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And on the seventh day God finished his work which he had made; and he rested on the seventh day from all his work which he had made. And God blessed the seventh day, and hallowed it; because that in it he rested from all his work which God in making created. (2:2, 3)

 

AC.84

천적 인간은 일곱째 (seventh day)입니다. 주님께서 여섯 동안 일하셨으므로 그것을 그분의 (his work)이라 하며, 그때 모든 싸움이 그치므로 주님께서 모든 일을 마치고 쉬신다(rest from all his work) 합니다. 때문에 일곱째 날은 거룩하게 구별되었고, 안식(rest) 뜻하는 히브리어에서 유래하여 안식일이라 불렸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이 창조되고, 형성되고, 만들어졌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말씀 자체로부터 매우 분명합니다. The celestial man is the seventh day, which, as the Lord has worked during the six days, is called his work”; and as all combat then ceases, the Lord is said to rest from all his work.On this account the seventh day was sanctified, and called the sabbath, from a Hebrew word meaning rest.And thus was man created, formed, and made. These things are very evident from the words.

 

해설

AC.84는 창2일곱째 이 무엇인지를 직접 밝힙니다. 스베덴보리는 첫 문장에서 아주 간결하게 천적 인간은 일곱째 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여기서 일곱째 날은 단순히 창조가 끝난 뒤 이어지는 시간상의 하루가 아니라, 속뜻에서는 거듭남을 통하여 천적 인간이 된 사람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바로 앞 AC.83과 연결됩니다. 거기서는 사람이 여섯째 날이 되었을 때 신앙과 사랑이 하나를 이루고, 그 하나 됨 가운데 신앙이 아니라 사랑, 곧 영적인 것이 아니라 천적인 것이 주된 것이 되기 시작한다고 했습니다. AC.84는 그 결과로 이루어지는 천적 상태를 일곱째 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여섯째 날과 일곱째 날의 차이는 단순한 시간 순서가 아니라 영적 인간과 천적 인간의 상태 차이입니다.

 

그런데 스베덴보리는 여섯 날 동안 이루어진 일을 사람의 일이라고 하지 않고 그분의 ’, 곧 주님의 일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창1부터 이어져 온 거듭남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다시 확인해 줍니다. 사람이 진리를 배우고 악과 싸우며 실제로 선택하고 행동하지만, 그 사람 안에서 거듭남을 이루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여섯 날 동안의 모든 과정은 궁극적으로 그분의 이라고 불립니다.

 

이 점은 거듭남을 인간 자신의 영적 성취로 이해하지 않게 하는 데 중요합니다. 사람이 여섯 날을 자기 힘으로 통과하여 마침내 일곱째 날에 도달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사람 안에서 일하시며 그를 죽은 상태에서 영적 인간으로, 그리고 천적 인간의 상태로 이끄십니다. 인간은 그 과정에서 자유롭게 주님의 역사에 응답하고 악과 싸우지만, 생명과 선과 진리의 근원은 주님께 있습니다.

 

이어지는 모든 싸움이 그친다는 말은 AC.81과 직접 연결됩니다. AC.81에서 영적 인간은 싸움 가운데 있지만 언제나 승리한다고 했고, 천적 인간은 싸움 가운데 있지 않으며’, 악과 거짓의 공격을 받을 때 그것들을 멸시한다고 했습니다. 이제 AC.84에서는 천적 인간이 일곱째 날인 이유를 바로 이 싸움의 그침과 연결합니다.

 

따라서 안식은 단순히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정적인 휴식이 아닙니다. 그 앞에는 여섯 날 동안의 주님의 일이 있고, 그 과정에는 영적 싸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천적 상태에서는 그 싸움이 그칩니다. 신앙과 사랑이 하나를 이루고 사랑이 주된 것이 되면서, 악과 거짓이 이전처럼 사람 안에서 서로 맞서는 싸움을 일으키지 못하는 상태가 됩니다.

 

여기서도 모든 싸움이 그친다는 말을 천적 인간에게 악과 거짓이 더 이상 접근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AC.81은 천적 인간도 악과 거짓의 공격을 받을 가 있다고 명시했습니다. 다만 그는 그것들을 멸시합니다. 즉 악과 거짓이 접근할 수는 있지만 그것들이 사람의 내면에서 선과 진리와 대등하게 다투며 그를 흔드는 상태가 더 이상 지배적이지 않은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 때문에 주님께서 모든 일을 마치고 쉬신다고 합니다. 여기서 주님의 안식을 인간처럼 일을 많이 하신 뒤 피곤하여 쉬시는 것으로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속뜻의 초점은 주님께서 피로를 회복하신다는 데 있지 않고, 사람 안에서 이루시던 거듭남의 싸움이 안식의 상태에 이르렀다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주님께서 쉬신다는 표현은 사실 인간에게 일어난 변화와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악과 거짓의 지배 아래 있을 때에는 주님께서 그를 거듭나게 하시는 일이 계속됩니다. 그러나 사람이 천적 상태에 이르러 사랑이 주된 것이 되고 싸움이 그치면, 그 상태가 주님의 안식으로 묘사됩니다. 주님께서 이루신 일이 그 사람 안에서 안식의 상태에 이른 것입니다.

