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14 심화

1. ‘주님’이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라면 성부와 성령은 어떻게 되는가?

 

AC.14에서 스베덴보리가 ‘주님’이라는 이름은 세상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을 뜻한다고 말하면, 전통적인 삼위일체 교리에 익숙한 독자는 자연스럽게 질문하게 됩니다. ‘그러면 성부와 성령은 어떻게 되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부와 성령보다 더 높은 분이라는 뜻인가?’ 그러나 스베덴보리가 말하려는 것은 삼위 가운데 한 위격을 다른 두 위격보다 높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신적 삼위일체는 그 한 분 주님 안에 있다는 것이 그의 핵심 주장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삼위일체 자체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가 문제 삼는 것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영원 전부터 서로 구별되는 세 신적 인격으로 생각하고, 그 셋을 다시 한 하나님이라고 이해하려는 방식입니다. 그는 참된 기독교에는 신적 삼위일체가 있다고 보지만, 그것을 한 분 하나님 밖에 따로 존재하는 세 분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신적 삼위일체는 성육신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이를 설명할 때 가장 중요한 구별은 ‘신성 자체’, ‘신적 인간’, ‘발출하는 신성’입니다. 성부는 주님 안에 있는 신성 자체, 곧 모든 것의 근원이신 신성을 가리키며, 성자는 그 신성이 세상에 오셔서 취하시고 영화하신 신적 인간을 가리킵니다. 성령은 주님에게서 발출하여 인간과 천사에게 역사하는 신성을 가리킵니다. 이것들은 세 하나님이 아니라 한 분 주님 안에 있는 신적 삼위일체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라는 말은 성부를 제외하고 성자만 하나님으로 섬긴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아버지께서 계시며, 주님에게서 성령이 발출한다는 뜻입니다. 바로 다음 AC.15에서 스베덴보리가 천국 전체가 주님 외에 다른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고 말하면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인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AC.14와 AC.15는 따로 떼기보다 서로 이어서 읽을 때 스베덴보리의 의도가 훨씬 분명해집니다.

 

성육신 이전과 이후의 관계도 중요합니다. 신성 자체는 영원부터 계셨지만, 주님께서는 세상에 오셔서 인간성을 취하셨고 그 인간성을 영화하셨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단순히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외적인 모습이나 임시적인 육체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의 영화된 인성은 신성과 완전히 하나가 된 ‘신적 인간’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은 단순히 하나님을 대신하여 권세를 받은 피조된 중개자가 아니라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주님이십니다.

 

스베덴보리가 때때로 사람의 영혼과 몸과 활동을 비유로 사용하는 것도 이 하나 됨을 이해시키기 위해서입니다. 한 사람에게 영혼과 몸과 그에게서 나오는 활동이 있다고 해서 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신성 자체와 신적 인간과 발출하는 신성은 세 하나님이 아닙니다. 다만 이 비유 역시 하나님을 인간과 동일한 구조로 축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삼위가 한 분 안에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도록 돕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AC.14에서 왜 ‘주님’이라는 이름을 예수 그리스도 한 분에게 적용하는지가 분명해집니다. 그것은 삼위 가운데 ‘성자’라는 한 위격만을 선택하여 높이는 것이 아니라, 한 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오셔서 자신을 나타내시고 구원을 이루신 분이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주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성부를 지나쳐 성자에게만 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 계신 아버지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 차이는 기도와 예배에서도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는 보이지 않는 성부를 따로 생각하고 그분께 나아가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중간 단계처럼 통과하는 구조가 중심이 아닙니다. 주님 자신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가까이 오신 분이며, 인간이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고 예배할 수 있도록 자신을 나타내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주님’으로 인정하고 경배한다는 것은 하나님 가운데 한 분만을 골라 예배한다는 뜻이 아니라 한 분 하나님을 그분이 자신을 나타내신 신적 인간 안에서 예배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AC.14의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라는 선언은 성부와 성령을 밀어내는 선언이 아니라 오히려 신적 삼위일체를 한 분 하나님 안에서 다시 붙드는 선언입니다. 성부는 주님 안의 신성 자체이며, 성자는 그분의 신적 인간이고, 성령은 그분에게서 발출하는 신성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시선은 세 분 사이를 오가는 것이 아니라 한 분 주 예수 그리스도께 향합니다. 그분 안에 신성의 충만함이 있으며, 그분에게서 모든 신적 생명과 사랑과 진리가 인간에게 옵니다. (AC.14 심화 1)

