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각 소사이어티는 작은 형태의 천국이고,

각 천사는 가장 작은 형태의 천국이다

Each Society Is a Heaven in a Smaller Form,

and Each Angel in the Smallest Form

 

 

51. 각 소사이어티는 더 작은 형태의 천국이고, 각 천사는 가장 작은 형태의 천국입니다. 그 이유는, 천국을 이루는 것은 사랑과 신앙의 선이기 때문이며, 이 선이 천국 내 각 소사이어티와 한 소사이어티 내 각 천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Each society is a heaven in a smaller form, and each angel in the smallest form, because it is the good of love and of faith that makes heaven, and this good is in each society of heaven and in each angel of a society.

 

이 선이 있는 곳마다 다르고 다양한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천국의 선입니다. 천국은 이곳 퀄러티 다르고, 저곳 퀄러티가 다른 것을 제외하면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 It does not matter that this good everywhere differs and varies, it is still the good of heaven; and there is no difference except that heaven has one quality here and another there.

 

그래서 누가 천국 어느 소사이어티 안으로 들어 올려질 때, 그를 일컬어 천국에 들어갔다 하는 것이며, 거기 있는 자들을 일컬어 천국에 있다, 각자 자기 고유의 천국 안에 있다 하는 것입니다. So when anyone is raised up into any society of heaven he is said to come into heaven; and those who are there are said to be in heaven, and each one in his own.

 

내세에서는 다들 이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천국 밖이나 아래 있는 자들이 멀리 천사의 무리를 보면, 천국이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합니다. This is known to all in the other life; consequently those standing outside of or beneath heaven, when they see at a distance companies of angels, say that heaven is in this or that place.

 

비유하자면, 궁전이나 성에 같이 사는 민군(民軍) 장교나 수행원들과 같습니다. 그들은 비록 위아래 나름의 쿼터나 방에 따로 떨어져 지내지만, 그러나 여전히 같은 궁전이나 성에서 자기들 고유의 왕을 받드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지요. It is comparatively like civil and military officers and attendants in a royal palace or castle, who, although dwelling apart in their own quarters or chambers above and below, are yet in the same palace or castle, each in his own position in the royal service.

 

이걸 보면, 다음과 같은 주님 말씀의 의미를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This makes evident the meaning of the Lord’s words, that: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요14:2) In his Father’s house are many abiding places (John 14:2);

 

또 천국의 거처 및 예언서에 나오는 하늘의 하늘 등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분명해집니다. also what is meant by the dwelling places of heaven, and the heavens of heavens, in the prophets.

 

 

52. 각 소사이어티가 좀 더 작은 형태의 천국임은 이렇게도 알 수 있는데요, 천국 각 소사이어티는 천국 전체의 모습과 닮은 천국 형태라는 사실 말입니다. That each society is a heaven in a smaller form can be seen from this also, that each society there has a heavenly form like that of heaven as a whole.

 

천국을 전체적으로 보면, 다른 천사들보다 뛰어난 천사들은 가운데로, 덜 뛰어난 천사들은 주변, 심지어는 가장자리로까지 역순으로 배정됩니다. (앞 장 43번 글에서 말씀드렸습니다.) In the whole heavens those who are superior to the rest are in the middle, with the less excellent round about in a decreasing order even to the borders (as stated in a preceding chapter, n. 43).

 

이 사실로 또 알 수 있는 것은, 주님은 천국 전체를 마치 하나의 천사에게 하듯 이끄신다는 것입니다. 모든 각 소사이어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그 결과, 종종 하나의 천사 소사이어티 전체가 하나의 천사처럼 천사 형태를 띠고 나타나기도 하는데, 저는 이것을 주님이 허락하셔서 본 적이 있습니다. It can be seen also from this, that the Lord directs all in the whole heaven as if they were a single angel; and the same is true of all in each society; and as a consequence an entire angelic society sometimes appears in angelic form like a single angel, as I have been permitted by the Lord to see.

 

더욱, 주님이 천사들 가운데 나타나실 때, 주님은 많은 천사에게 둘러싸인 주님으로 나타나시는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마치 한 천사처럼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나십니다. Moreover, when the Lord appears in the midst of the angels he does not appear as one surrounded by many, but the appearance is as a one, in an angelic form.

 

이것이 말씀에서 주님을 일컬어 ‘한 천사’라 하는 이유이며, 하나의 소사이어티 전체를 그렇게 부르는 이유입니다. This is why the Lord is called “an angel” in the Word, and why an entire society is so called.

 

미가엘’, ‘가브리엘’, 그리고 ‘라파엘’ 등은 그들의 맡은 일에 따라 그렇게 이름 붙여진 천사들의 소사이어티를 말합니다.(주50) Michael,” “Gabriel,” and “Raphael” are no other than angelic societies so named from their function.(주50)

 

 

53. 하나의 소사이어티 전체가 좀 더 작은 형태의 천국이듯, 한 천사는 가장 작은 형태의 천국입니다. As an entire society is a heaven in a smaller form, so an angel is a heaven in the smallest form.

