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전한 이성(sound reason)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가 신(神, the Divine, 하나님, 주님)은 나눌 수 없다(the Divine is not divisible)는 걸 모르겠습니까? 또 무한자(無限者)도, 창조되지 않은 자도, 전능자도, 혹은 신이라는 것도 다 복수로 존재하는 건 불가능하다(a plurality of infinites, of uncreates, of omnipotents, and of gods, is impossible)는 것도 말이지요. 어떤 제정신이 아닌 사람(one destitute of reason)이 선언하기를, ‘다 가능하다. 복수의 무한자도, 창조되지 않은 자도, 전능자도, 그리고 신이라는 것들도 다 복수로 존재하는 것이 가능하다’ 정신 나간 주장을 하면서, 그리고 계속해서 ‘만일 그들이 하나의 동일 본질(one identical essence)을 가진다면, 그러면 이것이 그들을 하나의 무한자, 창조되지 않은 자, 전능자, 그리고 하나님이 되게 할 수 있다’ 주장한다면, (사실 이 주장은 좀 뒤죽박죽, 앞뒤가 안 맞는 주장인데요) 이 하나의 동일 본질이 사실은 하나의 아이덴티티(one identity)가 아니었던 거 아닐까요? 하나의 아이덴티티(identity, 正體, 신원)라는 건 (논리적으로, 상식적으로) 여러 개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어떤 존재가 다른 것에서 나왔다고 해야 한다면, 다른 것에서 나온 존재는 그 자체로 이미 신이, 하나님(God)이 아닙니다. 이런 여러 주장, 논란, 입장에도 불구, 불변의 진리는 ‘하나님은 그 자체로 만물이 말미암는, 만물의 근원 되시는 분이시다’(the God from whom all things are)라는 사실입니다.(DLW.27) Who that has sound reason can help seeing that the Divine is not divisible? Also that a plurality of infinites, of uncreates, of omnipotents, and of gods, is impossible? Suppose one destitute of reason were to declare that a plurality of infinites, of uncreates, of omnipotents, and of gods is possible, if only they have one identical essence, and this would make of them one infinite, uncreate, omnipotent, and God, would not the one identical essence be one identity? And one identity is not possible to several. If it should be said that one is from the other, the one who is from the other is not God in himself; nevertheless, God in himself is the God from whom all things are (see above, n. 16). (DLW.27)
※ 윗글은 스베덴보리 저, ‘신적 사랑과 지혜’(Angelic Wisdom concerning Divine Love and Wisdom, 1763) 1장, ‘창조주’(The Creator)의 일곱 번째 주제, ‘만물이 말미암는 한 분의 신-인이 계신다’(There is one God-man, from whom all things come)에 나오는, 책 전체 글 번호로는 27번 글입니다.
아래는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보태는 몇 가지 설명 및 오늘의 권면들입니다.
1. 오늘 위 메인 본문은 사실 매우 신학적, 철학적 논거여서 대부분, 읽어도 선뜻 눈에 들어오지들 않으실 겁니다. 저 자신, 사실 저는 이런 걸 매우 안 좋아합니다. 제가 신대원 시절, 제일 싫어했던 과목이 조직신학이었거든요. 날마다 무슨 ‘성(性), 성, 성’, ‘론(論), 론, 론’, ‘적(的), 적, 적’ 하는 게 저는 정말 와닿질 않았고, 매우 매우 불편했는데요, 칼빈에 대해서 처음엔 호의적이었던 입장도 그의 대표적인 저작, ‘기독교 강요’(1536)를 읽고는 그냥 질려버렸지요. 당시 시대적 특성을 따라 스콜라식 저술 형태로 충만한 이 책을 읽고는 저는 그만 질식하는 줄 알았고... 나중에 영계에서 그를 여러 번 만나 대화했던 스베덴보리의 기록을 접하고는 완전... 네, 뭐, 하여튼 저는 이쪽은 아닌 사람 같은데요, 그래도 무슨 교리적 전반적 이해는 또 꼭 필요해서 날마다 꾸욱 꾹 마치 무슨 달팽이 기어가듯 그렇게 번역, 풀고 있습니다. 그냥 휙 읽는 것과, 이렇게 풀이식 번역으로 정리, 정돈하는 건 또 완전 차원이 다른 작업이군요!
2. 오늘 저 메인 본문은 어려운 표현들, 일상 중엔 잘 안 쓰는 용어들 때문에 좀 어렵게 느껴지지만, 그러나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하나님은 논리적으로 절대 여럿으로 존재하실 수 있는 분이 아니시다’라는 겁니다. 너무나 당연한 걸 저렇게 너무나 진지하게 말하고 있지요... 스베덴보리는 일종의 논문 형식으로 저술 중이기 때문인데요, 스베덴보리가 그의 모든 저술을 라틴어로 기록한 그 첫 번째 이유는, 스베덴보리는 그 첫 번째 독자층을 당대의 학자들로 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그 두 번째 이유는, 라틴어는 이미 사어(死語)라 더 이상 시대 변화에 따른 언어적 변화가 없어 그 원어의 의미를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것도 있습니다.
