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창2:18)

 

AC.140

‘그를 돕는 배필’(a help as with him)이 인간의 proprium을 의미한다는 것은 이 proprium의 본질과 뒤에 이어지는 내용에서 분명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다루는 교회의 사람은 선한 성향을 지니고 있었으므로 그에게 proprium이 허락되었는데, 그것은 마치 자기 자신의 것인 듯 보이는 그러한 proprium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를 돕는 배필’(a help as with him)이라고 한 것입니다. That by “a help as with him” is signified man’s own, is evident both from the nature of this own, and from what follows. As however the man of the church who is here treated of was well disposed, an own was granted him, but of such a kind that it appeared as it were his own, and therefore it is said “a help as with him.”

 

해설

AC.140은 AC.138에서 제시한 ‘그를 돕는 배필’(a help as with him)이 왜 인간의 proprium을 의미하는지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proprium에 관한 매우 중요한 구별이 처음 나타납니다. 여기서 다루는 교회의 사람은 아직 선한 성향을 지니고 있었으므로 그에게 proprium이 허락되었지만, 그것은 인간이 주님으로부터 독립하여 실제로 소유하는 자기 생명이 아니라 ‘마치 자기 자신의 것인 듯 보이는’ proprium이었습니다.

 

이 설명은 AC.139의 마지막 문장과 직접 이어집니다. 태고교회의 이 후손들은 주님께 인도받는 천적 인간으로 ‘혼자 거하기’를 원하지 않고 자기 자신과 세상에 의해서도 인도받기를 원했습니다. 그 욕구에는 이미 악의 방향이 들어 있었지만, AC.140은 이들이 아직 ‘선한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지금 다루는 상태를 완전히 타락한 인간의 상태로 앞당겨 읽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proprium으로 기울어지는 상태 가운데에서도 그들의 당시 상태에 맞는 proprium을 허락하십니다.

 

그 proprium의 성격을 보여 주는 핵심이 ‘마치 자기 자신의 것인 듯 보이는’이라는 표현입니다. 인간에게는 자기의 것으로 경험되는 어떤 것이 있지만, 그것이 실제로 주님과 독립된 생명의 근원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앞서 AC.124에서는 지혜와 지성과 이성과 지식이 사람 자신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AC.135에서도 천적 생명과 영적 생명이 인간의 proprium에 결합되어 하나처럼 보인다고 했습니다. 이제 AC.140은 인간에게 허락된 proprium 자체도 ‘마치 자기 자신의 것인 듯 보이는’ 성격을 가진다고 설명합니다. 이로써 ‘모든 생명은 주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과 ‘나는 이것을 내 것으로 느끼며 살아간다’는 인간의 경험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이해할 중요한 실마리가 생깁니다.

 

이 점에서 ‘그를 돕는 배필’이라는 표현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아직 이 표현의 모든 세부를 풀지는 않지만, 적어도 인간에게 허락된 proprium이 어떤 성격을 가진 것인지는 밝힙니다. 그것은 주님과 별개의 독립적인 생명이 아니라 인간에게 자기 자신의 것처럼 보이는 proprium입니다. 그러므로 이 대목의 초점은 인간에게 주님과 경쟁하는 또 하나의 생명 근원이 생겼다는 데 있지 않고, 주님으로부터 받는 것을 인간이 자기의 것으로 느끼며 살아가는 상태가 어떻게 허용되는가에 있습니다.

 

이것은 AC.122부터 계속되어 온 ‘주님의 것’과 ‘자기의 것’의 문제에도 중요한 빛을 던집니다. 천적 인간은 에덴의 모든 것을 누리면서도 그것을 자기 것으로 소유하지 않았고,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임을 퍼셉션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태고교회의 후손들은 자기에게 속한 것으로 느껴지는 것을 원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요구를 단순히 끊어 버리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마치 자기 자신의 것인 듯 보이는 proprium을 허락하셨습니다. 따라서 ‘자기의 것으로 느끼는 것’과 ‘실제로 자기에게서 생명이 나온다고 믿는 것’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음을 이제 조금씩 볼 수 있습니다.