 

천국은 천사의 밖이 아닌 안에 있습니다. 천사의 마음속 내면이 천국 형태로 배열되어 있기 때문이며, 그래서 자기 밖 천국의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For heaven is not outside of the angel, but is within him, since the interior things which belong to his mind are arranged into the form of heaven, thus for the reception of all things of heaven that are outside of him.

 

그는 이것을 또한 주님에게서 나와 그의 안에 있는 선의 퀄러티에 따라 받습니다. These also he receives according to the quality of the good that is in him from the Lord.

 

한 천사가 한 천국인 것은 바로 이런 연유 때문입니다. It is from this that an angel is a heaven.

 

 

54. 천국이 아무개의 밖에 있다고 하는 것은 넌센스입니다. 천국은 그의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It can in no sense be said that heaven is outside of anyone; it is within him.

 

각 천사가 자기 밖에 있는 천국을 받는 것은, 자기 안에 있는 천국에 일치하는 만큼이기 때문입니다. For it is in accordance with the heaven that is within him that each angel receives the heaven that is outside of him.

 

이걸 보면, 자신의 내면생활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단순히 천사들 가운데로 옮겨지는 것으로 믿는 사람, 천국은 내면생활 같은 거 필요 없이,51 영성을 추구함 같은 거 필요 없이, 그저 은혜로 단번에 들어가는 곳이라고 믿는 사람은 얼마나 그릇된 길로 가고 있는 것인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실상은, 천국이 사람 안에 없으면, 사람 밖에 있는 천국의 그 어떤 것도 그의 안으로 흘러 들어갈 수도, 또 그가 받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This makes clear how greatly misled is he who believes that to come into heaven is simply to be taken up among angels, without regard to what one’s interior life may be, thus that heaven is granted to each one by mercy apart from means;51 when, in fact, unless heaven is within one, nothing of the heaven that is outside can flow in and be received.

 

많은 영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There are many spirits who have this idea.

 

이런 믿음 때문에, 그들은 사후, 일단 천국으로 올려집니다. 그러나 그들이 천국에 들어가면, 그들 내면의 삶, 또는 생명이 천사들의 것과 정반대여서 그들의 지적 능력이 바보, 멍청이가 될 때까지 어두워지며, 눈이 멀게 되고, 그들의 자원하는 심령, 곧 의지 기능이 고통을 당해 미친 사람처럼 되고 말지요. Because of this belief they have been taken up into heaven; but when they came there, because their interior life was contrary to the angelic life, their intellectual faculties began to be blinded until they became like fools; and they began to be tortured in their voluntary faculties until they became like madmen.

 

한 마디로, 사악하게 살던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면, 그는 숨이 턱 막히고, 고통으로 온몸을 비틀게 되는데, 마치 물고기가 물 밖으로 나온 것처럼, 진공관 속 동물이 숨을 못 쉬는 것처럼 괴로워하게 됩니다. In a word, if those that have lived wickedly come into heaven they gasp for breath and writhe about, like fishes out of water in the air, or like animals in ether in an air pump when the air has been exhausted.

 

이런 사실들로 알 수 있는 것은, 천국은 사람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 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52 From this it can be seen that heaven is not outside of a man, but within him.52

 

 

55. 모든 사람이 자기 안의 천국 퀄러티에 따라 자기 밖 천국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주님을 또한 그렇게 받아들입니다. 천국을 이루는 것은 주님의 신성(神性, The Divine)이기 때문입니다. As everyone receives the heaven that is outside of him in accordance with the quality of the heaven that is within him, so in like manner does everyone receive the Lord, since it is the Divine of the Lord that makes heaven.

 

이런 이유로, 주님이 어느 소사이어티를 방문, 그곳에 뚜렷하게 나타나실 때, 주님의 나타나심은 그 소사이어티가 가지고 있는 선의 퀄러티에 따라 결정되며, 그래서 한 소사이어티의 나타나심과 다른 소사이어티의 나타나심이 다 다릅니다. And for this reason when the Lord becomes manifestly present in any society his appearance there is in accord with the quality of the good in which the society is, thus not the same in one society as in another.

 

이런 다양성은 주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천사들에게 있으며, 천사들이 자기들 고유의 선으로 주님을 보기 때문입니다. 천사들의 선의 다양함 때문에 주님의 나타나심이 다양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This diversity is not in the Lord; it is in the angels who behold him from their own good, and thus in accordance with their good.

 

그들은 주님이 임하실 때, 그들의 사랑의 퀄러티에 따라 영향을, 감동을 받습니다. 내적으로 아주 깊이 사랑하는 천사들은 내적으로 아주 깊이 감동되고, 좀 덜 내적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천사들은 좀 덜 감동됩니다. 반면 천국 밖 악한 영들은 주님이 임하실 때, 고통스러워합니다. And they are affected by his appearance in accordance with the quality of their love, those who love him inmostly being inmostly affected, and those who love him less being less affected; while the evil who are outside of heaven are tortured by his presence.

