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And Jehovah God said unto the serpent, Because thou hast done this, thou art cursed above every beast, and above every wild animal of the field; upon thy belly shalt thou go, and dust shalt thou eat all the days of thy life.(창3:14)
242.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로 상징되는 것은, 자기들의 감각 파트가 바로 (자기들의 추락의) 원인이었음을 그들이 지각하였다는 것입니다.By “Jehovah God said unto the serpent” is signified that they perceived their sensuous part to be the cause [of their fall].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가 상징하는 것은, 그들의 감각 파트가 자신을 하늘의 일로부터 고개를 돌려 육체의 일을 향하게 하였고, 결국 저주를 자초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The serpent cursed above every beast and above every wild animal of the field” signifies that their sensuous part averted itself from that which is heavenly, and turned itself to that which is of the body, and thus cursed itself;
여기 ‘가축’과 ‘들의 짐승’은 앞에서처럼 어펙션들을 상징합니다.the “beast,” and the “wild animal of the field” here signify affections, as before.
‘배로 다니고’가 상징하는 것은, 그들의 감각 파트는 더 이상 하늘의 일들을 올려다 볼 수 없고, 대신 육체와 땅의 일들을 향해서 내려다만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The “serpent going upon its belly” signifies that their sensuous part could no longer look upward to the things of heaven, but only downward, to those of the body and the earth.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가 상징하는 것은, 그들의 감각 파트는 오직 육체와 땅에 속한 것들로만 살아가는, 다시 말해서, 지옥을 경험하는 그런 것이 되었다는 것입니다.Its “eating dust all the days of its life” signifies that their sensuous part became such that it could not live from anything but that which is of the body and the earth, that is to say, it became infernal.
243. 천적 인간이었던 태고인들에게 있어, 몸과 관련된 감각적인 것들은 그들의 속 사람을 따르고 순종하는 그런 캐릭터들이었고, 심지어 그들은 그런 것에는 아예 관심도 갖지 않았습니다.In the most ancient celestial men the sensuous things of the body were of such a character as to be compliant and subservient to their internal man, and beyond this they did not care for them.
그러나 그들이 자신들을 사랑하기 시작하고나서부터 그들은 감각에 관한 것들을 속사람보다 앞세웠고, 그러더니 그렇게 그것들은 분리되고, 육체가 되었으며, 그렇게 저주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But after they had begun to love themselves, they set the things of sense before the internal man, and therefore those things were separated, became corporeal, and so were condemned.
24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라는 표현은, 앞서 밝힌 대로, 그들이 자기들의 감각 파트가 자기들의 추락의 원인임을 깨달았다는 상징으로, 여기에 대해서는 뭐, 더 설명할 게 없지 싶습니다.Having before shown that by “Jehovah God speaking to the serpent” is signified their perceiving the sensuous part to be the cause of their fall, no more need be said in regard to these words.
245.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가 상징하는 것은, 그들의 감각 파트가 자신을 하늘의 일로부터 고개를 돌려 육체의 일을 향하게 하였고, 결국 저주를 자초하게 하였다라는 것임은 말씀의 속뜻을 보면 명료해질 것입니다.That “he said to the serpent, thou art cursed above every beast, and above every wild animal of the field” signifies that the sensuous part averted itself from that which is heavenly, turned itself to that which is of the body, and thus cursed itself, may be clearly shown from the internal sense of the Word.
여호와 하나님, 곧 주님은 결코 누구를 저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Jehovah God or the Lord never curses anyone.
주님은 절대로 누구에게 화를 내시거나, 절대로 누구를 시험하시거나, 절대로 누구를 벌하시거나, 절대로, 절대로 누구를 저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He is never angry with anyone, never leads anyone into temptation, never punishes anyone, and still less does he curse anyone.
이 모든 것은 지옥의 영들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은 결코 무슨 자비나 평화, 선한 의도 등에서 나오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All this is done by the infernal crew, for such things can never proceed from the fountain of mercy, peace, and goodness.
