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160-162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Therefore shall a man leave his father and his mother, and shall cleave unto his wife, and they shall be one flesh. (창2:24)

 

 

160. ‘부모를 떠나는 것’은 속사람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입니다. 겉을 품고 낳는 것은 속이기 때문입니다. To “leave father and mother” is to recede from the internal man, for it is the internal which conceives and brings forth the external;

 

그의 아내와 합하는 것’은 속이 겉 안에 있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to “cleave unto his wife” is that the internal may be in the external;

 

한 몸을 이루는 것’은 그들이 거기서 함께한다는 것입니다. to “be one flesh,” that they are there together;

 

앞서는 속사람과 속으로 말미암은 겉이 영이었기 때문이지만 지금은 그들은 육이 되었습니다. and because previously the internal man and the external from the internal were spirit, but now they have become flesh.

 

천적, 영적 생명은 그 own과 하나 될 수 있을지도 몰라 그 own 곁에 있게 되었습니다. Thus was celestial and spiritual life adjoined to the own, that they might be as one.

 

 

161. 이들 태고교회의 후손은 악하지는 않았고, 여전히 선했습니다. This posterity of the most ancient church was not evil, but was still good;

 

그들은 겉사람으로나 자신들의 own으로 살아가고 싶어 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그들에게 주님에 의해 허락된 것입니다. and because they desired to live in the external man or in their own, this was permitted them by the Lord;

 

하지만 자비롭게도 영적, 천적인 것은 그 안에 소리 없이 스며들고 있었습니다. what is spiritual celestial, however, being mercifully instilled therein.

 

속과 겉이 어떻게 하나로 움직이는 것일까, 어떻게 그들은 하나로 보이는 걸까 하는 것은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 흘러 들어가는 인플럭스(influx, 入流)를 모르고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How the internal and external act as a one, or how they appear as a one, cannot be known unless the influx of the one into the other is known.

 

이것을 좀 이해하기 위해 예를 들어, 어떤 행위를 하나 보면, In order to conceive some idea of it, take for example an action.

 

어떤 행위가 그 안에 이웃사랑, 즉 사랑과 신앙이 없으면, 그리고 그 안에 주님이 안 계시면, 그 행위는 이웃사랑의 일이라고, 신앙의 열매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Unless in an action there is charity, that is, love and faith, and in these the Lord, that action cannot be called a work of charity, or the fruit of faith.

 

 

162. 진리와 옳음에 관한 모든 법들은 천적 기원들로부터, 천적 인간이라는 생명의 질서로부터 흘러옵니다. All the laws of truth and right flow from celestial beginnings, or from the order of life of the celestial man.

 

천국 전체가 천적 인간인데, 그것은 주님 홀로 천적 인간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천국의 모든 것 안에 계시는 모든 것 되시기 때문에 그들을 가리켜 ‘천적이다’ 하는 것입니다. For the whole heaven is a celestial man because the Lord alone is a celestial man, and as he is the all in all of heaven and the celestial man, they are thence called celestial.

 

모든 진리와 옳음의 법이 천적 기원들로부터, 천적 인간이라는 생명의 질서로부터 내려오기 때문에 결혼들에 관한 법도 어떤 특별한 방식으로 내려옵니다. As every law of truth and right descends from celestial beginnings, or from the order of life of the celestial man, so in an especial manner does the law of marriages.

 

지상의 모든 결혼들은 그 기원을 반드시 천적 결혼, 혹은 천국의 결혼에 두어야 하며, 또한 따라야 합니다. It is the celestial (or heavenly) marriage from and according to which all marriages on earth must be derived;

 

이 결혼은 한 분 주님과 하나의 천국, 혹은 주님이 머리이신 하나의 교회와 같은 그런 것입니다. and this marriage is such that there is one Lord and one heaven, or one church whose head is the Lord.

 

이런 기원을 가진 결혼들에 관한 법은 그래서 한 남편에게는 한 아내여야 한다는 것이며, 그 결혼들이 천적 결혼임을 이런 케이스로 표현할 때, 그 결혼들은 천적 인간의 전형이 됩니다. The law of marriages thence derived is that there shall be one husband and one wife, and when this is the case they represent the celestial marriage, and are an exemplar of the celestial man.

 

이 법은 태고교회 사람들에게는 다 잘 아는 법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속사람한테는 아예 심비(心碑)에 기록되기까지 한 법이었고, 그래서 그 시대에는 한 남자에 반드시 한 아내요, 그렇게 해서 하나의 가정이 탄생하곤 하였습니다. This law was not only revealed to the men of the most ancient church, but was also inscribed on their internal man, wherefore at that time a man had but one wife, and they constituted one house.

 

그러나 그들의 후손이 더 이상 속사람 되기를 중단, 겉사람이 되었을 때, 그들은 아내들을 여럿 두었습니다. But when their posterity ceased to be internal men, and became external, they married a plurality of wives.