 

주님이 어느 소사이어티에 임하실 때, 주님은 한 천사로 보이시지만, 그러나 주님의 신적 광휘로 다른 천사들하고는 확연히 구별됩니다. When the Lord is seen in any society he is seen as an angel, but is distinguished from others by the Divine that shines through.

 

 

※ 각주

 

50. 말씀에서는 주님을 천사라고 합니다. In the Word the Lord is called an angel (n. 6280, 6831, 8192, 9303). 하나의 천사 소사이어티 전체를 하나의 천사라 합니다. 미가엘과 라파엘은 천사들의 소사이어티이며, 그들의 하는 일을 따라 그렇게 부르는 것입니다. A whole angelic society is called an angel, and Michael and Raphael are angelic societies, so called from their functions (n. 8192). 천국 소사이어티들과 천사들은 무슨 이름이 없고, 다만 그들의 선의 퀄러티와 그 퀄러티에 대한 아이디어로 구별됩니다. The societies of heaven and the angels have no names, but are distinguished by the quality of their good, and by the idea of it (n. 1705, 1754).

 

 

51. 천국은 내면과 분리된 자비만으로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 곧 삶이, 생활이 받쳐줘야 합니다. 주님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천국까지 인도함을 받는 일생의 모든 것이 자비에 속하며, 자비란, 은혜란 바로 이런 것을 말합니다. Heaven is not granted from mercy apart from means, but in accordance with the life; yet everything of the life by which man is led to heaven by the Lord belongs to mercy; this is what is meant by mercy (n. 5057, 10659). 만일 천국이 내면의 준비와 상관없이 그저 은혜로만 갈 수 있는 데라면, 천국은 모든 사람이 다 들어갈 수 있는 데가 됩니다. If heaven were granted from mercy apart from means it would be granted to all (n. 2401). 천국을 내면의 준비 같은 거 필요 없이 단순히 은혜로 들어가는 곳이라고 믿었으나 사후, 정작 천국에는 못 들어가고 내던져짐을 당한 어느 악한 영들에 관하여 About some evil spirits cast down from heaven who believed that heaven was granted to everyone from mercy apart from means (n. 4226).

 

 

52. 천국은 사람 안에 있습니다. Heaven is in man (n. 38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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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11

 

1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2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3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4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5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6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7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8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9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1279. 1절로 9절에서 다루는 주제는 첫 번째 고대교회로서, 홍수 후에 있었던 교회입니다. The subject treated of is the first ancient church, which was after the flood (verses 1–9).

 

 

1280. 1절은 그 첫 번째 상태로서, 모두가 하나의 교리를 갖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Concerning its first state, that all had one doctrine (verse 1);

 

※ ‘언어’는 교리, ‘’은 교회이며,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는 전반적으로, ‘말이 하나였더라’는 구체적으로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즉, 다양하게 퍼져나간 고대교회의 내적, 외적 예배의 모양과 형태는 저마다 다 달랐지만, 처음, 곧 아직까지는 하나의 교리였다는 말이며, 이것은 마치 신체 내 각 장기와 모든 지체가 저마다 그 역할과 기능은 다 다르지만 한가지로 움직이는 것과 같다 하겠습니다. (AC.1284)

 

2절은, 그 두 번째 상태, 곧 그 교리가 외면받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its second state, that it began to decline (verse 2);

 

※ ‘동방으로 옮기다가’는 그들이 체어리티의 삶에서 점점 후퇴하였음을, ‘시날 평지를 만나’는 그들의 예배가 점점 불결해지고, 주님을 모독하게 되었음을 뜻하며, 이는 곧 그들이 처음 교리, 신학, 가르침을 가볍게 여기며 외면하게 되었음을 말합니다. (AC.1290-1292)

 

3절, 세 번째 상태, 탐욕에서 나온 거짓들이 군림하기 시작했음을 its third, that the falsities of yearnings began to reign (verse 3);

 

※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는 자기들을 위해 변화시킨 거짓과 자기 사랑에서 온 악을 말하며, ‘벽돌로 돌을’은 거짓으로 진리를, ‘역청으로 진흙을’은 탐욕으로 선을 각각 대신하는 것입니다. ‘서로 말하되’는 이런 일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4절, 네 번째 상태입니다. 사람들이 신성한 예배를 가지고 지배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는 말씀입니다. its fourth, that men began to exercise dominion by means of Divine worship (verse 4)

 

※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는 그들이 교리와 예배의 틀, 프레임을 짰음을, 여기 ‘성읍’은 교리, ‘탑’은 자아를 예배함입니다.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는 그들의 지배권이 하늘에 속한 것들에까지 미치도록을, ‘우리 이름을 내고’는 그런 식으로 유명해져서 권세를 누리고자 함을,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는 이런 방법 말고는 자기들이 인정받을 길이 없음을 각각 의미합니다.

