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66 심화

1. 왜 AC의 삼상2:3 인용은 개역개정과 이렇게 다른가?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의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삼상2:3) Speak what is high! high! Let what is ancient come out of your mouth (1 Sam. 2:3).

 

AC.66을 읽다가 가장 먼저 멈추게 되는 곳 가운데 하나가 삼상2:3입니다. 개역개정은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의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AC의 영어 인용은 ‘높은 것을 말하라, 높은 것을! 옛것이 네 입에서 나오게 하라’는 식입니다. 단어 몇 개가 다른 정도가 아니라 명령의 방향 자체가 거의 반대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 맞는 것일까요?

 

먼저 우리의 성경을 AC 영어에 맞추어 바꿀 필요는 없습니다. 삼상2:3의 히브리어 본문에는 금지를 나타내는 말이 있고, 문맥 역시 한나가 교만과 오만을 경계하는 내용입니다. 오늘날의 주요 영어 번역들도 대체로 ‘더 이상 그렇게 교만하게 말하지 말라’, ‘오만한 말이 입에서 나오지 않게 하라’는 방향으로 번역합니다. 따라서 개역개정의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는 히브리어 본문과 일반적인 번역 전통에 잘 맞습니다.

 

그러므로 AC의 영어 문장을 보고 ‘개역개정 번역자들이 아르카나를 몰라서 잘못 번역했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더구나 AC의 영어 인용을 ‘문자적 번역보다 더 깊은 내적 의미의 번역’이라고 부르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AC.66 자체는 ‘이 구절의 문자적 의미는 사실 높은 것을 말하라는 뜻이다’라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단지 태고교회의 스타일을 설명하면서 현재 우리가 보는 것과 매우 다른 형태로 삼상2:3을 인용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원칙 하나가 생깁니다. 성경 본문과 AC의 인용문이 현저하게 다를 때에는 두 문장을 억지로 하나로 만들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성경은 성경대로 정확하게 제시하고, AC가 어떤 형태로 그 말씀을 인용하는지도 그대로 보여 주며,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독자에게 숨기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AC.66의 한국어 본문에서도 삼상2:3은 개역개정 그대로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의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로 두는 것이 좋습니다. 바로 뒤의 영어 원문에는 스베덴보리가 사용한 인용형이 그대로 남아 있으므로 독자는 차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스베덴보리는 왜 이처럼 다른 형태의 문장을 인용했을까요? 그 정확한 문헌적 배경을 확인하지 않은 채 ‘스베덴보리가 히브리어를 영적으로 다시 번역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스베덴보리가 사용한 당시의 성경 텍스트나 번역 전통, 인용 관행을 문헌적으로 더 조사해야 할 문제입니다. 현 단계에서 확실한 것은 AC.66의 영어 인용이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히브리어 본문에 따른 일반적인 번역과 크게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이런 차이가 AC.66 전체의 설명을 무너뜨리는 것일까요?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스베덴보리가 이 인용을 사용하는 목적은 태고교회의 스타일이 ‘높은 것’과 ‘옛것’에 관계된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이 특정 인용이 그의 설명에서 수행하는 역할은 분명합니다. 다만 바로 그 때문에 우리는 더 조심해야 합니다. 인용된 성경의 실제 문자와 AC가 사용하는 인용형을 같은 것처럼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성경과 AC의 관계를 다루는 데 중요한 사례가 됩니다. AC를 존중한다는 것이 성경을 AC의 표현에 맞추어 다시 번역하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경의 문자적 본문을 먼저 존중하고, 스베덴보리가 그 말씀을 어떤 방식으로 인용하고 사용하는지를 그 다음에 정확하게 살피는 것이 좋습니다. 의미 차이가 없다면 익숙한 성경 표현을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지만, 이번 삼상2:3처럼 의미 차이가 너무 크다면 그 차이를 감추지 않고 설명해야 합니다.

 

따라서 이번 경우에는 ‘개역개정과 AC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성경 번역에서는 개역개정의 문구를 유지합니다. 동시에 AC의 원문을 읽을 때에는 스베덴보리가 실제로 ‘높은 것을 말하라’는 형태로 인용했다는 사실도 그대로 인정합니다. 그리고 그 차이가 왜 생겼는지는 확인 가능한 문헌적 근거 이상으로 추측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이 사례가 성경보다 AC를 높이는 방향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 번역에는 보이지 않는 진짜 뜻을 AC만 알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기 시작하면, 말씀의 속뜻을 밝힌다는 AC의 역할과 말씀 자체의 권위가 뒤집힐 수 있습니다. AC.66 역시 결국 ‘말씀의 네 가지 스타일’을 설명하는 글입니다. 중심은 AC의 문장이 아니라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구절을 가장 안전하게 처리하는 방법은 단순합니다. 삼상2:3은 개역개정 그대로 읽습니다. AC가 그와 다른 형태로 인용한다는 사실은 숨기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차이를 ‘성경은 낮은 문자, AC는 높은 영적 번역’이라는 구조로 만들지 않습니다. 바로 이런 태도가 말씀을 존중하면서 동시에 스베덴보리의 텍스트도 정직하게 읽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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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65 심화

1. 천사들이 단어나 글자를 이해하지 않는다면 ‘원어 연구’는 필요 없는가?

