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뜻

THE INTERNAL SENSE

 

 

241. 태고적 사람들은, 천적인간들이었는데요, 그들은 다음과 같은 특별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땅 위 온 세상 모든 사물을 실제로 두 눈으로 보면서도, 그들은 그 사물들이 상징하고 표현하는 하늘의 것, 주님의 것들을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The most ancient people, being celestial men, were so constituted that every object they beheld in the world or upon the face of the earth, they indeed saw, but they thought about the heavenly and Divine things the objects signified or represented.

 

그들의 시력은 그저 돕는 도구였을뿐이었고, 그래서 그 결과는 그들의 말이었습니다. Their sight was merely an instrumental agency, and so consequently was their speech.

 

누구나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이런 걸 알 수 있는데요, 만일 누가 어떤 사람이 하는 말에 깊이 동의가 되면, 그는 실제로 그 말을 듣고 있으면서도 마치 말보다는 말에 담긴 취지만 취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Anyone may know how this was from his own experience, for if he attends closely to the meaning of a speaker’s words, he does indeed hear the words, but is as if he did not hear them, taking in only the sense;

 

그리고 좀 더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심지어 그 말의 뜻보다 보편적인 의미에 더 주의를 기울이기 때문입니다. and one who thinks more deeply does not attend even to the sense of the words, but to a more universal sense.

 

그러나 여기서 다루고 있는 이 후손들은 그들의 선조들하고는 달랐습니다. 그들은 땅 위 온 세상 모든 사물들을 볼 때, 그것들을 사랑했고, 그들의 마음은 거기에 사로잡혔으며, 그것들에 대해서 생각했고, 그리고 그것들을 가지고 하늘과 주님의 것들을 생각했습니다. But the posterities that are here treated of were not like their fathers, for when they beheld the objects in the world and on the face of the earth, as they loved them, their minds cleaved to them, and they thought about them, and from them about things heavenly and Divine.

 

그렇게 해서 이들에게는 감각적인 것이 원리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의 선조들에게는 도구였던 것들이 말입니다. Thus with them what is sensuous began to be the principal, and not as with their fathers the instrumental.

 

이처럼 세상에 속한 것, 땅에 속한 것이 원리가 되면, 사람들은 하늘에 속한 것들을 이 원리를 가지고 추론하며, 그래서 그렇게 자신들을 소경으로 만들어 갑니다. And when that which is of the world and of the earth becomes the principal, then men reason from this about the things of heaven, and so blind themselves.

 

이런 게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것 역시, 각자의 경험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How this is may also be known by anyone from his own experience;

 

어떤 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 있으면서 정작 그 말의 뜻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은 그 말에서 건지는 게 거의 없고, 더 나아가 보편적인 의미는 더 말할 것도 없으며, 때로는 사람이 하는 모든 말을 단어 하나 가지고, 심지어 문법적 특이점 하나를 가지고 일일이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for he who attends to the words of a speaker, and not to the sense of the words, takes in but little of the sense, and still less of the universal import of the sense, and sometimes judges of all that a man says from a single word, or even from a grammatical peculiarity.

 

2021-04-22(D5)-창세기(창3,14-19, AC.241), '감각의 원리로 소경이 된 사람들'.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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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And Jehovah God said unto the serpent, Because thou hast done this, thou art cursed above every beast, and above every wild animal of the field; upon thy belly shalt thou go, and dust shalt thou eat all the days of thy life. 15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And I will put enmity between thee and the woman, and between thy seed and her seed; he shall trample upon thy head, and thou shalt bruise his heel. 16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And unto the woman he said, I will greatly multiply thy sorrow and thy conception; in sorrow thou shalt bring forth sons, and thine obedience shall be to thy man [vir], and he shall rule over thee. 17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And unto the man he said, Because thou hast hearkened unto the voice of thy wife, and hast eaten of the tree of which I commanded thee, saying, Thou shalt not eat of it; cursed is the ground for thy sake; in great sorrow shalt thou eat of it all the days of thy life. 18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And the thorn and the thistle shall it bring forth unto thee, and thou shalt eat the herb of the field. 19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In the sweat of thy face shalt thou eat bread, till thou return unto the ground; for out of it wast thou taken; for dust thou art, and unto dust shalt thou return. (창3:14-19)

