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89 심화

1. 왜 ‘하나님’에서 ‘여호와 하나님’으로 바뀌는가?

 

AC.89에서 스베덴보리는 창2부터 나타나는 한 가지 중요한 변화를 지적합니다. 앞에서 영적 인간을 다루는 구절들에서는 주님을 단지 ‘하나님’이라 하였는데, 이제 천적 인간을 다루기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이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에서 ‘여호와 하나님’으로 호칭이 달라지는 것일까요?

 

먼저 AC.89이 실제로 말하는 범위를 정확히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호칭의 변화를 분명히 지적하고, 이것을 지금부터 앞에서 다루었던 영적 인간과는 다른 사람, 곧 천적 인간을 다룬다는 증거 가운데 하나로 제시합니다. 그러나 AC.89 자체에서는 왜 영적 인간을 다룰 때에는 ‘하나님’이라 하고 천적 인간을 다룰 때에는 ‘여호와 하나님’이라 하는지 그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한 번호만으로 ‘여호와는 언제나 사랑을 뜻하고 하나님은 언제나 진리를 뜻한다’거나, ‘여호와 하나님은 언제나 사랑과 진리의 결합을 뜻한다’는 식으로 고정해서 설명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스베덴보리의 다른 곳에서 여호와와 하나님이라는 이름의 차이를 설명하더라도, 그 설명을 확인하지 않은 채 AC.89의 짧은 언급만으로 전체 호칭 체계를 먼저 완성해서는 안 됩니다.

 

더구나 이 질문을 계기로 ‘예수’, ‘그리스도’, ‘주’, ‘구주’, ‘아버지’, ‘아들’, ‘하나님의 아들’, ‘인자’, ‘성령’ 등 주님에 관한 모든 호칭을 한꺼번에 설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러한 호칭들은 각각 성경의 문맥과 스베덴보리가 실제로 그 호칭을 설명하는 곳에서 살펴보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여러 호칭이 나온다고 해서 각 호칭에 하나씩 고정된 기능이나 작용을 미리 배정해 놓고 이후의 본문을 그 틀에 맞추어 읽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AC.89의 호칭 변화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스베덴보리 자신이 이것을 천적 인간의 형성이 새롭게 다루어지고 있음을 보여 주는 증거로 제시했으므로 반드시 주목해야 합니다. 창1에서 영적 인간이 형성되는 동안에는 ‘하나님’이라 하였는데, 창2에서 천적 인간의 형성을 다루면서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호칭이 등장합니다. 독자는 우선 이 변화가 우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AC를 읽는 방법에서도 중요한 원칙을 보여 줍니다. 말씀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달라질 때 그 차이를 무시해서도 안 되지만, 이름 하나를 발견하자마자 미리 만든 의미표를 기계적으로 대입해서도 안 됩니다. 스베덴보리가 그 이름의 차이를 실제로 어떻게 설명하는지를 따라가야 합니다. AC.89에서는 우선 ‘하나님’에서 ‘여호와 하나님’으로의 변화가 영적 인간에서 천적 인간으로 주제가 전환되었음을 보여 주는 하나의 표지라는 데까지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왜 하나님에서 여호와 하나님으로 바뀌는가?’라는 질문은 여기서 완전히 닫기보다 가지고 가는 편이 좋습니다. AC.89이 우리에게 확실히 알려 주는 것은 호칭의 변화가 의미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더 깊은 이유는 스베덴보리가 이후의 본문에서 하나님의 이름들을 직접 설명할 때 하나씩 확인하면 됩니다. 그렇게 해야 우리가 먼저 만든 주님의 호칭 체계로 AC를 읽는 것이 아니라, AC 자체가 주님의 여러 이름을 어떻게 열어 가는지를 따라갈 수 있습니다. (AC.89 심화 1)

 

 

 

AC.89, 창2:4, ‘하늘과 땅의 내력 - 천적 인간의 형성은 속 사람에서 시작된다’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These are the nativities of the heavens and of the earth when he created them, in the day in which Jehovah God made the earth 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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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These are the nativities of the heavens and of the earth when he created them, in the day in which Jehovah God made the earth and the heavens. (창2:4)

 

