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Male and female created he them, and blessed them, and called their name man, in the day when they were created. (창5:2)

 

 

477.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모든 개개인을 가리켜 사람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인간의 이해력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이해력이 있어 사람이며, 그에 따라 한 인간은 다른 사람보다 (이해력 면에서) 더 사람(같은 차이가 생깁니다)입니다. 사람 간 차이는 주님 사랑에 기반한 그 사람의 신앙에 따라 생겨야 하는데 말입니다. But in a general sense everyone is called a man who has human understanding; for man is man by virtue of understanding, and according thereto one person is more a man than another, although the distinction of one man from another ought to be made according to his faith as grounded in love to the Lord.

 

[2] 태고교회와 모든 참 교회, 그리고 그래서 그 교회에 속한 사람들이나 주님 사랑과 주님 신앙으로 사는 사람들을 가리켜 특별히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말씀, 에스겔을 보면 분명합니다. That the most ancient church, and every true church, and hence those who are of the church, or who live from love to the Lord and from faith in him, are especially called “man,” is evident from the Word, as in Ezekiel:

 

10내가 또 사람을 너희 위에 많게 하리니 이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11내가 너희 위에 사람과 짐승을 많게 하되 그들의 수가 많고 번성하게 할 것이라 너희 전 지위대로 사람이 거주하게 하여 너희를 처음보다 낫게 대우하리니 12내가 사람을 너희 위에 다니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 이스라엘이라 I will cause man to multiply upon you, all the house of Israel, all of it; I will cause to multiply upon you man and beast, that they may be multiplied and bear fruit; and I will cause you to dwell according to your antiquities; and I will do better unto you than at your beginnings and I will cause man to walk upon you, my people Israel, (겔36:10-12)

 

전 지위’는 태고교회를, ‘처음’은 고대교회를, ‘이스라엘 온 족속’, ‘내 백성 이스라엘’은 초대교회, 혹은 이방인들의 교회를 각각 상징하며, 이 모든 교회를 ‘사람’이라고 합니다. where by “antiquities” is signified the most ancient church; by “beginnings,” the ancient churches; by the “house of Israel” and “people Israel,” the primitive church, or church of the Gentiles; all which churches are called “man.

 

[3] 그래서 신명기에 So in Moses:

 

7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8지극히 높으신 자가 민족들에게 기업을 주실 때에, 인종을 나누실 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대로 백성들의 경계를 정하셨도다 Remember the days of eternity, understand ye the years of generation and generation; when the most high would give the nations an inheritance, when he would set apart the sons of man, he set the bounds of the peoples according to the number of the sons of Israel, (신32:7-8)

 

옛날’은 태고교회를, ‘역대’는 고대교회를, ‘인종’은 주님 신앙 안에 있었던 사람들을 각각 의미하며, 여기 이 신앙은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입니다. where by the “days of eternity” is meant the most ancient church; by “generation and generation,” the ancient churches; the “sons of man” are those who were in faith toward the Lord, which faith is the “number of the sons of Israel.

 

거듭남의 사람을 일컬어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예레미야를 보면 있습니다. That a regenerate person is called “man,” appears from Jeremiah:

 

23보라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에는 빛이 없으며 25내가 본즉 사람이 없으며 공중의 새가 다 날아갔으며 I beheld the earth, and lo it was empty and void; and the heavens, and they had no light; I beheld, and lo, no man, and all the birds of the heavens were fled, (렘4:23, 25)

 

’은 겉 사람을, ‘하늘’은 속 사람을, ‘사람’은 선에 속한 사랑을, ‘공중의 새’는 진리에 속한 이해력을 각각 상징합니다. where “earth” signifies the external man; “heaven” the internal; “man” the love of good; the “birds of the heavens” the understanding of truth.

 

[4] 다시 Again: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뿌릴 날이 이르리니 Behold the days come that I will sow the house of Israel, and the house of Judah, with the seed of man, and with the seed of beast, (렘31:27)

 

사람’은 속 사람을, ‘짐승’은 겉 사람을 상징합니다. where “man” signifies the internal man, “beast” the external.