 

태고교회 사람들은 그들의 결혼으로 천적 결혼을 표현하였기 때문에, 결혼애를 통해 그들은 천국과도 같은 행복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가 기울어졌을 때, 그들은 더 이상 결혼애로 인한 그 어떠한 행복도 지각할 수 없었습니다. 대신 숫자로 만족해야 했는데, 겉 사람의 기쁨이라는 것은 그저 이런 종류의 만족에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Because the men of the most ancient church in their marriages represented the celestial marriage, conjugial love was to them a kind of heaven and heavenly happiness, but when the church declined they had no longer any perception of happiness in conjugial love, but in pleasure from a number, which is a delight of the external man.

 

이것을 주께서는 ‘마음의 완악함’이라 하신 것이며, 이런 이유로 모세가 그들에게 여러 명의 아내를 둘 수 있도록 허락한 것이라고 친히 가르치십니다. This is called by the Lord “hardness of heart,” on account of which they were permitted by Moses to marry a plurality of wives, as the Lord himself teaches:

 

5...너희 마음이 완악함으로 말미암아 이 명령을 기록하였거니와 6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 7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8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9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더라 For the hardness of your heart Moses wrote you this precept, but from the beginning of the creation God made them male and female. For this cause shall a man leave his father and mother, and shall cleave unto his wife, and they twain shall be one flesh; wherefore they are no more twain but one flesh; what therefore God hath joined together let not man put asunder (막10:5-9)

 

2021-04-02(D6)-창세기(창2,24, AC.160-162),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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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56-159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And the man said, This now is bone of my bones, and flesh of my flesh; therefore she shall be called wife, because she was taken out of man [vir]. (창2:23)

 

 

156.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은 겉사람의 own을, ‘’는 이 own이 그다지 생명 공급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그리고 ‘’은 생명 공급을 받은 own을 각각 상징합니다. Bone of bones and flesh of flesh” signify the own of the external man; “bone,” this own not so much vivified, and “flesh,” the own that is vivified.

 

나아가 아담은 속사람을 상징하며, 이어지는 구절에 서술된 대로 겉사람과 커플을 이룸으로써 앞서 ‘여자’라 부르던 own이 여기서는 ‘아내’로 명명됩니다. Man, moreover, signifies the internal man, and from his being so coupled with the external man as is stated in the subsequent verse, the own which was before called “woman” is here denominated “wife.

 

한글 번역에는 빠졌지만, ‘이제’는 상태가 바뀌었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Now signifies that it was thus effected at this time because the state was changed.

 

 

157.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는 표현이 그 안에 속사람이 들어 있는 겉사람의 own을 상징한다는 점 때문에, 고대에는 자기들의 own [proprii]이라 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을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로 불렀습니다. 가계, 혈통, 그 밖의 무슨 관계든지 말이지요. Inasmuch as “bone of bones and flesh of flesh” signified the own of the external man in which was the internal, therefore in ancient times all those were called “bone of bones and flesh of flesh” who could be called their own [proprii], and were of one house, or of one family, or in any degree of relationship.

 

그래서 라반이 야곱에게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Thus Laban said of Jacob,

 

너는 참으로 내 혈육이로다 Surely thou art my bone and my flesh (창29:14)

 

아비멜렉도 그의 어머니의 형제들과 그의 외조부의 집 온 가족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And Abimelech said of his mother’s brethren, and of the family of the house of his mother’s father,

 

나는 너희와 골육임을 기억하라 Remember that I am your bone and your flesh (삿9:2)

 

이스라엘 지파들 역시 다윗에게 찾아와 자신들을 이렇게 말하고요, The tribes of Israel also said of themselves to David,

 

보소서 우리는 왕의 한 골육이니이다 Behold, we are thy bone and thy flesh (삼하5:1)

 

 

158. 아담이 속사람, 같은 말이지만, 지성과 지혜의 사람을 상징한다는 것은 이사야를 보면 분명합니다. That man signifies the internal man, or what is the same, one who is intelligent and wise, is plain from Isaiah:

 

내가 본즉 한 사람도 없으며 내가 물어도 그들 가운데에 한 말도 대답할 조언자가 없도다 I behold, and there is no man [vir], even among them, and there is no counselor (사41:28)

 

지혜와 지성을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뜻이지요. meaning none wise and intelligent.

 

위 본문의 ‘사람’은 라틴어로 ‘비르(vir)’입니다. 라틴어에 ‘사람’이라는 뜻의 ‘호모(homo)’라는 말이 따로 있지만, ‘호모’에 비해 ‘비르’는 지혜와 지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며, 위 본문에서는 바로 이 ‘비르’가 사용되었습니다.

 

예레미야도 보면은, Also in Jeremiah: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Run ye to and fro through the streets of Jerusalem, and see if ye can find a man, if there be any executing judgment, seeking the truth (렘5:1)

 

여기 ‘정의를 행하는 자’는 지혜로운 사람을, ‘진리를 구하는 자’는 지성인을 각각 의미합니다. One who executes judgment” means a wise person; and “one who seeks the truth,” an intelligent one.

 

 

159. 하지만 먼저 천적인 사람의 상태에 대한 선이해 없이는 어떻게 이런 일들이 그런 경우가 되는지 지각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But it is not easy to perceive how the case is with these things unless the state of the celestial man is understood.

