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4:14)

 

AC.386

 

‘이 지면에서 쫓아내시온즉’(cast out from the faces of the ground)이 교회의 모든 진리로부터 분리됨이라는 것은 ‘땅’(ground)이 상징하는 바를 보면 분명한데요, ‘땅’은 그 진짜(genuine) 뜻으로는 교회, 즉 교회에 속한 사람이며, 그래서 앞서 밝힌 대로, 교회가 주장하는 모든 것입니다. 어떤 말의 의미라는 것은 다루는 주제에 따라 필연적으로 달라지는데요, 그래서 심지어 잘못된 신앙, 예를 들면, 스키즘이나 이단 신앙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땅’이라 합니다. 여기 ‘이 지면에서 쫓아내시온즉’(driven out from the faces of the ground)은 그러나 더 이상 교회의 진리 안에 있을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That to be “cast out from the faces of the ground” is to be separated from all the truth of the church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ground,” which, in the genuine sense, is the church, or the man of the church, and therefore whatever the church professes, as shown above. The meaning of a word necessarily varies with the subject treated of, and therefore even those who wrongly profess faith, that is who profess a schism or heresy, are also called “ground.” Here however to be “driven out from the faces of the ground” signifies to be no longer in the truth of the church.  

 

해설

 

스베덴보리는 먼저 “‘이 지면에서 쫓아내시온즉’이라는 말은 교회의 모든 진리로부터 분리되는 상태”라고 다시 강조합니다. 그 근거는 성경에서 “(ground)이 단순한 자연적 흙이 아니라, ‘교회 혹은 교회에 속한 사람’을 상징한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AC 전반에서 일관되게 보이는 상징 원리로, 땅은 곧 ‘진리가 심기고 자라는 영적 토양’, 즉 교회의 구조 전체를 나타냅니다. 그 구조 안에 속해 있을 때 사람은 진리와 선의 흐름을 받을 수 있지만, 그 구조에서 벗어나면 진리의 빛을 더 이상 공급받지 못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어서, ‘’이라는 단어가 항상 올바른 교회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상징은 말씀이 다루는 ‘주제(subject)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통한 교회뿐 아니라 ‘분열된 교회, 이단적 가르침, 잘못된 신앙 고백을 가진 집단’도 때로는 “”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그들은 진정한 교리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외형상으로는 ‘교회’라는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이란 단어는 ‘교회의 본질이 아니라, 교회를 이루고 있다고 주장하는 외적 틀을 의미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이 본문의 경우, 즉 가인에 대해 언급될 때는 의미가 훨씬 더 엄중하다고 말합니다. “이 지면에서 쫓아내시온즉”은 ‘단순히 정통 교회에서 떠난다는 의미가 아니라, 교회가 가진 진리의 본질과 완전히 단절되는 상태’를 뜻합니다. 다시 말해, 가인은 진리의 틀 안에 있든 없든 그 자체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핵심은 ‘그가 더 이상 진리의 생명력과 연결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글에서 스베덴보리가 말하고자 하는 중심 메시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가인이 말한 ‘이 지면에서 쫓아내시온즉’은 더 이상 교회의 진리 안에 거하지 못하고, 진리의 빛과 이해의 흐름으로부터 단절되는 상태로 들어간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가인을 심판하여 내치는 것이 아니라, ‘사랑(체어리티)을 버린 신앙이 스스로 진리의 토대를 잃어버린 결과’입니다. 진리는 사랑과 결합될 때에만 생명을 지니는데, 가인은 이미 사랑을 죽였기 때문에 진리가 뿌리내릴 ‘’—즉 선한 내면—이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따라서 AC.386은 가인의 상태를 이렇게 요약합니다.

 

그는 외적으로는 여전히 교회를 말할 수 있으나, 그 내면에서는 교회의 진리와 완전히 단절된 사람, 즉 더 이상 교회의 진리 안에 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는 단순한 위치 이동이 아니라 영적 생태계의 붕괴를 뜻합니다.

 

 

 

AC.387, 창4:14,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AC.385-391)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창4:14) AC.387 ‘주의 낯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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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85, 창4:14,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AC.385-391)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Behold thou hast cast me out this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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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Behold thou hast cast me out this day from the faces of the ground, and from thy faces shall I be hid; and I shall be a fugitive and a wanderer in the earth; and it shall come to pass that everyone that findeth me shall slay me. (4:14)

 

AC.385

 

‘이 지면에서 쫓아내시온즉’(cast out from the faces of the ground)은 교회의 모든 진리로부터 분리됨을,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hid from thy faces)는 사랑의 신앙의 모든 선(all the good of faith of love)으로부터 분리됨을,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fugitive and a wanderer in the earth)는 무엇이 참이요 선인지를 모르는 것을,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everyone that findeth me shall slay me)는 모든 악과 거짓이 그를 파괴할 것을 의미합니다. To be “cast out from the faces of the ground” signifies to be separated from all the truth of the church; to be “hid from thy faces” signifies to be separated from all the good of faith of love; to be a “fugitive and a wanderer in the earth” is not to know what is true and good; “everyone that findeth me shall slay me” signifies that all evil and falsity would destroy him.  