 

 

234. 결국은 홍수를 만나게 될 태고교회의 그 다음 상태가 여기 기술됩니다. The subsequent state of the church down to the flood is here described;

 

그리고 그때 교회는 자기 자신을 끔찍하게 파괴하였기 때문에, 주님은 친히 세상에 오셔서 인류를 구원하시겠다는 예언을 주십니다. and as at that time the church utterly destroyed itself, it is foretold that the Lord would come into the world and save the human race.

 

 

235. 감각들을 가지고는 파악할 수가 없는 것은 믿으려고를 하지 않는 감각 파트, 이게 바로 ‘’인데요, 이런 태도 때문에 저주를 자초했고, 지옥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Being unwilling to believe anything that could not be apprehended by the senses, the sensuous part which is the “serpent” cursed itself, and became infernal. (창3:14)

 

 

236. 이런 이유로, 온 인류가 지옥을 향하여 달려들어가게 되는 걸 막기 위해 주님은 친히 세상에 오시겠다 약속하셨습니다. Therefore to prevent all mankind from rushing into hell, the Lord promised that he would come into the world. (창3:15)

 

 

237. 교회가 ‘여자’라는 표현으로 더 자세히 설명되고 있는데요, 이 교회는 자아 혹은 본성을 너무 사랑해서 더 이상 진리를 파악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비록 이것들을 '다스리도록' 이성이 그들에게 주어졌어도 말입니다. The church is further described by the “woman,” which so loved self or the own as to be no longer capable of apprehending truth, although a rational was given them that should “rule”. (창3:16)

 

 

238. 그 다음은 이성의 퀄러티 설명입니다. 여기 보면, 이성은 동의했고, 저주를 자초하였으며, 결국 지옥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이성 대신 추론만 남게 되었습니다. The quality of the rational is then described, in that it consented, and thus cursed itself, and became infernal, so that reason no longer remained, but ratiocination. (창3:17)

 

 

239. 저주와 황폐함, 그리고 그들의 정처없이 떠돌게 된 본성에 관한 설명입니다. The curse and vastation are described, and also their ferine nature. (창3:18)

 

 

240. 다음은, 신앙과 사랑의 모든 것을 그들이 아주 극도로 싫어하고 혐오함을, Next, their aversion to everything of faith and love;

 

그리고 그런 사람이 됨으로써 그들은 더 이상 사람이라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설명입니다. and that thus from being man they became not men. (창3:19)

 

2021-04-21(D4)-창세기(창3,14-19, AC.234-240), '창3,14-19 브리핑'.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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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29-233

 

11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And he said, Who told thee that thou wast naked? Hast thou eaten of the tree whereof I commanded thee that thou shouldest not eat? 12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And the man said, The woman whom thou gavest to be with me, she gave me of the tree, and I did eat. 13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And Jehovah God said unto the woman, Why hast thou done this? And the woman said, The serpent beguiled me, and I did eat. (창3:11-13)

 

 

229. 이 말씀들이 상징하는 바는 앞서 설명되어온 내용으로 분명한데요, 즉, 사람의 합리적인 면이 오운 때문에 속아 넘어가는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오운은 자신한테 무척 소중해서, (이걸 가리켜, 자아 사랑이라 하지요.) 사람은 자기가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면 더 이상 아무것도 안 믿을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The signification of these words is evident from what has been explained before, namely, that the rational of man suffered itself to be deceived by its own, because this was dear to him (that is, by the love of self), so that he believed nothing but what he could see and feel.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는 사실은, 여호와 하나님은 뱀하고는 말씀하지 않으셨다는 것과, 실제로 뱀이라는 건 없었고, ‘’으로 상징된 감각 파트를 특정하는 것조차 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Everyone can see that Jehovah God did not speak to a serpent, and indeed that there was no serpent, neither did he address the sensuous part that is signified by the “serpent”;