 

5절, 6절입니다. 이런 이유로, 그 교회의 상태가 변했습니다. and therefore the state of the church was changed (verses 5–6);

 

※ ‘여호와께서 내려오셨더라’는 그들 위에 내려질 심판을,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는 그들이 교리를 뒤집고 예배를 모독했기 때문임을, ‘사람들이 건설하는’은 그들이 자기들을 위해 그런 걸 고안하였음을,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는 그들 모두 신앙과 교리에 관한 하나의 진리를 가졌음을, ‘이같이 시작하였으니’는 그들이 지금 변화에 대한 추구를 시작했음을,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는 그들의 상태가 지금 안 바뀌면...을, ‘여호와께서 이르시되’는 이상과 같은 일이 일어났음을 각각 의미합니다.

 

7절로 9절입니다. 그 결과, 신앙의 선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so that none had the good of faith (verses 7–9).

 

※ 7절, ‘자, 우리가 내려가서’는 그 결과, 심판을 초래하게 되었음을, 아, 그리고 잠깐, 여기 ‘우리’라는 복수 형태가 사용되는 이유는, 이것이 심판의 집행이고, 이 집행은 영들, 실제로는 악한 영들에 의해서 집행되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는 어느 누구도 교리의 진리를 갖고 있지 않음을,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는 모두가 서로 상충되는 가운데 있음을, 8절,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는 그들은 인정받지 못했음을,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는 그런 교리는 받으시지 않았음을, 9절,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는 그런 예배, 곧 주님을 향한 예배에 자아 사랑이 저변에 깔려 있어 몹시 불결, 순수를 짓밟은 예배, 즉, ‘바벨’이라 하는 예배를,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는 이 고대교회의 상태, 곧 내적 예배가 소멸되기 시작한 상태를, 여기 ‘땅’은 교회입니다.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는 내적 예배가 전멸했음을 각각 의미합니다.

 

 

10셈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셈은 백 세 곧 홍수 후 이 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 11아르박삿을 낳은 후에 오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2아르박삿은 삼십오 세에 셀라를 낳았고 13셀라를 낳은 후에 사백삼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4셀라는 삼십 세에 에벨을 낳았고 15에벨을 낳은 후에 사백삼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6에벨은 삼십사 세에 벨렉을 낳았고 17벨렉을 낳은 후에 사백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8벨렉은 삼십 세에 르우를 낳았고 19르우를 낳은 후에 이백구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0르우는 삼십이 세에 스룩을 낳았고 21스룩을 낳은 후에 이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2스룩은 삼십 세에 나홀을 낳았고 23나홀을 낳은 후에 이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4나홀은 이십구 세에 데라를 낳았고 25데라를 낳은 후에 백십구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6데라는 칠십 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

 

 

1281. 두 번째 고대교회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 교회는 에벨로 명명되며, 그 퍼져나감 및 상태, 그리고 결국엔 우상숭배로 종말을 고하게 됩니다. The second ancient church is then treated of—which was named from Eber—and its derivation and state, which finally ended in idolatry (verses 10–26).

 

※ 10절입니다. ‘셈의 족보는 이러하니라’는 두 번째 고대교회의 퍼져나감을, ‘셈’은 일반적으로 내적 예배를, ‘백 세’는 시작 당시 이 교회의 상태를, ‘아르박삿’은 이 이름으로 명명된 나라였으며, 기억-지식(memory-knowledge)을 상징함을, ‘홍수 후 이 년’은 홍수 후 두 번째 교회임을 각각 상징합니다. (AC.1329)

 

가급적 반복되는 표현들은 빼고, 좀 특별한 표현들 위주로 풀이를 달겠습니다.

 

11절, ‘아르박삿을 낳은 후에 오백 년을 지내며’는 셈이라는 교회가 아르박삿 이후 존속한 기간과 상태를, ‘자녀를 낳았으며’는 교리적 것들을 각각 상징합니다. (AC.1336)

 

12절, ‘아르박삿은 삼십오 세에’는 두 번째 상태의 시작 및, 뿐만 아니라, 두 번째 상태 자체를, ‘셀라를 낳았고’는 그렇게 파생됨을 상징합니다. 셀라는 그 이름으로 명명된 나라이며, 기억-지식에 존재하는 것을 이 이름으로 상징하고 있습니다. (AC.1339)

 

14절, ‘셀라는 삼십 세에’는 세 번째 상태의 시작을, ‘에벨을 낳았고’에서 ‘에벨’은 그 이름으로 부르던 나라였으며, 히브리 나라는 이 에벨을 아버지로 한 나라입니다. 히브리 나라는 일반적으로 이 두 번째 고대교회의 예배를 상징합니다. (AC.1342)

 

16절, ‘에벨은 삼십사 세에’는 이 교회의 네 번째 상태의 시작을, ‘벨렉을 낳았고’, 벨렉은 앞장 25절은 보면,

 

25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벨렉의 아우의 이름은 욕단이며 (창10:25)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벨렉은 그의 아우 욕단과 함께 이 두 번째 고대교회를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AC.1345)

 

벨렉과 욕단은 에벨이라는 교회의 두 예배, 곧 내적 예배인 벨렉과, 외적 예배인 욕단을 의미합니다. ‘땅’은 교회를 의미하므로, ‘땅’, 곧 ‘세상이 나뉘었다’는 것은, 새로운 교회가 일어났음을 말합니다.

