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198-203

 

2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And the woman said unto the serpent, We may eat of the fruit of the tree of the garden; but of the fruit of the tree which is in the midst of the garden, God hath said, Ye shall not eat of it, neither shall ye touch it, lest ye die. (창3:2-3)

 

 

198. ‘동산 나무의 열매’는 태고교회 때부터 그들에게 계시된 선과 진리입니다. The “fruit of the tree of the garden” is the good and truth revealed to them from the most ancient church;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 말라’는 선과 신앙의 진리인데, 이것은 그들이 자신들한테서는 배운 적이 없는 것입니다. the “fruit of the tree which is in the midst of the garden, of which they were not to eat” is the good and truth of faith, which they were not to learn from themselves;

 

만지지 말라’는 스스로 혹은 감각과 기억-지식에 속한 것들을 가지고 선과 신앙의 진리를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일종의 금지입니다. not to touch it” is a prohibition against thinking of the good and truth of faith from themselves, or from what is of sense and memory-knowledge [sensuali et scientifico];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는 그렇게 신앙 혹은 모든 지혜와 지성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lest ye die” is because thus faith, or all wisdom and intelligence, would perish.

 

 

199. 본문,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가 태고교회 때부터 그들에게 계시된 선과 신앙의 진리 혹은 신앙 지식들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한 것은,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라고 하고 있지, 지난 번 천적 인간 또는 태고교회를 다룰 때 살피던 ‘동산 각종 나무’(창2:16)라고 하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That the “fruit of the tree of which they might eat” signifies the good and truth of faith revealed to them from the most ancient church, or the knowledges [cognitiones] of faith, is evident from the fact that it is said to be the “fruit of the tree of the garden of which they might eat,” and not the “tree of the garden,” as before when treating of the celestial man, or the most ancient church (Gen. 2:16).

 

동산의 나무’는 거기 언급된 대로 선하고 참된 것에 관한 퍼셉션입니다. The “tree of the garden,” as it is there called, is the perception of what is good and true;

 

선과 진리는 그 근원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열매’로 부르며, 그래서 말씀에서도 또한 자주 ‘열매’로 상징되고 있습니다. which good and truth, because they are from that source, are here called “fruit,” and are also frequently signified by “fruit” in the Word.

 

 

200. 앞서 창세기 2장 9절에서는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로 지식의 나무가 아닌 생명 나무가 언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서는 ‘지식의 나무’를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라고 하는 이유는 동산의 ‘중앙’이 가장 깊은 곳, 맨 안쪽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The reason why the “tree of knowledge” is here spoken of as being “in the midst of the garden,” although previously (Gen. 2:9), the tree of lives was said to be in the midst of the garden, and not the tree of knowledge, is that the “midst” of the garden signifies the inmost;

 

천적 인간 또는 태고교회의 맨 안쪽,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에는 ‘생명 나무’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사랑과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입니다. and the inmost of the celestial man, or of the most ancient church, was the “tree of lives,” which is love and the faith thence derived;

 

그러나 천적 영적 인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사람, 혹은 그 후손한테서는 신앙이 동산 혹은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의 ‘중앙’이 되었습니다. whereas with this man, who may be called a celestial spiritual man, or with this posterity, faith was the “midst” of the garden, or the inmost.

 

태고 때 살던 사람들의 퀄러티를 아주 충분히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왜냐 하면, 지금까지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누구의 재능하고도 완전히 다른 그들의 지니어스에 대해서는 오늘날 정말 끔찍할 정도로 알려진 게 없기 때문입니다. It is impossible more fully to describe the quality of the men who lived in that most ancient time, because at the present day it is utterly unknown, their genius being altogether different from what is ever found with anyone now.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지니어스에 관한 한 조각 아이디어를 전하는 목적은, 그들은 선을 통해 진리를 아는 사람들이었다, 사랑을 통해 무엇이 신앙에 속한 것인지를 아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언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For the purpose however of conveying some idea of their genius, it may be mentioned that from good they knew truth, or from love they knew what is of faith.

 

그러나 그 세대가 끝났을 때, 이후 일어난 새로운 세대는 완전히 다른 지니어스를 계승했습니다. 그들은 선을 가지고 진리를 식별하거나 사랑을 가지고 무엇이 신앙인지를 알아차리는 대신, 진리를 가지고 선이란 무엇인가 하는 지식을 습득하거나, 신앙의 지식들을 가지고 사랑이란 무엇인가 하는 지식을 획득했습니다. 그들 중 정말 많은 사람이 지식 밖에는 정말 아무 것도 몰랐습니다. But when that generation expired, another succeeded of a totally different genius, for instead of discerning the true from the good, or what is of faith from love, they acquired the knowledge of what is good by means of truth, or what is of love from the knowledges of faith, and with very many among them there was scarcely anything but knowledge [quod scirent].

 

이것이 바로 세상의 멸망을 막기 위해 홍수 후 생겨난 변화였습니다. Such was the change made after the flood to prevent the destruction of the world.

 

 

201. 홍수 전 태고 때 사람들의 것과 같은 그런 지니어스는 오늘날은 찾을 수도 없고, 존재하지도 않기 때문에, 그들의 지니어스로 기록된 이 구절, 단어들의 의미를 인텔리전트하게 설명하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Seeing therefore that such a genius as that of the most ancient people anterior to the flood is not found and does not exist at the present day, it is no easy matter to explain intelligibly what the words of this passage in their genuine sense imply.

 

하지만 이 말씀들은 천국에서는 아주 명확하게 이해됩니다. 천적이라 하는 천사들과 천사적 영들은 홍수 전 거듭난 태고 때 사람들과 같은 지니어스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They are, however, perfectly understood in heaven, for the angels and angelic spirits who are called celestial are of the same genius as the most ancient people who were regenerate before the flood;

 

한편, 영적이라 하는 천사들과 천사적 영들의 지니어스는 홍수 후 거듭난 사람들의 지니어스와 유사합니다. 두 경우 다 무한한 다양성을 가지지만 말입니다. while the angels and angelic spirits who are termed spiritual are of a similar genius to the regenerate after the flood, although in both cases with indefinite variety.

 

 

202. 천적 인간이었던 태고교회의 캐릭터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그들은 ‘지식의 나무를 먹는 일’, 곧 신앙에 속한 것을 감각적인 것들과 기억-지식들을 가지고 배우는 일에 참여하지도 않았고, 그 나무를 만지는 일, 곧 어떤 신앙 관련 일들을 그런 걸 가지고 생각하는 것 조차 허용하지 않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안 그러면 그들은 천적 삶에서 미끌어져 영적 삶으로, 그리고 계속해서 밑으로 가라앉기 때문입니다.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was a celestial man, was of such a character as not only to abstain from “eating of the tree of knowledge,” that is, from learning what belongs to faith from sensuous things and memory-knowledges, but was not even allowed to touch that tree, that is, to think of anything that is a matter of faith from sensuous things and memory-knowledges, lest they should sink down from celestial life into spiritual life, and so on downward.

