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誘惑, temptation)이란 무엇인가? (3)’ (2023/5/31)

 

계속해서 ‘유혹’(誘惑, temptation) 세 번째 단락 번역 및 설명입니다.

 

※ 영역(英譯, 원본은 라틴어)은 아래 링크로 가셔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s://bygrace.kr/1553

 

 

[3] 또 그들은 선(善, good)이 무엇이고, 진리(眞理, true)는 무엇인지에 관한 단순한 논쟁 같은 건 하지 않는데요, 그런 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그 논쟁에서 자신들이 천 번을 지더라도 자신들은 여전히 집요할 것이기 때문이며, 이 역시 선과 진리에 관한 건 결코 이성으로, 머리로, 말과 논쟁으로 끝을 볼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신 그들은 선과 진리를 왜곡(歪曲, pervert), 거기에 욕망(慾望, yearning, appetite)과 망상(妄想, persuasion, delusion)의 불을 확 붙여 그로 하여금 영적 장님이 되어 그거 말고는 아무것도 못 보게, 그리고 모르게 하며, 동시에 그들은 이런 욕망과 망상을 어떤 즐거움으로 불타오르게 하는데, 이 즐거움은 그들이 그에게서 뺏은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그를 혀를 내두를 정도로 감쪽같이 속이고 감염시키며, 영적 성폭행을 통해 철저히 망가지게 합니다. 이런 일을 그들은 정말 엄청난 스킬로 하는데요, 이런 스킬로 그들은 그를 이렇게 저렇게 가지고 놀며, 만일 주님이 그를 돕지 않으시면, 그는 실제로 자기가 지금 영적으로 이런 일을 겪고 있는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할 정도로 악령들의 훼방과 공격은 정말 정말 지독하며, 이런 것이 영계에서 자행되는 ‘유혹’(誘惑, temptation)의 정체, 실체입니다. (AC.1820.3) Nor do they wage the combat simply by reasoning against things good and true, because such combats are of no account, for if they were vanquished a thousand times they would still persist, since reasonings against goods and truths can never be wanting. But they pervert the goods and truths, and inflame with a certain fire of yearning and of persuasion, so that the man does not know otherwise than that he is in the like yearning and persuasion; and at the same time they enkindle these with delight that they snatch from the man’s delight in something else, and in this way they most deceitfully infect and infest him; and this they do with so much skill, by leading him on from one thing to another, that if the Lord did not aid him, the man would never know but that the case was really so.

 

 

아래는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보태는 몇 가지 설명 및 오늘의 권면들입니다.

 

1. ‘선과 진리를 왜곡, 욕망과 망상의 불을 붙인다’는 것은 쉽게 말씀드리면 이런 것입니다. 출발할 때는 주님을 사랑하여 이 골고다의 길 걸어야지 해 놓고는 그래도 안정된 목회를 하려면 십일조 내는 가정이 몇은 되어야 생활이 되니 어쩌니 하다가, 그 다음엔 사람들이 찾아오는 교회가 되려면 사람들이 좋아하는 설교를 해야 하니 어쩌니, 그것도 스킬이 있어야 하니 어쩌니 하다가... 결국엔 설교꾼, 목회꾼이 되어버리고 마는... 네, 이런 비슷한 많은 것들입니다. 이렇게 망가지는 중에도 계속해서 ‘나는 지금 주님의 일을 하고 있는 거야. 이 길은 나중에 큰 상급이 약속된 길이야...’ 하는 속삭임에 그만 정신 못 차리고 점점 깊이 빠져드는 것이지요...

 

2. 이 ‘yearning’과 ‘persuasion’의 역사는 참으로 유구합니다. 인류 첫 교회의 종말인 ‘대홍수’(大洪水) 역시 사실은 인류 첫 교회인 태고교회가 타락, 이 ‘yearning’과 ‘persuasion’의 물결에 얼마나 처절하게 잠겼는지 다른 마땅한 표현이 없어 ‘대홍수’, ‘노아의 홍수’로 표현한 것입니다. 참고로, ‘노아’는 당시 이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겨우 명맥만 유지하던 참 신앙의 교회, 곧 신앙과 체어리티를 분리하지 않았던 교회를 일컫는 이름입니다.

 

3. 영계는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6:24) 주님 말씀에 처절하게 시선 고정하지 않으면 정말 눈 뜨고 코 베임을 당하는 그런 세계이며, 그래서 모든 천사는 끊임없이 주님을 향해 얼굴을 돌린다고 합니다. 마치 해바라기들처럼 말입니다. 사실은 주님이 당신을 사랑하는 천사들을 끊임없이 자신을 바라보게 하시는 것이지만 말입니다.

