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공간 안에 계실 수 없으시다(The Divine is not in space) (2)’ (2023/6/21)

 

 

콤펜디움 1장 ‘하나님에 관하여’ 4강, ‘하나님은 공간 안에 계실 수 없으시다(The Divine is not in space)’, 오늘은 그 두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의 메인 본문입니다.

 

71

다음 내용을 보시면 그저 자연적이기만 한 인간(the merely natural man)은 영적이고 신성(神性)한 것들(spiritual and Divine things)을 공간을 가지고(from space) 생각하고, 영적 인간(the spiritual man)은 공간을 떠나서(apart from space) 생각한다는 걸 확실히 아시게 됩니다. 그저 자연적이기만 한 인간은 눈에 보이는 사물들한테서 얻은 걸 가지고 생각하는데요, 이들 사물들에는 길이, 넓이 및 높이를 갖는 형상(figure)과 각지거나 둥글거나 하는, 이들 형상을 가지고 결정되는 모양(shape)이 다 포함됩니다. 이들 자연 오리엔티드된 개념들은 그가 지상에 있는, 눈에 보이는 것들에 관해서나 보이지 않는 것들, 가령 사회적, 도덕적인 것들에 관해 생각할 때 그의 생각을 지배합니다. To make it clear that the merely natural man thinks of spiritual and Divine things from space, and the spiritual man apart from space, let the following serve for illustration. The merely natural man thinks by means of ideas which he has acquired from objects of sight, in all of which there is figure partaking of length, breadth, and height, and of shape determined by these, either angular or circular. These [conceptions] are manifestly present in the ideas of his thought concerning things visible on earth; they are also in the ideas of his thought concerning those not visible, such as civil and moral affairs.

 

이에 대해 그는 전혀 의식을 못 하지만, 그러나 그를 둘러싼 삼차원 공간 속 형상과 모양이라는 속성들은 끊임없이 존속, 계속해서 생겨납니다. 영적 인간, 특히 천국 천사의 경우, 그 사고방식에 있어 자연적 인간하고는 근본적으로 다른데요, 이 경우에도 자연계에서처럼 무슨 공간이 있고, 형상(figure)과 형태(form)가 있지만, 이 경우에는 그것이 영적이라는 것, 즉 그 형상과 형태가 영적인 길이, 넓이, 그리고 높이를 띤 것에서 나온다는 점, 다시 말해, 영적 공간에 있는 것은 그 형상과 형태가 그것의 영적 생명의 상태(the state of its life)로 말미암는다는 점에서 자연적 사고의 경우와는 전혀 무슨 공통점이 없습니다. 그 결과, 천사는 자연계 공간의 길이(length of space) 대신 그 생명이 선한 어떤 것의 선(the good of a thing from good of life)을, 넓이(breadth of space) 대신 그 생명이 진실한 어떤 것의 진리(the truth of a thing from truth of life를, 높이(height) 대신 그것들의 정도(the degrees of these), 즉 선한 정도, 진실한 정도를 생각합니다. 이것은 곧 그는 영적인 것들과 자연적인 것들 사이에 있는 상응으로(from the correspondence)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상응으로, 말씀에서 ‘길이’는 어떤 것의 선을, ‘넓이’는 어떤 것의 진리를, 그리고 ‘높이’는 그것들의 정도를 의미합니다. This he is unconscious of; but they are nevertheless there, as continuations. With a spiritual man it is different, especially with an angel of heaven, whose thought has nothing in common with figure and form that derives anything from spiritual length, breadth, and height, but only with figure and form derived from the state of a thing resulting from the state of its life. Consequently, instead of length of space he thinks of the good of a thing from good of life; instead of breadth of space, of the truth of a thing from truth of life; and instead of height, of the degrees of these. Thus he thinks from the correspondence there is between things spiritual and things natural. From this correspondence it is that in the Word “length” signifies the good of a thing, “breadth” the truth of a thing, and “height” the degrees of these.

