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2:2, 3)

 

AC.87

천적 인간이 안식일(sabbath) 또는 안식(rest) 하나의 이유는, 그가 천적 인간이 싸움이 그치기 때문입니다. 악한 영들은 물러가고 선한 영들이 가까이 오며, 천적 천사들도 가까이 옵니다. 이들이 함께 있을 때에는 악한 영들이 도저히 머물 없으므로 멀리 달아납니다. 그리고 싸움을 수행한 것은 사람 자신이 아니라 사람을 위하여 주님 홀로 하신 것이므로, 주님께서 쉬셨다(rested) 합니다. Another reason why the celestial man is the sabbath, or rest, is that combat ceases when he becomes celestial. The evil spirits retire, and good ones approach, as well as celestial angels; and when these are present, evil spirits cannot possibly remain, but flee far away. And since it was not the man himself who carried on the combat, but the Lord alone for the man, it is said that the Lord rested.

 

해설

AC.87은 왜 천적 인간이 안식일이며 안식인지를 또 하나의 각도에서 설명합니다. 앞의 AC.84에서는 모든 싸움이 그치기 때문에 주님께서 쉬신다고 했고, AC.85에서는 안식이 주님의 뜻이 사람의 뜻이 되는 상태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번 AC.87에서는 그 싸움이 실제로 어떻게 그치는지, 그리고 누가 그 싸움을 수행해 왔는지를 밝힙니다.

 

먼저 스베덴보리는 천적 인간이 될 때 싸움이 그친다고 합니다. 이 말은 AC.81과 다시 연결됩니다. 거기서 영적 인간은 싸움 가운데 있고, 천적 인간은 싸움 가운데 있지 않으며 악과 거짓의 공격을 받을 때 그것들을 멸시한다고 했습니다. AC.87은 그 차이의 배후에 있는 영계의 질서를 설명합니다.

 

천적 상태에 이르면 악한 영들은 물러가고 선한 영들이 가까이 오며, 천적 천사들도 가까이 옵니다. 그리고 그들이 함께 있을 때에는 악한 영들이 도저히 머물 수 없으므로 멀리 달아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싸움이 그친다는 것은 단순히 사람이 더 강한 의지력을 가지게 되어 악을 억누른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을 둘러싼 영적 환경과 결합의 질서 자체가 달라졌다는 설명입니다.

 

여기서 스베덴보리가 인간의 영적 상태를 영들과 천사들의 가까움과 멀어짐으로 설명한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인간의 선과 악은 완전히 고립된 내면 현상으로만 다루어지지 않습니다. 사람은 영계와의 결합 속에서 살며, 그의 지배적인 사랑과 상태에 따라 어떤 영적 사회와 연결되는지가 달라집니다. AC.87은 바로 그 질서를 짧게 보여 줍니다.

 

그러나 이번 번호의 핵심은 단순히 악한 영은 떠나고 선한 영과 천사가 가까이 온다는 데만 있지 않습니다. 마지막 문장이 더 중요합니다. ‘싸움을 수행한 것은 사람 자신이 아니라 사람을 위하여 주님 홀로 하신 것이다.이 문장이 있어야 주님께서 쉬셨다는 말의 의미가 완성됩니다.

 

이것은 거듭남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매우 분명하게 말해 줍니다. 인간은 싸움 가운데 실제로 고통을 느끼고 선택하며 악을 거절합니다. 그러나 그 싸움을 가능하게 하고 악에 맞서 선과 진리를 보존하며 승리를 이루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여섯 날의 모든 싸움이 끝났을 때 사람이 쉬었다고 하지 않고 주님께서 쉬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점은 인간의 자유와 주님의 역사 사이를 균형 있게 이해하게 합니다. ‘주님 홀로 싸우셨다고 해서 인간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반대로 인간이 실제로 싸움을 경험한다고 해서 그 힘과 승리의 근원이 인간 자신이라는 뜻도 아닙니다. 인간은 자유롭게 악과 거짓을 거절해야 하지만, 그 싸움의 능력과 선한 결과는 주님으로부터 옵니다.