 

18절, ‘벨렉은 삼십 세에’는 다섯 번째 상태의 시작을, ‘르우’는 훨씬 더 외적인 예배를 상징합니다. (AC.1347)

 

20절, ‘르우는 삼십이 세에’는 여섯 번째 상태의 시작을, ‘스룩’은 외적인 것들 가운데서 드리는 예배를 말합니다. (AC.1349)

 

22절, ‘스룩은 삼십 세에’는 이 교회의 일곱 번째 상태의 시작을, ‘나홀’은, 예배가 외적인 것에 치중하다가 아예 우상숭배로 기울어진, 그런 예배를 말합니다. (AC.1351)

 

24절, ‘나홀은 이십구 세에’는 이 교회의 여덟 번째 상태이 시작을, ‘데라’는 우상숭배를 말합니다. (AC.1353)

 

26절입니다. ‘데라는 칠십 세에’는 아홉 번째 상태의 시작을, 그리고 이 상태가 끝입니다. 아브라함, 나홀, 하란부터는 실제 했던 인물들(persons)이었습니다. (AC.1355)

 

창1부터 여기 아브라함 전까지는 고대인들의 문체인 일종의 스토리텔링입니다. 긴 역사, 생생한 많은 일들을 무슨 재미난 역사서술식 이야기로 함축적으로 풀어내는 것이며, 고대인들은 이런 문체를 즐겼다고 합니다.

 

그래서 창세기 처음 열한 장은 글자 그대로인 겉 글자의 뜻으로 읽으면 여러 난센스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참고로, 말씀(The Word)은 모두 네 가지 문체로 기록되었는데, 이와 관련한 이야기는 따로 시간을 내겠습니다.

 

 

27데라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28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고향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죽었더라 29아브람과 나홀이 장가 들었으니 아브람의 아내의 이름은 사래며 나홀의 아내의 이름은 밀가니 하란의 딸이요 하란은 밀가의 아버지이며 또 이스가의 아버지더라 30사래는 임신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 31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32데라는 나이가 이백오 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더라

 

 

1282. 세 번째 고대교회의 기원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교회는 우상숭배로 시작, 표상(表象) 교회, 표현(representative) 교회가 되었습니다. The origin of a third ancient church is treated of, which from being idolatrous became representative (verses 27–32).

 

※ 27절, ‘데라의 족보는 이러하니라’는 우상숭배의 기원과 그 파생되어 나감, 그리고 거기서 표상교회가 나왔음을 가리킵니다. ‘데라’ 하면 우상숭배(idolatrous worship)를 상징합니다. (AC.1359)

 

※ 우상숭배는 크게 세 종류입니다. 자기를 사랑함, 세상을 사랑함, 그리고 감각을 사랑함, 곧 관능적 기쁨을 추구하는 것이지요. 이 세 종류의 우상숭배를 데라의 세 아들, 아브라함, 나홀, 그리고 하란으로 상징하고 있습니다. (AC.1357)

 

※ 표현(representative)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표현, 즉 그것의 속이 아닌, 겉만 취하는 것입니다. 가령, 꼭 선한 왕이 아닌, 아주 악한 왕이라 하더라도 왕은 주님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 왕이 어떤 삶을 살았느냐가 아니라 왕의 기능과 역할을 취하여 주님을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무대 위 배우들이 실제 그 배우의 성품이 아닌, 극 중 인물을 표현하는 것과 같습니다. (AC.1361)

 

※ 유대교회에서, 그리고 말씀에서 ‘표현’된 것은 주님과 주님의 왕국, 곧 사랑의 천적인 것들과, 신앙의 영적인 것들입니다. 또 이것들에 속하는 많은 것들, 곧 교회에 속하는 모든 것이 표현됩니다. (AC.1361)

 

※ 교회가 표현뿐인 교회가 된 이유는 내적 예배가 완전히 사라지고 우상숭배로 전락했을지라도 여전히 지상은 천국과, 즉 주님은 천국을 통하여 인간과 어떤 결합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AC.1361)

 

28절,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고향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죽었더라’는 내적 예배는 완전히 잊히고, 껍데기뿐인 우상숭배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하란’은 내적 우상숭배를, ‘그 아비 데라’는 일반적으로 우상숭배를, ‘고향’은 그것이 발원한 기원을, ‘갈대아인의 우르’는 그 안에 거짓이 있는 외적 예배를 작각 상징합니다. (AC.1365)

 

