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2:14)

 

 

AC.120

 

애굽(Egypt)이 기억 지식을 의미하는 것처럼, ‘유브라데 강(Euphrates)도 기억 지식, 그리고 그 지식이 나오는 감각적인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예언서들에 나타난 말씀에서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미가서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As by “Egypt,” so also by “Euphrates,” are signified memory-knowledges, and also the sensuous things from which these knowledges come. This is evident from the Word in the prophets, as in Micah:

 

10나의 대적이 이것을 보고 부끄러워하리니 그는 전에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 여호와가 어디 있느냐 하던 자라 그가 거리의 진흙같이 밟히리니 그것을 내가 보리로다 11네 성벽을 건축하는 날 곧 그날에는 지경이 넓혀질 것이라 12그날에는 앗수르에서 애굽 성읍들에까지, 애굽에서 강까지,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이 산에서 저 산까지의 사람들이 네게로 돌아올 것이나 (7:10-12) My she-enemy hath said, Where is Jehovah thy God? The day in which he shall build thy walls [macerias], that day shall the decree be far removed; that day also he shall come even to thee from Asshur, and to the cities of Egypt, and to the river [Euphrates] (Micah 7:10–12).

 

예언자들은 주님께서 오셔서 사람을 거듭나게 하시고, 그로 하여금 천적 인간과 같은 상태가 되게 하실 것을 이와 같이 말하였습니다. 예레미야서에서도 말합니다. So did the prophets speak concerning the coming of the Lord who should regenerate man so that he might become like the celestial man. In Jeremiah:

 

네가 시홀의 물을 마시려고 애굽으로 가는 길에 있음은 어찌 됨이며 또 네가 그 강물을 마시려고 앗수르로 가는 길에 있음은 어찌 됨이냐 (2:18) What hast thou to do in the way of Egypt, to drink the waters of Sihor? Or what hast thou to do in the way of Asshur, to drink the waters of the river [Euphrates] (Jer. 2:18)?

 

여기서도 애굽(Egypt)유브라데 강(Euphrates)은 기억 지식을 의미하고, ‘앗수르(Asshur)는 그로부터 나온 추론을 의미합니다. 다윗의 시편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where “Egypt” and “Euphrates” likewise signify memory-knowledges, and “Asshur” reasonings thence derived. In David:

 

8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나이다, 11그 가지가 바다까지 뻗고 넝쿨이 강까지 미쳤거늘 (80:8, 11) Thou hast made a vine to go forth out of Egypt; Thou hast cast out the nations; Thou hast planted her; Thou hast sent out her shoots even to the sea, and her twigs to the river (Euphrates) (Ps. 80:8, 11),

 

여기서도 유브라데 강(river Euphrates)은 감각적인 것과 기억 지식에 속한 것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유브라데 강은 이스라엘 땅이 앗수르 쪽으로 미치는 경계였는데, 이는 기억 지식이 영적 인간과 천적 인간의 지성과 지혜에 있어서 경계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같은 의미는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에서도 나타납니다. where also the “river Euphrates” signifies what is sensuous and of the memory [sensuali et scientifico]. For the Euphrates was the boundary of the dominions of Israel toward Assyria, as the knowledge of the memory is the boundary of the intelligence and wisdom of the spiritual and celestial man. The same is signified by what was said to Abraham:

 

그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15:18) Unto thy seed will I give this land, from the river of Egypt unto the great river, the river Euphrates (Gen. 15:18).

 

이 두 경계는 동일한 의미를 지닙니다. These two boundaries have a like signification.

 

 

해설

 

이 단락은 창세기 2장의 네 번째 강, 곧 유브라데 강이 왜 ‘경계’로 불리는지를 명확히 설명하는 매우 중요한 자리입니다. 앞선 AC.118–119에서 이성과 기억 지식의 질서가 제시되었다면, AC.120은 그 구조의 ‘가장 바깥선’을 그어 줍니다.

