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468 심화

‘리메인스가 없으면 왜 사람은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는가?’

 

AC.468에는 매우 강한 표현이 나옵니다. ‘주님께서 모든 사람 안에 리메인스를 보존하지 않으신다면 그는 필연적으로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영적 생명과 천적 생명이 리메인스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리메인스가 무엇이기에 인간의 영원한 생명과 이처럼 직접 연결되는 것일까요? 이 질문을 이해하려면 리메인스를 단순히 어린 시절의 좋은 기억이나 과거에 배운 종교적 지식 정도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리메인스는 주님께서 사람의 내면에 저장하고 보존하시는 선과 진리, 그리고 그것들과 연결된 순진함, 사랑, 자비, 체어리티 등의 상태입니다. 특히 사람이 아직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에 완전히 사로잡히기 전, 부모를 신뢰하고 이웃에게 호의를 품으며 주님과 천국에 관한 선한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주님은 그러한 상태들을 사람의 내면에 보존하십니다. 사람은 나중에 그것을 의식적으로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주님은 그것을 잃어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리메인스는 사람이 스스로 쌓아 두었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쓰는 영적 저축이라기보다, 주님께서 사람의 구원을 위하여 그의 내면에 보존하시는 것입니다.

 

왜 이것이 그렇게 중요할까요? 사람이 성장하면서 프로프리움(proprium), 곧 자기 자신의 것에 깊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만으로는 사람은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에서 나오는 욕망과 거짓 쪽으로 기울어집니다. 만일 사람 안에 이것과 다른 근원에서 온 것이 전혀 없다면, 주님께서 그에게 역사하실 접점도 남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보존하신 리메인스 안에는 사람이 한때 받아들였던 선과 진리, 순진함과 체어리티의 상태가 있습니다. 주님은 거듭남의 과정에서 바로 이것들을 사용하여 사람을 자기중심적인 생명에서 돌이키고 선과 진리를 다시 받아들일 수 있게 하십니다.

 

따라서 리메인스가 구원한다는 말은 리메인스 자체가 주님과 별도로 어떤 구원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구원하시는 분은 오직 주님이십니다. 리메인스가 중요한 까닭은 그것이 주님께서 친히 사람 안에 보존하신 것이며, 훗날 그 사람을 거듭나게 하실 때 사용하시는 기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리메인스의 교리는 결국 인간의 공로에 관한 교리가 아니라 주님의 선행하시는 자비와 섭리에 관한 교리입니다. 사람이 아직 자신의 거듭남을 생각하지도 못하던 때부터 주님은 이미 훗날 그를 살리실 것을 준비하고 계셨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자유와도 깊이 연결됩니다. 주님은 사람을 강제로 선하게 만들지 않으십니다. 사람은 선과 악, 참과 거짓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어야 하며, 그래야 주님께서 주시는 선과 진리를 자신의 의지와 이성으로 받아들여 마치 자기 것처럼 살아갈 수 있습니다. 리메인스는 이러한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하도록 사람의 내면에 보존된 천국적인 기반이 됩니다. 악과 거짓의 영향만 있고 그 반대편에 주님께서 보존하신 선과 진리의 상태가 전혀 없다면 참된 영적 선택과 거듭남의 가능성도 성립할 수 없습니다.

 