 

천적 천사들의 삶 또한 바로 이와 같은데요, 천사들이 더 내적일수록 그들은 자신들의 신앙이 무슨 이름 같은 걸로 불리거나 무엇이든지 어떤 영적인 일에 관여되는 것을 아주 싫어합니다. Such also is the life of the celestial angels, the more interiorly celestial of whom do not even suffer faith to be named, nor anything whatever that partakes of what is spiritual;

 

만일 타인에 의해 거론되면, 그들은 신앙 대신 자기들만 아는 어떤 차이를 가지고 사랑에 관한 퍼셉션을 취합니다. and if it is spoken of by others, instead of faith they have a perception of love, with a difference known only to themselves;

 

그러므로 신앙에 관한 어떤 것이든지 그들은 사랑과 체어리티로부터 출발합니다. thus whatever is of faith they derive from love and charity.

 

그들은 신앙 관련 무슨 토론 듣는 걸 아주 아주 싫어합니다. 또한 그에 관한 어떤 기억-지식도 정말 힘들어 합니다. Still less can they endure listening to any reasoning about faith, and least of all to anything of memory-knowledge respecting it;

 

그들은 사랑으로, 주님으로부터 선과 진리에 관한 퍼셉션을 받기 때문입니다. for, through love, they have a perception from the Lord of what is good and true;

 

그리고 이 퍼셉션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어떤 일이 그런지, 안 그런지를 즉시 압니다. and from this perception they know instantly whether a thing is so, or is not so.

 

그래서 그들은 신앙에 관한 무슨 말을 들을 때, 그저 단순히 그렇다, 안 그렇다로 대답합니다. 그들이 주님으로 말미암아 그걸 퍼셉션하기 때문입니다. Therefore when anything is said about faith, they answer simply that it is so, or that it is not so, because they perceive it from the Lord.

 

이것이 주님이 마태복음에서 하신 말씀의 뜻입니다. This is what is signified by the Lord’s words in Matthew: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Let your communication be Yea, yea; nay, nay; for whatsoever is more than these cometh of evil (마5:37)

 

이것이 바로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만지지도 말라’ 하신 말씀의 의미입니다. This then is what was meant by their not being allowed to touch the fruit of the tree of knowledge;

 

만일 그들이 그걸 만지면, 그들은 악 가운데 있게 되고, 그 결과, 그들은 ‘죽기’ 때문입니다. for if they touched it, they would be in evil, that is, they would in consequence “die.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적 천사들은 다른 천사들처럼 다양한 주제들을 가지고 서로 대화합니다. 그러나 천적 언어를 가지고 하는데요, 이 언어는 사랑으로 되어 있고, 사랑으로부터 나오며, 영적 천사들의 언어보다 훨씬 형언할 수 없는 언어입니다. Nevertheless the celestial angels converse together on various subjects like the other angels, but in a celestial language, which is formed and derived from love, and is more ineffable than that of the spiritual angels.

 

 

203. 반면, 영적 천사들은 신앙 관련 대화를 하며, 지성, 이성, 그리고 지식들을 가지고 신앙의 일들을 심지어 컨펌까지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그런 그라운드에서 신앙의 일들 관련 무슨 결론을 내리지는 않습니다. The spiritual angels, however, converse about faith, and even confirm the things of faith by those of the intellect, of the reason, and of the memory, but they never form their conclusions concerning matters of faith on such grounds:

 

그렇게 하면 악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those who do this are in evil.

 

주님은 이들에게 신앙에 관한 모든 진리를 깨달을 수 있도록 관련 퍼셉션을 주시는데 물론 이것은 천적 천사들의 퍼셉션과는 다른 것입니다. They are also endowed by the Lord with a perception of all the truths of faith, although not with such a perception as is that of the celestial angels.

 

영적 천사들의 퍼셉션은 주님으로 말미암아 생생해지는 일종의 양심 같은 것입니다. 실제로는 천적 퍼셉션처럼 나타납니다만 그러나 사실은 그건 아니고, 오직 영적 퍼셉션일 뿐입니다. The perception of the spiritual angels is a kind of conscience which is vivified by the Lord and which indeed appears like celestial perception, yet is not so, but is only spiritual perception.

 

2021-04-11(D1)-창세기(창3,2-3, AC.198-20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에 대한 태고교회 사람들의 태도'.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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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호수공원(4/10), 아내, 둘째와 함께  (0) 2021.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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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94-197

 

1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And the serpent was more subtle than any wild animal of the field which Jehovah God had made; and he said unto the woman, Yea, hath God said, Ye shall not eat of every tree of the garden? (창3:1)

 

 

※ 오늘은 창3:1 총정리입니다.

 

194. 여기서 ‘’은 사람이 기대는 자신의 감각 파트를, By the “serpent” is here meant the sensuous part of man in which he trusts;

 

들짐승’은 앞서 살핀 것처럼, 겉 사람의 모든 affection을, by the “wild animal of the field” here, as before, every affection of the external man;

 

여자’는 사람의 own을, by the “woman,” man’s own;

 

뱀의 말,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는 그들이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각각 표현한 것입니다. by the serpent’s saying, “Yea, hath God said, Ye shall not eat of every tree?” that they began to doubt.

 

여기서 다루는 주제는 태고교회의 세 번째 후손에 관한 건데요, 이들은 비록 계시된 것들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과연 그런지 자기들 두 눈으로 보고, 느낌으로 알 수 있기 전까지는 안 믿기 시작했습니다. The subject here treated of is the third posterity of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began not to believe in things revealed unless they saw and felt that they were so.

 

이들의 첫 번째 상태는 의심의 일종이었는데, 그것을 여기, 그리고 이어지는 다음 구절에서 설명합니다. Their first state, that it was one of doubt, is described in this and in the next following verse.

 

 

195. 태고인들은 사람 안에 있는 그 어떤 것도 짐승이나 새하고 비교하는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The most ancient people did not compare all things in man to beasts and birds, but so denominated them;

 

이런 식의 그들의 일상 언어 매너는 심지어 홍수 후 고대교회에도 남아있었고, 선지자들 중에도 보존되었습니다. and this their customary manner of speaking remained even in the ancient church after the flood, and was preserved among the prophets.

 

사람한테 있는 감각적인 것들을 그들은 ‘’이라고 했습니다. 뱀이 땅에 달라붙어 지내는 것처럼 감각적인 것들 또한 몸에 달라붙어 있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The sensuous things in man they called “serpents,” because as serpents live close to the earth, so sensuous things are those next the body.

 

그래서 또한 그들은 신앙의 신비들에 관한 추론, 그리고 확실한 감각에 기초한 추론을 가리켜 ‘뱀의 독’이라 했고, 그런 사람들을 ‘뱀들’이라고 했습니다. Hence also reasonings concerning the mysteries of faith, founded on the evidence of the senses, were called by them the “poison of a serpent,” and the reasoners themselves “serpents”;

 

이런 사람들은 많은 걸 감각, 곧 보이는 것들을 가지고 추론하기 때문에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하신 것입니다. 보이는 것들은 예를 들면, 땅, 육체, 일상 및 자연에 관한 것들입니다. and because such persons reason much from sensuous, that is, from visible things (such as are things terrestrial, corporeal, mundane, and natural), it is said that “the serpent was more subtle than any wild animal of the field.