 

따라서 AC.87은 거듭남을 자기 수련이나 도덕적 자기극복으로 보는 관점을 분명히 교정합니다. 천적 인간은 자기 힘으로 수많은 악한 영들을 쫓아낸 강한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주님께서 그 사람 안의 질서를 바꾸시고, 악한 영들이 머물 수 없는 상태로 이끄신 결과 싸움이 그치는 것입니다.

 

여기서 악한 영들이 도저히 머물 없다는 표현도 조심해서 읽어야 합니다. 이것을 천적 인간에게 더 이상 어떤 유혹이나 공격도 절대로 접근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확대하면 AC.81과 긴장이 생깁니다. AC.81은 천적 인간도 악과 거짓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다만 그 공격이 이전처럼 지속적인 내적 싸움의 상태를 만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즉 악한 영들이 가까이 머물며 사람을 계속 붙드는 상태는 끝나고, 선한 영들과 천적 천사들의 가까움이 지배적인 질서가 됩니다. 그래서 악한 영들의 접근은 일시적 공격일 수는 있어도 그 사람 안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고 싸움을 계속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AC.85에서 말한 주님의 뜻이 그의 뜻이 된다는 설명과도 잘 연결됩니다. 사람이 자기중심적인 욕망을 삶의 중심으로 삼을수록 악한 영들이 그와 결합할 조건이 많지만, 주님의 선을 사랑하고 그 뜻을 자신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천적 상태에서는 그 결합의 질서가 달라집니다. 그래서 싸움이 자연스럽게 그치게 됩니다.

 

AC.87의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안식을 단순한 심리적 평온이 아니라 영적 질서의 결과로 설명한다는 데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편안해서 안식인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싸움을 끝내시고 악한 영들이 물러가며 선한 영들과 천적 천사들이 가까이 오는 질서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안식입니다.

 

따라서 천적 인간의 평화는 자기최면이나 감정 조절로 만들어 낸 평온과 다릅니다. 그 평화는 주님께서 이루신 거듭남의 결과이며, 영적 결합의 질서가 바뀐 데서 오는 안식입니다.

 

이번 번호에서 천적 천사들이 따로 언급되는 것도 눈에 띕니다. 선한 영들뿐 아니라 천적 천사들이 가까이 온다고 했습니다. 이는 천적 인간의 상태가 단지 악이 약해진 상태가 아니라 더 높은 천적 질서와의 결합이 이루어진 상태임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AC.87 자체는 천적 천사들의 성격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으므로 여기서 더 확대할 필요는 없습니다.

 

AC.84-87을 함께 보면 안식의 의미가 점점 풍성해집니다. AC.84에서는 싸움이 그쳐 주님께서 쉬신다고 했고, AC.85에서는 그 안식이 주님의 뜻이 사람의 뜻이 되는 평화의 상태라고 했습니다. AC.86에서는 영적 인간이 천적 인간이 되기 시작하는 상태를 안식일의 저녁이라고 했고, 이제 AC.87에서는 그 싸움이 그치는 영적 배경과 주체를 설명합니다.

 

특히 마지막 문장은 창세기의 창조 기사 전체를 거듭남으로 읽는 데 중요한 열쇠입니다. ‘주님께서 쉬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육체적으로 피곤하여 일을 멈추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을 위하여 수행하시던 거듭남의 싸움이 그 사람 안에서 안식의 상태에 이르렀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싸움의 주체가 애초부터 주님이셨기 때문입니다. 만일 싸움이 인간 자신의 일이었다면 그 싸움이 끝났을 때 인간이 쉬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주님께서 사람을 위하여 홀로 싸우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 일이 끝났을 때 주님께서 쉬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공로를 배제하는 매우 중요한 설명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거듭남의 과정에서 많은 싸움을 겪고 악을 이겼다고 해도, 그 승리를 자기 능력이나 자기 의의 근거로 삼을 수 없습니다. 실제로 싸움의 힘과 승리의 근원은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인간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이 악을 악으로 인정하고 그것을 거절하는 실제 선택을 하지 않는다면 주님께서 강제로 그를 거듭나게 하시는 방식은 아닙니다. AC.87은 자유를 없애는 말이 아니라 승리의 근원을 밝히는 말입니다.

