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303, 창3:22,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AC.298-304) - 주님 강림의 때에 유대인들의 모습

 

22절,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And Jehovah God said, Behold, the man is become as one of us, knowing good and evil; and now lest he put forth his hand, and take also of the tree of lives, and eat, and live to eternity,

 

303

사람은 그가 설득된, 즉 인정하고 믿는 모든 것을 통해 일종의 생명을 얻습니다. 설득되지 않았거나 인정도 믿지도 않는 것으로는 사람의 마음에 아무 영향도 끼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래서 인정할 정도로 설득되었고 아직 부인하지는 않고 있는 한, 아무도 거룩한 것들을 모독할 수 없습니다.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아마 알면서도 마치 모르는 것처럼 있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아는 사람들처럼 말이지요. 주님 강림의 때에 유대인들의 모습이 저랬습니다. 그래서 말씀에서 저들을 가리켜 황폐해졌다’, 혹은 파괴되어 초토화되었다’, , 더이상 무슨 신앙이라는 게 없다 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서는, 말씀의 속뜻이 그들에게 오픈된다고 해서 그들이 무슨 해를 받거나 하는 일은 전혀 없습니다. 그들은 비록 보고 있으나 아직 못 보며, 듣고 있으나 아직 못 듣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마음은 꽉 막혀 있습니다. 이들에 관하여 주님은 이사야에서 말씀하셨습니다. A man acquires a life by all the things he is persuaded of, that is, which he acknowledges and believes. That of which he is not persuaded, or does not acknowledge and believe, does not affect his mind. And therefore no one can profane holy things unless he has been so persuaded of them that he acknowledges them, and yet denies them. Those who do not acknowledge may know, but are as if they did not know, and are like those who know things that have no existence. Such were the Jews about the time of the Lord’s advent, and therefore they are said in the Word to be “vastated” or “laid waste,” that is, to have no longer any faith. Under these circumstances it does men no injury to have the interior contents of the Word opened to them, for they are as persons seeing, and yet not seeing; hearing, and yet not hearing; whose hearts are stopped up; of whom the Lord says in Isaiah:

 

9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10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사6:9-10) Go and tell this people, Hearing hear ye, but understand not, and seeing see ye, but know not. Make the heart of this people fat, and make their ears heavy, and smear their eyes, lest they see with their eyes, and hear with their ears, and understand with their heart, and be converted, so that they be healed. (Isa. 6:9–10)

 

사람들이 그런 상태, 즉 너무나 황폐해져서 더 이상 아무것도 안 믿는 상태(앞서 말씀드린 대로, 그들이 신앙의 신비들을 모독할 수 없는)가 될 때까지 신앙의 신비들은 밝히 알려지지 않는다는 것을 주님은 같은 이사야 계속 이어지는 구절들에서 아주 분명히 선포하고 계십니다. That the mysteries of faith are not revealed until men are in such a state, that is, are so vastated that they no longer believe (in order, as before said, that they may not be able to profane them), the Lord also plainly declares in the subsequent verses of the same prophet:

 

11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였더니 주께서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 12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사6:11-12) Then said I, Lord, how long? And he said, Even until the cities are desolated, so that there be no inhabitant; and the houses, so that there be no man, and the ground be utterly desolated, and Jehovah have removed man. (Isa. 6:11, 12)

 

그를 일컬어 지혜로운 혹은 인정하고 믿는 ‘사람’이라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주님이 오셨을 때 그 정도로 황폐한 상태였습니다. 같은 이유로, 그들은 지금도 여전히 탐욕, 특히 욕심으로 말미암아 그런 황폐함 가운데 있습니다. 그들이 비록 주님에 관해 수천 번을 듣고 있고, 또 그들의 교회 여러 표상들이 그 어느 것 하나 다 예외 없이 주님을 가리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그들은 여전히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으며, 안 믿고 있습니다. 이것이 노아 이전 고대인들이 에덴동산에서 내쫓기고 황폐해진, 심지어 더이상 어떠한 진리도 인정할 수 없는 지경까지 황폐해진 이유였습니다. He is called a “man” who is wise, or who acknowledges and believes. The Jews were thus vastated, as already said, at the time of the Lord’s advent; and for the same reason they are still kept in such vastation by their cupidities, and especially by their avarice, that although they hear of the Lord a thousand times, and that the representatives of their church are significative of him in every particular, yet they acknowledge and believe nothing. This then was the reason why the antediluvians were cast out of the garden of Eden, and vastated even until they were no longer capable of acknowledging any truth.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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