 

이 때문에 일곱째 날이 거룩하게 구별되고 안식일이라 불렸다고 스베덴보리는 설명합니다. 안식일은 히브리어의 , 그침이라는 의미와 연결됩니다. 그러나 AC.84에서 중요한 것은 히브리어 어원 자체보다 그것이 나타내는 영적 상태입니다. 안식일이 거룩한 것은 단순히 일하지 않는 날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주님께서 인간 안에서 이루신 거듭남의 일이 싸움을 지나 안식에 이른 천적 상태를 표상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면 안식일의 거룩함도 외적인 휴식 규정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습니다. 외적인 안식일은 그보다 더 깊은 내적 실재를 표상합니다. 인간 안에서 자기 자신으로부터 살려는 질서가 물러가고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과 선이 주된 것이 될 때, 그 사람의 내면에 안식일이 의미하는 상태가 이루어집니다.

 

다만 여기서 싸움이 그쳤다는 것을 거듭난 사람이 현실에서 더 이상 어떤 갈등이나 어려움도 겪지 않는다는 뜻으로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AC.84가 말하는 combat은 일반적인 인생의 고난이나 심리적 갈등 전체가 아니라 거듭남의 문맥에서 악과 거짓에 맞서는 영적 싸움입니다. 따라서 일곱째 날을 이제 삶에는 아무 문제도 없는 상태로 이해하면 본문의 뜻을 벗어나게 됩니다.

 

또한 천적 인간의 안식을 인간이 자기 노력으로 도달하여 확보하는 완전무결한 상태처럼 생각하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이번 번호에서 여섯 날의 일이 명시적으로 그분의 이라고 불리기 때문입니다. 안식은 인간이 자기 수행으로 획득한 상이 아니라 주님께서 이루신 거듭남의 질서에서 오는 상태입니다.

 

AC.84의 마지막 문장도 매우 중요합니다. ‘이와 같이 사람이 창조되고, 형성되고, 만들어졌습니다.스베덴보리는 비슷해 보이는 세 동사를 나란히 사용합니다. 이번 번호 자체에서는 그 차이를 상세히 설명하지 않으므로 여기서 각각에 확정적인 상응을 부여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 표현은 창1과 창2에서 다루어진 창조가 단순히 최초 인간의 육체적 제작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보여 줍니다.

 

지금까지의 문맥에서 사람이 창조되고, 형성되고, 만들어진다는 것은 주님께서 사람을 거듭나게 하시는 과정과 연결됩니다. 1에서 죽어 있던 사람은 여섯 날을 거쳐 영적 인간으로 형성되었고, 2에서는 신앙과 사랑이 하나가 되고 사랑이 주된 것이 되면서 천적 인간의 상태로 들어갑니다. 따라서 인간의 참된 창조는 그의 내적 생명이 주님으로부터 새롭게 형성되는 것과 분리할 수 없습니다.

 

특히 이 문장은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를 스베덴보리가 어떻게 읽고 있는지를 압축해서 보여 줍니다. 자연계의 하늘과 땅, 빛과 광명체, 식물과 동물, 사람의 창조를 말하는 문자적 서술 안에서 그는 인간의 거듭남이라는 속뜻을 읽습니다. 그리고 그 전체 과정의 끝에서 이와 같이 사람이 창조되고, 형성되고, 만들어졌다고 말합니다.

 

AC.83AC.84를 함께 보면 여섯째 날에서 일곱째 날로 넘어가는 구조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여섯째 날에는 신앙과 사랑이 하나를 이루고 사랑이 주된 것이 되기 시작합니다. 일곱째 날에는 그 천적 질서가 이루어져 싸움이 그칩니다. 그래서 천적 인간이 바로 일곱째 이며, 그 상태가 주님의 안식으로 표현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안식이 거듭남과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거듭남이 지향하는 상태라는 점입니다. 여섯 날 동안의 싸움과 변화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이 영원히 싸움 속에서만 살도록 거듭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선을 사랑하고 진리를 퍼셉션하여 선을 행하는 것이 자유와 기쁨이 되는 질서로 이끄십니다. AC.81에서 천적 인간의 결박이 선과 진리에 대한 퍼셉션이라고 한 것도 이와 연결됩니다.

 

그러므로 안식은 수동성이 아니라 질서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더 이상 악과 거짓의 강제와 저항 속에서 선을 행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입니다. 선을 행하는 것이 사랑과 자유에서 나오므로 그 자체가 기쁨이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천적 인간의 안식은 죽은 정지가 아니라 살아 있는 평화에 가깝습니다.

 

AC.84는 또한 주님의 주님의 안식이 모두 인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거듭남과 관계된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여섯 날 동안 주님께서 일하시고 일곱째 날에 쉬신다는 말씀을 인간 밖에서 벌어진 하나님의 행동만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안에서 주님께서 어떻게 일하시고 그 일을 어떤 상태에 이르게 하시는가로 읽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앞 AC.82에서 제시된 원리와도 잘 맞습니다. 거기서 교회에 관하여 말한 것은 그 교회의 각 사람에게도 말할 수 있다고 했고, 하늘과 땅 역시 사람의 속 사람과 겉 사람에게 적용되었습니다. 이제 안식일 역시 인간 밖의 제도만이 아니라 사람 안에서 이루어지는 천적 상태를 나타냅니다. 말씀의 큰 표상들이 한 사람의 거듭남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입니다.

