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07-210

 

6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And the woman saw that the tree was good for food, and that it was pleasant to the eyes, and a tree to be desired to give intelligence, and she took of the fruit thereof and did eat, and she gave also to her man [vir] with her, and he did eat. (창3:6)

 

 

207. ‘먹음직도 하고’는 탐욕을 상징합니다. Good for food” signifies cupidity;

 

보암직도 하고’는 판타지를, pleasant to the eyes,” fantasy;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은 쾌락을 상징합니다. and “desirable to give intelligence,” pleasure:

 

이것들은 다 오운, 곧 ‘여자’에 속한 것들입니다. these are of the own, or “woman”;

 

그도 먹은지라’는 래셔널의 동의를 상징합니다.(n. 265) by the “husband eating” is signified the consent of the rational (n. 265).

 

 

265. ‘남편’이 래셔널을 의미한다는 것이 이 장 6절에 보면 있는데요, 거기에 보면,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즉, 그의 동의를 의미합니다. That by “man” [vir] is signified the rational appears from verse 6 of this chapter, in that the woman gave to her man with her, and he did eat, by which is meant his consent;

 

같은 내용이 158번 글, 사람에 관한 내용을 보아도 분명한데요, 거기 보면, 사람은 지혜와 지성을 가진 존재입니다. and the same is also evident from what was said of the man in n. 158, where by him is meant one who is wise and intelligent.

 

하지만 여기 나오는 ‘사람’은 래셔널입니다. 지식의 나무를 먹음으로써 지혜와 지성이 파괴되었고, 그 결과, 더 이상 아무 것도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래셔널은 지성을 모방하는 것이요, 말하자면, 지성의 겉모습이기 때문입니다. Here however “man” denotes the rational, because in consequence of the destruction of wisdom and intelligence by eating of the tree of knowledge, nothing else was left, for the rational is imitative of intelligence, being as it were its semblance.

 

 

158. 사람(man, 아담)이 내적 인간, 같은 말이지만, 지성과 지혜의 사람을 상징한다는 것은 이사야를 보면 분명합니다. That man signifies the internal man, or what is the same, one who is intelligent and wise, is plain from Isaiah:

 

내가 본즉 한 사람(vir)도 없으며 내가 물어도 그들 가운데에 한 말도 대답할 조언자가 없도다 I behold, and there is no man [vir], even among them, and there is no counselor (사41:28)

 

지혜와 지성을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뜻입니다. meaning none wise and intelligent.

 

※ 위 본문의 ‘사람’은 라틴어로 ‘비르(vir)’입니다. 라틴어에 ‘사람’이라는 뜻의 ‘호모(homo)’라는 말이 따로 있지만, ‘호모’에 비해 ‘비르’는 지혜와 지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예레미야도 보면은, Also in Jeremiah: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Run ye to and fro through the streets of Jerusalem, and see if ye can find a man, if there be any executing judgment, seeking the truth (렘5:1)

 

여기 ‘정의를 행하는 자’는 지혜로운 사람을, One who executes judgment” means a wise person;

 

진리를 구하는 자’는 지성인을 각각 의미합니다. and “one who seeks the truth,” an intelligent one.

 

 

208. 이것이 태고교회 네 번째 후손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들은 자아를 사랑함으로써 스스로를 유혹에 빠트려 고통을 겪게 했고, 감각과 기억-지식들을 가지고 자기들이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믿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This was the fourth posterity of the most ancient church, who suffered themselves to be seduced by self-love [amore proprio] and were unwilling to believe what was revealed, unless they saw it confirmed by the things of sense and of memory-knowledge.

 

 

209. 여기 사용된 표현들, 즉,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같은 표현들은 저 태고 때 살던 사람들의 지니어스에 채택된 그런 표현들인데요, 특별히 그들의 의지를 레퍼런스해야 합니다. 그들의 악이 그 의지로부터 물줄기처럼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The expressions here employed, as that “the tree was good for food, pleasant to the eyes, and desirable for giving intelligence,” are such as were adapted to the genius of those who lived in that most ancient time, having especial reference to the will, because their evils streamed out from the will.

 

말씀에 홍수 후를 살았던 사람들이 나오는 데를 보면, 위 표현들은 의지보다는 이해력에 관련되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Where the Word treats of the people who lived after the flood, such expressions are used as relate not so much to the will as to the understanding;

 

태고인들은 선에서 진리를 얻었지만, 홍수 후 사람들은 진리에서 선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for the most ancient people had truth from good, but those who lived after the flood had good from truth.

 

 

210. 사람의 오운이라는 게 무엇인지를 이런 식으로 설명할 수도 있겠습니다. What man’s own is may be stated in this way.

 

사람의 오운은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으로부터, 그리고 주님과 말씀 대신 자기를 믿는 믿음으로부터, 또한 감각적으로, 그리고 기억-지식을 가지고 파악할 수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으로부터 샘솟는 모든 악과 거짓입니다. Man’s own is all the evil and falsity that springs from the love of self and of the world, and from not believing in the Lord or the Word but in self, and from supposing that what cannot be apprehended sensuously and by means of memory-knowledge [sensualiter et scientifice] is nothing.

 

이런 식으로 사람들은 그저 악하고 거짓되어 갑니다. 그리고 그래서 모든 걸 거꾸로 봅니다. In this way men become mere evil and falsity, and therefore regard all things pervertedly;

 

악한 일을 그들은 선하다 하고, 선한 일을 악하다 합니다. things that are evil they see as good, and things that are good as evil;

 

거짓된 일을 그들은 참이라 하고, 참된 일을 거짓이라 합니다. things that are false they see as true, and things that are true as false;

 

분명히 있는 걸 그들은 없다 하고, 없는 걸 그들은 모든 것이라 합니다. things that really exist they suppose to be nothing, and things that are nothing they suppose to be everything.

 

증오를 사랑이라 하고, 어두움을 빛이라 하며, 죽음을 삶이라 합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They call hatred love, darkness light, death life, and the converse.

 

말씀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다리를 전다’, ‘앞을 못 본다’ 합니다. In the Word, such men are called the “lame” and the “blind.

 

이런 게 사람의 오운입니다. 그 자체로 지옥이요, 저주받은 것이지요. Such then is the own of man, which in itself is infernal and accursed.

 

2021-04-14(D4)-창세기(창3,6, AC.207-210), '먹음직, 보암직, 탐스러운, man’s own'.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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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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