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14

이어지는 모든 글에서 주님이라는 이름은 세상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 오직 그분만을 뜻하며, 다른 이름을 덧붙이지 않고 단지 주님(the Lord)이라고만 부릅니다. 천국 전체에서 그분만이 주님으로 인정되고 경배를 받으시는데, 이는 그분께서 하늘과 땅에서 모든 권세를 가지시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제자들에게도 자신을 그렇게 부르라고 명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In the following work, by the name Lord is meant the savior of the world, Jesus Christ, and him only; and he is calledthe Lordwithout the addition of other names. Throughout the universal heaven he it is who is acknowledged and adored as Lord, because he has all sovereign power in the heavens and on earth. He also commanded his disciples so to call him, saying,

 

너희가 나를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13:13) Ye call me Lord, and ye say well, for I am (John 13:13).

 

그리고 그분의 부활 후에 제자들은 그분을 주님(the Lord)이라 불렀습니다. And after his resurrection his disciples called himthe Lord.

 

해설

AC.14는 창세기 1장의 개별 표현을 해설하기에 앞서, 앞으로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 전체를 읽는 데 필요한 중요한 용어 하나를 분명히 정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어지는 모든 글에서 주님(the Lord)이라는 이름을 사용할 때 그 이름이 세상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 오직 그분만을 뜻한다고 선언합니다. 따라서 이후 AC를 읽다가 주님이라는 표현을 만나면 누구를 가리키는지 별도로 추측할 필요가 없습니다.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선언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오직 그분만이라는 표현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여러 신적 존재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께 가장 높은 자리를 드린다는 의미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AC.14가 직접 밝히는 것은 온 천국 전체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님으로 인정되고 경배받으신다는 사실이며, 그 이유는 그분께서 하늘과 땅에서 모든 권세를 가지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부와 성령의 관계에서 무엇을 의미하는가는 곧 이어지는 AC.15와 이후 주님에 관한 가르침을 함께 보아야 더욱 분명해집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우선 주님이라는 이름이 누구를 가리키는가에 집중하는 것이 좋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자신의 설명만으로 이 명칭을 정하지 않고 주님의 말씀을 직접 인용합니다. 너희가 나를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13:13)는 말씀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라고 부르는 것을 주님 자신이 옳다고 확인하신 것입니다. 이어 스베덴보리는 부활 후 제자들이 그분을 주님이라고 불렀다는 사실도 덧붙입니다. 따라서 AC.14의 논지는 매우 단순하면서도 분명합니다. 주님이라는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께 적용되며, 그 호칭은 주님 자신의 말씀과 제자들의 증언에 근거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후 AC의 속뜻을 읽을 때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앞으로 인간의 거듭남, 천국, 교회, 말씀의 속뜻을 설명하면서 끊임없이 주님을 언급합니다. 그때마다 막연한 신적 원리나 이름 없는 절대자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특히 앞의 AC.7-13에서 거듭남의 여러 상태를 살펴본 직후 이 선언이 놓여 있다는 점에서, 그 모든 거듭남의 역사를 이루시는 분이 누구인지도 자연스럽게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AC.14는 짧지만 이후 전체 저작의 독법을 정해 주는 중요한 단락입니다. 스베덴보리의 신학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단순히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여러 중개자 가운데 한 분이 아니며, 온 천국이 인정하고 경배하는 주님이십니다. 다만 이 짧은 단락 하나에서 삼위일체와 주님의 신적 인성에 관한 모든 교리를 한꺼번에 끌어낼 필요는 없습니다. 바로 다음 AC.15에서 아버지와 주님의 하나 되심이 이어지고, 이후 관련 가르침들이 점차 펼쳐집니다. AC.14에서는 먼저 이 한 가지를 분명히 붙들면 됩니다. 앞으로 AC에서 말하는 주님은 세상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십니다. (AC.14 해설)

 

심화

1. 주님 예수 그리스도 분이라면 성부와 성령은 어떻게 되는가?

 

AC.14 심화 1, ‘주님’이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라면 성부와 성령은 어떻게 되는가?

AC.14 심화1. ‘주님’이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라면 성부와 성령은 어떻게 되는가? AC.14에서 스베덴보리가 ‘주님’이라는 이름은 세상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을 뜻한다고 말하면,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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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5, 창1, ‘주님과 아버지는 하나이시다’

AC.15천국 전체가 주님 외에 다른 아버지를 알지 못하는데, 이는 그분과 아버지가 하나이시기 때문이며, 그분 자신이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In the universal heaven they know no other father than 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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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3, 창1 개요, ‘모두가 같은 상태에 이르는 것은 아니다 : 거듭남의 현실’

AC.13거듭남 과정 중인 모든 사람이 이 상태에 이르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첫 번째 상태까지만 이르고, 어떤 이들은 두 번째 상태까지만, 또 다른 이들은 세 번째, 네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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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3

거듭남 과정 중인 모든 사람이 상태에 이르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번째 상태까지만 이르고, 어떤 이들은 번째 상태까지만, 다른 이들은 번째, 번째, 혹은 다섯 번째 상태에도 이르지만, 이렇게 여섯 번째 상태까지 이르는 이는 적고(few), 일곱 번째 상태에 이르는 이는 거의(scarcely) 없습니다. Those who are being regenerated do not all arrive at this state. The greatest part, at this day, attain only the first state; some only the second; others the third, fourth, or fifth; few the sixth; and scarcely anyone the seventh.