 

이상으로 분명한 사실은 천국의 천사는 그가 하나님의 편재(the Divine Omnipresence)를 생각할 때, 하나님은 자연계 공간을 떠나 만물에 충만하신 분(the Divine, apart from space, fills all things)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는 이렇게 말고는 달리 어떻게 생각할 수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과, 또 천사가 하는 생각은 진리인데, 그것은 그의 내면을 열어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빛(the light which enlightens his understanding)이 바로 하나님의 지혜(Divine wisdom)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From this it is evident that an angel of heaven, when he thinks of the Divine Omnipresence, can by no means think otherwise than that the Divine, apart from space, fills all things. And that which an angel thinks is truth, because the light which enlightens his understanding is Divine wisdom. (DLW.71)

 

 

72

이것이 하나님에 관한 생각의 기초입니다. 안 그러면, 인간이신 하나님(God-man)의 우주 창조와 그의 섭리(providence)와 전능하심(omnipotence) 및 편재하심(omnipresence)과 전지하심(omniscience)에 대한, 앞으로 드릴 말씀들이 이해까지는 되더라도 마음에 담아둘 수까지는 없기 때문인데요, 그저 자연적이기만 한 인간은 비록 이런 것들에 대해 이해까지는 하더라도 언제든 금방 돌이켜 자신의 삶(life, 생명)에 대한 사랑, 이 사랑이 곧 그의 의지인데요, 그 사랑 속으로 가라앉기 때문입니다. This is the basis of thought concerning God; for without it, what is to be said of the creation of the universe by God-man, of his providence, omnipotence, omnipresence and omniscience, even if understood, cannot be kept in mind; since the merely natural man, even while he has these things in his understanding, sinks back into his life’s love, which is that of his will;

 

이 사랑, 곧 그의 자기, 자아 사랑, 세상 사랑은 그가 머리로 이해하고 있는 저런 진리들, 즉 주님의 천지창조, 섭리와 전능, 편재와 전지 등에 대해 신학적으로, 지식으로 많이 알고 있는 것들을 소멸(dissipate)시켜 그의 사고로 하여금 자연계라는 공간 안에 잠기게, 갇히게 하는데요, 그는 이곳을 자기를 환히 비추는 빛이 있는 곳이라 하며, 이 빛이야말로 래셔널(rational, 합리, 이성, 영계와 자연계를 연결해주는 능력, 자연적 인간으로 하여금 영적인 것을 이해하게 해주는 능력)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가 소중히 여기는 이 빛은 사실은 빛이 아니라 어두움이며, 자신의 현재 상태와 위치조차 모르게 하는 정말 어처구니없는 빛입니다. 사람은 주님의 빛을 받아야 참된 래셔널을 갖게 되기 때문이지요. and that love dissipates these truths, and immerses his thought in space, where his lumen, which he calls rational, abides, not knowing that so far as he denies these things, he is irrational.

 

이것은 ‘하나님은 인간이시다, 이것은 진리다’라는 생각을 통해서 확실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내용들(11-13)과 앞으로 이어질 내용들을 정독하셔서(精讀, read with attention) 꼭 이해하실 수 있게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That this is so, may be confirmed by the idea entertained of this truth, that God is a man. Read with attention, I pray you, what has been said above (n. 11–13) and what follows after, and your understanding will accept it.

 