AC.468이 개인의 리메인스와 교회 전체의 리메인스를 나란히 설명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한 사람 안에서 주님께서 선과 진리를 보존하시는 것처럼, 인류 전체 안에서도 주님은 참된 교회와 신앙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도록 언제나 어떤 사람들을 남겨 두십니다. 홍수 직전의 ‘노아’가 바로 그 원리를 보여 줍니다. 온 땅이 부패했다고 표현될 만큼 교회가 황폐해졌지만 모든 것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 보존하신 마지막 리메인스가 있었고, 그것으로부터 새로운 고대교회가 시작될 수 있었습니다. 개인의 거듭남과 인류 가운데 교회가 다시 일어나는 일이 같은 영적 원리를 따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지서에서 ‘남은 자’가 반복해서 등장하고, ‘십’과 ‘십분의 일’이 리메인스를 표상합니다. 사6:13의 모든 것이 베임을 당한 뒤에도 남아 있는 ‘거룩한 씨’, 암5:3의 백 명 가운데 남은 열 명, 창18:32의 소돔에 의인 열 명만 있어도 멸하지 않겠다는 말씀은 모두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가운데서도 주님께서 보존하시는 것’이라는 원리를 보여 줍니다. 중요한 것은 숫자의 크기가 아니라 주님께서 남겨 두신 선과 진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리메인스가 없으면 영원히 멸망한다’는 AC.468의 말씀은 사람을 두렵게 하기 위한 표현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인간의 구원이 얼마나 철저하게 주님의 선행하시는 역사에 의존하는지를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언제 어떤 선을 받아들였으며 그것이 자신의 내면 어디에 보존되어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알고 계시며, 사람이 훗날 거듭남의 길에 들어설 때 그것을 불러내어 사용하십니다.

 

이 점에서 ‘노아’는 우리 각 사람의 거듭남을 비추는 매우 깊은 표상이 됩니다. 우리 안의 상태가 아무리 황폐해지고 선과 진리가 거의 사라진 것처럼 보여도, 주님께서 보존하신 것은 인간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깊은 곳에 있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그것을 지키시고 때가 되었을 때 사용하시며, 그것으로부터 새로운 영적 생명을 시작하십니다. 그러므로 리메인스는 단순히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다시 주님께 돌아가고 거듭날 수 있도록 주님께서 오래전부터 그의 내면에 준비하고 보존해 두신 생명의 씨앗입니다.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AC.468은 ‘영적 생명과 천적 생명이 리메인스 안에 있다’고 말합니다. (AC.468 심화)

 

 

 

AC.468, 창5, ‘노아는 교회에 남아 있던 마지막 리메인스를 가리킨다’

속뜻 AC.468앞 장에서 말하고 보여 준 것으로부터, 이름들이 이단과 교리를 의미한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이 장의 이름들이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들을 뜻하며, 여기서는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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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뜻

 

AC.468

앞 장에서 말하고 보여 준 것으로부터, 이름들이 이단과 교리를 의미한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이 장의 이름들이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들을 뜻하며, 여기서는 교리들 또는 교회들을 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교리들 또는 교회들은 여러 변화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태고교회 때부터 ‘노아’(Noah)에 이르기까지 보존되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교회는 시간이 흐르면서 쇠퇴하여 마침내 소수에게만 남게 됩니다. 홍수 때 그것이 남아 있던 그 소수를 ‘노아’(Noah)라 하였습니다. From what has been said and shown in the foregoing chapter, it is evident that by names are signified heresies and doctrines. Hence it may be seen that by the names in this chapter are not meant persons, but things, and in the present instance doctrines, or churches, which were preserved, notwithstanding the changes they underwent, from the time of the most ancient church even to “Noah.” But the case with every church is that in course of time it decreases, and at last remains among a few; and the few with whom it remained at the time of the flood were called “Noah.”

 