 

천적인 사람 안에서 속사람은 겉사람과 뚜렷이 구별되는데요, 실제로 천적인 사람은 속사람에게 속한 것과 겉사람에게 속한 것, 그리고 겉사람이 주님으로 말미암아 속사람을 통해서 어떻게 다스림을 받는지를 지각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In the celestial man the internal man is distinct from the external, indeed so distinct that the celestial man perceives what belongs to the internal man, and what to the external, and how the external man is governed through the internal by the Lord.

 

그런데 이런 천적인 사람들의 후손의 상태가 변했습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own을 간절히 원했기 때문인데요, 그것은 겉사람에게 속한 것이었고, 그 결과, 그들은 변질되어 속사람은 겉사람하고는 완전히 다른 것이라는 사실을 더 이상 지각 조차 못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대신 속 사람이란 건 그저 겉 사람과 같은 것인가보다 정도로만 여기게 되었지요. 이런 종류의 어처구니없는 퍼셉션은 사람이 자신의 own을 향해 기울어질 때 생기기 때문입니다. But the state of the posterity of this celestial man, in consequence of desiring their own, which belongs to the external man, was so changed that they no longer perceived the internal man to be distinct from the external, but imagined the internal to be one with the external, for such a perception takes place when man inclines to his own.

 

2021-04-01(D5)-창세기(창2,23, AC.156-159),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여자'.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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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55

 

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And the rib which Jehovah God had taken from the man, he built into a woman, and brought her to the man. (2:22)

 

 

155.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라는 말씀에는 지금까지 누가 이 말씀을 글자로만 연구하여 발견할 수 있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이 사실은 그 안에 봉인되어 있습니다. The words “a rib was built into a woman” have more things inmostly concealed in them than it is possible for anyone ever to discover from the letter;

 

주님의 말씀은 그 가장 내적 의미들로는 주님 자신과 주님의 나라에 관한 것이며, 말씀의 모든 생명이 여기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for the Word of the Lord is such that its inmost contents regard the Lord himself and his kingdom, and from this comes all the life of the Word.

 

위 본문은 그래서 사실은 그 가장 내적 의미들로는 천국 결혼에 관한 것입니다. And so in the passage before us, it is the heavenly marriage that is regarded in its inmost contents.

 

천국 결혼은 주님의 생명으로 생생해진 own, 또는 생생해질 때의 own 가운데 존재하는 본성이 있으며, 이런 천국 결혼을 가리켜 주님의 신부요 아내라고 합니다. The heavenly marriage is of such a nature that it exists in the own, which, when vivified by the Lord, is called the “bride and wife” of the Lord.

 

이렇게 사람의 생생해진 own은 모든 사랑의 선과 신앙의 진리에 관한 퍼셉션을 갖게 되며, 그 결과, 말로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는, 그런 행복과 결합된 모든 지혜와 지성을 갖게 됩니다. Man’s own thus vivified has a perception of all the good of love and truth of faith, and consequently possesses all wisdom and intelligence conjoined with inexpressible happiness.

 

그러나 이 생생해진 own, 곧 주님의 신부요 아내라 일컬음을 받는 이 own의 본성은 간결하게 설명될 수가 없는 본성입니다. But the nature of this vivified own, which is called the “bride and wife” of the Lord, cannot be concisely explained.

 

그래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살피는 정도로 충분할 것 같은데요, 천사들은 자기들이 주님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걸 지각한다는 것입니다. 이 생각의 끈을 놓을 경우, 그들조차 자기들은 자기들 힘으로 살아가는 것으로밖에는 모르는 존재들이지만 말입니다. Suffice it therefore to observe that the angels perceive that they live from the Lord, although when not reflecting on the subject they know no other than that they live from themselves;

 

그러나 그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애정 어린 본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천사들은 사랑의 선과 신앙의 진리로부터 아주 살짝만 이탈해도 금방 그 차이를 지각한다는 것인데요, 그 결과, 그들은 평화와 행복을 늘 즐겁게 누리는, 도저히 말로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는 상태 가운데 있게 됩니다. 자기들은 주님으로 말미암아 산다라는 사실을 지각하는, 천사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이 퍼셉션 가운데 그들이 있는 동안은 말입니다. but there is a general affection of such a nature that at the least departure from the good of love and truth of faith they perceive a change, and consequently they are in the enjoyment of their peace and happiness, which is inexpressible, while they are in their general perception that they live from the Lord.

 

아래 예레미야에서 의미하는 own 역시 바로 이것입니다. It is this own also that is meant in Jeremiah, where it is said:

 

반역한 딸아 네가 어느 때까지 방황하겠느냐 여호와가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였나니 곧 여자가 남자를 둘러싸리라 Jehovah hath created a new thing in the earth, a woman shall compass a man (Jer. 31:22)

 

이 구절 역시 그 상징하는 바는 바로 천국 결혼입니다. 여기서 여자는 주님의 생명을 공급받아 생생해진 own을 의미하는데, ‘둘러싸리라는 표현으로 서술되었지요. own은 마치 살로 대신 채워진 갈빗대가 심장을 둘러싸 보호하듯 그렇게 둘러싸는 것입니다. It is the heavenly marriage that is signified in this passage also, where by a “woman” is meant the own vivified by the Lord, of which woman the expression “to compass” is predicated, because this own is such that it encompasses, as a rib made flesh encompasses the heart.

