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2
1484a. 16절, 이에 바로가 그로 말미암아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었더라 Verse 16. And he did well unto Abram for her sake; and he had flock and herd, and he-asses and menservants, and maidservants and she-asses, and camels.
‘이에 바로가 그로 말미암아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주님의 어린 시절, 기억-지식이 증가하였음을,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었더라’, 일반적으로 기억-지식에 속하는 모든 것을 각각 의미합니다. “He did well unto Abram for her sake” signifies that memory-knowledges were multiplied with the Lord; “and he had flock and herd, and he-asses and menservants, and maidservants and she-asses, and camels” signifies all the things in general that belong to memory-knowledges.
1485. 이에 바로가 그로 말미암아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And he did well unto Abram for her sake.
이 말씀이 주님의 어린 시절, 기억-지식이 증가하였음이라는 것은, ‘후대하다’의 의미가 풍성해짐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분명합니다. That this signifies that memory-knowledges were multiplied with the Lord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doing well unto” as being to enrich.
이것은 어린 시절 주님의 모습인 아브람을 후대한 ‘바로’, 곧 기억-지식에 관해, 그리고 이것은 또 사래, 즉 주님이 원하셨던 지적 진리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This is said of the memory-knowledge that is signified by “Pharaoh,” that it did well unto Abram, that is to the Lord when a child; and this for her sake, that is, for the sake of the intellectual truth that he desired.
이런 풍성함이 올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진리에 대한 욕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It was this desire for truth from which the enriching came.
1486.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었더라 And he had flock and herd, and he-asses and menservants, and maidservants and she-asses, and camels.
이 표현이 일반적으로 기억-지식에 속하는 모든 것을 의미함은, 이것들이 말씀에 나올 때의 의미들을 생각하면 분명합니다. That these words signify all things in general that belong to memory knowledges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all these things in the Word.
하지만 이 모든 걸 하나하나 자세히, 즉, ‘양과 소’, ‘수나귀와 남종’, ‘여종과 암나귀’ 및 ‘낙타’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보여드리는 건 너무 지루할 것 같습니다. But it would be too tedious to show what is signified by each in particular, as what by the “flock and herd,” the “he-asses and menservants,” the “maidservants and she-asses,” and the “camels.”
각각은 그 나름의 고유한 의미들이 있습니다. Each has its own peculiar signification.
일반적으로 이들은 지식에 관한 기억-지식 및 기억-지식에 속한 모든 걸 의미합니다. In general they signify all things that belong to the memory-knowledge of knowledges, and to memory-knowledges.
그 각각을 좀 보면, 기억-지식은 ‘수나귀와 남종’으로, 그 즐거움은 ‘여종과 암나귀’로, ‘낙타’는 일반적으로 섬기는 일을, ‘양과 소’는 소유물을 각각 의미하는 등, 말씀 전반에 걸쳐 그렇습니다. Regarded in themselves, memory-knowledges are “he-asses and menservants”; their pleasures are “maid-servants and she-asses”; “camels” are general things of service; “flock and herd” are possessions; and so in the Word throughout.
겉 사람 안에 있는 모든 건 그게 무엇이든 오직 섬김에 관한, 즉, 속 사람을 섬기기 위한 것입니다. All things whatever that are in the external man, are nothing but things of service, that is, they are for the service of the internal man.
그래서 그것은 모두 기억-지식에 관한 것이며, 기억-지식은 오직 겉 사람에게 속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이 기억-지식은 몸의 오감을 통해 땅과 세상에서 애써 모은 것들이기 때문이며, 그렇게 모은 이유는, 이 기억-지식이 속 사람이나 합리적인 사람을 섬길 수 있도록, 그리고 다시 영적인 사람을, 그리고 다시 천적인 사람, 최종적으로는 주님을 섬기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So it is with all memory-knowledges, which belong solely to the external man; for they are procured from earthly and worldly things by means of sensuous impressions, in order that they may serve the interior or rational man, and this the spiritual man, this the celestial, and this the Lord.
그렇게 이 지식은 그 질서대로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마치 더 외적인 것일수록 더 내적인 것에 종속된 것처럼 말이지요. 그리고 그렇게 일반적으로나 구체적으로나 모든 것은, 그게 무엇이든 그 질서에 종속되어 결국 주님을 향합니다. Thus are they subordinated one to another, as are the more external things to the more internal, in their order; and thus all things whatever, both in general and in particular, are, in their order, subordinated to the Lord.
그래서 기억-지식은 가장 낮고, 가장 바깥에 있는 것이며, 그 순서에 따라 거기는 그거보다는 더 내적인 것의 종점입니다. 기억-지식의 위치가 가장 낮고, 가장 바깥이기 때문에, 기억-지식은 봉사와 섬김에 아주 잘 어울리는 것이지 싶습니다. Memory-knowledges are therefore the lowest and outermost things, in which are terminated in their order the things that are more interior; and because they are the lowest and outermost things, they must be pre-eminently things of service.
누구나 다 이 기억-지식의 쓰임새가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하거나 자문을 해보면 이 기억-지식이 왜 섬기는 일에 사용되는지를 알 수 있을 겁니다. 이 지식의 쓰임새를 깨닫게 되면, 그 쓰임새의 퀄러티 또한 이해할 수 있습니다. Everyone may know for what such knowledges may be serviceable, if he reflects or inquires in himself for what use they are; and when he is thus reflecting upon their use, he can also apprehend the quality of the use.
모든 기억-지식은 나름 어떤 쓰임새를 위해 존재해야 하며, 바로 이것이 그것의 존재 이유입니다. Every memory-knowledge must be for the sake of some use, and this is its service.
※ 이상으로, 오늘 본문 16절과 그 내적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본문)
이에 바로가 그로 말미암아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었더라
(속뜻)
어린 시절 주님은 천적 진리를 얻기 위해 먼저 자연적, 지적 진리를 구하셨고, 그래서 관련된 모든 것, 곧 기억-지식과 그 즐거움, 그리고 그 지식의 쓰임새 등으로 풍성해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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