 

 

[2] 그래서 시편에서도 추론으로 사람을 유혹하는 자들을 가리켜 And so in David, speaking of those who seduce man by reasonings:

 

뱀 같이 그 혀를 날카롭게 하니 그 입술 아래에는 독사의 독이 있나이다 They sharpen their tongue like a serpent; the poison of the asp is under their lips (시140:3)

 

3악인은 모태에서부터 멀어졌음이여 나면서부터 곁길로 나아가 거짓을 말하는도다 4그들의 독은 뱀의 독 같으며 그들은 귀를 막은 귀머거리 독사 같으니 5술사의 홀리는 소리도 듣지 않고 능숙한 술객의 요술도 따르지 아니하는 독사로다 They go astray from the womb, speaking a lie. Their poison is like the poison of a serpent, like the deaf poisonous asp that stoppeth her ear, that she may not hear the voice of the mutterers, of a wise one that charmeth charms [sociantis sodalitia] (시58:3-5)

 

여기 ‘뱀의 독’이라는 표현은, 사람들로 하여금 지혜로운 사람이 하는 말이나 그들의 목소리조차 작정하고 듣지 않게 하는 그런 추론들을 가리킵니다. Reasonings that are of such a character that the men will not even hear what a wise one says, or the voice of the wise, are here called the “poison of a serpent.

 

그래서 ‘귀를 막은 귀머거리 독사’라는 표현이 고대인들 사이에서는 일종의 잠언이 되었습니다. Hence it became a proverb among the ancients, that “The serpent stoppeth the ear.

 

아모스에 In Amos:

 

19마치 사람이 사자를 피하다가 곰을 만나거나 혹은 집에 들어가서 손을 벽에 대었다가 뱀에게 물림 같도다 20여호와의 날은 빛 없는 어둠이 아니며 빛남 없는 캄캄함이 아니냐 As if a man came into a house, and leaned his hand on the wall, and a serpent bit him. Shall not the day of Jehovah be darkness and not light? even thick darkness, and no brightness in it? (암5:19-20)

 

손을 벽에 대었다가’는 자기 자신한테서 나오는 힘을 말하며, 감각적인 것들을 신뢰한 결과, 여기서 말하는 장님이 되는 것입니다. The “hand on the wall” means self-derived power, and trust in sensuous things, whence comes the blindness which is here described.

 

[3] 예레미야에서, In Jeremiah:

 

22애굽의 소리가 뱀의 소리 같으리니 이는 그들의 군대가 벌목하는 자 같이 도끼를 가지고 올 것임이라 23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황충보다 많아서 셀 수 없으므로 조사할 수 없는 그의 수풀을 찍을 것이라 24딸 애굽이 수치를 당하여 북쪽 백성의 손에 붙임을 당하리로다 The voice of Egypt shall go like a serpent, for they shall go in strength, and shall come to her with axes as hewers of wood. They shall cut down her forest, saith Jehovah, because it will not be searched; for they are multiplied more than the locust, and are innumerable. The daughter of Egypt is put to shame; she shall be delivered into the hand of the people of the north (렘46:22-24)

 

애굽’은 주님의 것들을 감각과 기억-지식들을 가지고 추론하는 걸 말합니다. Egypt” denotes reasoning about Divine things from sensuous things and memory-knowledges.

 

뱀의 소리’는 그런 추론들을, Such reasonings are called the “voice of a serpent”;

 

그리고 ‘북쪽 백성’은 그런 일로 말미암아 야기되는 블라인드니스, 곧 앞을 못 보는 것을 말합니다. and the blindness thereby occasioned, the “people of the north.

 

욥기에, In Job:

 

16그는 독사의 독을 빨며 뱀의 혀에 죽을 것이라 17그는 강 곧 꿀과 엉긴 젖이 흐르는 강을 보지 못할 것이요 He shall suck the poison of asps; the viper’s tongue shall slay him. he shall not see the brooks, the flowing rivers of honey and butter (욥20:16-17)

 

강 곧 꿀과 엉긴 젖이 흐르는 강’은 영적이고 천적인 일들인데 그저 추론만 하는 자들의 눈엔 절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Rivers of honey and butter” are things spiritual and celestial, which cannot be seen by mere reasoners;

 

독사의 독’, ‘뱀의 혀’는 추론의 일들을 말합니다. reasonings are called the “poison of the asp” and the “viper’s tongue.

 

뱀 관련, 더 자세한 건 아래 14절, 15절을 보시면 됩니다. See more respecting the serpent below, at verses 14 and 15.

 

 

196. 고대에 ‘’으로 부르던 사람들은 계시의 일들보다는 감각의 일들을 더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 In ancient times those were called “serpents” who had more confidence in sensuous things than in revealed ones.

 

지금도 여전히 그러나 훨씬 더 악화되었습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모든 것을 그저 안 믿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때 고대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지식들을 가지고는 ‘절대 고분고분 믿지 않겠다’ 작정들을 하기 때문이며, 그 결과, 자신들을 훨씬 더 심각한 어두움 가운데로 내몰고 있기 때문입니다. But it is still worse at the present day, for now there are persons who not only disbelieve everything they cannot see and feel, but who also confirm themselves in such incredulity by knowledges [scientifica] unknown to the ancients, and thus occasion in themselves a far greater degree of blindness.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스스로를 장님이 되게 하는지, 그래서 정말 아무 것도 못 보고, 못 듣게 하는지, 또한 이들은 천국의 일들을 감각과 기억-지식들, 그리고 철학을 가지고 결론을 내리는 사람들인데, 말씀에서 자주 ‘귀머거리 독사’, ‘날으는 뱀’이라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것들은 정말 아주 치명적인 것입니다. 이상과 같은 내용이 알려질 수 있도록 이런 사람들이 영에 대해서는 무엇을 믿고 있는지 한 가지 예를 들어 설명 드리겠습니다. In order that it may be known how those blind themselves, so as afterwards to see and hear nothing, who form their conclusions concerning heavenly matters from the things of sense, of memory-knowledge, and of philosophy, and who are not only “deaf serpents,” but also the “flying serpents” frequently spoken of in the Word, which are much more pernicious, we will take as an example what they believe about the spirit.

 

 

[2] 감각적인 사람, 오직 감각적으로 확실한 것만 믿는 사람은 영의 존재를 부인합니다. 그가 그걸 볼 수 없기 때문인데요, 그는 말하기를, “그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내가 그걸 느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알기로는 보고 만질 수 있는 것이라야만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The sensuous man, or he who only believes on the evidence of his senses, denies the existence of the spirit because he cannot see it, saying, “It is nothing because I do not feel it: that which I see and touch I know exists.”

 

그 다음, 기억-지식의 사람, 자기의 기억-지식을 가지고 결론을 내리는 사람은 말하기를, The man of memory-knowledge [scientificus], or he who forms his conclusions from memory-knowledges says,

 

영이라는 게, 가령 증기나 열, 아니면 무슨 다른 과학적 엔터티의 일종으로 그냥 즉시 옅은 공기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그런 것이 아니면 도대체 무엇입니까? What is the spirit, except perhaps vapor or heat, or some other entity of his science, that presently vanishes into thin air?

 

동물들 또한 몸, 감각, 그리고 이성과 유사한 뭔가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사람의 영은 살고, 동물들의 영은 죽는다라고들 주장되고 있지요. Have not the animals also a body, senses, and something analogous to reason, and yet it is asserted that these will die, while the spirit of man will live.

 

이걸 보면 그들은 영의 존재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Thus they deny the existence of the spirit.