사람이 그 생각을 자연계의 빛(the natural lumen)으로 내려놓으면, 즉 자연계에 안에서만 생각하면, 이 빛은 자연계의 공간(space)에서 나오는데요, 위에서 말씀드린 것들은 마치 무슨 역설들처럼(as paradoxes) 보이지 않을까요? 그래서 그것들을 멀리 내려놓게 되고, 그러면 그것이 곧 그것들을 거부하게 하는 게 아닐까요? 이것이 곧 왜 ‘하나님(the Divine, 신성, 신)은 온 우주 공간에 충만하시다’라고는 하지만, ‘인간이신 하나님(God-man)은 온 우주 공간에 충만하시다’라고는 하지 않는가 하는 이유입니다. 만일 그렇게 말하면, 그저 자연적이기만 한 빛은 절대 동의하지 않을 것이니까요. 그러나 ‘하나님(the Divine)은 모든 공간에 충만하시다’라는 명제에 관하여는 동의하는데, 그 이유는 이것은 ‘하나님은 편재하시며, 그는 모든 걸 들으시고, 또 알고 계신다’라는 주제에 대한 신학자들의 말투와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이 주제에 관해서는 위 7-10번 글에 더 많은 걸 보실 수 있습니다.) But when you let your thought down into the natural lumen which derives from space, will not these things be seen as paradoxes? And if you let it down far, will you not reject them? This is why it is said that the Divine fills all spaces of the universe, and why it is not said that God-man fills them. For if this were said, the merely natural lumen would not assent. But to the proposition that the Divine fills all space, it does assent, because this agrees with the mode of speech of the theologians, that God is omnipresent, and hears and knows all things. (On this subject, more may be seen above, n. 7–10.) (DLW.72)

 

2023-06-21(D4)-C.1.4.2, '하나님은 공간 안에 계실 수 없으시다(God is not in Space) (2)’.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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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윗글은 스베덴보리 저,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Angelic Wisdom concerning Divine Love and Wisdom, 1763) 1장, ‘창조주’(The Creator) 17강, ‘하나님은 공간을 떠나서 우주 모든 공간에 충만하시다(The Divine, apart from space, fills all spaces of the universe)’에 나오는, 책 전체 글 번호로는 71, 72번 글입니다.

 

 

아래는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보태는 몇 가지 설명 및 오늘의 권면입니다.

 

1. 위 두 글은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의역, 그리고 설명을 좀 충분히 보충하느라 번역이 다소 길어졌습니다. 그냥 드리는 말씀이지만... 솔직히 그냥 원본 번역에 충실해야 하는 거 아닐까? 괜히 보충 설명 때문에 더 헷갈리시게 해드리는 건 아닐까 하는 고민이 늘 있습니다...

 

 

2. 설명 때문에 내용이 좀 길어졌지만, 요약하여 말씀드리면, 자연계와 영계, 양쪽에 다 공간이라는 게 있지만, 그 속성은 전혀 다르다는 것, 자연계의 모든 것은 길이, 넓이, 높이라는 3차원 속성을 갖는 반면, 영계의 공간은 사실은 공간처럼 보이는 것으로, 그 속성은 상태와 그 상태의 변화라는 영적 속성을 갖는다는 것, 영계에서는 사랑과 애정의 상태, 즉 주님의 신성인 선과 진리에 대한 상태에 따라 가깝고 멀고와 빠르고 느리고가 결정된다는 것, 천국보다 크신 주님은 그러므로 자연계의 공간 안에 계실 수 없는 분이시라는 것, 천국 천사들은 천국 전체가 주님 모습을 한 사람 형태이기 때문에 ‘사람 모습을 하신 주님이 천국 전체에 충만하시다. 즉 온 피조 세계는 주님의 신성으로 충만하다’라는 생각 말고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다는 것 등이 되겠습니다.

 

 

3. 이 교리 공부를 시작했더니 ‘말씀만 묵상하세요.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하는, 진정성 어린 권면의 말씀들을 많이들 주십니다. 참 고맙고 감사하지요. 천사들은 사람을 볼 때, 그가 한 행동, 행위가 아닌, 그의 마음 속 의지, 동기를 본다고 합니다. 사람을 이루는 게 의지(will)와 이해하는 능력(understanding)이기 때문이지요. 언제부턴가 저도 그렇게 조금씩 변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에게 저런 권면을 하실 때, 그 속을 볼 수 있게 되네요 ^^

 

권면을 명심, 어떻게 하면 이 교리 공부 속에서도 살아계신 주님의 음성, 그 뜨거운 주님의 사랑과 애정을 느끼게 할 수 있을까 주야로 고민, 또 고민하겠습니다.