 

따라서 AC.84천적 인간은 일곱째 이라는 문장은 단순한 상응 하나를 알려 주는 문장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그것은 창1에서 시작된 거듭남의 운동이 어디를 향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죽어 있던 사람이 영적 인간이 되고, 신앙과 사랑이 하나를 이루며, 사랑이 주된 것이 되고, 마침내 싸움이 그쳐 주님의 안식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영적 인간의 싸움을 부정적으로 평가할 필요는 없습니다. 싸움은 안식에 이르는 과정이며, AC.81에서 영적 인간은 싸움 가운데 언제나 승리한다고까지 표현되었습니다. 양심에 따라 악과 싸우는 영적 상태는 실패한 상태가 아니라 주님께서 사람을 이끄시는 거듭남의 실제적인 과정입니다. 일곱째 날의 안식은 그 여섯 날의 일을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완성합니다.

 

결국 AC.84에서 안식일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상태의 문제로 깊어집니다. 천적 인간이 일곱째 이며, 여섯 날 동안의 일은 주님의 이고, 모든 싸움이 그치기 때문에 주님께서 쉬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곱째 날이 거룩하게 구별되어 안식일이라 불립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스베덴보리는 이와 같이 사람이 창조되고, 형성되고, 만들어졌다는 말로 마무리합니다. 인간의 거듭남은 주님께서 이루시는 새로운 창조입니다. 여섯 날의 일과 일곱째 날의 안식은 바로 그 창조의 질서를 묘사합니다. 천적 인간은 그 안식의 상태에 있는 사람이며, 그래서 그 자신이 일곱째 입니다. (AC.84)

 

 

 

AC.85, 창2:2-3, '주님 자신이 안식일이시며, 천적 인간의 안식은 주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다'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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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3, 창2:1, ‘신앙과 사랑이 하나가 될 때, 사랑이 주된 것이 된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창2:1) AC.83‘하늘과 땅과 그 모든 만상’(heavens and the earth and all the army of them)은 사람이 ‘여섯째 날’(sixth day)이 되었을 때 ‘다 이루어졌다’(finished)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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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2:1)

 

AC.83

하늘과 땅과 모든 만상(heavens and the earth and all the army of them) 사람이 여섯째 (sixth day) 되었을 이루어졌다(finished) 합니다. 그때 신앙과 사랑이 하나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신앙과 사랑이 하나를 이룰 때에는 신앙이 아니라 사랑이, 다시 말해 영적인 것이 아니라 천적인 것이 주된 것이 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천적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The heavens and the earth and all the army of them are said to be finished, when man has become the sixth day, for then faith and love make a one. When they do this, love, and not faith, or in other words the celestial principle, and not the spiritual, begins to be the principal, and this is to be a celestial man.

 

해설

AC.83은 창1의 여섯째 날에서 창2의 천적 인간으로 넘어가는 전환을 매우 간결하게 설명합니다. AC.82에서는 하늘이 속 사람, ‘이 겉 사람이며, ‘ 모든 만상은 사랑과 신앙 및 그것들에 관한 지식들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AC.83은 왜 이 모든 것이 사람이 여섯째 이 되었을 때 이루어졌다고 하는지를 밝힙니다. 그 이유는 그때 신앙과 사랑이 하나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먼저 중요한 것은 이루어졌다는 말의 의미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거듭남에 더 이상 아무런 변화도 남아 있지 않은 절대적인 완성을 뜻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창1에서 다루어진 영적 인간의 형성이 하나의 완성된 상태에 이르렀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바로 이어지는 창2에서는 그 영적 인간이 천적 인간이 되는 더 깊은 변화가 다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여섯째 날의 완성은 끝이라기보다 다음 상태로 넘어갈 수 있는 충만한 상태라고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 상태의 핵심이 신앙과 사랑이 하나를 이루는 입니다. 1의 거듭남 과정에서 사람은 먼저 진리를 배우고 신앙을 통하여 선으로 인도됩니다. 처음에는 무엇이 참인지 배우고, 그것을 믿으며, 그 진리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데서 출발합니다. 그러나 거듭남이 진행되면서 신앙으로 받아들인 진리는 점차 삶의 선과 결합합니다. 사람이 단지 이것이 옳기 때문에 해야 한다고 아는 데 머물지 않고 실제로 그것을 사랑하고 행하게 될 때, 신앙과 사랑은 더 이상 서로 떨어진 두 가지가 아니라 하나를 이루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AC.81에서 영적 인간과 천적 인간을 비교한 내용과 정확히 연결됩니다. 영적 인간은 영적·천적인 진리와 선을 사랑으로부터라기보다는 신앙의 원리로부터인정하고 행동한다고 했습니다. 반면 천적 인간은 사랑으로부터 오는 신앙 외에는 다른 신앙을 인정하지 않고 그 사랑으로부터 행동합니다. AC.83은 바로 그 전환을 신앙과 사랑이 하나를 이룬다는 말로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영적 인간에서 천적 인간으로의 변화는 신앙을 버리고 사랑만 남기는 과정이 아닙니다. 이 점을 특히 주의해야 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신앙과 사랑 가운데 하나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둘이 하나를 이룬다고 말합니다. 달라지는 것은 그 둘의 질서입니다. 이전에는 신앙이 앞에서 사람을 인도했다면, 이제 사랑이 주된 것이 되고 신앙은 그 사랑과 하나 되어 존재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곧바로 신앙이 아니라 사랑이 주된 것이 되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신앙이 아니라는 말을 신앙이 중요하지 않게 되거나 필요 없어졌다는 뜻으로 읽으면 안 됩니다. 이미 첫 문장에서 신앙과 사랑이 하나를 이룬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그대로 있지만 이제 독립적으로 앞장서는 원리가 아니라 사랑 안에서 사랑과 하나 된 신앙이 됩니다.