 

[3] 철학자들 또한, 어쩌면 이들은 남은 인류 가운데 가장 예리한 사람들일 것 같은데요, 이들은 영에 대하여 자기들도 이해하지 못 하는 용어들을 가지고 말을 합니다. 이들은 물질이나 유기체, 혹은 그밖의 것들로부터 나오는 영을 한 가지 표현만 가지고 적용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그들을 반박하기 때문입니다. Philosophers also, who would be more acute than the rest of mankind, speak of the spirit in terms which they themselves do not understand, for they dispute about them, contending that not a single expression is applicable to the spirit which derives anything from what is material, organic, or extended;

 

이들은 이런 식으로 자기들의 생각을 추상화시켜 결국 소멸,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만들어 버립니다. thus they so abstract it from their ideas that it vanishes from them, and becomes nothing.

 

보다 분별 있는 사람들은 영은 사고(思考)다 주장합니다. The more sane however assert that the spirit is thought;

 

그러나 이들은 사고에 관해 추론하면서 사고를 모든 실재성으로부터 분리하게 되고, 결국은 ‘몸이 기능을 다하면 영도 사라져야만 한다’는 결론에 이르고 맙니다. but in their reasonings about thought, in consequence of separating from it all substantiality, they at last conclude that it must vanish away when the body expires.

 

이와 같이 감각이나 기억-지식, 그리고 철학을 가지고 추론하는 사람들은 영의 존재를 부인하고, 그 결과 영과 영적인 일들에 관한 말들을 하나도 믿지 않습니다. Thus all who reason from the things of sense, of memory-knowledge, and of philosophy, deny the existence of the spirit, and therefore believe nothing of what is said about the spirit and spiritual things.

 

하지만 마음이 단순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Not so the simple in heart:

 

그들은 영의 존재에 관한 질문을 받으면 대답하기를, 자기들은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안다고, 왜냐 하면,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사후에도 그들이 살리라 하셨기 때문이라고, if these are questioned about the existence of spirit, they say they know it exists, because the Lord has said that they will live after death;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의 이성을 끄는 대신, 주님의 말씀을 가지고 그것을 생생하게 합니다. thus instead of extinguishing their rational, they vivify it by the Word of the Lord.

 

 

197. 태고인들은 천적인 사람들이었는데, 그들 사이에서는 ‘’ 하면 ‘세심한 주의’ 및 그들의 감각 파트를 상징하였습니다. 그들은 평소 이 감각 파트를 잘 훈련하여 각종 신체적 상처로부터 안전한 생활을 하고자 하는 신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Among the most ancient people, who were celestial men, by the “serpent” was signified circumspection, and also the sensuous part through which they exercised circumspection so as to be secure from injury.

 

’에 관한 이러한 상징은 주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보면 분명한데요, This signification of a “serpent” is evident from the Lord’s words to his disciples: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Behold, I send you forth as sheep into the midst of wolves; be ye therefore prudent as serpents, and simple as doves (마10:16)

 

또. 광야에 세웠던 ‘놋뱀’으로부터도 분명합니다. 이 놋뱀은 주님 안 감각 파트를 가리키는데요, 오직 주님만이 천적인 사람이시며, 오직 주님만이 모든 사람을 돌보시고, 또 공급하시는 분입니다. And also from the “brazen serpent” that was set up in the wilderness, by which was signified the sensuous part in the Lord, who alone is the celestial man, and alone takes care of and provides for all;

 

그래서 그때 그 뱀을 쳐다 보는 사람들은 모두 보호를 받은 것입니다. wherefore all who looked upon it were preserved.

 

2021-04-10(D7)-창세기(창3,1, AC.194-197), '뱀, the sensuous part of man'.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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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95.2-196.1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And the serpent was more subtle than any wild animal of the field which Jehovah God had made; and he said unto the woman, Yea, hath God said, Ye shall not eat of every tree of the garden? (창3:1)

 

 

195. [2] 그래서 시편에서도 추론으로 사람을 유혹하는 자들을 가리켜 And so in David, speaking of those who seduce man by reasonings:

 

뱀 같이 그 혀를 날카롭게 하니 그 입술 아래에는 독사의 독이 있나이다 They sharpen their tongue like a serpent; the poison of the asp is under their lips (시140:3)

 

3악인은 모태에서부터 멀어졌음이여 나면서부터 곁길로 나아가 거짓을 말하는도다 4그들의 독은 뱀의 독 같으며 그들은 귀를 막은 귀머거리 독사 같으니 5술사의 홀리는 소리도 듣지 않고 능숙한 술객의 요술도 따르지 아니하는 독사로다 They go astray from the womb, speaking a lie. Their poison is like the poison of a serpent, like the deaf poisonous asp that stoppeth her ear, that she may not hear the voice of the mutterers, of a wise one that charmeth charms [sociantis sodalitia] (시58:3-5)

 

여기 ‘뱀의 독’이라는 표현은, 사람들로 하여금 지혜로운 사람이 하는 말이나 그들의 목소리조차 작정하고 듣지 않게 하는 그런 추론들을 가리킵니다. Reasonings that are of such a character that the men will not even hear what a wise one says, or the voice of the wise, are here called the “poison of a serpent.

 

그래서 ‘귀를 막은 귀머거리 독사’라는 표현이 고대인들 사이에서는 일종의 잠언이 되었습니다. Hence it became a proverb among the ancients, that “The serpent stoppeth the ear.

 

아모스에 In Amos:

 

19마치 사람이 사자를 피하다가 곰을 만나거나 혹은 집에 들어가서 손을 벽에 대었다가 뱀에게 물림 같도다 20여호와의 날은 빛 없는 어둠이 아니며 빛남 없는 캄캄함이 아니냐 As if a man came into a house, and leaned his hand on the wall, and a serpent bit him. Shall not the day of Jehovah be darkness and not light? even thick darkness, and no brightness in it? (암5:19-20)

 

손을 벽에 대었다가’는 자기 자신한테서 나오는 힘을 말하며, 감각적인 것들을 신뢰한 결과, 여기서 말하는 장님이 되는 것입니다. The “hand on the wall” means self-derived power, and trust in sensuous things, whence comes the blindness which is here described.

 

[3] 예레미야에서, In Jeremiah:

 

22애굽의 소리가 뱀의 소리 같으리니 이는 그들의 군대가 벌목하는 자 같이 도끼를 가지고 올 것임이라 23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황충보다 많아서 셀 수 없으므로 조사할 수 없는 그의 수풀을 찍을 것이라 24딸 애굽이 수치를 당하여 북쪽 백성의 손에 붙임을 당하리로다 The voice of Egypt shall go like a serpent, for they shall go in strength, and shall come to her with axes as hewers of wood. They shall cut down her forest, saith Jehovah, because it will not be searched; for they are multiplied more than the locust, and are innumerable. The daughter of Egypt is put to shame; she shall be delivered into the hand of the people of the north (렘46:22-24)

 

애굽’은 주님의 것들을 감각과 기억-지식들을 가지고 추론하는 걸 말합니다. Egypt” denotes reasoning about Divine things from sensuous things and memory-knowledges.

 

뱀의 소리’는 그런 추론들을, Such reasonings are called the “voice of a serpent”;

 

그리고 ‘북쪽 백성’은 그런 일로 말미암아 야기되는 블라인드니스, 곧 앞을 못 보는 것을 말합니다. and the blindness thereby occasioned, the “people of the north.