2021-03-31(D4)-창세기(창2,22, AC.155), '갈빗대라는 own이 여자라는 own으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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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54

 

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And the rib which Jehovah God had taken from the man, he built into a woman, and brought her to the man. (2:22)

 

 

154. 악과 거짓 말고도 뭐가 가능하다면 그것은 인간의 own이 아니며, 인간의 own으로부터는 그런 게 가능할 수가 없습니다. Nothing evil and false is ever possible which is not man’s own, and from man’s own, 인간의 own은 그 자체가 악이며, 그 결과, 인간은 그저 악하고 거짓될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실상을 저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통해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영들의 세계에서는 in the world of spirits, 인간의 own에 관한 것들이 the things of man’s own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프리젠테이션이 되는데, 그때 그 생김새라는 것이 너무나 어글리하고 기괴하여 어떻게 말로 표현한다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할 정도로 보기 흉측합니다. own의 본성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말입니다. 자신의 own으로부터 이런 실상을 목격한 사람은 he to whom the things of the own are visibly exhibited 공포에 가까운 충격을 받고, 마치 악마로부터 도망치듯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생명으로 생생한 삶을 살아온 사람의 own에 관한 것들은 the things of man’s own that have been vivified by the Lord 참으로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나타납니다. 주님의 천적인 것들을 담을 수 있는 삶에 따라 according to the life to which the celestial of the Lord can be applied 다양하게 말이지요. 실제로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기부의 삶을 살았거나 활력 넘치는 삶을 살아온 사람들은 those who have been endowed with charity, or vivified by it, 가장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소년 소녀들로 나타납니다. 순진무구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those who are in innocence, 가슴에는 여러 다양한 화환 장식으로 두르고, 머리에는 왕관들을 쓰며, 다이아몬드 같은 아우라 가운데 자랑스럽게 지내는, 가장 내적 천국에서 오는 행복 퍼셉션을 가진 having a perception of happiness from the very inmost 벌거벗은 유아들로 나타납니다.

 

2021-03-30(D3)-창세기(창2,22, AC.154-155), 'man’s own의 영적 실상과 천국 결혼 아케이나'.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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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51-153

 

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And the rib which Jehovah God had taken from the man, he built into a woman, and brought her to the man. (2:22)

 

 

151. ‘만드시고는 쓰러져 있는 것을 일으켜 세우는 to raise up what has fallen 것을, ‘갈빗대는 생명 공급을 받지 못한 man’s own, ‘여자는 주님의 생명을 공급받은 man’s own,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his own인 것이 what is his own 그에게 승인되었음을 was granted him 각각 상징합니다.

 

이 교회 후손은 그들의 선조처럼 천적 인간이 되고자 하는 to be a celestial man 대신, 자기들의 own을 가지고 스스로 살아가기를 to be under their own self-guidance 원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그들의 own을 향해 기울어졌고, 그들이 원하던 삶이 그들에게 승인되었습니다. it was granted to them. 그러나 여전히 이 own이라고 하는 것에 주님으로부터 생명이 공급되었으며, still an own vivified by the Lord, 이런 연유로, own을 가리켜 여자, 나중에는 아내라 한 것입니다.

 

 

152. 여자는 남자의 갈빗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과, 지금 이 아케이나에는 사람들이 지금까지 알아 왔었던 것보다 훨씬 더 깊은 아케이나가 들어 있음을 볼 수 있으려면 누구든지 매우 주의를 집중할 것이 요구됩니다.

 

여자the woman 의해 man’s own이 상징되고 있다는 사실은 속은 사람이 바로 그 여자였다는 it was the woman who was deceived 사실을 가지고 알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의 own, 혹은 같은 말인데요, or what is the same, 그동안 자아 사랑과 세상 사랑 말고는 어떤 것도 사람을 속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for nothing ever deceives man but his own,

 

 

153.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to be built into a woman 하였지만 이것은 그 여자가 전에 거듭남을 다룰 때처럼, ‘창조’ created 지음’ formed, 혹은 만들어짐made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 이유는, ‘만드시고to build 쓰러져 있는 것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는 말씀에서 만드시고to build 가지고는 악들을, ‘일으켜 세우는 것to raise up 가지고는 거짓들을, 그리고 새롭게 함to renew 가지고는 둘 다를 서술하는데 사용되곤 하였습니다.

 

이사야입니다.