[2] 참된 교회가 쇠퇴하여 소수에게만 남게 된다는 것은 이와 같이 쇠퇴해 온 다른 교회들에서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말씀에서 ‘리메인스’(remains)와 ‘남은 자’(remnant)라 하며, ‘땅의 가운데’ 또는 ‘중앙에’ 있다고 합니다. 전체적인 경우가 그러한 것처럼 개별적인 경우도 그러합니다. 즉 교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각 사람에게도 그러합니다. 주님께서 모든 사람 안에 리메인스를 보존하지 않으신다면 그는 필연적으로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영적 생명과 천적 생명이 리메인스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 또는 보편적인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또는 참된 신앙이 남아 있는 사람들이 언제나 얼마간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류는 멸망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몇 사람을 위하여 한 성읍이, 때로는 한 나라 전체가 구원받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서 교회는 인체와 같습니다. 심장이 건강한 동안에는 그 주변의 내장들도 생명을 유지할 수 있지만, 심장이 쇠약해지면 신체의 다른 부분들이 영양을 공급받지 못하여 사람이 죽습니다. 마지막 리메인스가 바로 ‘노아’(Noah)가 의미하는 것입니다. 창6:12과 다른 여러 곳에서 알 수 있듯 온 땅이 부패하였기 때문입니다. That the true church decreases and remains with but few, is evident from other churches which have thus decreased. Those who are left are in the Word called “remains,” and a “remnant,” and are said to be “in the midst,” or “middle,” “of the land.” And as this is the case in the universal, so also it is in the particular, or as it is with the church, so it is with every individual man; for unless remains were preserved by the Lord in everyone, he must needs perish eternally, since spiritual and celestial life are in the remains. So also in the general or universal—if there were not always some with whom the church, or true faith, remained, the human race would perish; for, as is generally known, a city, nay, sometimes a whole kingdom, is saved for the sake of a few. It is in this respect with the church as it is with the human body; so long as the heart is sound, life is possible for the neighboring viscera, but when the heart is enfeebled, the other parts of the body cease to be nourished, and the man dies. The last remains are those which are signified by “Noah”; for (as appears from Gen. 6:12, as well as from other places) the whole earth had become corrupt.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창6:12)

 

[3] 각 사람 안에 존재하는 리메인스뿐 아니라 교회 전체 안에 존재하는 리메인스에 관해서도 선지서에서 많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에서는, Of remains as existing in each individual as well as in the church in general, much is said in the prophets; as in Isaiah:

 

3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 안에 생존한 자 중 기록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 4이는 주께서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기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중에서 청결하게 하실 때가 됨이라 (사4:3, 4) He that is left in Zion, and he that remaineth in Jerusalem, shall be called holy to him, even everyone that is written unto lives in Jerusalem, when the Lord shall have washed the filth of the daughters of Zion, and shall have washed away the bloods of Jerusalem from the midst thereof, (Isa. 4:3–4)

 

이 말씀에서 거룩함은 리메인스에 관하여 서술되며, 이 리메인스는 교회의 리메인스뿐 아니라 교회에 속한 사람의 리메인스도 의미합니다. 시온과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자들’(those left)이 단지 ‘남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거룩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이사야에서는, in which passage holiness is predicated of the remains, by which are signified the remains of the church, and also of a man of the church; for “those left” in Zion and Jerusalem could not be holy merely because they were “left.” Again:

 

20그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여호와를 진실하게 의지하리니 21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사10:20, 21) It shall come to pass in that day, that the remains of Israel, and such as are escaped of the house of Jacob, shall no more again stay upon him that smote them, but shall stay upon Jehovah the holy one of Israel in truth. The remains shall return, the remains of Jacob, unto the mighty God. (Isa. 10:20–21)

 

예레미야에서는, In Jeremiah:

 

그날 그때에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찾을지라도 없겠고 유다의 죄를 찾을지라도 찾아내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남긴 자를 용서할 것임이라 (렘50:20) In those days, and in that time, the iniquity of Israel shall be sought for, and there shall be none; and the sins of Judah, and they shall not be found; for I will pardon him whom I shall make a remnant. (Jer. 50:20)

 

미가에서는, In Micah:

 

야곱의 남은 자는 많은 백성 가운데 있으리니 그들은 여호와께로부터 내리는 이슬 같고 풀 위에 내리는 단비 같아서 (미5:7) The remains of Jacob shall be in the midst of many peoples, as the dew from Jehovah, as the showers upon the grass. (Micah 5:7)

 