 

 

4. 저 개인적으로는 이 교리 공부가 큰 유익이 되고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사람들은 교리를 편안해하는데, 그 이유는 교리는 사람들한테 있어 일종의 침대와도 같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천국은 지상의 빛보다 몇 배나 더 밝다고 합니다. 천국을 이처럼 밝게 하는 빛이 바로 진리인데요, 천국의 진리 안에는 주님의 사랑의 선이 담겨 있어서, 그래서 천국은 또한 주님으로 충만한 곳입니다. 모든, 주님으로 말미암은 것 안에는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자연계에서는 진리는 추상적 개념이지만, 영계에서는 진리가 눈에 보인다고 합니다. 자연계의 햇빛을 우리가 눈으로 보듯 말이지요. 천국은 이 진리가 신적 질서를 따라 아름답고 질서정연하게 충만하다고 합니다. 천사들은 그런 신적 질서의 나라에서 사는데요, 지금 우리가 이 교리 공부를 하는 것은 바로 그런 삶을 미리 살고자 연습하는 것입니다. 주님으로 말미암은 이 질서를 미리 이 지상에서 충분히 익히면, 우리는 이 지상에서도 조금씩 천국을 살게 될 줄 믿습니다. 아멘

 

 

이것으로 4강, ‘하나님은 공간 안에 계실 수 없으시다(The Divine is not in space)’를 마치고, 다음은 5강, ‘하나님의 본질은 사랑과 지혜 그 자체다(The very Divine Essence is Love and Wisdom)’를 다루겠습니다.

 

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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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교 원고 및 유튜브 (성찬, 찬양 및 축도 포함)

2023-06-18(D1)-주일예배(2482, 눅9,57-62), '주님을 따르려면'.pdf
0.33MB

https://youtu.be/PQcL8Nk0q5M

 

2.  축도 원고

2023-06-18(D1)-주일예배.축도.pdf
0.22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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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공간 안에 계실 수 없으시다(The Divine is not in space) (1)’ (2023/6/16)

 

 

하나님에 관하여’ 4강, ‘하나님은 공간 안에 계실 수 없으시다(The Divine is not in space)’, 오늘은 그 첫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의 메인 본문입니다.

 

 

하나님은 공간 안에 계실 수 없으시다 The Divine is not in space

 