이 말씀을 비롯, 성경의 여러 다른 데들에서 위와 같은 표현들, 곧 여호와 하나님이 얼굴을 돌리시고, 화를 내시며, 벌하시고, 시험하신다고, 뿐만 아니라 죽이시고, 심지어 저주하신다는 표현들이 기록되어 있는 이유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 온 우주 안 모든 것을 다스리시고, 모든 것을 정하시는 분, 심지어 악 자체는 물론, 형벌, 시험들까지도 모두 다 다스리시는 분이 바로 주님이심을 믿을 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The reason of its being said, both here and in other parts of the Word, that Jehovah God not only turns away his face, is angry, punishes, and tempts, but also kills and even curses, is that men may believe that the Lord governs and disposes all and every thing in the universe, even evil itself, punishments, and temptations;
또 그들이 이런 가장 보편적인 생각을 받아들였을 때, 나중에 배울 수 있게 하려는 것인데요, 주님이 어떻게 이 모든 것을 다스리시고 역사하시는지를, 형벌이나 시험 같은 악을 돌이켜 선이 되게 하심으로써 말이지요.and when they have received this most general idea, may afterwards learn how he governs and disposes all things by turning the evil of punishment and of temptation into good.
말씀을 가르칠 때와 배울 때, 이런 가장 보편적인 진리들이 반드시 가장 먼저 나와야 합니다.In teaching and learning the Word, the most general truths must come first;
그리고 이런 이유로, 문자의 뜻이 이런 일들로 가득한 것입니다.and therefore the literal sense is full of such things.
246. ‘가축과 들의 짐승’이 어펙션을 상징한다는 것은 앞서 그것을 다룬 글들인 45번, 46번 글과, 거기에 주님의 허락으로 추가하는 시편의 다음 구절을 보면 분명합니다. That the “beast and the wild animal of the field” signify affections is evident from what was previously said concerning them (n. 45–46), to which it is permitted to add the following passage from David:
9하나님이여 주께서 흡족한 비를 보내사 주의 기업이 곤핍할 때에 주께서 그것을 견고하게 하셨고 10주의 회중을 그 가운데에 살게 하셨나이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가난한 자를 위하여 주의 은택을 준비하셨나이다 Thou, O God, dost send the rain of thy kindnesses; thou confirmest thy laboring inheritance; thy wild animal shall dwell therein, (시68:9-10)
여기서도 ‘주의 회중’, 곧 ‘들짐승’은 선한 애정을 가리킵니다. ‘주의 회중을 그 가운데에 살게 하셨나이다’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where also “wild animal” denotes the affection of good, because it is said that it shall “dwell in the inheritance of God.”
창세기 1장 24절, 25절에서는 ‘가축과 땅의 짐승’이라 하신 반면, 여기와 또 창세기 2장 19절, 20절에서는 ‘가축과 들의 짐승’으로 언급하시는 이유는, 현 본문 구절은 교회 혹은 거듭난 사람을 다루고 있는 반면, 창세기 1장은 아직은 교회가 아닌, 혹은 이제 막 거듭남의 과정을 시작하려는 사람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The reason why here, and also in chapter 2:19–20, the “beast and the wild animal of the field” are mentioned, while in chapter 1:24–25, the “beast and the wild animal of the earth” are named, is that the present passage treats of the church or regenerated man, whereas the first chapter related to what was as yet not a church, or to man about to become regenerate;
※ 창2:19-20, 창1:24-25
19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And Jehovah God formed out of the ground every beast of the field, and every fowl of the heavens, and brought it to the man to see what he would call it; and whatsoever the man called every living soul, that was the name thereof.20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And the man gave names to every beast, and to the fowl of the heavens, and to every wild animal of the field; but for the man there was not found a help as with him. (창2:19-20)
24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And God said, Let the earth bring forth the living soul after its kind; the beast, and the thing moving itself, and the wild animal of the earth, after its kind; and it was so. 25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And God made the wild animal of the earth after its kind, and the beast after its kind, and everything that creepeth on the ground after its kind; and God saw that it was good. (창1:24-25)
이 ‘들’이라는 말은 교회, 혹은 거듭남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for the word “field” is applied to the church, or to the regenerate.