 

따라서 주님 홀로 싸우신다는 표현은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수동주의와도 다릅니다. 인간은 마치 자기 힘으로 싸우는 것처럼 실제로 싸워야 하지만, 그 힘이 자기에게서 나온다고 믿어서는 안 됩니다. 이번 번호에서는 그 후자의 진실, 곧 실제 근원은 주님이라는 사실이 강조됩니다.

 

이 점에서 AC.87proprium의 문제와도 조심스럽게 연결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싸움과 승리를 자기 것으로 소유하려 하면 거듭남마저 자기 공로가 됩니다. 그러나 싸움은 주님께서 사람을 위하여 하시는 것이며, 인간은 그 주님의 역사에 응답하는 존재입니다. 이 질서가 유지될 때 안식도 자기 성취의 결과가 아니라 주님의 선물이 됩니다.

 

AC.87은 짧지만 싸움과 안식’, ‘인간의 자유와 주님의 역사’, ‘영들과 천사들의 결합’, ‘거듭남의 주체가 한 문단 안에 압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번호를 단순히 악한 영들이 떠난다는 흥미로운 영계 묘사로만 읽으면 중요한 부분을 놓치게 됩니다.

 

결국 천적 인간이 안식일인 이유는 그가 더 이상 자기 힘으로 싸울 필요가 없을 만큼 강해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사람을 위하여 수행하시던 싸움이 그 사람 안에서 안식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악한 영들은 물러가고 선한 영들과 천적 천사들이 가까이 오며, 그 질서 안에서 싸움은 그칩니다.

 

그러므로 AC.87의 마지막 주님께서 쉬셨다는 말은 거듭남 전체를 주님의 일로 돌리는 고백입니다. 사람은 싸움을 경험하지만 싸우시는 분은 주님이시고, 사람은 승리를 경험하지만 승리를 이루시는 분도 주님이십니다. 그 주님의 일이 천적 상태에 이르면 싸움이 그치고 안식이 시작됩니다. 이것이 천적 인간이 안식일이며 안식인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AC.87)

 

 

 

AC.88, 창2:2-3, ‘새로운 창조, 곧 거듭남은 주님 홀로 하시는 일이다’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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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6, 창2:2-3, ‘안식일의 저녁 - 영적 인간이 천적 인간이 되기 시작하는 상태’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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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2:2, 3)

 

AC.86

여섯째 (sixth day) 영적 인간이 천적 인간이 되기 시작할 , 여기서 처음 다루고 있는 상태가 안식일의 저녁(eve of the sabbath)입니다. 이것은 유대교회에서 저녁부터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으로 표상되었습니다. 천적 인간은 아침(morning)이며, 이에 대해서는 이어 말할 것입니다. When the spiritual man, who has become the sixth day, is beginning to be celestial, which state is here first treated of, it is the eve of the sabbath, represented in the Jewish church by the keeping holy of the sabbath from the evening. The celestial man is the morning to be spoken of presently.

 

이날은 준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 (23:54)

 