 

또 이 말씀들은 어떤 다른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알 수 있는데요, 그것은, 자신들이 감각 때문에 속았다는 걸 그들이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들은 자기들이 주님과 주님 신앙에 관해 들어온 것들을, 믿기 전에 먼저 좀 확인했으면 했는데요, 바로 이런 것이 자아 사랑입니다. but that these words involve a different meaning, namely, that they perceived themselves to be deluded by the senses, and yet, in consequence of self-love, were desirous of ascertaining the truth of what they had heard concerning the Lord, and concerning faith in him, before they believed it.

 

 

230. 이들 후손의 지배적인 악은 자아 사랑이었습니다. 동시에 세상 사랑은 오늘날 만큼은 아니었습니다. The ruling evil of this posterity was the love of self, without their having at the same time so much of the love of the world as exists at the present day;

 

그들이 그들 소유의 가정과 권속들 내에서 지냈기 때문이며, 부를 축적하고자 하는 열망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for they dwelt within their own households and families, and had no desire to accumulate wealth.

 

 

231. 홍수 전 있었던 태고 교회의 악, 뿐만 아니라, 홍수 후인 고대 교회의 악, 그리고 또한 유대 교회의 악, 계속해서 새 교회, 곧 주님 오신 후 시작된 이방 교회의 악, 그리고 오늘날 현 교회의 악까지, 이 모든 악은 주님과 주님의 말씀 대신 자신과 자신의 감각을 믿었고, 그리고 지금도 믿고 있는 것입니다. The evil of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existed before the flood, as well as that of the ancient church after the flood, and also that of the Jewish church, and subsequently the evil of the new church, or church of the Gentiles, after the coming of the Lord, and also that of the church of the present day, was and is that they do not believe the Lord or the Word, but themselves and their own senses.

 

이런 이유로 신앙이라는 게 사라졌고, 신앙이 사라진 곳에 이웃 사랑도 사라진 것이며, 결과적으로 모든 것이 악과 거짓이 된 것입니다. Hence there is no faith, and where there is no faith there is no love of the neighbor, consequently all is false and evil.

 

 

232. 하지만 작금의 현실은, 이전 시대에 비해 상황이 훨씬 더 나빠졌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고대인에게는 알려지지 않았던 어떤 새로운 기억-지식들 때문에 감각들을 더 이상 쉽사리 믿지 않게 된 것인데요, 이것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형언할 수 없는 어두움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At this day, however, it is much worse than in former times, because men can now confirm the incredulity of the senses by memory-knowledges unknown to the ancients, and this has given birth to an indescribable degree of darkness.

 

만약 사람들이 이 어두움의 이 엄청난 실상을 알 수 있다면 그는 아마 기절할 만큼 놀라 자빠질 것입니다. If men knew how great is the darkness from this cause they would be astounded.

 

 

233. 기억-지식들을 가지고 신앙의 신비들을 탐험하겠다고 하는 것은 마치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겠다는 것만큼이나, 그리고 갈비뼈 하나가 가슴과 심장의 극히 미세한 근육들을 통제하겠다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한 일입니다. To explore the mysteries of faith by means of memory-knowledges is as impossible as it is for a camel to go through the eye of a needle, or for a rib to govern the finest fibrils of the chest and of the heart.

 

정말 엄청난 것, 네, 정말 훨씬 더 엄청난 것은 영적, 천적인 일에 우리의 감각들 및 기억-지식을 적용하는 것입니다. So gross, yea, much more so, is that which pertains to our senses and memory-knowledge relatively to what is spiritual and celestial.

 

셀 수 없이 많은, 자연의 비밀들을 조사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사실은 거의 단 한 가지도 발견하기 어렵고, 또 잘 알려진 대로, 조사하는 중에 그만 오류에 빠지곤 합니다. He who would investigate the hidden things of nature, which are innumerable, discovers scarcely one, and while investigating them falls into errors, as is well known.