 

 

 

AC.14, 창1, ‘주님은 세상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시다’

AC.14이어지는 모든 글에서 ‘주님’이라는 이름은 세상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 오직 그분만을 뜻하며, 다른 이름을 덧붙이지 않고 단지 ‘주님’(the Lord)이라고만 부릅니다. 온 천국 전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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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4

이어지는 모든 글에서 ‘주님’이라는 이름은 세상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 오직 그분만을 뜻하며, 다른 이름을 덧붙이지 않고 단지 ‘주님’(the Lord)이라고만 부릅니다. 온 천국 전체에서 그분만이 주님으로 인정되고 경배를 받으시는데, 이는 그분께서 하늘과 땅에서 모든 권세를 가지시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제자들에게도 자신을 그렇게 부르라고 명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In the following work, by the name Lord is meant the savior of the world, Jesus Christ, and him only; and he is called “the Lord” without the addition of other names. Throughout the universal heaven he it is who is acknowledged and adored as Lord, because he has all sovereign power in the heavens and on earth. He also commanded his disciples so to call him, saying,

 

너희가 나를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요13:13) Ye call me Lord, and ye say well, for I am (John 13:13).

 

그리고 그분의 부활 후에 제자들은 그분을 ‘주님’(the Lord)이라 불렀습니다. And after his resurrection his disciples called him “the Lord.”

 

해설

AC.14는 창세기 1장의 개별 표현을 해설하기에 앞서, 앞으로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 전체를 읽는 데 필요한 중요한 용어 하나를 분명히 정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어지는 모든 글에서 ‘주님’(the Lord)이라는 이름을 사용할 때 그 이름이 세상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 오직 그분만을 뜻한다고 선언합니다. 따라서 이후 AC를 읽다가 ‘주님’이라는 표현을 만나면 누구를 가리키는지 별도로 추측할 필요가 없습니다.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선언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오직 그분만’이라는 표현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여러 신적 존재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께 가장 높은 자리를 드린다는 의미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AC.14가 직접 밝히는 것은 온 천국 전체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님으로 인정되고 경배받으신다는 사실이며, 그 이유는 그분께서 하늘과 땅에서 모든 권세를 가지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부와 성령의 관계에서 무엇을 의미하는가는 곧 이어지는 AC.15와 이후 주님에 관한 가르침을 함께 보아야 더욱 분명해집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우선 ‘주님’이라는 이름이 누구를 가리키는가에 집중하는 것이 좋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자신의 설명만으로 이 명칭을 정하지 않고 주님의 말씀을 직접 인용합니다. ‘너희가 나를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요13:13)는 말씀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주’라고 부르는 것을 주님 자신이 옳다고 확인하신 것입니다. 이어 스베덴보리는 부활 후 제자들이 그분을 ‘주님’이라고 불렀다는 사실도 덧붙입니다. 따라서 AC.14의 논지는 매우 단순하면서도 분명합니다. ‘주님’이라는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께 적용되며, 그 호칭은 주님 자신의 말씀과 제자들의 증언에 근거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후 AC의 속뜻을 읽을 때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앞으로 인간의 거듭남, 천국, 교회, 말씀의 속뜻을 설명하면서 끊임없이 ‘주님’을 언급합니다. 그때마다 막연한 신적 원리나 이름 없는 절대자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특히 앞의 AC.7-13에서 거듭남의 여러 상태를 살펴본 직후 이 선언이 놓여 있다는 점에서, 그 모든 거듭남의 역사를 이루시는 분이 누구인지도 자연스럽게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AC.14는 짧지만 이후 전체 저작의 독법을 정해 주는 중요한 단락입니다. 스베덴보리의 신학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단순히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여러 중개자 가운데 한 분이 아니며, 온 천국이 인정하고 경배하는 ‘주님’이십니다. 다만 이 짧은 단락 하나에서 삼위일체와 주님의 신적 인성에 관한 모든 교리를 한꺼번에 끌어낼 필요는 없습니다. 바로 다음 AC.15에서 아버지와 주님의 하나 되심이 이어지고, 이후 관련 가르침들이 점차 펼쳐집니다. AC.14에서는 먼저 이 한 가지를 분명히 붙들면 됩니다. 앞으로 AC에서 말하는 ‘주님’은 세상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십니다. (AC.14 해설)

 

심화

1. ‘주님’이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라면 성부와 성령은 어떻게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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