(, the Divine), 즉 하나님(God)은 비록 편재(遍在,omnipresent)하셔서 지상 모든 사람과 천국 모든 천사, 그리고 천국 아래 모든 영과 함께하시지만, 그러나 공간(空間, space)안에 계시는 건 아니라는 이 놀라운 사실은 단순한 자연적 사고(思考, a merely natural idea)로는 이해할 수 없고, 오직 영적 사고(a spiritual idea)로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연적 사고로는 할 수 없는 이유는, 자연적 사고는 공간과 관련되기 때문인데, 이 공간이라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면서 하나에서 열까지 다 눈에 보이는 그런 것들로 채워지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크고 작은 것들은 다 공간을 차지하는데, 모든 길이, 넓이, 높이를 갖는 것들은 공간을 차지합니다. 즉 모든 측정, 모양 및 형태를 가진 것들은 다 공간이라는 것을 차지하지요. 이것이 바로 그저 자연적이기만 한 사고로는 하나님의 편재를 말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은 공간 안에 계실 수 없으시다 하는 걸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그가 만일 영적 빛에 속한 것에 마음을 열면(admit into it something of spiritual light), 이때는 비록 그가 자연적 사고 가운데 있을지라도 이걸 이해할 수 있는데요, 이런 이유로, 무엇이든 영적인 걸 먼저 말하고, 그걸 가지고 이어서 나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영적 사고는 공간으로부터는 아무것도 가지고 나오는 게 없고(Spiritual idea derives nothing from space), 대신 모든 걸 상태(狀態, state)로부터 나오게 합니다. 상태라는 것은 사랑, 생명, 지혜, 애정(affections)및 거기서 나오는 기쁨 등, 일반적으로 선과 진리의 속성입니다. 즉 이런 것들을 다 상태로 설명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정말 영적인 것들에 대한 사고(An idea of these things which is truly spiritual)는 공간하고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습니다. 이 사고는 공간적 사고(the ideas of space)보다 높아서 마치 하늘이 땅을 내려다보듯 그걸 내려다보는데요, 이 영적 사고는 이렇게 공간적 사고보다 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천사들과 영들 역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눈으로 보기 때문에, 그리고 공간이라는 게 없으면 그 대상(objects)을 볼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비록 천사들과 영들이 있는 영계에 지상의 공간처럼 보이는 공간이 나타나더라도, 그것은 실제 공간이 아니고 단지 그렇게 보이는 외관(appearances)일 뿐입니다. 이는 지상의 경우처럼 고정되거나 일정하게 정해진 게 아니기 때문인데, 영계의 공간은 길어지거나 짧아질 수 있고, 바뀌거나 다양하게 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계에서는 공간이라는 걸 이곳 자연계에서처럼 측량이라는 걸 해서 정할 수가 없는데요, 이런 건 그 어떤 자연적 사고로도(by any natural idea) 이해할 수 없고, 오직 영적으로만(only by a spiritual idea) 이해할 수 있는 겁니다. 영적으로 공간 간 거리(The spiritual idea of distances of space)는 선 간 거리(distances of good)나 진리 간 거리(distances of truth)와 같은데, 이는 선과 진리의 상태에 따른 친밀한 정도와 닮은 정도(affinities and likenesses)입니다. (DLW.7) That the Divine, that is, God, is not in space, although omnipresent and with every man in the world, and with every angel in heaven, and with every spirit under heaven, cannot be comprehended by a merely natural idea, but it can by a spiritual idea. It cannot be comprehended by a natural idea, because in the natural idea there is space; since it is formed out of such things as are in the world, and in each and all of these, as seen by the eye, there is space. In the world, everything great and small is of space; everything long, broad, and high is of space; in short, every measure, figure, and form is of space. This is why it has been said that it cannot be comprehended by a merely natural idea that the Divine is not in space, when it is said that the Divine is everywhere. Still, by natural thought, a man may comprehend this, if only he admit into it something of spiritual light. For this reason something shall first be said about spiritual idea, and thought therefrom. Spiritual idea derives nothing from space, but it derives its all from state. State is predicated of love, of life, of wisdom, of affections, of joys therefrom; in general, of good and of truth. An idea of these things which is truly spiritual has nothing in common with space; it is higher and looks down upon the ideas of space which are under it as heaven looks down upon the earth. But since angels and spirits see with eyes, just as men in the world do, and since objects cannot be seen except in space, therefore in the spiritual world where angels and spirits are, there appear to be spaces like the spaces on earth; yet they are not spaces, but appearances, since they are not fixed and constant, as spaces are on earth; for they can be lengthened or shortened; they can be changed or varied. Thus because they cannot be determined in that world by measure, they cannot be comprehended there by any natural idea, but only by a spiritual idea. The spiritual idea of distances of space is the same as of distances of good or distances of truth, which are affinities and likenesses according to states of goodness and truth. (DLW.7)

 

이상으로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알 수 있는데요, 먼저 사람의 사고가 그저 자연적이기만 하면,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지만, 그러나 공간 안에 계시는 건 아니라는 걸 도저히 이해 못 한다는 것과, 둘째, 그러나 천사들과 영들은 반대로 아주 명료하게 이해한다는 것, 셋째, 그 결과, 사람 역시 그가 영적 빛에 속한 것에 마음을 열면, 즉 영적 사고를 하면 이해할 수 있다는 것 등입니다. 이 모든 것은 생각하는 주체가 육(body)이 아니라 영(spirit)이기 때문이며, 영적 사고라는 것이 자연적이지가 않고 영적이기 때문입니다. (DLW.8) From this it may be seen that man is unable, by a merely natural idea, to comprehend that the Divine is everywhere, and yet not in space; but that angels and spirits comprehend this clearly; consequently that a man also may, provided he admits into his thought something of spiritual light; and this for the reason that it is not his body that thinks, but his spirit, thus not his natural, but his spiritual. (DLW.8)