 

이 구별은 앞으로 proprium을 해석할 때 특히 중요합니다. 인간이 ‘내가 생각한다’, ‘내가 원한다’, ‘내가 사랑한다’, ‘내가 행한다’고 느끼는 것 자체를 곧바로 악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AC.140에서 다루는 사람은 아직 선한 성향을 지니고 있었고, 그에게도 자기 자신의 것처럼 보이는 proprium이 허락되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인간에게 자기의 것으로 보이는 것이 있다는 사실 자체보다, 그것의 근원을 어떻게 이해하고 그것에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에 있을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다만 이 구별의 전체 의미는 이어지는 설명을 더 읽은 뒤 확정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따라서 AC.140은 AC.132에서 시작된 ‘허락된 proprium’이라는 표현을 이해하는 데 하나의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합니다. 인간에게 허락된 proprium은 주님으로부터 독립된 실제적인 자기 생명의 근원이 아니라, 인간에게 ‘마치 자기 자신의 것인 듯 보이는’ proprium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 인간은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으면서도 그것을 자기의 삶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관계가 앞으로 갈빗대와 여자에 대한 상세한 설명에서 어떻게 더 밝혀지는지를 계속 따라가야겠습니다. (AC.140)

 

 

 

AC.141, 창2:18, ‘육체적·영적·천적 인간의 proprium’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창2:18) AC.141인간의 proprium에 관해서는 육체적이고 세상적인 인간에게서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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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39, 창2:18, ‘혼자 거하다 - 주님의 인도 아래 있는 천적 인간의 상태’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창2:18) AC.139고대에는 천적 인간으로서 주님의 인도 아래 있던 사람들을 ‘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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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2:18-25

 

18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And Jehovah God said, It is not good that the man should be alone, I will make him a help as with him. 19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And Jehovah God formed out of the ground every beast of the field, and every fowl of the heavens, and brought it to the man to see what he would call it; and whatsoever the man called every living soul, that was the name thereof. 20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And the man gave names to every beast, and to the fowl of the heavens, and to every wild animal of the field; but for the man there was not found a help as with him. 21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And Jehovah God caused a deep sleep to fall upon the man, and he slept; and he took one of his ribs, and closed up the flesh in the place thereof. 22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And the rib which Jehovah God had taken from the man, he built into a woman, and brought her to the man. 23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And the man said, This now is bone of my bones, and flesh of my flesh; therefore she shall be called wife, because she was taken out of man [vir]. 24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Therefore shall a man leave his father and his mother, and shall cleave unto his wife, and they shall be one flesh. 25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And they were both naked, the man and his wife, and were not ashamed. (창2:18-25)

 

AC.131

여기서는 proprium(주3)으로 기울기 시작한 태고교회의 후손들을 다룹니다. The posterity of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inclined to their own,3 is here treated of.

 

주3. 라틴어 ‘proprium’은 원문에서 사용된 말로서, 여기와 다른 곳들에서 ‘자기 자신의 것’(own)이라는 표현으로 번역되었습니다. 형용사 ‘proprius’의 사전적 의미는 ‘자기 자신의’(one’s own), ‘고유한’(proper), ‘오직 자기 자신에게 속한’(belonging to one’s self alone), ‘특별한’(special), ‘개별적인’(particular), ‘특유한’(peculiar) 등입니다. 이것의 중성형인 ‘proprium’이 명사로 사용될 때에는 ‘소유물’(possession), ‘재산’(property)을 뜻하며, 또한 ‘특유한 성질’(a peculiarity), ‘특징적인 표지’(characteristic mark), ‘구별되는 표지’(distinguishing sign), ‘특성’(characteristic)을 뜻하기도 합니다. 영어 형용사 ‘own’은 웹스터 사전에서 ‘...에 속하는’(belonging to), ‘전적으로 또는 특별히 ...에 속하는’(belonging exclusively or especially to), ‘특유한’(peculiar)이라는 뜻으로 정의됩니다. 그러므로 영어의 ‘own’은 ‘proprius’에 매우 정확하게 대응하며, 라틴어 명사 ‘proprium’에 대응하도록 ‘own’을 명사로 만들어 사용하면 원문에 매우 가까운 번역이 됩니다. [개정자] The Latin word proprium is the term used in the original text that in this and other places has been rendered by the expression “own.” The dictionary meaning of propius, as an adjective, is “one’s own,” “proper,” “belonging to one’s self alone,” “special,” “particular,” “peculiar.” The neuter of this which is the word proprium, when used as a noun means “possession,” “property”; also “a peculiarity,” “characteristic mark,” “distinguishing sign,” “characteristic.” The English adjective “own” is defined by Webster to mean “belonging to,” “belonging exclusively or especially to,” “peculiar”; so that our word “own” is a very exact equivalent of proprius, and if we make it a noun in order to answer to the Latin proprium, we effect a very close translation. [Reviser]

 