 

해설

AC.13은 앞에서 설명한 거듭남의 여러 상태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정도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짧게 덧붙입니다. 여기서 상태는 바로 앞 AC.12에서 설명한 여섯 번째 상태를 가리킵니다. 곧 사람이 신앙으로, 그리고 그 신앙에서 사랑으로 참된 것을 말하고 선한 것을 행하며, 신앙과 사랑으로부터 함께 행동하기 시작하는 상태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러한 여섯 번째 상태에 이르는 사람은 적고, 일곱 번째 상태에 이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앞의 여섯 상태를 모든 사람이 자동적으로 차례차례 통과하여 마침내 같은 지점에 도달하는 고정된 프로그램처럼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이 구절을 사람들의 영적 수준을 판정하는 서열표처럼 사용해서도 안 됩니다. 예를 들어 나는 다섯 번째 상태이고 사람은 번째 상태다라고 외적인 모습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AC.13의 목적이 아닙니다. 앞선 AC.7-12에서 살펴본 상태들은 인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거듭남의 질서를 보여 주는 것이지, 우리가 다른 사람의 내적 상태를 분류하기 위한 기준표가 아닙니다. 특히 외적으로 경건하게 말하거나 선을 행하는 모습만으로 그 사람의 내적 상태를 알 수는 없습니다. AC.9에서도 이미 사람은 속 사람으로부터 경건하게 말하고 체어리티의 일과 같은 선을 행하지만, 그것을 자기 자신에게서 나온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아직 생명이 없는 상태가 있을 수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외적인 행동의 모양만이 아니라 그 행동이 어떤 내적 원리에서 나오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AC.13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일곱 번째 상태입니다. 그러나 AC.13 자체는 이 일곱 번째 상태가 무엇인지 여기서 다시 설명하지 않습니다. 앞의 흐름과 AC.12 마지막에서 사랑이 지배권을 얻고 사람이 천적 인간이 된다고 한 내용, 그리고 이어지는 창조의 일곱째 날과 연결하여 이해할 수 있지만, 이 짧은 문장만을 근거로 일곱 번째 상태를 여러 영적 개념과 곧바로 동일시하여 상세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스베덴보리가 거듭남의 상태가 깊어질수록 실제로 그 상태에 이르는 사람이 적다고 말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왜 뒤의 상태로 갈수록 사람이 줄어드는지를 AC.13이 설명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인간이 인내하지 못해서인지, 시험이 어려워서인지, 혹은 다른 이유 때문인지를 이 번호만으로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AC.13은 이유를 분석하기보다 단지 실제 상태의 차이를 짧게 알려 줍니다.

 

또한 스베덴보리는 오늘날(at this day)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따라서 대부분은 번째 상태에 있고, 어떤 사람들은 번째, 어떤 사람들은 번째, 번째, 다섯 번째 상태에 있으며, 여섯 번째 상태에 이르는 사람은 적고 일곱 번째 상태에 이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말을 모든 시대의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통계적 법칙처럼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대부분, 적은 이들, 거의 아무도 없음이라는 표현 역시 정확한 비율을 제시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더구나 대부분이 번째 상태에 있다는 말을 곧바로 대부분의 신앙인이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 속에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식으로 확대하는 것도 AC.13이 직접 말하는 범위를 넘어갈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스베덴보리가 자신이 말하는 거듭남의 여러 상태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실현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는 정도로 읽는 것이 안전합니다.

 

따라서 AC.13은 매우 짧지만 앞의 AC.7-12를 읽는 방식에 중요한 균형을 잡아 줍니다. 창조의 날들이 거듭남의 질서를 보여 준다고 해서 그것을 모든 사람이 반드시 같은 속도와 같은 깊이로 통과하는 일률적인 단계표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 사람을 거듭남으로 이끄시는 질서는 분명하지만, 실제 사람들의 상태는 서로 다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읽을 때 우리의 관심은 다른 사람이 어느 단계에 있는지를 판단하는 데 있지 않고, 주님께서 지금 내 안에서 무엇을 질서 있게 하고 계시는지를 살피는 데 있어야 합니다. AC.13은 거듭남의 높은 상태를 자랑하거나 다른 사람과 비교하도록 주어진 말씀이 아니라, 거듭남이 얼마나 깊고 실제적인 주님의 역사인지를 겸손하게 바라보게 하는 짧은 경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AC.13 해설)