 

영적, 천적 삶 가운데 감추어진 진리들을 조사하는 경우는 더합니다. 그런 삶에는 자연에서는 보이지도 않는, 하찮아 보이는 것 하나 안에도 얼마나 무한한 신비들이 존재하는지 모릅니다! How much more likely is this to be the case while investigating the hidden truths of spiritual and celestial life, where myriads of mysteries exist for one that is invisible in nature!

 

[2] 한 가지 예를 들어 살펴보면은, As an illustration take this single example:

 

사람은 혼자서는 악을 행하고, 주님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of himself man cannot but do what is evil, and turn away from the Lord.

 

하지만 사람이 그러는 게 아니라 그와 함께 있는 악한 영들이 그러는 것이며, Yet man does not do these things, but the evil spirits who are with him.

 

악한 영들 역시 그들 자신이 그러는 게 아니라 그들이 그동안 자신의 오운으로 만들어 온 악 자체가 그러는 것입니다. Nor do these evil spirits do them, but the evil itself which they have made their own.

 

그럼에도불구하고, 사람이 악을 행하여 자신을 주님으로부터 돌아서게 하는 것이며, 사람이 죄를 지은 것입니다. Nevertheless man does evil and turns himself away from the Lord, and is in fault;

 

그러면서도 그는 오직 주님으로 말미암아 살아갑니다. and yet he lives only from the Lord.

 

또 한편으로, 사람은 혼자서는 선을 행할 가능성도, 주님을 향할 수도 없지만, 천사들의 도움을 받아 하게 됩니다. So on the other hand, of himself man cannot possibly do what is good, and turn to the Lord, but this is done by the angels.

 

그런데 이 역시 천사들이 하는 게 아니라, 사실은 주님 홀로 하시는 것입니다. Nor can the angels do it, but the Lord alone.

 

그러면서도 마치 사람이 혼자 알아서 선도 행하고, 주님을 향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And yet man is able as of himself to do what is good, and to turn himself to the Lord.

 

이런 사실들은 우리가 가진 감각들이나 기억-지식, 철학 같은 걸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런 걸 가지고 누구더러 컨설팅을 좀 해달라 하면, 이 모든 게 진리임에도 불구하고 분명 모조리 부정될 것입니다. These facts can never be apprehended by our senses, memory-knowledge, and philosophy, but if these are consulted will be denied in spite of their truth.

 

모든 게 다 그렇듯 말입니다. And it is the same all through.

 

[3] 지금까지 들으신 내용으로부터 분명한 사실은, 믿음의 일들을 감각적인 것들과 기억-지식들을 가지고 찾아보겠다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자신들을 의심뿐 아니라 부인, 곧 흑암 가운데 고꾸라지게 하며, 그 결과 결국엔 모든 탐욕 한 가운데 빠지게 한다는 것입니다. From what has been said it is evident that those who consult sensuous things and memory-knowledges in matters of belief, plunge themselves not only into doubt, but also into denial, that is, into thick darkness, and consequently into all cupidities.

 

그 이유는, 그들이 거짓된 것을 믿고, 거짓된 것을 행하기 때문이며, For as they believe what is false, they also do what is false.

 

또 그들은 영적이고 천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그래서 이 몸, 이 육체 그리고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일들만 존재하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And as they believe that what is spiritual and celestial has no existence, so they believe that there is nothing else but what is of the body and the world.

 

이렇게 저들은 자아와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을 사랑하며, 그래서 이런 식으로 모든 탐욕을 행하고, 악들은 거짓된 것으로부터 샘처럼 솟아나는 것입니다. And so they love all that belongs to self and the world, and in this way do cupidities and evils spring from what is false.

 

2021-04-20(D3)-창세기(창3,11-13, AC.229-233), '자아 사랑, 세상 사랑의 비참'.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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