 

이것은 영적인 것이 아니라 천적인 것이 주된 것이 된다는 다음 표현으로 다시 설명됩니다. 여기서도 영적인 것이 제거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the spiritualthe celestial의 관계는 서로 하나가 다른 하나를 없애는 관계가 아니라 무엇이 주된 것이며 무엇이 그 주된 것에 종속되어 질서를 이루느냐의 문제입니다. 사랑이 주된 것이 될 때 그 사람은 천적 인간이 됩니다.

 

따라서 AC.83에서 천적 인간을 정의하는 핵심은 단순히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는 데 있지 않습니다. 신앙과 사랑이 하나를 이루고, 그 하나 됨 가운데 사랑이 주된 것이 된 사람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차이입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강하다고 해서 곧 천적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가 사람 안에서 하나를 이루고 그 가운데 사랑이 삶을 이끄는 원리가 되는 것입니다.

 

주된 이라는 개념도 중요합니다. 인간 안에는 사랑, 신앙, 지식, 이성, 기억지식 등 여러 가지가 함께 존재합니다. 문제는 그 가운데 무엇이 중심에서 다른 것들을 질서 있게 이끄느냐입니다. AC.78에서도 속 사람과 겉 사람에 속한 모든 것이 지혜에서 나오고, 그 지혜가 주님을 향한 사랑과 신앙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이제 AC.83은 그 질서의 중심에서 사랑이 주된 것이 된다고 밝힙니다.

 

이 점에서 AC.83은 앞의 AC.77에서 생명나무가 사랑을, 지식의 나무가 신앙을 의미한다고 한 것과도 연결됩니다. 사랑과 신앙은 모두 천적 인간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천적 질서에서는 사랑이 주된 것이며 신앙은 사랑으로부터 나옵니다. 그러므로 이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문제를 이해할 때도 단순히 신앙이 나쁘다거나 지식이 나쁘다고 읽어서는 안 됩니다. 문제는 신앙과 지식이 사랑에서 분리되어 스스로 주된 것이 되려는 데 있습니다.

 

AC.83은 또한 왜 창2가 창1의 반복이 아닌지를 보여 줍니다. 1에서 사람은 여섯째 날에 이르러 영적 인간으로 형성됩니다. 사랑과 신앙도 이미 존재합니다. 그런데 창2에서는 그 둘의 내적 질서가 더욱 깊어져 사랑이 주된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창2의 천적 인간은 창1의 영적 인간과 전혀 별개의 새로운 인간이 아니라, 주님께서 이미 거듭나게 하신 영적 인간이 더 깊은 천적 질서로 들어간 상태입니다.

 

여기서 되기 시작한다는 표현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사랑이 주된 것이 된다고만 하지 않고 되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여섯째 날과 일곱째 날 사이의 전환적 성격을 잘 보여 줍니다. 여섯째 날에 신앙과 사랑이 하나를 이루면서 사랑이 주된 것이 되기 시작하고, 이어지는 일곱째 날에서 천적 인간의 상태가 본격적으로 펼쳐집니다.

 

따라서 거듭남을 너무 딱딱한 단계표로 나누는 것도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어느 순간까지는 완전히 영적 인간이었다가 다음 순간 갑자기 완전히 다른 천적 인간으로 바뀐다는 식보다는, 신앙과 사랑이 결합되고 그 질서가 변화하면서 사랑이 주된 것이 되어 가는 과정으로 읽는 것이 AC.83의 표현에 더 잘 맞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실제 신앙생활을 돌아보는 데에도 의미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말씀이 그렇게 가르치기 때문에’, ‘이것이 주님의 뜻이기 때문에순종하는 일이 많습니다. 때로는 마음이 따라오지 않더라도 진리를 붙들고 행동합니다. 이것은 결코 낮게 평가할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영적 인간의 거듭남에서 매우 중요한 과정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거듭남을 계속 이루어 가시면, 이전에는 의무와 양심으로 행하던 선을 점차 사랑하게 되는 변화가 일어납니다.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사랑하기 때문에 기꺼이 하는 으로 깊어지는 것입니다. 이때 진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진리가 사랑과 하나가 되어 삶 자체가 됩니다. AC.83이 말하는 신앙과 사랑의 하나 됨을 우리의 경험에 적용한다면 이런 방향에서 조심스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것을 의무감으로 하는 신앙은 가치가 없고 자발적인 사랑만 참된 것이다라는 식으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영적 인간의 신앙과 양심도 주님께서 거듭남 가운데 형성하시는 귀중한 것입니다. AC.81에서 영적 인간은 싸움 가운데 있으나 승리한다고 했습니다. 진리를 붙들고 양심에 따라 악과 싸우는 과정이 있기 때문에 더 깊은 사랑의 질서로 인도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영적인 것과 천적인 것의 차이를 우열만으로 보는 것보다 주도 원리의 차이로 보는 것이 이번 번호에서는 특히 중요합니다. 영적 인간에게서는 신앙이 주도적인 위치에서 사람을 선으로 인도합니다. 천적 인간에게서는 사랑이 주된 것이 되고 신앙이 그 사랑으로부터 나옵니다. 둘 다 주님의 거듭남의 질서 안에 있지만 그 내적 형태가 다릅니다.