 

욥기에, In Job:

 

16그는 독사의 독을 빨며 뱀의 혀에 죽을 것이라 17그는 강 곧 꿀과 엉긴 젖이 흐르는 강을 보지 못할 것이요 He shall suck the poison of asps; the viper’s tongue shall slay him. he shall not see the brooks, the flowing rivers of honey and butter (욥20:16-17)

 

강 곧 꿀과 엉긴 젖이 흐르는 강’은 영적이고 천적인 일들인데 그저 추론만 하는 자들의 눈엔 절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Rivers of honey and butter” are things spiritual and celestial, which cannot be seen by mere reasoners;

 

독사의 독’, ‘뱀의 혀’는 추론의 일들을 말합니다. reasonings are called the “poison of the asp” and the “viper’s tongue.

 

뱀 관련, 더 자세한 건 아래 14절, 15절을 보시면 됩니다. See more respecting the serpent below, at verses 14 and 15.

 

 

196. 고대에 ‘’으로 부르던 사람들은 계시의 일들보다는 감각의 일들을 더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 In ancient times those were called “serpents” who had more confidence in sensuous things than in revealed ones.

 

지금도 여전히 그러나 훨씬 더 악화되었습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모든 것을 그저 안 믿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때 고대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지식들을 가지고는 ‘절대 고분고분 믿지 않겠다’ 작정들을 하기 때문이며, 그 결과, 자신들을 훨씬 더 심각한 어두움 가운데로 내몰고 있기 때문입니다. But it is still worse at the present day, for now there are persons who not only disbelieve everything they cannot see and feel, but who also confirm themselves in such incredulity by knowledges [scientifica] unknown to the ancients, and thus occasion in themselves a far greater degree of blindness.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스스로를 장님이 되게 하는지, 그래서 정말 아무 것도 못 보고, 못 듣게 하는지, 또한 이들은 천국의 일들을 감각과 기억-지식들, 그리고 철학을 가지고 결론을 내리는 사람들인데, 말씀에서 자주 ‘귀머거리 독사’, ‘날으는 뱀’이라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것들은 정말 아주 치명적인 것입니다. 이상과 같은 내용이 알려질 수 있도록 이런 사람들이 영에 대해서는 무엇을 믿고 있는지 한 가지 예를 들어 설명 드리겠습니다. In order that it may be known how those blind themselves, so as afterwards to see and hear nothing, who form their conclusions concerning heavenly matters from the things of sense, of memory-knowledge, and of philosophy, and who are not only “deaf serpents,” but also the “flying serpents” frequently spoken of in the Word, which are much more pernicious, we will take as an example what they believe about the spirit.

 

2021-04-09(D6)-창세기(창3,1, AC.195.2-196.1), '뱀(2)'.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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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914-195.1

속뜻

THE INTERNAL SENSE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And the serpent was more subtle than any wild animal of the field which Jehovah God had made; and he said unto the woman, Yea, hath God said, Ye shall not eat of every tree of the garden? (창3:1)

 

 

194. 여기서 ‘’은 사람이 기대는 자신의 감각 파트를, By the “serpent” is here meant the sensuous part of man in which he trusts;

 

들짐승’은 앞서 살핀 것처럼, 겉 사람의 모든 affection을, by the “wild animal of the field” here, as before, every affection of the external man;

 

여자’는 사람의 own을, by the “woman,” man’s own;

 

뱀의 말,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는 그들이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각각 표현한 것입니다. by the serpent’s saying, “Yea, hath God said, Ye shall not eat of every tree?” that they began to doubt.

 

여기서 다루는 주제는 태고교회의 세 번째 후손에 관한 건데요, 이들은 비록 계시된 것들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과연 그런지 자기들 두 눈으로 보고, 느낌으로 알 수 있기 전까지는 안 믿기 시작했습니다. The subject here treated of is the third posterity of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began not to believe in things revealed unless they saw and felt that they were so.

 

이들의 첫 번째 상태는 의심의 일종이었는데, 그것을 여기, 그리고 이어지는 다음 구절에서 설명합니다. Their first state, that it was one of doubt, is described in this and in the next following verse.

 

 

195. 태고인들은 사람 안에 있는 그 어떤 것도 짐승이나 새하고 비교하는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The most ancient people did not compare all things in man to beasts and birds, but so denominated them;

 

이런 식의 그들의 일상 언어 매너는 심지어 홍수 후 고대교회에도 남아있었고, 선지자들 중에도 보존되었습니다. and this their customary manner of speaking remained even in the ancient church after the flood, and was preserved among the prophets.

 

사람한테 있는 감각적인 것들을 그들은 ‘’이라고 했습니다. 뱀이 땅에 달라붙어 지내는 것처럼 감각적인 것들 또한 몸에 달라붙어 있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The sensuous things in man they called “serpents,” because as serpents live close to the earth, so sensuous things are those next the body.

 

그래서 또한 그들은 신앙의 신비들에 관한 추론, 그리고 확실한 감각에 기초한 추론을 가리켜 ‘뱀의 독’이라 했고, 그런 사람들을 ‘뱀들’이라고 했습니다. Hence also reasonings concerning the mysteries of faith, founded on the evidence of the senses, were called by them the “poison of a serpent,” and the reasoners themselves “serpents”;

 

이런 사람들은 많은 걸 감각, 곧 보이는 것들을 가지고 추론하기 때문에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하신 것입니다. 보이는 것들은 예를 들면, 땅, 육체, 일상 및 자연에 관한 것들입니다. and because such persons reason much from sensuous, that is, from visible things (such as are things terrestrial, corporeal, mundane, and natural), it is said that “the serpent was more subtle than any wild animal of the field.

 

2021-04-08(D5)-창세기(창3,1, AC.194-195),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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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90-193

창3

Genesis 3

 

 

1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And the serpent was more subtle than any wild animal of the field which Jehovah God had made; and he said unto the woman, Yea, hath God said, Ye shall not eat of every tree of the garden? 2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And the woman said unto the serpent, We may eat of the fruit of the tree of the garden; 3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But of the fruit of the tree which is in the midst of the garden, God hath said, Ye shall not eat of it, neither shall ye touch it, lest ye die. 4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And the serpent said unto the woman, Ye shall not surely die. 5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For God doth know that in the day ye eat thereof, then your eyes shall be opened, and ye shall be as God, knowing good and evil. 6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And the woman saw that the tree was good for food, and that it was pleasant to the eyes, and a tree to be desired to give intelligence, and she took of the fruit thereof and did eat, and she gave also to her man [vir] with her, and he did eat. 7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And the eyes of them both were opened, and they knew that they were naked; and they sewed fig leaves together, and made themselves girdles. 8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And they heard the voice of Jehovah God going to itself in the garden in the air of the day; and the man and his wife hid themselves from the face of Jehovah God in the midst of the tree of the garden. 9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And Jehovah God cried unto the man [homo], and said unto him, Where art thou? 10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And he said, I heard thy voice in the garden, and I was afraid, because I was naked; and I hid myself. 11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And he said, Who told thee that thou wast naked? Hast thou eaten of the tree whereof I commanded thee that thou shouldest not eat? 12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And the man said, The woman whom thou gavest to be with me, she gave me of the tree, and I did eat. 13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And Jehovah God said unto the woman, Why hast thou donethis? And the woman said, The serpent beguiled me, and I did eat.

 

 

내용

THE CONTENTS

 

 

190. 태고교회의 세 번째 상태, 곧 자신의 own을, 사랑할 정도로 원했던 태고교회의 상태를 다루는 장입니다. The third state of the most ancient church is treated of, which so desired its own as to love it.