 

스베덴보리는 일관되게 말합니다. 애굽과 유브라데는 모두 기억 지식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단순한 정보 차원이 아니라, ‘감각에서 시작된 지식’까지 포함하는 가장 외적인 층위입니다. 기억 지식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 자체가 목적이 되면 더 이상 안쪽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유브라데는 ‘마지막 단계’이자 ‘경계’입니다.

 

미가서의 예언은 이 구조를 회복의 관점에서 보여줍니다. 성벽이 다시 세워지고, 규례가 회복되는 날에, 앗수르와 애굽, 그리고 유브라데로부터 사람들이 온다고 말합니다. 이는 이성(앗수르), 기억 지식(애굽), 감각적 기억의 경계(유브라데)가 모두 ‘주님의 거듭남의 역사 안으로 다시 불려 들어오는 장면’입니다. 곧, 외적인 것들이 내적인 질서로 재편입되는 순간입니다.

 

예레미야서의 질문은 반대로 경고의 의미를 띱니다. 왜 애굽의 물을 마시려 하느냐, 왜 앗수르와 유브라데의 물을 마시려 하느냐는 질문은, 인간이 ‘외적 지식과 이성적 추론을 근원으로 삼으려는 태도’를 책망합니다. 기억 지식과 이성은 마셔야 할 생명수가 아니라, 질서 안에서 사용되어야 할 도구입니다.

 

시편의 포도나무 비유는 매우 섬세합니다. 포도나무는 교회와 인간의 내적 생명을 의미합니다. 그 가지가 바다까지, 그리고 유브라데까지 뻗는다는 것은, 생명의 영향력이 ‘감각과 기억의 최외곽까지 미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가지가 뻗는 것과 뿌리가 거기 있다는 것은 다릅니다. 뿌리는 여전히 주님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결정적인 문장을 덧붙입니다. 유브라데가 이스라엘의 경계였던 것처럼, 기억 지식은 지성과 지혜의 경계라고 말입니다. 경계는 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지켜야 할 선’입니다. 그 선을 넘으면 질서가 무너지고, 그 안에 머물면 모든 것이 안전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인 애굽 강에서 유브라데까지는 이 전체 구조를 요약합니다. 주님께서 인간에게 허락하신 영역은, ‘가장 외적인 기억 지식부터 가장 내적인 지성까지 전부’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질서 안에서만 ‘기업’이 됩니다.

 

AC.120은 이렇게 말합니다. 기억 지식은 끝이 아니라 경계이며, 그 경계를 지킬 때에만 이성과 지성, 그리고 사랑의 지혜가 자기 자리를 잃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심화

 

1. ‘7:10-12

 

 

AC.120, 심화 1, ‘미7:10-12’

AC.120.심화 1. ‘미7:10-12’ 10나의 대적이 이것을 보고 부끄러워하리니 그는 전에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 여호와가 어디 있느냐 하던 자라 그가 거리의 진흙같이 밟히리니 그것을 내가 보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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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18

 

 

AC.120, 심화 2, ‘렘2:18’

AC.120.심화 2. ‘렘2:18’ 네가 시홀의 물을 마시려고 애굽으로 가는 길에 있음은 어찌 됨이며 또 네가 그 강물을 마시려고 앗수르로 가는 길에 있음은 어찌 됨이냐 (렘2:18) What hast thou to do in the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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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80:8, 11

 

 

AC.120, 심화 3, ‘시80:8, 11’

AC.120.심화 3. ‘시80:8, 11’ 8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나이다, 11그 가지가 바다까지 뻗고 넝쿨이 강까지 미쳤거늘 (시80:8, 11) Thou hast made a v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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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5:18

 

 

AC.120, 심화 4, ‘창15:18’

AC.120.심화 4. ‘창15:18’ 그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창15:18) Unto thy seed will I give this 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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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경계

 

 

AC.120, 심화 5, ‘경계’