 

AC.83신앙과 사랑이 하나를 이룬다는 말로 신앙과 삶의 관계도 생각하게 합니다. 신앙이 머리 안의 교리적 동의로만 남고 실제 사랑과 삶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아직 하나를 이룬 상태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사랑이라고 주장하면서 진리를 떠나는 것도 AC.83의 하나 됨과 다릅니다. 여기서 하나가 되는 것은 바로 신앙과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스베덴보리에게 신앙과 체어리티가 분리될 수 없다는 더 넓은 가르침과도 연결될 수 있습니다. 다만 AC.83의 직접적인 문맥은 일반적인 신앙과 체어리티 교리를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데 있지 않고, 영적 인간이 천적 인간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신앙과 사랑의 질서가 어떻게 바뀌는지를 밝히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그보다 더 넓은 교리 전체를 이번 번호에 모두 끌어올 필요는 없습니다.

 

또한 신앙과 사랑이 하나를 이룬다는 것을 두 개의 독립적인 실체가 나중에 기계적으로 합쳐진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참된 신앙은 본래 삶을 향하고, 참된 사랑은 진리와 함께합니다. 거듭남 가운데 주님께서는 사람이 받아들인 진리가 선의 삶과 결합되도록 이끄십니다. 그 결합이 깊어질수록 사람이 아는 것과 원하는 것, 믿는 것과 살아가는 것 사이의 분열도 줄어듭니다.

 

바로 이 점에서 여섯째 날의 이루어짐이 이해됩니다. 속 사람과 겉 사람이 형성되고 사랑과 신앙 및 그것들에 관한 지식들이 갖추어진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신앙과 사랑이 서로 하나를 이루게 됩니다. 인간 안의 영적 질서가 하나의 완성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완성은 곧 새로운 시작입니다. 사랑이 주된 것이 되기 시작하면서 천적 인간의 상태가 열리기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안식과 일곱째 날은 바로 그 상태를 더 깊이 보여 줄 것입니다. 따라서 창2:1 이루어지니라는 말씀은 창1의 끝을 알리는 동시에 창2의 천적 상태로 들어가는 문턱에 서 있습니다.

 

AC.82AC.83을 함께 읽으면 창2:1의 속뜻이 상당히 분명해집니다. ‘하늘은 속 사람이고 은 겉 사람이며, ‘ 모든 만상은 사랑과 신앙 및 그것들에 관한 지식들입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사람이 여섯째 날이 되어 신앙과 사랑이 하나를 이루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 하나 됨 가운데 이제 사랑이 주된 것이 되기 시작합니다.

 

따라서 AC.83의 핵심은 단순히 사랑이 신앙보다 중요하다는 문장으로 축약하면 오히려 놓치는 것이 생깁니다. 더 정확한 표현은 신앙과 사랑이 하나를 이루고, 하나 가운데 사랑이 주된 것이 된다입니다. 신앙은 제거되지 않고 사랑 안에서 자신의 참된 자리를 얻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영적 인간에서 천적 인간으로 넘어가는 전환입니다.

 

결국 AC.83은 천적 인간이 어떻게 시작되는지를 매우 명료하게 보여 줍니다. 신앙만으로 천적 인간이 되는 것도 아니고, 신앙을 버리고 사랑만 남김으로 천적 인간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주님께서 거듭남 가운데 신앙과 사랑을 하나 되게 하시고, 그 가운데 사랑이 주된 것이 되게 하실 때 영적인 질서가 천적인 질서로 깊어집니다. 이것이 창2에서 말하는 천적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AC.83)

 

 

 

AC.84, 창2:2-3, ‘천적 인간은 일곱째 날이며, 모든 싸움이 그친 안식의 상태다’ (AC.84-88)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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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2, 창2:1, ‘하늘은 속 사람, 땅은 겉 사람 - 한 사람이 곧 교회여야 한다’ (AC.82-83)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And the heavens and the earth were finished, and all the army of them. (창2:1) AC.82이 말씀은 이제 사람이 ‘여섯째 날’(sixth day)이 될 만큼 영적으로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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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And the heavens and the earth were finished, and all the army of them. (2:1)

 