 

 

191. 자아 사랑, 즉 그들의 own 사랑으로 인해 그들은 자기들의 감각으로 알 수 있는 게 아니면 아무것도 믿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이 감각 파트를 ‘’으로 표현한 것이고, Because from the love of self, that is, their own love, they began to believe nothing that they did not apprehend by the senses, the sensuous part is represented by the “serpent”;

 

자아 사랑, 혹은 그들의 own 사랑을 ‘여자’로, the love of self, or their own love, by the “woman”;

 

그리고 합리 파트, 이성(理性) 파트를 ‘남자’로 표현하였습니다. and the rational by the “man.

 

 

192. 그래서 '', 또는 감각 파트가 여자를 설득하여 주님 신앙 안에 있는 사실들이 정말 그런지를 들여다보게 하는데, 이걸 가리켜 ‘지식의 나무를 먹는 것’이라 하고, Hence the “serpent,” or sensuous part, persuaded the woman to inquire into matters pertaining to faith in the Lord in order to see whether they are really so, which is signified by “eating of the tree of knowledge”;

 

그리고 덩달아 이런 걸 덥석 동의한 이성 파트를 ‘그도 먹은지라’ 한 것입니다. and that the rational of man consented is signified by “the man that he did eat (1절로 6절)

 

 

193. 그런데 그들은 자기들이 악 가운데 있음을 지각했습니다. But they perceived that they were in evil;

 

눈이 밝아져’와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가 상징하는, 남은 퍼셉션 (7-8절), 그리고 그들이 거들이라고 만들어 가렸던 무화과 나뭇잎들 (7절), 부끄럽다고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 것 (8-9절), 뿐만 아니라 그들의 시인과 자백 (10-13절) 등을 볼 때, 그들 안에 아직은 자연적 선이 남아 있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from which remnant of perception, signified by their “eyes being opened,” and by their “hearing the voice of Jehovah” (verses 7–8), and from the fig-leaves of which they made themselves girdles (verse 7), and from their shame or hiding in the midst of the tree of the garden (verses 8–9), as well as from their acknowledgment and confession (verses 10–13), it is evident that natural goodness still remained in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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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82-189

 

창3

Genesis 3

 

죽음에서 일어난 사람들이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는 이야기

계속

CONTINUATION

CONCERNING THE ENTRANCE INTO ETERNAL LIFE

OF THOSE WHO ARE RAISED FROM DEATH

 

 

182. 천적 천사들이 부활한 사람과 함께 있을 때, 그들은 그를 떠나지 않습니다. 그들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When the celestial angels are with a resuscitated person, they do not leave him, for they love everyone;

 

그러나 그 영이 천적 천사들과 더 이상 함께 있을 수가 없는 그런 캐릭터일 때는, 그는 이들로부터 좀 얼른 떠날 수 있었으면 하고 간절히 원합니다. but when the soul is of such a character that he can no longer be in the company of the celestial angels, he is eager to depart from them;

 

다음 순서는 영적 천사들의 도착입니다. 영적 천사들이 그에게 도착하여 이번엔 그가 빛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앞서 그는 아무것도 못 보고 그저 생각만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and when this takes place the spiritual angels arrive, and give him the use of light, for previously he had seen nothing, but had only thought.

 

 

183. 저의 눈에 이 천사들이 그 일을 어떤 식으로 하는지가 보였습니다. I was shown how these angels work.

 

그들은 마치 왼쪽 눈꺼풀을 코의 중격, 그러니까 가운데를 향해 롤 말 듯 마는 것 같았습니다. 눈이 떠져서 빛을 사용할 수 있게 하려고 말립니다. They seemed to as it were roll off the coat of the left eye toward the septum of the nose, in order that the eye might be opened and the use of light be granted.

 

당사자에겐 이 일이 정말 실제로 일어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단지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 To the man it appears as if this were really done, but it is only an appearance.

 

 

184. 이 쪼그만 막이 그렇게 롤 말리는 것처럼 보인 후, 빛이 조금 보이기 시작하는데 아직은 희미한 것이 마치 사람이 잠에서 깰 때 맨 먼저 눈꺼풀을 통해서 보는 것처럼 그렇게 보입니다. After this little membrane has been thus in appearance rolled off, some light is visible, but dim, such as a man sees through his eyelids when he first awakes out of sleep;

 

지금 깨어나고 있는 이 사람은 어떤 고요한 상태 가운데 있는데, 이것은 그가 여전히 천적 천사들에 의해 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and he who is being resuscitated is in a tranquil state, being still guarded by the celestial angels.

 

그러고 나서 작은 별과 함께 일종의 하늘색 그림자가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런 일이 다양하게 일어나는 일임을 지각했습니다. There then appears a kind of shadow of an azure color, with a little star, but I perceived that this takes place with variety.

 

 

185. 그런 일이 있고 나면, 얼굴에서 뭔가 부드러운 게 벗겨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퍼셉션이 그에게 시작되면서 그는, 천사들이 자기한테서 무슨 부드럽고 연한, 사랑 말고 다른 무슨 관념들이라도 나올까 매우 주의를 기울이고 있음을 지각합니다. Afterwards there seems to be something gently unrolled from the face, and perception is communicated to him, the angels being especially cautious to prevent any idea coming from him but such as is of a soft and tender nature, as of love;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그에게 그는 이제 영이 되었음을 알려줍니다. and it is now given him to know that he is a spirit.

 

 

186. 그는 이제 자신의 삶을 시작합니다. He then commences his life.

 

이 삶은 처음에는 기쁘고 행복합니다. 그는 스스로 보기에도 영원한 삶 가운데 도착한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이 삶은 밝고 하얀 빛으로 표현되며, 이 빛은 아름다운 황금색 아우라가 됩니다. 천적이며 또 영적인 지혜를 향한 그의 첫 번째 삶은 이런 상징으로 나타납니다. This at first is happy and glad, for he seems to himself to have come into eternal life, which is represented by a bright white light that becomes of a beautiful golden tinge, by which is signified his first life, to wit, that it is celestial as well as spiritual.

 

 

187. 선한 영들의 사회로 배정되는 이 다음 순서는 한 마리 말 위에 앉아 말로 하여금 지옥을 향하도록 하고 있는, 그러나 그 말은 한 발자국도 못 움직이는, 어떤 청년으로 표현됩니다. His being next taken into the society of good spirits is represented by a young man sitting on a horse and directing it toward hell, but the horse cannot move a step.

 

그는 젊음으로 표현됩니다. 왜냐하면, 그가 처음 영원한 삶 가운데 들어왔을 때 그는 천사들 가운데 있으며, 그래서 그에게는 그것이 젊음의 꽃 가운데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He is represented as a youth because when he first enters upon eternal life he is among angels, and therefore appears to himself to be in the flower of youth.

 

 

188. 이어지는 그의 삶이 그가 말에서 내려 두 발로 걷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그가 그 말을 움직여 그곳을 떠나게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His subsequent life is represented by his dismounting from the horse and walking on foot, because he cannot make the horse move from the place;

 

그리고 자기는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을 가지고 교육을 받게 된다는 암시를 받게 됩니다. and it is insinuated to him that he must be instructed in the knowledges of what is true and good.

 

 

189. 그 후,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과 그걸 자각함으로써 그는 서서히 천국으로 인도될 것임을 상징하는 오솔길들이 위를 향해 살짝 기울어진 채 보였습니다. Afterwards pathways were seen sloping gently upward, which signify that by the knowledges of what is true and good, and by self-acknowledgment, he should be led by degrees toward heaven;

 

아무도 이런 종류의 자각과 또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 없이 저곳으로 인도될 수 없습니다. for no one can be conducted thither without such self￾acknowledgment, and the knowledges of what is true and good.