29절, ‘아브람과 나홀이 장가 들었으니 아브람의 아내의 이름은 사래며 나홀의 아내의 이름은 밀가니 하란의 딸이요 하란은 밀가의 아버지이며 또 이스가의 아버지더라’는 우상숭배, 곧 우상을 섬기는 예배 가운데 보면, 악과 거짓 간 결혼들이 있는데 바로 그걸 의미하는 것입니다. 남편들은 악을, 아내들은 거짓을 상징합니다. (AC.1369)

 

※ 아브라함과 사라 등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위와 같은 속뜻이 좀 불편할 수는 있겠지만, 위에서 말한 ‘표현’의 의미를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30절, ‘사래는 임신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는 악과 거짓이었던 것이 더 이상 무슨 재생산이 없었음을 말합니다. (AC.1371)

 

31절,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는 우상숭배 가운데 있었던 사람들이 신앙의 천적, 영적인 것들에 관한 가르침을 받아 바야흐로 본격적인 표상교회를 시작하게 되었음을 말합니다. (AC.1373)

 

32절, ‘데라는 하란에서 죽었더라’는 우상숭배, 곧 우상을 향한 예배를 그치고, 아브람을 통한 표상교회(a representative church)를 시작함을 의미합니다.

2021-09-10(D6)-매일예배(2188, 아케이나말씀리딩.창11), '바벨, 에벨, 아브라함, 고대교회의 세 상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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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같은교회.매일예배(9/10, 아케이나말씀리딩.창11), '바벨, 에벨, 아브라함, 고대교회의 세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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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10

 

1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홍수 후에 그들이 아들들을 낳았으니

 

1130. 1절, 이 장 전체를 통해 다루는 내용은 고대교회와 그 전파, 퍼져나감입니다. The subject treated of throughout this whole chapter is the ancient church, and its propagation (verse 1).

 

 

2야벳의 아들은 고멜과 마곡과 마대와 야완과 두발과 메섹과 디라스요 3고멜의 아들은 아스그나스와 리밧과 도갈마요 4야완의 아들은 엘리사와 달시스와 깃딤과 도다님이라 5이들로부터 여러 나라 백성으로 나뉘어서 각기 언어와 종족과 나라대로 바닷가의 땅에 머물렀더라

 

1131. 2절, 내적 예배에 상응하는 외적 예배 가운데 있었던 사람들이 ‘야벳의 아들’입니다. They who had external worship corresponding to internal are the “sons of Japheth” (verse 2).

 

※ 예배의 실체는 애정을 가지고 주님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즉, 주님을 경배, 예배하되 참된 애정이 없으면 그건 경배도, 예배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은 체어리티 가운데 계십니다. 그래서 오직 체어리티의 사람들, 실제로 체어리티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야 주님의 심정을 알며, 그래야 주님을 참된 애정으로 경배하고 예배할 수 있습니다. 이런 예배의 실체가 외적 예배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주님의 임재를 느끼며, 천진난만한 사람들입니다. ‘야벳’이 바로 이런 예배이며, 이런 예배 가운데 있는 이들이 바로 ‘야벳의 아들’입니다. (AC.1150)

 

3, 4절, 내적 예배로부터 더 먼 외적 예배 가운데 있었던 사람들이 ‘고멜의 아들, 야완의 아들’입니다. They who had worship more remote from internal are the “sons of Gomer and Javan” (verses 3–4).

 

※ 지상의 예배는 갈수록 더 감각적, 곧 세상적, 육체적, 지상의 것과 함께하려 하기 때문에, 영적 예배, 곧 내적 예배로부터 그만큼 더 멀어지게 마련입니다. (AC.1153:3)

 

5절, 여전히 더 먼, 훨씬 더 먼 예배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여러 나라 백성’, 곧 ‘여러 나라의 섬들’입니다. And they who had worship still more remote are the “isles of the nations” (verse 5).

 

※ 말씀에서 ‘섬들’은 진정한 내적 예배로부터 한참이나 멀리 떨어진 사람들, 겉으로는 무슨 예배라고 드리기는 하는데, 정말 무지하여 주님에 관해, 교회 신앙의 교리들에 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AC.1158:1)

 

 

6함의 아들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요 7구스의 아들은 스바와 하윌라와 삽다와 라아마와 삽드가요 라아마의 아들은 스바와 드단이며

 

1132. 6절, 지식 및 기억 속 지식들, 그리고 제의(祭儀, rituals)를 경작하여 내적인 것들로부터 자신을 분리, 떼어낸 사람들, 이들이 바로 ‘함의 아들’입니다. They who cultivated knowledges, memory-knowledges, and rituals, and separated them from things internal, are the “sons of Ham” (verse 6).

 

※ 주님의 것을 열심히 연구, 심지어 말씀의 속뜻, 곧 아케이나에 밝고, 신앙 관련, 모르는 게 없으며, 어떤 질문이든지 막힘이나 망설임이 없고, 목회 경험 풍부, 무슨 영적 기적과 권능을 행하여도, 그의 삶 가운데 체어리티가 없고, 선행의 삶이 없는, 그리고 끝에 가서 엉뚱하게도 세상을 향하는 사람들, 이들은 결국 처음부터 주님보다는 자기를 위하여 그랬던 것이 틀림없으며, 이들이 바로 ‘함의 아들’입니다.

