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C.레9 심화

2. ‘왜 아론은 백성을 위한 제사보다 자기 속죄제를 먼저 드려야 했을까?’

 

아론은 이미 레8에서 제사장으로 위임되었습니다. 물로 씻었고 거룩한 옷을 입었으며 관유를 받았고, 귀와 손과 발에 위임식 숫양의 피까지 발랐습니다. 그런데 레9에서 실제 사역을 시작하려 하자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이 또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위한 속죄제와 번제를 드리는 것입니다.

 

모세는 아론에게 ‘네 속죄제와 네 번제를 드려서 너를 위하여,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라’고 합니다. 실제 순서도 아론 자신의 제사가 먼저이고 그 후 백성의 제사가 이어집니다. 이것은 제사장이라는 직분이 인간 자신을 자동으로 거룩하게 만드는 것이 아님을 아주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레4에서 보았듯 속죄제는 악과 거짓에서의 정결을 표상합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을 위해 거룩한 쓰임을 행하는 사람도 계속해서 자기 안의 악과 거짓을 주님 앞에서 살펴야 합니다. 직분은 거듭남을 대신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영적 쓰임을 많이 맡을수록 이 원리는 더 중요해집니다. 다른 사람의 문제를 다루다 보면 자기 문제를 보지 못하기 쉽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말씀을 적용하다 보면 그 말씀이 먼저 자기 자신에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을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회개를 말하면서 자기 분노와 교만과 자기애는 정당화할 수도 있습니다.

 

이때 쓰임은 아주 미묘하게 proprium의 도구가 됩니다. ‘나는 가르치는 사람이다’, ‘나는 돕는 사람이다’, ‘나는 영적인 사람이다’라는 자기상이 오히려 자기 악을 보지 못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레9의 첫 실제 제사장 사역은 남을 위한 제사가 아니라 자신을 위한 속죄제로 시작합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완벽하게 깨끗해진 뒤에야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도 계속 주님의 정결을 필요로 하는 사람임을 인정하면서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 인정은 오히려 체어리티를 깊게 합니다. 내가 주님의 자비 없이는 설 수 없는 사람임을 알수록 다른 사람의 연약함을 쉽게 정죄하기 어렵습니다. 자기 속죄제를 먼저 드린 제사장이 백성의 속죄제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레9의 순서는 모든 영적 쓰임에 하나의 원리를 줍니다. ‘먼저 네 자신을 주님 앞에 세우라.’ 남의 악을 보기 전에 자기 악을 보고, 남에게 말씀을 적용하기 전에 자신에게 적용하며, 다른 사람을 정결하게 하려 하기 전에 자신도 주님의 정결하심 아래 있는 사람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때 쓰임은 자기 의가 아니라 체어리티에서 흘러나올 수 있습니다. (SWC.레9 심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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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C.레8 심화

2. ‘왜 관유를 아론의 머리에 부었을까?’

 

레8:12에서 모세는 관유를 아론의 머리에 붓고 그에게 발라 거룩하게 합니다. 기름을 손이나 옷에 조금 바른 것이 아니라 ‘머리에 붓습니다.’ 제사장 위임식에서 왜 기름 부음이 이토록 중요한 것일까요?

 

스베덴보리는 출29의 병행 본문을 해설하면서 관유를 ‘신적 선으로의 취임’을 표상하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아론은 최고 의미에서 주님을 신적 선에 관하여 표상하고, 그의 머리에 기름을 붓는 것은 주님의 인성 전체에 있는 신적 선을 나타냅니다. 기름이 사랑의 선을 의미한다는 것은 제사의 여러 규례에서도 반복해서 확인됩니다.

 

따라서 제사장직의 가장 깊은 중심은 ‘사랑의 선’입니다. 제사장은 진리를 알고 가르치는 사람이지만 그 진리의 생명은 선에 있습니다. 사랑이 없는 진리는 차갑고, 체어리티가 없는 신앙은 생명이 없습니다. 주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외적으로는 제사장의 옷을 입었어도 그 안에 관유가 없는 셈입니다.

 

관유가 ‘머리’에 부어진다는 것도 중요합니다. 머리는 몸 전체의 첫째와 가장 높은 부분이며, 스베덴보리의 상응에서 첫째와 가장 높은 것은 전체를 포함합니다. 따라서 머리에 기름을 붓는 것은 사랑의 선이 일부 행동에만 붙는 것이 아니라 전체 사람을 지배하고 질서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것은 목회나 교회 봉사에만 해당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가정을 섬기든, 직장에서 일하든, 어려운 사람을 돕든, 말씀을 가르치든, 그 쓰임을 실제로 천국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은 그 일을 움직이는 사랑입니다. 똑같은 행동도 자기 명예를 위해 할 수도 있고 이웃의 선을 위해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레8에서는 씻음 다음에 옷을 입히고, 그 후 관유를 붓습니다. 진리로 정결하게 되고 진리를 입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진리가 사랑의 선에서 살아 움직여야 합니다. 진리가 길을 보여 준다면 사랑은 그 길을 실제로 걷게 하는 생명입니다.

 

참된 기름 부음은 어떤 특별한 종교적 감정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이 우리의 의지 안으로 들어와 ‘선한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가 아니라 ‘선한 것을 사랑하기 때문에’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듭남이 깊어지면서 일어나는 변화입니다.

 

따라서 아론의 머리에 부어진 관유는 제사장이라는 지위에 권위를 더하는 의식이 아닙니다. 모든 거룩한 쓰임의 근원이 사랑의 선이라는 선언입니다. 진리가 아무리 많아도 사랑이 없으면 생명이 없으며, 주님에게서 오는 사랑의 선이 전체 사람을 채울 때 비로소 진리는 살아 있는 쓰임이 됩니다. (SWC.레8 심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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