 

그들은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 옛부터 무너진 곳을 다시 일으킬 것이며 황폐한 성읍 곧 대대로 무너져 있던 것들을 중수할 것이며 (61:4)

 

이곳과 다른 구절들에서, ‘황폐하였던 곳wastes 악들을, ‘무너진 곳desolations 거짓들을 상징하고 있으며, ‘쌓다to build 전자, ‘다시 일으키다to set up again 후자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이 차이는 this distinction 선지자들에 의해 다른 곳, 가령 예레미야 같은 데서 주의 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처녀 이스라엘아 내가 다시 너를 세우리니 네가 세움을 입을 것이요 네가 다시 소고를 들고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춤추며 나오리라 (31:4)

 

2021-03-29(D2)-창세기(창2,22, AC.151-153), '만드시고, 갈빗대, 여자, 이끌어 오시고'.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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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47-148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And Jehovah God caused a deep sleep to fall upon the man, and he slept; and he took one of his ribs, and closed up the flesh in the place thereof. (2:21)

 

 

147. 가슴을 구성하는 뼈들 중 하나인 갈빗대a rib 사람의 것을 man’s own 의미합니다. 그 안에는 활기라고는 거의 없지만, there is but little vitality, 그러나 그에게는 정말 아주 소중한 것입니다. indeed an own which is dear to him.

 

살로 대신flesh in the place of the rib 그 안에 활기가 있는 어떤 것을 의미합니다. an own in which there is vitality.

 

깊이 잠들게a deep sleep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데요, 그는 바로 이 상태에 놓여 the state into which he was let 자기 자신이 이것을 가지는 줄로 여겼던 것입니다. so that he might seem to himself to have what is his own.

 

이 상태는 잠든 상태와 닮았는데요, 그것은 그가 이 상태에 있는 동안은 자기가 살아있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전부 다 자기 스스로 하는 줄로만 알기 때문입니다. he knows not but that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는 것을 that this is false 알게 되면서부터 그는 마치 깊은 잠에서 깨어나듯 잠을 깨며, he is then roused as it were out of sleep, 정신을 차리게 됩니다.

 

 

148. 사람의 것, 사람에게 고유한 어떤 것, 실제로 이것은 사람에게는 무척 소중한 건데요, 이것을 what is man’s own 가리켜 갈빗대’, a rib 가슴을 구성하는 뼈들 중 하나인 which is a bone of the chest ‘갈빗대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태고인(太古人, the most ancient people)들 사이에서는 가슴은 이웃을 향한 사랑을 love toward the neighbor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the chest signified charity. 가슴에는 두 가지, 심장과 폐가 the heart and the lungs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뼈는 아주 언짢은 것들을 the viler things 상징했지요. 뼈에는 활기라는 게 거의 없기 a minimum of vitality 때문입니다. 반면, 살은 활기를 띤 그런 것을 가리켰습니다. while flesh denoted such as had vitality.

 

태고교회 사람들에게 알려진 가장 깊은 아케이나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상징들에 관한 건데요, the ground of these significations 이런 아케이나가 앞으로 주님의 신적 자비와 관련되어 계속됩니다. concerning which of the Lord’s Divine mercy hereafter.

2021-03-27(D7)-창세기(창2,21, AC.147-148), '갈빗대, 살로 대신, 깊이 잠들게'.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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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44-146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And Jehovah God formed out of the ground every beast of the field, and every fowl of the heavens, and brought it to the man to see what he would call it; and whatsoever the man called every living soul, that was the name thereof.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And the man gave names to every beast, and to the fowl of the heavens, and to every wild animal of the field; but for the man there was not found a help as with him. (2:19-20)

 

 

144. ‘이름으로 부르다to call by name ‘퀄러티 파악하기to know the quality 상징한다고 하는 이유는 고대인들이 the ancients 어떤 것의 에센스를 the essence of a thing ‘이름을 가지고 이해했기 때문이며, ‘이름을 보고 이름으로 부르기를 가지고 by seeing and calling by name ‘퀄러티 파악하기를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자기의 아들, 딸들의 이름을 어떤 사물의 상징을 따라 according to the things which were signified 주었던 이유가 바로 이런 연유 때문입니다. 모든 이름은 그 이름 안에 뭔가 고유한 것이 들어 있었고, every name had something peculiar in it, 그들은 그것을 가지고 from which, and by which, 그들 자녀의 뿌리와 본성을 the origin and the nature of their children 알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 작업을 하다가 나중에 in a future part of this work 주님의 신적 자비로 알게 되겠지만, 우리는 앞으로 야곱의 열두 아들을 다루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이름들에는 그 이름으로 명명된 것들의 원천과 퀄러티가 들어 있다는 것 the names implied the source and quality of the things named 말고는 이름으로 부르다라는 표현 안에 무슨 다른 건 없습니다. nothing else was understood by calling by name 이것이 그들 가운데 일상 언어생활 모드였습니다. the customary mode of speaking 그러나 이걸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은 이름들에 의해 그런 것들이 상징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혼란스러워 할 것입니다.

 

 

145. 말씀에서도 역시 이름을 가지고 어떤 것의 에센스를 상징했고, 그것의 퀄러티 파악하는 것을 이름을 보고, 이름으로 부르기를 가지고 상징했습니다. 이사야입니다.