해설

AC.86은 영적 인간에서 천적 인간으로 넘어가는 전환의 상태를 설명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여섯째 이 된 영적 인간이 천적 인간이 되기 시작할 , 바로 그 상태가 안식일의 저녁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앞의 AC.83과 정확히 이어집니다. 거기서는 사람이 여섯째 날에 이르면 신앙과 사랑이 하나를 이루고, 그때 신앙이 아니라 사랑, 곧 영적인 것이 아니라 천적인 것이 주된 것이 되기 시작한다고 했습니다. 이제 AC.86에서는 바로 그 변화가 시작되는 상태를 안식일의 저녁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여섯째 날의 영적 인간과 일곱째 날의 천적 인간 사이를 서로 아무 관계 없는 두 상태처럼 끊어서 볼 것이 아니라, 영적 인간이 천적 인간이 되어 가는 전환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저녁을 곧바로 어둠이나 악이나 타락의 상태라고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AC.86은 이 저녁이 무엇인지를 직접 밝혀 주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이미 여섯째 이 된 영적 인간이 천적 인간이 되기 시작하는 상태입니다. 이것은 상응을 고정된 사전처럼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좋은 예이기도 합니다. 어떤 표현이 다른 문맥에서 특정한 의미를 나타냈다고 해서 그 의미를 모든 곳에 그대로 대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는 스베덴보리 자신이 안식일의 저녁이 어떤 상태인지를 분명히 말하고 있으므로 그 설명을 그대로 따라야 합니다. 동시에 이 상태를 몇 단계로 이루어진 별도의 심리적 과정처럼 세분할 필요도 없습니다. AC.86이 말하는 것은 영적 인간이 천적 인간이 되기 시작하는 상태가 있다는 것이며, 그것을 안식일의 저녁이라 한다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상태가 유대교회에서 저녁부터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으로 표상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AC.85에서 유대교회에는 주님과 주님의 나라를 표상하지 않는 것이 아무것도 제정되지 않았다고 한 설명과 이어집니다. 여섯 날의 수고와 일곱째 날의 안식이 싸움과 평화를 표상했듯이, 저녁부터 시작되는 안식일도 영적 인간이 천적 인간이 되기 시작하는 상태를 표상한 것입니다. 다만 AC.86은 여기서 유대교회의 안식일 규례 전체의 역사나 그 세부적인 의미를 설명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저녁부터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켰다는 사실을 통하여 안식일의 저녁이라는 전환의 상태를 보여 주는 데 초점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베덴보리는 천적 인간은 아침이라고 말하면서 이에 대해서는 곧 이어 말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아침의 의미를 미리 자세히 풀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까지 이 번호에서 확실히 밝혀진 것만 붙들면 충분합니다. 여섯째 이 된 영적 인간이 천적 인간이 되기 시작하는 상태가 안식일의 저녁이고, 천적 인간은 아침입니다. AC.83에서 사랑이 주된 것이 되기 시작한다고 한 설명과 AC.86에서 천적 인간이 되기 시작한다고 한 설명이 서로 이어지면서, 여섯째 날에서 일곱째 날로의 변화가 한순간의 단절이 아니라 하나의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이어지는 거듭남의 질서임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아침에 관해서는 스베덴보리 자신이 곧 설명하겠다고 했으므로, 우리는 그 설명을 기다리면 됩니다. (AC.86 해설)

 

 

 

AC.85, 창2:2-3, ‘주님 자신이 안식일이시며, 주님의 뜻이 천적 인간의 뜻이 된다’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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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2:2, 3)

 

AC.85

천적 인간이 일곱째 (seventh day)이며, 따라서 일곱째 날이 거룩하게 구별되어 안식일이라 하였다는 것은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던 아르카나입니다. 천적 인간의 본성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영적 인간의 본성을 아는 사람도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무지로 인해 사람들은 영적 인간을 천적 인간과 같은 것으로 여겨 왔지만,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는 AC.81에서 있습니다. 일곱째 날에 관하여, 그리고 천적 인간이 일곱째 (seventh day) 또는 안식일(sabbath)이라는 것에 관하여 말하자면, 이는 주님 자신이 안식일이시라는 사실로부터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That the celestial man is theseventh day,and that the seventh day was therefore hallowed, and called the sabbath, are arcana which have not hitherto been discovered. For none have been acquainted with the nature of the celestial man, and few with that of the spiritual man, whom in consequence of this ignorance they have made to be the same as the celestial man, notwithstanding the great difference that exists between them, as may be seen in n. 81. As regards the seventh day, and as regards the celestial man being theseventh dayorsabbath,this is evident from the fact that the Lord himself is the sabbath; and therefore he says: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2:28) The son of man is Lord also of the sabbath (Mark 2:27),

 

말씀은 주님께서 사람 자체이시며 안식일 자체이심을 함축합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주님의 나라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안식일, 영원한 평화와 안식이라 합니다. which words imply that the Lord is man himself, and the sabbath itself. His kingdom in the heavens and on the earth is called, from him, a sabbath, or eternal peace and rest.