247. ‘배로 다니고’가 가리키는 것이, 그들의 감각 파트는 더 이상 하늘의 일들을 올려다 볼 수 없고, 대신 육체와 땅의 일들을 향해서 내려다만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임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보면 분명한데요, 고대에는 ‘배’가 상징하는 것이 그런 것이었고, 그건 배가 땅에 가장 가깝기 때문이었습니다. That the “serpent going on his belly” denotes that their sensuous part could no longer look upward to the things of heaven, but only downward to those of the body and the earth, is evident from the fact that in ancient times by the “belly” such things are signified as are nearest to the earth;
‘가슴’하면 땅 위, by the “chest” such as are above the earth;
‘머리’하면 가장 높은 곳입니다. and by the “head,” what is highest.
여기서 언급 중인 것은, 감각 파트는, 그 자체로 사람의 본성 중 가장 낮은 파트로서, ‘배로 다녔다’는 것입니다. 세속적인 것을 향해 돌아섰기 때문입니다. It is here said that the sensuous part, which in itself is the lowest part of man’s nature, “went upon its belly,” because it turned to what is earthly.
그 배가 땅에 착 달라붙음, 그 얼굴에 진토가 날라와 덕지덕지 묻옴 등 이런 유사한 상징이 유대 교회에도 있었습니다. The depression of the belly even to the earth, and the sprinkling of dust on the head, had a similar signification in the Jewish church.
24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가리시고 우리의 고난과 압제를 잊으시나이까 25우리 영혼은 진토 속에 파묻히고 우리 몸은 땅에 붙었나이다 26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소서 Wherefore hidest thou thy faces, and forgettest our misery and our oppression? For our soul is bowed down to the dust, and our belly cleaveth to the earth. Arise, a help for us, and redeem us for thy mercy’s sake, (시44:24-26)
여기서도 보면 분명히, 사람이 여호와의 얼굴을 외면하여 등돌리는 것을 가리켜, ‘그의 배가 땅 먼지에 착 달라붙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where also it is evident that when man averts himself from the face of Jehovah, he “cleaves by his belly to the dust and to the earth.”
요나서에도 보면, 큰 물고기의 ‘배’, 요나가 그리로 던져졌지요. 마찬가지로 땅에 속한 낮은 파트들, 세속의 일들을 상징합니다. 아래 그의 예언을 보시면 분명합니다. In Jonah likewise, by the “belly” of the great fish, into which he was cast, are signified the lower parts of the earth, as is evident from his prophecy: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Out of the belly of hell cried I, and thou heardest my voice, (욘2:2)
여기 ‘스올’은 낮은 땅, 곧 지옥을 가리킵니다. where “hell” denotes the lower earth.
248. 그래서 만일 사람이 하늘에 속한 일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될 때엔 그를 가리켜 ‘똑바로 서서 걷다’, ‘위를 보다’, ‘앞으로 나아가다’라고 합니다. 다 같은 의미이지요. And therefore when man had regard to heavenly things, he was said to “walk erect,” and to “look upward,” or “forward,” which means the same;
반대로 그가 육체적이고 세속적인 일들에 대해 관심을 보이면 그때는 ‘엎드려 배로 다니다’, ‘아래를 보다’, ‘뒤로 물러가다’라고 합니다. but when he had regard to corporeal and earthly things, he was said to be “bowed to the earth,” and to “look downward” or “backward.”