 

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 네 이름을 부르는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을 네가 알게 하리라 내가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자 이스라엘 곧 너를 위하여 네 이름을 불러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네게 칭호를 주었노라 (45:3-4)

 

이 구절에서, ‘이름을 부르는 것칭호를 주는 것to call by name and to surname 퀄러티를 미리 아는 것을 to foreknow the quality 상징합니다. 다시,

 

이방 나라들이 네 공의를, 뭇 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요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며 (62:2)

 

여기서는 전후 구절들에서 볼 수 있는 새로운 캐릭터가 될 것을 to become of another character 상징하고 있습니다. 다시,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43:1)

 

이 말씀은 주께서 이스라엘의 퀄러티를 아심을 he knew their quality 가리킵니다. 다시 같은 선지서에서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40:26)

 

이 역시 주님은 그 모든 만물을 아심을 he knew them all 의미합니다. 계시록입니다.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3:4-5)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13:8)

 

이 구절들에서 이름들은 단순히 이름들을 의미하는 게 절대 아니고, are by no means meant names 대신 퀄러티들을 의미합니다. 천국에서는 어떤 사람도 지상에서 그가 사용하던 이름이 아닌, 그 사람의 퀄러티로만 알려집니다. nor is the name of anyone ever known in heaven, but his quality.

 

 

146. 지금까지 다룬 내용들을 가지고, 그 상징하는 바가 무엇인지 연결을 해봅니다.

 

18절에,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하시고, 그리고 지금 짐승들새들을 언급하십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라고 반복하십니다.

 

이 전체적인 상황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사람이 비록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 곧 선에 관한 애정들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에 관해 자기 자신의 퀄리티를 알도록 허락을 받았어도, , 사람은 주님의 은혜로 주님의 선과 진리에 대해 자신의 어떠함을 가늠할 수 있는 참 황송한 대접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여전히 자신의 것(own)을 향해 기울어졌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지요. 우리는 주님의 융숭한 대접을 받고 있으면서도 늘 주님의 것보다는 우리 자신의 것에 시선을 향하며 참 철딱서니 없이들 살고 있으니까요... 아담처럼 이렇게 자신의 것을 원하는 사람들, 디자이어하는(to desire) 사람들은, 본의 아닐지는 모르지만 주님의 것을 가볍게 여기기 시작합니다. 좀 표현이 어떨지 모르지만 경멸한다 하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말이지요. 분명한 건, 이런 모습, 이런 인간 실존이야말로 정말 인간의 비참이 어떤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 참으로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아니면 인간은 도저히 구원 받을 수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2021-03-26(D6)-창세기(창2,19-20, AC.144-146), '이름을 부르다'.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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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42-143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And Jehovah God formed out of the ground every beast of the field, and every fowl of the heavens, and brought it to the man to see what he would call it; and whatsoever the man called every living soul, that was the name thereof.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And the man gave names to every beast, and to the fowl of the heavens, and to every wild animal of the field; but for the man there was not found a help as with him. (창2:19-20)

 

 

142. ‘각종 들짐승으로는 beasts 천적인 애정들을 celestial affections, ‘공중의 각종 새로는 fowls of the heavens 영적인 애정들을 spiritual affections 각각 상징하고 있는데요, 다시 말하면, 전자는 의지와 관련된 것들을 things of the will, 후자는 사고력과 관련된 것들을 things of the understanding 각각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to bring them to the man to see what he would call them 그로 하여금 그들의 퀄러티를 알도록 하시는 것이며 to enable him to know their quality,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his giving them names 그가 그들의 퀄러티를 알았다는 he knew it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주께서 자기에게 이끄신 선에 관한 애정들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의 퀄러티에 관해 the quality of the affections of good and of the knowledges of truth that were given him by the Lord, 알게 되었다 할지라도 여전히 그는 자신의 고유속성으로 기울어지려는 경향이 있고 still he inclined to his own, 이것을 앞서와 같은 용어들로 표현한 것이 바로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입니다 there was not found a help as with him..

 

 

143. 고대에는 인간의 애정들과 그런 비슷한 것들을 짐승들’ beasts, ‘동물들animals 가지고 표현했다고 말씀을 드리면 현대인들(18세기 중반, 1,750년대 즈음 유럽, 역주)은 아마도 무척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때 사람들은 천적 사고들을 하고 있었고 but as the men of those times were in a celestial idea, 그런 것들은 영들의 세계에서는 in the world of spirits 동물들, 실제로 그런 것들과 닮은 동물들을 가지고 in fact by such animals as they are like 표현되기 때문에, 그들이 그런 식으로 말을 할 때는 무슨 다른 걸 가리키는 게 아니었습니다. when they spoke in that way they meant nothing else.

 

말씀에서도 짐승들이 언급되는 부분들이 무슨 다른 걸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체적이든 세부적이든 말이지요. 선지서 전체가 그런 걸로 가득한데요, 그래서 각각의 짐승들이 특별히 무엇을 가리키는지를 모르면 말씀에 들어있는 그 속뜻을 이해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앞서 살핀 것처럼, 짐승들은 두 종류, 곧 악하거나 유해하든지, 그리고 선하거나 무해하든지 하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선한 짐승들은 선한 애정들을 good affections 상징하는데, 예를 들면, sheep, 어린 양들 lambs, 비둘기들 doves 같은 경우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다루고 있는 인간이 천적이거나 천적, 영적 인간이기 때문에 as it is the celestial, or the celestial spiritual man, 여기서는 이런 의미입니다. such are here meant.