AC.82

말씀은 이제 사람이 여섯째 (sixth day) 만큼 영적으로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늘(heaven) 그의 사람이고, (earth) 그의 사람이며, 그것들의 만상(the army of them) 사랑과 신앙 그것들에 관한 지식들인데, 이것들은 앞에서 광명체들과 별들로 의미되었습니다. 사람이 하늘(heaven)이라 불리고 사람이 (earth)이라 불린다는 것은 장에서 이미 인용한 말씀의 구절들로부터 분명하며, 여기에 이사야의 다음 말씀을 덧붙일 있습니다. By these words is meant that man is now rendered so far spiritual as to have become the sixth day”; heaven is his internal man, and earth his external; the army of them are love, faith, and the knowledges thereof, which were previously signified by the great luminaries and the stars. That the internal man is called heaven, and the external earth, is evident from the passages of the Word already cited in the preceding chapter, to which may be added the following from Isaiah:

 

12내가 사람을 순금보다 희소하게 하며 인생을 오빌의 금보다 희귀하게 하리로다 13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가 맹렬히 노하는 날에 하늘을 진동시키며 땅을 흔들어 자리에서 떠나게 하리니 (13:12, 13) I will make a man more rare than solid gold, even a man than the precious gold of Ophir; therefore I will smite the heavens with terror, and the earth shall be shaken out of its place (Isa. 13:1213).

 

13하늘을 펴고 땅의 기초를 정하고 너를 지은 여호와를 어찌하여 잊어버렸느냐 너를 멸하려고 준비하는 학대자의 분노를 어찌하여 항상 종일 두려워하느냐 학대자의 분노가 어디 있느냐, 16내가 말을 입에 두고 그늘로 너를 덮었나니 이는 내가 하늘을 펴며 땅의 기초를 정하며 시온에게 이르기를 너는 백성이라 말하기 위함이니라 (51:13, 16) Thou forgettest Jehovah thy maker, that stretcheth forth the heavens, and layeth the foundations of the earth; but I will put my words in thy mouth, and I will hide thee in the shadow of my hand, that I may stretch out the heaven, and lay the foundation of the earth (Isa. 51:13, 16).

 

말씀들로부터 하늘(heaven) (earth) 모두 사람에 대하여 서술된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비록 말씀들이 주로 태고교회를 가리키지만, 말씀의 내적인 것들은 교회에 관하여 말한 것은 무엇이든 교회의 사람에게도 말할 있는 그러한 본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자신이 교회가 아니면 결코 교회의 일부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주님의 성전이 아닌 사람은 성전이 의미하는 , 교회와 천국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태고교회가 단수로 사람(man)이라 불립니다. From these words it is evident that both heaven and earth are predicated of man; for although they refer primarily to the most ancient church, yet the interiors of the Word are of such a nature that whatever is said of the church may also be said of every individual member of it, who, unless he were a church, could not possibly be a part of the church, just as he who is not a temple of the Lord cannot be what is signified by the temple, namely, the church and heaven. It is for this reason that the most ancient church is called man, in the singular number.

 

해설

AC.82부터 창2 본문의 상세 해설이 시작됩니다. 앞의 AC.73-81이 창2:1-17 전체의 개요였다면, 이제 스베덴보리는 창2:1천지와 만물이 이루어지니라를 구체적으로 풀이합니다. 첫 문장에서 그는 이 말씀이 사람이 이제 여섯째 이 될 만큼 영적으로 되었다는 뜻이라고 밝힙니다. 그리고 하늘은 그의 속 사람, ‘은 그의 겉 사람, ‘그것들의 만상은 사랑과 신앙 및 그것들에 관한 지식들이라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여섯째 이라는 표현은 매우 중요합니다. 1의 여섯 날은 자연계의 창조 순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속뜻에서는 인간의 거듭남을 묘사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여섯째 이 되었다는 것은 육체적으로 여섯 번째 날에 존재하게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거듭남의 과정에서 영적 인간으로 형성된 상태에 이르렀다는 뜻입니다. 바로 앞 AC.81에서 스베덴보리가 창1죽은 사람으로부터 형성된 영적 인간을 다루었다고 한 것과 정확히 연결됩니다.

 

따라서 AC.82는 창1과 창2 사이의 경계도 다시 확인해 줍니다. 1의 여섯째 날에 이르러 사람은 영적 인간이 되었습니다. 2에서는 그 영적 인간이 천적 인간이 되는 일이 다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창2:1천지와 만물이 이루어지니라는 말씀은 속뜻에서 창1의 거듭남 과정이 여섯째 날의 상태에 이르렀음을 전제로 합니다.

 

이제 스베덴보리는 하늘을 사람 안에서 풀이합니다. ‘하늘은 속 사람이고 은 겉 사람입니다. 이것은 AC를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 상당히 낯선 해석일 수 있습니다. 성경의 하늘과 땅을 보통 인간 밖에 있는 우주와 자연계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말씀의 속뜻에서 하늘과 땅이 인간의 내적·외적 구조를 나타낼 수 있다고 봅니다.