AC.65를 읽으면 성경을 깊이 공부해 온 독자에게 매우 자연스러운 질문이 생깁니다. 천사들은 하늘에서 말씀 속의 어떤 단어나 글자도 이해할 수 없고 오직 가장 가까운 내적 의미에서 뜻하는 것만을 이해한다면, 우리가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연구하고 단어 하나의 뜻과 문법을 세밀하게 살피는 일은 별 의미가 없는 것일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AC.65에서 그런 결론은 나오지 않습니다. 이 글은 천사들이 말씀을 어떻게 지각하는지를 말하고 있는 것이지, 자연계의 인간에게 말씀의 문자를 연구하지 말라고 말하는 글이 아닙니다. 천사와 인간은 말씀을 동일한 방식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말씀은 실제로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비롯한 인간의 언어로 기록되어 전해졌고, 우리는 번역된 성경의 단어와 문장을 통하여 그것을 읽습니다. 그러므로 원어와 문법과 문맥을 정확히 연구하는 일은 인간이 말씀의 문자적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는 데 분명히 유익합니다.

 

특히 번역에서는 원어 연구가 매우 중요합니다. 같은 히브리어나 헬라어 단어라도 문맥에 따라 뜻의 범위가 달라질 수 있고, 번역 과정에서 한 언어의 뉘앙스를 다른 언어로 완전히 옮기기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원어를 살피면 번역자가 왜 특정 표현을 선택했는지 이해할 수 있고, 서로 다른 번역을 비교하는 데에도 도움이 됩니다. 따라서 ‘천사는 글자를 보지 않으니 인간도 원어를 연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AC.65가 말하는 바가 아닙니다.

 

오히려 스베덴보리 자신도 말씀의 특정 단어나 표현에 매우 세밀하게 주목합니다. AC를 읽다 보면 어떤 단어가 왜 사용되었는지, 단수와 복수가 왜 달라지는지, 같은 듯 보이는 표현이 어떻게 구별되는지를 근거로 속뜻을 설명하는 경우를 계속 만나게 됩니다. 이것만 보아도 말씀의 문자가 중요하지 않다는 식으로 AC.65를 읽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AC.65가 우리에게 주는 경계는 무엇일까요? 원어 연구 자체가 곧 말씀의 속뜻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어 단어의 어근과 문법을 완벽하게 분석했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천사들이 지각하는 영적이고 천적인 의미에 도달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AC.65의 사람들은 스베덴보리가 읽는 말씀의 단어나 글자를 이해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뜻하는 것을 지각했습니다. 따라서 문자 연구와 내적 의미는 동일한 차원의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둘을 서로 적으로 만들 필요도 없습니다. ‘문자 연구는 낮은 것이고 속뜻만 높은 것이다’라고 생각하면 말씀의 질서를 거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속뜻은 말씀의 문자와 무관하게 떠오르는 별도의 영적 생각이 아닙니다. ‘말씀의 속뜻’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자연계에서 말씀을 읽는 출발점은 여전히 주어진 문자입니다. 문자를 정확하게 읽는 일과 그 안에 있는 더 깊은 의미를 인정하는 일은 서로 대립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기준이 생깁니다. 원어 연구를 통해 개역개정의 익숙한 표현과 다른 원문의 뉘앙스를 발견했다고 해서 곧바로 ‘우리 성경은 틀렸고 원어를 아는 내가 진짜 뜻을 안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번역은 언제나 여러 요소를 고려한 결과이고, 표현의 차이가 실제 의미 차이를 만드는지 먼저 살펴야 합니다. 반대로 스베덴보리의 해석이 특정 히브리어나 헬라어 표현의 차이에 실제로 의존한다면 그때는 그 차이를 숨기지 말고 독자에게 설명해야 합니다. 원어는 말씀을 교정하기 위한 권위 경쟁의 도구라기보다, 주어진 말씀을 더 정확하게 이해하도록 돕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 원어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영적 수준을 비교해서도 안 됩니다. 원어를 많이 안다고 해서 자동으로 말씀의 속뜻을 더 깊이 지각하는 것도 아니고, 원어를 모른다고 해서 말씀을 깊이 받을 수 없는 것도 아닙니다. AC.65는 그런 사람의 등급을 매기는 글이 아닙니다. 천사들이 말씀을 지각하는 방식이 인간의 문자 이해와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는 글입니다.

 

따라서 목회와 설교에서도 원어는 매우 유용할 수 있지만 그것 자체가 설교의 권위를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닙니다. ‘헬라어로 보면 진짜 뜻은 이것입니다’라는 표현을 반복하면서 번역 성경을 읽는 회중이 마치 불완전한 말씀만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것은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말 원어의 차이가 본문 이해에 중요할 때 그 이유를 차분히 설명하면 충분합니다.

 

반대로 원어 연구를 경시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영적 의미니까 단어의 정확한 뜻은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면 독자의 주관적인 연상을 속뜻이라고 부르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말씀의 속뜻은 우리가 문자를 넘어 마음대로 만들어 내는 뜻이 아니라, 스베덴보리의 주장에 따르면 주님께서 주신 바로 그 말씀 안에 있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의 문자 자체도 소중히 다루어야 합니다.

 

결국 AC.65가 보여 주는 것은 ‘원어 연구냐 속뜻이냐’라는 선택이 아닙니다. 인간에게는 말씀의 문자가 주어져 있고 우리는 그것을 가능한 한 정확하게 읽어야 합니다. 동시에 말씀은 그 문자적 의미로 다 소진되지 않으며, 천사들에게는 그 안에서 뜻하는 내적 의미가 지각됩니다. 원어 연구는 전자를 돕는 귀한 도구일 수 있지만 그 자체가 후자와 동일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가장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원어 연구는 필요 없지 않습니다. 오히려 말씀의 문자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매우 유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원어를 안다는 것 자체가 말씀의 속뜻을 안다는 뜻은 아닙니다. AC.65는 문자를 버리라고 하지 않고, 우리가 읽는 그 문자 안에 천사들이 ‘영광’이라고 부를 만큼 아름답고 질서 있는 내적 의미가 있음을 보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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