AC.120.심화 5. ‘경계’ 본문에 ‘실제로 유브라데 강은 이스라엘 땅이 앗수르 쪽으로 미치는 경계였는데, 이는 기억 지식이 영적 인간과 천적 인간의 지성과 지혜에 있어서 경계가 되는 것과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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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21, 창2:14, ‘천적 인간의 질서 : 지혜에서 지성, 이성, 지식으로’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창2:14) AC.121 천적 질서의 성질, 곧 생명에 속한 것들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이 강들로부터 분명히 알 수 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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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9, 창2:14, ‘앗수르, 인간의 이성(the rational of man)’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창2:14) AC.119 ‘앗수르’(Asshur)가 사람의 이성적 마음(the rational mind), 곧 인간의 이성(the rational of man)을 의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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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앗수르

 

 AC.119 본문에서 앞에서는 앗수르를 사람의 이성적 마음(the rational mind), 곧 인간의 이성(the rational of man)을 의미한다고 하더니, 뒤에서는 이성(reason)을 의미한다고 하네요. 이 둘,  the rational reason은 다르다고 앞에서 읽었는데 어떻게 된 거죠? 인용 구절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는 건가요?

 

 

좋은 지적이십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여기서 the rational(이성적 마음)’과 reason(이성)’이 뒤섞여 보이는 것은 개념이 바뀌어서가 아니라, 같은 영역을 서로 다른 각도에서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스베덴보리의 용어 체계에서는 이 둘이 엄밀히 구별되므로, 그 차이를 분명히 잡아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먼저 the rational’은 하나의 층위’, 혹은 기관’’입니다. 곧 인간 안에서 속 사람과 겉 사람 사이에 놓여 있는 이성적 마음’이라는 구조적 자리입니다. 이 자리는 위로부터 오는 것을 받아 아래로 전달하고, 아래의 기억 지식을 받아 위로 올리는 중간 장(場)’입니다. 그래서 앗수르를 the rational mind’라고 할 때는, ‘인간 안에 실제로 존재하는 이 기능적 영역 전체’를 가리킵니다.

 

반면, ‘reason’은 그 안에서 일어나는 ‘‘작용’, 혹은 활동’’입니다. 곧 그 이성적 마음이 실제로 무엇을 하느냐, 즉 비교하고, 연결하고, 판단하고, 추론하는 움직임 자체’를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the rational’은 이성이라는 자리’이고, ‘reason’은 그 자리에서 이성이 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왜 같은 앗수르를 두고 어떤 곳에서는 the rational’, 어떤 곳에서는 reason’이라고 하느냐 하면, ‘본문이 강조하는 포인트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에스겔 31장처럼 레바논의 백향목’으로 묘사될 때는, 그 높이와 구조,  이성적 마음이라는 존재 자체’가 강조되므로 the rational’이 더 적합합니다. 반대로 이사야 19장처럼 애굽과 왕래하고 섬기며 연결되는 장면에서는, 이성이 실제로 지식을 정리하고 연결하는 작용’이 강조되므로 reason’이라는 표현이 자연스럽게 사용됩니다.

 

따라서 이것은 인용 구절에 따라 의미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같은 실체의 측면이 달라 보이는 것’’입니다. 마치 ’이라는 기관과 본다’는 행위를 구별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눈이 있어야 보지만, 눈 자체와 보는 행위는 동일하지 않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앗수르는 언제나 이성의 영역’을 가리키지만, 어떤 문맥에서는 그것을 구조’로 보느냐, 다른 문맥에서는 작용’으로 보느냐에 따라 the rational’과 reason’이라는 표현이 달리 사용됩니다. 그래서 혼용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동일한 실재를 두 각도에서 설명하는 일관된 사용이라고 보시면 정확합니다.