 

그러나 많은 사람이 이걸 이해 못하는데요, 그 이유는 자연에 대한 그들의 사랑, 즉 그들의 사고를 자연에서 영적 빛으로 높이기를 꺼리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오로지 공간 안에서만 생각할 수 있으며, 심지어 하나님에 관해서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공간 안에서만 하는 건 자연의 확장(the expanse of nature)에 대해서 하는 것과 같은 건데요, 예를 들면, 하나님의 편재에 대해 말하면, ‘아, 하나님은 우주만큼 크신 분인가 보다’로 이해하는, 그런 식이지요. 하나님은 공간 안에 계시는 게 아니라는 이 사실이 먼저 전제되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즉 이런 사실에 대한 지식과 나름의 퍼셉션(perception, 지각) 없이는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하나님의 생명, 곧 사랑과 지혜에 관해 전혀 이해할 수 없으며, 그래서 만일 그렇다면, 하나님의 섭리, 편재하심, 전지하심, 전능하심, 무한하심과 영원하심(divine providence, omnipresence, omniscience, omnipotence, infinity and eternity) 등 연이어 다루게 될 주제들에 대해서도 거의 아무것도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DLW.9) But many fail to comprehend this because of their love of the natural, which makes them unwilling to raise the thoughts of their understanding above the natural into spiritual light; and those who are unwilling to do this can think only from space, even concerning God; and to think according to space concerning God is to think concerning the expanse of nature. This has to be premised, because without a knowledge and some perception that the Divine is not in space, nothing can be understood about the Divine life, which is love and wisdom, of which subjects this volume treats; and hence little, if anything, about divine providence, omnipresence, omniscience, omnipotence, infinity and eternity, which will be treated of in succession. (DLW.9)

 

2023-06-16(D6)-C.1.4.1, '하나님은 공간 안에 계실 수 없으시다(God is not in Space) (1)’.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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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윗글은 스베덴보리 저,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Angelic Wisdom concerning Divine Love and Wisdom, 1763) 1장, ‘창조주(The Creator)의 세 번째 주제, ‘하나님은 공간 안에 계실 수 없으시다(The Divine is not in space)’에 나오는, 책 전체 글 번호로는 7, 8, 9번 글입니다.

 

 

아래는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보태는 몇 가지 설명 및 오늘의 권면입니다.

 

1. ‘비록 천사들과 영들이 있는 영계에 지상의 공간처럼 보이는 공간이 나타나더라도, 그것은 실제 공간이 아니고 단지 그렇게 보이는 외관(appearances)일 뿐입니다

 

다음은 오늘 메인 글들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먼저 좀 읽어야 하는 그런 글들인데요, 스베덴보리 저, ‘천국과 지옥’, 19장, ‘천국 안의 표상과 외관(Representatives and Appearances in Heaven)’, 그리고 22장, ‘천국의 공간(Space in Heaven)’에서 부분 발췌했습니다만 꼭 각 장 전체를 다 읽어보시기를 당부드립니다.

 

먼저 ‘외관(appearances)’입니다.

 

천사들의 내면에 상응하는 모든 것은 그들의 내면을 그대로 그려내기 때문에 ‘표상(表象, representatives)’이라고도 불린다. 그리고 그것이 천사들 내면의 각 상태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외관(外觀, appearances)’이라고 불린다. 그렇게 불리긴 해도 사실 천사들 눈에 보이는 것과 그들의 여타 감각에 지각되는 것은 우리가 지상에서 지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생하며, 오히려 더 뚜렷하고 명료하며 사실적이다. (HH.175)

 