 

여기서 속 사람이 하늘이라고 해서 속 사람 자체가 천국이라는 단순한 공간적 등식을 세우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겉 사람이 이라고 해서 겉 사람은 낮고 악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거듭난 인간에게서는 속 사람과 겉 사람이 모두 주님의 질서 안에 놓입니다. 중요한 것은 속 사람이 주님과 천국을 향하여 열리고, 겉 사람이 그 속 사람과 질서 있게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것들의 만상은 사랑과 신앙 및 그것들에 관한 지식들을 의미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들이 앞에서 광명체들과 별들로 의미되었다고 덧붙입니다. 이것은 창1의 상세 해설을 다시 연결하는 표현입니다. 창조 이야기에서 하늘의 광명체와 별들이 단순한 천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거듭나는 사람 안에 형성되는 사랑과 신앙 및 그에 속한 것들을 나타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창2:1천지와 만물이 이루어지니라는 말씀은 속뜻에서 한 사람의 속 사람과 겉 사람,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사랑과 신앙 및 그에 관한 지식들이 하나의 질서 안에 형성된 상태를 묘사합니다. 자연계 창조의 완성이 인간 안에서는 거듭남의 한 단계가 완성되는 것으로 읽히는 것입니다.

 

그러나 AC.82에서 더욱 중요한 부분은 그다음에 나옵니다. 스베덴보리는 왜 하늘 = 사람’, ‘ = 사람이라고 읽을 수 있는지를 말씀 자체로 확증하기 위해 이사야의 두 본문을 인용합니다. 13:12-13과 사51:13, 16입니다. 이 인용의 목적은 단순히 하늘이라는 단어가 성경 다른 곳에도 나온다는 사실을 보여 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과 땅이 사람과 교회의 내적 상태를 가리키는 방식으로 말씀에서 사용된다는 것을 보여 주려는 것입니다.

 

13에서는 사람이 순금보다 희귀하게 되고 하늘이 진동하며 땅이 그 자리에서 흔들리는 것이 함께 말해집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러한 말씀을 단순히 물리적 우주의 격변으로만 읽지 않고 인간과 교회의 내적·외적 상태의 변화와 연결합니다. 51에서도 여호와께서 하늘을 펴고 땅의 기초를 정하신다는 말씀이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두시는 것과 함께 나타납니다. 이것이 하늘을 사람에게 적용하여 읽을 수 있는 성경적 근거가 됩니다.

 

그러나 AC.82의 가장 중요한 해석 원리는 이 두 인용 뒤에 나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말씀들이 주로 태고교회를 가리키지만, 말씀의 내적인 것들은 교회에 관하여 말한 것은 무엇이든 그 교회의 각 사람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본성을 지닌다고 설명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이번 두 이사야 구절을 설명하기 위한 부연이 아니라 AC 전체의 성경 해석을 이해하는 매우 중요한 원리입니다.

 

즉 말씀에서 교회가 다루어질 때 그것은 거대한 종교 집단이나 역사적 제도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교회를 이루는 한 사람 안에서도 같은 영적 질서가 존재해야 합니다. 교회 전체에 관하여 말하는 선과 진리, 사랑과 신앙, 타락과 회복의 문제는 한 사람의 내적 생명에도 적용됩니다.

 

스베덴보리는 그 이유를 매우 강하게 표현합니다. ‘ 자신이 교회가 아니면 결코 교회의 일부가 없기 때문입니다.이것은 교회론을 외적인 소속에서 내적인 상태로 옮겨 놓는 중요한 문장입니다. 어떤 사람이 외적으로 교회 명부에 속해 있다는 사실만으로 말씀에서 말하는 의미의 교회의 일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 자신 안에 교회를 이루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외적인 교회 공동체가 불필요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것은 교회 공동체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공동체를 실제로 교회가 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더 깊이 보는 것입니다. 교회는 사람들로 이루어지며, 각각의 사람 안에 주님에 대한 사랑과 신앙, 선과 진리의 질서가 없다면 외적인 조직만으로는 말씀에서 의미하는 교회의 본질을 이룰 수 없습니다.

 

이어지는 성전의 비유가 이 원리를 더욱 분명하게 합니다. ‘주님의 성전이 아닌 사람은 성전이 의미하는 , 교회와 천국이 없다고 합니다. 여기서도 건물로서의 성전과 사람 안의 영적 실재가 연결됩니다. 성전이 말씀에서 교회와 천국을 의미한다면, 그 교회와 천국의 질서가 한 사람 안에도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 안에 천국이 있다는 말을 막연하게 낭만적으로 이해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AC.82의 문맥에서는 매우 구체적입니다. 사람의 속 사람은 하늘’, 겉 사람은 으로 묘사되고, 그 안에 사랑과 신앙 및 그것들에 관한 지식들이 질서를 이루어야 합니다. 즉 인간이 하나의 작은 교회이며 성전이라는 말은 그의 내적·외적 삶 전체가 주님의 질서 안에 놓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바로 이 때문에 스베덴보리는 태고교회가 단수로 사람이라 불린다고 설명합니다. 태고교회라는 하나의 교회와 그 교회를 이루는 한 사람 사이에 상응하는 구조가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 전체에 있는 것이 각 사람 안에도 있으며, 각 사람이 교회의 질서를 자기 안에 받아들일 때 그들이 함께 교회를 이룹니다.

 

여기서 태고교회가 사람이라 불린다는 말을 태고교회 전체가 실제 한 개인이었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라는 단수 표현은 그 교회의 내적 성격과 질서를 나타냅니다. 앞서 창1사람역시 거듭나는 인간과 교회의 상태를 묘사하는 방식으로 읽혀 왔습니다.