 

이사야입니다. In Isaiah: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 Cease ye from man in whose nostrils is breath, for wherein is he to be accounted of, (사2:22)

 

인생’은 교회에 속한 사람을 상징합니다. where by “man” is signified a man of the church.

 

다시 Again: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Jehovah shall remove man far away, and many things shall be left in the midst of the land, (사6:12)

 

사람의 황폐함을 말씀하시면서, 거기에는 더 이상 선도 진리도 없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speaking of the vastation of man, in that there should no longer exist either good or truth.

 

다시 Again:

 

땅의 주민이 불타서 남은 자가 적도다 The inhabitants of the earth shall be burned, and man shall be left very little, (사24:6)

 

남은 ‘’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where “man” signifies those who have faith.

 

다시 Again:

 

8대로가 황폐하여 행인이 끊어지며 대적이 조약을 파하고 성읍들을 멸시하며 사람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9땅이 슬퍼하고 쇠잔하며 The paths have been desolated, the farer on the path hath ceased, he hath made vain the covenant, he hath despised the cities, he hath not regarded man, the earth mourneth and languisheth, (사33:8-9)

 

사람을 가리키는데, 사람은 히브리 말로 ‘에노스’입니다. denoting the man who in the Hebrew tongue is “Enosh.

 

다시 Again:

 

12내가 사람을 순금보다 희소하게 하며 인생을 오빌의 금보다 희귀하게 하리로다 13그러므로 하늘을 진동시키며 땅을 흔들어 그 자리에서 떠나게 하리니 I will make a man more precious than fine gold, and a man than the gold of Ophir; therefore I will shake the heavens, and the earth shall be moved out of her place, (사13:12-13)

 

첫 번째 나오는 사람에 대한 말은 ‘에노스’, 두 번째는 ‘아담’입니다. where the word for man in the first place is “Enosh,” and in the second is “Adam.

 

 

478. 그를 ‘아담’이라고 하는 이유는 히브리 말 ‘아담’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를 ‘아담’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정말 맞지가 않고, 대신 ‘사람’으로 부르는 게 맞습니다. 이것은 이 구절과 앞에 나온 구절들을 통해 분명한데요, 그는 단수가 아닌 복수로 거론된다는 점에서 그렇고, 또 이 용어는 남자와 여자 둘 다에 대한 서술, 둘 다 ‘사람’으로 부른다는 사실로도 그렇습니다. The reason why he is called “Adam” is that the Hebrew word “Adam” signifies “man”; but that he is never properly called “Adam” by name, but “man,” is very evident from this passage and also from former ones, in that [in some cases] he is not spoken of in the singular number, but in the plural, and also from the fact that the term is predicated of both the man and the woman, both together being called “man.

 

누구나 말씀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은, 이것은 둘 다를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다음과 같은 말씀들 때문인데요,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와, 1장에서도 같은 방식인데,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를 다스리게 하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That it is predicated of both, everyone may see from the words, for it is said, “He called their name man, in the day that they were created”; and in like manner in the first chapter: “Let us make man in our image, and let them have dominion over the fish of the sea.” (Gen. 1:26)

 

26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창1:26)

 

이런 이유로, 지금 다루고 있는 주제가 인류 최초의 사람이었던 어떤 한 사람의 창조가 아닌, 태고교회의 창조라는 사실 또한 보게 됩니다. Hence also it may appear that the subject treated of is not the creation of some one man who was the first of mankind, but the most ancient church.

 

 

479. ‘이름을 부르기’ 혹은 ‘이름으로 불리기’는 말씀에서는 앞서 보여드린 것처럼 관련 대상의 퀄리티에 대해 아는 것을 상징하는데, 이 경우에는 태고교회의 퀄러티와 관련된 것입니다. 태고교회의 퀄러티는, 사람이 흙에서 취함을 입었음을, 혹은 주님으로 말미암아 거듭났고, 여기서 ‘아담’이라는 말은 ‘’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그는 천적(天的, celestial)으로 변화되면서, 주님 사랑에서 비롯되는 신앙으로 가장 놀랍게 ‘사람’이 되는 그런 퀄러티입니다. By “calling a name,” or “calling by name,” is signified in the Word to know the quality of things, as was shown above, and in the present case it has relation to the quality of the most ancient church, denoting that man was taken from the ground, or regenerated by the Lord, for the word “Adam” means “ground”; and that afterwards when he was made celestial he became most eminently “man,” by virtue of faith originating in love to the Lord.