 

7절, 영적인 것들에 관한 지식을 경작한, 곧 영적 지식을 추구한 사람들은 ‘구스의 아들’, 천적인 것들에 관한 지식을 경작한, 곧 천적 지식을 추구한 사람들은 ‘라아마의 아들’입니다. They who cultivated the knowledges of spiritual things are the “sons of Cush”; and they who cultivated the knowledges of celestial things are the “sons of Raamah” (verse 7).

 

※ 여기 영적, 천적 지식을 추구하였다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내적 예배는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입니다. 내적 예배 없이 이런 걸 추구하게 되면, 그 결과는 자기가 가진 거짓 원리들을 더욱 확고히 하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주님에 대한 애정 없이 신앙생활 하는 것이 위험한 것입니다.

 

 

8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첫 용사라 9그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이 용감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10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11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와 12및 니느웨와 갈라 사이의 레센을 건설하였으니 이는 큰 성읍이라

 

1133. 8-9절, 외적 예배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다루고 있는데, 이들의 예배는 겉과 달리 그 속이 악과 거짓이며, 그런 예배를 ‘니므롯’이라 합니다. Those treated of who have external worship in which are interior evils and falsities, “Nimrod” being such worship (verses 8–9).

 

※ ‘니므롯’은 내적 예배를 외적 예배로 만드는, 변형시키는 사람을 말합니다. 내적 예배는 사랑과 체어리티의 예배, 곧 예배의 실체인 반면, 외적 예배는 이것이 없는, 그래서 사실은 예배가 아닌 것이며, 따라서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은 주님의 일을 거꾸로 뒤집는 사람들이며, ‘그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다’라는 말은, 이 사람들이 많은 사람들을 설득했다, 미혹케 했다는 것입니다.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이 용감한 사냥꾼이로다’는 말은, 얼마나 이런 미혹이 성행했으면 그만 하나의 속담이 될 정도였으며, 이런 니므롯의 종교는 사람 마음을 쉽게 훔쳐 포로로 만들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AC.1173)

 

10절, 그런 예배에 있는 악과 The evils in such worship (verse 10).

 

※ 겉은 거룩하나 속은 주님을 모독하는 그런 예배를 뜻합니다. 겉과 속은 결국 같이 갑니다. 속이 거룩하면 결국 겉도 거룩해지며, 속이 더러우면, 결국 겉도 더러워집니다. 이들은 점점 더러워지며, 이들의 예배는 점점 더 주님을 모독하는 예배가 되었습니다. (AC.1182)

 

11, 12절, 그런 예배 가운데 있는 거짓들에 관한 내용입니다. The falsities in such worship (verses 11–12).

 

※ ‘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는 위와 같은 외적 예배 가운데 있던 자들이 이제 예배의 내용에 대해 이성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으며,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와 및 니느웨와 갈라 사이의 레센을 건설하였으니 이는 큰 성읍이라’는 이런 이성 활동, 이런 추론 활동을 통해 그들은 자신들을 위한 신앙의 교리들을 꾸며냈다는 말씀입니다. ‘앗수르’는 인간의 이성, 합리성을, ‘니느웨’는 인간 이성에서 나오는 거짓, ‘갈라’는 탐욕에서 나오는 거짓입니다. (AC.1184)

 

 

13미스라임은 루딤과 아나밈과 르하빔과 납두힘과 14바드루심과 가슬루힘과 갑도림을 낳았더라 (가슬루힘에게서 블레셋이 나왔더라)

 

1134. 13-14절, 기억 속 지식들을 가지고 추론, 자신들을 위한 새로운 종류의 예배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에 관한 내용입니다. Concerning those who form for themselves new kinds of worship out of memory-knowledges by means of reasonings (verses 13–14);

 

※ 내적 예배, 즉 주님 말씀의 속뜻은 오직 교회에 속한 것만을 다룹니다. 그러므로 이런 속뜻 없이 드리는 외적 예배, 그리고 그걸 또 인간의 머리로 추론, 무슨 예배를 만든들 그건 그저 겉보기에 치중한 예배 의식 외에 더 뭐가 아닙니다. 속뜻이 없는 무슨 장중한 예배 절차 같은 것은 그저 껍데기일 뿐입니다. (AC.1195)

 

14절, 그리고 신앙 관련 지식들을 단순한 기억 속 지식들로 만들어버리는 사람들에 관한 내용입니다. and concerning those who make mere memory- knowledge of the knowledges of faith (verse 14).

 

※ ‘블레셋’은 신앙에 관하여 말은 많이 하고, 구원은 신앙 안에 있다 하면서 정작 신앙의 삶은 없는 사람들을 고대교회에서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다른 말로는, ‘할례받지 않은 자’(삼상14:6)입니다.