[4] 사람 또는 교회의 남은 것, 곧 리메인스는 또한 십분의 일로 표상되었으며, 그것은 거룩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십을 포함하는 수도 거룩하였으며, 따라서 ‘십’(ten)은 리메인스에 관하여 서술됩니다. 이사야에서는, The residue or remains of a man, or of the church, were also represented by the tenths, which were holy; hence also a number with ten in it was holy, and “ten” is therefore predicated of remains; as in Isaiah:

 

12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13그중에 십 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사6:12, 13) Jehovah shall remove man, and many things [shall be] left in the midst of the land; and yet in it [shall be] a tenth part, and it shall return, and shall be for exterminating; as an oak, and an ilex, when the stock is cast forth from them, the holy seed is the stock thereof; (Isa. 6:12–13)

 

여기서 남은 것은 ‘거룩한 씨’(seed of holiness)라 불립니다. 아모스에서는, where the residue is called a “seed of holiness.” And in Amos: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스라엘 중에서 천 명이 행군해 나가던 성읍에는 백 명만 남고 백 명이 행군해 나가던 성읍에는 열 명만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암5:3) Thus saith the Lord Jehovah, The city that goeth forth a thousand shall have a hundred left, and that which goeth forth a hundred shall have ten left to the house of Israel. (Amos 5:3)

 

이 말씀들과 다른 많은 구절에서 속뜻으로는 지금까지 말해 온 ‘리메인스’(remains)가 의미됩니다. 교회의 리메인스로 말미암아 한 성읍이 보존된다는 것은 소돔에 관하여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에서도 분명합니다. In these and many other passages, in the internal sense are signified the “remains” of which we have been speaking. That a city is preserved for the sake of the remains of the church, is evident from what was said to Abraham concerning Sodom: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창18:32) Abraham said, Peradventure ten may be found there; and he said, I will not destroy it for ten’s sake. (Gen. 18:32)

 

해설

AC.468은 창5의 ‘장 개요’를 마무리하면서 지금까지 제시된 이름들의 의미를 매우 분명하게 확정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장의 이름들이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교리 또는 교회를 뜻한다고 명시합니다. 이것은 앞에서 우리가 조심스럽게 유보해 두었던 문제에 대해서도 중요한 기준을 줍니다. 적어도 창5의 속뜻을 해설하는 이 자리에서 ‘셋’, ‘에노스’, ‘게난’, ‘마할랄렐’, ‘야렛’, ‘에녹’, ‘므두셀라’, ‘라멕’, ‘노아’는 개인들의 일대기를 설명하기 위한 이름들이 아니라, 태고교회로부터 이어지며 변화해 온 교리와 교회들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창5의 족보 형식은 속뜻으로는 교회의 영적 역사가 됩니다.

 

여기서 스베덴보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교회들이 ‘여러 변화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태고교회로부터 노아에 이르기까지 보존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앞의 AC.462-467을 하나의 흐름으로 묶어 줍니다. 처음에는 천적인 태고교회가 있었고, 이후 그 상태가 점차 달라졌으며, 라멕에 이르러서는 태고교회가 누렸던 퍼셉션이 전혀 남아 있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완전히 소멸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홍수 때까지 참된 교회가 남아 있던 소수가 있었고, 바로 그들을 ‘노아’라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노아’는 이 문맥에서 단지 열 번째 교회의 명칭만이 아니라, 이전 교회가 거의 사라진 가운데 주님께서 보존하신 ‘마지막 리메인스’를 나타냅니다.

 

[2]에서 이 ‘리메인스’의 원리는 교회 전체에서 한 사람의 내면으로 확대됩니다. 이것이 AC.468의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교회 전체에 참된 것과 선한 것이 소수에게 남아 있어 인류 전체가 보존되는 것처럼, 한 사람 안에도 주님께서 보존하시는 리메인스가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단순히 과거의 좋은 기억 정도로 말하지 않습니다. 영적 생명과 천적 생명이 바로 이 리메인스 안에 있다고 합니다. 사람이 살아오는 동안 주님께서 그의 내면에 보존하신 선과 진리,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들이 훗날 거듭남의 토대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모든 사람 안에 리메인스를 보존하지 않으신다면 그는 필연적으로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다’고까지 말합니다.