 

 

480. 그들이 창조되던 날, ‘사람’으로 불린 것은 1장 26절, 27절, 즉, 여섯째 날 끝에도 나옵니다. 이것이 안식일 저녁, 혹은 안식일이나 일곱째 날 시작에 대한 답입니다, 일곱째 날, 혹은 안식일은 위에서 보여드린 대로 천적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That they were called “man” in the day that they were created, appears also from the first chapter (Gen.1:26–27), that is, at the end of the sixth day, which answers to the evening of the sabbath, or when the sabbath or seventh day began; for the seventh day, or sabbath, is the celestial man, as was shown above.

 

26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1:26-27)

2021-06-30(D4)-매일예배(AC.477-480, 창5,2), '사람, 이름, 안식일'.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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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RXDwdHYiT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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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Male and female created he them, and blessed them, and called their name man, in the day when they were created. (창5:2)

 

 

475. ‘남자와 여자’라는 이 표현은, 신앙과 사랑 간 결혼을 상징하며,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심’이라는 이 표현은, 그들은 특별한 뜻으로는 ‘사람’[homo]이라고 하는 교회였음을 상징합니다. By “male and female,” is signified the marriage between faith and love; by “calling their name man,” is signified that they were the church, which, in an especial sense, is called “man” [homo].

 

 

476. ‘남자와 여자’라는 표현이 신앙과 사랑 간 결혼을 상징한다는 것은 앞에서 분명히 말씀드렸고, 증명도 했습니다. 거기서 보여드린 것은, 남성 혹은 남자[vir]는 이해력과 그에 속한 모든 것, 곧 신앙의 모든 것을 상징한다는 것과, 여성 혹은 여자는 의지와 의지에 속한 것들, 곧 사랑과 관련된 모든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그녀를 이름하여 이브라는, 생명을 상징하는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이 생명은 오직 사랑에만 속한 것입니다. That by “male and female” is signified the marriage between faith and love was declared and proved above, where it was shown that the male or man [vir] signifies the understanding and whatever belongs to it, consequently everything of faith; and that the female or woman signifies the will, or the things appertaining to the will, consequently whatever has relation to love; wherefore she was called Eve, a name signifying life, which is of love alone.

 

그래서 앞서 보여드린 대로, 여성은 또한 교회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남성은, 그 교회에 속한 사람[vir]을 상징합니다. By the female therefore is also signified the church, as has been previously shown; and by the male, a man [vir] of the church.

 

여기 주제는 교회가 영적이었을 때 상태, 그리고 나중에 천적으로 변화되어 간 상태에 관한 것이며, 그래서 창1:26-27처럼 ‘남자’가 ‘여자’보다 먼저 나오는 것입니다. The subject here is the state of the church when it was spiritual, and which was afterwards made celestial, wherefore “male” is mentioned before “female,” as also in chapter 1:26–27.

 

26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1:26-27)

 

창조하다’라는 표현은 또한 영적 인간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만 나중에 결혼이라는 효과가 나타나면, 즉, 교회가 천적 상태로 완성이 되면, 그때는 더 이상 ‘남자와 여자’가 아닌, ‘사람’, 곧 그들의 결혼으로 말미암아 둘 다를 상징하는 ‘사람’[homo]이라 하게 됩니다. 이것이 지금 보시듯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라는 표현이 이어지는 이유이며, 이것이 바로 교회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The expression to “create” also has reference to the spiritual man; but afterwards when the marriage has been effected, that is, when the church has been made celestial, it is not said “male and female,” but “man” [homo], who, by reason of their marriage, signifies both; wherefore it presently follows, “and he called their name man,” by which is signified the church.