 

해설

 

이 지면에서 쫓아내시온즉”은 교회의 모든 진리로부터 분리됨을 의미합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성경의 ‘(ground)은 단순한 자연적 토양이 아니라, 교회의 진리가 뿌리를 내리는 영적 기반을 상징합니다. “지면”은 그 진리를 받아들이는 속 사람의 영역을 뜻하고, 지면에서 쫓겨난다는 말은 진리와의 연결이 완전히 끊어진 상태, 즉 교회의 외적 형태는 남아 있어도 그 안에서 길을 잃어 진리의 빛을 더 이상 인지할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가인은 사랑, 곧 체어리티 없이 신앙만을 주장했기 때문에 결국 진리의 토대에서도 밀려나게 된 것입니다.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는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의 모든 선으로부터 분리됨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얼굴은 AC 전반에서 항상 “하나님의 선(특히 체어리티에서 나오는 선)”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즉 하나님의 얼굴로부터 숨겨진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숨으신 것이 아니라, 사람이 체어리티를 버림으로써 하나님의 선을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를 “선에 대한 지각(good perception)의 상실”이라 부르며, 이는 영적 생명력을 잃어가는 가장 명백한 징후라고 설명합니다.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는 무엇이 참되고 선한지 모르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표현을 “속 사람과 겉 사람 사이의 단절”로 풀이합니다. 속 사람(내적 의지)에서 오는 선의 인도함이 없으므로, 사람이 무엇이 올바른지 무엇이 악인지 분별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리며 살게 됩니다. 이 상태에서는 지식은 남아 있지만 그 지식이 방향성을 잃어 무작위로 흩어지며, 신앙의 진리들은 더 이상 길을 안내하는 빛이 되지 못한 채 고립된 정보처럼 남아 있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가인의 “방랑”입니다.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는 모든 악과 거짓이 그를 파괴할 것임을 의미합니다. 가인이 사랑과 선을 잃었을 때, 그는 더 이상 진리를 보호할 내적 힘이 없게 됩니다. 스베덴보리는 “만나는 자들”을 외부의 사람이나 존재가 아니라, “가인의 내적 상태에서 생겨난 왜곡된 신앙, 잘못된 개념들, 자기모순, 내적 거짓들”이라고 설명합니다. 즉, 사랑이 없는 신앙은 자기 내부에서 발생하는 악과 거짓에 의해 무너질 수밖에 없는 취약한 구조를 갖게 됩니다. 선이 없는 진리는 생명력을 잃고, 생명력을 잃은 진리는 악과 거짓의 공격 앞에서 방어할 힘이 없습니다.

 

결국 AC.385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 없이 분리된 신앙은 교회의 진리와 선에서 분리되고, 그 결과 참과 거짓을 분별하지 못하며, 자연스럽게 자신 안에 있는 악과 거짓의 힘에 의해 붕괴되는 운명에 놓인다.’ 이 말은 하나님이 가인을 벌하신 것이 아니라, ‘가인이 사랑을 잃음으로써 스스로 그런 상태에 들어간 것’임을 밝혀 주는 중요한 아르카나입니다.

 

 

 

AC.386, 창4:14,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AC.385-391)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창4:14) AC.386 ‘이 지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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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84, 창4:13,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AC.383-384)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창4:13) AC.384 그런 걸 보면, 가인 안에 아직 뭔가 선한 것이 남아 있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후 체어리티의 모든 선은 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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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4:13)

 

AC.384

 

그런 걸 보면, 가인 안에 아직 뭔가 선한 것이 남아 있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후 체어리티의 모든 선은 사라졌는데, 그건 뒤에 나오는 라멕이 한 말을 보면 분명합니다. 19절하고, 23, 24절입니다. Hence it appears that something of good still remained in Cain; but that all the good of charity afterwards perished is evident from what is said of Lamech (verses 19, 23–24).

 

19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 23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24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4:19, 23-24)

 

 

해설

 

스베덴보리는 가인이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라고 고백한 사실을 통해, 가인 안에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선의 흔적(리메인스)’이 남아 있었다고 말합니다. 사랑(체어리티)을 이미 억압하고 죽였음에도 불구하고, 가인이 자신의 비참한 상태를 ‘인식하고 고통을 느끼는 것 자체’가 그 안에 ‘미세한 선(어떤 최소한의 선한 감수성)’이 여전히 존재함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이어서, 이 남아 있던 선도 결국 완전히 소멸되었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이후 등장하는 ‘라멕(19, 23–24)에 대한 묘사 때문입니다. 라멕은 가인의 계열이 도달한 ‘최종적 타락 상태’를 대표하는 인물로, 체어리티의 모든 선이 사라지고, 신앙의 진리마저 폭력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왜곡으로 변질된 상태를 상징합니다.

 

따라서 AC.384의 핵심은 이렇습니다. 가인(사랑을 잃은 신앙) 안에는 처음에는 아주 약한 선이 남아 있었으나, 그 선이 보존되지 못하고 결국 후손(라멕)의 시대에 이르러 ‘체어리티의 선이 완전히 사라진 교회의 상태’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AC.385, 창4:14,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AC.385-391)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Behold thou hast cast me out this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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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83, 창4:13,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AC.383-384)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And Cain said unto Jehovah, Mine iniquity is greater than can be taken away. (창4:13) AC.383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Cain said unto Jehovah)는 자기가 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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