 

4. 아주 사소해 보이는 한 조각 ‘유혹’조차도 철저하게 끊어내는 훈련을 하시기 바랍니다. 주님도 그러셨고, 수 많은, 소위 성인’(聖人)이라 추앙받는 사람들도, 이들 중 99.999%는 후세가 자신을 성인으로 추앙한다는 사실에 기절초풍할 정도로 놀라 주님 앞에서 쥐구멍을 찾았겠지만..., 이 ‘유혹’의 영적 비밀을 알았기 때문에 자신에 대하여 상상을 초월한 금욕에 힘썼던 것입니다. 금욕 생활에 대해 너무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분들은 이 혼탁한 물질과 육욕의 세상 한복판에서 주님을 사랑하여 더할 수 없이 순결, 정결한 신부로 준비하여 드리고픈 그런, 이미 지상에서 천사의 삶, 천국에 합당한 삶을 살고자 몸부림치시는, 혹은 치셨던 분들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8)

 

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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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誘惑, temptation)이란 무엇인가? (2)’ (2023/5/30)

 

어제에 이어 ‘유혹’ 두 번째 단락 번역 및 설명입니다. 모두 다섯 단락으로 되어 있습니다.

 

※ 영역(英譯, 원본은 라틴어)은 아래 링크로 가셔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 어떤 경우가 유혹(temptations)인지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으므로 여기서 짧게라도 말씀드리는 게 좋겠습니다. 악한 영들은 사람이 사랑하는 것 말고는 그 어떤 것하고도 절대 싸우지 않습니다. 사람이 그 무엇을 더욱 열렬히 사랑할수록 이들은 더욱더 치열하게 싸웁니다. 악한 정령들(evil genii)이나 악한 영들(evil spirits)은 모두 애정(affection)에 관한 것들과 싸우는데, 그것들이 선(good)과 관련되었으면 전자, 진리(truth)와 관련되었으면 후자입니다. 이들은 무언가 아주 보잘것없는 것이라도 사람이 그걸 사랑한다는 것을 알아채는 순간, 그리고 무언가 사람이 그것을 즐거워하고 소중히 여긴다는 것을 마치 냄새를 맡듯 지각하는데요, 그 순간, 이들은 곧바로 그것에 대한 폭행과 함께 그걸 파괴하려고 힘쓰는데, 그것은 곧 그 사람 전체에 대한 공격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생명은 사실은 그가 사랑하는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이런 식으로 사람을 파괴하는 것보다 더 이들을 즐겁게 하는 건 없는데요, 주님이 이들을 쫓아버리시지 않는 한 이들은 심지어 영원히 이 짓을 그만두지 않을 정도입니다. 이들은 악의적이고 교활하여 사람에게 아첨, 사람의 정신을 쏙 빼놓은 후, 사람이 자신들을 사랑하게 하는데요, 이런 식으로 이들은 사람을 자기들 가운데로 끌어들이며, 일단 끌어들인 후에는 이들은 그 사람의 사랑을 파괴하려 하며, 그렇게 해서 그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데, 그 방법은 수천 가지나 되며, 그 하나하나는 도저히 이해조차 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As few know how the case is with temptations, it may here be briefly explained. Evil spirits never fight against other things than those which the man loves; the more ardently he loves them, the more fiercely do they wage the combat. It is evil genii who fight against the things that pertain to the affection of good, and evil spirits that fight against those which pertain to the affection of truth. As soon as they notice even the smallest thing which a man loves, or perceive as it were by scent what is delightful and dear to him, they forthwith assault it and endeavor to destroy it, and thereby the whole man, for man’s life consists in his loves. Nothing is more delightful to them than to destroy a man in this way, nor would they desist, even to eternity, unless they were driven away by the Lord. They who are malignant and crafty insinuate themselves into man’s very loves by flattering them, and thus bring the man among themselves; and presently, when they have brought him in, they attempt to destroy his loves, and thereby murder the man, and this in a thousand ways that cannot be comprehended.

 

 

아래는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보태는 몇 가지 설명입니다.

 

1. 모든 사람에게는 악한 영들과 선한 영들(혹은 천사들)이 최소 둘 이상씩 와 있습니다. 이는 모든 사람이 항상 주님과 연결되어 있게 하시려는 주님의 배려 때문인데요, 이는 사람이 그 본성상 악 가운데 태어나기 때문이며, 이에 대한 설명은 따로 나중에 조금 더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위 번역 가운데 ‘악한 정령들’과 ‘악한 영들’이 등장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2. 위 내용은 사람의 내면, 즉 사람의 영계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아직 살아있는 사람은 자연계와 영계, 두 세계에 공존합니다. 그러므로 자연계 관점만으로는, 즉 육체적, 감각적 관점만으로는 자기 안에서 저런 일이 일어나는 걸 전혀 인지할 수 없습니다.