 

[2] 여기서 다루고 있는 태고교회는 뒤를 이은 모든 교회보다 더욱 주님의 안식일이었습니다. 이후의 모든 주님의 가장 내적인 교회도 역시 안식일이며, 거듭난 사람도 천적 인간이 안식일입니다. 그가 주님의 형상이기 때문입니다. 그에 앞서 여섯 날의 싸움 또는 수고가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유대교회에서 수고하는 날들과 안식일인 일곱째 날로 표상되었습니다. 교회에서는 주님과 주님의 나라를 표상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제정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같은 것이 법궤가 나아갈 때와 때에도 표상되었습니다. 광야에서 법궤가 나아간 것은 싸움과 시험을 표상하였고, 법궤가 것은 평화의 상태를 표상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법궤가 떠날 모세가 말했습니다.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is here treated of, was the sabbath of the Lord above all that succeeded it. Every subsequent inmost church of the Lord is also a sabbath; and so is every regenerate person when he becomes celestial, because he is a likeness of the Lord. The six days of combat or labor precede. These things were represented in the Jewish church by the days of labor, and by the seventh day, which was the sabbath; for in that church there was nothing instituted which was not representative of the Lord and of his kingdom. The like was also represented by the ark when it went forward, and when it rested, for by its journeyings in the wilderness were represented combats and temptations, and by its rest a state of peace; and therefore, when it set forward, Moses said:

 

35궤가 떠날 때에는 모세가 말하되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가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하였고 36궤가 때에는 말하되 여호와여 이스라엘 종족들에게로 돌아오소서 하였더라 (10:35, 36) Rise up, Jehovah, and let thine enemies be scattered, and let them that hate thee flee before thy faces. And when it rested, he said, Return, Jehovah, unto the ten thousands of the thousands of Israel (Num. 10:3536).

 

그곳에서는 법궤가 여호와의 산을 떠나 그들의 곳을 찾기 위하여(to search out a rest for them) 갔다고 합니다. (10:33) It is there said of the ark that it went from the Mount of Jehovahto search out a rest for them(Num. 10:33).

 

그들이 여호와의 산에서 떠나 길을 때에 여호와의 언약궤가 길에 앞서가며 그들의 곳을 찾았고 (10:33)

 

[3] 천적 인간의 안식은 이사야에서 안식일로 묘사됩니다. The rest of the celestial man is described by the sabbath in Isaiah:

 

13만일 안식일에 발을 금하여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14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58:13, 14) If thou bring back thy foot from the sabbath, so that thou doest not thy desire in the day of my holiness, and callest the things of the sabbath delights to the holy of Jehovah, honorable; and shalt honor it, not doing thine own ways, nor finding thine own desire, nor speaking a word; then shalt thou be delightful to Jehovah, and I will cause thee to be borne over the lofty things of the earth, and will feed thee with the heritage of Jacob (Isa. 58:1314).

 

천적 인간의 본성은 이와 같아서 그는 자기 자신의 뜻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주님의 선하신 뜻에 따라 행동하며, 주님의 뜻이 그의 (desire) 됩니다. 이리하여 그는 내적인 평화와 행복을 누리는데, 이것이 여기서는 땅의 높은 곳에 올림을 받는 (being uplifted over the lofty things of the earth)으로 표현되며, 동시에 외적인 평온과 기쁨을 누리는데, 외적인 평온과 기쁨은 야곱의 기업으로 양육되는 (being fed with the heritage of Jacob)이라는 표현으로 나타납니다. Such is the quality of the celestial man that he acts not according to his own desire, but according to the good pleasure of the Lord, which is hisdesire.Thus he enjoys internal peace and happinesshere expressed bybeing uplifted over the lofty things of the earthand at the same time external tranquility and delight, which is signified bybeing fed with the heritage of Jacob.