 

보통 짐승들이 애정들을 상징한다는 것은 ‘beasts’ in general signify affections 앞서 주욱 보셨을 텐데요, 45, 46번 글에서 몇몇 구절들을 가지고 확인했기 때문에 더 무슨 확인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참고로, 45, 46번 글에서 참조한 구절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선한 짐승들입니다.

 

내가 돌이켜 너희와 함께 하리니 사람이 너희를 갈고 심을 것이며 내가 너희 위에 사람과 짐승을 많게 하되 그들의 수가 많고 번성하게 할 것이라 너희 전 지위대로 사람이 거주하게 하여... (36:9, 11 거듭남을 다루는)

 

요엘서입니다.

 

들짐승들아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들의 풀이 싹이 나며... (2:22)

 

다윗 또한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함으로 주 앞에 짐승이오나 (73:22)

 

예레미야입니다. 거듭남을 다루는 가운데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뿌릴 날이 이르리니 ...내가 깨어서 그들을 세우며 심으리라... (31:27-28)

 

다음은 악한 짐승들입니다.

 

호세아서에 보면

 

그 날에는 내가 그들을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며... (2:18)

 

욥기에

 

...들짐승을 두려워하지 말라 들에 있는 돌이 너와 언약을 맺겠고 들짐승이 너와 화목하게 살 것이니라 (5:22-23)

 

에스겔입니다.

 

내가 또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맺고 악한 짐승을 그 땅에서 그치게 하리니 그들이 빈 들에 평안히 거하며 수풀 가운데에서 잘지라 (34:25)

 

이사야는

 

장차 들짐승...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내어 ...마시게 할 것임이라 (43:20)

 

다시 에스겔입니다.

 

공중의 모든 새가 그 큰 가지에 깃들이며 들의 모든 짐승이 그 가는 가지 밑에 새끼를 낳으며 모든 큰 나라가 그 그늘 아래에 거주하였느니라 (31:6)

 

이것은 앗수르에 대한 말씀입니다. 앗수르는 영적인 사람을 상징합니다. 에덴동산에 비유되기도 합니다.

 

다윗입니다.

 

그의 모든 천사여 찬양하며... 너희 용들과... ...과수와... 짐승과 모든 가축과 기는 것과 나는 새며 (148:2, 7, 9-10)

 

여기서도 같은 것을 일컫는 것입니다. ‘용들’ whales, ‘과수’ fruit tree, ‘짐승’ wild animal, ‘가축’ beasts, ‘기는 것’ creeping thing, ‘나는 새’ fowl 등 이것들이 사람 속 무슨 살아 있는 원리들, 사람을 구성하는 내면의 어떤 중요한 것들을 상징하는 게 아니라면 여호와를 찬양하라,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라 결코 이렇게 진지하게 언급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선지자들은 가축beasts ‘땅의 짐승’ wild animals of the earth, 그리고 가축beasts ‘들의 짐승wild animals of the field 조심스럽게 구분했습니다. 하지만 사람 안의 선들은 가축이라 beasts 하였습니다. 천국에서 주님 곁에 가장 가까이 있는 자들을 생물이라 animals한 것처럼 말입니다. 에스겔에서도, 그리고 요한에서도 같습니다.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7:11)

 

또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 (19:4)

 

또한 자신들에게 전해진 복음을 들은 사람들을 가리켜 만민(creatures, 생물, 생명이 있는 존재)’이라 하셨습니다. 그들은 새롭게 재창조되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16:15)

 

2021-03-25(D5)-창세기(창2,19-20, AC.142-143), '들짐승 beasts, 애정 affections'.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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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40-141

 

2: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And Jehovah God said, It is not good that the man should be alone, I will make him a help as with him.

 

 

140.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a help as with him 사람의 새로운 고유속성을 man’s own 의미한다는 것은 이 고유속성의 본성 및 이어지는 내용들로부터 both from the nature of this own, and from what follows.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참고로, 아래는 own에 대한 원서 각주입니다. 라틴어 proprius에 대한 아주 정확한 번역이 own이며, 그뜻은 ‘...에 속한’, ‘...에게 배타적으로, 혹은 특별하게 속한’, ‘...에게 고유한이라고 합니다.

 

The Latin word proprium is the term used in the original text that in this and other places has been rendered by the expression “own.”

 

The dictionary meaning of propius, as an adjective, is “one’s own,” “proper,” “belonging to one’s self alone,” “special,” “particular,” “peculiar.” The neuter of this which is

the word proprium, when used as a noun means “possession,” “property”; also “a peculiarity,” “characteristic mark,” “distinguishing sign,” “characteristic.”

 

The English adjective “own” is defined by Webster to mean “belonging to,” “belonging exclusively or especially to,” “peculiar”; so that our word “own” is a very exact equivalent of proprius, and if we make it a noun in order to answer to the Latin proprium, we effect a very close translation. [Reviser]

 

그렇지만 이 교회에 속한, 지금 여기서 다루고 있는 이 사람에 관해 주님이 자비를 더하셔서 그에게 새로운 고유속성이 주어졌는데, was well disposed, an own was granted him, 이 속성이 그에게 얼마나 잘 어울리는 것이었는지 마치 원래부터 그 사람 본연의 타고난 속성처럼 보이는 it appeared as it were his own, 그런 것이었고, 그래서 일컫기를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이라 하신 것입니다.