 

 

477. ‘사람’이 태고교회임은 그동안 앞에서 종종 말씀드렸고, 또 보여도 드렸습니다. 그 이유는, 가장 높은 뜻으로는 홀로 주님 자신, 사람이시기 때문입니다. That “man” is the most ancient church has been often said and shown above; for in the supreme sense the Lord himself alone is man.

 

이런 이유, 곧, 사람이신 주님을 닮았다 하여 태고교회를 가리켜 사람이라 하며, 역시 같은 이유, 곧, 사람이신 주님의 이미지라 하여 나중에 영적 교회도 사람이라고 합니다. From this the celestial church is called man, as being a likeness, and from this the spiritual church is afterwards so called because it was an image.

2021-06-29(D3)-매일예배(AC.475-477, 창5,2), '남자와 여자'.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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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nPfFLm3a9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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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This is the book of the births of man. In the day that God created man, in the likeness of God made he him. (창5:1)

 

 

469. ‘계보를 적은 책’이라는 표현은 태고 교회에 속했던 사람들의 목록표를 말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라는 표현은 그의 영적 창조를,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라는 표현은 그의 천적 창조를 각각 상징하며, 이런 걸 볼 때, 이 구절은 태고 교회를 설명하는 구절입니다. The “book of the births” is an enumeration of those who were of the most ancient church; “in the day that God created man” denotes his being made spiritual; and “in the likeness of God made he him” signifies that he was made celestial: thus it is a description of the most ancient church.

 

 

470. ‘계보를 적은 책’(출생들에 관한 책)이 태고 교회에 속했던 사람들의 목록표라는 사실은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너무나 분명한데요, 이 5장에서 11장, 에벨의 때까지는 이름들이 특정 인물들(persons)을 상징하는 것이 절대 아닌, 실제적인 것들(things)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That the “book of the births” is an enumeration of those who were of the most ancient church is very evident from what follows, for from this to the eleventh chapter, that is, to the time of Eber, names never signify persons, but actual things.

 

태곳적 인류는 가족, 가문 및 민족으로 구별되었습니다. 하나의 가족은 남편과 아내, 그리고 자녀들 및 그들을 섬겼던 사람들로 구성되었고, 하나의 가문은 좀 더 크고 작은 가족들로 구성되는데, 멀리 떨어진 건 아니지만 함께 사는 것도 아닌, 그런 구성으로, 하나의 민족은 좀 더 많고 적은 가문으로 각각 구성되었습니다. In the most ancient time mankind were distinguished into houses, families, and nations; a house consisting of the husband and wife with their children, together with some of their family who served; a family, of a greater or lesser number of houses, that lived not far apart and yet not together; and a nation, of a larger or smaller number of families.

 

 

471. 그들이 가족, 가문 및 민족으로만 구별되며, 그렇게 자기들끼리 따로 지낸 이유는, 그렇게 해야 교회가 온전히 보존될 수 있었기 때문이며, 그렇게 해야 모든 가족과 가문이 그들의 어른 아래로 모이고, 그래야 사랑과 참된 예배가 보존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The reason why they dwelt thus alone by themselves, distinguished only into houses, families, and nations, was that by this means the church might be preserved entire, that all the houses and families might be dependent on their parent, and thereby remain in love and in true worship.

 

또한 인상적인 것은, 각 가족마다 다른 가족과 구별되는 특이한 천성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자녀들, 심지어 먼 후손까지도 그들의 부모 및 조상으로부터 어떤 특이한 천성과, 그들의 얼굴 생김새 및 다른 많은 특징들을 가지고 서로 구별될 수 있는 그런 특징적 캐릭터를 물려받는다는 것은 지금도 잘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It is to be remarked also that each house was of a peculiar genius, distinct from every other; for it is well known that children, and even remote descendants, derive from their parents a particular genius, and such marked characteristics that they can be distinguished by the face, and by many other peculiarities.

 

이렇게 거주함으로써 서로 뒤섞이는 대신 정확히 구별될 수 있도록, 주님은 이런 식의 거주 방식을 기뻐하셨습니다. Therefore, in order that there might not be a confounding, but an exact distinction, it pleased the Lord that they should dwell in this manner.