 

이 내용에 관한 이어지는 기술은 이 장 끝에 다시 계속 말씀드리겠습니다. A continuation of this subject may be seen at the end of this chapter.

 

2021-04-06(D3)-창세기(창3 오프닝, AC.182-189), 'When the celestial angels are with...'.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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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And God said, Let there be luminaries in the expanse of the heavens, to distinguish between the day and the night; and let them be for signs, and for seasons, and for days, and for years. 15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And let them be for luminaries in the expanse of the heavens, to give light upon the earth; and it was so. 16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And God made two great luminaries, the greater luminary to rule by day, and the lesser luminary to rule by night; and the stars. 17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 And God set them in the expanse of the heavens, to give light upon the earth; (창1:14-17)

 

 

30. 먼저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리고 새롭게 빚어지는 중인 사람들한테서 볼 수 있는 신앙의 진보는 어떤 것인지를 알기 전까지는 본문의 ‘큰 광명체’의 의미를 클리어하게 이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What is meant by “great luminaries” cannot be clearly understood unless it is first known what is the essence of faith, and also what is its progress with those who are being created anew.

 

신앙의 본질과 생명 그 자체는 바로 주님 자신이십니다.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주님 자신 요한복음에서 선언하신 것처럼 말이지요. The very essence and life of faith is the Lord alone, for he who does not believe in the Lord cannot have life, as he himself has declared in John: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He that believeth on the son hath eternal life, but he that believeth not on the son shall not see life, but the wrath of God shall abide upon him (요3:36)

 

[2] 새롭게 빚어지는 중인 사람들한테서 볼 수 있는 신앙의 진보는 다음과 같습니다. The progression of faith with those who are being created anew is as follows.

 

먼저 그들 안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생명은 오직 선과 진리 안에만 있고, 악과 거짓 안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At first they have no life, for it is only in the good and the true that there is life, and none in the evil and the false;

 

나중에 그들은 주님 신앙을 통해서 생명을 받습니다. 먼저는 기억 신앙으로인데요, 단지 지식일 뿐인 신앙입니다. afterwards they receive life from the Lord by faith, first by faith of the memory, which is a faith of mere knowledge [fides scientifica];

 

다음은 이해하는 신앙, 지성적 신앙입니다. next by faith in the understanding, which is an intellectual faith;

 

끝으로 마음 신앙입니다. 사랑하는 신앙, 구원하는 신앙입니다. lastly by faith in the heart, which is the faith of love, or saving faith.

 

앞 첫 두 종류의 신앙을, 3절로 13절까지는 움직이지 못하는 것으로, 20절로 25절에서는 움직이는 것, 곧 사랑의 생명으로 활기찬 신앙으로 설명하였습니다. The first two kinds of faith are represented from verse 3 to verse 13, by things inanimate, but faith vivified by love is represented from verse 20 to verse 25, by animate things.

 

이런 이유로, 사랑과 그 사랑에서 비롯되는 신앙을 여기서 먼저 다루는 것이며, 이 사랑과 신앙을 가리켜 ‘광명체’라 하셨고, For this reason love, and faith thence derived, are now here first treated of, and are called “luminaries”;

 

이때 사랑을 ‘낮을 주관하는 큰 광명체’, love being “the greater luminary which rules by day”;

 

사랑에서 비롯되는 신앙을 가리켜 ‘밤을 주관하는 작은 광명체’라 하셨습니다. faith derived from love “the lesser luminary which rules by night”;

 

그리고 이 둘은 하나를 이루어야 하기 때문에 주님은 이들을 언급하실 때 단수로 부르십니다. ‘광명체들이 있으라’ be 동사의 라틴어 표현을 보면 sit luminaria입니다. 복수 표현인 sint luminaria가 아닙니다. and as these two luminaries ought to make a one, it is said of them, in the singular number, “Let there be luminaries” [sit luminaria], and not in the plural [sint luminaria].

 

[3] 속사람 안의 사랑과 신앙은 육체를 가진 겉사람에게 있어서는 열과 빛에 해당합니다. 즉, 전자는 후자로 표현되는데요, Love and faith in the internal man are like heat and light in the external corporeal man, for which reason the former are represented by the latter.

 

이것이 광명체들을 ‘하늘의 궁창에 있어’, 곧 속사람 안에 두신 이유입니다. It is on this account that luminaries are said to be “set in the expanse of heaven,” or in the internal man;

 

큰 광명체는 그것의 의지 안에, 작은 광명체는 그것의 이해 안에 a great luminary in its will, and a lesser one in its understanding;

 

마치 해의 빛이 그 빛이 닿는 대상이 있어야만 볼 수 있는 것처럼 이들 사랑과 신앙은 의지와 이해로만, 즉 의지와 이해가 겉으로 표현될 때만 나타나는 것입니다. but they appear in the will and the understanding only as does the light of the sun in its recipient objects.

 

의지가 사랑의 옷을, 이해, 이성이 진리, 신앙의 옷을 입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주님의 자비입니다. It is the Lord’s mercy alone that affects the will with love, and the understanding with truth or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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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68-181

 

사람의 사후, 죽음에서 깨어나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는 것

THE RESUSCITATION OF MAN FROM DEATH,

AND HIS ENTRANCE INTO ETERNAL LIFE

 

 

168. 사람이 몸과 함께 지내던 삶에서 영원한 삶으로 어떻게 옮겨가는지 그 연결되는 순서대로 설명해도 좋다는 허락을 저는 주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사람들이 부활에 관한 이런 사실들을 알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이 이야기는 제가 누구한테 들은 게 아니라 저 자신, 직접 체험한 것입니다. 주님은 제가 직접 체험해 보고 전하게 하셨습니다. Being permitted to describe in connected order how man passes from the life of the body into the life of eternity, in order that the way in which he is resuscitated might be known, this has been shown me, not by hearing, but by actual experience.

 

 

169. 저는 무감각상태, 곧 육체적으로 감각을 느낄 수 없는 상태로 내려갔습니다. 이 상태는 거의 죽어가는 사람의 상태이지만 저의 내적 생명은 손상되지 않은 채 유지되고 있었고, 계속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있었으며, 생명을 위한 숨을 충분히 쉴 수 있었는데, 끝에 가서는 무언의 호흡이 되었습니다. 저를 이런 신비한 상태에 들어가게 하신 것은, 죽음을 완료하고, 그리고 다시 깨어나는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저로 하여금 지각하고, 또 기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I was reduced into a state of insensibility as to the bodily senses, thus almost into the state of dying persons, retaining however my interior life unimpaired, attended with the power of thinking, and with sufficient breathing for life, and finally with a tacit breathing, that I might perceive and remember what happens to those who have died and are being resuscitated.

 

 

170. 심장 부분에 머무르는 천적 천사들이 있었는데, 이 심장으로 저는 그들과 연결된 것 같았습니다. 마침내 사고(思考, thought) 밖에는 제게 남아 있는 게 거의 없었고, 결과적으로 이 상태를 지각하는 것만 남았습니다. 이 상태로 몇 시간이 흘렀습니다. Celestial angels were present who occupied the region of the heart, so that as to the heart I seemed united with them, and so that at length scarcely anything was left to me except thought, and the consequent perception, and this for some hours.