AC.89

‘하늘과 땅의 내력’(nativities of the heavens and of the earth)은 천적 인간의 형성을 뜻합니다. 여기서 그의 형성을 다룬다는 것은 뒤이어 나오는 모든 세부 사항에서 매우 분명합니다. 아직 초목이 자라지 않았고, 지면을 경작할 사람도 없었으며,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을 형성하셨고, 그 후에 모든 짐승과 하늘의 새를 만드셨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들의 형성은 앞 장에서 이미 다루었습니다. 이 모든 것으로부터 여기서는 다른 사람을 다룬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제 처음으로 주님을 ‘여호와 하나님’(Jehovah God)이라 한다는 사실에서 더욱 분명합니다. 앞에서 영적 인간을 다루는 구절들에서는 주님을 단지 ‘하나님’(God)이라 하였습니다. 또한 이제는 ‘지면’(ground)과 ‘들’(field)을 말하지만, 앞에서는 오직 ‘땅’(earth)만을 말하였습니다. 이 절에서는 또한 ‘하늘’(heaven)을 먼저 ‘땅’(earth) 앞에 말하고, 그 뒤에는 ‘땅’(earth)을 ‘하늘’(heaven) 앞에 말합니다. 그 이유는 ‘땅’(earth)은 겉 사람을, ‘하늘’(heaven)은 속 사람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영적 인간의 경우에는 개혁이 ‘땅’(earth), 곧 겉 사람에서 시작하지만, 여기서 다루는 천적 인간의 경우에는 속 사람, 곧 ‘하늘’(heaven)에서 시작합니다. The “nativities of the heavens and of the earth” are the formations of the celestial man. That his formation is here treated of is very evident from all the particulars which follow, as that no herb was as yet growing; that there was no man to till the ground, as well as that Jehovah God formed man, and afterwards, that he made every beast and bird of the heavens, notwithstanding that the formation of these had been treated of in the foregoing chapter; from all which it is manifest that another man is here treated of. This however is still more evident from the fact that now for the first time the Lord is called “Jehovah God,” whereas in the preceding passages, which treat of the spiritual man, he is called simply “God”; and, further, that now “ground” and “field” are mentioned, while in the preceding passages only “earth” is mentioned. In this verse also “heaven” is first mentioned before “earth,” and afterwards “earth” before “heaven”; the reason of which is that “earth” signifies the external man, and “heaven” the internal, and in the spiritual man reformation begins from “earth,” that is, from the external man, while in the celestial man, who is here treated of, it begins from the internal man, or from “heaven.”

 

해설

AC.89는 창2:4부터 왜 다시 사람과 땅과 동식물의 형성을 말하는지를 설명합니다. 창1에서 이미 이러한 것들의 창조를 다루었는데도 창2에서는 아직 초목이 자라지 않았고 지면을 경작할 사람도 없으며,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을 형성하시고 다시 짐승과 새를 만드셨다고 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단순한 반복으로 보지 않습니다. 앞에서는 영적 인간의 형성을 다루었고, 이제는 천적 인간의 형성을 다루기 때문에 여기서는 ‘다른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하늘과 땅의 내력’도 천적 인간의 형성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다른 사람’이라는 표현은 역사적으로 또 하나의 별개의 인간이 창조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거듭남의 상태가 달라졌다는 뜻으로 읽어야 합니다. 앞에서 ‘여섯째 날’이 된 영적 인간이 천적 인간이 되기 시작한다고 했고, 이제 창2:4 이하에서는 그 천적 인간의 형성을 더욱 자세히 다룹니다. 따라서 창1과 창2의 차이는 동일한 창조 이야기를 단순히 두 번 되풀이한 것이 아니라, 속뜻에서 서로 다른 상태의 인간을 다룬다는 데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러한 전환을 보여 주는 또 하나의 증거로 하나님의 호칭에 주목합니다. 영적 인간을 다루던 앞부분에서는 주님을 ‘하나님’이라 하였지만, 이제 천적 인간을 다루면서 처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이라 합니다. AC.89은 이 호칭의 변화가 우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분명히 지적하지만, 여기서는 아직 왜 이러한 차이가 생기는지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 이유를 미리 고정하여 설명하기보다, 우선 이 호칭의 변화가 영적 인간에서 천적 인간으로 주제가 전환되었음을 보여 주는 표지라는 데 머무르는 것이 좋습니다.

 

또 하나의 변화는 ‘땅’뿐 아니라 이제 ‘지면’과 ‘들’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이것 역시 스베덴보리가 직접 지적하는 본문의 변화입니다. 따라서 이 단어들을 모두 같은 말처럼 처리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AC.89은 여기서 ‘지면’과 ‘들’ 각각의 속뜻을 아직 설명하지 않으므로, 그 의미를 앞질러 정하지 않고 뒤의 설명을 기다리는 것이 안전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절의 어순도 중요합니다. 처음에는 ‘하늘과 땅’이라 하여 하늘이 먼저 나오고, 뒤에는 ‘땅과 하늘’이라 하여 순서가 바뀝니다. 스베덴보리는 ‘땅’이 겉 사람을, ‘하늘’이 속 사람을 뜻한다고 설명하면서 이 순서의 변화가 영적 인간과 천적 인간의 형성 질서의 차이를 보여 준다고 합니다. 영적 인간의 개혁은 ‘땅’, 곧 겉 사람에서 시작하지만, 천적 인간의 형성은 ‘하늘’, 곧 속 사람에서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AC.89는 창1에서 창2로 넘어가는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이미 다룬 사람과 피조물의 형성이 다시 등장하는 것, ‘하나님’에서 ‘여호와 하나님’으로 호칭이 달라지는 것, ‘땅’뿐 아니라 ‘지면’과 ‘들’이 등장하는 것, 그리고 ‘하늘과 땅’의 순서가 달라지는 것 모두가 이제 천적 인간의 형성을 다루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특히 영적 인간의 개혁은 겉 사람에서 시작하고 천적 인간의 형성은 속 사람에서 시작한다는 마지막 설명은, 두 상태의 차이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AC.89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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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90, 창2:5-6, ‘땅에서 지면과 들로, 싸움이 그친 뒤의 평화의 평온’ (AC.90-93)

5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And there w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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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8, 창2:2-3, ‘새 창조, 곧 거듭남은 주님 홀로의 일이다’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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