3. ‘하나님에 관한 생각, 즉 신관(神觀)’을 올바로 정립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모든 것의 기초라는 생각을 붙들고 함께 이 씨름을 해나가시기를 권합니다. 반드시 천국 입성을 향한 굳건한 반석이 될 줄 믿습니다.
오늘부터는 하나님에 관한 두 번째 주제,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God is One)이며, 오늘은 그 첫 번째 시간입니다.
인간 지혜(human wisdom)의 모든 것은 ‘온 우주의 창조주이신 한 분 하나님이 계신다’(there is one God, the creator of the universe)라는 신관(神觀)으로 연합(unite)하는데요, 그 모습은 마치 이것을 중심으로 모여드는(center)것처럼도 보입니다. 결과적으로, 사람은 이와 달리는 생각하지도, 그리고 할 수도 없는데요, 이것은 이해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한테서나 다 볼 수 있는 본성(the general nature of his understanding)이지요. 만일 건전한 이성(sound reason)을 가진 사람에게 우주의 창조주가 두 분이라고 말하면, 당신은 그가 품는 반감(repugnance)을 느끼시게 될 텐데요, 이건 아마도 그의 귀에 들리는 말만으로부터, 그리고 인간 이성(human reason)의 모든 것이 이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라는 신관으로 연합, 이 신관을 중심으로 모여드는 것처럼 보이는 것으로부터도이지 싶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첫째는, 이성적, 합리적으로(rationally)생각할 수 있는 능력은 그 자체로 볼 때, 사람의 것이 아니라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일반적인 본성상(its general nature), 인간의 이성은 바로 이 능력에 의존하는데요, 이 본성으로 인해 사람은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라는 걸 직접, 그러니까 마치 스스로 보는 것처럼 보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 능력에 의해 사람은 천국의 빛(the light of heaven)안에 있거나 그가 가진 대부분의 생각들을 거기서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라는 진리는 천국 빛으로는 보편적이고 일반적(a universal of the light of heaven that God is one)인데요, 그렇지 않은 때는 그 능력으로 인간 이해의 낮은 부분들(the lower parts of his understanding)이 왜곡되었을(has perverted)때입니다. 그런 사람은 실제로는 그 능력을 부여받았지만, 그 낮은 부분들에 가해진 왜곡(twist)으로 인해 그걸 반대로(contrariwise)돌리고, 결국 그로 인해 그의 이성은 불건전(unsound)해지지요.(DLW.23) All things of human wisdom unite, and as it were center in this, that there is one God, the creator of the universe; consequently a man who has reason, from the general nature of his understanding, does not and cannot think otherwise. Say to any man of sound reason that there are two creators of the universe, and you will be sensible of his repugnance, and this, perhaps, from the mere sound of the phrase in his ear; from which it appears that all things of human reason unite and center in this, that God is one. There are two reasons for this. First, the very capacity to think rationally, viewed in itself, is not man’s, but is God’s in man; upon this capacity human reason in its general nature depends, and this general nature of reason causes man to see as from himself that God is one. Secondly, by means of that capacity man either is in the light of heaven, or he derives the generals of his thought therefrom; and it is a universal of the light of heaven that God is one. It is otherwise when man by that capacity has perverted the lower parts of his understanding; such a man indeed is endowed with that capacity, but by the twist given to these lower parts, he turns it contrariwise, and thereby his reason becomes unsound. (DLW.23)
※ 윗글은 스베덴보리 저, ‘신적 사랑과 지혜’(Angelic Wisdom concerning Divine Love and Wisdom, 1763) 1장, ‘창조주’(The Creator)의 일곱 번째 주제, ‘만물이 말미암는 한 분의 신-인이 계신다’(There is one God-man, from whom all things come)에 나오는, 책 전체 글 번호로는 23번 글입니다.
아래는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보태는 몇 가지 설명 및 오늘의 권면들입니다.
1. ‘이해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해하는 능력’으로 좀 풀어 번역한 이 ‘이해’(understanding)는 ‘의지’(will)와 함께 사람을 구성하는 두 키워드입니다. 사람이 사람인 것은 이 둘이 있어서입니다. 이 둘은 주님의 신성과 상응하는데요, 즉 주님의 신성 중 선은 사람의 의지와, 그리고 진리는 사람의 이해와 상응합니다.
참고로, 주님은 사람의 의지 속으로는 직접 들어가시지만, 사람의 이해, 생각 속으로는 의지를 거쳐 간접적으로 들어가시는데요(HH.26), 저는 이걸 ‘가슴 신앙’, ‘머리 신앙’이라고 종종 번역합니다.