천국 안에 사물이 생기는 방식은 지상에 물질이 생기는 방식과 다르다. 천국의 모든 것은 주께로부터 오며, 천사들의 내면에 상응하여 형성된다. 천사들에게는 외면과 내면이 있다. 그들의 내면에 있는 모든 것은 사랑과 신앙에, 따라서 의지와 사고력에 관계되어 있다. 의지와 사고력은 사랑과 신앙의 그릇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외면은 내면에 상응한다. 외면적인 것이 내면에 상응한다는 것은 위 12장, ‘천국의 모든 것과 사람의 모든 것은 상응한다(There Is a Correspondence of All Things of Heaven with All Things of Man)’와 13장, ‘천국은 지상의 모든 것과 상응한다(There Is a Correspondence of Heaven with All Things of the Earth)’에서 설명했다. 이러한 사실은 천국의 열과 빛에 대한 기록을 예로 들어 설명할 수 있다. 즉 천사들은 그들의 사랑의 속성에 상응하는 열을, 그들 지혜의 속성에 상응하는 빛을 지니는 것이다. cf. 15장, ‘천국의 빛과 열(Light and Heat in Heaven)’ 천사들의 감각에 느껴지는 다른 모든 것도 이와 마찬가지다. (HH.173)

 

다음은 ‘공간(空間, space)’입니다.

 

천국에서는 모든 것이 이 세상과 똑같이 장소와 공간 안에 위치한듯 보인다. 그러나 천사들은 장소나 공간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다. (HH.191)

 

영계에서의 장소변화는 모두 내면 상태의 변화(changes of state of the interiors)에 따라 이루어진다. 다시 말해, 장소변화는 바로 상태변화이다. 바로 이런 방법으로 나는 주님에 의해 천국으로 옮겨진 것이다. 그곳을 여행한 것은 나의 영혼이었으며, 내 몸은 지상의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천사들의 모든 이동도 이와 같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거리가 없으며, 거리가 없으므로 공간도 없다. 다만 공간 대신 상태와 그 변화가 있다. (HH.192)

 

장소변화가 이런 것이기 때문에, 가까운 것은 내면 상태가 비슷한 것이고, 먼 것은 내면 상태가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서로 가까이 있는 이들은 비슷한 상태에 있는 이들이고, 떨어져 있는 이들은 서로 다른 상태에 있는 이들이다. 천국에서의 공간이란 오직 내면 상태에 상응하는 것이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것(the external conditions corresponding to the internal states)이다. 세 천국이 서로 떨어져 있는 것, 그 각 천국 내의 공동체들 사이와 그 안의 개인들 사이에 간격이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역시 같은 원리로 지옥과 천국은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것이다. 지옥은 천국과 완전히 반대되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HH.193)

 

이 모든 것으로 보아 천국에도 지상과 같이 공간이 있지만 그것이 공간을 기준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고, 상태에 따라 정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천국의 공간은 이 세상 척도로 잴 수 없으며, 오직 그곳 천사들의 내면 상태에 따라 나타난다는 것도 알 수 있다. (HH.198)

 

그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주께서 모든 사람에게 각자의 사랑과 신앙의 정도에 맞게 임재하시기 때문이며, 주의 임재에 따라 모든 것이 가깝고 멀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주의 임재가 천국에서 모든 것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또한 주의 임재하심에 따라 천사들은 지혜가 생기고, 그들의 생각이 확산되며, 생각의 확산에 의해 천국의 모두는 서로 교통한다. 한마디로, 이로 인해 그들은 사람이 자연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영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HH.198)

 

여기까지 읽으셨으면 다시 오늘의 메인 글들을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2. ‘천사들과 영들 역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눈으로 보기 때문에

 

사람이 아직 지상에 있을 동안은 그 영은 육체라는 옷을 입고 있습니다만, 사후, 즉 육체의 옷을 벗은 후에는, 이번에는 영체라는 옷을 입게 되지요. 육체에 눈이 있듯, 영체에도 영적 눈이 있습니다. 천사들과 영들은 자신의 영체에 속한 눈으로 천국 모든 사물을 보는 것입니다.