 

 

오늘 메시지의 결론(?)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혹은 누구를 사랑하고 좋아하며, 애정을 느끼는 순간, 그것이 주님의 신성, 곧 주님의 선과 진리에 관련되었으면, 영계에서는 그에 비례, 아니 그 이상의 아주 지독한 훼방과 파괴가 시작된다는 걸 꼭 기억, 그만큼의 댓가를 지불할 결심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즉 모든 종류의 주님 사랑, 이웃 사랑에는 반드시 그에 비례하는 고난과 시험, 유혹이 뒤따르는데, 이는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는 주님의 허락과 배려 때문이며, 그러므로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시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공짜 사랑, 오직 행복하기만 한 애정의 꽃길 같은 건 없습니다. 주님조차 무슨 금수저의 길을 걸으시다 십자가 한번 지시고 덜컥 구속주가 되신 거, 절대 아닙니다. 주님도 우리처럼 사람으로 태어나 우리와 똑같은 거듭남의 과정을 밟으시되 주님의 속 사람이신 여호와께 초집중, 우리와는 차원이 다른 성취를 아주 어려서부터 이루신 것만 다를 뿐입니다.

 

거듭남은 무슨 영접기도 한 번, 신앙고백 한 번으로 되는 거, 절대 아니며, 이처럼 매 순간 우리를 죽이려고 덤벼드는 악령들의 훼방과 파괴를 주님 의지하고, 마치 탈북민들, 목숨 걸고 강을 건너 자유의 나라로 넘어오듯 그렇게 절박함으로 싸워 얻는 것입니다. 싸워 얻는다는 건 싸워 이겨나가는 중에 우리의 속 사람이 천국 생활에 적합하게 되어간다는 뜻입니다.

 

우리로 이 거듭남을 이루어 천국 들어가도록 끝까지 우리와 동행하시며 도우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아멘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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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誘惑, temptation)이란 무엇인가? (1)’ (2023/5/29)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Whereby shall I know that I shall inherit it? (창15:8)

 

위 말씀은 창세기 15장 7절,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하시는 말씀에 아브람이 대답하는 말입니다.

 

이는 겉으로는 아브람과 여호와 간 대화이지만, 그 속뜻으로는 주님의 내부 사람(the interior man)과 속 사람(the internal) 간 대화입니다.

 

이는 인성을 입으신 주님의 거듭나심에 관한 과정으로서 주님 안에서 일어난 각종 영적 전쟁과 전투, 싸움을 주님은 어떻게 이겨나가셨는지를 아브라함의 아브람 시절 일어난 일들을 통해 알려주고 계신 것이며,

 

이를 통해 우리 역시 우리의 거듭남의 과정 및 우리의 영적 싸움을 어떻게 하면 주님처럼 이겨나갈 수 있는지 하는 매우 생생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귀한 계시입니다.

 

아래는 주님이 받으신 유혹에 대하여, 스베덴보리를 통해서 밝히신 아르카나이며, 순서대로 오늘은 그 첫 번째 단락을 번역, 소개합니다.

 

 

[1] 이 표현이 주님의 사랑, 곧 온전히 확신할 수 있었으면 하는 주님의 사랑에 대한 유혹을 의미한다는 것은 이들 단어 자체에 내포된 의심들을 보고 알 수 있는데요, 시험 중에 있는, 유혹 가운데 있는 사람은 시선의 끝(the end in view), 곧 믿음을 의심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선의 끝인 믿음은 곧 사랑인데요, 이는 악한 영들과 정령들(evil genii)의 힘써 싸우는 대상이요, 결국 의심케 하고자 의도하는 것이며, 이 사랑이 크면 클수록 저들 역시 더욱 이를 악물고 그 목적, 곧 그 사랑을 포기, 의심케 하고자 갖은 애를 씁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 만일 그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 전혀 꿈쩍도 안 하면, 저들은 크게 절망, 결국 그 어떤 유혹도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이런 결과에 대한 확신은 승리를 선행, 승리, 이김이라는 것에는 이런 확신도 들어 있습니다. That this signifies a temptation against the Lord’s love, which desired to be fully assured, may be seen from the doubt that is implied in the words themselves. He who is in temptation is in doubt concerning the end in view. The end in view is the love, against which the evil spirits and evil genii fight, and thereby put the end in doubt; and the greater the love is, the more do they put it in doubt. If the end which is loved were not put in doubt, and indeed in despair, there would be no temptation. Assurance respecting the result precedes the victory, and belongs to the victory. (AC.1820.1)

 

 

시험, 유혹은 내 영적 시선의 끝인 믿음을 포기하는 것이라는 사실과, 내가 무엇을 사랑하면 곧바로 악령들의 훼방이 시작된다는 사실! 그러므로 무엇을, 누구를 사랑하기로 결심하였으면, 당연히 그에 따른 유혹 역시 비례하여 혹독할 것이라는 사실을 깊이 명심하게 되며,

 

그러면 이 세상 온 인류를 사랑하신 주님은 그 시험와 유혹, 훼방과 모욕이 얼마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극심하였을까 생각하며, 거듭거듭 주님 십자가의 길 걸으심 앞에 숙연해집니다...

 

주님, 정말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합니다!

 

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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