 

심화

1. 일곱 번째 상태 수도원 전통의 완덕, 합일 비교

 

AC.13, 심화 1, ‘일곱 번째 상태’와 수도원 전통의 ‘완덕’, ‘합일’의 비교

AC.13.심화1. ‘일곱 번째 상태’와 수도원 전통의 ‘완덕’, ‘합일’의 비교 수도원 전통에서 말해 온 ‘완덕’이나 ‘합일’과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일곱 번째 상태’ 사이에는 분명 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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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4, 창1, ‘주님은 세상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시다’

AC.14이어지는 모든 글에서 ‘주님’이라는 이름은 세상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 오직 그분만을 뜻하며, 다른 이름을 덧붙이지 않고 단지 ‘주님’(the Lord)이라고만 부릅니다. 온 천국 전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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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2, 창1 개요, ‘신앙과 사랑이 함께 움직이는 영적 인간의 여섯 번째 상태’

AC.12여섯 번째 상태는 사람이 신앙으로, 그리고 그 신앙에서 사랑으로 참된 것을 말하고 선한 것을 행하는 때입니다. 이때 그에게서 나오는 것들을 ‘생물’(living soul)과 ‘짐승’(beast)이라 합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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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부를 찬송은 순서대로 찬20, ‘큰 영광 중에 계신 주와, 찬65, ‘내 영혼아 찬양하라입니다.

 

오늘은 창1 세 번째 시간으로 본문은 6절로 8절, AC 글 번호로는 24번에서 26번입니다. 본문 함께 읽습니다.

 

6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7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8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창1:6-8)

 

이 본문을

 

물과 물 사이의 궁창, 분별이 시작되는 둘째 날

 

라는 제목으로, ‘아르카나 코엘레시티아(Arcana Coelestia)에 주목하여 귀 기울이고자 합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AC.24, 창1:6-7,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AC.24-25)

6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7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And God said, Let there be an expanse in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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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5, 창1:6-7, ‘상한 갈대, 꺼져가는 등불’

6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7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창1:6, 7) AC.25 ‘하늘을 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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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6, 창1:8,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And God called the expanse heaven. And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second day. (창1:8) AC.26 ‘저녁’(evening), ‘아침’(mo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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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창1 둘째 날, 곧 거듭남의 두 번째 상태를 마칩니다. 이 ‘둘째 날, 두 번째 상태’에 나온 중요한 표현, 개념들은 ‘궁창’, ‘하늘 위의 물’, ‘하늘 아래 물’, ‘속 사람’, ‘겉 사람’, ‘기억 지식’ 및 ‘상한 갈대, 꺼져가는 등불’ 등이었습니다. 거듭 지금 다룬 내용들이 다음 단계의 기초가 되는 전개이니, 반드시 이전 학습한 내용들을 반복 복습, 보다 탄탄한 배경지식으로 계속 앞으로 쭉쭉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지난 8, 9년째 계속 반복, 또 반복하고 있는 이 창세기 1장을, 그러나 할 때마다 점점 더 이전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내용들과, 그리고 이젠 그런 내용들을 접해도 이해가 되게 하시는 주님, 고맙고 감사합니다. 오늗도 지난날 배운 것들을 더욱 깊이 알려주시고, 특별히 ‘상한 갈대, 꺼져가는 등불’의 속뜻 통해 주님이 어떤 분이시며, 우리의 거듭남을 위해 얼마나 돌보시고, 보살피시며, 끝까지 우리를 책임지시는지를 확인했습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들에게 주님이 저희에게 하신 것처럼 그렇게 하게 도와주세요. 우리가 타인의 연약함에 정신줄 놓치 않도록 끝까지 빛 비춰 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결같은 교회 변일국 목사

설교

2026-03-08(D1)

 

2641, 3. 창1.3, 2026-03-08(D1)-주일예배(창1,6-8, AC.24-26), ‘둘째 날, 두 번째 상태’.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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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2026/03/15, 창1:9-13, AC.27-29), '셋째 날, 세 번째 상태'

※ 오늘 부를 찬송은 순서대로 찬21, ‘다 찬양하여라’와, 찬66, ‘다 감사드리세’입니다. 오늘은 창1 네 번째 시간으로 본문은 9절로 13절, AC 글 번호로는 27번에서 29번입니다. 본문 함께 읽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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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2026/02/22, 창1:3-5), '빛이 있으라', 거듭남의 시작

※ 오늘 부를 찬송은 순서대로 찬19, ‘찬송하는 소리 있어’와 찬64, ‘기뻐하며 경배하세’입니다. 오늘은 창1 두 번째 시간으로 본문은 3절로 5절, AC 글 번호로는 20번에서 23번입니다. 본문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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