 

해설

AC.85AC.84에서 제시한 천적 인간은 일곱째 이라는 아르카나를 본격적으로 설명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이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던 이유를 먼저 말합니다. 천적 인간의 본성을 아는 사람이 없었고 영적 인간의 본성을 아는 사람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둘 사이에 큰 차이가 있음에도 사람들이 영적 인간과 천적 인간을 같은 것으로 여겨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AC.81을 가리킵니다. AC.81에서 영적 인간은 신앙의 원리로부터 선과 진리를 인정하고 양심의 결박 가운데 싸우는 사람이며, 천적 인간은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을 인정하고 선과 진리를 퍼셉션하며 악과 거짓을 업신여기는 사람으로 구별되었습니다.

 

AC.85가 천적 인간을 일곱째 또는 안식일이라 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천적 인간 자신에게 있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는 먼저 주님 자신이 안식일이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를 밝히기 위해 막2:28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를 인용합니다. 그는 이 말씀이 주님께서 사람 그 자체이시며 안식일 그 자체이심을 함축한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천적 인간이 안식일인 것은 그가 주님과 독립하여 스스로 안식의 상태를 이루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AC.85는 뒤에서 거듭난 사람이 천적 인간이 될 때 안식일인 이유를 그가 주님의 형상이기 때문이라고 직접 밝힙니다. 주님은 안식일 그 자체이시고 천적 인간은 주님의 형상으로서 안식일입니다. 이 구별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님으로 말미암아 하늘과 땅에 있는 주님의 나라도 안식일, 영원한 평화와 안식이라 합니다. 이로써 안식일의 속뜻은 단순히 일을 멈추는 날이라는 의미를 넘어섭니다. 그 근원은 주님 자신에게 있으며, 주님의 나라의 상태가 영원한 평화와 안식으로 묘사됩니다.

 

이 원리는 교회에도 적용됩니다. 여기서 다루는 태고교회는 그 뒤를 이은 모든 교회보다 더욱 주님의 안식일이었으며, 이후의 모든 주님의 가장 내적인 교회도 역시 안식일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한 사람에게도 같은 원리가 적용되어, 모든 거듭난 사람은 천적 인간이 될 때 안식일입니다. 이것은 AC.82에서 교회에 관하여 말한 것은 그 교회의 각 사람에게도 말할 수 있다고 했던 원리와도 연결됩니다.

 

그러나 안식에 앞서는 것이 있습니다. 여섯 날의 싸움 또는 수고입니다. 이것은 AC.84에서 천적 인간의 상태에 이르면 모든 싸움이 그친다고 한 설명과 이어집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싸움과 안식의 질서가 유대교회에서 수고하는 날들과 일곱째 날 안식일로 표상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교회에서는 주님과 주님의 나라를 표상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제정되지 않았다고 밝힙니다.

 