해설

AC.131은 매우 짧지만 창2의 속뜻에서 새로운 구간이 시작되고 있음을 알려 주는 표지입니다. 앞에서는 천적 인간의 상태와 에덴동산,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그리고 에덴에서 흘러나오는 네 강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선과 진리, 지혜와 지성, 이성과 앎이 흘러오는 질서를 설명했습니다. 특히 AC.125-130에서는 그 질서를 지키는 것과 뒤집는 것이 무엇인지를 집중적으로 다루었습니다. 이제 스베덴보리는 그 설명을 바탕으로 ‘자기 자신의 것으로 기울기 시작한 태고교회의 후손들’을 다루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기울기 시작했다’는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직 창3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게 될 타락 자체를 설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태고교회의 후손들 가운데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을 온전히 받아 사는 이전의 천적 상태에서 조금씩 자기 자신의 것으로 향하는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따라서 AC.131은 완성된 악의 상태를 선언하는 문장이 아니라, 내적인 방향이 달라지기 시작하는 과정을 여는 문장으로 읽는 것이 좋습니다.

 

‘자기 자신의 것’이라는 표현도 지금 단계에서는 너무 많은 후대의 설명을 미리 끌어와 규정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다만 바로 앞의 흐름만으로도 기본적인 방향은 분명합니다. AC.122에서는 에덴의 모든 것을 누리는 것은 허락되지만 그것들을 자기 것으로 소유해서는 안 된다고 했고, AC.123-124에서는 천적 인간이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임을 인정한다고 했습니다. 이어 AC.128-130에서는 주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세상으로부터 지혜로워지려는 상태를 설명했습니다. 따라서 AC.131의 ‘자기 자신의 것으로 기울기 시작했다’는 말은 이 흐름과 분리해서 읽을 수 없습니다.

 

특히 AC.130의 바로가 ‘나의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나를 위하여 만들었다’고 말한 것과도 연결됩니다. 앞에서는 모든 지혜와 지성과 이성과 지식의 근원이 주님이라고 했는데, 질서가 뒤집히면 사람은 그것들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여기기 시작합니다. AC.131은 이제 이러한 ‘자기에게로 향함’이 태고교회의 후손들에게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설명할 준비를 합니다. 그러므로 문제의 중심에는 단순히 어떤 잘못된 지식을 갖게 되었다는 것보다 생명의 근원을 어디에 두느냐 하는 변화가 있습니다.

 

이것은 거듭남을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한 대조를 제공합니다. 지금까지 천적 인간의 질서는 인간의 능력들이 없어지는 상태가 아니라 모든 것이 주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퍼셉션하고,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자기 안에서 누리고 사용하는 상태였습니다. 반대로 ‘자기 자신의 것으로 기울어진다’는 것은 인간에게 생각과 의지와 활동이 생긴다는 뜻이 아니라, 그것들의 근원을 자기 자신에게 돌리는 방향으로 마음이 기울어진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이어지는 내용을 읽을 때에도 인간의 자유로운 활동 자체와 그것을 자기에게서 나온 것으로 여기는 상태를 구별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AC.131은 한 문장으로 다음 단락들의 독법을 미리 정해 줍니다. 이제부터 나오는 창2:18 이하의 말씀을 단순히 남자에게 여자가 필요하여 배우자를 창조하신 이야기로만 읽는 것이 아니라, 태고교회의 후손들이 ‘자기 자신의 것’으로 기울기 시작한 상태와 관련하여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며 주님께서 그 상태를 어떻게 다루시는지는 이어지는 번호들이 설명할 것이므로, 여기서는 앞서 나가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결국 AC.131은 앞의 긴 논의를 다음 구간으로 넘기는 작은 경첩과 같습니다. AC.129의 ‘출발점은 주님이어야 하고 자기 자신이어서는 안 된다’는 결론과 AC.130의 뒤집힌 에덴의 모습이 이제 태고교회 후손들의 실제 상태 변화로 이어집니다.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을 주님의 것으로 받아들이던 상태에서 ‘자기 자신의 것’으로 기울기 시작하는 변화가 앞으로의 핵심 주제가 됩니다. (AC.131)

 

 

 

AC.132, 창2:18-25 개요, ‘인간에게 허락된 proprium’ (18절)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18절) AC.132사람은 주님께 인도받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자기 자신과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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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30, 창2:17, ‘세상으로부터 지혜로워질 때 에덴과 네 강의 질서가 뒤집힌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2:17) AC.130세상으로부터 지혜로워지기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감각적인 것들과 기억지식이 그의 ‘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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