대략적으로는, ‘사랑’(love, charity), ‘선’(good), ‘의지’(will), ‘애정’(affection), ‘떡’, ‘빵’, ‘살’, ‘천적’(celestial, heavenly) 등이 한 흐름이고요, ‘신앙’(faith), ‘진리’(truth), ‘이해’(understanding), ‘이성’(reason, rational), ‘잔’, ‘포도주’, ‘피’, ‘영적’(spiritual) 등이 또 다른 흐름입니다.
참고로, ‘하나 됨’, ‘한 몸’이라는 것은, ‘의지’는 ‘이해’의 의견을 사랑으로 받들고, ‘이해’는 ‘의지’가 원하는 것을 사랑으로 따르는 것입니다.
2. ‘인간 이해의 낮은 부분들’(the lower parts of his understanding)
창세기 6장 16절 말씀,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에 보면, ‘상 중 하 삼층으로’라는 표현이 나오는데요, 아래, 이 구절 전체의 속뜻을 보면서 위 표현을 짐작해 봅니다.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는 지적 부분(the intellectual part)을, ‘그 문은 옆으로 내고’는 청각(hearing)을,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는 지식(knowledge, scientifica), 이성(reason, rationalia), 그리고 이해(understanding, intellectualia)에 관한 것을 각각 의미합니다. (AC.651)
창6:9-22은 거듭나기 전 ‘노아’라는 교회의 상태에 관한 내용인데요, 특별히 16절은 그 교회가 가진 이해에 관한 것들에 대한 내용으로서, 갑작스런 이런 내용에 좀 당황스러우시겠지만, 이처럼 사람의 이해에는 세 가지 전혀 다른 부분들이 있다는 정도로만 우선은 알려드리며,
그러므로 ‘인간 이해의 낮은 부분들’인 ‘지식’, 특히 세상의 학습을 통해 습득한 ‘지식’을 주님의 계시보다 우선하는 태도,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왜곡’의 시작이요, 근원임을 직시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의 질서, 순서는 반드시 주님으로부터 출발, 사람의 겉 사람에 도착하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정반대의 길을 추구한 케이스들이 모두 ‘가인의 삶’, ‘각 교회 시대의 종말’ 및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3. 다음은 이런 내용들에 대하여 천사들은 모든 걸 이해하는 반면, 우리는 왜 이토록 어둡고 어려운가 하는 말씀을 좀 드리면서 오늘 말씀을 마칠까 하는데요, 아래는 천국 천사들이 왜 그토록 지혜로운가 하는, 스베덴보리 저, ‘천국과 지옥’ 30장, ‘천국 천사들의 지혜’(The Wisdom of the Angels of Heaven) 267번 글입니다.
천사들이 그런 지혜를 받을 수 있는 것은 그들의 내면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지혜는 다른 모든 완벽성과 마찬가지로 내적으로 갈수록 증가하므로, 내면이 열리는 정도만큼 지혜가 늘어나는 것이다. 모든 천사에게는 생명의 세 단계가 있고, 이것은 세 천국에 상응한다. 내면의 첫 단계가 열린 이들은 일층천, 즉 가장 외적인 천국에 있다. 내면의 둘째 단계가 열린 이들은 이층천인 중간 천국에, 내면의 셋째 단계가 열린 이들은 삼층천인 가장 내적 천국에 있다. 천국 천사들의 지혜는 이들 단계에 적합한 것이다. 따라서 가장 내적 천국 천사들의 지혜는 중간 천국 천사들의 지혜를 측량할 수 없이 초월하고, 중간 천국 천사들의 지혜는 가장 외적 천국 천사들의 지혜를 그렇게 초월한다. 이런 차이가 있는 것은, 더 높은 단계에 속한 것은 세부적이고, 낮은 단계에 속한 것은 일반적이며, 일반적인 것은 세부적인 것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세부적인 것은 일반적인 것을 수천수만 배 능가한다. 그러므로 더 높은 천국 천사들의 지혜도 낮은 천국 천사들의 지혜에 비하면 그 정도로 차이가 난다. 같은 이치로, 낮은 천국 천사들의 지혜는 사람의 지혜에 비하면 그런 차이가 난다. 사람은 육체적인 상태에 있고, 또한 육체의 감각에 속해 있으며, 육체의 감각은 낮은 단계에 속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보면 감각적인 사람들, 즉 감각의 대상이 되는 것에 그들 사고의 범위를 국한한 사람들의 지혜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다. 말하자면, 그들은 지혜가 하나도 없고, 단지 지식만 있다. 그러나 감각적인 것을 넘어 그들의 사고를 고양시킨 사람들은, 특히 그 내면이 천국 빛을 받는 단계로까지 열린 사람들은 이와 다르다. (HH.267)
내용이 다소 어렵고 난해하더라도 위 3번 글을 읽어보시고,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힘을 내셔서, 주님께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천국 빛을 구하시고, 해바라기와 같이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곧 천사들의 내면을 비추는 빛이 우리에게도 비춰 이 영광의 말씀들, 내용들이 이해되기 시작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