AC.42.심화 4. ‘겔32:2’ 인자야 너는 애굽의 바로 왕에 대하여 슬픈 노래를 불러 그에게 이르라 너를 여러 나라에서 사자로 생각하였더니 실상은 바다 가운데의 큰 악어라 강에서 튀어 일어나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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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32:2

 

인자야 너는 애굽의 바로 왕에 대하여 슬픈 노래를 불러 그에게 이르라 너를 여러 나라에서 사자로 생각하였더니 실상은 바다 가운데의 큰 악어라 강에서 튀어 일어나 발로 물을 휘저어 그 강을 더럽혔도다 (32:2) Take up a lamentation for Pharaoh king of Egypt, and say unto him, thou art as a whale in the seas, and hast gone forth in thy rivers, and hast troubled the waters with thy feet (Ezek. 32:2),

 

 

이 구절이 AC.42에 인용된 이유는, 앞서 에스겔 29장과 마찬가지로 큰 물고기 또는 큰 악어’가 지식과 이해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지혜에 교만해진 자연적 인간의 왜곡된 이해를 의미할 수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AC.42에서 스베덴보리는 창세기 1 21절의 큰 물고기들’이 일반적으로는 지식들과 그로부터 형성된 이해의 큰 구조들을 의미한다고 설명한 뒤, 그 상응이 좋은 의미와 나쁜 의미 모두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여러 예언서를 통해 증명합니다.

 

여기서도 주인공은 애굽의 바로입니다. 말씀에서 애굽은 기억-지식과 학문적 지식을 의미하고, 바로는 그러한 지식을 자기 자신을 높이는 데 사용하는 자연적 인간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바로가 바다 가운데의 큰 악어 또는 큰 물고기’로 묘사되는 것은, 그가 방대한 지식과 이해를 소유했음을 뜻하는 동시에, 그것을 주님을 향해 사용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위해 사용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특히 본문은 강에서 튀어 일어나 발로 물을 휘저어 그 강을 더럽혔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은 진리와 지식을 의미합니다. 원래 물은 맑고 생명을 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바로는 발로 물을 휘저어 흐리게 만듭니다.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 이것은 자연적 인간이 자기 추론과 자기 지혜로 진리를 왜곡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진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욕망과 교만을 따라 진리를 혼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 점이 AC.42의 주제와 직접 연결됩니다. 큰 물고기는 이해력의 큰 능력과 방대한 지식을 의미할 수 있지만, 그것이 주님의 빛 아래 있지 않을 때는 오히려 진리를 흐리는 힘이 됩니다. 물고기가 물속에서 살아야 하듯이, 이해력은 진리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바로는 그 물을 더럽히고 있습니다. 이는 이해력이 진리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자기 목적에 종속시키는 상태를 보여 줍니다.

 

또한 에스겔 47장의 물고기들이 생명의 물로 인해 번성하는 모습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에스겔 47장의 물고기들은 주님에게서 오는 진리 안에서 살아나는 이해를 뜻하지만, 에스겔 32장의 큰 악어는 자기 지혜로 진리를 흐리는 이해를 뜻합니다. 하나는 생명을 주는 이해이고, 다른 하나는 진리를 오염시키는 이해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이 AC.42에 인용된 이유는, ‘큰 물고기 또는 큰 악어’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될 때는 자기 지혜와 자기 확신에 빠진 자연적 인간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바로가 물을 휘저어 더럽히는 모습은, 사람이 주님에게서 오는 진리를 겸손히 받지 않고, 자기 추론으로 왜곡할 때 일어나는 영적 상태를 생생하게 묘사하는 것이며, 스베덴보리는 이를 통해 큰 물고기들’의 부정적 상응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AC.42, 심화 5, ‘사27:1’

AC.42.심화 5. ‘사27:1’ 그날에 여호와께서 그의 견고하고 크고 강한 칼로 날랜 뱀 리워야단 곧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을 벌하시며 바다에 있는 용을 죽이시리라 (사27:1) In that day Jehovah, with his 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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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2, 심화 3, ‘겔29:3’

AC.42.심화 3. ‘겔29:3’ 너는 말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애굽의 바로 왕이여 내가 너를 대적하노라 너는 자기의 강들 가운데에 누운 큰 악어라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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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9:3

 

너는 말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애굽의 바로 왕이여 내가 너를 대적하노라 너는 자기의 강들 가운데에 누운 큰 악어라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나를 위하여 만들었다 하는도다 (29:3) Behold, I am against thee, Pharaoh king of Egypt, the great whale that lieth in the midst of his rivers, that hath said, my river is mine own, and I have made myself (Ezek. 29:3).

 

 

이 구절이 AC.42에 인용된 이유는, 창세기 1 21절의 큰 물고기들(great whales)이 항상 좋은 의미만 가지는 것이 아니라, 문맥에 따라서는 인간의 왜곡된 지식과 자기 지혜를 의미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AC.42에서 스베덴보리는 큰 물고기들’이 태고교회 사람들에게는 일반적인 지식들(knowledges)과 그로부터 형성된 이해의 큰 구조들을 의미했다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지식이 주님에게서 분리되어 자기 자신에게 귀속될 때는 부정적인 의미를 갖게 됩니다. 에스겔 29장의 바로와 큰 악어는 바로 그 상태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애굽은 말씀에서 흔히 기억-지식(scientia)과 학문적 지식을 의미합니다. 원래 지식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의 이해를 준비시키고, 진리를 받아들이는 데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애굽이 반복해서 부정적으로 사용될 때는, 지식이 신앙과 사랑을 섬기지 않고, 오히려 그것들을 지배하려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바로는 그러한 자연적 인간의 교만을 대표합니다.

 

본문에서 바로는 나의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나를 위하여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그는 모든 것을 자기 것으로 돌립니다. 강은 지식과 이해의 흐름을 뜻하는데, 바로는 그것이 주님에게서 온 것임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 만들었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AC.39에서 스베덴보리가 경고한 자기에게서 선과 진리가 나온다고 믿는 상태’와 같은 본질을 지닙니다.

 

그래서 여기서 바로는 큰 악어 또는 큰 물고기’로 묘사됩니다. 큰 물고기는 원래 큰 지식과 넓은 이해를 의미할 수 있지만, 그것이 자기 사랑과 교만에 사로잡히면, 진리를 섬기는 도구가 아니라 진리를 왜곡하는 도구가 됩니다. 따라서 에스겔의 큰 악어는 단순한 괴물이 아니라, 자기 지혜를 절대화한 자연적 인간을 상징합니다.

 

AC.42의 문맥에서는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창세기 1장의 물고기들이 이해력에 속한 것들을 의미한다고 설명한 뒤, 그러한 상응이 긍정적으로도 사용되고 부정적으로도 사용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 여러 본문을 인용합니다. 에스겔 47장의 물고기들은 살아 있는 진리의 이해를 뜻하지만, 에스겔 29장의 큰 악어는 자기 지혜에 빠진 왜곡된 이해를 뜻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이 AC.42에 인용된 이유는, ‘큰 물고기’가 단순한 자연계 생물이 아니라 인간의 지식과 이해의 큰 체계를 의미하며, 특별히 여기서는 모든 것을 자기 자신에게 돌리는 자연적 인간의 교만한 지성을 상징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바로가 내가 나를 위하여 만들었다’고 말하는 것은, 주님에게서 오는 생명과 진리를 자기 것으로 돌리는 상태를 대표하며, 스베덴보리는 이를 통해 큰 물고기’의 부정적 상응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AC.42, 심화 4, ‘겔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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