레위기입니다. As in Leviticus:
나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내어 그들에게 종된 것을 면하게 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내가 너희의 멍에의 빗장을 부수고 너희를 바로 서서 걷게 하였느니라 I am Jehovah your God, who brought you forth out of the land of Egypt, that ye should not be their bondmen; and I have broken the bonds of your yoke, and made you to go erect. (레26:13)
미가서에도 In Micah: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이 족속에게 재앙을 계획하나니 너희의 목이 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요 또한 교만하게 다니지 못할 것이라 이는 재앙의 때임이라 하셨느니라 Ye shall not thence remove your necks, neither shall ye go erect. (미2:3)
예레미야서에도 In Jeremiah:
8예루살렘이 크게 범죄함으로 조소거리가 되었으니 전에 그에게 영광을 돌리던 모든 사람이 그의 벗었음을 보고 업신여김이여 그는 탄식하며 물러가는도다 13높은 곳에서 나의 골수에 불을 보내어 이기게 하시고 내 발 앞에 그물을 치사 나로 물러가게 하셨음이여 종일토록 나를 피곤하게 하여 황폐하게 하셨도다 Jerusalem hath sinned a sin, therefore they despise her, because they have seen her nakedness; yea, she groaned and hath turned backward. From on high hath he sent fire into my bones, and hath made me to return backward; he hath made me desolate. (애1:8, 13)
그리고 이사야서에서도 And in Isaiah:
24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지은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홀로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땅을 펼쳤고 25헛된 말을 하는 자들의 징표를 폐하며 점 치는 자들을 미치게 하며 지혜로운 자들을 물리쳐 그들의 지식을 어리석게 하며 Jehovah thy redeemer, that turneth wise men backward, and maketh foolish their knowledge. (사44:24-25)
249.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가, 그들의 감각 파트가 몸과 땅에 속한 것들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더 이상 살아갈 수가 없음을, 즉, 지옥을 경험하게 되었음을 상징하고 있음은, 말씀에 나오는 ‘흙’의 상징을 보면 또한 분명합니다. That to “eat dust all the days of its life” signifies that their sensuous part became such that it could not live from anything except that which is of the body and the earth, that is to say, that it became infernal, is evident also from the signification of “dust” in the Word;
미가서입니다. as in Micah:
14원하건대 주는 주의 지팡이로 주의 백성 곧 갈멜 속 삼림에 홀로 거주하는 주의 기업의 양 떼를 먹이시되 그들을 옛날 같이 바산과 길르앗에서 먹이시옵소서 16이르되 여러 나라가 보고 자기의 세력을 부끄러워하여 손으로 그 입을 막을 것이요 귀는 막힐 것이며 17그들이 뱀처럼 티끌을 핥으며 땅에 기는 벌레처럼 떨며 그 좁은 구멍에서 나와서 두려워하며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리이다 Feed thy people as in the days of eternity. The nations shall see and shall blush at all their might; they shall lick the dust like a serpent, they shall be shaken out of their holds like creeping things [serpentes] of the earth. (미7:14, 16-17)
‘옛날 같이’는 태고 교회를 의미합니다. The “days of eternity” mean the most ancient church;
‘여러 나라’는 자기 본성을 의뢰하는 자들로, ‘그들이 뱀처럼 티끌을 핥으며’로 서술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the “nations,” those who trust in their own, of whom it is predicated that “they shall lick the dust like a serpent.”
시편에도 In David:
광야에 사는 자는 그 앞에 굽히며 그의 원수들은 티끌을 핥을 것이며 Barbarians shall bow themselves before God, and his enemies shall lick the dust. (시72:9)
‘광야에 사는 자’와 ‘원수들’은 오직 땅의 일들만, 세상 일들만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Barbarians” and “enemies” are those who regard only earthly and worldly things.
이사야입니다. In Isaiah: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Dust shall be the serpent’s bread. (사65:25)
‘흙’이 영적, 천적인 하늘의 일이 아닌, 오로지 육의 일, 땅의 일만 생각하는 사람들을 가리키기 때문에,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르시기를, As “dust” signifies those who do not regard spiritual and celestial things, but only what is corporeal and earthly, therefore the Lord enjoined his disciples that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if the city or house into which they entered was not worthy, they should shake off the dust of their feet.” (마10:14)
하신 것입니다.
(‘먼지’가 선고, 지옥 등과 관련된 것을 상징한다는 사실은 19절에서 더 깊이 볼 것입니다.) (That “dust” signifies what is condemned and infernal, will be further shown at verse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