 

이렇게 교회는 주님의 왕국을 생생하게 나타낸 표상이었습니다. 주님의 왕국에서는 셀 수 없이 많은 소사이어티들이 있으며, 각각의 소사이어티는 그들의 사랑과 신앙에 따라 다른 모든 소사이어티와 구별되기 때문입니다. Thus the church was a living representative of the kingdom of the Lord; for in the Lord’s kingdom there are innumerable societies, each one distinct from every other, according to the differences of love and faith.

 

이것이 앞에서 관찰한 것처럼, ‘혼자 사는 것’(cf. AC.139, 창2:18)과, ‘장막에 거주함’(cf. AC.414, 창4:20)이 의미하는 것입니다. This, as observed above, is what is meant by “living alone,” and by “dwelling in tents.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창2:18)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창4:20)

 

또 같은 이유로, 주님은 유대 교회가 가족, 가문 및 민족으로 구별되며, 그래서 모두가 자기 친족 가운데서만 결혼하도록 명하시기를 기뻐하신 것입니다. 이에 관해서는, 주님의 신적 자비로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For the same reason also it pleased the Lord that the Jewish church should be distinguished into houses, families, and nations, and that everyone should contract marriage within his own family; but concerning this, of the Lord’s Divine mercy hereafter.

 

 

472.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라는 표현은 그가 영적으로 지음 받고 있음을,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라는 표현은 그가 천적으로 지음 받고 있음을 각각 상징합니다. 이 사실은 앞에서 말씀드리고 보여드린 내용을 보시면 나옵니다. That by the “day in which God created man” is signified his being made spiritual, and that by “God making him in his likeness” is signified his being made celestial, appears from what was said and shown above.

 

창조하다’(create)라는 표현은 새롭게 창조되고 있는 사람에게 잘 어울리는 표현이며, ‘짓다’(make)라는 말은 온전해져 가는 사람에게 잘 어울리는 표현입니다. 2장 말씀에서 보여드린 것처럼, ‘창조하기’(creating), ‘짓기’(forming) 및 ‘만들기’(making) 간 정확한 차이가 관찰되기 때문에, 거기서 영적 인간을 천적으로 변화시키신 것을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안식하셨다’(창2:2)고 하신 것입니다. 다른 구절들에서도 ‘창조하다’(create)는 영적 인간과, ‘짓다’(make), 즉, 온전하게 하다는 천적 인간과 연관되고 있습니다. (cf. AC.16, 88) The expression to “create” properly relates to man when he is being created anew, or regenerated; and the word “make,” when he is being perfected; wherefore in the Word there is an accurate distinction observed between “creating,” “forming,” and “making,” as was shown above in the second chapter, where it is said of the spiritual man made celestial that “God rested from all his work, which God created in making”; and in other passages also, to “create” relates to the spiritual man, and to “make,” that is, to perfect, to the celestial man. (See n. 16 and 88.)

 

 

473. ‘하나님의 모양’(likeness)은 천적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image)은 영적 인간임 또한 앞서 보여드렸습니다. (cf. 창1:26) That a “likeness of God” is a celestial man, and an “image of God,” a spiritual man, has also been previously shown.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창1:26)

 

형상’은 ‘모양’을 준비하는 것이며, ‘모양’은 실물과 똑같아 보이는 모방입니다. 천적 인간은 주님의 ‘모양’으로서, 주님에 의해 온전히 다스림을 받기 때문입니다. An “image” is preparatory to a “likeness,” and a “likeness” is a real replica, for a celestial man is entirely governed by the Lord, as his “likeness.

 

 

474. 이런 이유로, 여기서 다루어지고 있는 주제가 태고 교회의 출생 혹은 퍼져나감인 점을 볼 때, 이것은 영적 상태에서 천적 상태로 가는 첫 번째 묘사입니다. 퍼져나감이 여기서부터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Since therefore the subject here treated of is the birth or propagation of the most ancient church, this is first described as coming from a spiritual to a celestial state, for the propagations follow from this.

2021-06-28(D2)-매일예배(AC.469-474, 창5,1), '창조(create)와 지음(make), 모양(likeness)과 형상(image)'.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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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MepCkxlkXx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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