 

 

 

AC.119, 창2:14, ‘앗수르, 인간의 이성(the rational of man)’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창2:14) AC.119 ‘앗수르’(Asshur)가 사람의 이성적 마음(the rational mind), 곧 인간의 이성(the rational of man)을 의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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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9, 심화 3, ‘사19:23-25’

AC.119.심화 3. ‘사19:23-25’ 23그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앗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갈 것이며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 24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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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9.심화

 

3. ‘19:23-25

 

23그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앗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갈 것이며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 24그날에 이스라엘이 애굽 및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25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 주시며 이르시되 내 백성 애굽이여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라 (19:23-25) In that day shall there be a path from Egypt to Asshur, and Asshur shall come into Egypt, and Egypt into Asshur, and the Egyptians shall serve Asshur. In that day shall Israel be the third with Egypt and with Asshur, a blessing in the midst of the land, that Jehovah Zebaoth shall bless, saying, Blessed be Egypt my people, and Asshur the work of my hands, and Israel mine inheritance. (Isa. 19:23–25)

 

 

이 구절이 AC.119에 인용된 이유는, ‘애굽  앗수르  이스라엘’이라는 세 이름을 통해 인간 내면의 세 층위, 곧 기억 지식, 이성, 지성의 올바른 연결 질서가 어떻게 이루어질 때 복이 되는가’를 한 장면으로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세 이름을 단순한 역사적 민족으로 보지 않고, 각각을 인간 정신의 기능으로 읽습니다. 곧 애굽은 기억 지식, 앗수르는 이성, 이스라엘은 지성을 의미합니다.

 

본문에서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다’는 말은, 기억 지식과 이성 사이에 단절이 아니라 열린 통로’가 있어야 함을 뜻합니다. 즉, 지식이 이성으로 올라가고, 이성이 다시 지식을 정리하며 서로 왕래하는 상태입니다. 이어서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한다’는 표현은 더 깊은 의미를 갖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동맹이 아니라, ‘기억 지식이 이성의 질서 안으로 들어와 함께 주님을 향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지식이 이성을 섬기고, 이성이 주님을 향할 때 비로소 올바른 예배가 성립됩니다.

 

그리고 이 구조의 정점이 이스라엘’입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이 애굽과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복이 된다’고 말합니다. 이는 지성이 기억 지식과 이성을 통합하여 완성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지성은 단순한 이해가 아니라, 선과 진리를 분별하고 살아내는 능력이며, 이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룰 때 인간 전체가 ’이 됩니다. 그래서 내 백성 애굽이여,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라는 선언은, 이 세 층위가 모두 주님께 속한 것이며, 각각 제자리에 있을 때 거룩해진다는 뜻입니다.

 

AC.119의 맥락에서 보면, 이 구절은 단순히 상응의 예를 하나 더 드는 것이 아닙니다. 앞서 에스겔에서 앗수르= 이성’이 어떻게 자라는지를 보였다면, 이사야에서는 그 이성이 기억 지식과 지성과 어떤 관계 속에 있어야 하는가’를 보여줍니다. 즉, 이성은 독립된 중심이 아니라, 아래로는 지식을 정리하고 위로는 지성으로 열려 있는 중간 기능’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구절이 인용된 이유는 분명합니다. 인간 안의 기억 지식과 이성과 지성이 서로 단절되지 않고, 주님을 향해 하나로 연결될 때, 그 전체가 복이 된다는 것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는 본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이 구절을 통해, ‘이성은 높지만, 중심이 아니며, 올바른 질서 안에서만 참된 역할을 한다’는 AC.119의 핵심 주장을 확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AC.119, 심화 4, ‘앗수르’

AC.119.심화 4. ‘앗수르’ 위 AC.119 본문에서 앞에서는 앗수르를 ‘사람의 이성적 마음(the rational mind), 곧 인간의 이성(the rational of man)을 의미한다’고 하더니, 뒤에서는 ‘이성(reason)을 의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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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9, 심화 2, ‘꼭대기가 구름에 닿은’

AC.119.심화 2. ‘꼭대기가 구름에 닿은’ 위 겔31:3에서 ‘her offshoot was among the thick boughs’를 왜 ‘꼭대기가 구름에 닿은’으로 번역했을까요? 짚으신 대로입니다. ‘her offshoot was among the thick boug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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