 

 

3. ‘그러나 천사들과 영들은 반대로 아주 명료하게 이해한다는 것, 그 결과, 사람 역시 그가 영적 빛에 속한 것에 마음을 열면, 즉 영적 사고를 하면 이해할 수 있다는 것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마5:45) 하신 주님 말씀처럼, 주님 비추시는 사랑의 빛, 영적 빛에는 무슨 조건 같은 거 없습니다. 그냥 내가 마음을 열고 마치 해바라기가 해를 바라듯 주님을 바라면 됩니다. 그러면 주님으로 말미암는 입류(入流, influx)에 의해 서서히 내 안에서 영적 사고가 시작됩니다. 그러면서 나의 내면의 첫 번째 단계가 열리는 것입니다.

 

 

4. ‘퍼셉션(perception, 지각)’

 

다음은 퍼셉션에 대한 설명입니다.

 

오늘날은 퍼셉션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퍼셉션은 일종의 무슨 내적 느낌(a certain internal sensation) 같은 건데요, 오직 주님으로만 말미암으며, 어떤 게 선인지 진리인지를 아는 것으로, 태고 교회(the most ancient church)에 가장 잘 알려졌던 것입니다. 이 퍼셉션이라는 것은 천사들한테 있어 가장 퍼펙트(perfect)해서, 그들은 이것으로 무엇이 진리이고 선인지, 그리고 주님으로 말미암은 것은 무엇이고, 자신들로 말미암은 것은 무엇인지, 또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상대방이 어떤 퀄러티(quality)의 소유자인지를 단지 그의 접근과 그가 가진 생각 한 토막으로 알아차리며 관련 지식을 얻습니다. 영적 인간은 퍼셉션 대신 양심이 있습니다. 죽은 사람은 양심조차 없지요. 많은 사람이 양심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며, 그러니 퍼셉션에 대해서는 더 모릅니다. (AC.104)

 

영어 ‘perception’을 ‘지각’으로 옮기지 않고 그대로 ‘퍼셉션’으로 적는 이유는, 우리말 ‘지각’ 하나로 다 담을 수 없는 더욱 많은 의미와 뉘앙스들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용어가 몇 개 더 있는데요, 예를 들면, ‘affection’이라든가 ‘charity’같은 것입니다. 각각 ‘애정’, ‘인애’ 등으로 번역할 수 있지만, 마찬가지 이유로 저는 좀 망설여져서 거의 대부분, ‘어펙션’, ‘체어리티’로 그대로 옮기고 있습니다. 참고하세요.

 

위 104번 글을 통해 살짝 느끼셨겠지만 이것은 노아의 홍수 이후엔 사라지고 없는 영적 능력 내지는 통찰력입니다. 하지만 지금도 그 내면이 열린 사람들한테는 이 퍼셉션이 나타나고 있어 특히 주님의 아르카나에 대한 이해에 없어서는 안 될 통찰력이요, 빛이지 싶습니다. 제가 매일 이 컴펜디움 작업 때마다 맨 먼저 하는 기도가 바로 이 퍼셉션 기도, 곧 주님의 빛 비추어 주시기를 구하는 기도랍니다.

 

오늘 작업은 그 분량이 과연 역대급입니다. 이렇게 장편의 내용을 나누는 게 과연 유익이 있을까, 괜히 힘들게 해드리는 건 아닐까 좀 고민도 됩니다...

 

주님은 천국 안에 계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천국보다 크셔서 천국 밖, 즉 피조 세계 밖에 계십니다. 그러니 더더욱 공간 안에 계실 수 없으시지요. 주님이 천국에 사람 모습으로 나타나시는 건, 아까 살핀 것처럼 ‘표상’, ‘외관’으로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주님으로 말미암은 것 안에는 주님이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 모습으로 나타나시는 주님한테서나 주님의 말씀한테서나 주님을 느끼는 것입니다.

 

 

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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