 

이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스베덴보리는 심장의 비유를 사용합니다. 심장이 건강한 동안에는 주변의 장기들도 생명을 유지하지만, 심장이 쇠약해져 더 이상 영양을 공급하지 못하면 다른 부분들도 함께 죽게 됩니다. 교회 안의 리메인스가 이와 같습니다. 참된 교회가 외적으로 크게 쇠퇴하더라도 주님께서 선과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소수를 보존하시는 동안에는 인류와 교회가 완전히 끊어지지 않습니다. ‘노아’가 바로 홍수 직전 이러한 마지막 리메인스를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노아의 보존은 단지 몇 사람이 재난에서 살아남는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인류 가운데 영적 생명이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주님께서 ‘교회 안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선과 진리, 곧 리메인스’를 보존하시는 섭리를 보여 줍니다.

 

[3]에서 인용되는 사4:3-4, 사10:20-21, 렘50:20, 미5:7은 바로 이 원리가 말씀 전체에 반복되어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남아 있는 자’, ‘남은 자’, ‘피한 자’가 중요한 것은 그들이 단순히 숫자상 살아남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가 특별히 ‘시온과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자들이 단지 남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거룩할 수는 없다’고 말하는 까닭도 이것입니다. 이들이 ‘거룩하다’고 일컬어지는 것은 속뜻으로는 주님께서 보존하신 선과 진리, 곧 리메인스를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경에서 말하는 ‘남은 자’의 주제는 AC의 리메인스 교리와 깊이 연결됩니다.

 

[4]에서는 이 리메인스가 왜 ‘십’이라는 수와 연결되는지가 설명됩니다. 십분의 일이 리메인스를 표상하였기 때문에 십을 포함하는 수가 거룩하게 사용되었고, ‘십’은 리메인스에 관하여 서술되었습니다. 그래서 사6:12-13에서는 모든 것이 황폐해진 뒤에도 ‘십분의 일’과 ‘거룩한 씨’가 남으며, 암5:3에서는 천 명 가운데 백 명, 백 명 가운데 열 명이 남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산술적인 비율 자체가 아니라, 황폐 가운데서도 주님께서 무엇인가를 남겨 두신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주님께서 보존하신 거룩한 씨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창18:32의 소돔 이야기가 인용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이라는 아브라함의 간구와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는 주님의 말씀에서 ‘십’은 단순한 인원수를 넘어 리메인스를 표상합니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몇 사람을 위하여 한 성읍이, 때로는 한 나라 전체가 구원받기도 한다’는 설명과 연결됩니다. 주님께서 보시는 것은 외적인 규모가 아니라 그 안에 아직 보존되어 있는 선과 진리입니다.

 

이렇게 AC.468은 창5의 장 개요 전체를 ‘리메인스’라는 놀라운 원리로 마무리합니다. 태고교회는 쇠퇴했고 퍼셉션도 마침내 사라졌지만, 주님은 모든 것을 소멸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마지막까지 보존된 것을 ‘노아’라 하셨고, 바로 그것으로부터 새로운 고대교회를 일으키셨습니다. 그리고 이 질서는 교회의 역사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각 사람의 거듭남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우리 안에서도 때로는 선과 진리가 거의 사라진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주님은 사람이 알지 못하는 깊은 곳에 리메인스를 보존하시며 그것을 붙들고 다시 영적 생명을 일으키십니다. 그러므로 ‘노아’는 교회의 마지막 남은 자인 동시에, 인간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도록 끝까지 선과 진리를 보존하시는 주님의 자비와 섭리를 보여 주는 이름입니다. (AC.468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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