 

AC.82의 이 원리는 말씀의 속뜻이 왜 동시에 교회와 개인에게 적용될 수 있는지도 설명해 줍니다. 예를 들어 교회의 타락에 관한 말씀이 개인의 거듭남과 무관한 역사적 사건으로만 머물지 않고, 한 사람 안에서 선과 진리의 질서가 무너지는 과정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교회의 회복에 관한 말씀도 한 사람의 내적 회복과 연결됩니다. 말씀의 속뜻에서는 교회와 인간이 서로 분리된 두 주제가 아니라 상응하는 질서 안에 있습니다.

 

이것은 AC를 읽으면서 자주 만나게 될 교회라는 표현을 이해하는 데도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가 태고교회, 고대교회, 유대교회, 기독교회 등을 다룰 때 우리는 역사적 집단만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들의 영적 특성은 동시에 인간 안의 상태와도 연결됩니다. AC.82는 바로 그 적용이 가능한 이유를 직접 설명해 주는 번호입니다.

 

또한 이 원리는 거듭남이 개인적인 문제이면서 동시에 교회적인 문제라는 사실도 보여 줍니다. 교회의 갱신을 말하면서 구성원 각 사람의 거듭남을 제외할 수 없습니다. ‘ 자신이 교회가 아니면 교회의 일부가 없다는 문장은 교회의 참된 갱신이 결국 한 사람 한 사람 안에서 주님의 질서가 이루어지는 것과 분리될 수 없음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이 문장을 완전히 거듭난 사람만 교회에 들어올 자격이 있다는 배타적인 의미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AC.82는 교회 회원의 자격 심사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속뜻에서 교회와 개인이 왜 서로 대응하여 서술될 수 있는지를 설명합니다. 따라서 이 문장의 초점은 다른 사람을 교회인지 아닌지 판정하는 데 있지 않고, 교회라고 불리는 것이 먼저 나 자신 안에서 실제가 되어야 한다는 데 있습니다.

 

AC.82를 이렇게 읽으면 하늘의 의미도 더욱 깊어집니다. 하늘과 땅은 사람 밖에 있는 것만이 아니라 인간 안에서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속 사람과 겉 사람이 주님의 질서 안에서 연결되고, 사랑과 신앙 및 그것들에 관한 지식들이 그 안에서 제자리를 찾을 때 인간 안에 하나의 하늘과 이 형성됩니다.

 

이 점은 창2의 천적 인간을 이해하는 데도 중요합니다. AC.81까지는 죽은 사람, 영적 인간, 천적 인간의 차이를 설명했습니다. 이제 AC.82는 먼저 여섯째 날의 영적 인간이 어떤 상태까지 형성되었는지를 다시 확인합니다. 그의 속 사람과 겉 사람, 사랑과 신앙 및 그에 관한 지식들이 형성되어 천지와 만상이 이루어진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제 이어지는 안식과 일곱째 날을 통하여 천적 인간의 상태가 본격적으로 설명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AC.82는 창2:1의 짧은 말씀을 해설하면서 동시에 세 가지 중요한 원리를 세웁니다. 여섯째 날은 거듭난 영적 인간의 상태이며, 하늘과 땅은 그의 속 사람과 겉 사람이고, 교회에 관하여 말한 말씀은 그 교회를 이루는 각 사람에게도 적용됩니다. 이 세 번째 원리 때문에 이번 번호는 창2 한 절의 해설을 넘어 AC 전체를 읽는 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특히 자신이 교회가 아니면 교회의 일부가 없다는 문장을 기억해 둘 만합니다. 교회는 먼저 외부에 존재하는 조직이고 내가 거기에 가입함으로써 교회의 일부가 되는 것만이 아닙니다. 말씀의 선과 진리, 주님을 향한 사랑과 신앙이 내 안에서 실제 삶의 질서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함께 있을 때 외적인 교회도 그 내적 실재를 담는 교회가 됩니다.

 

결국 AC.82하늘과 은 먼 우주의 이야기에서 인간 자신의 내면으로 다가옵니다. 하늘은 속 사람이고 땅은 겉 사람이며, 그 만상은 사랑과 신앙 및 그것들에 관한 지식들입니다. 그리고 이 질서는 한 사람 안에서 실제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교회이기 위해서는 교회를 이루는 사람이 먼저 자기 안에서 교회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원리 때문에 말씀에서 교회에 관하여 말한 것은 동시에 그 교회의 각 사람에 관하여 말할 수 있으며, 태고교회도 단수로 사람이라 불릴 수 있습니다. (AC.82)

 

 

 

AC.83, 창2:1, ‘신앙과 사랑이 하나가 될 때, 사랑이 주된 것이 된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창2:1) AC.83‘하늘과 땅과 그 모든 만상’(heavens and the earth and all the army of them)은 사람이 ‘여섯째 날’(sixth day)이 되었을 때 ‘다 이루어졌다’(finished)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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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1, 창2:1-17 배경, '죽은 사람, 영적 인간, 천적 인간의 세 가지 차이'

AC.81이 장은 천적 인간을 다루며, 앞 장은 죽은 사람으로부터 형성된 영적 인간을 다루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천적 인간이 무엇인지 알려져 있지 않고, 영적 인간이나 죽은 사람이 무엇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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