이어지는 법궤의 인용도 바로 이 싸움과 안식의 대조를 보여 주기 위한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법궤가 광야에서 나아간 것이 싸움과 시험을 표상하고, 법궤가 쉰 것이 평화의 상태를 표상했다고 직접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민10:35-36에서 법궤가 떠날 때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라고 하고, 쉴 때에는 여호와여 이스라엘 종족들에게로 돌아오소서라고 한 말씀을 인용합니다. 이 자리에서는 대적이나 이스라엘의 수많은 종족 각각의 상응을 따로 풀기보다, 스베덴보리가 직접 밝힌 법궤의 나아감은 싸움과 시험, 쉼은 평화의 상태라는 인용 목적을 붙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10:33그들의 곳을 찾기 위하여라는 말씀도 같은 이유로 이어집니다. AC.85가 여기서 직접 강조하는 것은 법궤의 광야 여정과 쉼을 통하여 싸움과 안식의 질서가 표상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법궤가 앞서가는 것의 세부적인 상응이 무엇인지를 이 번호에서 새로 확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3]에서 스베덴보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천적 인간의 안식이 실제로 어떤 상태인지를 사58:13-14를 통하여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인용만 한 뒤 멈추지 않고 그 의미를 직접 풀이합니다. 천적 인간은 자기 자신의 뜻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주님의 선하신 뜻에 따라 행동하며, 그 주님의 뜻이 그의 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AC.85의 매우 중요한 문장입니다. 천적 인간의 안식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닙니다. 그는 분명히 행동합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뜻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주님의 선하신 뜻에 따라 행동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주님의 뜻이 단지 외부에서 그에게 명령되는 뜻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이 된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AC.81에서 천적 인간이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결박도 없는 것처럼 보이며 자유롭지만, 그의 보이지 않는 결박은 선과 진리에 대한 퍼셉션이라고 한 설명을 한층 더 이해하게 합니다. 천적 인간에게 주님의 뜻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외부에서 강제로 시키는 명령으로만 남아 있지 않습니다. 주님의 선하신 뜻이 그의 뜻이 되기 때문에 그는 그 질서 안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뜻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다는 말을 인간에게 더 이상 의지가 없다거나 인간이 수동적인 존재가 된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원문 자체가 주님의 선하신 뜻이 그의 이 된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AC.85가 말하는 안식은 행동이나 의지가 사라지는 상태가 아니라, 천적 인간의 뜻이 주님의 선하신 뜻과 일치하는 상태입니다.

 

스베덴보리는 그 결과를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으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천적 인간은 내적인 평화와 행복을 누리며, 이것이 땅의 높은 곳에 올림을 받는 으로 표현됩니다. 동시에 외적인 평온과 기쁨을 누리며, 이것이 야곱의 기업으로 양육되는 으로 의미됩니다. 여기서는 스베덴보리 자신이 두 표현의 의미를 직접 밝혀 주므로 그대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따라서 사58:13-14AC.85에 인용된 핵심도 분명합니다. 안식일의 외적인 규정을 설명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천적 인간의 안식이 자기 자신의 뜻을 따라 행동하는 상태가 아니라 주님의 선하신 뜻이 자신의 뜻이 된 상태임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그 상태에는 내적인 평화와 행복, 외적인 평온과 기쁨이 있습니다.

 

AC.85 전체의 흐름은 하나로 이어집니다. 주님 자신이 안식일이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나라는 영원한 평화와 안식이며, 주님의 가장 내적인 교회도 안식일이고, 거듭난 사람도 천적 인간이 될 때 주님의 형상으로서 안식일입니다. 그 안식에 앞서 여섯 날의 싸움 또는 수고가 있으며, 이것이 유대교회의 수고하는 날들과 안식일, 그리고 법궤의 나아감과 쉼으로 표상되었습니다. 그리고 천적 인간의 안식이 실제로 어떤 상태인지는 사58:13-14를 통하여 설명됩니다. 그는 자기 자신의 뜻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주님의 선하신 뜻에 따라 행동하며, 그 주님의 뜻이 그의 뜻이 됩니다. 바로 이 상태에서 그는 내적인 평화와 행복, 외적인 평온과 기쁨을 누립니다. (AC.85 해설)

 

심화

1. 아르카나는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는가?’

 

AC.85 심화 1, ‘이 아르카나는 왜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는가?’

AC.85 심화1. ‘이 아르카나는 왜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는가?’ AC.85의 첫 문장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천적 인간이 ‘일곱째 날’이고 그 때문에 일곱째 날이 거룩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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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6, 창2:2-3, ‘안식일의 저녁 - 영적 인간이 천적 인간이 되기 시작하는 상태’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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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4, 창2:2-3, ‘천적 인간은 일곱째 날이며, 모든 싸움이 그친 안식의 상태다’ (AC.84-88)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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