 

 

171. 저는 영들의 세계에 있는 영들과 더 이상 커뮤니케이션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제가 몸의 생명으로부터 떠난 줄 알았습니다. I was thus removed from communication with spirits in the world of spirits, who supposed that I had departed from the life of the body.

 

 

172. 심장 부분에 머무르고 있던 천적 천사들 외에, 저의 머리에 천사 둘이 또 앉아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구나 하는 지각이 제게 주어졌습니다. Besides the celestial angels, who occupied the region of the heart, there were also two angels sitting at my head, and it was given me to perceive that it is so with everyone.

 

 

173. 제 머리에 앉아 있던 천사들은 완전한 침묵 가운데 있었습니다. 얼굴을 가지고 그들의 사고만 커뮤니케이션하면서 말이지요. 그래서 저는 또 다른 얼굴이 제 위에 드리워지는 것을 지각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는 둘이었지요. 거기에 천사가 둘이 있었으니까요. The angels who sat at my head were perfectly silent, merely communicating their thoughts by the face, so that I could perceive that another face was as it were induced upon me; indeed two, because there were two angels.

 

천사들은 자기들의 얼굴이 받아들여짐을 통해서 그 사람이 죽었음을 압니다. When the angels perceive that their faces are received, they know that the man is dead.

 

 

174. 천사들의 얼굴 인식이 완료되면, 그들은 입 부분에 대한 무슨 변화를 유발하였고, 그렇게 해서 그들의 생각과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졌는데, 이렇게 입 부분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 천적 천사들에게는 흔한 일입니다. 주님의 허락으로 그들이 생각으로 말하는 것을 저는 지각할 수 있었습니다. After their faces had been recognized, they induced certain changes about the region of the mouth, and thus communicated their thoughts, for it is customary with the celestial angels to speak by the province of the mouth, and it was permitted me to perceive their cogitative speech.

 

 

175. 방부처리를 한 시신에서 나는 것 같은 그런 향내가 지각되었습니다. 천적 천사들이 나타날 때면 시신에서 나는 향이 무슨 달콤하고 신비로운 향기처럼 지각되는데, 이는 악한 영들로 하여금 접근하지 못 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An aromatic odor was perceived, like that of an embalmed corpse, for when the celestial angels are present, the cadaverous odor is perceived as if it were aromatic, which when perceived by evil spirits prevents their approach.

 

 

176. 그 사이 저는 심장 부근이 천적 천사들과 더욱 더 단단히 결합된 상태로 지속되고 있었음을 지각했는데요, 그것은 또한 심장 박동 상태를 보고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Meanwhile I perceived that the region of the heart was kept very closely united with the celestial angels, as was also evident from the pulsation.

 

 

177. 사람은 임종 시 누구나 경건하고 거룩한 생각을 품는데 이때 천적 천사들은 그 사람이 계속해서 그런 생각 안에 머물러 있도록 그를 케어한다는 생각이 제 안에 스며들었습니다. It was instilled to me that man is kept engaged by the angels in the pious and holy thoughts which he entertained at the point of death;

 

또한 임종 중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때 영생을 생각하지, 구원이나 행복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는 것, 그래서 천사들도 그들이 계속 영생을 생각하도록 돕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도 스며들었습니다. and it was also instilled that those who are dying usually think about eternal life, and seldom of salvation and happiness, and therefore the angels keep them in the thought of eternal life.

 

 

178. 이 생각 안에서 그들은 천적 천사들에 의해 상당히 오랜 시간 머무르게 되는데, 이런 상태는 천적 천사들이 떠나기 전까지 계속됩니다. 그러고 나서는 이제 깨어나게 되는데, 이때부터는 영적 천사들의 차례가 됩니다. In this thought they are kept for a considerable time by the celestial angels before these angels depart, and those who are being resuscitated are then left to the spiritual angels, with whom they are next associated.

 

그러는 동안은 그들은 ‘내가 지금 살아 있는 데는 몸 안이야...’ 하는 흐릿한 생각 가운데 있습니다. Meanwhile they have a dim idea that they are living in the body.

 

 

179. 몸의 장기들이 차가워지기 시작하면 곧 모든 생기(生氣, vital substances)가 사람으로부터 분리됩니다. 이 생기들이 사람 몸 어디에 있든, 심지어 천 갈래 미궁 교차로 구석구석 숨어 있다 하더라도 말이지요. 이처럼 사람 몸에 아무런 생기도 남아 있지 못 하게 하는 것, 이것은 주님의 자비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생기가 몸에서 분리되는 것은 사실은 주님이 생기를 죽 끌어당기시는 것인데, 이런 종류의 살아 있고 매우 강력한 끌어당김을 저는 이미 이 체험 시작 단계에서 벌써 지각할 수 있었습니다. As soon as the internal parts of the body grow cold, the vital substances are separated from the man, wherever they may be, even if inclosed in a thousand labyrinthine interlacings, for such is the efficacy of the Lord’s mercy (which I had previously perceived as a living and mighty attraction) that nothing vital can remain behind.

 

 

180. 머리에 앉아 있던 천적 천사들은 이후 제가 깨어난 것 같은 저 상태가 된 이후에도 한동안 저와 함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말없이 무언으로만 대화했습니다. The celestial angels who sat at the head remained with me for some time after I was as it were resuscitated, but they conversed only tacitly.

 

그들의 생각으로 하는 말들을 들으면서 저는 지금 그들은 제 안의 모든 오류들과 거짓들로 하여금 환히 빛 가운데 드러나도록 하고 있다는 것을 지각했습니다. 그들은 그것들을 향해 빙그레 미소는 짓지만 아무런 의사결정은 내리지 않았는데 마치 그런 거엔 아무 관심도 없는 듯 보였습니다. It was perceived from their cogitative speech that they made light of all fallacies and falsities, smiling at them not indeed as matters for derision, but as if they cared nothing about them.

 

그들의 스피치는 무언의 스피치입니다. 소리를 피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런 종류의 언어를 가지고 그들은 자기들이 처음 만나는 영들과 대화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Their speech is cogitative, devoid of sound, and in this kind of language they begin to speak with the souls with whom they are at first present.

 

 

181. 이렇게 해서 천적 천사들로 말미암아 깨어나게 된 사람은 그러나 아직 무슨 모호한 생명만 가지고 있습니다. As yet the man, thus resuscitated by the celestial angels, possesses only an obscure life;

 

이제 시간이 되어 영적 천사들의 차례, 곧 영적 천사들이 이 사람을 돌볼 차례가 되어 잠시 후, 이들이 도착하게 되면 드디어 천적 천사들은 이 사람을 떠납니다. 임무 교대가 일어난 것이지요. but when the time comes for him to be delivered to the spiritual angels, then after a little delay, when the spiritual angels have approached, the celestial depart;

 

이제부터는 이들 영적 천사들이 이 사람을 위해 뭔가를 하는 모습이 보였는데 그것은 앞서 천적 천사들이 빛과 관련하여 먼저 준비해 놓은 것인데, 이 사람이 이제 그 빛으로 말미암아 도움을 받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이어지는 이야기는 다음 장 시작에 앞서 마저 다루겠습니다. and it has been shown me how the spiritual angels operate in order that the man may receive the benefit of light, as described in the continuation of this subject prefixed to the following chapter.

 

2021-04-05(D2)-창세기(창2 클로징, AC.168-181), 'The Resuscitation Of Man From Death'.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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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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