 

 

15가나안은 장자 시돈과 헷을 낳고 16또 여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17히위 족속과 알가 족속과 신 족속과 18아르왓 족속과 스말 족속과 하맛 족속을 낳았더니 이 후로 가나안 자손의 족속이 흩어져 나아갔더라 19가나안의 경계는 시돈에서부터 그랄을 지나 가사까지와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을 지나 라사까지였더라 20이들은 함의 자손이라 각기 족속과 언어와 지방과 나라대로였더라

 

1135. 15-18절, 내적 요소가 없는 외적 예배, 이게 바로 ‘가나안’인데요, 이 예배의 파생 Concerning external worship without internal, which is “Canaan,” and the derivations of this worship (verses 15–18);

 

※ ‘가나안’은 내용물이 하나도 없는, 겉모습만 있는 예배입니다. 이는 마치 주님 오시기 전과 후, 유대인들의 예배와 같습니다. 그들은 외적 예배를 대단히 엄격하게 준수했지만, 그러나 여전히 그 내용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지하여, 그들은 인간은 오직 육체로만 존재한다 믿었습니다. 영, 신앙, 주님, 영적, 천적 생명, 사후 삶 등의 본성에 대해 그들은 완전 무지했습니다. 사후 삶에 대해 무지하고, 그래서 그걸 부정하게 되면, 이후 그의 모든 예배는 알맹이가 없는 빈껍데기가 되며, ‘가나안’은 바로 이런 예배를 말합니다. (AC.1200)

 

19-20절, 및 그 확장에 관한 내용입니다. and its extension (verses 19–20).

 

 

21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야벳의 형이라 그에게도 자녀가 출생하였으니 22셈의 아들은 엘람과 앗수르와 아르박삿과 룻과 아람이요 23아람의 아들은 우스와 훌과 게델과 마스며 24아르박삿은 셀라를 낳고 셀라는 에벨을 낳았으며

 

1136. 21절, 내적 예배, 바로 ‘’인데요, 이 예배와, 심지어 두 번째 고대교회에까지 미친 그의 확장에 관한 내용입니다. Concerning internal worship, which is “Shem,” and its extension even to the second ancient church (verse 21).

 

※ ‘에벨’은 두 번째 고대교회입니다. 이 ‘에벨’에 관해서는 다음 장에서 다루겠습니다. 히브리 민족이 이 ‘에벨’에서 나왔습니다.

 

22-24절, 내적 예배와 그 파생, 즉 퍼져나감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 예배는 체어리티에서 비롯되는데, 지혜, 지성, 기억 속 지식 및 지식 등으로 다양하게 퍼져나갔고, 이를 상징하여 ‘나라들’이라 하였습니다. Concerning internal worship and its derivations, which being from charity are derivations of wisdom, of intelligence, of memory-knowledge, and of knowledges, which are signified by the “nations” (verses 22–24).

 

※ 내적 예배를 통해서는 주님과 직접 교통하며, 그 결과, 천사들처럼 주님으로부터 모든 신령한 좋은 것을 받게 됩니다.

 

 

25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벨렉의 아우의 이름은 욕단이며 26욕단은 알모닷과 셀렙과 하살마웻과 예라와 27하도람과 우살과 디글라와 28오발과 아비마엘과 스바와 29오빌과 하윌라와 요밥을 낳았으니 이들은 다 욕단의 아들이며 30그들이 거주하는 곳은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쪽 산이었더라

 

1137. 25절, 시리아에서 일어난 어떤 교회에 관한 내용으로, 이 교회는 에벨이 세웠고, 두 번째 고대교회라 하였습니다. 이 교회는 ‘벨렉’이라는 내적 예배와, ‘욕단’이라는 외적 예배를 드렸습니다. Concerning a certain church which arose in Syria, instituted by Eber, which is to be called the second ancient church, the internal worship of which is “Peleg,” the external “Joktan” (verse 25).

 

26-29절, 이 예배의 제의들이 26절로 29절에 죽 나열된 나라 이름들입니다. Its rituals are the nations named in verses 26 to 29.

 

30절은 이 교회의 확장입니다. The extension of this church (verse 30).

 

 

31이들은 셈의 자손이니 그 족속과 언어와 지방과 나라대로였더라 32이들은 그 백성들의 족보에 따르면 노아 자손의 족속들이요 홍수 후에 이들에게서 그 땅의 백성들이 나뉘었더라

 

1138. 31-32절, 고대교회에 각 나라의 타고난 천성을 따라 다른 종류의 예배들이 있었습니다. That there were different kinds of worship in the ancient church, in accordance with the genius of each nation (verses 31–32).

2021-09-09(D5)-매일예배(2187, 아케이나말씀리딩.창10),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족보'.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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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Yc8nsXX-PG0

 

한결같은교회.매일예배(9/9, 아케이나말씀리딩.창10), '셈, 함, 야벳의 족보, 가나안, 니므롯, 에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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