 

 

141. 인간의 고유속성을 그 본성으로 설명하고자 하면 about man’s own in describing its nature with 무수히 많은 사실들을 언급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은 세 종류, 곧 육적, 세속적 인간, the corporeal and worldly man, 영적 인간 the spiritual man, 및 천적 인간이 the celestial man 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육적, 세속적 인간에게는 그의 고유속성이 그가 가진 전부입니다. his own is his all, 그는 자기의 고유속성밖에는 아는 게 없고, 앞서도 언급했듯, 그는 마음에 상상하기를, 만일 자기한테서 이것이 사라지면 자기는 소멸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두 번째, 영적 인간의 경우 역시 비슷합니다. 비록 그가 주님은 만물의 생명이시고, 지혜와 사고력을 주시며, 그래서 생각하고 행동하게 하시는 분이심을 안다 할지라도 그에게 있어 이런 지식은 마음 속 신념이라기보다는 입술의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is rather the profession of his lips than the belief of his heart.

 

그러나 세 번째, 천적 인간은 다릅니다. 그는 주님은 만물의 생명 되시는 분이시며, 생각하고 행동할 능력을 주시는 분이심을 그냥 압니다. discerns 그는 이런 사실을 지각하기 때문입니다. for he perceives that it is really so. 그는 결코 자신의 고유속성이라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으로부터 어떤 고유속성이 그에게 주어지는데요, 주님으로 말미암는 이 고유속성은 an own is given him by the Lord, 선과 진리에 관한 모든 퍼셉션과, 그리고 모든 행복과 결합된 그런 고유속성입니다.

 

천사들이 바로 이런 고유속성 가운데 있으며, the angels are in such an own, 그래서 동시에 가장 내적인 평화와 기쁨 가운데 있지요. 그들의 속성에는 주님의 것들이 들어있기 때문이며, for in their own are those things which are the Lord’s, 주님은 천사들의 이 속성을 다스리시거나 이 속성을 통해서 천사들을 인도하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속성은 가장 천적인 것 그 자체입니다. 반면 육체적 인간의 고유속성이라는 것은 지옥적인 속성입니다. 이에 관해서는 나중에 더 다루겠습니다.

 

2021-03-24(D4)-창세기(창2,18, AC.140-141),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 man’s own'.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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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38-140

 

2: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And Jehovah God said, It is not good that the man should be alone, I will make him a help as with him.

 

 

138. ‘혼자 사는 것alone 사람이 주님에 의해 인도함 받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대신 자아와 self 세상에 의해 인도함 받는 것을 더 원하는 desired 것입니다.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a help as with him 사람의 새로운 본성을 man’s own 가리키는데, 이것을 가리켜 그 뒤에 여자를 만드신 갈빗대a rib built into a woman 하셨습니다.

 

사람의 본성은 본래 타고난 고유 본성과 이렇게 주님으로 말미암은 새로운 본성, 곧 여자로 표현된 본성의 두 가지가 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39. 고대에는 in ancient times 천적 인간들처럼 주님의 인도하심 아래 있는 사람들을 가리켜 혼자 지내는 사람들이라 to dwell alone 하였습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더 이상 악이나 악한 영들로 인한 들끓음, 분심(分心)이 없기 no longer infested by evils, or evil spirits. 때문입니다.

 

유대교회에서도 역시 이런 상태를 다른 민족들을 다 몰아내고, 그 땅에 홀로 거주하는 것으로 by their dwelling alone 표현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말씀에서는 종종 주님의 교회를 가리켜 홀로she is alone 표현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는 일어나 고요하고도 평안히 사는 백성 곧 성문이나 문빗장이 없이 홀로 사는 국민을 치라 (49:31)

 

모세의 예언에도

 

이스라엘이 안전히 거하며... 홀로 있나니... (33:28)

 

그리고 계속해서 발람의 예언에서는 더 분명하게

 

...이 백성은 홀로 살 것이라 그를 여러 민족 중의 하나로 여기지 않으리로다 (23:9)

 

여기 여러 민족nations 악을 말합니다.

 

이 태고교회의 후손은 홀로 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was not disposed to dwell alone, , 천적 인간이 되려 하거나 그들처럼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살려고 하지 않고, 대신 유대교회처럼 여러 민족과 어울려 지내고 싶어 했습니다. desired to be among the nations.

 

이들이 이런 삶을 원했기 때문에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it is not good that the man should be alone, 하신 것입니다.

 

이때의 혼자 사는 것은 주님으로부터 분리되어 혼자 힘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참고하세요.

 

이런 삶을 원하는 사람은 이미 악 가운데 있으며, for he who desires is already in evil, 그건 그가 원했기 때문입니다. it is granted him.

 

140.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a help as with him 사람의 새로운 본성을 man’s own 의미한다는 것은 이 본성의 본질 및 이어지는 내용들로부터 both from the nature of this own, and from what follows.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2021-03-23(D3)-창세기(창2,18, AC.138-140),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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